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창비시선 458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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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4.12.

노래책시렁 544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최지은

 창비

 2021.5.25.



  모든 책은 늘 느긋이 읽으면 됩니다. 느긋이 읽기에 넉넉히 스밉니다. 느긋하지 않으니 겉을 훑다가 잊힙니다. 모든 하루는 느루 돌보면 됩니다. 느루 돌보기에 차분합니다. 느루 돌보지 않으니 겉을 꾸미다가 헤맵니다.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를 읽는 내내 우리집으로 늘 찾아오는 크고작은 뭇새를 떠올립니다. 저는 시골내기로 살아가느라 언제나 새와 나비와 풀벌레와 개구리와 뱀과 박쥐와 거미와 애벌레와 딱정벌레와 노린재를 이웃으로 맞이합니다. 팔랑이는 나비는 부전나비나 모시나비나 네발나비나 흰나비나 제비나비나 범나비일 수 있는데, 어느 갈래인 몸을 입든 모두 다른 날갯짓과 빛과 숨결입니다. 이따금 서울로 일하러 다녀올 적에는 너무나 물결치는 사람을 스치는데, 시골에서는 벌떼를 보더라도 ‘벌 1 벌 2 벌 3 ……’ 다 다르게 이름을 붙일 수 있지만, 서울에서 너울대는 사람바다라면 누가 누구인지 종잡지 못 하고 이름도 못 붙이겠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사람뿐 아니라 집도 쇠(자동차)도 너무 많고 막혀서 ‘이름’을 묻거나 들을 엄두를 못 내겠습니다. 서울에서 서울내기가 쓰는 글이란, 서울스럽게 멋을 부려야 하되 그저 똑같지는 않으려고 아주 힘들여야 하는 틀입니다. 서울옷을 벗고서, 서울티를 안 붙이면서, “서울에서 사는 나”가 아니라 “나로 살아가는 나”를 바라본다면, 노래는 그저 놀이하는 가락이 될 만하다고 봅니다.


ㅍㄹㄴ


미루고 미루는 잠. 먼저 잠드는 사람이 있고 잠이 들려 하는 사람이 있고. 잠들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온 사람이 있고. 한 사람은 깨어 있기로 한다. 어금니에 낀 딸기씨를 혀끝으로 건드리면서 잠은 어떻게 드는 거더라. 서로의 잠을 위해 잠자는 우리들. (우리들/14쪽)


깨어나는 망원동의 잠. 창밖엔 아직도 눈이 내리는데, 메니에르. 메니에르. 일어날 수가 없다. 이럴 때면 너는 저 금빛 물고기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하고. 물속으로 사라진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 뒤를 따라 물에서 잃어버린 너의 가까운 영혼들을 생각하고. 금빛 물고기 좁은 어항을 돈다. (메니에르의 숲/29쪽)


경대 앞에서 몰래 화장을 하고 머리를 땋고 자라는 내 몸을 때때로 혼자 훔쳐봤는데 그럴 때면 이상하게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곤 했다. 그날 이후로 내가 가는 곳마다 커다란 거울이 내 앞에 섰다. (영원/137쪽)


+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최지은, 창비, 2021)


