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엄지발가락 그림 없는 동시집 5
유진 지음 / 브로콜리숲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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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3.7.

노래책시렁 526


《안녕, 엄지발가락》

 유진

 브로콜리숲

 2025.7.9.



  누구나 손에 닿는 대로 만지고 느끼면서 이 하루를 살아갑니다. 손에 닿지 않으면 만질 일이 없을 테니 느낄 일도 없고, 삶으로 스미거나 퍼지거나 물들지 않습니다. 흙을 만지지 않는 하루라면 흙빛도 흙내음도 알거나 느낄 일이 없을 뿐 아니라, 흙에 깃드는 숱한 이웃을 하나도 모르게 마련이에요. 바람을 만지지 않거나 비를 만지지 않거나 볕을 만지지 않거나 별빛을 만지지 않을 적에도 바람과 비와 볕과 별을 통째로 모를밖에 없습니다. 《안녕, 엄지발가락》은 숲이라는 터전을 어린이 곁에서 몸소 익히면서 나누는 길을 걷는 사이에 길어올린 노래를 여미었다고 합니다. 다만, 숲을 품을 적에는 ‘숲말’을 바라볼 노릇이에요. ‘숲’이라는 낱말은 얼마나 오래도록 이 땅에서 흘러왔는지 아주 깊고 너릅니다. ‘땅’이며 ‘호미’라는 낱말도 대단히 오래되었어요. ‘해’라든지 ‘마음’이라는 낱말도, ‘손’고 ‘짓다’와 ‘집’이라는 낱말도 참으로 까마득합니다. 어린이한테 ‘좋은것’을 베풀고 가르치려는 마음은 안 나쁘되, 섣불리 ‘좋은것’을 앞세울 적에는 그만 말부터 엇나가기 쉽습니다. 우리 곁에는 좋은벌레도 나쁜벌레도 없습니다. 좋은풀과 나쁜풀도 없어요. 다 다른 벌레와 나비와 새와 풀과 나무입니다. 좋은비와 나쁜비조차 없고 좋은날씨와 나쁜날씨도 없어요. 늘 다를 뿐입니다. 먼저 이 다른 빛을 차분히 짚고서, 오랜 낱말에 서린 숨빛을 읽으려고 하면, 우리가 펴는 모든 말은 저절로 노래로 번집니다.


ㅍㄹ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 이리저리 살펴보니 다친 데는 없습니다 // 쥐고 있던 호미 내려놓고 / 나도 모르게 / 두 손 모으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나도 모르게/44쪽)


1443년(세종 25년)에 만든 한글 닿소리(자음)는 홀로 소리를 내지 못해 홀로 소리 낼 수 있는 홀소리(모음)를 빌려 그 소리를 낸다 … 한글을 만든 세종은 어떻게 생각할까? 꽃피는학교에서는 초등 1학년 때부터 우리말을 가르친다. (81쪽)


자연을 살려야지 하는 / 꾸미는 말보다 // 자연을 덜 해쳐야지 하는 / 솔직한 말을 써야겠다 (오늘부터/123쪽)


+


《안녕, 엄지발가락》(유진, 브로콜리숲, 2025)


