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는 뭐래 창비시선 489
정끝별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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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5.8.

노래책시렁 549


《모래는 뭐래》

 정끝별

 창비

 2023.5.4.



  철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마흔 살부터는 스스로 ‘아저씨·아줌마’라는 이름을 받아들입니다. 아저씨나 아줌마는 나쁜말이 아닙니다. 철드는 숨빛을 품은 이름입니다. 철이 꽤 든다면, 예순 살부터는 ‘할아버지·할머니’라는 이름을 받아들이지요. 다만 아무나 할배·할매이지 않아요. ‘할-’은 ‘한-’을 가리키고, “하늘처럼 크고 너른”을 뜻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할아버지! 할머니!” 하고 부를 적에 비로소 ‘한사람(큰사람)’입니다. 《모래는 뭐래》를 여민 분은 ‘할머니’라는 이름을 받아들이려나요? “난 아직 젊어! 무슨?”이라고 여길까요? ‘시인·평론가·교수·작가’ 같은 이름을 받아들이는 분은 “아줌마 작가”나 “할머니 교수” 같은 이름을 안 반기는 듯합니다. 나라일꾼이어야 할 벼슬아치(국회의원)는 예순을 훌쩍 넘기고도 ‘오빠’이고 싶어하더군요. 철없습니다. ‘젊다·젊은이’란 ‘절다·절름발이’를 가리킵니다. 한창 불타오르느라 이리로 쏠리고 저리로 치닫기에 ‘젊다’고 해요. 아저씨·아줌마에 이르면 불타거나 치닫지 않고서 차분합니다. 할배·할매에 이르면 참하면서 착한 숨빛으로 어진 눈길을 베풀지요. 젊어 보이려는 글이 아닌, ‘아재·아지매’로서 차분히 가다듬는 글빛을 펼 때입니다. 또한 ‘할배·할매’로 참하게 피어나는 새꽃으로 나아갈 때에 비로소 노래할 수 있을 테고요.


ㅍㄹㄴ


모래는 어디서 추락했을까? / 모래는 무엇에 부서져 저리 닮았을까? / 모래는 말보다 별보다 많을까? / 모래도 제각각의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 모래는 어떻게 투명한 유리가 될까? / 모래는 우주의 인질일까? / 설마 모래가 너일까? (모래는 무래?/33쪽)


기다란 잠의 꼬리를 늘어뜨린 너는 말랑말랑한 반죽 덩어리, 부푸는 중이야! // 아침에 버터를 바른 기름진 털을 노릇노릇 구워내는 오전의 햇살은 쏜살처럼 바빠 // 어쩌다가의 츄르처럼 달콤한 꿈은 깊은 호둣속 여행, 길을 잃고 호두까기 인형들과 한바탕 소동 (뽀또라는 이름의/42쪽)


+


《모래는 뭐래》(정끝별, 창비, 2023)


누구랄 것도 없이 누구도는 누군가의 아무개와 접하고 아무랄 것도 없이 아무도는 아무개의 누군가에 속한다

→ 누구라기보다 누구도는 누구네 아무개와 만나고 아무라기보다 아무도는 아무개네 누구에 깃든다

→ 누구보다도 누구도는 누구네 아무개랑 만나고 아무보다도 아무도는 아무개네 누구한테 간다

20쪽


시선을 별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 눈길을 별이라 하던 때가 있다

→ 눈살을 별이라 하던 날이 있다

→ 눈매를 별이라 일컫기도 했다

→ 눈꽃을 별이라 이르기도 했다

22쪽


하지의 여름엔 짧게 동지의 겨울엔 길게 기울어진 별들의 시선이 밤비 혹은 밤눈처럼 쏟아진다

→ 긴낮 여름엔 짧게 긴밤 겨울엔 길게 기우는 별눈이 밤비나 밤눈처럼 쏟아진다

→ 짧밤 여름엔 짧게 깊밤 겨울엔 길게 기우는 별빛이 밤비나 밤눈처럼 쏟아진다

31쪽


모래도 제각각의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 모래도 따로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 모래마다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을까

