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 걷는사람 시인선 76
고선주 지음 / 걷는사람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0.25.

노래책시렁 377


《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

 고선주

 걷는사람

 2023.1.9.



  예전에는 혼자 밥을 지었고, 요사이는 곁님이나 아이들하고 함께 밥을 짓거나, 곁님하고 아이가 짓는 밥을 느긋이 지켜보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무엇이든 아이들한테 시킬 까닭이 없는 줄 날마다 새롭게 배웁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시키지’ 않으면 되어요. ‘맡기’면 됩니다. 심부름(시키기)으로는 스스로 생각해서 일으키기가 어렵습니다. 심부름을 맡아도 즐겁게 해내면서 살림싹을 틔우는 사람도 있되, 으레 ‘시키는 대로만 하고 끝’입니다. 이와 달리 ‘맡길’ 적에는 스스로 하나부터 열까지 살펴서 해야 하니까, 아이들은 요모조모 찾고 헤아리고 부딪히면서 살림길을 천천히 익힙니다. 《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를 읽었습니다. ‘시쓰기’란 나쁜 글쓰기가 아닙니다만, 시쓰기나 소설쓰기나 수필쓰기나 동화쓰기에 앞서, 먼저 삶쓰기를 하고 살림쓰기를 하며 사랑쓰기를 할 노릇이라고 느껴요. 이러면서 우리말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아이 곁에서 새롭게 배울 일이라고 느낍니다. 글감은 언제나 우리 곁에 수북수북 있습니다. 꾸며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문학적 수사’란 얼마나 덧없는가요. 밥을 짓건 빨래를 하건 ‘생활적 표현’을 왜 해야 할까요? 그저 살림을 하는 이 삶을 누리면서, 이 하루를 옮기면 노래일 뿐입니다.


ㅅㄴㄹ


그것이 깨졌다 / 누군가는 산산이 깨져야 했다 // 하필 / 접시 위 묵 같은 일상 올려놓았다 / 그래도 자존심은 있지 / 흐물흐물했을 뿐 부서지지 않은, / 사각의 링 위에 오른 복서처럼 / 싸워 이겨야 했던 지난 시간들. / 눈뜬 채 누인다 (잠의 접시/22쪽)


사춘기가 온 자매가 날마다 혈투를 벌인다 하루도 조용한 날 없다.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근무 여건이 더 열악한 집으로 출근한다. 밤이면 휴식이 있는 삶을 꿈꾸었지만 맹탕이다. 공부 스트레스 심하다며 언니가 피아노를 친다. 그러자 동생이 시끄럽다며 조용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너나 잘해, 고성이 오간다. 피아노가 네 것이냐부터 언어를 진열한다. (이런 전쟁 또 있을까/73쪽)


+


《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고선주, 걷는사람, 2023)


불면의 시간들 포말처럼 흩어져 가는 기억들

→ 잠 못 드는 하루 거품처럼 흩어져 가는 빛

5쪽


노트북 자판 앞 언어들이 심란하다

→ 무릎셈틀 글판 앞 말이 어지럽다

5쪽


꼿꼿한 사각의 기억에 갇힌 채

→ 꼿꼿하고 네모난 날에 갇힌 채

→ 꼿꼿한 틀과 길에 갇힌 채

11쪽


구상이었다가 추상이었다가 반구상이었다가 오묘한 붓질의 시간들

→ 눈으로 보다가 비었다가 조금 보이다가 야릇이 붓질하는 때

→ 또렷하다가 겉돌다가 조금 흐리다가 아리송히 붓질하는 나날

15쪽


길을 잃었다 미로에서 내게 칭찬해 주었다

→ 길을 잃었다 난달에서 나를 추켜 주었다

→ 길을 잃었다 몰길에서 나를 달래 주었다

20쪽


편도선이 또 말썽이다

→ 목망울이 또 말썽이다

→ 혀망울이 또 말썽이다

25쪽


공평하지 않던 세상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 고르지 않던 나라처럼 한쪽으로 기운다

