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택배 트럭! 문학동네 동시집 59
임미성 지음, 윤지회 그림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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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0.23.

노래책시렁 517


《달려라, 택배 트럭!》

 임미성 글

 윤지회 그림

 문학동네

 2018.3.5.



  낱말마다 우리 삶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어느’ 낱말이든 쓰면 되지만, ‘아무’ 낱말이나 쓰지 않을 노릇입니다. 내가 스스로 소리를 내거나 마음에 놓거나 글로 옮기는 ‘모든’ 말은 우리 하루를 이루면서 우리 몸과 마음으로 스밉니다. 마음을 말로 고스란히 옮기기도 하고, 말이 그대로 마음으로 자리잡습니다. 이런 얼거리라서 ‘막말·낮춤말·깎음말·얕봄말·구지레말·지저분말·추레말·더럼말·사납말’을 혀에 얹거나 글로 옮기면, 남을 깎지 않고 나를 깎아요. 《달려라, 택배 트럭!》을 읽는데, 여러모로 ‘말놀이 아닌 말장난’이지 싶습니다. “둘리 방구”는 이미 마흔 해 즈음 이른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요새 다시 들춰야 할까요? 오늘 이곳에서 ‘어린이부터 어른인 몸으로 이은 나’를 바라보려고 한다면 말장난을 할 일이 없습니다. ‘어른인 몸을 입은 내가 어떤 어린날을 살며 오늘에 이르러 둘레에 어떤 어린 이웃이 있는가’ 하고 돌아보는 눈이라면, 서로 마음을 북돋우는 말살림을 펴게 마련입니다. 노래를 쓰든 수수하게 글을 쓰든, 섣불리 ‘위로·존중·다양성’을 앞세우지 않기를 빕니다. 그저 나란히 서서 나랑 너를 함께 헤아리는 눈빛이면 넉넉합니다. 함께 이야기하려는 마음을 쓰면 됩니다.


ㅍㄹㄴ


‘둘리 문방구’에서 / ‘문’ 자가 없어지고 / ‘둘리 방구’가 되었지만 / 나는 그대로야 (둘리 문방구 유리문의 비밀/18쪽)


종이 한 장이 이렇게나 무겁다 / 글자가 무겁기 때문이다 / 엄마는 이 한 장을 못 들고, 오늘 / 주저앉았다 (종이 한 장/47쪽)


형들은 우리보고 / 야, 나대지 마라 하며 / 축구할 때 빠지라고 한다 // 4학년짜리들은 우릴 보고 / 6학년도 아니면서 뭘 째려봐 / 이런다 (5학년/66쪽)


현장학습 간 날, / 내 옷에 붙은 도깨비바늘은 / 무엇이 될까? // 도깨비가 될까? / 바늘이 될까? (무엇이 될까?/70쪽)


+


《달려라, 택배 트럭!》(임미성, 문학동네, 2018)


즐거움과 따뜻한 위로가 되길 빌어요

→ 즐겁고 따뜻이 달래기를 빌어요

→ 즐겁고 따뜻하기를 빌어요

6쪽


바다 냄새 나는 책을 읽는 게 좋아

→ 바다냄새 나는 책을 읽으며 즐거워

→ 바다냄새 책을 읽으며 즐거워

17쪽


그 애의 손을 잡듯 부드럽게 악수를 하듯 손이 손에게 말을 걸게 하는 거야

→ 그 애 손을 잡듯 부드럽게 맞잡듯 손이 손한테 말을 걸어

25쪽


봉투 안에

→ 글자루에

→ 자루에

47쪽


잠자리 한 마리 나 읽는 책 위에 앉았다

→ 잠자리 한 마리 책에 앉는다

→ 나 읽는 책에 잠자리 한 마리 앉는다

54쪽


새들끼리는 여름 인사 잘 통해서

→ 새는 서로 여름말 잘 들려서

→ 새끼리 서로 여름말 잘 들어서

→ 새는 저희끼리 여름말 잘 나누니

8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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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2025.10.16. 따분한 어느 책



  누구나 삶을 말로 담거나 글로 그리는 듯 보일 수 있는데, 웬만한 글과 책은 담는 시늉과 그리는 흉내 같다. 사람은 발바닥을 땅바닥에 딛고서, 풀꽃나무를 손바닥으로 쓰다듬고서, 눈을 하늘과 바람으로 틔우고서, 몸을 물과 바다에 맡길 적에 비로소 깨어난다고 느낀다.


  종이(면허증)을 의젓하게 안 따는 이웃이 있되, 종이(면허증)에 목을 매는 이가 아주 많다. 종이(졸업장)를 안 쳐다보는 동무가 가끔 있으나, 종이(졸업장)에 붙들린 동무와 동생이 참 많다. 종이(돈)를 아랑곳않는 사람이 차츰 늘지만 아직 종이(돈)를 꼭두로 치는 무리가 담을 쌓는다.


