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서서가기 : 부산에서 12:00에 딱 이야기를 마치고서 부산나루로 달린다. 땅밑으로 달리는 길을 서서간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13:04 칙폭길은 빽빽하다. 서서가기를 한다. 붐비는 사람에 따라 칙폭이는 15:54에 닿는다. 여느때보다 좀 늦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적이는 서울인 만큼, 이곳도 저곳도 사람물결이다. 말소리·가게소리·알림소리·부릉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서울에서 풀벌레노래나 멧새노래가 구름노래를 바란다면 바보스러울 듯싶다. 어떤 길로 갈아타야 하나 허둥지둥하다가 처음으로 공항철도를 탄다. 서울에서 펴는 이야기 자리에 맞추려고 등짐(책가방)을 질끈 동여매고서 달린다. 공항철도도 꽉 찼다. 빈틈 하나 가까스로 얻어서 등짐을 내려놓는다. ‘디지털미디어시티’라고 하는, 뭘 하는 데인지 모르겠을 나루에서 내린다. 다시 등짐을 멘다. 새까만 굴을 걸어서 지난다. 부릉부릉 빨리 가로지를 만한 굴일 수 있을 테지만, 이 굴길을 걸어서 지나야 하는 모든 사람은 숨막히고 먼지바람을 옴팡지게 먹어야 한다. 그런데 굴길이 끝나자마자 늘푸른나무가 곁에서 푸른내음을 훅훅 베푼다. “힘들었지? 이 푸른숨을 마시고서 기운을 차리렴.” “너희야말로 이곳에서 하루 내내 쉬잖고 오가는 매캐한 바람 때문에 힘들 텐데.” “응,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먼먼 엄마나무랑 아빠나무를 그려. 사람들이 이곳에 굴을 파고서 씽씽 달린 지는 고작 쉰 해도 안 되었잖니? 우리 엄마나무랑 아빠나무는 이루 셀 길이 없도록 오랜 나날을 이곳에서 살았단다.” 나무하고 몇 마디 섞고서 다시 걷는다. 17:16부터 18:16까지, 서울이웃 여러분하고 노래쓰기(시창작) 이야기를 편다. 이야기는 나 혼자 서서 폈고, 이야기를 듣는 이웃님은 모두 바위에 앉았다. 함께 노래를 쓰고 읽고 마음을 나눈다. 얼핏 본다면 ‘여섯 시간 남짓’ 앉지도 못 하며 내내 서거나 걸어다닌 하루인데, 오늘은 마침 “그렇게 서서 다니면 힘들지 않아요?” 하고 묻는 분은 없다. 다만 “날이 이렇게 찬데 안 추워요?” 하고 묻는 분은 많다. 10월 27일이지만 난 여태 민소매에 깡똥바지이다. 빙그레 웃으며 여쭌다. “제 책가방(등짐)을 들어 보시겠어요? 저는 한겨울에도 땀을 흘리면서 책가방을 짊어지고 다녀요. 그렇다고 땀을 잔뜩 흘려서 덥다고 여기지 않아요. 제 마음을 살찌울 책을 바깥마실을 하며 실컷 장만해서 기쁘게 짊어질 뿐이에요. 이 책꾸러미가 제 눈을 틔울 속살을 헤아리면서 뚜벅뚜벅 걸으면, 여름도 겨울도 덥거나 춥지 않답니다. 오늘은 하루 내내 서거나 걷지만, 그저 서거나 걸으면서 노래를 쓰고 하루를 돌아보기만 하고요.” 2024.10.28.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