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의 시대 창비시선 495
장이지 지음 / 창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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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4.27.

노래책시렁 419


《편지의 시대》

 장이지

 창비

 2023.12.22.



  손으로 밥을 지어서, 손으로 수저를 쥐고서 먹습니다. 손으로 씨앗을 심고서, 손으로 호미나 낫을 쥐고서 거두거나 캡니다. 손으로 아이를 씻기고 돌보노라면, 어느새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손을 맞잡고서 거닐다가, 어느새 손을 가볍게 흔들면서 저만치 앞서 달려갑니다.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손수 짓는 살림을 말로 담았습니다. 말을 담는 그림은 글이 태어난 뒤에도 아주 오래도록 손으로 글을 적었습니다. 이제는 손으로 글을 쓰거나 적는 일이 확 줄었는데, 어떻게 옮기는 글이어도 ‘마음을 담은 글’일 적에라야 비로소 마음이 만나거나 흐릅니다. 《편지의 시대》는 글월과 나래꽃 사이에서 오간 마음을 적는 듯싶습니다만, 어쩐지 “편지의 시대”라는 이름부터 일본스럽습니다. 우리나라 웬만한 자리마다 일본말에 일본빛이니 어쩔 길이 없다고 할 테지만, 조금씩 마음을 기울이면 하나씩 씻거나 털면서, 우리 이야기를 도란도란 펼 만합니다. 글월을 주고받는 ‘글월철’입니다. ‘글날’입니다. ‘글빛나날’에 ‘글길’이에요. 글을 글로 여기는 눈길일 적에 마음을 마음으로 나누는 마음길을 열어요. 억지스레 짜거나 맞추는 글로는 어떤 마음도 못 움직여요. 더 멋지거나 드문 나래꽃을 얻으려는 마음으로는, 그저 시늉이었겠지요.


ㅅㄴㄹ


누가 먼저였는지 잊었지만 편지와 함께 외국의 멋진 우표도 동봉하게 되었는데 진귀한 우표를 찾으려고 발품깨나 팔았지요 우리의 편지는 차츰 우표를 교환하기 위한 것이 되더니 어떤 일로 영영 끊어지게 되었어요 (우표수집―삼총사/65쪽)


너는 그것을 몰라 너를 보지 않겠다고 한 건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야 너에게 주려던 편지를 흐르는 강물에 버린 것을 네가 알까 (졸업/75쪽)


+


《편지의 시대》(장이지, 창비, 2023)


사랑의 취기가, 도취의 파도가 소인으로 찍히는 것을 상상하면서

→ 거나한 사랑이, 반한 물결이 쿵 찍히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 비칠대는 사랑이, 기쁜 물결이 톡 찍히는 무늬를 그리면서

8쪽


은하의 실타래 위에 이미 있었네

→ 별밭 실타래에 이미 있네

→ 별숲 실타래에 이미 있네

→ 별떼 실타래에 이미 있네

12쪽


천변만화의 구름이 뿔뿔이 흩어졌다가

→ 덩굴진 구름이 흩어졌다가

→ 물결치는 구름이 뿔뿔이 가다가

12쪽


대관람차의 형해(形骸)가 방치돼 있다

→ 큰바퀴 뼈대를 내버린다

→ 큰고리가 덩그러니 나뒹군다

→ 고리눈 부스러기가 구른다

18쪽


칠이 벗겨진 말들이 막사 안에서 선잠을 잔다

→ 겉이 벗겨진 말이 오두막에서 선잠이다

→ 옷이 벗겨진 말이 움막에서 선잠이다

18쪽


나뭇잎 사이로 흘러내리는 햇빛의 무늬를, 초록색의 점자를 갑충이 더듬더듬 읽는다

→ 나뭇잎 사이로 흘러내리는 햇빛무늬를, 푸른글씨를 딱정벌레가 더듬더듬 읽는다

23쪽


너머에서 도시가 비의 부식(腐蝕)을 견딘다

→ 너머에서 마을이 비에 삭지 않으려 한다

→ 너머에서 서울이 비에 슬지 않으려 한다

25쪽


백지와 마주할 때 나는 역광을, 광배(光背)를 얻는다

→ 나는 흰종이와 마주할 때 뒷빛을 얻는다

→ 나는 빈종이와 마주할 때 빛살을 얻는다

25쪽


외국의 멋진 우표도 동봉하게 되었는데 진귀한 우표를 찾으려고

→ 이웃나라 멋진 나래꽃도 넣었는데 값진 나래꽃을 찾으려고

→ 옆나라 멋진 날개꽃도 담았는데 드문 날개꽃을 찾으려고

65쪽


너는 그것을 몰라 너를 보지 않겠다고 한 건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야

→ 너는 몰라 너를 보지 않겠다고 한 말은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야

→ 너는 몰라 너를 보지 않겠다고 했는데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야

7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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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시인선 52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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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3.31.