  나는 종이(글종이)를 쥐고 나눈다. 겉보기로는 다 같아 보이나, 곰곰이 보면 사뭇 다른 종이인걸. 삶을 노래해야 살림을 보는데. 살림을 그리고 가꾸어야 사랑을 찾는데. 사랑을 품어야 사람인데.


  누구나 사람일 수 있지만, 아무나 다 사람이라 할 수는 없다. 고흥읍에서 나래터를 들르고서 저잣마실 보는 길에 어느 ‘잘팔리는 시집’을 읽었다. 세 가지 종이를 꽉 쥔 어느 할배가 가엾다. 글쓰는 시늉으로 이름을 얻는들 부질없는데.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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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성동혁 시집 민음의 시 204
성동혁 지음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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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0.17.

노래책시렁 516


《6》

 성동혁

 민음사

 2014.9.12.



  아픈 몸으로 글을 쓰면서 동무하고 마음을 새롭게 나누었다고 하는 성동혁 씨가 그린 《6》을 읽으면서 내내 갸웃갸웃했습니다. 이 노래에는 아픈 티가 드러나지 않기도 하고, 스스로 어떤 하루이고 삶인지 잘 안 보이기도 합니다. 노래란, 말 그대로 “삶을 부르는 노래”일 텐데, “문학으로 꾸미려는 시”만 드러납니다. 요새는 이렇게 글을 꾸미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이렇게 꾸며야 이름난 펴냄터에서 ‘노래책’이 아닌 ‘시집’이 나오며 ‘문학비평’을 끝에 붙일 수 있다고 여깁니다만, ‘노래가 아닌 시’로는, 너를 부를 수도 내가 부를 수도 우리가 하늘빛을 부를 수도 없게 마련입니다. 꾸밀수록 꿈이 옅다가 어느새 사라집니다. 꿈을 그릴수록 꾸밀 까닭이 아예 없습니다. 꿈을 안 그리기에 꾸미는 굴레로 기울고, 꿈을 그리기에 꾸밈질을 스스로 떨쳐냅니다. 꾸밈글이란, 스스로 ‘있어 보이’려 하고 ‘커 보이’려 하고 ‘잘나 보이’려 하고 ‘높아 보이’려 하는 허울입니다. 허우대가 좋다고 해서 튼튼몸이지 않아요. 꾸미느라 거꾸로 스스로 하잘것없는 글을 쓰고야 맙니다. 꿈을 그리는 사람은 언제나 삶자리 가장 자그마한 이야기를 담는데, 언제나 이 자그마한 이야기가 숲을 이루는 씨앗으로 거듭납니다.


ㅍㄹㄴ


새들이 빈 나무에 가 투명하게 목매단다 // 저택의 지붕을 찢어 내고 / 햇볕이 부엌까지 든다 // 신성한 가시밭은 골짜기의 초입까지 들어와 자랐다. (면류관/14쪽)


지구가 반으로 잘린다면 내가 너희와 같은 곳에 서 있을 거야 (동물원/24쪽)


어젯밤엔 아편밭을 걸었다 // 서서 지내던 친구들이 누워서 사라진다 / 오래 누워 있으면 조금 더 친해지는 거리 / 계속 걸을 수 있다면 모두와 / 유리창을 깨며 / 나눠떨어지지 않는 웅덩이에서 약속을 잡자 (그림자/42쪽)


나는 기상청에 당신이 언제 그리울지 몰어봤다가 이내 더 쓸쓸해졌다 (바람 종이를 찢는 너의 자세/76쪽)


나는 스스로를 여자라고 부른다 애인의 가슴은 어젯밤 내가 모두 빨았다 하지만 나는 도덕으로 살고 있다 가슴을 깎아 내리면 연필처럼 검은 젖이 나온다 (수컷/113쪽)


+


《6》(성동혁, 민음사, 2014)