베어질 나무 한 그루를

→ 벨 나무 한 그루를

→ 베는 나무 한 그루를

6쪽


이십사절기 가운데 두 번째 절기

→ 스물네눈금 가운데 둘째 눈금

→ 스물네철눈 가운데 둘째 철눈

17쪽


겨울이 가는 게 아쉬워

→ 겨울이 가면 아쉬워

18쪽


연둣빛 두 팔

→ 옅푸른 두 팔

18쪽


천 개 넘는 낟알 만든다

→ 즈믄 넘게 낟알 빚는다

→ 즈믄 넘게 낟알 낸다

20쪽


쌀 한 톨 만든다

→ 쌀 한 톨 낳는다

→ 쌀 한 톨 빚는다

20쪽


마음도 여물 것 같은 참, 따스한 햇살

→ 마음도 여물 듯한 참, 따스한 햇볕

23쪽


서둘러 말리게 된다

→ 서둘러 말린다

24쪽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 놓은 듯

→ 불덕에 켜 놓은 듯

→ 불을 켜 놓은 듯

24쪽


나무들의 마지막 수다

→ 나무는 마지막 수다

→ 마지막 나무수다

26쪽


곶감을 한번 만들어 보세요

→ 곶감을 꼭 말려 보세요

28쪽


작은 불에 위로받는 밤

→ 작은 불로 달래는 밤

→ 작은 불로 포근한 밤

34쪽


임대 공고를 붙인다

→ 빌려준다고 알린다

→ 내놓는다고 알린다

35쪽


할머니 휘어진 등은

→ 할머니 굽은 등은

→ 구부정한 할머니는

37쪽


비가 일기예보에 잡혔다

→ 비가 온다고 한다

→ 비를 알린다

39쪽


점점 다가오는데 비 올 확률이 자꾸 낮아진다

→ 차츰 다가오는데 비는 자꾸 안 올 듯싶다

→ 곧 다가오는데 비는 자꾸 안 올 듯하다

39쪽


잡초라 하길래 잡놈도 욕이 아닌 줄 알았지

→ 막풀이라 하니 막놈도 막말 아닌가 했지

→ 잔풀이라 하니 잔놈도 똥말 아닌가 했지

40쪽


대설 둘째 날

→ 큰눈 둘쨋날

44쪽


너를 해로운 곤충, 배추흰나비로 자라면 이로운 곤충이라고 하더구나

→ 너를 몹쓸벌레, 배추흰나비로 자라면 도움벌레라고 하더구나

→ 너를 밉벌레, 배추흰나비로 자라면 이바지벌레라고 하더구나

45쪽


새끼 낳을 날이 가까워지자 걱정되기 시작했어

→ 새끼 낳을 날이 가깝자 걱정스러워

→ 새끼 낳을 날이 가까우니 걱정이야

51쪽


분명 임신인 줄 알았는데 상상임신 같네요

→ 틀림없이 밴 줄 알았는데 헛배 같네요

→ 배부른 줄 알았는데 빈몸 같네요

→ 아기가 선 줄 알았는데 꿈 같네요 

53쪽


봄까지 심한 가뭄이 들었다

→ 봄까지 몹시 가물었다

→ 봄까지 가뭄이었다

60쪽


푸른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는 거야

→ 파란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 파란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잔뜩 생겨

