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어원사전”을 써냈습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말·마음·삶’을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으로




2025년 이른봄에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 펴냄)을 선보입니다. ‘말밑’은 ‘어원’을 가리키는 우리말입니다. ‘밑말’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말을 이루는 밑(밑동)이기에 말밑입니다. 밑(밑동)을 이루는 말이라 여기면 ‘밑말’이라 하면 됩니다. 우리말은 어느 하나를 굳이 한 낱말로만 안 가리킵니다. 앞뒤를 바꾸어 가리키곤 하며, 크기와 셈여림과 부피와 빛살을 살펴서 끝없이 비슷하면서 다른 낱말로 여밉니다. 우리말에는 ‘빨갛다’만 있지 않아요. ‘빨강’도 있고 ‘붉다’도 있으며, ‘울긋불긋’에 ‘발갛다’처럼 말씨를 슬몃슬몃 바꿉니다.


글을 씨앗(씨)으로 여기면서 돌보기에 ‘글씨’입니다. 글씨를 반듯하게 가다듬는 뜻을 돌아봅니다. 글이라는 씨앗을 종이에 얹을 적에 “밭에 씨앗을 심듯” 고르게 다스려야, ‘글로 담아낸 말’을 정갈하게 풀어낼 수 있다고 여기거든요. (44쪽)


‘꽃 + 샘 + 바람’에서 ‘샘’은 ‘새·새롭다’하고 맞물리는 ‘샘물·샘 2’이라고 느낍니다. 꽃망울하고 잎망울을 깨우는 바람 곁에는 ‘꽃샘비·잎샘비’가 내립니다. 꽃이 샘솟으라고 북돋우는 비입니다. (50쪽)


지난날 세종 임금님이 ‘훈민정음’이라는 글씨를 내놓았지만, 그무렵에 훈민정음은 “우리 모두 누리는 글”이지 않았습니다. 그무렵에 누가 붓종이를 건사했을까요? 그무렵에 누가 책을 읽고 글을 썼을까요? 논밭을 일구는 사람은 글을 쓰거나 책을 펼 일이며 까닭마저 없던 지난날입니다. 조선이 저물 무렵까지도 장사꾼·논밭지기·종·하님·가시내는 글이건 책이건 붓종이 모두 어깨너머라도 구경조차 하면 안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데, 모든 사람이 마음을 말에 담아서 누리고 나누던 첫목이라면,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지은 주시경 님이 살던 즈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주시경 님은 이녁 딸아이한테도 글을 가르쳤고, 주시경 집안에서는 딸아들이 똑같은 아이로 자랐다지요. 그러니까 ‘우리글’이라 여기는 ‘한글’이라는 이름을 얻던 사슬나라(일제강점기)에 이르도록 우리는 우리글이 없었다고 해야 맞습니다.


새롭게 보도록 이곳에 있기에 ‘나다’이고, 새롭게 보도록 이곳에 있으면서 즐겁기에 ‘날다’라면, “오랫동안 많이 쓰거나 오래도록 비·바람·해에 바스러져서 더 쓸 만하지 않”을 적에는 ‘낡다’예요. (56쪽)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을 왜 썼느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우리말을 우리글에 담는 우리길을 걷는 살림살이를 일굴 적에 곁에 두면서 이바지하는 꾸러미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글이란, 말을 그려낸 무늬입니다. 말이란, 마음을 담아낸 소리입니다. 마음이란, 삶을 고스란히 담는 그릇입니다. 삶이란, 사람으로서 사랑으로 짓는 살림을 누리는 하루입니다.


모가 없이 아우르고 모이기에 ‘도란도란’ 이야기합니다. ‘두런두런’ 말을 섞기도 합니다. ‘도란도란·두런두런’은 ‘두레’하고도 얽혀요. 두레는 ‘둘레’하고도 만나는데, 하나가 다른 하나를 만나고 사귀고 아우르면서 크게 펴는 자리인 ‘두레’요, 하나를 두른·둘러싼 곳을 살핀다고 하는 ‘둘레’이며, 두레처럼 둘레를 아우르는 사이인 ‘동무’입니다. (68쪽)


그래서 ‘글 → 말 → 마음 → 삶 → 살림·사랑·사람’이라는 얼거리입니다. 글쓰기를 할 적에는 ‘살림쓰기·사랑쓰기·사람쓰기’를 한다고 여길 만합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스스로 글이라는 그림으로 옮길 적에, 바로 “우리 스스로 살림을 지어서 삶을 누리는 마음”을 저마다 또렷하면서 즐겁고 넉넉하게 펴려면, ‘말’을 제대로 알거나 넉넉히 익힐 노릇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인 우리말을 알려면 무엇보다도 ‘말밑·밑말’을 찬찬히 새기면 됩니다.


‘우리말’이란, “우리를 바라보는 말”입니다. ‘우리 = 나 + 너 + 뭇숨결’입니다. 나 혼자만 있다고 언뜻 여길 적에도 ‘우리’를 쓰는 우리나라인데, 사람은 나 혼자여도, 돌과 나무와 해와 바람과 새와 풀벌레처럼 뭇숨결이 둘레에 있다고 여기기에 ‘우리’를 씁니다. ‘우리말’이란 ‘순우리말(토박이말)’이라기보다는 “아우르고 어우르는 마음으로 쓰는 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말 ‘길·길이·길다’는 이곳·이때하고 저곳·저때가 어떤 사이인가를 나타냅니다. 이곳·이때에서 저곳·저때으로 나아가기에 ‘길’이고, 어느 만큼 나아가는가를 따지거나 재기에 ‘길이’입니다. 이곳·이때에서 저곳·저때으로 꽤 나아갔기에 ‘길다’라 합니다. (78쪽)


우리말 ‘바’는 ‘밭·바탕’을 밑뜻으로 나타냅니다. 씨앗을 심어서 가꾸는 자리인 ‘밭’이요, 무엇이 태어나거나 깨어나거나 자라는 너른 터인 ‘바탕’입니다. 가장 낮다고 여길 만하도록 넓기에 ‘바탕’이니, ‘바다’는 푸른별에서 ‘바닥’을 드넓게 덮으면서 이곳이 짙푸른 삶터가 되도록 북돋운다고 하겠습니다. (105쪽)





지난 2016년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선보였습니다. 이 꾸러미를 선보이고 난 지 열 해 만에 《말밑 꾸러미》를 내놓습니다. 꽤 오래 걸렸습니다. 저는 혼자서 온일을 맡는 터라 낱말책을 더 일찍 묶어낼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림을 가꾸며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맡기에, 이런 여러 가지를 하는 틈에 바지런히 손을 놀릴 뿐입니다.


2003년 8월까지는 서울에서 살며 일을 했으나, 2003년 9월부터는 이오덕 님이 돌아가신 충북 충주 멧골자락과 서울을 오가며 일을 했습니다. 2007년 4월에 인천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다가, 2010년 가을부터 다시 시골로 옮겼으니,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살림을 지은 지 제법 됩니다.


많은 결을 나타내는 말밑인 ‘수’입니다. ‘머리숱’을 가리킬 적에 쓰는 ‘숱’으로도 잇습니다. 머리숱이 적건 많건,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세기란 어렵거나 까다롭습니다. 아니, 못 센다고 할 만해요. ‘숱 + 하다(많다)’ 꼴인 ‘숱하다’는 “마치 머리카락처럼 셀 길이 없도록 많은” 결을 가리켜요. (125쪽)


서울과 서울곁에서 일할 적에는 ‘글·책·말’을 바탕으로 낱말책을 여미었고, 시골과 멧슾에서 일하는 요즈음은 ‘들숲바다·해바람비·풀꽃나무·시골·사투리·글·책·말’을 바탕으로 낱말책을 엮습니다.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써낸 뜻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들숲바다에서 해바람비와 풀꽃나무를 품는 살림살이를 일구는 수수한 시골사람이 스스로 지었습니다.


