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흰옷 2024.10.8.불.



빛깔을 한 가지 낱말만으로 가리키지 않아. 풀을 담았기에 ‘풀빛’인데 ‘잎빛’이기도 하지. 불을 담아서 ‘불빛·붉다’인데, ‘빨강’으로도 나타내. ‘검다·까맣다’도 ‘희다·하얗다’도 마찬가지야. ‘희다’라면 ‘흐리다’하고 잇는데, ‘흐리다’는 하늘에 구름이 가득한 결이야. 구름바다를 이루니 ‘흰빛’이지. 하늘에 있는 ‘해’를 보며 ‘하얗다’라고 했다면, ‘구름하늘빛’이 ‘흰빛’이기도 해. ‘흰옷’이란 ‘하얀옷’이면서 ‘구름하늘옷’일 테지. 환하게 덮기도 하고 틔우기도 하는 빛이야. ‘흰옷’이란, ‘흰옷겨레’란, ‘하늘옷사람’이자 “하얗게 덮고 비추는 숨빛으로 온 사람”을 나타내겠지. 무슨 뜻인 줄 읽을 수 있을까? 모든 나라와 겨레는 낱말과 빛깔에 다 다르게 이야기와 살림이 깃들어. 하얗게 드리우는 해는 먼저 온누리에 밑바탕을 펼쳐. 이 하얀 바탕에는 모든 빛깔이 물들 수 있어. 온갖 빛깔이 어울리면서 서로 환하지. 밤에도 짙파랗거나 까만 바탕에 갖은 빛이 저마다 새롭게 물들일 수 있으니, 밤에는 꿈씨를 심어. ‘하얀낮’인 ‘한낮’에는 ‘하얀곳’에 온갖 빛을 물들여서 일씨를 심는단다. 이제부터 일구려는 일이야. 일구면서 이루는 이야기야. 스스로 일으켜서 새롭게 이곳에 있는단다. “흰빛·낮빛 = 이곳에 있는 새길”이라고 여길 만해. “까망·밤빛 = 저곳에 가는 새꿈”이라고 여길 만하지. 밤낮으로 이곳저곳을 갈마든단다. 아침저녁으로 일과 꿈이 맞물려. 해와 별을 나란히 두 손과 두 눈과 두 귀와 두 발에 놓으면서, 하얗고 까맣게 온마음을 적시기에, 몸마음이 튼튼하게 자라. 까망하양(밤낮)이 얽힌 하루를 고이 사랑하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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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저기에서 왔어 2024.10.10.나무.



저기에서 오니 저쪽이야. 여기에서 오니 이쪽이야. 자리는 달라. 삶이나 숨결은 같아. 낯선 데에서 오니 가만히 둘러보고 지켜보고 들여다보면서 배워. 넌 여기에서 짓는 하루로도 배우고, 저기에서 짓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하나하나 보면서도 배워. 네가 여기에서 마시는 물은 저기에서 왔고, 더 먼 거기로 가. 네가 내놓는 물은 거기를 거치고 하늘로 오르다가 저기로 가. 네가 마시는 바람도 마찬가지야. 동떨어진 물이란 없어. 남남으로 가르지 않는 길이자 빛이란다. 해는 늘 저기에서 오는데, 네가 있는 이 별 이곳과 ‘이 별 저곳’을 고루 비춘단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여기·저기·거기’를 가르는구나. ‘나·너·남·놈·님·년’으로 자꾸 가르네. ‘나·너’는 그저 ‘나’를 제대로 바라보려는 이름인데, 둘을 가르려는 말씨가 아닌, 둘이 어떻게 “다르면서 같은 하나”인가 알아보려는 말씨인데, 가르고 쪼개고 벌리고 등돌리면서 오히려 ‘나’를 더더욱 잊는구나. ‘저 사람’은 ‘저기’에서 왔겠지. ‘저기’에서 왔기에, 저기에서 지으며 이은 삶·살림·사랑·숲 이야기를 들려주겠지. ‘다른 둘’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여태 모르던 곳을 처음으로 느껴. 다른 말을 섞는 사이에 ‘다른 길’이 “동떨어진 길”이 아니라 “저마다 즐겁게 배우며 걸어온 하루”인 줄 알아차리면서 부드럽게 풀린단다. 말을 섞으면서 마음을 섞어. 말을 나누면서 마음을 나눠. 스스로 무엇을 바라보며 걷는지 얘기하는 사이에 스스로 눈을 뜨지. 스스로 어디로 가려는지 얘기하면서 어느새 둘은 빙그레 웃다가 울어. 서로 다독일 둘인 ‘나·너’이자 ‘여기·저기’야. ‘남·남’이 아닌 ‘나·너·우리’란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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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날짜 2024.10.9.물.



