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란, 책이란



책이 숲처럼 있는 집이 도서관이라고 여겨 ‘책숲집’이란 이름을 하나 지었습니다. 이 책숲집은 책 + 숲으로 이룬 집일 테니, 둘을 맞물려서 숲하고 책을 새롭게 헤아리기로 했습니다. 먼저 숲이란, 지구라는 별을 가득 감싸면서 즐겁게 빛나는 책이 모여 노래하는 도서관이지 싶습니다. 다음으로 책이란, 서로 사랑으로 만나 새로 살림을 지으며 기쁘게 낳은 상냥한 아이로구나 싶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읽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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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지 말고 보시지



가만히 보면, 사전을 모시는 분은 많되 보시는 분은 적다. 두툼하고 값비싼 사전을 애써 장만해 놓은 뒤에 책꽂이 한켠에 곱게 모시는 분은 참으로 많다. 그러나 이 두툼하고 값비싼 사전을 날마다 틈틈이 들추면서 보시는 분은 뜻밖에 적다. 사전은 모시라고 하는 종이꾸러미가 아니다. 사전은 보시라고 하는 이야기꾸러미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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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교복을 입는다면



교사한테 날마다 똑같은 학교옷을 입히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교감 교장 모두 날마다 똑같은 학교옷을 입고서 지내도록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나라 곳곳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옷을 입고서 살도록 한다면 어떤 일이 있을까요? 모든 사람한테 똑같은 옷을 입히며 ‘옷으로 잘난 척하거나 돈자랑을 하는 일이 사라질’까요? 사람을 다스리거나 다루기에 수월할까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말을 해야 하고, 똑같이 글을 써야 하고, 똑같은 지식을 외워야 하고, 똑같은 일을 해야 하고, 똑같은 걸음걸이나 몸짓이어야 하고, 춤이나 노래도 똑같이 해야만 할 적에, 이 나라 이 삶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아이들한테 학교옷을 똑같이 맞춰 입히고, 머리카락이나 치마 길이를 따지는 규칙이란, 참말로 무슨 짓인가를 배울 노릇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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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속삭이다 (뱀 수다)



  어릴 적부터 어쩐지 풀밭은 맨발로 디뎌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멧길을 탈 적에도 신을 벗고 맨발로 올라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작은 풀밭을 만나면 으레 신을 벗고 양말을 얌전히 신에 넣고서 맨발로 디뎌 보곤 했습니다. 이때마다 흙이며 풀잎이 간질간질 건드려 주는 결이 아주 반가웠습니다. 우리 책숲집에서 맨발로 쪼그려앉아서 맨손으로 낫을 쥐고 풀을 베어 주는데, 발바닥으로 어떤 목소리가 찾아듭니다. 어디에 숨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언제 꼬리를 뺐는지 알 길도 없지만, 뱀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다음부터는 뱀이 풀밭하고 흙을 거쳐서 저한테 마음으로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얘, 얘, 너희(사람)는 왜 우리(뱀)를 그렇게 끔찍히 멀리하는지 몰라


1. 이제 너희는 과학으로 밝혀서 아는 사람도 있기도 하던데, 아직도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참 많더라. 우리는 눈으로 앞이나 둘레를 보면서 다니지 않아. 우리는 소리하고 결(주파수·진동)로 느끼면서 다녀. 소리하고 결이라고 했지만, 이 소리도 결하고 같아. 우리는 흙이 있는 풀밭을 아주 조용하게 슬슬 기듯이 붙어서 다니면서 이 땅에 몸을 댄 숨결이 어떻게 어디에 있는가를 바로 알아챈단다.


2. 너희는 풀이 우거진 곳에 들어설 적에 으레 긴바지에 긴소매에 두툼한 신을 꿰어야 한다고 여기지? 그래야 우리가 너희를 안 문다고 여기더라. 참 우습지. 왜 우리가 너희를 물어야 하는데? 그다지 맛있지도 않은 너희 살점을 뭣 하러 물어야 하는데? 우리가 너희를 물어서 우리한테 좋을 일이 뭐가 있니? 생각해 봤니? 우리가 너희를 왜 물어야 하니?