이곳이 나의 예배당입니다

→ 이곳이 우리 절집입니다

→ 나는 여기서 비손합니다

→ 난 이곳에서 빕니다

→ 난 여기서 절합니다

5


확장되는 천국 촌스럽게 전도하지 마

→ 늘어난 하늘 구질구질 퍼뜨리지 마

→ 넓힌 하늘길 나달나달 알리지 마

13


새들이 빈 나무에 가 투명하게 목매단다

→ 새가 빈 나무에 가 맑게 목매단다

14


저택의 지붕을 찢어 내고

→ 지붕을 찢어내고

→ 큰집 지붕을 찢어내고

14


신성한 가시밭은 골짜기의 초입까지 들어와 자랐다

→ 거룩한 가시밭은 골짜기 어귀까지 들어와 자란다

14


슬픔은 신에게만 국한된 감정이면 좋을 뻔했다

→ 하늘만 슬퍼하면 될 뻔했다

→ 님만 슬프면 될 뻔했다

→ 하느님만 슬프면 될 뻔했다

16


종량제 봉투 안에 가득 찬 악몽을 들고

→ 쓰레기자루에 가득 든 가위를 들고

→ 쓰레자루에 가득한 늪꿈을 들고

19


그녀가 현관 밖에 사일 동안 서 있고

→ 그는 나들목 밖에 나흘 동안 있고

→ 님은 들머리 밖에 나흘 동안 서고

20


당신의 군락에선 똑바로 설 수 없다

→ 너희 밭에선 똑바로 설 수 없다

→ 너희 무더기에선 똑바로 못 선다

22


역사는 혼색(混色)으로 개혁되었다

→ 그동안 섞어서 바꾸었다

→ 여태껏 버무려서 바꿨다

23


트램펄린 위에서 높게 뛰다 보면

→ 방방이에서 높게 뛰다 보면

→ 붕붕이에서 높게 뛰다 보면

56


손톱의 뿌리가 바다와 맞닿아 있듯 뭍으로부터 떠나온 나는

→ 손톱뿌리가 바다와 맞닿듯 나는 뭍에서 떠나

66


이내 더 쓸쓸해졌다

→ 이내 더 쓸쓸하다

76


난 너의 옆집에 살아

→ 난 너희 옆집에 살아

→ 난 옆집에 살아

86


나는 애인에게 걸음마를 배운 것 같다

→ 나는 곁님한테서 걸음마를 배운다

→ 나는 사랑이한테서 걸음마를 배운다

113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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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걷는사람 시인선 56
김명기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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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0.10.

노래책시렁 512


《돌아올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김명기

 걷는사람

 2022.1.1.



  살림밥도 들숲밥도 마음밥도 이야기밥도 누리면서 글밥도 누리면 아름다울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고 싶은 이웃님이 있으면 언제나 ‘글쓰기’를 맨뒤로 놓으시라고 여쭙니다. ‘살림짓기’를 늘 꼭두에 놓고서, ‘들숲메바다’하고 ‘풀꽃나무’하고 ‘해바람비’를 나란히 아우르는 하루를 복판에 놓으라고 여쭈지요. 살림을 푸른빛으로 여미는 보금자리를 일구는 나날을 살면, 글이란 늘 저절로 샘솟거든요. 《돌아올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를 읽으면서 곱씹습니다. 우리는 ‘시인’이라는 일본스런 이름을 내려놓고서 ‘노래꽃’이라는 살림말을 품을 때라고 느낍니다. 살림을 지으면 늘 살림말을 펴고, 살림살이를 바탕으로 살림이야기를 하고, 스스로 살림순이에 살림돌이로 섭니다. 살림하는 사람이 나누는 말은 “씨앗을 틔우는 말꽃”일 테니, “시시한 시(詩)”가 아니라 “노을처럼 너울거리는 노래”를 누구나 반짝반짝 빚을 수 있습니다. 글감을 억지로 뽑으려고 하니 엉성합니다. 글감을 집밖에서 찾아나서려고 하니 짓궂어요. 밥하고 옷짓고 집살림을 돌보는 하루를 살면, 저절로 밥노래에 옷노래에 집노래가 흐릅니다. 먼발치 심심한 구경거리가 아닌, 손수 일으키는 꿈씨앗을 펼 적에 다같이 노래님입니다.


ㅍㄹㄴ


앞집 할매가 차에서 내리는 나를 잡고 묻는다 / 사람들이 니보고 시인 시인 카던데 / 그게 뭐라 // 그게…… / 그냥 실없는 짓 하는 사람이래요 / 그래? / 니가 그래 실없나 (시인/11쪽)


종일 비가 내린다는데 / 바깥 견사의 개들은 / 온기 없는 고요를 끌어 덮은 채 / 마냥 웅크리고 있다 / 온기 없다는 말은 어떤 / 간절함이 고인 것 같아서 ;/ 빗물 차오르는 물그릇에 / 자꾸만 눈이 간다 (호우주의보/46쪽)


기차를 기다리며 / 흡연실 구석에서 담배 피우는데 / 말쑥한 이가 다가와 담배를 빌린다 / 이렇게 빌려주고 / 돌려받지 못한 담배는 얼마나 될까 (서울역/112쪽)


+


《돌아올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김명기, 걷는사람, 2022)