→ 모래도 저마다 이름을 바라지 않을까

33쪽


누군가는 사랑이라 하고

→ 누구는 사랑이라 하고

40쪽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외곬의 믿음, 너를 향한 나의

→ 끝내 안될 수밖에 없는 외곬로 믿은, 너를 보는 나는

→ 끝내 끝날 수밖에 없는 외곬로 믿은, 너한테 나는

41쪽


오전의 햇살은 쏜살처럼 바빠

→ 아침햇살은 쏜살처럼 바빠

42쪽


무언가를 묻고 온 밤에는 꼭 계절을 묻게 된다

→ 무엇을 묻고 온 밤에는 꼭 철을 묻는다

→ 묻고 온 밤마다 철을 묻는다

44쪽


사막에서 물을 잃는 건 치명적인 일이다

→ 모래벌에서 물을 잃으면 죽는다

→ 모래밭에서 물을 잃으면 끔찍하다

→ 모래땅에서 물을 잃으면 골로 간다

46쪽


모과 낙과를 생각하며 모과나무 아래를 서성이다

→ 떨린 모과를 헤아리며 모과나무 곁을 서성이다

→ 미끄덩 모과를 살피며 모과나무 곁을 서성이다

68쪽


출생의 비밀처럼 자루 속 누런 콩들이 쏟아진다

→ 태어난 뒷길처럼 자루에서 누런 콩이 쏟아진다

→ 슥 태어나듯 자루에서 누런 콩이 쏟아진다

72쪽


개가하는 며느리 품에 보낸 손자마저 소문에 묻고

→ 떠나는 며느리 품에 보낸 아이마저 뜬말에 묻고

→ 나가는 며니르 품에 보낸 아이마저 바람에 묻고

96쪽


정교한 적요, 우직한 궁지에 몰린 염소의 소명으로 속도의 독소를 겨눈 감정이라는 장검

→ 꼼꼼히 고요, 고지식히 구석에 몰린 염소가 살듯 고약한 걸음을 겨눈 마음이라는 긴칼

→ 살뜰히 비는, 꼿꼿이 벼랑에 몰린 염소 길눈으로 궂은 발걸음을 겨눈 마음이라는 큰칼

118쪽


몇몇 시는 정말로 다른 네가 되게 하고 결국은 너를 너이게 한다

→ 몇몇 글은 참말로 다른 네로 가고 마침내 너를 너로 세운다

→ 몇몇 노래는 참으로 다른 너로 서고 끝내 너를 너로 깨운다

120쪽


하나의 심장과 하나의 시선과 하나의 목소리만으로

→ 하나인 가슴과 하나인 눈길과 하나인 목소리만으로

→ 하나인 고동과 눈빛과 목소리만으로

126쪽


날개 밖 풍파의 서사를 날갯짓의 리듬에 싣고 깃털까지 들썩이는 그 새에 대해

→ 날개 밖 구름밭 얘기를 날갯짓 가락에 싣고 깃털까지 들썩이는 새를

→ 날개 밖 된서리 수다를 날갯짓 물결에 싣고 깃털까지 들썩이는 새를

14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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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약제사 - 제11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동시집 90
박정완 지음, 현민경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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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5.6.

노래책시렁 548


《고양이 약제사》

 박정완 글

 현민경 그림

 문학동네

 2023.11.9.