→ 반듯하지 않은 터전처럼 한쪽으로 기운다

39쪽


집의 크기나 위치는 따지지 않았죠

→ 집크기나 집자리는 따지지 않았죠

→ 집은 크기나 터를 따지지 않았죠

46쪽


도심지로 학교 나온

→ 복판에 배우러 나온

46쪽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곱씹었던

→ 살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곱씹던

→ 삶이 얼마나 힘든 줄 곱씹던

47쪽


집으로 가는 중

→ 집으로 가는 길

→ 집으로 간다

55쪽


끝내 폐기처분해야만 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했지만

→ 끝내 버리며 수고해야 했지만

→ 끝내 치우며 수고해야 했지만

67쪽


사춘기가 온 자매가 날마다 혈투를 벌인다

→ 봄나이가 온 둘이 날마다 피를 튀긴다

→ 꽃나이가 온 또래가 날마다 다툰다

73쪽


조용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너나 잘해, 고성이 오간다

→ 조용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너나 잘해, 시끄럽다

→ 조용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너나 잘해

73쪽


지난날의 전투 이력까지 다 끄집어내 융단 폭격이다

→ 지난날 싸운 자국까지 다 끄집어내 퍼붓는다

→ 지난날 다툰 일까지 다 끄집어내 쏟아붓는다

73쪽


바람은 둥근 형질을 버려 둔 채

→ 바람은 둥근결을 버려둔 채

→ 바람은 둥근길을 버려둔 채

75쪽


분단된 땅에 살던 그는

→ 나뉜 땅에 살던 그는

→ 그는 갈린 땅에 살다가

81쪽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 채

→ 동그라미를 그리는 줄 알지 못한 채

83쪽


일상 속 잘못 태엽이 감겨진 시간 풀어

→ 살며 잘못 감은 오늘 풀어

→ 잘못 감은 하루 풀어

→ 잘못 돌린 삶을 풀어

88쪽


꽃들이 내 우울의 샘을 파 놓고 그 안에서 노닐다 가면 한낮의, 한낮의 온갖 상념들이 출렁거려

→ 꽃이 눈물샘을 파놓고서 노닐다 가면 한낮, 한낮에 뒤숭숭하여

→ 꽃이 슬픔샘을 파놓고서 노닐다 가면 한낮, 한낮에 멍이 들어

120쪽


태초부터 근무했으니 장기근속 맞지만 바람의 근무태만 아니겠는가

→ 처음부터 일했으니 오래지기 맞지만 바람이 빈둥대지 않았는가

→ 태어나서 일했으니 오래살림 맞지만 바람이 노닥대지 않았는가

122쪽


남겨진 유일한 바람, 통풍痛風

→ 남은 바람 하나, 바람앓이

→ 남은 바람은, 앓바람

→ 남은 바람은, 마디앓이

128쪽


예민하게 동공이 커진다

→ 눈망울이 날서고 크다

→ 눈알이 날카롭고 크다

13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백창우 지음 / 신어림 / 1996년 1월
평점 :
절판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0.25.

노래책시렁 375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백창우

 신어림

 1996.1.11.



  끗 하나 없는 젊은 사내라면 싸움터(군대)로 끌려가고, 그야말로 끗 하나 없으면 강원도 멧골짝으로 깃듭니다. 1996년 1월에 가시울(휴전선) 코앞으로 갔습니다. 갓 끌려온 새내기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안 웃습니다. 날마다 구르고 얻어맞고 삽질을 하다가 작대기를 어깨에 걸고서 눈바람을 맞으면서 얼어붙을 뿐입니다. 드디어 강원도 양구에서 매서운 겨울이 끝났다 싶으니, 마녘바다로 북녘 자맥배(잠수함)가 넘어왔고, 가으내 죽음수렁 같은 나날이 흘렀습니다. “나 하나쯤 밖(사회)에 없어도 멀쩡히 돌아가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끗 하나 없는 모든 젊은 사내는 싸움터에 갇힌 내내 똑같이 울었을 테지요. 1997년 12월에 비로소 밖으로 나갈 수 있은 뒤부터 책집을 바지런히 다니며 허겁지겁 읽어댔습니다. 이때에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를 읽고서 멍했습니다. “누구는 쌔빠지게 구를 적에, 누구는 푸념과 타령을 하는구나” 싶더군요. 그러나 1996년이면 김영삼 씨가 나라를 어지럽히던 무렵이었고, 적잖은 분들은 헤매고 고달팠겠지요. 다만, 다만, 아무리 모지리 우두머리가 나대더라도, 우리 작은이는 손으로 빨래하고 밥을 짓고 아이를 돌보면 됩니다. 우리 작은사람은 텃밭을 짓고 살림노래를 부를 일입니다.


