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사퇴 2025.12.8.달.



잘못한 바가 있으니 물러나. 잘못한 바가 크지만 안 물러나면서 싱글거리기도 해. 잘못한 바가 없지만, 뒷사람이 새롭게 일할 틈을 내려고 물러나. 잘못을 자꾸 일삼는데, 자꾸자꾸 뒷짓을 하면서 담벼락을 세우려고 안 물러나. 물러나기에 잘했다고 여기지 않고, 안 물러나기에 잘못이라 여기지 않아. 처음부터 잘못을 안 하면 되는데, 자꾸 잘못을 숨기기에 그이 스스로 망가져. 잘못은 곧바로 뉘우치면서 씻으면 되는데, 숨기고 감추면서 뻔뻔히 고개를 드니까 그이 스스로 무너져. 잘못하기에 죽어야 하지 않아. 잘못이 없기에 살아갈 수 있지 않고. 잘못인 줄 느끼면서 잘못을 저지르는 동안 마음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아챌까? 잘못 하나 없는 나날이라지만, ‘잘’도 나란히 없는 나날이란, 마음을 어떻게 하려는 셈일까? 숱한 나라에서 ‘벼슬’을 쥐고서 ‘벼슬질’을 하는 이가 수두룩해. 일이 아닌 ‘질’을 하기에 스스로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데, ‘일하’는 마음인 사람은 ‘벼슬’이나 ‘자리’를 받지 않는단다. ‘일’을 받을 뿐이요, 어떤 벼슬이나 자리라 하더라도 ‘일구’고 ‘일으켜’서 나누는 하루이지. 일하는 사람은 잘못을 안 해. ‘일’을 할 뿐이지. 일을 안 하는 사람이 잘못을 하고, ‘잘’ 곁에 안 가. 물러나는(사퇴) 이들 얼굴과 몸짓을 보렴. 일하는 사람은 ‘물림글(인수인계서)’을 알뜰살뜰 적어서 남겨. 일을 안 하는 사람은 그냥 훌쩍 떠나. 너는 이 모습을 눈여겨볼 수 있어야 해. 일꾼은 씨앗을 심고서 가꿀 뿐 아니라, 이듬해에 새로 심을 씨앗을 곱게 넉넉히 갈무리한단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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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학교에 없는 2025.12.7.해.



학교라는 이름이 붙으려면, 살림길을 나란히 배우고 가르치고 나누면서, 스스로 “배움터 곁”을 보금자리로 삼아서 마을을 일굴 수 있어야 한단다. 배움터는 “저 멀리 떠나보내려”는 곳이 아니야. 바로 배움터 곁이 살림터인 줄 알리고 들려주고 익히는 터전일 노릇이야. 아이가 많이 있기에 뚝딱뚝딱 학교를 올리곤 하지? 그런 곳은 허울만 학교야. 아이들이 자라서 그곳(그 학교)을 마치면 저곳(다른 학교)으로 가야 하거나, 먼 다른 마을로 일자리를 찾는다면, ‘무늬배움터’인 셈이야. 온누리 모든 아이는 “어버이랑 한집에서 나란히 살아가며 살림하는 사랑을 누릴 뜻”으로 태어난단다. 가멸집이건 가난집이건 대수롭지 않아. 어느 집에서건 차분히 새롭게 살림을 지으면 되거든. 가멸집에서 태어나기에, 가멸찬 살림을 돌보며 나누는 길을 익힌단다. 가난집에서 태어나기에, 가난한 살림을 북돋우면서 이웃한테서 받는 보람을 익히지. 받아들이는 넉넉한 품이 있기에 베푸는 손이 있단다. 베풀기만 할 수 없어. 베풀 수 있으려면 기꺼이 받을 이웃이 사랑스레 있어야 하지. 넌 알겠니? ‘구호·봉사·기부·자선’은 몽땅 헛짓이야. 왜 헛짓이겠어? 받는 품인 가난집이야말로 모두 하느님이거든. 받을 사람이 없이 어찌 베푸니? 흔히들 ‘베풂손’을 높이 여기고 추켜세우는데, 받든 주든 나란할 노릇이고, ‘주는손’으로 서려면 “무릎 꿇고서 모셔”야 해. 잘 보렴. 넌 아기한테 어떻게 베풀거나 주니? 넌 어린이랑 푸름이한테 어떻게 주거나 베푸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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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새겨울이



