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노란 웃음을 짜 주세요 - 제7회 권태응문학상 수상작 문학동네 동시집 87
임수현 지음, 윤정미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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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6.2.

노래책시렁 498


《오늘은 노란 웃음을 짜 주세요》

 임수현 글

 윤정미 그림

 문학동네

 2023.1.31.



  말과 글은 다를 수 없습니다. 말과 글이 다르면 거짓말이거나 눈속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생각할 노릇입니다. 왜 말과 글은 다를 수 없을까요? 글이란, 말을 담아낸 그림이니, 말을 그대로 담아요. 말이란, 마음을 담아낸 소리이니, 마음을 그대로 얹어요. 마음이 말을 거쳐서 글로 나타나니, 말과 글이 다르다면 “마음과 다르게 글만 꾸미거나 부풀리거나 감추거나 덧씌운다”는 뜻입니다. 이때에 더 살필 노릇인데, 우리는 말과 글을 다르게 하는 사람을 알아볼 눈빛인가요? 우리는 말과 글이 다른 사람을 못 알아차리는 눈길인가요? 《오늘은 노란 웃음을 짜 주세요》를 읽었습니다. 어린이한테 들려주거나, 어린이하고 나누거나, 어린이부터 읽을 글이라고 한다면, 예쁘게 꾸밀 글이 아니라, 어린이 누구나 저마다 마음에 심을 씨앗(글씨앗)일 노릇이라고 봅니다. 어떤 틀(동시작법)에 따라야 할 일이 없습니다. 어린이는 틀에 맞추어 자라지 않아요. 어린이는 틀에 따라서 커야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곁에서 여러 어른이 ‘길동무’이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거나 저렇게 해야 한다고 이끄는 ‘길잡이’가 아니라, 어린이가 이렇게 놀거나 저렇게 노래하거나 즐겁게 사랑일 수 있는 길을 나란히 짚으면서 천천히 함께 걸어갈 사람이어야 비로소 어른이라고 봅니다. 말이란 늘 마음입니다. 어떤 마음이든 어떤 말에든 담을 수 있습니다만, 손수짓기라는 살림꽃을 말과 글에 담아내기를 바라요.


ㅍㄹㄴ


넌 참 좋겠다 / 문제집 같은 건 안 풀어도 되니까 / 고양이는 아홉 번 다시 태어난다던데 / 오구야 / 지금 넌 몇 번째니? (지금 넌 몇 번째니?/18쪽)


할머니 눈이 동그래졌어 / 신이 난 나는 더 더 더 / 몸을 배배 꼬며 / 머리를 앞뒤로 왔다 갔다 / 춤을 추고 또 췄어 // 그러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칭칭 감았어 (단풍놀이/48쪽)


아이는 / 모래톱 위에 벗어 둔 / 신발 한 짝 누가 가져가 / 울고 있어요 // 이거 네 거니? / 파도는 조가비 슬리퍼를 내밀어요 (파도 신발 찾기/52쪽)


어디선가 들려오는 / 희고 작은 목소리 // 저기 눈먼 할머니가 / 장독 위 소복 쌓인 눈을 / 두 손 가득 담아 / 고봉밥으로 내놓았어요 (하얀 목소리/59쪽)


+


《오늘은 노란 웃음을 짜 주세요》(임수현, 문학동네, 2023)


툭― 전나무 가지 위에서 눈덩이 떨어지는 소리

→ 툭! 전나무 가지에 눈덩이 떨어지는 소리

58쪽


고봉밥으로 내놓았어요

→ 듬뿍밥으로 내놓아요

→ 담뿍밥으로 내놓아요

→ 수북밥으로 내놓아요

→ 푸짐밥으로 내놓아요

59쪽


순한 양을 만든 거야?

→ 몽실염소로 바꿨어?

→ 털염소로 거듭났어?

7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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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딩 아빠다 창비청소년시선 11
정덕재 지음 / 창비교육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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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5.17.

노래책시렁 497


《나는 고딩 아빠다》

 정덕재

 창비교육

 2018.3.5.