3. 잘 생각해 봐. 우리가 너희를 물 때는 깜짝 놀란 나머지 우리 목숨이 너희한테 빼앗길까 싶었기 때문이야. 우리는 우리 몸을 지키려고 우리 몸을 내던져서 너희를 물어. 우리한테 물린 너희가 바닥에 주저앉아서 우리를 안 볼 때까지 기다리지. 너희가 우리한테 물려서 주저앉으면 이때다 싶어 재빠르게 꼬리를 빼지.


4. 너희는 너무 모르는데, 너희가 맨발로 다리를 훤히 드러내면서 풀밭을 거닐면, 우리는 너희가 풀밭에 발을 디딘 줄 곧장 알아챌 수 있어. 너희가 두툼한 신, 그 플라스틱 신을 꿰니까 우리는 너희가 어디에 있는지 하나도 몰라. 너희는 “뱀을 쫓는다”면서 긴 나뭇가지를 손에 쥐고 풀밭을 헤치거나 땅바닥을 울리기도 하더라. 참 우습지. 이런다고 우리가 꼬리를 빼겠니? 살결을 느낄 수 없이 나뭇가지가 풀밭을 헤칠 적에는, 이게 바람이 풀밭을 건드리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우리는 으레 바람이 풀밭을 건드린다고 여겨서 가만히 있곤 해. 바람은 우리를 괴롭히거나 잡아죽이려 하지 않거든.


5. 너희가 나뭇가지를 우리 앞에서 빙빙 돌리거나 흔들거나 쑥 내밀면 깜짝 놀라. 아무런 숨기운이 없어 보이는 나뭇가지가 어떻게 혼자 움직이지? 스스로 숨결을 내지 않는 나뭇가지가 우리 앞에서 빙빙 돌 때면 우리도 빙빙 돌아서 어떻게든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지만, 나뭇가지를 물어서 주저앉히지 않으면 꼬리를 뺄 틈이 없으니, 나뭇가지를 덥석 물려고 하지. 그런데 너희가 일부러 이렇게 하지 않기를 바라. 너희한테 너희 목숨이 대수롭다면, 우리한테도 우리 목숨이 대수롭단다.


6. 아무리 풀이 우거진 곳이라 하더라도, 너희가 여럿이 풀밭을 거닌다면 꼭 한 사람이라도 맨발로 있어 주기를 바라. 그래야 우리는 사람을 느끼지. 다른 목숨이 땅을 밟았구나 하고 느껴. 우리는 발자국을 발결로 알아채. 그리고 너희 발바닥에 깃든 발내음을 살펴. 숲을 사랑하는 발내음인지, 숲을 싫어하는 발내음인지, 숲을 두려워하는 발내음인지, 하나하나 살펴. 너희가 숲을 사랑하는 발내음이라면, 우리는 일부러 너희가 다 지나갈 때까지 곁에 얌전히 있기도 한단다. 숲을 사랑하는 밝은 기운을 오래도록 누리고 싶거든.


7. 때로는 우리가 한 자리를 고이 지키며 있기도 해. 알을 품었을 때야. 알을 품으면 굼뜨지. 그리고 알을 낳으려 할 적이라든지, 알을 낳은 뒤에도 한 자리에서 꼼짝을 안 해. 이때에 우리는 끊임없이 숨결(진동·주파수)을 내뿜어. 제발 우리 가까이에, 곁으로 오지 말라고. 우리가 보내는 숨결을 느끼거나 들을 수 있다면 우리가 있는 쪽으로 안 오겠지.


8. 그러니까, 너희는 너희 발결을 우리가 느낄 수 있도록 맨발로 풀밭에 들어오기를 바라. 그리고 우리가 너희한테 보내는 숨결도 너희가 제발 느껴 주기를 바라.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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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몰아치다 (태풍 수다)



  2012년 뒤로 2018년에 드디어 이 땅에 회오리바람(태풍)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회오리바람은 좀처럼 다가오지 못했고, 제주섬에 겨우 닿고서 느릿느릿 다가오다가 차츰 힘을 잃으면서 조용히 사그라들었습니다. 회오리바람이 남녘 바닷가로 찾아올 즈음, 마당에 선 후박나무 줄기에 손을 대고 뺨을 대며 물어보았습니다. “이 태풍은 어떠니?” “태풍? 태풍이 어디 있어?” “다들 태풍이 온다고들 하는데?” “아, 그 태풍? 나한테는 태풍이 아니야. 모처럼 부는 바람일 뿐이야. 가벼운 바람.” 2012년에 회오리바람이 불 적에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는 쉴새없이 춤을 추며 휘청휘청했습니다. 그때에 우리 집 담벼락 두 군데가 와르르 무너졌지만, 후박나무는 신나게 휘청춤을 추며 속삭였어요. “너도 좀 춤을 춰 봐. 담벼락 걱정은 그만해.” 다음부터는 오랜만에 한국에 찾아온 회오리바람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너희(사람)는 나(회오리바람)를 너무 미워하고 싫어하는구나