세종 임금님은 글씨를 지었되, 우리말을 짓지는 않았고, 이 나라 모든 사람이 살림살이를 말글로 옮겨서 널리 나누는 길을 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훈민정음이 없던 무렵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말(우리말)’을 했고, 이 말(고을말·사투리)은 단군조선보다 아득히 긴 나날에 걸쳐서 흘러왔습니다.


단군 옛이야기에 나오는 ‘곰·범’이나 ‘쑥·마늘(또는 달래)’ 같은 낱말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요? 김치를 담그는 ‘갓’ 같은 풀이름은 언제부터 썼고, 높게 솟은 땅을 가리키는 ‘메·갓’이란 말은 언제부터 썼을까요? ‘하늘’이나 ‘집’이나 ‘사람’이라는 말은 언제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일구다’라는 낱말은 ‘일’이 뼈대요, ‘일다·일으키다·일어나다’도 ‘일’이 바탕입니다. 새롭게 펴거나 하는 몸짓을 나타내는 이 말씨는 외따로 ‘일’로 쓸 적에 ‘할거리·지을거리’를 가리켜요. “일하다 = 스스로 새롭게 짓거나 이루거나 나타나도록 하다” 같은 결이라고 읽어낼 만합니다. ‘이름·일컫다·이르다’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177쪽)


삶·살림·사랑을 지으려면 ‘하다’라는 낱말을 써야 합니다. 삶·살림·사랑을 누리려면 ‘있다’라는 낱말을 써야 합니다. 삶·살림·사랑을 배우려면 ‘보다’라는 낱말을 써야 하고, 삶·살림·사랑을 나답게 펴려면 ‘알다’라는 낱말을 써야 합니다. 삶·살림·사랑을 스스로 생각하려면 ‘가다’라는 낱말을 써야 하지요. (186쪽)


아직 우리는 이런 수수하고 오랜 삶말·살림말·사랑말이 어떤 뿌리인지 종잡지 못 하기 일쑤입니다. 글도 책도 없던 까마득히 오랜 나날에 걸쳐서, 모든 사람이 입에서 입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은 말씨와 말결과 말빛을 헤아리려면,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들숲바다와 해바람비와 풀꽃나무를 스스로 품으면서 살필 노릇입니다.


동박새를 곁에 두지 않는다면, 동박새가 왜 동박새란 이름이었을는지 어림조차 못 합니다. 동박새가 겨우내 즐기는 꽃이 피는 나무가 ‘동박나무’여야 올바르다고 느끼려면, 동박새에 ‘동백나무’를 언제나 품는 살림일 노릇입니다.


‘철새’란 철을 읽고 익히면서 새끼를 낳아서 어질게 돌본 뒤에, 새로 바뀌는 철에 예전 보금자리로 함께 돌아가는 야무지고 씩씩한 새입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숱한 낱말책은 ‘철새’ 뜻풀이가 매우 엉성합니다. 책상맡에 앉아서 옛글을 뒤적일 줄은 알되, 막상 여름새도 겨울새도 만날 일이 없고, 새노래와 새살림을 지켜볼 일마저 없거든요.


속으로는 빛나지 않고 겉으로만 번쩍거리려고 하기에 ‘거짓’이라고 합니다. 돈을 모두 잃은 사람을 ‘거지’라고도 하지만, 돈이 하나조차 없지만 마음이 넉넉한 사람한테는 ‘거지’라고 하지 않아요. 마음이 가난하면서 돈만 많은 사람한테 오히려 ‘거지’라는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236쪽)


‘텃새’란 터(터전)를 읽고 익히면서 새끼를 낳아서 어질게 돌보는 살림을 늘 한곳에서 잇는 듬직하고 어엿한 새입니다. 그러나 ‘텃새’가 어떤 결로 사람 곁에 머무는지 지켜본 적이 없거나 지켜볼 마음조차 없다면, 이러한 새를 다루는 뜻풀이와 보기글도 텃새살이하고는 동떨어집니다.


아기를 낳아 돌보는 집살림을 맡지 않는 삶일 적에는 ‘아기’와 ‘어버이’라는 낱말을 제대로 다루지 못 하기도 하지만, 말밑을 어림조차 못 합니다. 서로 ‘동무’를 하는 사이로 돕고 돌보는 두레를 이루는 삶을 가꾸지 않을 적에도 ‘동무’라는 오랜 낱말에 숨은 수수께끼를 못 읽습니다.





모든 낱말은 서로 얽고 잇고 엮고 이르고 만납니다. 따로 뚝 하나만 덩그러니 떨어지는 낱말은 아예 없습니다. 이웃 여러 나라에서는 낱말책을 꾸리거나 여밀 적에 반드시 ‘모든 낱말’이 어떻게 만나고 맺고 어울리는지 차근차근 짚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러한 밑길을 제대로 못 열거나 안 엽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모든 것을 서울에 몰아놓다 보니, 말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서울에서 맴돌거나 큰고장 대학교 담벼락에 또아리를 틀기만 합니다.


좋은말이나 나쁜말은 따로 없습니다. 어느 말을 어느 마음이 되어 쓰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드러나는 삶을 낱말 하나에 얹어서 나타내고 나눌 뿐입니다. (262쪽)


사람은 속으로 ‘씨·알’을 품는 숨이요, ‘살다·삶·살리다·살림’으로 펴는 길입니다. 길이 숨을 만나고, 숨이 길을 마주하지요. 그래서 살고 살리는 씨이자 알로 있기에, ‘앎(알다)’을 맞아들이는 하루(삶)이고,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스스로 밝은 빛으로 섭니다. 사람 하나하나는 ‘빛알’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270쪽)


말을 알려면 말이 태어난 숲에서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또는 숲을 곁에 두면서 내내 숲을 헤아려야 할 테지요. ‘아이돌봄글(육아일기)’을 쓰려면 아이를 한결같이 삼백예순닷새 내내 지켜보고 돌아보아야 하는데, 어쩐지 우리나라에서는 낱말책을 여미는 분들이 정작 “말이 태어난 곳”하고 너무 멀 뿐 아니라, “말이 태어난 살림”하고 담을 쌓는다고 느낍니다.


《말밑 꾸러미》를 ‘기존 사전 형식’으로도 엮을 수 있지만, 굳이 이렇게 안 했습니다. 어린이부터 스스럼없이 읽으면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말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라기에 새틀을 짰습니다. 우리는 “정확한 표현”과 “문해력 증진”이 아닌, “살아가는 마음을 나누는 말을 서로서로 즐겁게 펴고 듣고 노래하는 하루”를 누릴 적에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봅니다.


‘말’이란, 마음에 담는 생각이고, 마음에 담으려고 심을 씨앗이 될 생각입니다. 또는, 마음에 깃든 생각을 꺼내어서 귀로 알아듣도록 그린 소리가 말이에요. ‘마음·말’은 밑뿌리가 같아요. 그래서 마음을 제대로 담아서 소리를 그려내는 말이 된다면, 마음이 안 맞거나 막히는 일이 없어요. 마음 없이 내는 소리는 그저 소리요, 마음 있이 내는 소리여야 비로소 말이랍니다. (350쪽)


스스로 어질게 살림하는 사람이기에 ‘어른’이요 ‘스승’입니다. 어른과 스승은 아이한테 심부름을 안 시킵니다. 어른과 스승은 그저 몸소 합니다. 어른과 스승은 아이와 젊은이가 스스로 온누리를 맞이하고 겪어 보도록 마당을 펴고 자리를 내주는 몫입니다.