  저는 빨리 말하지 못 합니다. 여느 사람하고 대면 꽤 느려서 저더러 충청사람이냐고 묻는 분이 많아요. 그런데 누구나 말을 할 뿐이요, 빠르거나 느리다고 재야 하지 않고, 빠르건 느리건 저마다 다르게 말빛을 펴며 만날 뿐입니다. 어느 분은 저더러 “듣는 사람을 헤아려서 천천히 말씀하나요?” 하고 물어요. 곰곰이 짚자니 이 말씀도 맞겠구나 싶어요. 저는 말더듬이에 혀짤배기라는 몸을 타고난 터라, 조금만 빨리 말하려고 하면 혀가 꼬이거나 쉽게 더듬습니다. 더듬지 않거나 혀가 안 꼬이려면 느릿느릿 말해야 하는데, 느릿말을 하노라니 “둘레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할 적에 언제까지나 기다리는 매무새”가 몸에 배더군요. 《나는 고딩 아빠다》를 읽으며 내내 아쉬웠습니다. 아버지라면 그저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초딩이나 중딩이나 고딩이나 대딩 아버지가 아닌 “그저 아버지”요, “아이곁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어버이”라는 이름이면 넉넉합니다. 아버지로서 아이한테 들려줄 말은 늘 하나예요. 사랑입니다. 아버지로서 살아갈 길은 으레 하나예요. 사랑입니다. 그러나 글님은 자꾸 술 얘기에 ‘네 나이쯤 난 이미 살아 봤으니 알지’ 같은 핀잔이 잇습니다. 아이가 이제부터 살아갈 ‘어진 앞길’을 노래할 수 있는 아버지이기를 빕니다.


ㅍㄹㄴ


술에 취해 비가 내린 날 / 걸어오는지 / 집을 떠나는지 / 낯익은 청년의 그림자가 / 내 앞에서 어른거린다 (비가 온다/21쪽)


이제는 손가락에 침을 바르기 전에 / 돋보기를 먼저 찾아야 할 나이 / 책벌레같이 굴러다니는 / 작은 글자들을 만지작거리면 / 옛날 교실 풍경이 아른거린다 (수업 시간에 소설책 읽기/29쪽)


소주를 얼마나 마시면 취하냐는 / 질문에 / 답을 하지 못했다 (채우니 비우더라/86쪽)


+


《나는 고딩 아빠다》(정덕재, 창비교육, 2018)


세상을 만나는 관계의 시작이 손이다

→ 우리는 손으로 처음 만난다

→ 우리는 서로 손부터 만난다

10쪽


고통의 상처를 남길 때

→ 괴롭게 생채기 남길 때

→ 아픈 자국을 남길 때

11쪽


닳아진 구두

→ 닳은 구두

13쪽


건너편 점멸의 신호는 사춘기를 비춘

→ 건너 깜빡불은 꽃나이를 비춘

→ 건너에서 깜빡이며 꽃날을 비춘

14쪽


반성과 회한의 석고대죄는 아닐지라도

→ 뉘우치고 울며 빌지는 않더라도

→ 돌아보고 아리며 엎드리지 않더라도

18쪽


아들이 폭탄선언을 한 것은

→ 아들이 외친 때는

→ 아들이 소리친 날은

→ 아들이 밝힌 때는

22쪽


1등급 한우만 취급해

→ 으뜸 한소만 다뤄

→ 첫째 누렁소만 팔아

30쪽


참으로 요원한 일이다

→ 참으로 까마득하다

→ 참으로 감감하다

→ 참으로 먼 일이다

35쪽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결정장애다

→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린다

→ 사이에서 망설인다

→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38쪽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혜련 양에게라고 적었다

→ 쓰고 지우기를 하다가 마침내 혜련 씨한테라고 적는다

42쪽


단발머리에 약간의 볼 화장을 한 듯 홍조가 예쁜 아이였다

→ 귀밑머리에 볼을 살짝 바른 듯 발갛게 예쁜 아이였다 

→ 몽당머리에 볼을 가볍게 바른 듯 발그레 예쁜 아이였다

44쪽


소주를 얼마나 마시면 취하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 불술을 얼마나 마시면 거나하냐 묻는데 말을 하지 못했다

→ 불술을 얼마나 마시면 곤드레냐 묻는데 대꾸를 못했다

86쪽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 파란 하늘을 뒤로

100쪽


들은 복수의 뜻을 나타내는 접미사다

→ 들은 겹을 나타내는 끝가지다

→ 들은 겹겹을 뜻하는 뒷가지다

102쪽


가불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 자주 당겨쓴다

→ 자꾸 먼저 받는다

10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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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일요일 문학의전당 시인선 361
이유선 지음 / 문학의전당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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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5.3.