  우리 살림살이란, 모두 손으로 빚고 짓고 일구고 가꿉니다. 그래서 어린이도 푸름이도 어른도 늘 손수 무엇을 해보고 나누고 누리며 베풀고 받고 함께하느냐에 따라서 언제나 이 하루가 다르구나 싶어요. 손길이 닿는 곳마다 언제나 새롭게 빛나겠지요. 《고양이 약제사》를 읽으며 고개를 내내 갸웃갸웃했습니다. 어린이가 읽을 노래를 으레 어른이 쓰는데, 자칫 ‘어른인 글꾼’이 어린날 겪거나 느낀 생채기나 응어리를 섣불리 드러내기 일쑤이더군요. 생채기나 응어리를 쓰기에 나쁘지 않아요. 다만, 아이는 넘어지면서 다시 일어납니다. 아이는 무릎이 깨지거나 찢어져도 다시 웃으면서 새살이 돋아 말끔히 낫습니다. 왜냐하면 ‘아픔’이 아니라 ‘놀이’를 바라보거든요. 우리가 어른으로서 노래꽃(동시)을 여밀 적에는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줄거리가 아닌, 구경하거나 팔짱끼는 몸짓이 아닌, 좋거나 싫다고 가르는 굴레가 아닌, 오늘 이 삶을 손수 어떻게 지으면서 스스로 즐거운지 밝힐 노릇입니다. “나의 정체를 증명”해야 하지 않습니다. 낱말부터 쉽게 바꿀 일이요, 마음을 가꿀 낱말을 찾아낼 일이에요. 작은언니가 콜라를 더 많이 마시려고 하면, 내 몫도 다 마시라고 내주는 마음을 그리기에 노래꽃입니다. 노래꽃은 시샘이 아니라 샘물입니다.


ㅍㄹㄴ


작은언니가 콜라를 자기 컵에 더 많이 따를 때, / 아버지가 삼계탕에서 골라낸 마늘을 도로 먹으라고 할 때, / 큰언니가 내 얼굴의 흉터를 도장이라고 놀릴 때, / 가짜 어머니가 내가 만든 종이 인형을 버릴 때, (눈물 나라의 여왕/26쪽)


사탕이랑 먼지 묻은 끈끈한 엄지로 / 흰건반을 두 번 눌러, 도도! // 못생긴 소리가 날 거야. // 뚱뚱한 칠면조를 닮았다지만 / 사실 난 거대한 비둘기에 가까워. (도도새/52쪽)


초록 도마뱀 껍질을 벗겨 / 너의 옷을 지었다 // 히말라야 흰 눈으로 / 너의 피를 만들었다 // 태양의 신부가 된 너는 / 노란 꽃 화관 쓰고 / 가녀린 덩굴손 흔들며 떠났다 // 아삭아삭, 너의 발자국 소리 (오이 1/74쪽)


+


《고양이 약제사》(박정완, 문학동네, 2023)