노래책시렁 372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문학동네

 2014.5.20.



  모든 글은 말을 다룹니다. 말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줄거리하고 이야기가 다릅니다. 어느 말을 맞아들여서 줄거리를 짜느냐에 따라서, 글쓴이 눈길도 다르고, 둘레에 남기는 씨앗도 다릅니다. 아무 말이나 쓴다면, 아무 마음이나 엉키면서 산다는 뜻입니다. 하나하나 고르면서 쓴다면, 고르는 눈길을 닦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낱말은 고르지만 엉키거나 어지러울 때가 있고, 사랑씨앗이 아닌 미움씨앗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을 모처럼 되읽다가 책끝에 붙은 “우리가 이 시를 읽고 고은의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를 떠올렸다면 이것이 두 시인 중 누구에게도 결례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202쪽).”를 읽고서, 이렇게 글밭 곳곳에 “고은 수렁”이 깊구나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그토록 말밥에 올랐어도, 그처럼 추레한 술짓이 드러났어도, 다들 입을 다무는 까닭이 있을 테지요. 글은 글로만 볼 까닭이 없습니다. 글로 옮긴 말이 있고, 말로 담은 마음이 있고, 마음에 놓은 삶이 있어요. ‘글·말·마음·삶’은 늘 하나입니다. 둘도 셋도 아닙니다. 글하고 삶이 다르다거나, 말하고 마음이 다르다면, 거짓으로 속여 왔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글재주를 걷어내어야 사랑씨앗을 심는 글빛이 깨어나겠지요.


ㅅㄴㄹ


지상에서 지상으로 난분분 / 난분분하는 봄눈은 난데없이 피어난 눈꽃이다. / 영문도 모른 채 빗방울의 꽃이 된 것이다. (삼월에 내리는 눈/20쪽)


한국에서 태어나 / 아직도 서울에 정착하지 못했으니 / 나 역시 난민이었다. / 나는 내국 디아스포라였다. (다시 디아스포라/174쪽)


우리가 이 시를 읽고 고은의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를 떠올렸다면 이것이 두 시인 중 누구에게도 결례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해설 : 신형철/202쪽)


+


《지금 여기가 맨 앞》(이문재, 문학동네, 2014)


우리는 하나의 관점이기 이전에 무수한 감점(感點)이다

→ 우리는 들여다보기 앞서 숱하게 깎아낸다

→ 우리는 바라보기 앞서 끝없이 덜어낸다

→ 우리는 살펴보기 앞서 자꾸자꾸 떨군다

5쪽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 어떤 때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뉘이다

→ 언제라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누리이다

13쪽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비손이다

→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비나리이다

14쪽


보름달은 온몸으로 태양을 정면한다

→ 보름달은 온몸으로 해를 마주본다

16쪽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 부아앙 왼돌이하던 쇠자루가 확 멈춘다

17쪽


지상에서 지상으로 난분분 난분분하는 봄눈은

→ 땅에서 땅으로 나풀나풀하는 봄눈은

→ 이곳에서 이곳으로 날리는 봄눈은

→ 이 길에서 이 길로 나부끼는 봄눈은

20쪽


영문도 모른 채 빗방울의 꽃이 된 것이다

→ 영문도 모른 채 빗방울꽃이 된다

→ 영문도 모른 채 비꽃이 된다

20쪽


선뜻 착지하지 못하는 봄눈은

→ 선뜻 내려앉지 못하는 봄눈은

→ 선뜻 내려서지 못하는 봄눈은

20쪽


내륙이 온통 환해지고 있다

→ 땅이 온통 환하다

→ 땅덩이가 온통 환하다

30쪽


손의 백서(白書)