노래책시렁 494


《그래도 일요일》

 이유선

 문학의전당

 2023.5.31.



  누구나 말을 합니다. 더더리인 사람이 있고, 재주꾼인 사람이 있습니다. 한 마디를 읊어도 혀가 꼬이는 사람이 있고, 온 마디를 풀어도 술술 흐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목소리로 다 다른 삶을 들려주고 듣습니다. 이때에 한 가지를 헤아릴 만합니다. 우리는 누가 듣기를 바라면서 말을 하나요? 우리는 누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나요? 《그래도 일요일》을 읽었습니다. 혼잣말 같기도 하지만, 사람들 곁에서 들려주고 싶은 말 같기도 합니다. 어디에 서서 읊거나 외거나 들려주는 말인지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요즈음 흐르는 숱한 글은 ‘듣는 귀’인 이웃과 너를 그리 안 헤아리더군요. ‘말하는 입’인 숨빛과 나를 그다지 안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메마르다거나 외톨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만, ‘시’나 ‘문학’이 아니라, “서로 나눌 말”이라고 여긴다면, 낱말 하나를 어떻게 골라서 어떤 실로 엮고 여미어 옷으로 지을 적에 서로 ‘이야기’로 피어날 만한지 알아보게 마련입니다. 풋감이 지붕에 떨어질 적에 내는 소리는 ‘풋감소리’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낮을 누리고 저녁을 맞이한 뒤에 밤에 잠드는 길이란 우리가 다 다르게 보내는 삶입니다. 그저 삶을 적으면 모두 노래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ㅍㄹㄴ


서럽지도 않게 왔다가 / 서럽지도 않게 떠나가기에 바쁜 / 우리는 풀꽃이다 //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뜯어 / 점심으로 먹고 싶은 일요일 / 오후의 귓불 느닷없이 아카시 향기에 닿았다 (어린 기억들/26쪽)


비탈길 폐지 싣고 오르는 할머니에게 / 전봇대 위에서 기다리던 비둘기 / 물똥을 쌌다 // 흥건한 이마의 땀을 닦는 할머니 / 일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 눈길 마주친 / 전봇대 위의 비둘기 / 꽃 한 송이 더 필요한가요? (낮달/68쪽)


+


《그래도 일요일》(이유선, 문학의전당, 2023)


허무주의자도, 무골호인도, 외톨박이도, 불한당도, 한량도

→ 넋빈이도, 뭉술이도, 외톨박이도, 각다귀도, 노는이도

→ 멀뚱이도, 느물이도, 외톨박이도, 날라리도, 빈둥이도

13쪽


바람 부는 날 잎들은 비워졌고

→ 바람 부는 날 잎을 비우고

14쪽


과육의 살갗은 더 이상 부풀어 오를

→ 살점도 살갗도 더는 부풀어 오를

→ 열매살은 더 부풀어 오를

14쪽


나날의 고통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 괴로운 나날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 나날이 고달파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15쪽


바퀴와 노면 사이에

→ 바퀴와 바닥 사이에

24쪽


용서와 배려라는 너의 말은 그만

→ 봐주고 살피라는 네 말은 그만

→ 눈감고 보라는 네 말은 그만

31쪽


결국엔 일족인 바람이 데리러 오겠지만

→ 끝내 한집안 바람이 데리러 오겠지만

→ 뭐 집에서 바람이 데리러 오겠지만

61쪽


나는 형용사를 버렸다

→ 나는 그림씨를 버렸다

62쪽


전봇대 위의 비둘기 꽃 한 송이 더 필요한가요

→ 빛줄대 앉은 비둘기 꽃 송이 더 바라는가요

68쪽


물의 보법을 본다

→ 물살을 본다

→ 물씨 걸음새 본다

72쪽


나그네로 머물게 하는 수상가옥이 된다

→ 나그네로 머물 물살림집이 된다

→ 나그네로 머무를 물살이집이 된다

73쪽


매 순간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수변 물빛은

→ 늘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둔덕 물빛은

→ 노상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냇가 물빛은

→ 언제나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기슭 물빛은

89쪽


직립의 시간에 눌려

→ 바로설 때에 눌려

→ 곧설 틈에 눌려

→ 곧게펼 짬에 눌려

9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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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
김륭 지음, 설찌 설지혜 그림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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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4.30.