62쪽


1443년(세종 25년)에 만든 한글 닿소리(자음)는

→ 1443해에 지은 우리글(훈민정음) 닿소리는

→ 1443해에 여민 바른글(훈민정음) 닿소리는

81쪽


따가운 가을 햇살 아래 파도논에서 벼를 텁니다

→ 따가운 가을햇살에 물결논에서 벼를 텁니다

→ 가을햇살 따갑고 바다논에서 벼를 텁니다

96쪽


아이들 밥 위에 하나씩 놓아

→ 아이들 밥에 하나씩 놓아

99쪽


영어 공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날입니다

→ 영어 배우기를 이야기하는 날입니다

→ 영어를 왜 배우는지 얘기하는 날입니다

100쪽


쳇바퀴에 숨어있다

→ 쳇바퀴에 숨는다

104쪽


시 한 편 찾아올지 모르겠다

→ 노래가 찾아올지 모르겠다

→ 글 하나 찾아올지 모르겠다

110쪽


마지막 선수로 나가서 지고 있는 경기를 역전 시켜 1등을 했어요

→ 마지막으로 나가서 지는 판을 뒤집어 첫째로 들어와요

→ 마지막 아이로 나가서 지는 판을 뒤엎어 꼭두를 해요

115쪽


죽은 사람 위해서 산 풀들이 죽는 날

→ 죽은 사람 때문에 산 풀이 죽는 날

→ 죽은 사람 기리며 산 풀이 죽는 날

→ 죽은 사람 돌보며 산 풀 죽이는 날

119쪽


흐르는 앞개울에 인사하고 많은 것에 인사하게 된다

→ 흐르는 앞개울에 절하고 뭇숨결에 절을 한다

→ 흐르는 앞개울에 꾸벅하고 모두한테 엎드린다

120쪽


자연을 덜 해치는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 숲을 덜 건드리며 땅을 짓는다

→ 들숲을 덜 만지며 논밭을 짓는다

126쪽


입하가 지날 무렵

→ 새여름 지날 무렵

→ 여름맞이 무렵

128쪽


모들아 더욱 푸르러지렴

→ 모야 더욱 푸르렴

→ 모야 짙푸르렴

128쪽


한로가 지나면서 벼 이삭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 찬이슬 지나면서 벼이삭은 노랗게 물들고

12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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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문학동네 시인선 114
권민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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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3.3.

노래책시렁 535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권민경

 문학동네

 2018.12.17.



  문득 돌아보니, 2026해인 올해까지 얼추 스무 해 즈음 ‘돌봄손 꾸러미(복지 선물)’를 받았습니다. 글길을 걷는 나날이 꼭 가난해야 하지 않지만, 이름값을 드날려서 목돈을 거머쥐려는 글이 아닌,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 북돋울 글을 쓸 적에는 가난한 길이곤 하구나 싶습니다. 지난 스무 해 즈음 받은 ‘돌봄손 꾸러미’를 돌아보면, 제가 안 쓰는 것만 용하게 골라서 베풀더군요. 누런쌀·온쌀만 먹는 사람한테 흰쌀을 안기고, 고기를 안 사먹는 집에 고기를 베풀고, ‘무형광·무표백 비누와 종이’를 골라쓰는데 ‘형광·표백 비누와 종이’를 주더군요. 그러니까 ‘돈·이름·힘’이 될 글이란 ‘흰쌀’ 같은 글이요, 형광물질과 표백제가 가득한 비누와 종이 같은 글이라는 뜻입니다.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는 ‘견뎌낸’ 나날을 적는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꿈’은 견뎌낼 길이지는 않습니다. 꿈길은 남이 보기에 가시밭길 같을 수 있되, 꿈을 그리며 걷는 사람은 춤추고 노래하면서 봄나비와 봄꽃을 마주하는 느긋살이입니다. 꿈으로 하루를 짓는 사람은 남을 쳐다볼 일이 없습니다. 오늘 이 보금자리로 날아앉는 작은새가 베푸는 노랫가락을 귀여겨듣기에 꿈길입니다. 베개는 머리를 품고, 벼는 해바람비를 품다가 우리 몸으로 녹아듭니다.


ㅍㄹㄴ


작명소 아저씨 모세처럼 / 수염을 쓰다듬으며 무명들에게 말한다 / 너는 민경, 권민경, 권민경이야 / 아가가 권민경들이 되어 걸어나간다 (이름 부르기/14쪽)


결혼 이혼 수많은 / 공식과 행사 / 수학시간엔 의례히 출석 번호 34 35 / 엉뚱한 방법으로 답을 맞혔지 꼴통 (부케/22쪽)


그래요. 그렇군요. / 모르는 어른을 조심하라는데 모르는 아이는? 앞머리를 반듯하게 자른 사내아이. 잠에서 깨도 / 손잡고 따라가고 싶은 / 말들 (길吉/36쪽)


+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권민경, 문학동네, 2018)


이 책의 시편들은 내게서 영영 떨어져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 이 책에 실은 노래는 내게서 아주 떨어져나간 듯하다