기타 등등은 나만의 비밀 처방이어서 말해 줄 수 없어

→ 이밖에는 내 길이라서 말할 수 없어

→ 그밖에는 나 혼자 알고 싶어서 말 못 해

4쪽


지독한 슬픔이 잊히고 아저씨의 빨간 네모가 덜 아름다웠을까요

→ 모진 슬픔을 잊고 아저씨네 빨간 네모가 덜 아름다울까요

→ 너무 슬픈데 잊고 아저씨네 빨간 네모가 덜 아름다울까요

16쪽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면 되는 거 아닐까요

→ 고양이한테 밥을 주면 되지 않을까요

→ 고양이한테 밥을 주면 되잖아요

21쪽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게 하는 것은 더 나쁘다

→ 지키지 못할 말을 시키니 참 나쁘다

→ 지키지 못하는데 시키니 무척 나쁘다

23쪽


나의 정체를 증명해 줄 것을 찾아봐야겠다

→ 내가 누구인지 밝혀 봐야겠다

→ 나를 밝힐 길을 찾아봐야겠다

→ 내 모습을 드러낼 길을 찾아야겠다

39쪽


검은 커트 머리의 여자가

→ 검은 깡똥머리 가시내가

→ 검은 몽당머리 아이가

→ 검은 귀밑머리 사람이

41쪽


할머니가 테라스를 쓸었다

→ 할머니가 곁마루를 쓴다

→ 할머니가 밖마루를 쓴다

62쪽


흰 눈으로 너의 피를 만들었다

→ 흰눈으로 네 피를 삼는다

→ 흰눈으로 네 피를 이룬다

74쪽


태양의 신부가 된 너는 노란 꽃 화관 쓰고

→ 해님 아이 된 너는 노란 꽃갓 쓰고

→ 해가시내 된 너는 노란족두리 쓰고

74쪽


나는 11월의 숲을 걸었다

→ 나는 늦가을숲을 걷는다

94쪽


쇠다리 시인에게 시는 무거운 날의 기쁨이 되었다

→ 쇠다리 노래지기는 노래로 무거운 날도 기쁘다

→ 쇠다리 노래꾼은 무거운 날도 노래하며 기쁘다

10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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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2
김춘수 지음 / 민음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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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4.29.

노래책시렁 545


《處容》

 김춘수

 민음사

 1974.9.25.



  바다가 있는 곳에서는 바다가 품고, 메가 있는 곳에서는 메가 풀고, 숲이 있는 곳에서는 숲이 속삭입니다. 그렇다면 서울은 품거나 풀거나 속삭이는 노릇 가운데 하나라도 하려나요? 서울은 못 품거나 안 풀거나 시끄럽기만 하지 않을까요? 《處容》을 1988해에 처음 읽고, 1991∼1993해에 거듭 읽은 뒤로는 다시 안 펼쳤습니다. 불늪(입시지옥)에서 허덕여야 할 무렵에는 들여다보았습니다. 서른 해 남짓 지나 문득 되읽자니, 우리나라 숱한 글이 김춘수를 흉내내거나 따라하는구나 싶습니다. 김춘수 글에 ‘꽃’이 나온다지만, 들꽃도 숲꽃도 멧꽃도 바다꽃도 아닌 ‘머리로 꾸며낸’ 모습일 텐데 싶습니다. 글이며 말이 발돋움하려면 글담(문단권력) 안쪽에 있는 사람을 우러르거나 섬기거나 받들거나 높일 노릇이 아닌, 저마다 제 삶을 그대로 들여다보면서 차근차근 풀고 품고 속삭이는 길을 갈 일이지 싶습니다. 한때 ㄱ 아무개가 있었다고 떠올리기는 하더라도, 이제는 ‘머리로 꾸며내는 글’이 아닌 ‘온몸으로 살아내고 온마음으로 사랑하는 하루를 고스란히 그리는 글’을 쓸 때라고 봅니다. 어느 노래님이 문득 외친 “껍데기는 가라” 같은 말마디마냥, 겉으로 꾸며내는 모든 글치레는 이제 흘려보내야지요.


ㅍㄹㄴ


소금쟁이 같은 것, 물장군 같은 것, / 거머리 같은 것, / 개밥 순채 물달개비 같은 것에도 / 저마다 하나씩 / 슬픈 이야기가 있다. (늪/30쪽)


꽃이슬에 젖은 / 새벽 길 위에 서서 / 그 많은 少女들은 아직도 / 기다리고 있을까 (昆蟲의 눈/36쪽)


바위는 몹시 심심하였다. 어느날, (그것은 偶然이었을까,) 바위는 제 손으로 제 몸에 가느다란 금을 한 가닥 그어 보았다. 오, 얼마나 몸저리는 一舜이었을까, (바위/57쪽)


바람은 / 냇가에 개나리를 피게 하지만, / 그리고 / 그 色身 고운 눈만 먹고 겨울을 살았다는 / 산발치의 붉은 열매, / 붉은 열매를 따먹는 산토끼의 눈에는 / 지금은 / 엷은 軟豆色의 하늘이 떨어져 있지만, (歸鄕/67쪽)


男子와 女子의 /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 밤에 보는 오갈피나무, / 오갈피나무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눈물/110쪽)


+


《處容》(김춘수, 민음사, 1974)