말을 말답게 살펴서 익히는 길은 누구나 스스로 스승이자 어른으로 서는 길입니다. 낱말책 한 자락을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읽어냈기에 우리말을 다 알아내거나 알아볼 수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어느 낱말책이건 모든 우리말 이야기와 수수께끼를 담지는 않습니다. 모든 낱말과 이야기와 수수께끼를 담자면 5만 쪽은커녕 10만 쪽으로도 모자랍니다. 그저 낱말책이란, 그때그때 갈무리한 만큼 이웃하고 나누려는 작은 꾸러미일 뿐입니다.


다쳐서 구멍이 나거나 틈이 난 데에 넣어서 막는 ‘심’이기도 해요. 이런 쓰임새를 살려서, 초에서 불이 붙도록 안쪽 한가운데에 꼬아서 넣는 실도 ‘심’이란 이름으로 가리키지요. 글붓(연필) 안쪽 한가운데에 놓아 글씨를 쓸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것도 ‘심’으로 가리킵니다. 우리말 ‘심’은 ‘힘’처럼, 겉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듯 부드럽고 단단하게 한가운데(한복판)를 이루면서 곧고 길게 이어주는 길을 나타냅니다. 촛불심도 연필심도 ‘힘·실’이라는 결을 ‘심’이라는 말꼴로 담아요. (399쪽)





낱말책을 스스로 새롭게 쓰고 엮는 배움길은 1984년에 처음 걸었습니다. 낱말책을 스스로 새롭게 쓰고 엮자는 마음은 1992년에 처음 했습니다. 1994년에 ‘우리말을 스스로 배우고 나누는 모임’을 조촐히 꾸리면서 한 땀씩 바느질을 해온 살림결 가운데 하나를 2025년에 살짝 풀어놓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말더듬이·혀짤배기’이던 몸이라 오지게 놀림받고 시달렸습니다. 여덟 살이던 1982년부터 열 살이던 1984년까지 날마다 얻어맞지 않은 날이 없고, 언제나 동무와 길잡이(교사)가 제 말소리를 놀려먹었습니다. 이러던 1984년에 마을 할아버지 한 분이 “어째 마을 어린이와 푸름이가 모두 버릇없어 보이기에 ‘효’를 익히도록 천자문을 가르쳐 주겠다!”면서 온마을 어린이와 푸름이를 어르신집(경로당)에 날마다 불러모아서 한 시간 남짓 가르친 적이 있어요. 이때에 저랑 또래 하나만 할아버지한테서 끝까지 즈믄글씨(천자문)를 익혔는데, 즈믄글씨를 익힌 뒤에 돌아보니, 말더듬이에 혀짤배기가 소리를 못 내거나 엉키는 낱말이 모조리 한자말인 줄 깨달았습니다.


꽃은 열매로 나아가는 끝길입니다. 꽃송이가 숨을 거두는 끝에 열매가 익어요. “꽃이 곱다”고 말하는 밑자락을 들여다본다면, 기나긴 길을 거치면서 끝자락에 닿는 동안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고 애를 쓰며 힘을 다했나 하는 빛을 느낄 만하다는 뜻이로구나 싶습니다. (438쪽)


‘나비(나방)·알·애벌레’라고 하는 세 갈래 길입니다. 사람도 ‘어버이(어른)·알(씨알)·아이(아기)’라는 세 갈래 길을 나란히 걷습니다. 두 어버이는 서로 나무처럼 든든히 지키고 바라보면서 나란히 삶·살림·사랑을 그리는 사이입니다. 두 어버이가 즐거운 사이인 터라 ‘새(사이)’처럼 아이(아기) 사이에서 함께 손을 잡고 눈을 마주보면서 노래를 하고 놀이를 노느는(나누는) 나날을 지을 수 있습니다. (476쪽)


저는 이해 1984년부터 옥편과 사전을 샅샅이 뒤져서 “말더듬이와 혀짤배기가 소리내기 쉬운 우리말”을 찾아나섰습니다. 얻어맞기 싫고, 놀림받으면 괴롭거든요. 이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1년부터는 첫 수능·본고사·면접을 치르는 배움불굿(입시지옥)에 맞추어 “언어영역 시험 대비”로 ‘국어사전 통째읽기’를 두 벌 했습니다. 1992년에 두 벌째 다 읽었는데, 우리나라 국어사전이 아주 후줄근하고 초라하더군요. 차라리 내가 쓰고 말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아침에 ‘다만·단둘·단짝·달갑다·달다·단골’이라는 낱말이 어떤 말밑인지 풀어냈습니다. 그야말로 날마다 동박새 날갯짓마냥 천천히 보드랍게 나아갑니다. 〈말밑 꾸러미〉를 곁에 두면서 말빛을 익히는 이웃님이 그저 느긋하시기를 바랍니다. “안 서두르려는 마음”일 적에도 똑같이 ‘서두르’고 맙니다. “안 서두르기”가 아니라 “느긋이 노래하기”라는 마음일 적에 비로소 말씨앗 한 톨이 우리 마음밭에 깃들어 자라다가 어느 날 생각나무로 자라고 사랑꽃을 피워서 살림열매를 맺습니다.


울타리가 없고 담이 없으면서 넘나드는 데라서 ‘누리’입니다. 누구나 눈을 뜨고서 누리는 삶이기에 ‘누리’라고 할 만합니다. 이러한 누리에서 조금조금 금을 긋고서 나누는 동안 ‘나라’가 됩니다. 나라에는 울타리가 있고 담이 있어요. 섣불리 넘나들지 못하도록 해요. ‘누리’나 ‘나라’나 똑같은 땅이되, 한쪽은 울타리 없이 흐드러지는 홀가분한 빛이요, 다른 한쪽은 울타리를 세우면서 너랑 나를 가르고 힘으로 누르는, 억누르고 짓누르는 틀입니다. (485쪽)


나무 한 그루가 열매를 맺기까지 으레 열 해 남짓 걸립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열매를 넉넉히 베풀기까지 으레 스무 해 남짓 기다립니다. 우리말을 마음자리에 푸른숲으로 심고 가꾸고 돌보면서 파란하늘처럼 드리우는 말살림이며 글살림을 차분히 하나씩 일구어 가려는 뜻을 조촐히 꾸러미로 엮습니다.


참새가 노래합니다. 짹짹짹 소리가 아니라, 찌빗찌빗 찟찟 쫏 쫑 쭈루루 짯짯 쫌 쪼비비 째비비 째리리리 쮯 쭈룹 같은 갖가지 가락과 높고낮은 물결로 하루를 엽니다. ‘말’에 ‘마음’을 담는 ‘삶’에 한손을 거들려는 뜻으로 꾸리는 낱말책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쓰는 한국말사전”입니다. “새롭게 쓰는 우리말꽃”이기도 하고, “새롭게 나누는 낱말숲”이기도 합니다.





늦겨울이 저물던 지난 2025년 2월 18일 아침을 떠올립니다. 그날 우리 집 앵두나무 곁에서 해바라기를 하는데, 시든풀이 우거진 곳에서 동박새 둘이 고개를 빼꼼하면서 저를 쳐다보더니 쪼리쪼리쪼리쪼리 쯔릉쯔릉쯔릉쯔릉 소리를 내며 서로 쳐다보다가 포르릉 날갯짓 소리를 내면서 제 발치에서 멀잖은 곳에서 조금 날다가 다시 시든풀더미에 내려앉습니다.


목숨이 있는 집이 ‘몸’입니다. 우리말에서 받침 ‘ㅁ’은 ‘아우름·집·묶음’을 나타냅니다. 목숨이 집처럼 깃들 수 있는 곳이고, 여러모로 목숨을 움직이는 것을 아우른 곳이 몸이에요. (528쪽)


빨강은 ‘붉다’로도 나타냅니다. ‘붉다’는 ‘불’에서 비롯했습니다. 타오르거나 달아오르는 불길인 빛이에요. 불길은 확 번지고 이내 태웁니다. ‘빠르게’ 타오르거나 태우는 불기운을 담는 ‘빨강’이에요. (558쪽)


동박새를 눈여겨보는 서울내기도 제법 있으나, 여든 살이나 아흔 살에 이르도록 동박새는커녕 박새나 쇠박새는 아예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혀끝에 ‘동박새·박새·쇠박새’라는 낱말을 얹을 일마저 없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동박새를 눈여겨보지 않으면 눈앞에 있는 나무에 이 새가 앉았어도 새가 앉은 줄 못 알아채기도 하고, 동박새 노랫가락이 조금도 귀에 안 들어오게 마련입니다.