→ 이 노랫가락은 내게서 아주 떨어져나간 듯싶다

5쪽


누군가와 쑥스럽고 어색하게 인사하는 걸 상상하면 찡해진다

→ 누구랑 쑥스럽고 낯설게 꾸벅하는 모습을 그리면 찡하다

→ 누구하고 쑥스럽고 벌겋게 절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찡하다

5쪽


퇴원을 축하하며

→ 나와서 기쁘다며

→ 나오니 기뻐서

13쪽


누군가의 고통이 정말 나를 아프게 하나

→ 누가 아프면 나도 아프나

→ 누가 괴로우니 나도 아프나

→ 누가 울면 나도 아프나

14쪽


대대적인 퍼레이드를 준비중이다

→ 크게 걸어가려고 한다

→ 들썩들썩 나아가려고 한다

→ 시끌벅적 가려고 한다

24쪽


애써 꾸민 형식보다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좋아요

→ 애써 꾸미기보다는 볼 수 없으면 좋아요

→ 애써 꾸밀 적보다는 볼 수 없으면 좋아요

40쪽


악한들의 동맹처럼 우리는 불안한 평온 속에 살아가겠지만

→ 우리는 못된 무리처럼 아슬아슬 조용히 살아가겠지만

→ 우리는 사납두레처럼 걱정하며 얌전히 살아가겠지만

47쪽


살아남는 덴 대가가 필요하니까

→ 살아남자면 값을 치르니까

→ 살아남으려면 피를 바치니까

50쪽


나는 날개가 있는 종으로 진화중이야

→ 나는 날개가 있는 씨로 바뀌어

→ 나는 날개가 있는 목숨이 돼

66쪽


초년운과 말년운 중 어느 쪽을 고를래

→ 첫꽃과 끝꽃 가운데 어느 쪽을 고를래

→ 첫길과 끝길에서 어느 쪽을 고를래

70쪽


오늘의 얼굴이 좋아 어제의 꼬리가 그리워

→ 오늘 얼굴이 좋아 어제 꼬리가 그리워

104쪽


낮의 길이는 조금씩 길어지고 있어요

→ 낮은 조금씩 길어요

→ 낮이 조금씩 길어요

10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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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재료 교유서가 시집 2
원성은 지음 / 교유서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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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1.30.

노래책시렁 530


《비극의 재료》

 원성은

 교유서가

 2025.11.6.



  누구나 날마다 죽습니다. 언제나 날마다 태어납니다. 모든 숨붙이는 밤낮을 갈마들면서 죽살이를 잇습니다. 밤에 까무룩 죽기에 온몸에 새롭게 기운이 돌고, 새벽에 새롭게 밝는 하루이기에 차츰 힘을 차립니다. 아침이 환할 무렵에 즐겁게 기지개를 켜니, 낮에 나무와 나비라는 두 마음을 하나로 모두어 나로 서는 살림을 짓습니다. 이윽고 저물녘이면 차분히 모든 일놀이를 접으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서 다시금 죽으러 갑니다. 《비극의 재료》를 돌아봅니다. 이 삶에는 눈물거리와 웃음거리가 나란합니다. 눈물만 흘리거나 웃음만 짓지 않아요. 가난하든 가멸차든 눈물웃음이 넘나들어요. 태어나거나 죽거나 두 손은 빕니다. 누구나 빈손에 빈몸으로 떠나고 돌아와요. 나고죽는 수수께끼를 날마다 스스럼없이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가 늘 나누는 모든 말이 바로 삶인 줄 알아챌 테고, 누구나 스스로 펴는 말씨 그대로 살림씨를 일구고 삶씨를 맞이하며 사랑씨를 피우는 줄 깨닫습니다. 돈이 많기에 느긋하지 않습니다. 돈이 없기에 바쁘지 않습니다. 밤에 기꺼이 죽으면서 꿈을 새로 그리기에 느긋합니다. 아침에 기쁘게 태어나면서 꿈씨를 새로 심기에 즐겁습니다. 먼발치에서 글감을 안 찾으면 됩니다. 우리 삶이 다 다르게 글감입니다.