새겨울이 오는 줄은

한여름에 이미 바람빛으로 느꼈다

겨울나기는 봄부터 헤아리지만

여름에 신나게 땀빛으로 돌아본다


새가을이 저무는 줄은

여름새가 이미 떠나면서 알아챈다

여름새 가신 자리는 고즈넉해

겨울새 날아들면 다시 북적이겠지


어느덧

섣달로 슥 들어서고

먼발치 눈발 나부끼고

쑥부쟁이는 멧노랑 곁에서 웃는다


2025.12.4.나무.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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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62. 어디로 가나



  뚜벅뚜벅 걷습니다만, 고무신을 꿴 걸음새는 발소리가 아주 작습니다.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과 책을 갈무리하려고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 멧자락에 2003년 9월부터 깃들면서 비로소 고무신을 만났습니다. 첫 고무신은 그해에 음성읍 저잣거리에서 2500원에 장만했고, 2025년에는 한 켤레에 6000원입니다. 고무신 한 가지만 발에 꿰는데, 열 달 남짓 꿰면 바닥이 닳아 구멍나고 옆구리가 튿어집니다. 요새 신 한 켤레 값은 꽤 비싸기도 하지만, 온통 플라스틱입니다. 멋을 내거나 놀이마당에서 뛰자면 더 좋다는 신을 꿰야 할 텐데, 맨발에 맨손으로 어울릴 만한 터전을 잃고 잊으면서 발바닥과 땅바닥이 나란히 고단하다고 느껴요. 고무신을 꿰면 거의 맨발로 다니는 셈입니다. 고무신이나 맨발로 거닐면 땅이 안 다칩니다. 딱딱한 멧신(등산화)이나 구두라면 들길도 멧길도 숲길도 망가뜨리지요. 우리는 무엇을 하러 어디로 가는 길인지 돌아봅니다.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며 함께 나아가는 길인가요? 사람하고 이웃하는 풀꽃나무나 들숲메바다는 어느 만큼 헤아리나요? 땅을 살피고 풀꽃을 돌아보는 발걸음을 되찾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발바닥이 바람을 쐬고 햇볕을 머금으면서 까무잡잡한 손발과 낯으로 거듭날 일이라고 봅니다. 푸른길로 같이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커다란 쇳덩이가 차지하면서 부릉부릉 매캐하게 시끄러운 길이 아닌, 어린이가 신나게 뛰고 달리는 곁으로 사뿐사뿐 걸어다니는 길로 나란히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요. ㅍㄹㄴ



어디로 가나


새벽에 동이 트면

별이 자러 가면서

“넌 이제 눈뜨렴.”

환하게 속삭인다


아침에 해가 오르면

꽃도 활짝 피면서

“너도 같이 피자.”

가만히 웃음지어


낮에 바람이 불며

나뭇잎 가볍게 춤추며

“나랑 함께 놀자.”

반갑게 일렁인다


저녁에 어스름 덮어

소쩍새 그윽히 울며

“우린 꿈으로 가.”

밝게 이야기한다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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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투덜 투덜 투덜



해가 환하고 바람이 자는가 싶은

포근한 첫겨울 첫머리에

깡똥소매에 맨발차림으로

부산 벡스코 큰집에 간다


이 큰집에 사람도 많아

책잔치인데 책 안 사는 사람도 많아

붕어빵 먹던 손으로 책 만지고

새책인데 휙휙 거칠게 넘길 뿐 아니라

한 손으로 훅 들어서 팔랑거리기도 하네


책을 안 사고 안 읽으려면

책잔치 큰마당에

구경하려고, ‘공짜 선물’ 얻으려고

그냥그냥 놀러, 아니 토요일 때우려 왔구나


2025.12.13.흙.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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