ㅅㄴㄹ


발을 씻는다 / 오늘은 어디를 돌아다녔는가 / 세상 저물도록 무엇을 찾아다녔는가 / 찌그러진 세숫대야에 발을 담그고 / 먼지 낀 하루를 씻어낸다 (발·1/24쪽)


없다, 내 집은 없다 / 이 지상 어디에도 내 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 내 안에 아무도 모르는 외딴 방 하나 생긴 뒤부터 / 어둠 속에 누워 다른 세상을 그리게 된 그날부터 (내 집은 없다, 길이 내 집이다/44쪽)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백창우, 신어림, 1996)


이 지상 어디에도 내 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 이 땅 어디에도 우리 집은 없다

→ 이 나라 어디에도 내가 살 집은 없다

44


어둠 속에 누워 다른 세상을 그리게 된 그날부터

→ 어두운 곳에 누워 다른 곳을 그린 그날부터

→ 한밤에 누워 새터를 그린 그날부터

4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 상추쌈 시집 3
야마오 산세이 지음, 최성현 옮김 / 상추쌈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0.23.

노래책시렁 427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

 야마오 산세이

 최성현 옮김

 상추쌈

 2022.10.30.



  시골에서 살더라도 읍내나 면소재지는 서울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서울만큼 시끄럽지는 않더라도 부릉부릉 매캐한 기운이 가득할 뿐 아니라, 밤에 별을 못 봅니다. 그러나 온나라를 통틀어서 ‘서울·큰고장·읍내·면소재지’가 아닌 곳에서 살림하는 사람은 몇일까요? 이런 데가 아닌 보금자리에서 하루를 누리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얼마쯤일까요?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를 돌아봅니다. ‘물러난다’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느끼면서도 어쩐지 덜 어울립니다. 숲으로 물러날 수 있을까요? ‘간다’나 ‘들어선다’라 해야 알맞지 싶습니다. 숲에서는 스스로 살피고 헤아리고 짚고 생각합니다. 삶도 살림도 사랑도 스스로 지피고 일으킵니다. 바람은 노랫가락을 베풀고, 풀벌레와 새는 노랫소리를 펴고, 별과 해는 노랫자락을 내놓습니다. 이윽고 사람도 노랫말을 여미어 스며들어요. 그런데 일본글을 옮긴 꾸러미는 영 서울스럽습니다. 숲빛을 누린 하루를 옮긴 글일 텐데 숲말로 옮겨야 할 텐데요. 숲은 멋부리지 않습니다. 서울이라면 멋부리고 꾸며서 허울스럽겠지요. 숲사람은 아이 곁에서 어른스레 수수히 말하고 생각하고 노래합니다. 우리는 이제라도 우리말을 처음부터 새로 배울 노릇입니다. 숲에서 오지 않은 말이라면 죽음재 같습니다.


ㅅㄴㄹ


산에 사니 때로 / 아름답거나 신비한 일과 만난다 (산에 살다 보면/22쪽)


왜 너는 / 도쿄를 버리고 이런 섬에 왔느냐고 / 섬사람들이 수도 없이 물었다 / 여기에는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 무엇보다도 수령이 칠천이백 년이나 된다는 조몬 삼나무가 이 섬의 산속에 절로 나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 대답했지만 / 그것은 정말 그랬다 (왜-아버지에게/30쪽)


#山尾三省


+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야마오 산세이/최성현 옮김, 상추쌈, 2022)


흐려 있던 하늘에서 조용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 흐린 하늘이고 비가 조용히 내립니다

→ 하늘은 흐리고 비가 조용히 내립니다

4쪽


수많은 수술을 매단

→ 수술을 잔뜩 매단

→ 수술을 숱하게 매단

4쪽


세계와 하나가 됐을 때 찾아오는 조용한 기쁨을 기록한 것입니다

→ 오롯이 하나일 때 조용히 기쁜 마음을 적었습니다

→ 둘레와 하나일 때 조용히 기쁜 빛을 옮겼습니다

5쪽


내달리는 걸 좋다고 여기는 현대에서 물러난다고 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처럼 보입니다