지난 2025년 2월 16일에는 부산 거제동 마을책집 〈책과 아이들〉에서 ‘이오덕 읽기 모임’을 꾸리고 난 뒤에, 이곳 뜨락에서 겨울볕을 함께 쬐었습니다. 이때에 “똥! 방!” 하고 굵고 그윽하게 울리는 소리를 한참 들었습니다. “똥! 방!” 하는 소리가 나고서 한동안 조용하더니 다시 “똥! 방!” 소리를 듣는데, 이 소리를 서른 벌째 들을 무렵, 〈책과 아이들〉에서 자라는 동박나무(동백나무)하고 소나무 사이로 동박새가 빼꼼 얼굴을 내밉니다.


‘하얗다(희다·흰)’는 빛깔은 ‘해’가 드리우는 빛을 가리켰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없이 탁 트일 적에는 파랗다면, 이 파란하늘이 눈부시도록 온누리를 밝히는 햇빛은 ‘하얗다’고 여겼고, 해처럼 맑아 ‘해맑다’라 하고, 해처럼 밝아 ‘해밝다’라 합니다. (561쪽)


우리나라 모든 새이름은 다 다른 고장에서 다 다른 시골내기가 문득 어느 새를 눈여겨보다가 저마다 다른 빛결을 가르면서 붙였습니다. 어느 새는 노랫가락을 고스란히 옮겨요. 이를테면 뜸부기·제비·꾀꼬리·소쩍새·왜가리는 노랫소리를 그대로 담았다고 여길 만합니다. 박새·딱따구리·뱁새·크낙새·한새(황새)·매는 매무새와 깃빛과 몸짓을 살펴서 담았다고 여길 만합니다. 여기에 까마귀·까치는 노랫결과 깃빛을 아울러서 담았다고 여길 만한데, 동박새도 노랫결과 깃빛을 아울렀구나 싶습니다.


모든 낱말은 모든 삶하고 잇습니다. 모든 말은 다 다른 터전에서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마음과 눈길을 생각 한 톨로 여미어서 나누려는 ‘빛씨’라고 여길 만합니다. 늘 쓰는 흔하고 수수한 말씨 한 마디부터 차분히 새기고 어린이하고 이야기할 적에 누구나 말빛을 틔우면서 말길을 새록새록 지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비롯한 조촐한 낱말책을 반가이 맞이하실 이웃님을 기다립니다. 고맙습니다.





‘하나 = 하 + 나’인 얼개를 눈여겨봐요. 하늘처럼 크고 넓은 ‘나(한 사람·개인)’를 가리키기도 하는 ‘하나’입니다. (593쪽)


‘하나’부터 연 셈값은 ‘울’로 마무르는데, ‘나’를 가리키기도 하는 ‘하나’요, ‘나너·너나’를 가리키기도 하는 ‘울’입니다. 곰곰이 보면, 우리말 셈값은 ‘나’랑 ‘너’ 사이를 삶이라는 길로 그려낸 이름이로구나 싶습니다. ‘너’랑 ‘나’는 즐겁고 홀가분히 드나드는 ‘너나들이’라는 사이일 수 있으면서, 땅하고 하늘 사이처럼 까마득히 먼 사이일 수 있되, ‘하나’에서 ‘울’로 오니 ‘한울(하늘)’입니다. (606쪽)


‘자람’은 스스로 높거나 크거나 튼튼하거나 기운차게 오르는 빛이요, ‘장다리’는 꽃을 피우려고 곧고 길고 곱게 오르는 빛이요, ‘장대’는 곧고 길며 단단하게 서려는 빛이요, ‘자’는 곧고 길게 서며 고르게 살피는 빛이라면, ‘자랑’은 스스로 꽃이라고 여기면서 곱게 보여주고 싶은 빛입니다. (646쪽)


그저 앞자리이기만 한 처음은 아닙니다. ‘참·찬찬·천천’이란 결을 품은 말씨인 ‘처음·첫’이에요. (687쪽)


꾸밈없고 스스럼없이 빛나는 ‘착하다’라면, 꾸미면서 스스로 잊거나 잃는 ‘척하다(체하다)’예요. 스스로 있으면 넉넉하면서 빛나는 ‘착하다’일 텐데, 겉으로만 좋게 보이려고 하면서 그만 나(스스로)를 잊어서 껍데기만 남는 ‘척하다(체하다)’입니다. (689쪽)


‘책’이란, 참답고 참하게 찬찬히 채우면서 살림빛과 사랑길과 삶넋과 사람씨를 챙기면서 착한 손길로 차분히 여미어 차곡차곡 이야기를 재우는 꾸러미이지 싶습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우리 숨빛과 눈길로 우리 발걸음을 차근차근 짚은 적이 없다시피 합니다. 이제라도 마음을 챙기고 생각을 참되이 밝히는 첫걸음을 내딛을 때라고 봅니다. (693쪽)


우리글 한글을 으레 ‘소리글(소리를 담는 글)’로 여기는데, 우리글 한글은 ‘소리뜻글(소리하고 뜻을 담는 글)’이나 ‘뜻소리글(뜻하고 소리를 담는 글)’로 여길 만하다고 느낍니다. 우리글뿐 아니라 이웃글(외국 문자)도 뜻뿐 아니라 소리를 함께 담게 마련이요, 소리에다가 뜻을 나란히 담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말소리에는 마음소리가 흐르고, 마음소리를 담는 말소리를 옮긴 글씨이기에, 글은 소리랑 뜻을 아우를 수밖에 없습니다. (727쪽)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 어원사전)》

숲노래 기획

최종규 글

철수와영희

202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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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들 읽기 (2021.4.15.)



숲노래가 시골살림을 지으면서(2011∼) 일군 책이 있습니다.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랑 엮는이(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서울살림을 짓는 동안(1995∼2003)에는 책을 안 내놓았고,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갈무리하며 충주살림을 하는 동안(2004∼2006) 두 가지 책을 내놓았으며,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열려고 돌아간 옛마을에서 인천살림을 하는 사이(2007∼2010) 여러 가지 책을 비로소 내놓았습니다. 여러 책 가운데 판이 끊어지거나 찾기 어려운 책이 아닌, 쉽게 장만할 수 있는 책을 몇 갈래로 나누어 봅니다. 즐겁게 장만하셔서 즐겁게 삶꽃을 피우시고 즐겁게 사랑살림 가꾸는 길에 동무로 삼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 말·넋·삶·숲을 읽는 첫걸음

《쉬운 말이 평화》(철수와영희,2021)

《이오덕 마음 읽기》(자연과생태,2019)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스토리닷,2017)

《우리말 글쓰기 사전》(스토리닷,2019)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2. 우리말이 노래가 되는 길 : 동시쓰기 + 시쓰기

《우리말 동시 사전》(스토리닷,2019)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스토리닷,2020)


3. 곁에 두며 말빛·삶꽃·숲살림 익히는 길잡이 : 우리말꽃(국어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2016)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2017)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2019)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1 돌림풀이와 겹말풀이 다듬기》(자연과생태,2017)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2 군더더기 한자말 떼어내기》(자연과생태,2017)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3 얄궂은 말씨 손질하기》(자연과생태,2018)


4. 우리말을 어린이하고 어깨동무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2014)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2017)


5. 우리말을 푸름이하고 어깨동무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철수와영희,2011)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2015)


6. 책넋과 마을책집 : 책읽기를 누리는 하루와 이웃마실

《책숲마실》(스토리닷,2020)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스토리닷,2016)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스토리닷,2018)


7. 빛을 담는 꽃(빛꽃) : 사진과 책과 삶과 마을과 꽃

《내가 사랑한 사진책》(눈빛,2018)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ㅅㄴㄹ



https://blog.aladin.co.kr/hbooks/5784559

(이곳에 들어가면 책바구니(리스트)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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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어느 날부터

서울 숭실대 옆에 있는

〈라이브러리 두란노〉에서

새롭게 책빛잔치(책방 사진 전시회)를 연다.