少年의 숨소리가

→ 아이 숨소리가

→ 머스마 숨소리가

28쪽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 부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맑은 목숨이 하나

→ 제발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말간 목숨이 하나

→ 그저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칠칠한 목숨 하나

→ 꼭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깨끗한 목숨이 하나

29쪽


새벽 길 위에 서서 그 많은 少女들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까

→ 새벽길에 그 많은 아이들은 아직도 기다릴까

→ 새벽길에 그 많은 가시내는 아직도 기다릴까

36쪽


碧空에 사과알 하나를 익게 하고 가장자리에 금빛 깃의 새들을 날린다

→ 파란하늘에 능금알 하나를 익히고 가장자리에 노란깃 새를 날린다

→ 하늘에 능금알 하나 익고 가장자리에 노란깃 새가 날아간다

37쪽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그 이름을 부를 때 그는 나한테 와서 꽃이 된다

→ 그대 이름을 부를 때 그대는 나한테 와서 꽃이다

→ 그이 이름을 부르니 그는 꽃으로 피어난다

→ 그대 이름을 부르자 그대는 꽃으로 핀다

40쪽


나의 追憶 위에는 꽃이여

→ 지난날에는 꽃이여

→ 어제에는 꽃이여

45쪽


이슬의 한 방울이 떨어진다

→ 이슬 한 방울이 떨어진다

→ 이슬방울이 떨어진다

→ 이슬이 한 방울 떨어진다

45쪽


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 이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 삶이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 숨결이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 빛이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 내가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48쪽


겨울하늘은 어떤 不可思議의 깊이에로 사라져 가고

→ 겨울하늘은 낯설게 깊이 사라져 가고

→ 겨울하늘은 들은 바 없이 깊이 사라져 가고

→ 겨울하늘은 믿기지 않게 깊이 사라져 가고

→ 겨울하늘은 수수께기처럼 깊이 사라져 가고

50쪽


無花果나무를 裸體로 서게 하였는데 그 銳敏한 가지 끝에

→ 속꽃나무를 앙상하게 세웠는데 곤두선 가지 끝에

50쪽


三冬에도 익던 抒情의 果實들은 이제는 없다

→ 한겨울에도 익던 구수한 과일은 이제 없다

→ 겨울에도 익던 따스한 열매는 이제 없다

64쪽


플라타너스에는 微風이 있고

→ 방울나무에는 산들바람 있고

→ 버즘나무에는 선들바람 있고

77쪽


사과나무의 阡의 사과알이 하늘로 깊숙이 떨어지고 있고

→ 능금나무 두렁에 능금알이 하늘로 깊이 떨어지고

→ 능금나무 두둑에 능금알이 하늘로 깊이 떨어지고

92쪽


石榴꽃이 滿發하고

→ 붉구슬꽃 가득하고

→ 붉은구슬꽃 넘치고

10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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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창비시선 458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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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4.12.

노래책시렁 544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최지은

 창비

 2021.5.25.



  모든 책은 늘 느긋이 읽으면 됩니다. 느긋이 읽기에 넉넉히 스밉니다. 느긋하지 않으니 겉을 훑다가 잊힙니다. 모든 하루는 느루 돌보면 됩니다. 느루 돌보기에 차분합니다. 느루 돌보지 않으니 겉을 꾸미다가 헤맵니다.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를 읽는 내내 우리집으로 늘 찾아오는 크고작은 뭇새를 떠올립니다. 저는 시골내기로 살아가느라 언제나 새와 나비와 풀벌레와 개구리와 뱀과 박쥐와 거미와 애벌레와 딱정벌레와 노린재를 이웃으로 맞이합니다. 팔랑이는 나비는 부전나비나 모시나비나 네발나비나 흰나비나 제비나비나 범나비일 수 있는데, 어느 갈래인 몸을 입든 모두 다른 날갯짓과 빛과 숨결입니다. 이따금 서울로 일하러 다녀올 적에는 너무나 물결치는 사람을 스치는데, 시골에서는 벌떼를 보더라도 ‘벌 1 벌 2 벌 3 ……’ 다 다르게 이름을 붙일 수 있지만, 서울에서 너울대는 사람바다라면 누가 누구인지 종잡지 못 하고 이름도 못 붙이겠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사람뿐 아니라 집도 쇠(자동차)도 너무 많고 막혀서 ‘이름’을 묻거나 들을 엄두를 못 내겠습니다. 서울에서 서울내기가 쓰는 글이란, 서울스럽게 멋을 부려야 하되 그저 똑같지는 않으려고 아주 힘들여야 하는 틀입니다. 서울옷을 벗고서, 서울티를 안 붙이면서, “서울에서 사는 나”가 아니라 “나로 살아가는 나”를 바라본다면, 노래는 그저 놀이하는 가락이 될 만하다고 봅니다.