가끔씩 새우가 튀어오르기도 하는 여름날의 투명한 꽃병

→ 가끔 새우가 튀어오르기도 하는 여름날 맑은 꽃담이

10


어머니의 이야기는 열을 내려줍니다

→ 어머니 이야기로 불이 식습니다

→ 어머니 이야기로 불을 재웁니다

11


이불을 덧대어 잠자리를 만든다

→ 이불을 덧대어 잠자리를 여민다

→ 이불을 덧대어 잠자리를 꾸린다

→ 이불을 덧대어 잠자리를 둔다

14


잠은 어떻게 드는 거였더라. 서로의 잠을 위해 잠자는 우리들

→ 어떻게 잠들더라. 서로서로 재우려고 잠자는 우리들

14


모든 것이 희미해집니다 무거워집니다 마침내 기록적인 폭설

→ 모두 흐립니다 무겁습니다 마침내 눈이 펑펑

→ 모두 뿌옇습니다 무겁습니다 마침내 눈보라

→ 모두 가물댑니다 무겁습니다 마침내 함박눈

22


때마침 알람이 울리고 부재중 전화를 확인합니다

→ 때마침 울리고 못받음말을 살핍니다

→ 때마침 찌르릉 울고 못받음을 봅니다

25


내 눈동자 안으로 미모사

→ 내 눈망울로 잠풀

→ 내 눈속으로 잠풀

38


나는 어지럼이 심해지고 간밤의 통화를 되짚으면서

→ 나는 더 어지럽고 간밤에 나눈 말을 되짚으면서

→ 나는 몹시 어지럽고 간밤 말을 되짚으면서

84


그녀들이 아껴 쉬는 숨소리

→ 할매들이 아껴 쉬는 소리

→ 할매들이 아끼는 숨소리

110


지금 책상 위 스노우볼 속에는

→ 오늘 책자리 눈꽃공에는

→ 이제 책자리 눈가루공에는

115


경대 앞에서 몰래 화장을 하고

→ 거울 앞에서 몰래 꽃꾸미고

→ 거울판 앞에서 몰래 꾸미고

137


나는 햇빛 속에 내려앉는 먼지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요

→ 나는 햇빛 사이로 내려앉는 먼지 같았어요

→ 나는 햇빛을 받으며 내려앉는 먼지였어요

140


무한의 깊이를 누리며

→ 가없는 깊이를 누리며

→ 끝없는 깊이를 누리며

140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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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리플라워 창비시선 503
이소연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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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4.12.

노래책시렁 542


《콜리플라워》

 이소연

 창비

 2024.6.5.



  바람도 해도 비도 별도 언제나 우리한테 빛다발을 베풉니다. 씨앗도 나무도 풀도 벌레도 늘 우리한테 꽃다발을 안깁니다. 우리 하루는 빛다발과 꽃다발을 누리면서 새삼스레 노래다발을 모두한테 돌려주면서 즐거이 일구는 삶길이지 싶습니다. 《콜리플라워》를 읽으며 ‘봄동’을 자꾸 떠올립니다. 먼나라 먼말인 ‘콜리플라워’일 텐데, 우리는 배추하고 닮은 먼남새를 한자 ‘양(洋)’을 붙여 ‘양배추’라고도 하지만, 우리로서는 ‘동배추(동글배추)’입니다. 배추는 으레 포기로 묶어서 누린다면, 새봄에 맞이하는 봄동은 바닥에 또아리를 틀듯 동그랗게 퍼집니다. 동그랗게 돌아보고 돕는 사이인 ‘동무’요, 도시락과 같은 그릇인 ‘동고리’가 있고, 동무하듯 돌며 나누는 ‘도르리·도리기’가 있습니다. 굵게 하나로 묶은 덩이를 ‘동’이라 합니다. 장다리꽃을 올리는 배추나 무는 꽃대(꽃줄기)를 따로 ‘동’이라 합니다. 윷놀이를 하며 말이 나아가는 길을 ‘동’이라 하고, 이것과 저것을 잇는 마디를 ‘동’이라 합니다. ‘동아리’ 같은 말도 나란히 얽힙니다. ‘동’이 어떻게 온곳에 스미는지 돌아본다면, 늦겨울부터 봄빛으로 돋는 반가운 빛을 제대로 품을 만합니다. 먼나라 먹물꾼은 ‘시(詩)’라 했지만, 이곳에서 수수한 살림지기는 노래를 꽃으로 맺어 ‘노래꽃’을 짓고 피우고 누리고 나눕니다. 그러니까 ‘콜리플라워’란 우리말로 풀면 ‘꽃동배추’입니다. 꽃과 동무하면서 서로 돌아보고 돕는 길을 거닐면, 누구나 즐겁게 돋아나는 봄빛을 노래로 마주합니다.