→ 손 이야기

→ 손 얘기

94쪽


장벽이 높고 길수록 문이 문다운 법

→ 담이 높고 길수록 턱이 턱다운 터

107쪽


괘종시계는 한 달에 한 번

→ 하루북은 한 달에 한 판

→ 하루꽃북은 한 달마다

128쪽


도시가 푸르러졌고

→ 서울이 푸르고

155쪽


무전여행이 여행의 마지막이었지요

→ 가난마실이 발걸음 마지막이었지요

→ 맨몸마실이 마지막 걸음이었지요

→ 빈몸마실이 마지막 길이었지요

164쪽


아직도 서울에 정착하지 못했으니 나 역시 난민이었다. 나는 내국 디아스포라였다

→ 아직도 서울에 자리잡지 못했으니 나도 나그네였다. 나는 이곳 나그네였다

→ 아직도 서울에 터잡지 못했으니 나도 떠돌이였다. 나는 이 나라 떠돌이였다

174쪽


귀경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 서울로 와서야 알았습니다

→ 돌아오고서야 알았습니다

→ 집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17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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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는 물소리 도토리숲 동시조 모음 9
신현배 지음, 최정인 그림 / 도토리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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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3.30.

노래책시렁 413


《일어서는 물소리》

 신현배 글

 최정인 그림

 도토리숲

 2020.11.5.



  오래오래 깃들 살림집이라면 서둘러 짓지 않습니다. 느긋느긋 추스르고, 온집안이 함께 일하면서 가꿉니다. 두고두고 누리는 살림집에는 나무하고 새가 곁에 있습니다. 풀벌레가 노래하고, 개구리가 겨울잠을 이루고, 나비가 내려앉을 적에 비로소 살림집이라는 이름이 어울립니다. 《일어서는 물소리》는 ‘일어서다’나 ‘물소리’를 이름으로 내걸지만, 막상 어떤 삶이 일어서거나 어떤 숲이 물소리로 흐르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나이든 분들이 아이를 귀엽게 쳐다보는 ‘재롱’이라는 굴레인 ‘동심천사주의’가 가득할 뿐이라고 느낍니다. 글쓴이는 마흔 해라는 나날을 ‘동시인’으로 보냈다고 밝히는데, 어린이 곁에 서는 글이 아닌 어린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경글이라고 느껴요. ‘친척 촌수’를 따지고 ‘이어달리기 선수 바통’ 같은 뻔한 ‘새마을운동’스러운 줄거리로는 아이들한테 꿈도 사랑도 속삭이기는 어렵다고 느낍니다. 어린이를 어린이로 마주하려는 눈길이라면, 어린이를 구경거리가 아닌 동무와 이웃으로 바라보면서, 스스로 어진 이슬받이라는 살림을 글에 담게 마련입니다. 집살림을 짓는 손길일 때라야 노래가 노래답습니다. 집살림하고 먼 손놀림이라면 글쎄, 뭐가 될까요?


ㅅㄴㄹ


눈송이 불러 앉히던 / 쓸쓸한 빈 가지에 // 나그네새 한나절 / 시끌시끌히 울더니 (흰 목련나무에게/14쪽)


이어달리기 선수들이 / 바통을 넘겨받듯 // 진달래와 철쭉이 / 꽃빛 웃음 주고받자 // 배시시 웃는 먼산에 / 덧니 같은 절간 한 채. (먼산 1/16쪽)


늙은 티를 낸다고 / 네 이름이 느티나무니? // “할배!”라고 부르면 / “오냐!” 대답할 거니? // 턱없이 촌수만 높은 / 우리 친척 아이처럼 (느티나무에게/27쪽)


우리 동네 교회 종탑에 / 둥지 튼 까치 한 마리 // 땅의 소식 전하는 / 심부름꾼 되었나 봐. // 울리는 종소리 따라 / 하늘 우러러 깍깍깍! (까치 /48쪽)


조끼 옷을 맞춰 입고 / 주인 품에 안겼어도 // 덜덜덜 떠는 애완견 / 산책길이 안쓰럽다. / 동장군 첫나들이에 / 재롱마저 얼어붙었다. (재롱마저/59쪽)


+


《일어서는 물소리》(신현배, 도토리숲, 2020)