노래책시렁 496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

 김륭

 창비

 2018.9.7.



  예부터 ‘어른’이라는 이름을 얻을 적에는 아무 말이나 내뱉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난 어른이 아닌걸?” 하고 둘러대고 아무 말이나 뱉으면서 마구 할퀴는 사람이 잔뜩 있습니다. 나이만 먹기에 어른이 아니기도 하지만, “난 어른이 아냐. 난 못난이야.”라든지 “난 어른이 못 돼. 난 못난 사람이야.” 하고 내세우면서 막말을 일삼거나 이웃을 할퀴는 사람이 자꾸 나타납니다.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은 ‘스스로 어른이 아니라고 여기는 분’이 마치 아이들한테 ‘너희도 나처럼 어른이 안 되어도 돼!’ 하고 외치는 듯한 꾸러미입니다. 참으로 너무합니다. 글쓴이가 스스로 ‘어른이 아니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앞으로 ‘어른이 안 되어도 된다’고 이런 글을 내놓아도 되는지요? 스스로 어른이 아닌 줄 안다면, 창피해서라도 글을 안 쓸 노릇이지 싶고, 더더구나 어른이한테 들려줄 글은 안 쓸 일이라고 봅니다. 막말(욕)이란 ‘스스로 더럽힌 마음으로 남도 더럽히고 싶어하는 끔찍한 덫’입니다. 막말을 아무리 한들 후련하거나 개운할 수 없습니다. 막말을 할수록 마음을 스스로 옥죄고 할퀴고 괴롭힐 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나이만 먹는 사람’으로는 안 갈 노릇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살림을 짓고 집안일을 기쁘게 맡으면서 어깨동무라는 사랑을 새롭게 배워서 나눌 사람’으로 나아갈 일입니다. 제발 철부터 들고서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ㅍㄹㄴ


뭐가 나올지 모르고 / 땅을 파헤치는 두더지처럼 / 나는 그 애 마음속에 / 굴을 팠지 내 마음대로 / 다닐 수 있는 길을 내느라 /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지 // 그 애가 누구냐고? / 학교 운동장을 다 파헤쳐 봐라 / 그 애 그림자라도 나오나 / 하지만 열심히 파다 보면 / 세상 모든 두더지를 / 만날 수는 있을 거야 (모든 첫사랑은 두더지와 함께/13쪽)


안경 쓴 나무늘보 같은 / 우리 선생님 손에 잡히는 여자는 / 여자가 아니겠지 // 1학년이겠지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학년 2/22쪽)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집 식탁으로 초대하면 / 달은 잔칫상 위의 돼지머리, 네 다리 떼어 주고 / 하물며 몸통까지 우리에게 다 주고도 (달과 돼지/30쪽)


시골 외할머니 집에 누워 있는데 / 감나무가 아직 익지도 않은 / 감을 자꾸 던진다 // 감보다 큰 혹이 머리에 / 생기는 것 같아 자꾸 손이 간다 / 기분이 나쁘다 // 감나무도 화나는 일이 있을 거라고 /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참지만 / 좀 심하다 // 교감 선생님처럼 떠억 개폼을 잡고서는 / 던지는 땡감이 무슨 질문 같다 / 개똥 같다 (땡감/54쪽)


욕을 하고 싶은 날이 있지.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 죽을 것 같은 그런 날이 있지. 착한 아이는 욕을 해선 안 된다고 하지만 착하다고 소문난 문방구 아저씨도 욕을 하는 날이 있지. 껌처럼 질겅질겅 씹다가 홱 뱉어 버리고 싶은 날이 있지. 그런 날은 욕을 사러 가지. 욕은 생일 선물을 고르듯 신중하게 골라야 해. 어떤 욕이 좋을까? 어떤 욕을 골라야 걔 기분이 더 나쁠까? 욕을 잘 고를수록 나는 기분이 좋아지지. 나는 혀 위에 욕을 올려놓고 생각하지. (초콜릿/104쪽)