ㅍㄹㄴ


길 잃은 사람을 제외한 마을 사람들은 / 그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 안다 알고 지켜보고 걱정하고 관여하고 / 참견하고 간섭하고 괴롭힌다 가만히 두지 않아야 한다 (블랙박스 해체하기/12쪽)


죽었다는 말에 대해서 생각한다 / 한 번도 죽어본 적이 없어서 / 살아 숨쉬면서 그 말을 정의하려고 노력해본다 (미싱링크/107쪽)


+


《비극의 재료》(원성은, 교유서가, 2025)


함께 좋아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처럼 혼자서만 좋아하고 싶은 것도 있다

→ 함께 좋아하고 싶은 일이 있듯 혼자서만 좋아하고 싶은 일도 있다

→ 함께 좋아하고 싶기도 하듯 혼자서만 좋아하고 싶기도 하다

5쪽


태양을 맨눈으로 쳐다보면 앞이 캄캄해지니까

→ 해를 맨눈으로 쳐다보면 앞이 캄캄하니까

12쪽


장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 꽃찔레라는 이름과는 달리 아름답게 안 보인다

→ 꽃찔레라는 이름과는 달리 안 아름다워 보인다

14쪽


고유명사일까 일반명사일까

→ 홀이름일까 고루이름일까

→ 홑이름일까 두루이름일까

14쪽


결론은 아무튼 N분의 1일로 나눠 먹자는 뜻이야

→ 아무튼 나눠먹자는 뜻이야

→ 아무튼 나눠서 내자

→ 아무튼 도리기를 하자

18쪽


그걸 읽는 독자의 찡그림처럼

→ 읽는 사람이 찡그리듯

→ 읽으며 찡그리듯

→ 읽다가 찡그리는 사람처럼

22쪽


유통기한이 짧은 자의식을 가졌다 방치되어 잊히기에는 다급한 열망을 가졌다

→ 나를 잘 안 본다 팽개쳐서 잊힐까 서두른다

→ 나를 보는 틈이 짧다 내팽개쳐서 잊을까 조바심을 낸다

25쪽


새 한 마리가 아스팔트 위에 누워서 붉은 내장을 드러내놓고 죽은 장면을 목격했다

→ 새 한 마리가 길바닥에 누워서 붉은 속을 드러내놓고 죽은 모습을 보았다

→ 새 한 마리가 까만길에 누워서 붉은 배알을 드러내놓고서 죽었다

33쪽


폭우가 그렇게 좋았는지 온몸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 벼락비가 그렇게 반가운지 온몸으로 기뻐한다

→ 소나기가 그렇게 기쁜지 온몸으로 반긴다

49쪽


내 그림자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다가왔다

→ 그림자를 들여다보려고 다가온다

→ 그림자를 잘 보려고 다가온다

58쪽


누군가는 그것에 해체적이라고 누군가는 그것이 모던하다고 말한다

→ 누구는 풀어헤친다고 누구는 새롭다고 말한다

→ 누구는 찢는다고 누구는 산뜻하다고 말한다

→ 누구는 뜯는다고 누구는 반짝인다고 말한다

62쪽


비극의 구두점을 지뢰처럼 밟아 완성시키는 나의 눈사람

→ 몸서리를 쉬려고 펑 밟아 마무르는 이 눈사람

→ 눈물쉼꽃을 꽝 밟아서 맺는 이 눈사람

→ 동티를 마치려고 쾅 밟아 끝내는 눈사람

73쪽


그것이 검은 백조였다는 것을 안다

→ 그 새는 검은고니인 줄 안다

90쪽


양치류를 채집하는 소녀는

→ 민꽃풀을 모으는 아이는

→ 홀씨풀꽃을 담는 아이는

100쪽


우성과 열성은 일란성쌍둥이

→ 첫씨와 뒷씨는 나란둥이

→ 윗씨와 밑씨는 한둥이

→ 큰씨와 작은씨는 함둥이

→ 으뜸씨와 버금씨는 나란꽃

110쪽


난분분하게 흩어지는 모래알들

→ 흩어지는 모래알

→ 나풀거리는 모래알

→ 흐늘거리는 모래알

11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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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 문학동네 동시집 78
문신 지음, 임효영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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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1.30.