ㅍㄹㄴ


내가 발을 닦은 수건으로 / 남편이 얼굴을 닦는다 / 발을 닦은 수건이 얼굴을 닦은 수건보다 더러울 것 같진 않은데 / 발이 알면 억울할 일 / 말하지 않기로 한다 (우리 집 수건/11쪽)


결혼하기 전에는 천경자의 그림을 봤고 / 아이 달고 와서는 / 미술관 바깥의 매미와 잠자리 / 구슬아이스크림와 아이스아메리카노 / 슬리퍼와 나른한 오후를 봐 (관람/16쪽)


아버지는 죽은 할머니의 옷가지를 버렸다. 불 질러 버렸다. 마당 귀퉁이에서. 장롱에서 꺼내 온 스웨터. 할머니의 새옷. 가장 아끼던 피부. 오그라든다. 솟구친다. 연기가 넘친다. 독하다. 마스크도 없이 아버지는 할머니를 한번 더 태운다. (버렸다. 불 질러 버렸다/24쪽)


내가 사랑한 손들은 다 어디에 숨겼니? / 순수하고 맑은 손을 잡고 싶어 (경건한 그림자/79쪽)


+


《콜리플라워》(이소연, 창비, 2024)


수건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침의 얼굴이 있는가 저녁의 육체가 있는가

→ 수건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침 얼굴이 있는가 저녁 몸뚱이가 있는가

→ 수건에는 무엇이 깃드나 아침빛이 있는가 저녁몸이 있는가

10쪽


바짝 마른 평면을 접는 일에 애착이 생긴다

→ 바짝 마른 판을 접는 일에 마음이 간다

→ 바짝 마른 들을 접는 일이 사랑스럽다

10쪽


수생식물처럼 떠 있던 집이 부서진다

→ 물풀처럼 뜬 집이 부서진다

→ 물살이풀처럼 뜬 집이 부서진다

→ 말처럼 뜬 집이 부서진다

18쪽


부상으로 저희 출판사에서 나온

→ 곁으로 저희 펴냄터에서 나온

→ 덤으로 저희가 낸

→ 덧으로 저희가 낸

29쪽


치통이 오듯

→ 이앓이 오듯

39쪽


아이스링크가 잘 보인다

→ 얼음마루가 잘 보인다

→ 얼음판이 잘 보인다

41쪽


계속 보게 만들죠

→ 자꾸 볼밖에 없죠

→ 다시다시 보죠

→ 또다시 쳐다보죠

→ 끝없이 바라보죠

65쪽


世界 펭귄의 날

→ 푸른별 눈밭새날

→ 온누리 얼음새날

70쪽


작고 반듯한 머그컵

→ 작고 반듯한 머금이

→ 작고 반듯한 잎그릇

→ 작고 반듯한 둥그릇

→ 작고 반듯한 대접

74쪽


내가 사랑한 손들은 다 어디에 숨겼니? 순수하고 맑은 손을 잡고 싶어

→ 내가 사랑한 손은 다 어디에 숨겼니? 곱고 맑은 손을 잡고 싶어

→ 내가 사랑한 손은 다 어디에 숨겼니? 밝고 맑은 손을 잡고 싶어

79쪽


수취인은 쓰여 있지 않았다

→ 받는이는 쓰지 않았다

→ 받는곳은 쓰지 않았다

82쪽


원고는 밀려도 써지지 않고

→ 글월은 밀려도 못 쓰고

→ 글은 밀려도 쓰지 못하고

90쪽


불평을 갖는다는 게 지나치게 건강하다는 말 같다

→ 투덜거리니 지나치게 튼튼하다는 말 같다

→ 구시렁대니 지나치게 단단하다는 말 같다

→ 떼를 쓰면 지나치게 멀쩡하다는 말 같다

90쪽


오목은 사실 탱고 춤이야

→ 닷돌은 뭐 신바람춤이야

→ 다섯돌은 막상 신명춤이야

94쪽


그는 너무 쉽게 회개하네

→ 그는 너무 쉽게 고치네

→ 그는 너무 쉽게 바꾸네

→ 그는 너무 쉽게 뉘우치네

104쪽


실외기의 소음은 이렇게나 뜨겁고 풀벌레 울음은 점점 차가워지는

→ 밖바람이는 이렇게나 시끌시끌 뜨겁고 풀벌레 울음은 더 차갑고

→ 밖바람개비 소리는 이렇게나 뜨겁고 풀벌레 울음은 더욱 차갑고

→ 바람빼개는 이렇게나 듣그럽고 뜨겁고 풀벌레 울음은 훨씬 차고

109쪽


당신과 나는 여전히 냉전 중이다

→ 그대와 나는 아직 차갑다

→ 너와 나는 여태 쌀쌀하다

→ 너와 나는 그대로 겨울이다

11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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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슬로우 봄날의 시집
강성은 지음 / 봄날의책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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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4.6.