+


가끔씩 하늘에서 내려온다

→ 가끔 하늘에서 내려온다

23


거미줄을 타고 공중을 내려오듯

→ 거미줄을 타고 내려오듯

23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집 식탁으로 초대하면

→ 우리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 밥자리로 부르면

→ 우리 마을 가장 가난한 집으로 모시면

30


달은 잔칫상 위의 돼지머리, 네 다리 떼어 주고

→ 달은 잔칫자리 돼지머리, 네 다리 떼어 주고

30


집에 누워 있는데

→ 집에서 눕는데

54


혹이 머리에 생기는 것 같아 자꾸 손이 간다. 기분이 나쁘다

→ 혹이 나는 듯해 자꾸 손이 간다. 싫다

54


감나무도 화나는 일이 있을 거라고

→ 감나무도 싫은 일이 있다고

→ 감나무도 들끓는 일이 있다고

→ 감나무보 발끈할 일이 있다고

54


교감 선생님처럼 떠억 개폼을 잡고서는

→ 버금어른처럼 떠억 멋을 부리고서

→ 꼰대처럼 떠억 잘난 척하고서

54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 죽을 것 같은 그런 날이 있지

→ 마구 뱉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한 날이 있지

→ 까대지 않으면 죽을 듯한 날이 있지

104


욕은 생일 선물을 고르듯 신중하게 골라야 해

→ 막말은 곱게 차분히 골라야 해

→ 꾸지람은 곱게 찬찬히 골라야 해

104


어떤 욕을 골라야 걔 기분이 더 나쁠까

→ 어떻게 할퀴어야 걔가 더 싫어할까

→ 어떻게 깎아내려야 걔가 더 아플까

104


욕을 잘 고를수록 나는 기분이 좋아지지

→ 나는 거칠게 말할수록 즐겁지

→ 나는 마구마구 뱉을수록 신나지

104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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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데서 시간이 더 천천히 몰개시선 4
황화섭 지음 / 몰개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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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시집을 읽고서

별꽃을 다섯 모두 붙인 지 언제였는지

떠오르지조차 않는다.

얼마만에 별꽃을 다섯 붙이는가?

스스로도 놀란다.

.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4.23.

노래책시렁 495


《낮은 데서 시간이 더 천천히》

 황화섭

 몰개

 2023.7.28.



  우리는 마음을 으레 바다나 하늘이나 그릇에 빗댑니다. 누구나 마음이란, 바다와 하늘과 그릇마냥 깊이와 너비를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푸짐하게 담을 뿐 아니라, 푸근하게 담고, 푸지게 나눌 뿐 아니라 모든 앙금과 응어리를 풀어내는 바다와 하늘과 그릇과 같은 마음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낮은 데서 시간이 더 천천히》를 대구 ‘앞산’ 곁에 있는 ‘노래책집(시집 전문서점)’ 〈산아래시〉에서 만났습니다. 손바닥에 가볍게 안기는 자그마한 노랫자락을 시외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길에 천천히 읽습니다. ‘시’나 ‘문학’을 한다는 티나 허울은 거의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저 ‘노래’를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노래를 짓고 나누는 사람이 있나 싶어 놀랍니다. 어떤 이는 이 노래책을 ‘산문시’라 여기는데, 덧없는 말입니다. 이 노래책은 “노래를 담은 꾸러미”입니다. 하루하루 살아내고 살아가고 살아온 발걸음을 발바닥에 새긴 이야기 그대로 손바닥에 얹어서 하나하나 돌아본 뒤에, 마룻바닥에 앉아서 차분히 써내려간 노래입니다. 온누리에는 ‘좋은노래’나 ‘나쁜노래’란 없습니다. 그저 ‘삶노래·살림노래’하고 ‘꾸민노래·허울노래’가 있습니다. 참으로 드문 삶노래에 살림노래를 다 읽고서 고흥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즈넉이 눈을 감고서 긴긴 책집마실 발걸음을 되새겼습니다.