곡비처럼 자꾸만 우는지도 몰라

→ 눈물종처럼 자꾸 우는지도 몰라

→ 계집종처럼 자꾸만 우는지 몰라

12


묵은 봉분이 있다

→ 묵은 묏등이 있다

→ 묵은 무덤이 있다

15


지금은 흐린 하늘 아래 바람 부는 일요일 하오 네 시경

→ 이제 흐린 하늘 바람 부는 해날 낮 네 시 무렵

→ 오늘은 흐린 하늘 바람 부는 해날 낮 네 시쯤

29


바깥 견사의 개들은 온기 없는 고요를 끌어 덮은 채

→ 바깥 개집에 개는 차갑게 고요를 끌어 덮은 채

→ 바깥 개우리에는 싸늘히 고요를 끌어 덮은 채

46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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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구멍만 바쁘다 - 이정록 동시집
이정록 지음, 권문희 그림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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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0.10.

노래책시렁 510


《콧구멍만 바쁘다》

 이정록

 창비

 2009.10.5.



  어린이는 “학교나 학원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스스로 하루를 그리면서 신나게 놀며 배우는 길을 누리려고 어버이 곁으로 찾아왔습니다. 예부터 모든 어버이는 아이곁에서 일하고 살림했습니다. 어버이라면 아이를 집에 놓고서 밖으로 돈벌러 안 다녔어요. 어버이는 늘 집이 살림터이면서 일터인 얼거리였고, 아이는 어른곁에서 어깨너머로 지켜보면서 소꿉을 하며 삶을 배우고 살림을 느끼며 생각을 키우는 하루였습니다. 이제 웬만한 집마다 아침부터 아이어른이 갈라섭니다. 아이는 ‘학교’란 이름인 곳으로 가고, 어른인 ‘직장’이란 이름인 데로 가요. 아이어른은 저녁이나 밤이 되어서야 다시 만나는데, 이미 하루 내내 밖에서 뛰거나 움직이느라 지칩니다. 배울거리도 얘깃거리도 살림거리도 그냥그냥 혼자 속으로 품은 채 자리에 누워요. 《콧구멍만 바쁘다》는 못 쓴 글은 아니라고 느끼되, 이 글로 다루는 아이랑 어른은 느긋이 만나고 어울리면서 이야기할 짬이 하나도 없습니다. 깊고 넓게 하루를 들여다볼 틈이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자꾸 뭘(사건·사고) 벌이려 하고, 뭘 안 벌이면 재미없는 나날인 듯 여깁니다. 이러다 보니 얼굴만 보며 이쁜지 좋아하는지 같은 데에 얽매입니다. 나무를 나무로 못 봅니다. 얼음새(펭귄)를 겉모습만으로 놀리고 비아냥거리는 말장난에 갇힙니다. 개구리 같은 이웃숨결 한살림을 아주 모를 뿐 아니라, 알려 하지 않아요. 이미 아이어른 스스로 학교·직장에서 괴롭거든요. 괴로워 죽겠는 굴레를 그냥 나오면 되는데, 아무래도 “귀찮아서 죽겠다(18쪽)”는 마음 탓에 겉만 훑고 끝나는구나 싶어요.


ㅍㄹㄴ


애들이 자꾸만 간지럼 태운다. / 갑자기 인기 짱이다. / 귀찮아서 죽겠다. / 입 다물고 도망만 다닌다. / 콧물 들이마시랴 숨 쉬랴 / 콧구멍만 바쁘다. (바쁜 내 콧구멍/18쪽)


교실 청소할 땐 / 플라타너스 이파리도 / 예쁘게 보였는데, // 운동장 청소 당번 되니 / 단풍나무 이파리도 / 얄밉게 보인다. (운동장 청소/23쪽)


똥이 자꾸 마려워 / 되똥되똥 // 목부터 꽁지까지 / 하얀 기저귀 // 끌러지지도 않아 / 어기작어기작 (펭귄/55쪽)


손발톱 / 안 깎아도 / 혼나지 않으니까. // 겨울방학 / 내내 잠만 자도 / 칭찬 받으니까. // 사내 녀석이 / 툭하면 운다고 / 꾸중 듣지 않으니까. (개구리는 좋겠다/58쪽)


+


《콧구멍만 바쁘다》(이정록, 창비, 2009)


큰아버지 댁이 외국으로 이사 갔습니다

→ 큰아버지네가 먼나라로 갔습니다

→ 큰아버지는 이웃나라로 갔습니다

40쪽


멀미 걱정이 태산입니다

→ 멀미를 크게 걱정합니다

→ 멀미를 몹시 걱정합니다

40쪽


꼬추를 조준해서 아빠의 오줌 폭포를 맞혔다

→ 꼬추를 겨냥해서 아빠 오줌발을 맞힌다

→ 꼬추를 잡고서 아빠 오줌줄기를 맞힌다

4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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