노래책시렁 541


《슬로우 슬로우》

 강성은

 봄날의책

 2025.8.29.



  시골은 마을에 아무 가게가 없습니다. 그저 작은집에 논밭과 멧자락이 있습니다. 냇물이 흐르거나 못물이 있고, 멧등성이나 들판을 따라서 숲이 우거지거나 뭇새가 날아들어요. 어느 집은 마당이 휑뎅그렁합니다. 어느 집은 둘레로 나무를 포근히 감쌉니다. 어느 집은 갖은 흙수레(농기구)를 거느리고 끝없이 부릉부릉 몹니다. 어느 집은 손연장만 다루면서 조용히 흙노래를 부릅니다. 《슬로우 슬로우》를 읽으며 ‘서울길’로 하루를 맞이하고 한 해가 흐르고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를 보낼 적에 어떤 마음으로 어떤 말을 골라서 만나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마을 곳곳에 빵집에 잎물집에 옷집에 튀김닭집에 큰가게에 작은가게에 온갖 가게가 줄이을 뿐 아니라 높다랗게 켜켜이 있다면, 언제나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고 받아들입니다. 새 한 마리 내려앉아서 쉴 데가 없으니 모두 싸게싸게 내달려야 하는 얼개입니다. 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뻗을라치면 첫봄이나 끝겨울마다 가지치기를 무시무시하게 하기에, 씨앗 한 톨이 드리워서 싹틀 틈이 없는 틀입니다. 비가 와도 하늘을 파랗게 씻는 모습을 마주할 짬이 없으면, 겨울에 싸목싸목 내리는 눈송이를 혀끝으로 받을 빈터가 없으면, 우리 노랫길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려나요.


ㅍㄹㄴ


말없는 창백한 사물들이 / 나를 알아볼 때까지 / 기다려야 한다 (낮잠/17쪽)


아무리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빵 / 동네마다 빵집이 많고 / 아름다운 빵들이 진열된 환한 상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 사람들이 한 바구니씩 빵을 담고 / 값을 지불한다 피 묻은 빵의 값 (피 묻은 빵/23쪽)


문 닫기 직전의 술집에서 / 우리는 나가기 싫어 미적거리고 있었다 / 폭설과 한파가 도시를 집어삼키는 밤 / 위스키병을 든 반팔 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 열이 많아서 겨울에도 늘 반팔 차림이라는 남자의 말에 / 주인장은 끄덕이며 웃었지 (과거가 없는 사람들/28쪽)


+


《슬로우 슬로우》(강성은, 봄날의책, 2025)


슬로우 슬로우 눈 내리는 소리

→ 천천히 천천히 눈 내리는 소리

→ 싸목싸목 눈 내리는 소리

→ 차근차근 눈 내리는 소리

→ 가만가만 눈 내리는 소리

5


잠의 문이 열리는 소리

→ 잠길이 열리는 소리

13


나는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의 기분

→ 나는 울음을 터트리려는 마음

→ 나는 곧 울음을 터트릴 마음

→ 나는 아직 울음을 안 터트린 마음

17


무인 도로 위에 식물들이 무인 책방에서 글자들이 움직이고 있다

→ 빈길에 풀꽃나무가 열린책집에서 글씨가 움직인다

→ 호젓한 길에 푸나무가 호젓책집에서 글씨가 움직인다

25


개의 유령이 멍멍 짖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도깨비개가 멍멍 짖는다 그래 나는 살아간다