ㅍㄹㄴ


한낮이 되어 마당에 두껍던 눈이 반쯤 녹을 즈음에도 / 새들은 하늘을 한없이 날다가도 / 다시 마당으로 내려앉았다. / “야야, 새들한테 좁쌀 좀 뿌려줘라.” / 아버지 말씀에 좁쌀을 뿌려주니 / 참새들이 쫑알쫑알 신나게 좁쌀을 먹어치운다. (새/16쪽)


내 나이 34세 때, 어머니는 76세에 돌아가셨다. / 어머니 돌아가신 날 산소에서 훌쩍이다가 / 해가 지자 무서워져서 집으로 내달렸다. / 집 마당까지 달려와서 어머니한테 큰절을 했었다. (외갓집 가는 길/23쪽)


“교수님 왜 하필이면 서울에서 멀기도 먼 이곳에 박물관을 지으셨습니까?” “여기 예천이 밤하늘 별 관찰하기가 젤 좋은 곳이야.” (53쪽)


나는 슬금슬금 강의실을 빠져나와 정문으로 다시 나갔다. 수업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정문 바깥쪽 길가에 헌책을 팔고 있었다. 《思想界》 《씨알의 소리》 곰팡내가 나는 것 같은 책. 당시 형님은 약수동에서 헌책방을 열고 계셨다. 그때 산 헌책을 다 읽고 나면 형님한테 갔다 드렸다. 형님 말씀 “야야, 대학 들어갔으면 전공책을 읽어야지 뭐 이런 헌책을 읽노.” … 느닷없는 석사장교 6개월 제도로 그의 아들, 그의 친구 아들도 석사장교 6개월로 군제대한 사실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들이 석사장교 6개월 제대 후 얼마 안가서 석사장교 제도는 폐지되었다. 대학 졸업 정원제도 없어졌다. (낮은 땅에서 살아보려고/58, 59쪽)


나에겐 내 몸과 같은 친구가 있다. 중학교 때부터 사귀던 여자친구를 대학 다니던 시절에 운동권 선배하테 빼앗긴 친구.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던 그 친구는 현장에서 손가락이 두 번이나 잘려 나간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모든 슬픔을 딛고서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띠면서 (반가사유상/62쪽)


한참 후에 그분한테 물었다, 여자처럼 화장하는 이유에 대해서. / 자기는 직업군인으로 군 헌병대에 오랫동안 근무했다고, / 무슨 사건이 생겼는데 그 사건으로 해서 너무나 억울하게 너무나 심하게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 그 후에 군에서 쫓겨났다고, 그 고문 후유증으로 남자들이 싫어서 여장을 하고 다닌다고 했다. (화장하는 남자/84쪽)


+


《낮은 데서 시간이 더 천천히》(황화섭, 몰개, 2023)


기억의 처음은 내가 기어 다니다가 첫걸음을 걸으면서 똥을 내질렀다는 것

→ 떠오르는 처음은 내가 기어다니다가 첫걸음을 떼면서 똥을 내질렀다는

→ 되새기는 처음은 내가 기어다니다가 처설음을 디디며 똥을 내질렀다는

5쪽


가끔씩은 고양이 수염 따라

→ 가끔은 고양이 나룻 따라

5쪽


바람의 향기, 톱날에 쓰러지는 나무들 톱밥의 냄새

→ 바람내음, 톱날에 쓰러지는 나무마다 톱밥냄새

→ 바람내, 톱날에 쓰러지는 나무에 톱밥내

13쪽


한없이 곡식 씨같이 생긴 것을 가끔씩 쓸어주었다

→ 가없이 낟알같이 생긴 알을 가끔 쓸어주었다

20쪽


정한수 물을 귀한 반상에 올리고서

→ 새벽물을 값진 자리에 올리고서

→ 비나리물 고운 밥자리에 올리고서

27쪽


바보가족들의 행진에도 바다는 그저

→ 바보네가 거닐어도 바다는 그저

→ 바보집안이 걸어도 바다는 그저

35쪽


서른 호 정도의 집들이 서로 다투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 서른 집 즈음이 서로 다투지 않을 만큼 알맞게 떨어져서

→ 서른 채 남짓이 서로 다투지 않을 만큼 슬슬 떨어져서

56쪽


백년해로하는 부부가 있었다

→ 한꽃사랑인 둘이 있다

→ 꽃사랑인 짝지가 있다

77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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