→ 내달리려고 하는 오늘날 물러난다고 하면 씩씩해야 하는 듯싶습니다

→ 내달려야 한다는 요즈음 물러난다고 하면 의젓해야 하는 듯합니다

5쪽


비의 계절에

→ 비철에

→ 비달에

5쪽


태양 덕분에 사는 존재란 걸 알게 된다

→ 해가 있어서 사는 줄 알아챈다

→ 해가 떠서 살 수 있다고 깨닫는다

14쪽


세계는 잠잠해지고 대지는 깊어진다

→ 둘레는 가라앉고 땅은 깊어간다

→ 온누리는 고요하고 땅은 깊다

16쪽


지적인 것도 하나 없다

→ 하나도 깊넓지 않다

→ 하나도 안 밝다

→ 하나도 안 빛난다

18쪽


삼 주 동안 태풍 세 개가 이어 덮쳐 와

→ 세이레 동안 돌개바람 셋이 덮쳐서

→ 세이레째 회오리바람 셋이 잇달아

20쪽


말굽버섯을 다시 그 위에 놓지 않으면

→ 말굽버섯을 다시 이곳에 놓지 않으면

→ 말굽버섯을 다시 여기에 놓지 않으면

27쪽


수령이 칠천이백 년이나 된다는 조몬 삼나무가 이 섬의 산속에 절로 나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지만 그것은 정말 그랬다

→ 나이테가 일곱즈믄두온 해나 된다는 조몬 삼나무가 이 섬 멧골에 절로 나서 자란다고 얘기했지만 참말 그랬다

30쪽


베짱이가 파란 날개를 펼치고

→ 베짱이가 푸른 날개를 펼치고

32쪽


산딸기 줄기를

→ 멧딸기 줄기를

35쪽


옛사람이 정토라고 불렀던 것이 그 쏟아져 내리는 빗속에 있다

→ 옛사람이 하늘이라 하던 곳이 쏟아지는 빗속에 있다

→ 옛사람이 꿈터라 이르던 곳이 쏟아지는 빗속에 있다

37쪽


엷은 초록빛 현자의 마음과 같은 강낭콩이 온다

→ 옅푸르고 어진 마음과 같은 강낭콩이 온다

46쪽


올해의 첫 북서풍이 휘잉휘잉 불며 산을 거칠게 흔들고 있다

→ 올해 첫 높하늬바람이 휘잉휘잉 멧골을 흔든다

50쪽


나의 둘도 없는 아들이 자기 자신을 향한 여행을 떠나 버린 것이다

→ 나한테 둘도 없는 아들이 오롯이 마음마실을 떠나버렸다

→ 나한테 둘도 없는 아들이 그저 마음 깊이 떠나버렸다

61쪽


그것은 사실 참으로 축하할 일이었다

→ 참으로 기릴 일이다

→ 참으로 기쁜 일이다

→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61쪽


산밭에서 씨 뿌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 멧밭에서 씨를 뿌리려고 한다

→ 멧밭에서 씨를 뿌리려고 챙긴다

61쪽


그루터기는 고사했지만 물이 있어 그루터기는 죽지 않는다

→ 그루터기는 말랐지만 물이 있어 죽지 않는다

82쪽


신입생들의 영혼을 당신들 교육의 희생으로 삼지 마라

→ 그대가 가르친다면서 새내기 넋을 바치지 마라

→ 그대가 가르칠 적에 새내기 얼을 내버리지 마라

9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영상문학전집 : 감꽃과 주현이 - 추모 정영상 30주기
정영상 지음, 이대환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0.23.

노래책시렁 378


《물인듯 불인듯 바람인듯》

 정영상

 실천문학사

 1994.1.30.



