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30.


《밥상 아리랑》

 김정숙 글/차은정 옮김, 빨간소금, 2020.3.27.



서오릉 이웃님이 가꾸는 꽃밭집에 찾아갔다. 이곳에 발을 디디기는 처음인데, ‘서울 바깥’이라고 한다. 이쪽에 ‘배다리’가 있단다. 인천에도 ‘배다리’가 있지. 나라 곳곳에 ‘새마을·새터’나 ‘꽃골·밤골’ 같은 이름이 흔하듯 ‘배다리’도 너른 이름이다. 서오릉 이웃님하고 얘기하다가 “이웃님 스스로 늘 듣고 싶은 이름을 우리 아이한테 알려주셔요. 우리는 어버이한테서 받은 이름만 써야 할 까닭이 없어요. 스스로 늘 듣고 말하면서 즐거울 이름은 스스로 지으면 돼요.” 하고 여쭈었다. 서오릉 이웃님은 ‘바다처럼’이란 이름을 쓰겠노라 하신다. 잘 놀고 잘 얘기하고서 전철로 서울로 들어서서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으로 돌아간다. 서울을 벗어나 시골로 달릴수록 소리하고 바람빛이 다르다. 읍내에 닿아 마침내 집에 이르니 아이 낯빛이 풀꽃나무처럼 싱그럽게 풀린다. 《밥상 아리랑》을 즐겁게 읽으면서 옮김말만큼은 아쉽다. ‘교수님 눈높이 옮김말’이 아닌 ‘밥짓는 어버이 눈높이 옮김말’로 가다듬으면 훨씬 나았으리라 본다. 그러나 책을 쓰거나 옮기는 분은 으레 ‘교수님·작가님·예술가’이기 마련이니 말씨가 참 어렵고 딱딱하다. 아이들하고 삶을 노래하듯 글을 쓰고 옮기면 더없이 눈부신 책이 태어날 텐데.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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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29.


《책 한번 써봅시다》

 장강명 글, 한겨레출판, 2020.11.23.



작은아이하고 나서는 서울길이다. 마을 어귀에서 시골버스부터 기다리는데 30분이 넘도록 안 온다. 함께 기다리는 마을 할매가 “버스가 온다요, 안 온다요?” 하고 묻는다. “긍게요. 넘 늦는디요.” 늦쟁이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서 서울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서 마을책집을 들른다. 〈숨어있는 책〉하고 〈글벗서점〉을 들르고서 영천시장에 찾아가 샛밥을 누린다. 이러고서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에 살짝 머물렀다. 작은아이는 마을책집 앞길을 오르락내리락 달리면서 즐겁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땀내어 달릴 만한 길을 찾은 셈. 10월 29일 저녁 20시부터 〈광명문고〉에서 ‘책밤수다(심야책방)’를 펴기로 했다. 자리를 옮기는 길에 작은아이는 이 잿빛고을에 대고 “서울은 형광등 나라야!” 하고 외친다. “그러네. 산들보라 씨 말대로 온통 형광등이네.” “서울사람은 별을 볼 생각이 없어!”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었다. 누구나 책을 쓸 만하다는 줄거리에 번듯한 글결이다만, 마지막 쪽을 덮기까지 꽤 동떨어진 이야기 같았다. 그래, ‘번듯한 글결 = 서울빛’이로구나. 수수한 삶빛이나 투박한 살림빛은 흐르지 않는 ‘자로 잰 듯한 글’이다. 아기를 낳아 돌보며 집살림을 맡는 삶내음이란 없는 책이었구나.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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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28.


《쇼리》

옥타비아 버틀러 글/박설영 옮김, 프시케의숲, 2020.7.15.