ㅍㄹㄴ


미루고 미루는 잠. 먼저 잠드는 사람이 있고 잠이 들려 하는 사람이 있고. 잠들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온 사람이 있고. 한 사람은 깨어 있기로 한다. 어금니에 낀 딸기씨를 혀끝으로 건드리면서 잠은 어떻게 드는 거더라. 서로의 잠을 위해 잠자는 우리들. (우리들/14쪽)


깨어나는 망원동의 잠. 창밖엔 아직도 눈이 내리는데, 메니에르. 메니에르. 일어날 수가 없다. 이럴 때면 너는 저 금빛 물고기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하고. 물속으로 사라진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 뒤를 따라 물에서 잃어버린 너의 가까운 영혼들을 생각하고. 금빛 물고기 좁은 어항을 돈다. (메니에르의 숲/29쪽)


경대 앞에서 몰래 화장을 하고 머리를 땋고 자라는 내 몸을 때때로 혼자 훔쳐봤는데 그럴 때면 이상하게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곤 했다. 그날 이후로 내가 가는 곳마다 커다란 거울이 내 앞에 섰다. (영원/137쪽)


+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최지은, 창비, 2021)


가끔씩 새우가 튀어오르기도 하는 여름날의 투명한 꽃병

→ 가끔 새우가 튀어오르기도 하는 여름날 맑은 꽃담이

10


어머니의 이야기는 열을 내려줍니다

→ 어머니 이야기로 불이 식습니다

→ 어머니 이야기로 불을 재웁니다

11


이불을 덧대어 잠자리를 만든다

→ 이불을 덧대어 잠자리를 여민다

→ 이불을 덧대어 잠자리를 꾸린다

→ 이불을 덧대어 잠자리를 둔다

14


잠은 어떻게 드는 거였더라. 서로의 잠을 위해 잠자는 우리들

→ 어떻게 잠들더라. 서로서로 재우려고 잠자는 우리들

14


모든 것이 희미해집니다 무거워집니다 마침내 기록적인 폭설

→ 모두 흐립니다 무겁습니다 마침내 눈이 펑펑

→ 모두 뿌옇습니다 무겁습니다 마침내 눈보라

→ 모두 가물댑니다 무겁습니다 마침내 함박눈

22


때마침 알람이 울리고 부재중 전화를 확인합니다

→ 때마침 울리고 못받음말을 살핍니다

→ 때마침 찌르릉 울고 못받음을 봅니다

25


내 눈동자 안으로 미모사

→ 내 눈망울로 잠풀

→ 내 눈속으로 잠풀

38


나는 어지럼이 심해지고 간밤의 통화를 되짚으면서

→ 나는 더 어지럽고 간밤에 나눈 말을 되짚으면서

→ 나는 몹시 어지럽고 간밤 말을 되짚으면서

84


그녀들이 아껴 쉬는 숨소리

→ 할매들이 아껴 쉬는 소리

→ 할매들이 아끼는 숨소리

110


지금 책상 위 스노우볼 속에는

→ 오늘 책자리 눈꽃공에는

→ 이제 책자리 눈가루공에는

115


경대 앞에서 몰래 화장을 하고

→ 거울 앞에서 몰래 꽃꾸미고

→ 거울판 앞에서 몰래 꾸미고

137


나는 햇빛 속에 내려앉는 먼지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요

→ 나는 햇빛 사이로 내려앉는 먼지 같았어요