  바꾸려면 한동안 어지럽습니다. 그래서 안 어지럽기를 바라는 쪽에서는 안 바꾸려고 합니다. 익숙한 대로 하면 어지러울 일이 없고, 어지러울 일이 없으면 안 어렵습니다. 어느덧 적잖은 배움터에서 ‘두발자유’나 ‘자율학습 폐지’를 이루고 ‘학생인권조례’를 내놓습니다. 그러나 ‘두발’이나 ‘폐지’나 ‘인권’ 같은 일본말씨는 못 바꿉니다. 《물인듯 불인듯 바람인듯》을 곱씹습니다. “누구나 사람이다”를 외친 목소리였을 텐데, 오늘날 곳곳에 퍼진 ‘아동학대’나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은 어쩐지 어지럽게 춤춥니다. 아이들 스스로 안 배우려고 하면서 핑계처럼 내미는 허울로 널뛰기 일쑤입니다. 함께 배우고 같이 생각하며 나란히 걸어가려고 갖은 굴레에 수렁을 걷어치우려는 뜻을 모았어요. 새길을 내놓지만, 새길에 우리 스스로 못 따라가거나 안 따라가는 셈입니다. 왜 그럴까 하고 하나하나 짚노라면, 오늘날 아이어른은 으레 “안 걸어다니”고 “도시락을 안 쌉”니다. 스스로 배우는 길이 아예 막히거나 사라지다시피 합니다. 우리는 ‘스마트 교과서’가 아닌 ‘배움길’을 살필 때입니다. 배움터에는 차댐터가 아닌 텃밭을 놓을 일입니다. 어른(교사·부모)부터 걸어야 하고, 도시락을 쌀 일입니다. 아이한테 집살림과 마을살림을 보여주고 함께 소매를 걷을 노릇입니다. 비와 해와 바람을 잊은 나라에는 아무 앞날이 없습니다. 숲과 들과 바다를 모르는 아이는 철들지 않습니다.


ㅅㄴㄹ


캄캄한 어둠 속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보고 / 그놈의 자율학습인가 뭔가 강제로 붙들어두는 방법만이 / 꼭 옳은 것인가 따지고 싶었습니다. / 중학교 1학년 딸애가 전과목 보충수업을 받아야 할 만큼 / 정규수업이 부실할까? 깊은 회의가 일어났지만 / 차마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 학교에서 참고지, 문제지 일괄 채택하고 그저 학부모는 소리 없이 돈만 내야 하는가 싶었지만 / 항의는커녕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체육성금이니, 금강산댐 기금이니, 적십자 쌀모으기 운동이니 / 말로만 성금이지 일정한 금액을 꼬박꼬박 갖다 바칠 때는 / 이건 또 하나의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닌가 하고 / 속으로 원망도 했습니다. / 자유저축이라는 미명하에 적금 들듯 들어야 하는 강제저축, / 반공영화를 보여준다면서 체육관 강당에다 밀어넣고 돈 받고 보여주는 이상한 문화교실 …… (인질―어느 학부형의 넋두리/108쪽)


톱밥난로 가에 / 바삭바삭 시간이 데워지고 / 시간 속의 물이 끓는다 / 일찌감치 교감마저 자리를 떠나고 / 삼삼오오 늙은 선생들이 모여 앉아 / 희망 없는 앞날을 한탄하는 / 토요일, 재수 없는 일직날 / 교문 밖에는 하늘이 가라앉는 듯 어둡고 / 불이 불을 달구어 / 펄펄 주전자 뚜껑이 소리를 내지만 / 말은 돌면 돌수록 비겁해지는 건가. / 연구점수가 높은 누구는 / 평소에 교활했다드니 / 누구는 교감에게 잘 보였다드니 / 애꿎은 사람들 구설수에 올라가고 (일직날/119쪽)


누구의 짓인가 / 잔인무도한 저 병사들을 / 이끌고 진격하는 대장은 누구인가 / 쇠약한 국토처럼 / 짓밟히는 가을, / 누구를 목버힐 것인가 (내란/153쪽)


+


《물인듯 불인듯 바람인듯》(정영상, 실천문학사, 1994)


캄캄한 어둠 속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보고

→ 캄캄할 때 돌아오는 아이를 보고

→ 어두워서야 돌아오는 아이를 보고

→ 밤에 돌아오는 아이를 보고

108쪽


그놈의 자율학습인가 뭔가 강제로 붙들어두는 방법만이 꼭 옳은 것인가 따지고 싶었습니다

→ 그놈 혼배움인가 뭔가 억지로 붙들어두는 길만이 꼭 옳은가 따지고 싶었습니다

108쪽


이건 또 하나의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닌가 하고

→ 이는 또 돈을 바치는 셈이 아닌가 하고

→ 이는 또 다르게 거두는 짓이 아닌가 하고

108쪽


누구의 짓인가

→ 누구 짓인가

153쪽


잔인무도한 저 병사들을 이끌고 진격하는 대장은 누구인가

→ 사납게 저 떨거지를 이끌고 달려드는 우두머리는 누구인가

→ 섬찟하게 저 놈팡이를 이끌고 뛰어드는 꼭두는 누구인가

15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제이주열차
이동순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0.21.