1. 너희가 이렇게 나를 미워하고 싫어할 줄 몰랐어. 나는 너희를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려고 하지 않아. 나는 바다에서 태어나 뭍을 시원스레 긁어 줄 뿐이야. 내가 한동안 여기(한국)를 긁지 않아서 지저분한 것이 너무 많지 않니? 너희는 그 지저분한 것을 다 끌어안고 살 생각이니? 너희가 치우지 않으니 내가 치워 준단다.


2. 내가 해마다 너희한테 꾸준히 찾아가면 너희는 너희 보금자리나 마을에 지저분한 것을 두지 않아. 꼭 두어야 할 것만 두지. 그런데 너희는 나를 아예 생각하지 않았고, 나 따위는 오지 말라고 빌었고, 너희 도시를 키우려고 나는 아랑곳하지도 않더군. 너희는 컴퓨터로 나를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데, 너희가 컴퓨터를 버리지 않는다면 너희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


3. 나는 바람이야. 상냥하지도 거칠지도 않은 바람이야. 나는 뭍에서 가려운 곳을 긁으면서, 살살 긁으면서 물(비)을 뿌리지. 생각해 봐. 너희도 청소를 할 적에 솔로 박박 비비고 물을 붓잖아. 나는 너희하고 이 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청소 벗이야.


4. 옛날에 너희는 늘 우리를 기다리고 바랐어. 너희는 때때로 우리를 두렵게 여기기도 했지만, 우리를 두렵게 여긴 사람은 드물어. 으레 우리가 올 줄 알고서 보금자리를 알차게 가꾸었어. 그런데 너희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하면, 아니, 너희 자리를 지저분한 것으로 채우려 하면, 우리는 그 부질없는 것을 너희가 왜 자꾸 가지려 하는지 알쏭하다고 여기면서 치워 주지.


5. 너는 아니? 네가 어릴 적에 네가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어서, 내가 너를 가볍게 들어올려서 하늘을 날게 했지. 그런데 너는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하늘로 오르자 아주 무서워했어. 막 울려 했지. 너는 하늘을 나는 꿈을 꾸기는 했어도 도시에 젖은 나머지 네 꿈이 참으로 무슨 꿈인지 알지 못했어. 그래서 나는 너를 바로 사뿐히 땅에 내려주고, 다시는 너를 하늘로 날아오르도록 안아 주지 않았어. 너희는 나를 불러서 얼마든지 마음껏 하늘을 날다가 땅으로 내려올 수 있는데, 왜 하늘을 나는 꿈을 제대로 그리지 않니?


6. 아스팔트길이 끊어지면 피해이니? 아파트나 빌딩이 무너지면 피해이니? 자동차가 뒤집어지면 피해이니? 그런데 아스팔트나 아파트나 빌딩이나 자동차를 만들려고 하는 동안 너희가 숲에 얼마나 피해를 끼쳤는 줄 아니? 숲이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너희가 제넋을 차리도록, 바보스러운 것들을 왕창 긁어모은 땅이 아닌 즐거운 보금자리를 새로 짓도록, 너희가 사는 곳을 살살 긁어서 빗물로 말끔히 닦아 주려고 내가 너희한테 해마다 찾아간단다.


7. 옛날에 너희가 우리를 해마다 기다린 뜻을 알겠니? 옛날에는 해마다 여러 걸음을 했어. 열 걸음 넘게 다녀간 적도 있지. 너희가 보금자리를 아름답게 가꾸면 우리가 열 걸음이나 스무 걸음을 다녀간들 대수롭지 않아.


8. 나는 노래하는 사람을 기다려. 비를 바람을 회오리를 노래하는 사람을 기다려. 노래하면서 불러 주렴. 너희 손으로 치울 수 없는 쓰레기가 잔뜩 쌓였을 적에 즐겁게 춤추면서 나를 부르렴. 언제든지 찾아갈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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