→ 나는 햇빛을 받으며 내려앉는 먼지였어요

140


무한의 깊이를 누리며

→ 가없는 깊이를 누리며

→ 끝없는 깊이를 누리며

140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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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리플라워 창비시선 503
이소연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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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4.12.

노래책시렁 542


《콜리플라워》

 이소연

 창비

 2024.6.5.



  바람도 해도 비도 별도 언제나 우리한테 빛다발을 베풉니다. 씨앗도 나무도 풀도 벌레도 늘 우리한테 꽃다발을 안깁니다. 우리 하루는 빛다발과 꽃다발을 누리면서 새삼스레 노래다발을 모두한테 돌려주면서 즐거이 일구는 삶길이지 싶습니다. 《콜리플라워》를 읽으며 ‘봄동’을 자꾸 떠올립니다. 먼나라 먼말인 ‘콜리플라워’일 텐데, 우리는 배추하고 닮은 먼남새를 한자 ‘양(洋)’을 붙여 ‘양배추’라고도 하지만, 우리로서는 ‘동배추(동글배추)’입니다. 배추는 으레 포기로 묶어서 누린다면, 새봄에 맞이하는 봄동은 바닥에 또아리를 틀듯 동그랗게 퍼집니다. 동그랗게 돌아보고 돕는 사이인 ‘동무’요, 도시락과 같은 그릇인 ‘동고리’가 있고, 동무하듯 돌며 나누는 ‘도르리·도리기’가 있습니다. 굵게 하나로 묶은 덩이를 ‘동’이라 합니다. 장다리꽃을 올리는 배추나 무는 꽃대(꽃줄기)를 따로 ‘동’이라 합니다. 윷놀이를 하며 말이 나아가는 길을 ‘동’이라 하고, 이것과 저것을 잇는 마디를 ‘동’이라 합니다. ‘동아리’ 같은 말도 나란히 얽힙니다. ‘동’이 어떻게 온곳에 스미는지 돌아본다면, 늦겨울부터 봄빛으로 돋는 반가운 빛을 제대로 품을 만합니다. 먼나라 먹물꾼은 ‘시(詩)’라 했지만, 이곳에서 수수한 살림지기는 노래를 꽃으로 맺어 ‘노래꽃’을 짓고 피우고 누리고 나눕니다. 그러니까 ‘콜리플라워’란 우리말로 풀면 ‘꽃동배추’입니다. 꽃과 동무하면서 서로 돌아보고 돕는 길을 거닐면, 누구나 즐겁게 돋아나는 봄빛을 노래로 마주합니다.


ㅍㄹㄴ


내가 발을 닦은 수건으로 / 남편이 얼굴을 닦는다 / 발을 닦은 수건이 얼굴을 닦은 수건보다 더러울 것 같진 않은데 / 발이 알면 억울할 일 / 말하지 않기로 한다 (우리 집 수건/11쪽)


결혼하기 전에는 천경자의 그림을 봤고 / 아이 달고 와서는 / 미술관 바깥의 매미와 잠자리 / 구슬아이스크림와 아이스아메리카노 / 슬리퍼와 나른한 오후를 봐 (관람/16쪽)


아버지는 죽은 할머니의 옷가지를 버렸다. 불 질러 버렸다. 마당 귀퉁이에서. 장롱에서 꺼내 온 스웨터. 할머니의 새옷. 가장 아끼던 피부. 오그라든다. 솟구친다. 연기가 넘친다. 독하다. 마스크도 없이 아버지는 할머니를 한번 더 태운다. (버렸다. 불 질러 버렸다/24쪽)