→ 깨비개가 멍멍 짖는다 그러니 나는 숨쉰다

42


검은 옷이 많아져 나중엔 검은 옷만 입고 다니는구나 알게 되고

→ 검은 옷이 늘어 나중엔 검은 옷만 입고 다니는구나 알고

50


말년 운은 어디에선가 서성이며 지루하게 내가 늙기를 기다리거나

→ 끝날은 어디에서 서성이며 따분하게 늙기를 기다리거나

→ 늘그막은 어디서 서성이며 지겹게 늙기를 기다리거나

62


이웃의 누군가 우리집 마당 한 귀퉁이 바다로 이어지는 길을 이용해도 되겠냐고

→ 이웃 누가 우리집 마당 귀퉁이 바다로 잇는 길을 써도 되느냐고

→ 이웃이 우리집 마당 귀퉁이 바다로 잇는 길로 가도 되느냐고

69


매일 오후 사료와 물을 마당에 두었다

→ 낮이면 모이와 물을 마당에 둔다

→ 낮마다 먹이와 물을 마당에 둔다

80


모래 속에 잠겨 있던 아이 하나가 어둠 속에 잠겨 혼자 집으로

→ 모래에 잠긴 아이 하나가 어둡게 잠겨 혼자 집으로

→ 모래에 잠긴 아이 하나가 밤에 잠겨 혼자 집으로

8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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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런 말 안 써요 창비청소년시선 49
권창섭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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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3.28.

노래책시렁 538


《우리 그런 말 안 써요》

 권창섭

 창비교육

 2024.10.15.



  혼자 열스물 일을 다 하지 말라고 나무라는 큰아이입니다. 작은아이는 이렇게 나무라는 말을 딱히 안 합니다. 어쩌면 속으로 혼일을 하는 어버이를 나무랄 수 있습니다. 한집안을 이루어 함께 지내는 사이라서 늘 마주보고 말을 섞고 마음을 헤아립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자 삶이기에 오늘 이 보금자리에서 새롭게 만난다고 느껴요. 《우리 그런 말 안 써요》는 푸름이를 마주하는 푸른길잡이가 푸른배움터 한켠을 옮긴 노래꾸러미일 텐데, 그야말로 ‘한켠’인 모습입니다. 왼켠도 오른켠도 온켠도 아닌 한켠입니다. 서울푸름이하고 시골푸름이는 다릅니다. 서울(도시)도 ‘그냥 서울’과 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 같은 큰고장이 다르고, 강릉·순천·구미·전주·진주 같은 작은고장이 다릅니다. 시골도 모든 고을이 다르지요. 누구나 다르게 살아가기에 다르게 말하게 마련일 텐데, 어쩐지 갈수록 서울이건 시골이건 여러 큰고장이나 작은고장이건 어린이·푸름이·어른 말씨가 그냥 똑같아 보입니다. 사투리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다르게 짓는 보금자리와 살림”도 사라지거든요. 한때는 “똑같은 배움책”을 들여다보기에 틀에 박히는 푸른나날이었다면, 이제는 “똑같은 손소리”를 손에서 못 떼느라 판에 박히는 푸른굴레입니다. 부디 다 다른 집과 마을과 배움터에서 ‘푸른소리’가 다 달리 깨어나기를 빕니다. 푸른길잡이로 서는 이웃님은 ‘문학’이 아닌 ‘살림글’을 들려주기를 바라요.


ㅍㄹㄴ


들어올 때 뒷문 닫으랬지 / 사물함 문 잘 닫으라니까 / 핸드폰 집어넣으라 했을 텐데 / 지금이 화장 고칠 시간이니 / 벌써 같은 학교 삼 년째 다니면서 /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니 (3월/8쪽)


우리가 쓰는 말이라고 해 주시니 / 앞으로 잘 쓰겠습니다 /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사용하겠습니다 /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더 갈고닦겠습니다 / 후대에 잘 전승하겠습니다 (우리 그런 말 안 써요/48쪽)


+


《우리 그런 말 안 써요》(권창섭, 창비교육, 2024)