이 책빛잔치에서 쓸 밑글을 적어 본다.


책빛잔치 날짜를 잡으면

그때 새로 알리기로 하고,

밑글부터 걸쳐 본다.

.

.

쉬잖고 쉬면서 배우는 책숲마실

― ‘해날’에도 책집에 갑니다



  지난날에는 흙날(토요일)이나 해날(일요일)에 쉬는 가게가 드물었습니다. 설이나 한가위라 하더라도 여는 가게가 수두룩했습니다. 이 가운데 마을책집은 한 해 내내 열었습니다. 온나라 작은책집은 “한 해 삼백예순닷새 모두 여는날”로 꾸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해 삼백예순닷새 내내 책숲마실”을 했습니다. 더구나 날마다 적어도 두세 군데 작은책집을 걷거나 두바퀴(자전거)를 달려서 찾아갔습니다. 때로는 하루에 서너 군데 작은책집을 찾아갔습니다.


  나고자란 인천을 떠나서 서울에서 스무 살을 보내던 1994년부터 이런 책숲마실을 했고, 1995년 11월 6일에 싸움터(군대)에 들어가야 했기에 1995년 11월 5일까지 이런 발걸음이었고, 1997년 12월 31일에 드디어 싸움터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바로 이날 1997년 12월 31일에는 서울 용산 〈뿌리서점〉하고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을 들러서 “이제 밖으로 돌아옵니다! 이제부터 자주 뵙겠습니다!” 하고 활짝 웃음지었습니다. 어버이한테 절을 하러 가기 앞서 책집부터 들러서 책집지기한테 절을 했어요.


  이날부터 2003년 9월 30일까지 그야말로 날마다 두서너 군데 책집을 늘 찾아갔습니다. 2003년 9월 30일부터는 서울과 충주를 오가면서 ‘떠난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과 책’을 추스르는 일을 맡았어요. 이러느라 이때부터는 “날마다 두서너 군데 책숲마실”을 멈추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충주 멧골집을 벗어나면 언제나 책숲마실을 했고, 떠난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과 책을 갈무리하는 동안에는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과 책을 하루 내내 읽고 되읽고 곱읽고 새겨읽으며 살았”습니다.


  무슨 젊은이가 책집만 다니느냐고, 짝꿍도 안 사귀느냐고, 어디 놀러가지도 않느냐고 핀잔하는 소리를 늘 들었지만, 우리나라 어느 고장이나 고을로 볼일을 보러 다녀올 적에도 늘 책집부터 찾았고, 곧잘 목돈을 모아서 여러 고장과 고을에 깃든 오랜 작은책집을 찾아다녔습니다.


  날마다 끝없이 책집에 찾아가서 읽고 사고 새기느라 책값만으로도 주머니가 텅텅 비지만, 1998년 여름부터 찰칵이(사진기)를 장만해서 찰칵찰칵 남겼습니다. 사진기자나 사진작가라는 이름을 내거는 이들은 도무지 “책을 사읽는 길손”으로 책숲마실을 하는 일이 없다시피 하더군요. 책을 사읽으려고 책숲마실을 안 하는 매무새라면, 그분들은 아무리 값비싸거나 훌륭한 찰칵이를 어깨에 걸쳤어도 ‘책빛’을 ‘그림(사진)’으로 못 담거나 눈망울이 일그러집니다. 보다 못해서 제가 스스로 책집을 그림으로 남기자고 생각했습니다.


  책값으로 쓸 돈을 찰칵이를 장만하려고 헐자니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끼니를 굶으면서 책을 사읽고 찰칵찰칵 찍었습니다. 필름을 장만하는 날은 낮밥과 저녁을 굶고, 이튿날에도 두끼를 굶습니다. 찍은 필름을 찾으려고 맡길 적에도 서너끼를 내리 굶습니다. 책집을 찍고 나면 언제나 책집으로 다시 찾아가서 ‘그동안 찍은 그림’을 건넸습니다. 찍고 또 찍고, 종이로 뽑아서 건네고 또 건네기를 끝없이 되풀이했습니다. 책집을 찍어서 그림으로 남기는 뜻은 오직 하나예요. 저한테 책빛을 베푼 이 아름다운 작은책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책집지기님부터 스스로 알아보기를 바랐어요, 이 아름다운 작은책집 살림자락을 두고두고 이웃님한테 보여주고 싶었어요.


  2000년부터 ‘책빛잔치(책집 이야기 사진전시)’를 열었습니다. 책빛잔치를 열고 난 뒤에는 모든 ‘책집그림(책방 사진)’을 책집지기나 책집손님한테 그냥 주었습니다. 2025년 2월까지 예순 자리 넘게 책빛잔치를 조촐히 열었는데, 그동안 뽑은 거의 모든 그림은 ‘책빛잔치’를 연 책집에 고스란히 놓았습니다. 굳이 그림마당(갤러리·전시장)을 따로 빌려서 책빛잔치를 열지 않았어요. 언제나 작은책집이나 책골목에 그림을 걸었습니다.


  사람들이 책빛그림을 보려고 책집으로 마실을 와서 책을 장만하기를 바랐습니다. 책빛그림을 바라보면서 작은책집이 우리 곁에서 얼마나 사랑스럽게 작은자리를 일구는 작은씨앗 노릇을 했는지 알아보기를 바랐어요.


  2014년 즈음 이르러 더는 필름으로 못 찍습니다. 제가 쓰는 ‘일포트 델타 프로페셔널 400 필름’을 우리나라에서 더는 사기 어려웠습니다. 값도 껑충 뛰었으나, 단골로 드나들던 사진집에 마지막으로 남은 필름을 장만해서 찰칵이에 마지막으로 건 뒤로는 눈물을 삼키고서 디지털찰칵이로만 찍기로 했습니다. 디지털찰칵이로 담은 그림을 드문드문 몇 자락 끼워서 내걸기는 했지만, 아직은 그냥 모셔 놓습니다. 그냥 모셔 놓은 숱한 그림을 2020년 겨울에 크게 날리기도 했습니다. 오래 쓰던 셈틀이 숨을 거두었거든요. 이를 어쩌나 싶었지만, 셈틀에 있던 그림이 날아갔어도 그동안 다리품을 팔면서 오간 책집에서 마주한 책과 빛살은 늘 마음에 흐릅니다.


  그리고, 잃은 그림은 새로 찍고 다시 찍으면 됩니다. 비록 이제 닫고서 사라진 책집이라면 다시 찍을 수 없지만, 오늘 찾아갈 수 있는 작은책집을 바라보면서 작은걸음으로 틈틈이 찾아가서 처음부터 찍으면 즐겁다고 봅니다.


  그리 멀잖은 지난날에는, 모든 작은책집이 한 해 내내 쉬잖고 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책집지기님하고 나란히 쉬잖고 책숲마실을 했습니다. 그리고 책집에 깃들 적에는 마음을 쉬고 몸을 쉬면서 배우는 나날이었습니다. 책숲마실을 한 해 내내 하면서 노상 기운이 샘솟았습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책을 사고 필름을 사느라, 하루 한끼를 잇기도 빠듯했습니다. 그래서 이틀 한끼나 사흘 한끼도 곧잘 했습니다. 제가 굶으면서 책을 사읽고 찰칵찰칵 찍는 줄 알아챈 여러 책집지기님은 “이보게, 밥은 먹으면서 책을 사읽어야지?” 하면서 팔을 붙들었어요. “나하고 같이 밥 좀 먹게.” 하면서 책집지기님하고 자주 저녁 한끼를 누렸어요. 책집지기님한테 한끼를 얻어먹으면 이 한끼로 하루를 살았고, 이튿날을 버티었어요.