동시인으로 살아온 지 어언 41년째입니다

→ 노래지기로 살아온 지 벌써 41해째입니다

4쪽


시조의 백미(白味), 시조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단시조

→ 빛나는 가락글, 노래꽃이라 일컫는 토막노래

→ 눈부신 글자락, 노래꽃이라 일컫는 도막글

4쪽


갓난쟁이 노란 꽃들

→ 갓난쟁이 노란 꽃

13쪽


이어달리기 선수들이 바통을 넘겨받듯

→ 이어달리기꾼이 막대를 넘겨받듯

→ 이어달리는 사람이 개비를 넘겨받듯

16쪽


투명한 마음의 창이 흐리다 못해 붉어졌다

→ 맑은 마음길이 흐리다 못해 붉다

→ 맑은 마음닫이가 흐리다 못해 붉다

18쪽


귀한 손님 오시는지

→ 고이 손님 오시는지

→ 곱게 손님 오시는지

→ 반가운 손 오시는지

21쪽


카펫을 까는 은행나무

→ 자리를 까는 부채나무

→ 멍석을 까는 부채나무

21쪽


“할배!”라고 부르면 “오냐!” 대답할 거니?

→ “할배!” 부르면 “오냐!” 대꾸하니?

→ “할배!”라 부르면 “오냐!”라 말하니?

27쪽


턱없이 촌수만 높은 우리 친척 아이처럼

→ 턱없이 길만 높은 우리 피붙이처럼

→ 턱없이 사이만 높은 우리 살붙이처럼

27쪽


날마다 몸단장하는지 미끈하게 잘생겼다

→ 날마다 꾸미는지 미끈하다

→ 날마다 몸치레하는지 잘생겼다

29쪽


나를 깨우는 향기로운 알람이에요

→ 나를 향긋하게 깨워요

37쪽


동장군 첫나들이에 재롱마저 얼어붙었다

→ 강추위 첫나들이에 귀염마저 얼어붙었다

→ 눈보라 첫나들이에 깜찍마저 얼어붙었다

59쪽


저녁놀 가마에 구운 최고 명품 도자기네

→ 저녁놀 가마에 구운 으뜸 질그릇이네

6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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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3.14.

노래책시렁 284


《님은 이렇게 오더이다》

 김명식

 학민사

 1989.3.20.



  하루를 살아내며 오가는 길에 보고 듣고 느낀 모든 숨결이 어느덧 새롭게 이야기로 드리웁니다. 두들겨맞고 쓰러진 하루도, 빗물로 달랜 하루도, 휘둘리고 휩쓸리다가 휘청이는 하루도, 햇볕을 듬뿍 쬐면서 사르르 눈을 감는 하루도, 모두 다르게 젖어들면서 우리 이야기로 퍼집니다. 더 캄캄한 나라는 없습니다. 캄캄굴레를 바꿀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그들은 우리가 부아를 내기를 바랍니다. 히죽거리면서 송곳으로 옆구리를 쑤시지요. 이래도 성내지 않을 수 있느냐면서 이기죽거리는데, 고이 서는 길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그놈을 흘겨볼 적에는 그만 와르르 무너집니다. 《님은 이렇게 오더이다》를 문득 되읽습니다. 아마 1995년 가을에, 새뜸나름이로 일하는 틈을 쪼개어 책집마실을 하던 어느 날 처음 읽었을 텐데, 그 뒤로 1999년 무렵에 다시 읽었고, 2024년에 이르러 새삼스레 들춥니다. 1989년이면 전두환을 끌어내렸어도 다른 우두머리가 또아리를 틀었고, 벼슬자리를 꿰차거나 나눠먹는 무리가 무시무시했습니다. 그 뒤로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가 흐르는 동안에도 힘꾼과 이름꾼과 돈꾼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 뻘짓’을 구경하기를 바랍니다. 불수렁을 끝내는 길은 단출해요. 우리 꿈길을 걸으면 돼요.


ㅅㄴㄹ


창 너머 휘황한 호텔의 불빛은 / 나에게는 차라리 포화처럼 / 두려워졌읍니다 // 희 희 락 락 / 웃어대는 저 웃음소리가 / 나에게는 차라리 칼날처럼 / 가슴 떨렸읍니다 // 버젓한 승용차가 들어 나가고 / 기름 낀 목덜미 / 저 사람들은 / 나에게는 차라리 / 침략군처럼 / 소름끼쳤읍니다 (님 16/99쪽)


더운물에 몸 담글 수 있고 / 포근한 침상에 몸 뉘일 수 있는 / 높은 자리에 앉아 / 호령하며 권세부리며 / 호사한 글방에서 멍든 세상 구경하면서 // 굶주리는 형제보다 더 처먹는 것은 / 부끄럼입니다 / 부끄럼입니다 (님 18―나의 죄 나의 부끄럼/102쪽)