내가 사랑한 손들은 다 어디에 숨겼니? / 순수하고 맑은 손을 잡고 싶어 (경건한 그림자/79쪽)


+


《콜리플라워》(이소연, 창비, 2024)


수건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침의 얼굴이 있는가 저녁의 육체가 있는가

→ 수건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침 얼굴이 있는가 저녁 몸뚱이가 있는가

→ 수건에는 무엇이 깃드나 아침빛이 있는가 저녁몸이 있는가

10쪽


바짝 마른 평면을 접는 일에 애착이 생긴다

→ 바짝 마른 판을 접는 일에 마음이 간다

→ 바짝 마른 들을 접는 일이 사랑스럽다

10쪽


수생식물처럼 떠 있던 집이 부서진다

→ 물풀처럼 뜬 집이 부서진다

→ 물살이풀처럼 뜬 집이 부서진다

→ 말처럼 뜬 집이 부서진다

18쪽


부상으로 저희 출판사에서 나온

→ 곁으로 저희 펴냄터에서 나온

→ 덤으로 저희가 낸

→ 덧으로 저희가 낸

29쪽


치통이 오듯

→ 이앓이 오듯

39쪽


아이스링크가 잘 보인다

→ 얼음마루가 잘 보인다

→ 얼음판이 잘 보인다

41쪽


계속 보게 만들죠

→ 자꾸 볼밖에 없죠

→ 다시다시 보죠

→ 또다시 쳐다보죠

→ 끝없이 바라보죠

65쪽


世界 펭귄의 날

→ 푸른별 눈밭새날

→ 온누리 얼음새날

70쪽


작고 반듯한 머그컵

→ 작고 반듯한 머금이

→ 작고 반듯한 잎그릇

→ 작고 반듯한 둥그릇

→ 작고 반듯한 대접

74쪽


내가 사랑한 손들은 다 어디에 숨겼니? 순수하고 맑은 손을 잡고 싶어

→ 내가 사랑한 손은 다 어디에 숨겼니? 곱고 맑은 손을 잡고 싶어

→ 내가 사랑한 손은 다 어디에 숨겼니? 밝고 맑은 손을 잡고 싶어

79쪽


수취인은 쓰여 있지 않았다

→ 받는이는 쓰지 않았다

→ 받는곳은 쓰지 않았다

82쪽


원고는 밀려도 써지지 않고

→ 글월은 밀려도 못 쓰고

→ 글은 밀려도 쓰지 못하고

90쪽


불평을 갖는다는 게 지나치게 건강하다는 말 같다

→ 투덜거리니 지나치게 튼튼하다는 말 같다

→ 구시렁대니 지나치게 단단하다는 말 같다

→ 떼를 쓰면 지나치게 멀쩡하다는 말 같다

90쪽


오목은 사실 탱고 춤이야

→ 닷돌은 뭐 신바람춤이야

→ 다섯돌은 막상 신명춤이야

94쪽


그는 너무 쉽게 회개하네

→ 그는 너무 쉽게 고치네

→ 그는 너무 쉽게 바꾸네

→ 그는 너무 쉽게 뉘우치네

104쪽


실외기의 소음은 이렇게나 뜨겁고 풀벌레 울음은 점점 차가워지는

→ 밖바람이는 이렇게나 시끌시끌 뜨겁고 풀벌레 울음은 더 차갑고

→ 밖바람개비 소리는 이렇게나 뜨겁고 풀벌레 울음은 더욱 차갑고

→ 바람빼개는 이렇게나 듣그럽고 뜨겁고 풀벌레 울음은 훨씬 차고

109쪽


당신과 나는 여전히 냉전 중이다

→ 그대와 나는 아직 차갑다

→ 너와 나는 여태 쌀쌀하다

→ 너와 나는 그대로 겨울이다

11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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