  그야말로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책벌레 발걸음입니다. ‘해날’에도 설날에도 여는 작은책집이기에, 해날이건 설날이건 책집에 갔습니다. 그리고 읽었지요. 그리고 담았어요. 읽고 담는 책숲마실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길삯이 하나도 없으니까, 책더미를 등에 이고 두 팔에 묵직하게 들고서 집까지 걸어갑니다. 책집부터 집까지 두어 시간쯤 가볍게 걸었습니다. 걷다가 팔이 저리고 등이 결리면 책짐을 내려놓고서 길불(가로등)에 기대어 책을 읽었습니다. 다시 팔심과 다릿심이 오르면, 주섬주섬 챙겨서 걸었어요.


  이제는 서울이나 인천이 아닌 전남 고흥이란 두멧시골에서 보금자리를 꾸립니다. 먼먼 시골에는 큰책집도 작은책집도 없습니다. 서울 인천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순천 청주 강릉 춘천 수원 부천 전주 구미 진주 포항 안산 정읍 목포 군산 진안 구례 제주 어느 곳이건, 책집이 있는 곳을 스치면 꼭 그곳 책집부터 발걸음을 하는 나날입니다. 이러면서 장만한 책보따리는 밤에 길손집(숙소)에 묵을 적에 하나하나 헤아리면서 되읽습니다. 고흥까지 돌아가는 기나긴 버스길에 더 읽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읽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책숲(도서관)에 책을 옮기면서 더 살핍니다.


  작은책벌레가 작은책마실을 작은걸음으로 누리면서 작은손길로 담은 그림입니다. 아직 책을 곁에 두지 않는 이웃님이 책을 곁에 두기를 바라면서 담은 그림입니다. 오래오래 책을 곁에 둔 이웃님이 한결같이 책꽃빛을 누리기를 바라며 담은 그림입니다. 그저 사랑해 주시기를 바라요.


  “책을 읽는 나”를 사랑합니다. “책을 짓는 너”를 사랑합니다. “책 곁에서 만나는 우리”를 사랑합니다. “책이 되어 준 나무와 숲”을 사랑합니다. “책이 되기 앞서 우거진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노래하던 새”를 사랑합니다. 책이라고 하는 알뜰살뜰한 빛살이 태어난 이 파란별을 사랑합니다.


  종이꾸러미만 책이지 않습니다. 해와 바람과 비도 책입니다. 돌과 흙과 나무도 책입니다. 풀과 꽃과 벌레도 책입니다. 나비와 짐승과 헤엄이도 책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이야기란 다 다른 책입니다. 한 해 내내 종이책을 읽을 수 있고, 언제나 한꽃처럼 바람책과 바다책과 하늘책과 마음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ㅍㄹㄴ·ㅅㄴㄹ·ㅎㄲㅅㄱ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에서.

 책벌레 최종규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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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집으로 걸어간 사전편찬 서른해

―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를 내면서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최종규 글·사진

스토리닷

2024.11.9.



  시골에서 살림을 짓는 하루를 보내면서 문득 책 하나를 엮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입니다. 이렇게 긴 이름을 붙여도 될까 싶었지만, 때로는 조금 긴 이름도 어울릴 테고, 단출히 ‘들꽃내음 작은책집’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한때 서울에서 살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여밀 적에는, 살림살이를 말에 담는 길에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고 여기면서, 들숲바다를 늘 헤아려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2010년부터 아예 시골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낱말책을 짓거나 엮는 일꾼이라면 스스로 살림을 가꿀 뿐 아니라 언제나 들숲바다를 품는 하루를 누려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서울이나 큰고장에서도 자주 들마실·숲마실·바다마실을 하면서 들숲바다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 내내 새롭게 흐르는 해바람비에 풀꽃나무에 들숲바다를 늘 지켜보고 살펴보고 들여다보지 않고서야 말을 말답게 못 여미겠구나 싶더군요. 왜냐하면 우리말이건 일본말이건 중국말이건 영어이건, 다 그 나라 삶자리에서 태어난 말인데, ‘말이 처음 태어난 삶자리’는 모두 시골이고 숲이고 바다이고 들입니다.


  모든 말은 살림하는 어른과 어버이와 아이가 스스로 지었습니다. 살림꾼이 지은 말을 따로 ‘사투리’라고 합니다. 이 사투리를 요모조모 알맞게 오늘날 흐름에 맞추어 새로 엮기에 ‘새말’입니다. 번쩍거리거나 높거나 대단해 보이는 서울살림이라 하더라도, 모두 ‘숲에서 태어난 말’을 바탕으로 엮습니다.


 책숲은 어떤 곳인가?


  《들꽃내음 작은책집》은 두 가지를 기둥으로 삼습니다. 첫째는 ‘들꽃내음’이고, 둘째는 ‘작은책집’입니다. 낱말을 살피는 길에 늘 들꽃내음을 살폈습니다. 들꽃내음이 이끄는 대로 걸어다니면서 말 한 마디를 다루고 익혀 왔습니다. 이러면서 작은책집을 찾아나서려고 온나라 곳곳을 하염없이 걷고 다시 걷고 새로 걸었습니다. 큰책집에 잔뜩 있는 책만 읽어도 될 수 있지만, 큰책숲(대형도서관)에 깃든 책만 읽어도 한가득일 테지만, 큰책집이나 큰책숲에 없는 책도 아주 많아요.


그래서 더 헌책집을 찾아간다. 지쳐서 쓰러지려는 몸에 기운을 불어넣으려고 헌책집을 찾아가서 책을 읽는다. 납작오징어로 짓눌리거나 밟히거나 치이더라도 손을 위로 뻗어서 책을 읽으면, 한 칸에 1500사람이 넘게 탄 숨막혀서 죽겠는 지옥철에서조차 ‘찌끄러진 몸’을 잊은 채 ‘나비처럼 홀가분히 팔랑거리는 마음’으로 접어들 수 있다. (35쪽/1994.11.2.)


  요즈음은 ‘독립출판’이라 하는데, 예전에는 ‘비매품’이라 하면서 조그맣게 태어난 책이 있습니다. 고을마다 모임마다 작은책을 꾸렸고, 중앙정부와 지자체도 비매품을 자주 냈고, 작은글꾼도 작은책을 자그맣게 묶어서 선보이는데, 이런 작은이야기는 새책집도 큰책집도 큰책숲도 아닌 ‘작은 헌책집’에만 들어왔습니다.


  큰책집에서 다루는 책에 적힌 낱말만 본다면, 낱말책을 제대로 못 엮습니다. 온누리 모든 사람이 어떻게 말글을 다루는지 살피려면, 새책집이나 큰책숲에 아예 안 들어가는 ‘작은 헌책집에만 들어오는 작은책’을 꼭 두루 읽고 새겨야 합니다.


바구니에 담겨도 꽃이고 꽃그릇에 꽂혀도 꽃이지만, 들판에서 자라도 꽃이요, 나무그늘 밑에서 피어도 꽃이다. 책숲(도서관)에 꽂혀도 책이고, 새책집에 꽂혀도 책이지만, 헌책집에 꽂혀도 책이다. 책은 언제나 책이다. 쇳가루를 마시고 기름 먹으며 일한 손으로 쥐어도 책이며, 아파 드러누운 자리에서 힘겨이 쥐어도 책이다. 배움터에서도 책이고, 집에서도 책이다. 아이도 어른도 똑같은 책을 손에 쥔다. 누가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책은 아니다. 어떤 넋으로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책이다.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바뀌는 책은 아니다. 바로 오늘 즐거이 알아보고 읽으면 바뀌는 책이다. (69쪽/2000.9.26.)


