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빛

곁말 32 섣달꽃



  하루만 반짝하고 지나가면 반갑지 않습니다. 바쁜 어른들은 으레 ‘하루만 반짝’하고서 빛날(생일)도 섣달꽃(크리스마스)도 지나가려 했습니다. 어린이날도 어버이날도 매한가지이고, 한글날도 한가위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날을 맞이하기까지 설레는 마음도, 이날을 누리며 기쁜 마음도, 이날을 보내면서 홀가분한 마음도, 느긋하거나 넉넉히 살필 겨를이 없구나 싶더군요. 워낙 일거리가 많다 보니 “다 끝났잖아. 얼른 가자.” 하면서 잡아끄는 어른들이었습니다. 어린 날이 휙휙 지나가고 어버이가 되어 아이를 돌보는 살림길에 곰곰이 보니 이웃나라는 ‘섣달잔치’를 으레 한 달쯤 즐기더군요. 다른 잔치도 그래요. 달랑 하루만 기리고 지나가지 않습니다. 이날을 맞이하기까지 달살림을 헤아리면서 아이어른이 함께 이야기꽃을 펴고 집살림을 추스릅니다. 우리나라도 먼먼 지난날에는 설이나 한가위뿐 아니라 크고작은 여러 기림날이 있으면 ‘기림달’처럼 누렸습니다. 나락꽃은 새벽에 피고 아침에 진다지만, 꽃가루받이를 마친 꽃은 이내 시든다지만, 숱한 꽃은 하루만 반짝하지 않아요. 이쪽 들꽃이 피고서 저쪽 들꽃으로 퍼지며 한 달 즈음 꽃잔치입니다. 섣달에 맞이하는 기쁜 하루도 ‘섣달꽃’ 같다고 느낍니다. 모두한테 꽃날입니다.


섣달꽃 (섣달 + 꽃) : 한 해가 저무는 달인 12월을 기리면서 누리는 잔치. = 섣달잔치 (← 성탄절·크리스마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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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노래 2022.1.17.

곁말 31 허벅도리



  짧게 걸치는 치마라면 ‘짧은치마’이건만,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도무지 이 낱말을 안 싣습니다. ‘짧은뜨기·짧은바늘·짧은지름’은 그럭저럭 낱말책에 있어요. ‘깡동치마’는 낱말책에 있는데 ‘미니스커트’를 풀어내는 우리말로 다루지는 않습니다. 이러던 2010년 무렵부터 ‘하의실종(下衣失踪)’이라는 일본스러운 말씨가 퍼집니다. 여러 모습을 두고두고 보다가 생각합니다. 무릎 길이인 치마라면 ‘무릎치마’요, 발목 길이인 치마라면 ‘발목치마’이고, 허벅지를 드러내는 치마라면 ‘허벅치마’로, 궁둥이를 살짝 가리는 치마라면 ‘궁둥치마’라 할 만합니다. 바지라면 ‘무릎바지·발목바지·궁둥바지’라 하면 돼요. 더 생각하면 ‘한뼘도리·한뼘옷·한뼘바지·한뼘치마’처럼 새말을 지어, 옷이 짧은(깡동한) 모습을 나타낼 만해요. ‘엉덩도리·엉덩옷·엉덩바지·엉덩치마’라 해도 어울리고, 아슬아슬하게 가린다는 뜻으로 ‘아슬도리·아슬옷·아슬바지·아슬치마’란 이름을 지어 봅니다. 이웃나라는 이웃나라 살림으로 옷차림을 헤아려 이름을 붙입니다. 우리는 우리 눈빛으로 우리 살림을 살펴서 이름을 붙이면 되어요. 다리가 시원하고 싶어서 허벅치마요, 한겨울에도 찬바람을 씩씩하게 맞으며 허벅도리입니다.


허벅도리(허벅옷) : 허벅지가 드러나는 옷. 허벅지가 드러날 만큼 짧아서 다리가 다 보이는 옷. 아랫몸을 살짝 가리기에 다리를 훤히 드러낸 옷.

허벅바지 : 허벅지가 드러날 만큼 짧아서 다리가 다 보이는 바지. 허벅지를 훤히 드러낸 바지.

허벅치마 : 허벅지가 드러날 만큼 짧아서 다리가 다 보이는 치마. 허벅지를 훤히 드러낸 치마.


아슬도리(아슬옷)·아슬바지·아슬치마

궁둥도리(궁둥옷)·궁둥바지·궁둥치마

엉덩도리(엉덩옷)·엉덩바지·엉덩치마

한뼘도리(한뼘옷)·한뼘바지·한뼘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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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곁말 30 헤엄이