노래책시렁 534


《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

 문신 글

 임효영 그림

 문학동네

 2020.9.7.



  우리가 마음을 쓰는 길에 따라서 말을 스스로 바꿉니다. 겉으로 귀엽거나 예쁘게 꾸미려는 길에 마음을 쓰면, 말도 어느새 귀염귀염 꾸미고 예쁘게 씌우려고 합니다. 이러면서 말과 마음뿐 아니라 삶이 나란히 흔들립니다. 귀엽게 차려야 먹을 밥이 아니고, 예쁘게 차려야 입을 옷이 아니며, 예쁘게 꾸며야 살아갈 집이지 않습니다. 글과 말과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쁘게 겉옷을 입힌들, 귀엽게 말을 꾸민들, 그냥 겉치레에 겉훑기로 그칩니다. 《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를 읽으면서 막상 ‘바람’이 ‘눈’을 어떻게 ‘빛’으로 흐르는지 느끼기 어렵습니다. ‘동시’라는 글을 ‘색동회 동심천사주의’마냥 그저 귀염귀염으로 꾸미면 된다고 잘못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 온나라 모든 아이를 사납게 찍어누르면서 ‘꾸며쓰기·꾸며말하기’를 시키던 틀 그대로 옮기는 ‘동시’라면, 굳이 오늘아이한테 읽혀야 할 뜻이 없다고 느껴요. 지난날 ‘동심천사주의 동시’는 먼발치에서 하느작거리며 구경하며 노닥거리는 줄거리였다면, 오늘날 ‘동심천사주의 동시’는 모든 아이가 일찍부터 짝짓기를 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얼개입니다. 꿈씨가 없는 글쓰기라면 ‘글씨(글씨앗) 흉내’로 그치거나 맴돕니다. 아이는 손으로 뭘 해야 하고, 발로 어딜 디뎌야 할까요?


ㅍㄹㄴ


저녁에는 / 강가에 나가 볼까 해요 // 혹시 알아요? / 자전거를 세워 놓고 / 저녁 강가에 앉아 있던 / 조그마한 아이가 / 아주 멀리까지 나를 팔매질할지 (강가에 굴러떨어지는 돌멩이/17쪽)


좋아한다는 말 꿀꺽 삼켜 버렸던 / 횡단보도까지 말고 / 버스 정류장까지만 / 뒤로 / 뒤로 / 더 걸어 볼 거예요 (뒤로 걸으면/21쪽)


무엇보다도 / 선생님 말씀을 골똘하게 듣는 / 내 짝 수지 왼쪽 볼에 / 콩닥콩닥 / 조그맣게 볼우물이 생기는 시간 (열한 시/22쪽)


윤이가 좋다, 라고 / 놀이터 모래 위에 쓰는데 / 나비 한 마리 / 그걸 읽고는 / 팔랑 / 날아간다 / 나는 얼른 / 발로 쓱쓱 글자들을 지워 버렸다 (윤이가 좋다/43쪽)


겨울밤에는 / 참 / 궁금한 것도 많다 // 눈은 / 왜 / 도둑처럼 내리는지 // 바람은 / 왜 / 화살처럼 날아다니는지 (겨울밤/46쪽)


무심코 / 돌멩이 하나 걷어찼을 뿐인데 / 저녁 하늘에 / 쨍 / 구멍이 났다 (반달/95쪽)


+


《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문신, 문학동네, 2020)