  저는 2007년 4월부터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열었습니다. 공공도서관이 아닌 개인도서관입니다. 낱말책을 쓰고 여미고 짓는 길에 곁에 둔 책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열어둔 ‘서재도서관’이고, 서재인 도서관이라서 ‘책마루 + 책숲’ 얼거리로 새말을 지었습니다.


  책을 사고파는 곳이기에 ‘책집’입니다. 누구나 홀가분히 드나들며 책을 읽고 누리는 곳이기에 ‘책숲’입니다. ‘숲’이란 모든 숨붙이가 가벼이 드나들며 어울리는 푸른터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이라면 ‘나라책숲’이요, 시립도서관이나 도립도서관이라면 ‘고을책숲’입니다. 마을에서 조촐히 누리는 도서관은 ‘마을책숲’입니다.


 우리나라에 책숲이 있는가?


  작은책집을 꽤 오래도록 찾아다닙니다. 일고여덟 살 어린이일 무렵에는 언니 심부름으로 만화책을 사거나, 어머니 심부름으로 여성잡지를 사려고 다달이 드나들었습니다. 열네 살부터는 스스로 되새길 읽을거리를 찾으려고 혼자 조용히 마실했습니다. 열일곱 살부터 ‘책숲마실’ 이야기를 글로 적어서 둘레에 나누었습니다. 작은책집을 알리는 혼책(독립출판)을 1994년부터 내놓다가 2004년에는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따로 써내기도 했습니다.


  낱말책을 쓰는 일을 하느라 뭇책을 살피려고 작은책집을 다니기도 했습니다만, 우리나라 책숲(도서관)에는 너무 책이 없어서 작은책집에 아예 눌러앉다시피 했습니다. 1994년에 들어간 대학교에서 ‘대학도서관 책정리 곁일’을 꽤 오랫동안 하면서 ‘대학도서관에는 어떤 책이 있는지’ 곰곰이 짚었는데, ‘베스트셀러 대여점’하고 비슷하더군요. 배움책이 너무 없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나라책숲과 고을책숲은 어떨까요? 책숲이 책숲 노릇이 아닌 ‘대여점’ 노릇이라면, 이제는 좀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내가 쓰는 글과 책을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도 사서 읽을는지 모른다만, 나는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을 쳐다보면서 글을 쓰거나 책을 묶지 않는다. 나는 “숲을 품는 사람”과 “아이 곁에서 살림을 짓는 어진 사람”을 그리면서 글을 쓰고 책을 낼 마음이다. (118쪽/2007.8.15.)


  저는 2007년에 책마루숲을 열어서 2024년에도 시골에서 그대로 이어갑니다. 나라책숲이나 고을책숲이 아쉽다면 스스로 책숲을 꾸리면서 책을 노래할 노릇이라고 느껴요. 나라에서 안 한다면 내가 하면 됩니다. 아직 우리말꽃(국어사전)이 제대로 안 나왔다면, 언제 마무리할는 지 몰라도 내가 스스로 하면 됩니다.


 이제는 책숲을 찾아볼 때


  작은책집이 깃든 곳은 으레 마을 안쪽입니다. 작은책집을 찾아나서려면 늘 골목마실을 하게 마련입니다. 골목길이란 들꽃과 마당나무가 조촐히 어우러진 작은숲입니다. 처음에는 책집만 찾으려고 골목을 거닐었는데, 책집을 둘러싼 골목집을 하나둘 스치고 지나다니면서, 어느새 책집 못지않게 골목집에서 흐르는 풀꽃내음을 맡으며 발걸음을 멈추었어요. 책을 보려고 책숲마실을 하다가, 시나브로 골목마실로 발걸음이 바뀌더군요.


아이를 무릎에 앉혀서 함께 읽는 책을 산다. 책꽂이에 곱게 채워 놓을 책은 사지 않는다. 꽤 많이 팔리는 책이라 해서 사지 않는다. 사람들이 입에 침이 닳도록 치켜세우는 책이라 할지라도 딱히 사지 않는다. 마음으로 스며들 때에 책을 산다. 마음을 활짝 열도록 다가오는 책을 산다. 나부터 두고두고 사랑할 만한 책을 산다. 우리 아이가 튼튼하고 씩씩하게 큰 다음에도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을 만한 책일까 헤아리며 산다. 돈이 넉넉하기에 책을 사지 않는다. 돈이 모자라기에 책을 못 사지 않는다. 돈을 좀 벌었다고 하더라도 아무 책이나 사지 않는다. 살림돈이 바닥났어도 책을 산다. 집에 책꽂이가 모자라지만 책을 산다. (142쪽/2010.10.31.)


  열 살이나 열너덧 살이나 열예닐곱 살에는 책값 500원에도 망설였습니다. 스무 살이나 스물두어 살에는 책값 1000원에도 버거웠습니다. 그래서 으레 ‘서서읽기’를 했습니다. 책값 500원이나 1000원이 없기에 “사서 집에서 느긋이 읽고픈 책”을 “책집 구석에 서서 조용히 읽기”로 누렸습니다. 서서 열 자락을 읽어야 한 자락을 샀고, 서서 서른 자락을 읽은 끝에 한 자락을 사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책벌레는 겨우겨우 몇 자락을 장만하면서 한나절이고 두나절이고 책집에 눌러붙었는데, 여태 어느 책집지기도 저를 내쫓지 않았습니다. 책집을 닫을 밤에 이르면 “이봐, 젊은이, 이제 나도 닫고 집에 가야 하는데 아직 덜 봤나?” 하고 부르셨어요.


  돈이 넉넉한 사람한테도, 주머니가 후줄근한 사람한테도, 책은 그저 똑같이 책입니다. 돈이 넉넉해서 깨끗한 새책을 온돈을 치르며 바로바로 사는 사람만 책읽기를 하지 않습니다. 주머니가 가벼워서 헌책집에서 눅은값으로 뒤늦게 장만하거나 서서읽기를 하는 사람도 책빛은 고스란히 스밉니다.


1999년이었지 싶은데, ‘책집 단골’을 놓고 ‘책집에 자주 오는 아저씨’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서울 용산에 있는 헌책집 〈뿌리서점〉이었다. 그곳을 날마다 드나드는 아저씨가 꽤 많은데, 그분들이 서로 옥신각신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서로 생각을 모두었다. 그분들이 말하는 ‘책집 단골’은 이렇다. ㄱ 서른 해 넘도록 드나들기 ㄴ 오천 자락 넘게 장만하기 (142쪽/2014.7.17.)


  책만 읽으면 바보입니다. 책을 안 읽어도 바보입니다. 왼손에는 붓을 쥐되, 오른손에는 호미를 잡아야 어질게 살림을 짓습니다. 왼손으로는 이야기를 쓰고, 오른손으로는 아이를 안거나 기저귀를 손빨래하거나 밥을 짓거나 집안을 치워야 슬기롭게 살림을 일굽니다.


  작은책집으로 책마실을 다니면서 작은이웃을 숱하게 만났고, 작은말씀을 고맙게 들었습니다. 책에 적힌 바 없는 온갖 살림이야기를 작은이웃 눈망울과 손바닥과 발바닥으로 배울 수 있는 책마실을 《들꽃내음 작은책집》에 옮겨 보려고 했습니다.


 책집을 놀이터로 물려주는


  《들꽃내음 작은책집》 겉그림은 부산 보수동 헌책집 〈고서점〉 예전 모습입니다. 슈룹(우산)을 든 아이는 책집 아저씨 조카입니다. 2005년에 담은 그림이니, 벌써 스무 해쯤 된 지난날입니다.