날짜를 보면서 싹트는 씨앗은 없어. 날씨를 보면서 싹트는 씨앗이야. 날짜를 헤아려 오가는 새는 없어. 날을 헤아려 오가는 새란다. 어느 나무도 날짜를 아랑곳하지 않아. 어느 풀꽃도 어느 열매도 어느 해와 별도 날짜는 안 따진단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 숨결이 없어. 풀꽃나무도 짐승도 헤엄이도 “몸을 입고 태어난 날”부터 이 삶을 배우면서 자라나. 마지막에 이른 날에 몸을 내려놓을 적에는, 이 삶에서 그동안 익힌 모든 슬기를 빛방울에 담아서 흩뿌리지. 나무가 쓰러져도, 풀이 시들어도, 거미가 톡 떨어져도, 사마귀가 다리힘이 풀려도, 다들 빛방울을 흩뿌리면서 웃어. 여태 몸에 담았던 ‘기운’을 둘레에 베푼단다. 겉몸은 흙으로 돌아가는 거름이고, 마음은 빛방울로 여민 기운이야. 이 별도 다른 모든 별도 뭇숨결이 주고받고 내놓는 숱한 빛방울을 품어서 반짝인단다. 푸른별(지구)이 아직 밖(우주)에서 보기에 그저 티끌 하나만 하던 때에도 ‘티끌이 아닌 씨앗’으로서 꿈을 그렸고, 이 작은 별씨앗이 천천히 싹트고 깨어나고 퍼지면서 조금씩 덩이(몸)를 이루었어. 이 별씨앗으로 다가오거나 스며든 ‘더 작은 숨씨앗’이 나고자라다가 스러지면서 빛방울을 내놓았거든. 사람도 새도 짐승도 풀도 나무도 ‘저보다 작은 다른 빛방울’을 꾸준히 받아들여서 움직이다가 새롭게 내놓으면서 살아가. 다른 몸을 빛방울로 받아들이니 숨을 쉬고, 제 몸을 다른 숨붙이한테 내주면서 숨이 빛나. 이 모든 일은 그저 흐르는 길이야. 날짜로는 셀 길이 없어. 날짜가 아닌 ‘나’를 바라보고 ‘날개’를 펴는 오늘에 서면서 잇고 이루어 간단다. 하루가 가고 오는 줄 느낄 적에만 날짜를 보면 돼. 보았으면 그만 잊으면서 네 새길을 바라볼 노릇이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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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서서가기 : 부산에서 12:00에 딱 이야기를 마치고서 부산나루로 달린다. 땅밑으로 달리는 길을 서서간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13:04 칙폭길은 빽빽하다. 서서가기를 한다. 붐비는 사람에 따라 칙폭이는 15:54에 닿는다. 여느때보다 좀 늦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적이는 서울인 만큼, 이곳도 저곳도 사람물결이다. 말소리·가게소리·알림소리·부릉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서울에서 풀벌레노래나 멧새노래가 구름노래를 바란다면 바보스러울 듯싶다. 어떤 길로 갈아타야 하나 허둥지둥하다가 처음으로 공항철도를 탄다. 서울에서 펴는 이야기 자리에 맞추려고 등짐(책가방)을 질끈 동여매고서 달린다. 공항철도도 꽉 찼다. 빈틈 하나 가까스로 얻어서 등짐을 내려놓는다. ‘디지털미디어시티’라고 하는, 뭘 하는 데인지 모르겠을 나루에서 내린다. 다시 등짐을 멘다. 새까만 굴을 걸어서 지난다. 부릉부릉 빨리 가로지를 만한 굴일 수 있을 테지만, 이 굴길을 걸어서 지나야 하는 모든 사람은 숨막히고 먼지바람을 옴팡지게 먹어야 한다. 그런데 굴길이 끝나자마자 늘푸른나무가 곁에서 푸른내음을 훅훅 베푼다. “힘들었지? 이 푸른숨을 마시고서 기운을 차리렴.” “너희야말로 이곳에서 하루 내내 쉬잖고 오가는 매캐한 바람 때문에 힘들 텐데.” “응,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먼먼 엄마나무랑 아빠나무를 그려. 