+


《님은 이렇게 오더이다》(김명식, 학민사, 1989)


창 너머 휘황한 호텔의 불빛은 나에게는 차라리 포화처럼 두려워졌읍니다

→ 저 너머 눈부신 길손채 불빛은 나한테는 차라리 벼락처럼 두렵습니다

→ 저 너머 반짝이는 나들채 불빛은 나한테는 차라리 불살처럼 두렵습니다

99쪽


포근한 침상에 몸 뉘일 수 있는

→ 포근한 자리에 몸 뉘일 수 있는

102쪽


호령하며 권세부리며 호사한 글방에서 멍든 세상 구경하면서

→ 을러대며 거머쥐며 돈지랄 글칸에서 멍든 나라 구경하면서

→ 으르렁 뽐내며 배부장나리 글집에서 멍든 삶터 구경하면서

102쪽


굶주리는 형제보다 더 처먹는 것은 부끄럼입니다

→ 굶주리는 또래보다 더 처먹는 짓은 부끄럽습니다

10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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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의 겨울
김경훈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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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3.14.

노래책시렁 285


《한라산의 겨울》

 김경훈

 삶이보이는창

 2003.3.27.



  겨울에 내리는 눈은 모두 포근하게 덮습니다. 이쪽만 덮거나 저쪽을 안 덮지 않습니다. 봄에 내리는 비는 모두 푸르게 녹입니다. 저쪽만 녹이거나 이쪽을 안 녹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내리쬐는 해는 모두 어루만집니다. 어느 쪽만 어루만지는 일이란 없이 모든 숨붙이를 어루만지면서 살립니다. 우리는 한겨레란 이름이되, 짧지 않은 나날을 위아래로 갈린 채, 윗놈이 아랫사람을 짓밟고 죽이고 들볶고 우려냈습니다. 위아래틀이 걷힌 뒤에도 돈·이름·힘은 고스란해서, 굴레를 씌우거나 옭아매기 일쑤였어요. 《한라산의 겨울》은 제주에 몰아친 죽음바람에 휩쓸리면서 눈물앓이를 한 발자취를 그립니다. 예부터 ‘때린 놈은 다리를 못 뻗고 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언뜻 보면 ‘때린 놈만 다리를 뻗고 잔다’ 싶을는지 모르나, 때린 놈은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깨비한테 시달립니다. 그들이 벙긋하지 않을 뿐, 여태 일삼거나 저지른 잘못·말썽·사달은 안 사라집니다. 숨기거나 감추거나 덧씌우더라도 모든 삶은 그대로예요. 제주 피바람도, 온나라 피눈물도, ‘때린 놈이 남기는 글’은 겉치레에 핑계가 판칩니다. ‘맞은 이가 새기는 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앙갚음을 바라는 불길을 남길까요, 해바람눈비를 품는 마음을 새길까요?


ㅅㄴㄹ


새벽 1시경 / 위미리 해안가에서 / 마대자루에 담긴 채 / 바닷물 속에 처박혔다 / 숨이 막히면 / 짠물 후루룩 들이키며 / 죽을 힘 다해 몸부림쳤다 / 그제서야 자루가 들어올려지고 / 그리곤 다시 물 속에 잠겼다 …… 저 놈은 김태성이가 아니고 김태섭이야 / 이런, 잘못 잡아 왔잖아 / 피라미 새끼도 못 되는 거 / 에이 그냥 묻어버리지 뭐 (생매장/57쪽)


나는 / 벽장에 숨어 / 틈새로 다 보았다 / 군인 둘이가 누나를 끌고 와서 / 옷을 다 벗기고 눕힌 다음 / 둘이서 가위바위보를 하더니 / 한 놈이 먼저 / 혁대를 풀고 바지를 벗고 / 누나 위로 엎어졌다 / 나는 들었다 / 발버둥치며 살려달라는 소리 /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 벌벌 떨었다 (증거인멸/63쪽)


+


《한라산의 겨울》(김경훈, 삶이보이는창, 2003)


위미리 해안가에서 마대자루에 담긴 채

→ 위미마을 바닷가에서 자루에 담긴 채

57쪽


그제서야 자루가 들어올려지고

→ 그제서야 자루를 들어올리고

57쪽


혁대를 풀고 바지를 벗고 누나 위로 엎어졌다

→ 허리띠 풀고 바지를 벗고 누나한테 엎어졌다

6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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