  하루하루 흐르면서 삶을 이루고, 이 삶을 돌보고 보듬으니 살림으로 잇고, 이 살림을 포근하게 품고 풀기에 사랑을 알아보고, 이 사랑으로 보금자리와 마을을 짓기에 숲으로 간다고 느낍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책이 100만 자락 읽혀도 아름다울 텐데, 아무런 문학상을 받은 적이 없는 알차고 야무진 책 1000가지가 해마다 1000 자락씩 팔리고 읽힌다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작고 아름다운 책 2000가지가 해마다 500 자락씩 팔리고 읽혀도 몹시 사랑스럽고 아름다울 테고요.


우리 집이 숲이 되기를, 우리 집을 숲으로 가꾸기를, 우리 마음에 숲이 자라기를, 우리 눈에서 숲을 바라보는 기쁨이 샘솟기를, 조용히 꿈꾼다. 종이로 지은 책을 읽는 일이란, 어쩌면 숲을 읽는 일일 수 있다. 숲을 읽으려고 책을 손에 쥔다. 이야기로도 삶으로도 숲을 읽으려고 시골에서 보금자리를 일구며 책시렁을 짠다. (220쪽/2019.11.9.)


  아무리 우람한 숲이라고 하더라도, 처음에는 티끌만큼 작은씨 한 톨에서 비롯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아이들한테 물려줄 터전은 ‘아름누리’이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아름숲을 물려받기를 바라요. 아이들이 아름바다와 아름들과 아름마을을 이어받기를 바라요. 아이들이 아름책과 아름말과 아름글을 넘겨받기를 바라고요.


  아름누리를 이루려면 먼저 살림누리여야겠지요. 아름말을 물려주려면 먼저 살림말을 가꾸어야겠지요. 오늘은 서른걸음 이야기를 추스르면서 이 길을 걸으니, 곧 마흔걸음과 쉰걸음을 잇는 하루를 만나리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걸어 보시겠어요? 빨리 가야 하지 않습니다. 많이 사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하고 손을 잡고서 마을길을 거닐면서 작은책집으로 찾아가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기에 즐겁습니다. 들꽃내음을 맡고 누리는 골목길 사이에 있는 작은책집에서 같이 만나기를 바랍니다.


#들꽃내음따라걷다가작은책집을보았습니다


+


널리 알려진 책을 읽어도 좋지만, 여태 몰랐던 작은사람이 쓴 작은책을 알아보고 살펴보고 만나면서 즐거운 작은책집이요 마을책집이라고 생각합니다. 1994년 8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책숲(책집)을 다니며 책을 왜 읽었는지, 또 책을 왜 못 읽었는지, 또 어떤 생각을 하며 읽었는지, 또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책을 다시 못 읽을 적에는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뚜벅뚜벅 걷듯이 글과 사진으로 남긴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습니다. 이러한 책을 스스로 밝히는 글을 띄웁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75907&CMPT_CD=P0010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450875?sid=103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0877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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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4.10.28. 들꽃내음 작은책집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책 한 자락이 태어납니다. 책이름은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입니다. 저는 이 이름을 줄여서 ‘들꽃내음 작은책집’이라고 합니다. ‘들꽃내음’은 ‘걷다’하고 잇습니다. ‘작은책집’은 ‘보다’하고 닿습니다. 들꽃이 핀 길을 걷기에, 마을에 작게 깃든 책집을 봅니다. 마을 안쪽에 작게 깃든 책집을 보고 싶기에, 으레 들꽃을 살피고 나무를 헤아리면서 걷습니다.


  새로 내는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는 ‘마을’과 ‘살림’이 어떻게 만나는지 돌아보려는 서른걸음(30년 일기) 가운데 조금씩 뽑아낸 꾸러미입니다. 스스로 ‘숲’으로 걸어간다면, 스스로 ‘빛’을 만나면서 생각을 짓고, 이 생각은 어느새 ‘말’과 ‘씨’로 피어나는구나 하고 느낀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책을 이루는 겉그림은 2005년 부산 보수동 〈고서점〉입니다. 겉그림에 나온 아이는 책집지기 조카이고, 어느새 스무 해를 새롭게 살아낸 어른으로 섰다고 합니다. 얼핏 본다면 이 겉그림은 2005년이 아닌 2024년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글이건 그림이건 빛꽃(사진)이건, 늘 오늘을 담을 뿐인데, 이 오늘은 아무리 긴긴 나날이 흘러도 ‘다시 오늘’로 느끼면서 되새기게 마련입니다.


  걸어다닐 적에 둘레를 보다가 책을 읽고서, 손에 붓을 쥐어서 글을 씁니다. 부릉부릉 매캐하게 달리는 쇳덩이를 몰려고 손잡이를 쥐면, 둘레를 못 볼 뿐 아니라, 느낄 틈이 밭고, 책을 읽을 짬이 없고, 스스로 오늘 하루를 글로 쓸 말미마저 없게 마련입니다. 갈수록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면, 걸어다니는 사람이 확 줄어든 탓이라고 느낍니다. 갈수록 글을 쓰는 사람이 늘어나지만, 막상 안 걸으면서 글부터 쓰려고 하니까 닮은꼴 글시늉이 넘친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뚜벅이(걷는이)라면, 다 다르게 걷습니다. 우리가 뚜벅이라면, 둘레를 다 다르게 봅니다. 우리가 뚜벅이일 적에는, 다 다르게 걸으며 다 다르게 본 마음 그대로, 책을 다 다르게 읽고 글을 다 다르게 쓸 테지요. 뚜벅이라는 살림길을 잊다가 잃다가 버리거나 등지기에, 책님이 줄어들고 글님이 사라진다고 느껴요. 우리가 다시 우리 다리로 우리 이웃을 만나려고 우리 걸음걸이를 펼 적에, 비로소 책님이 늘어나고 글님이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요즈음 왜 굳이 손으로 종이에 글을 써야 하느냐고 물을 까닭이 없습니다. 요즈음이기에 더더욱 걸어다닐 노릇이고, 손으로 종이에 글을 쓸 일이며, 애써 작은책집으로 사뿐사뿐 마실을 가서 책을 온돈 치르며 사읽을 하루입니다. 작은책집에서 작은이웃 작은책을 만나기를 바라요. 작은마을에서 작은집하고 작은동무로 어울리면서 작은새가 들려주는 작은노래를 듣고, 작은손을 너른하늘로 뻗어서 작은별을 만나요.


  들꽃이 피고 지기에 들과 숲과 마을이 푸릅니다. 들숲마을이 푸를 적에 온누리가 싱그럽습니다. 온누리가 싱그러울 적에 누구나 즐겁게 이 하루를 맞이합니다. 서로서로 즐겁게 아침을 열고 밤을 노래한다면, 우리가 읽을 책과 쓸 글이란, 늘 새롭게 깨어나는 사랑을 어질고 풀어내어 아름답게 펴는 꿈씨앗으로 이을 테지요. 사랑으로 풀어내기에 멍울과 생채기가 아물고 사라집니다. 사랑으로 안 풀거나 못 풀기에 고름이 도지고 다시 멍들어요.


  왜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처럼 길게 책이름을 붙였는지 굽어살펴 주시기를 바라요. 함께 들꽃내음을 따라 걸어요. 같이 작은책집에 깃들어 마음을 읽고 나눠요. 이러고서 우리 보금자리로 돌아가서 풀씨와 나무씨를 쓰다듬어요. 이윽고 밤이 오면 별바다를 맞아들이면서 포근히 꿈길로 나아가요.



  작은책집에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를 여쭙고서 느긋이 사읽을 수 있습니다. 저처럼 두멧시골에서 살아가는 분이라면, 누리책집에 시켜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누리책집 알라딘 https://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0877888

누리책집 예스24 https://yes24.com/Product/Goods/136274745

누리책집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626677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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