하나 둘 셋 하면 삼켜지는 오늘 점심 급식

→ 하나 둘 셋 하면 삼키는 오늘 낮밥

→ 하나 둘 셋 하면 넘기는 오늘 모둠밥

21쪽


1연에선 배경이 되는 정황을 제시하려 했다

→ 첫갈피에선 뒷자락을 풀어내려 했다

→ 첫갈래에선 바탕길을 펼쳐내려 했다

23쪽


네 말에서 흐느낌이 들린 것 같은데

→ 네 말은 흐느끼는 듯한데

→ 너는 흐느끼며 말한 듯한데

→ 넌 흐느낀 듯한데

33쪽


1등급까진 아니라도 꽤 쓸 만한 사회적인, 문화적인, 윤리적인 사람인 건 아닐까요

→ 첫눈까진 아니라도 꽤 쓸 만큼 너르고 멋스럽고 곧은 사람이진 않나요

→ 첫째까진 아니라도 꽤 쓸 만큼 트이고 빛나고 바른 사람이진 않나요

42쪽


앞으로 잘 쓰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사용하겠습니다

→ 앞으로 잘 쓰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힘껏 쓰겠습니다

→ 앞으로 잘 쓰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알뜰히 쓰겠습니다

48쪽


후대에 잘 전승하겠습니다

→ 뒤로 잘 물려주겠습니다

→ 뒷날 잘 이어주겠습니다

48쪽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 대해 오래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 돌아오지 않는 길을 오래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 왜 안 돌아오는지 오래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52쪽


나의 일을 너무 오래 내팽개치면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데

→ 내 일을 너무 내팽개치면 남일처럼 느끼는데

→ 내 일을 오래 내팽개치면 남일처럼 느끼는데

52쪽


그 문장을 오늘 기억의 증표로 삼는 거지

→ 이 글월로 오늘을 되새기지

→ 이 글을 오늘을 떠올릴 자국으로 삼지

66쪽


유명해지겠다고 했으니 아마 넌 꼭 그렇게 될 거야

→ 드날리겠다고 했으니 아마 넌 드날려

→ 이름을 높이겠다 했으니 넌 꼭 이름을 높여

75쪽


언어가 낭비이다 못해 사치네 사치

→ 말이 헤프다 못해 주제넘네 주제

→ 말을 막쓰다 못해 꼴값이네 꼴값

→ 말이 아깝다 못해 내버리네 버려

→ 말을 흘리다 못해 넘치네 넘쳐나

89쪽


근엄하게 물어보면 머뭇거리게 된다

→ 딱딱하게 물어보면 머뭇거린다

→ 무뚝뚝히 물어보면 머뭇거린다

15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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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푸른푸른 창비청소년시선 14
김선우 지음 / 창비교육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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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3.26.

노래책시렁 539


《댄스, 푸른푸른》

 김선우

 창비교육

 2018.5.30.



  읽고 듣고 새기고 눈여겨보고 말을 섞으면서 배우는 모든 어린이는 어른을 일깨우며 즐겁게 반짝이는 별님입니다. 익히고 들려주고 생각하고 들여다보고 말을 나누면서 살림길에 손을 뻗는 모든 푸름이는 어른을 가르치며 기쁘게 피어나는 들꽃입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멋글이나 맛글이 아닌 삶글과 살림말을 들려줄 노릇입니다. 우리가 어른스럽게 어린이와 푸름이한테서 배울 줄 안다면, 숲글과 사랑말을 속삭이면 됩니다. 《댄스, 푸른푸른》을 읽는 내내 “아는 나”라는 대목이 자꾸 보입니다. 그러나 “아는 나”라기보다는 “느껴 본 나”라고 해야 맞지 싶습니다. ‘생각’이라는 낱말도 자주 나오는데, 이 노래책에 나오는 ‘생각’은 거의 ‘여기다·보다·느끼다·싶다’를 가리킵니다. 샘물처럼 새롭게 샘솟으면서 별빛으로 반짝이는 씨앗이기에 ‘생각’인걸요. 글이건 말이건 우리가 짓거나 보내거나 지내거나 누리거나 겪는 삶을 담아내게 마련입니다. 어린노래이건 푸른노래이건 “어떻게 살아온 나날”을 왜 들려주려고 하는지 좀더 짚고 살필 일이라고 봅니다. 글멋이 아닌 글살림으로, 글맛이 아닌 “살림을 지으며 샘솟는 글”로 가다듬을 때라야 비로소 푸른노래이건 푸른너울이건 푸른꽃이건 춤짓으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ㅍㄹㄴ