사람들이 이곳에 굴을 파고서 씽씽 달린 지는 고작 쉰 해도 안 되었잖니? 우리 엄마나무랑 아빠나무는 이루 셀 길이 없도록 오랜 나날을 이곳에서 살았단다.” 나무하고 몇 마디 섞고서 다시 걷는다. 17:16부터 18:16까지, 서울이웃 여러분하고 노래쓰기(시창작) 이야기를 편다. 이야기는 나 혼자 서서 폈고, 이야기를 듣는 이웃님은 모두 바위에 앉았다. 함께 노래를 쓰고 읽고 마음을 나눈다. 얼핏 본다면 ‘여섯 시간 남짓’ 앉지도 못 하며 내내 서거나 걸어다닌 하루인데, 오늘은 마침 “그렇게 서서 다니면 힘들지 않아요?” 하고 묻는 분은 없다. 다만 “날이 이렇게 찬데 안 추워요?” 하고 묻는 분은 많다. 10월 27일이지만 난 여태 민소매에 깡똥바지이다. 빙그레 웃으며 여쭌다. “제 책가방(등짐)을 들어 보시겠어요? 저는 한겨울에도 땀을 흘리면서 책가방을 짊어지고 다녀요. 그렇다고 땀을 잔뜩 흘려서 덥다고 여기지 않아요. 제 마음을 살찌울 책을 바깥마실을 하며 실컷 장만해서 기쁘게 짊어질 뿐이에요. 이 책꾸러미가 제 눈을 틔울 속살을 헤아리면서 뚜벅뚜벅 걸으면, 여름도 겨울도 덥거나 춥지 않답니다. 오늘은 하루 내내 서거나 걷지만, 그저 서거나 걸으면서 노래를 쓰고 하루를 돌아보기만 하고요.” 2024.10.28.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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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같이 먹자 2024.10.14.달.



넌 누구한테 “같이 먹자!” 하고 부르니? 한지붕에 있으니 “같이 먹자!” 하고 부를 수 있어. 같은 일터나 배움터에 있으니 “같이 먹자!” 하고 부르며 어울릴 수 있어. 마음이 맞는 짝이며 동무에 이웃이라서 “같이 먹자!” 하고 부르지. 그런데 마음이 안 맞거나 싫거나 밉거나 나쁘다고 여기는 사람을 부를 수 있니? 굶거나 외롭거나 아프거나 쓸쓸하거나 슬픈 누구나 부를 수 있어? 누가 너한테 “같이 먹자!” 하고 부를 적에는 어떻게 하니? 스스럼없이 “네!”나 “응!” 하고 외치면서 달려가니? “아니, 싫어!”나 “아니, 난 안 고파!” 하고 끊니? 넌 마음에도 없이 “같이 먹자!” 하고 말을 하니? 넌 언제나 한마음으로 서면서 즐겁게 “같이 먹자!” 하고 웃는 하루이니? 굳이 무얼 입에 넣어야 하기에 한자리에 둘러앉지 않아. 입에 넣든 안 넣든, 먹을거리를 사이에 놓고서 둘러앉을 적에는 “마음에 있을 만한 찌꺼기나 담벼락이나 가시를 치우고서 맨몸으로 마주한다”는 뜻이야. 생각해 봐. 죽음물(독약)이나 죽음가루를 사이에 놓고서 “같이 먹자!” 하고 부르겠어? 죽음물이나 죽음가루를 내놓는 이라면, 누구보다 그이가 먼저 치닫는 죽음길이야. 밥 한 그릇을 나누려는 마음으로 말을 나누면서 허울을 치우고 싶기에 “같이 먹자!” 하고 불러. 먹어도 즐겁고 안 먹어도 즐거워. 눈앞에 놓은 밥이 아닌, 이곳에 이렇게 모여서 나누려는 마음을 읽어 보렴. 언제나 모든 밥은 마음으로 먼저 짓고 차려. 모든 말은 마음에서 먼저 솟아. 모든 길은 마음에서 먼저 열어. 모든 사랑은 마음에서 먼저 빛나. 모든 꿈은 마음에서 먼저 싹터. 모든 이야기는 마음에서 먼저 자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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