우리 집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쓰다듬고 말을 건다. 우리 집 풀꽃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톡 훑고 곁에서 춤을 춘다. 나무가 우거지기에 보금자리가 포근하고, 풀꽃이 넘실거리니 보금자리가 따스하다. 이튿날 작은아이랑 마실할 길을 살핀다. 서울 은평에 있는 〈광명문고〉에서 ‘밤책수다(심야책방)’를 펴기로 했다. 작은아이는 “난 힘들지 않아. 옆에서 그림 그리면서 놀면 돼.” 하고 말한다. “그래, 그림을 그리다가 영화를 봐도 돼. 영화를 볼 수 있게 챙길게.” 빨래를 하고 집안일을 한다. 읍내로 가서 먹을거리도 장만해 놓는다. 지난 제주마실길에 장만한 《쇼리》를 천천히 읽는다. 글꽃(문학)은 잘 읽는데 줄거리가 꽤 탄탄하구나 싶다. 다만, 아이들한테 읽힐 만하지는 않다. 틀림없이 잘 쓴 글꽃이라고는 여기나 ‘소설’이나 ‘시’나 ‘수필(에세이·비소설)’ 같은 이름이 붙으면 하나같이 아이하고 함께 읽기 어렵더라. 한자말 ‘문학’을 우리말로 풀자면 ‘글꽃’이기는 하지만, 막상 글로 피우는 꽃이라기보다는 슬픔꽃이나 눈물꽃이나 멍울꽃인 글이 수두룩하다. 어린이랑 어깨동무하는 마음으로 글꽃을 짓기는 힘들까? 어린이한테 물려줄 만하도록 글꽃을 가꾸면 안 될까? 어른끼리만 읽는 글은 썩 내키지 않는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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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27.


《나는 토끼 폼폼》

 이새롬 글·그림, 롬, 2021.5.5.



서늘하게 가라앉는 비가 그친 뒤 차츰 날이 풀리더니 꽤 폭하다. 해마다 겨울은 차츰차츰 포근빛으로 간다. 올겨울은 어쩌려나. 마흔 해 즈음 앞서는 고흥 논자락이 꽁꽁 얼어붙었다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 서른 해 즈음 앞서 인천은 겨우내 꽤 춥고 -20℃가 가까운 날이 있었으나 요새는 다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 포근한 날씨조차 춥다고 여긴다. 《나는 토끼 폼폼》를 즐겁게 읽었다. “폼폼 토끼”는 퐁퐁퐁 난다. 다른 토끼는 통통통 뛰고, “폼폼 토끼”는 포근하게 하늘빛을 머금는다. 늦가을을 앞두고 깨어난 나비를 곳곳에서 만난다. 큰아이하고 읍내 언저리를 걸으며 빈터에서 자라는 들풀을 만나고, 풀밭에서 풀벌레 노래를 듣는다. “아버지, 여기는 풀밭이 있어서 풀벌레가 노래하네요.” “그래, 그렇구나. 빈터가 있어 풀이 자라고, 이렇게 풀이 자라니 풀벌레가 찾아들어서 노래해 주네.” 풀노래를 알아차리는 큰아이가 고맙다. 풀노래를 반기는 큰아이가 사랑스럽다. 나라 곳곳에서 풀노래에 구름노래에 바다노래에 하늘노래에 별노래를 듣는 어린씨랑 푸른씨가 있을 테지? “포근포근 날갯짓하는 어린이”를 그린다. “폭신폭신 날아오르는 푸름이”를 기다린다. 하늘빛으로 물들어 환하게 웃는 어른 이웃을 만나고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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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26.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하루키 글/권남희 옮김, 까치, 2001.10.5.



바지런히 마실을 다니며 장만한 책을 천천히 읽는다. 이 책을 하나하나 만나는 자리에서는 “이다음에 언제 다시 만나겠니?” 하고 생각한다. “꼭 사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고도 뉘우치지만, “다문 한 쪽이나 한 줄만 짚더라도 이 책이 있을 적하고 없을 적은 사뭇 다른걸.” 하고 돌아본다. 책값은 오늘을 다시금 새기도록 차근차근 짚으려고 치르는 배움삯이라고 느낀다. 한 자락을 읽어 한 걸음을 새로 딛고, 두 자락을 읽어 두 걸음을 새록새록 나아간다. 《무라카미 라디오》를 읽었다. 이 책이 갓 나올 즈음에는 안 읽고서 스무 해가 지나서야 읽는다. 지난 2001년에 “야, 넌 왜 안 읽어? 내가 좋아하는 책이잖아!” 하고 나무라는 님한테 “그렇지만 전 따분한걸요. 하루키 글이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시골에서 흙짓는 할머니 이야기를 듣거나, 신나게 나무를 타면서 뛰노는 아이들 이야기를 듣는 쪽이 재미있어요.” 하고 대꾸했다. “참, 문학도 모르는 놈이군!” 하는 말에 “전 ‘문학’을 알고 싶지 않아요. 알고 싶다면 ‘삶과 글과 넋과 사랑’을 알고 싶어요.” 하고 대꾸했더니 사납게 이글거리는 눈으로 쏘아보았지. 누구나 스스로 제 삶을 쓰면 된다. 하루키를 보라. 하루키는 ‘하루키 삶’만 글로 쓸 뿐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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