노래책시렁 451


《강제이주열차》

 이동순

 창비

 2019.8.30.



  나라가 없기에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습니다. 나라에 힘이 없거나 여리기에 사람들이 고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살림을 짓고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들숲바다를 품는 하루로 나아갈 적에는, ‘나라가 있든 말든’ 안 쳐다보면서 보금자리를 가꾸고 아이를 돌보게 마련입니다. 《강제이주열차》는 허수아비인 우두머리가 득실대던 즈음에 한겨레가 고달피 지낸 삶자취 가운데 하나를 짚는 듯싶습니다만, 자꾸 목소리만 높입니다. ‘스탈린놈’에 ‘소련놈’에 ‘왜놈’이라고 나무라기만 합니다. ‘그놈’이나 ‘저놈’이 잘한 짓이란 없다고 여길 만하되, ‘이놈’도 매한가지입니다. ‘우리 살림길’을 바라보는 눈썰미라면, 찬바람에 맵추위에 벼락눈이 휘몰아치는 곳에서도 아이를 품고 돌보면서 꿈을 그리는 사랑씨앗을 눈여겨보았겠지요. 러시아한겨레는 ‘미움’으로 견디거나 살아남지 않았습니다. 러시아한겨레도 일본한겨레도 중국한겨레도 남북한겨레도 오직 ‘사랑’으로 하루를 짓고 살아숨쉬었고 살림을 했습니다. 강제이주열차를 다룰 적이든, 두 다리로 먼먼 가싯길을 걸어가야 했던 나날을 짚을 적이든, 어디에 어떻게 눈길을 맞추느냐에 따라 줄거리가 다르고 이야기가 새롭습니다. 놈놈 타령만 하다가 갑자기 ‘아리랑’을 들추는 《강제이주열차》는 퍽 억지스럽습니다. 그저 눈물노래에 땀노래에 사랑노래를 부를 수 없다면 무엇이 글꽃(문학)일까요?


ㅅㄴㄹ


일본 쳐들어오면 / 고려인들 일본에 붙는다고 했대 / 우리를 왜놈 간첩이라 했대 / 골치 아픈 믿을 수 없는 / 고려인에겐 추방이 상책이라 했대 / 이 무지막지한 / 스탈린 놈과 소련 놈들 / 비밀리에 추방 계획 세웠대 / 이 사실 알게 된 조선 볼셰비키들 / 격분해서 항의 비판 쏟았지 (고려인/12쪽)


우리가 너희들 닭이냐 / 우리가 너희들 소 돼지냐 / 이렇게 마구 다루고 부릴 정도로 / 우리가 그렇게도 만만하더냐 / 왜놈 피해 떠나온 연해주 / 이제 다시 아득한 중앙아시아로 떠밀려가네 / 가련한 우리 고려인 신세 (떠나던 날/29쪽)


강제이주 / 열차를 한달이나 / 타고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 바로 아리랑의 힘 / 절망의 아득한 벼랑 끝에서 / 나도 모르게 입에서 터져나온 노래 / 아리랑 눈물의 아리랑 (아리랑의 힘/66쪽)


+


《강제이주열차》(이동순, 창비, 2019)


어깨 위에 나비처럼

→ 어깨에 나비처럼

9쪽


질기디질긴 잡초 따위로 여기며

→ 질기디질긴 풀로 여기며

→ 검질풀로 여기며

→ 질기디질기다고 여기며

16쪽


가문의 귀한 족보는 어찌하고

→ 거룩한 집안적이는 어찌하고

→ 빛나는 집내림은 어찌하고

22쪽


이 시련의 끝은 언제인가

→ 이 가싯길은 언제 끝나나

→ 이 고비는 끝이 언제인가

→ 이 된서리는 끝이 나는가

→ 이 구렁은 끝이 나는가

39쪽


불평하고 투덜거리면

→ 투덜거리면

→ 쀼루퉁 투덜거리면

→ 중얼중얼 투덜거리면

45쪽


일곱 량이 탈선해서 완전 뒤집혔고

→ 일곱 칸이 벗어나서 확 뒤집혔고

→ 일곱 채가 빗가서 아주 뒤집혔고

5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