이 빠진 마음을 아는 나는 / 말랑말랑 떡이랑 양갱이랑 홍시를 보면 / 할머니 생각이 제일 먼저 난다 (말랑말랑 할머니/19쪽)


― 수아야, 여기 아직 아프냐? / 내 턱에 밉게 난 흉터 / 가까이서 본 애들은 징그럽다고 하는데 / 영호는 아프지 않냐고 물었거든 (내 남친 영호/25쪽)


나는 우등생도 아니고 / 우리 집은 은지네처럼 잘살지도 않는데 / 나는 왠지 은지가 가엾어서 울고 싶다 / 은지를 우리 집에 데리고 가서 / 엄마 아빠가 차려 준 따뜻한 밥을 먹여 주고 싶다 (은지의 연필/47쪽)


+


《댄스, 푸른푸른》(김선우, 창비교육, 2018)


꺄아아아아아아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지

→ 꺄아아아아아아 우리는 소리지르지

→ 꺄아아아아아아 우리는 외치지

12쪽


바야흐로 나는 지금 생각의 봄이 싹트는 중이다

→ 나는 바야흐로 봄빛으로 생각이 싹튼다

→ 나는 막 생각이 싹트는 봄이다

→ 나는 이제 생각이 싹트는 봄이다

17쪽


앞니가 두 개 빠졌을 때

→ 앞니가 둘 빠졌을 때

19쪽


말랑말랑 떡이랑 양갱이랑 홍시를 보면 할머니 생각이 제일 먼저 난다

→ 말랑말랑 떡이랑 단묵이랑 붉감을 보면 할머니가 맨 먼저 떠오른다

19쪽


지금 나의 나무는 붉은 꽃 세 송이를 달고 있는데

→ 오늘 내 나무는 붉은꽃 세 송이를 다는데

→ 오늘 이 나무는 붉은꽃송이를 셋 다는데

34쪽


첫 장을 펼쳐요.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예요. 당신의 이름을 거기에 적어요

→ 첫 쪽을 펼쳐요. 아직 쓰지 않은 종이예요. 그대 이름을 적어요

→ 첫 자락을 펼쳐요. 흰종이예요. 이녁 이름을 적어요

37쪽


괜찮아. 어떤 경우에도 내가 나를 믿어 주는 한

→ 걱정 마. 내가 나를 믿으면

→ 멀쩡해. 내가 나를 믿는다면

→ 넉넉해. 내가 나를 믿으니

40쪽


하지만 나는 새들에게 내 식대로 인사할 수 있고

→ 그렇지만 나는 새한테 내맘대로 말할 수 있고

→ 그런데 나는 새한테 마음껏 말을 섞을 수 있고

48쪽


내게 남은 할머니의 목소리 중에 제일 오래된 것은 일테면 매우 문학적이었다

→ 내게 남은 가장 오랜 할머니 목소리는 일테면 매우 간드러진다

→ 내가 떠올리는 가장 오랜 할머니 목소리는 일테면 매우 곱다

52쪽


봄 이후 가장 많이 변한 건 우리 엄마다

→ 봄부터 가장 많이 바뀐 우리 엄마다

→ 봄 뒤로 가장 많이 바뀐 우리 엄마다

58쪽


정말 사랑한다는 거 늘 고맙게 생각한다는 거

→ 참말 사랑하고 늘 고맙게 여기고

→ 아주 사랑하고 늘 고맙고

94쪽


쓸쓸한 날의 쓸쓸한 기분은 살아 있는 게 뭔가 의미 있는 것 같은 특별한 느낌을 줘

→ 쓸쓸한 날 쓸쓸한 마음은 삶에 뜻이 있는 듯해 남달라

→ 쓸쓸한 날 쓸쓸한 빛은 살아가는 뜻을 다르게 느껴

10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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