  마흔 살이 넘도록 헤엄을 못 쳤습니다. 물하고 도무지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마흔너덧 무렵에 비로소 헤엄질이 무엇인가 하고 느꼈어요. 헤엄질이 된 까닭은 딱 하나예요. 남들처럼 물낯에서 물살을 가르지 못해도 된다고, 나는 물바닥 가까이로 가라앉아서 천천히 물살을 갈라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물속으로 몸을 가라앉혀서 숨을 모두 내뱉고서 가만히 움직여 보았는데, 뜻밖에 이 놀이는 매우 잘되더군요. 몸에 힘을 다 빼니 스르르 물바닥까지 몸이 닿고, 물바닥에 고요히 엎드려서 눈을 뜨고 물이웃을 보았어요. 물이웃이란 ‘헤엄이’입니다. ‘물고기’가 아닙니다. ‘먹이’로 본다면, 물에서 헤엄치는 숨결을 ‘물고기’로 삼겠지만, 저는 물살을 시원시원 가르며 저랑 눈을 마주하는 아이들을 ‘고기’란 이름으로 가리키고 싶지 않았어요. 어떤 이름으로 가리키면 어울리려나 하고 생각하는데, 물바닥을 살살 일렁이는 잔바람이 불더니 ‘헤엄이’라는 이름이 찾아왔어요. 나중에 살펴보니 《으뜸 헤엄이》란 이름인 그림책이 있어요. 물살을 잘 가르는 사람도, 물에서 살아가는 숨결도 나란히 ‘헤엄이’입니다. 물바닥에서 가만히 헤엄이를 보다가 슬슬 손발을 놀리면 용하게 앞으로도 옆으로도 가더군요. 물속헤엄도 즐겁습니다.


헤엄이 (헤엄치다 + 이) : 헤엄을 치는 숨결. 물살을 가르면서 나아가는 숨결. 물·내·바다 같은 곳에서 나아가려고 몸을 움직이는 숨결. 때로는 “헤엄을 잘 치는 숨결”을 가리킨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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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곁말 29 무릎셈틀



  볼일이 있어 바깥으로 멀리 다녀와야 할 적에 셈틀을 챙깁니다. 자리에 놓고 쓰는 셈틀은 들고다닐 수 없기에, 포개어 부피가 작은 셈틀을 등짐에 넣어요. 영어로 ‘노트북’이라 하는 셈틀을 2004년 무렵부터 썼지 싶습니다. 처음에는 영어를 그대로 썼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들고다니는 셈틀 = 노트북”처럼 수수하게 이름을 붙인 이웃나라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더군요. 이름짓기란 수수하고 쉽다고, 이름이란 삶자리에서 문득 태어난다고, 스스로 즐거이 가리키고 둘레에서 재미있거나 반갑다고 여길 이름은 시나브로 떠오른다고 느꼈어요. “최종규 씨도 ‘노트북’만큼은 우리말로 이름을 못 붙이나 봐요?” 하고 묻는 분이 많았는데 빙그레 웃으면서 “음, 얼른 우리말을 지어내기보다 이 셈틀을 즐겁게 쓰다 보면 어느 날 이름 하나가 찾아오리라 생각해요.” 하고 대꾸했습니다. 길에서 길손집에서 버스나루에서 셈틀을 무릎에 얹고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아! 나는 이 셈틀을 무릎에 얹어서 쓰네? 다른 사람들도 길에서는 으레 무릎에 얹잖아!” 하고 혼잣말이 터져나왔습니다. 손에 쥐기에 ‘손전화’이듯, 무릎에 얹으니 ‘무릎셈틀’이라 하면 어울리겠구나 싶어요. 책상에 얹는 셈틀은 ‘책상셈틀’이라 하면 어울릴 테고요.


ㅅㄴㄹ


무릎셈틀 (무릎 + 셈틀) : 가볍고 작기에 때로는 접어서 들고 다니다가, 무릎에 얹어서 쓰기도 하는 셈틀. ‘노트북’을 손질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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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노래

곁말 28 가만히



  가을볕이란 가만히 지나가면서 쓰다듬어 주는 손길 같습니다. 가을바람이란 가만가만 흐르면서 어루만지는 숨빛 같습니다. 찬찬히 하루를 짓습니다. 천천히 오늘을 누립니다. 아이하고뿐 아니라 어른하고 말을 섞을 적에도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눈을 마주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풀꽃이며 나무하고 말을 나눌 적에도 가만가만 마음을 틔워 생각을 빛냅니다. 찰칵 소리를 내며 어떤 모습을 담는다고 할 적에는, 찍는 쪽하고 찍히는 쪽이 가만히 한마음으로 나아가야지 싶습니다. 글을 쓸 적에도 이와 같지요. 글로 옮기는 사람도, 이 글을 읽는 사람도, 가만가만 한마음으로 노래하기에 새롭게 만날 만합니다. 저는 빨리달리기(단거리경주)를 아주 못합니다. 오래달리기(장거리경주)라면 눈이 초롱초롱해요. 빨리 달리거나 빨리 가거나 빨리 하자면 허둥지둥 힘겨워요. 느긋이 달리거나 느릿느릿 가거나 느즈막이 하자면 빙그레 웃음이 나면서 즐거워서 춤짓으로 거듭나요. 가만히 가고 싶습니다. 가만가만 가다듬으려 합니다. 가던 길을 가만 멈추고서 가을잎한테 봄꽃한테 여름싹한테 겨울눈한테 가늘게 콧노래를 부르듯 이야기잔치를 펴고 싶어요. 가랑비를 가만히 맞으면서 눈을 감습니다. 가을날이 저물면서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이 가깝습니다.


가만히(가만가만·가만하다) : 1. 움직이지 않거나 아무 말 없이. 2. 움직임이 안 드러나게 조용히. 3. 마음을 가다듬어 곰곰이. 4. 말없이 찬찬히. 5. 아무 생각이 없거나 손을 쓰지 않고 그냥 그대로 6. 사람들한테 드러나지 않으면서 조용히.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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