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큰바람



큰바람은 휩쓸고 지나가지. 이도저도 줄줄이 휘감아서 휙 날리는 큰바람이야. 뿌리가 안 깊으면 잔바람에도 휩쓸리고, 큰바람에는 싹 날린단다. 그렇다고 모두 큰바람에 휩쓸리거나 휘둘리지는 않지. 큰바람이 지나간 자리를 보렴. 꺾이거나 뽑힌 푸나무가 있을 테지만, 숲을 이룬 푸나무는 거의 멀쩡해. 잔바람은 잔물결을 일으키고, 큰바람은 큰물결을 일으킬 테지. 큰바람이 일면, 다들 어떤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인지 또렷이 드러나. 바람에 휩쓸려 사라진 것을 아쉬워할 일은 없어. 바람을 반기고 누리면서 뿌리깊은 숨빛을 바라볼 노릇이야. 때로는 풀과 나무가 큰바람에 풀씨와 나무씨를 날리기도 해. 어디까지 날아갈는지 모르는 길이지만 아주 새곳으로 퍼지려는 뜻으로 큰바람을 탄단다. 그래서 뿌리얕아 휩쓸리는 것이 큰바람에 싹 쓸리기도 하면서, 이제는 확 바꾸는 새길을 그리는 숨붙이까지 큰바람을 안고서 머나먼길을 나선단다. 사람들은 곧잘 큰바람을 바라더구나. 스스로 선 곳을 차분히 가꾸면서 차곡차곡 뿌리를 내리는 길이 아닌, 한몫에 다 이루거나 거머쥘 큰바람을 노리네. 스스로 있는 곳부터 참하게 밝히면서 천천히 가지를 뻗는 길이 아닌, 한꺼번에 몽땅 되거나 잡아챌 큰바람을 기다리네. 남을 휘두르려 하기에 사납게 휩쓸고 싶겠지. 스스로 뿌리를 안 내리거나 뿌리가 얕으니 큰바람에 기대더라. 덩치나 덩이를 쳐다보니 제몸·제빛·제눈을 잊어. 크기나 힘을 바라니 철빛·철눈·철바람을 몰라. 바람 한 줄기마다 서리는 노래를 읽으려 할 적에 스스로 눈뜨면서 두 다리가 튼튼하단다. 큰바람이 아닌 바람을 볼 일이야. 2026.4.17.쇠.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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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묻다



해가 환하게 나면 풀과 나무는 잎을 활짝 열어. 어제 해를 쬐었으니 오늘은 안 쬐어도 되지 않아. 어제 숨을 쉬었으니 오늘은 숨을 안 쉬어도 되겠니? 구름이 해를 가리면 풀과 나무는 가만히 잎을 오므리면서 ‘지난해(어제나 그제나 그끄제 햇볕)’를 되새겨. 해를 쬐며 얼마나 즐겁고 반가운지 돌아보지. 그리는 마음이기에 눈앞에서 이루는 날까지 꿈을 지켜본단다. 그리면서 새록새록 꿈을 곱씹는 동안, 스스로 속깊이 밝게 자라고 움틀 수 있어. 어느 풀이나 나무이든 해한테 토라지거나 성내지 않는단다. 해가 안 나면 안 날 뿐이고, 비가 오면 비가 올 뿐이고, 밤이 이슥하면 그저 잘 뿐이야. 사람들은 무엇을 보며 무슨 마음이고 무슨 말을 하니? 사람으로서 이미 ‘하늘빛’을 마음에 놓고서 몸에 담은 줄 느끼고 알아보는 하루일까? 사람으로서 언제나 ‘하늘꿈’으로 피어날 씨앗을 몸마음에 고루 새기는 줄 알아채는 삶일까? 사람으로서 누구나 다르면서 즐겁게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익혀서 넋으로 가꾸는 줄 살피는 길일까? 흙묻은 손에서는 흙냄새가 나. 모든 씨앗을 돌보는 흙빛을 손에 고루 담으니, 이 손으로 살림을 빚어서 사랑을 펴. 모든 풀나무가 아늑히 안기는 흙숨을 손에 두루 옮기니, 이 손으로 이야기를 일궈서 서로 도란도란 말씨를 주고받아. 흙묻지 않은 손에는 흙냄새가 안 밸 텐데, 흙냄새를 안 맡고서 밥을 먹어도 너 스스로 빛나거나 아름다울는지 돌아보렴. 흙투성이가 되라는 소리가 아니야. 모든 꽃은 흙에 뿌리내린 풀과 나무가 곱게 피우지? 사람이 사람빛을 밝게 피우려면, 발바닥으로 흙바닥을 디디면서, 손바닥으로 흙알갱이를 조물조물 매만질 노릇이란다. 흙묻고 물묻고 비묻고 잎묻기에 즐거운 손이야. 2026.4.18.흙.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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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하지 못했다는



키가 작아서

힘이 없어서

재주가 없어서

하지 못했다고 여긴다


돈이 없어서

이름이 없어서

틈이 없어서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못 할 적에는 못 하면 되잖아

늘 숨을 쉬고 눈을 뜨고 일어서는걸

안 한다는 핑계를 대도 되는걸

난 오늘은 아직 할 때가 아니니까


2026.2.9.달.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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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집에 있으면



밖에 있으면

겨울이 몹시 춥고

여름이 아주 덥다

어쩐지 갈수록

시골도 서울도 나무가 줄고

가지치기로 시달리더라


집에 있으면

겨울이 고즈넉이 포근하고

여름은 땀나더라도 시원하다

날이 갈수록

우리 보금자리는 나무가 굵고

가지를 죽죽 뻗으며 새가 는다


2025.8.24.달.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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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ㅂㅁㅅ (빈모습)



바다는 마를 일 없이 속삭인다

바람은 말갛게 솟아난다

밤은 모두 살리고


봄을 맞이하는 숲은

보드랍게 마음부터 살피고

밭에서 마을에서 서울에서

바라보고 마주보며 생각한다


밝게 맑게 새롭게

붉게 묽게 산뜻이

받고 모아서 심으니


바로 만나고서 싱긋싱긋


2026.4.15.물.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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