뭔가 지나간 것 같다면

→ 뭐가 지나간 듯하면

10쪽


열두 개나 되는 투명한 손가락을

→ 열둘이나 되는 맑은 손가락을

10쪽


그날이 자꾸만 기다려진다

→ 그날을 자꾸 기다린다

→ 그날을 자꾸자꾸 기다린다

16쪽


후― 하고 내쉬었던 한숨도

→ 후 하고 내쉬던 숨도

→ 후 하고 한숨을 쉬던

20쪽


하루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 오늘 하루 가장 즐거운 때

→ 이 하루에서 가장 반기는 때

23쪽


놀이터 모래 위에 쓰는데

→ 놀이터 모래에 쓰는데

→ 놀이터 모래밭에 쓰는데

43쪽


쓱쓱 글자들을 지워 버렸다

→ 쓱쓱 글을 지워버린다

→ 쓱쓱 글씨를 지워버린다

43쪽


양지쪽에 피었다

→ 볕달에 핀다

→ 볕자리에 핀다

66쪽


무심코 돌멩이 하나 걷어찼을 뿐인데

→ 문득 돌멩이 하나 걷어찼을 뿐인데

→ 그냥 돌멩이 하나 걷어찼을 뿐인데

95쪽


도서관에 얼마나 많은 늑대를 키우고 있는지 몰랐던 거예요

→ 책숲에 늑대를 얼마나 많이 키우는지 몰랐어요

101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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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 볶음밥
이장근 지음, 손지희 그림 / 창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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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1.15.

노래책시렁 533


《칠판 볶음밥》

 이장근 글

 손지희 그림

 창비

 2015.12.1.



  어린이가 하는 말씨를 흉내내는 어른이 꽤 많습니다. 그럴 만합니다. 숱한 어린이는 아직 덜 물들었기에 마음껏 생각을 펴서 스스로 말을 짓고 엮고 빚고 짜고 추스르고 놀고 노래하거든요. 어린이가 마음에 생각나래를 달 적에는 띄어쓰기나 맞춤길을 아예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말 = 사투리’라 할 만합니다. 고장마다 다 다른 말씨인 사투리를 놓고서 어느 누구도 띄어쓰기나 맞춤길을 안 따져요. 저마다 삶으로 빚고 긷고 지은 마음을 소리로 옮기니 사투리이거든요. 《칠판 볶음밥》은 다 다른 뭇아이가 다 다르게 터뜨리는 마음을 곁에서 지켜보다가 문득문득 옮긴 듯싶습니다. 그러나 ‘어린이가 쓴 글’이 아닌 ‘어른이 쓰는 글’이라면 ‘귀담아들은 말’이 아닌, ‘어른으로서 들려주는 노래’로 가다듬을 노릇입니다. 어린이가 한 말은 그냥 ‘어린이글’로 내놓아야 맞습니다. 모든 아이가 다 다르게 사투리를 쓰는 줄 알아챌 수 있다면, 아이 아닌 어른이란 몸으로도 늘 즐겁게 ‘나다운 말소리와 말빛’으로 스스럼없이 사투리를 쏟아내면 됩니다. 사투리가 아닌 꾸밈말을 넣으려 하면 뒤엉킵니다. 어린이가 띄어쓰기도 맞춤길도 아랑곳하지 않듯, 어른도 ‘표준말’이나 ‘좋은글’이나 ‘문학’이란 껍데기를 벗어야지요.


ㅍㄹㄴ


칠판이 / 커다란 철판이었으면 좋겠다 / 그럼 우리 반 친구들 / 모두 먹을 수 있는 / 볶음밥을 할 수 있겠지 (칠판 볶음밥/14쪽)


다희야 / 내가 너한테 왜 / 거울을 선물했는지 아니? // 너에게 보내는 영태의 / 눈빛 / 말 / 웃음 / 나한테 반사해 줘라 // 너는 영태한테 / 별로 관심도 없잖아 (거울 선물/25쪽)


청소하다가 덥다며 / 잠바를 벗는 선생님 / 때가 묻는다며 / 잠바를 뒤집어서 / 의자에 걸쳐 놓는다 / 속이 겉이 된 잠바 / 속은 더러워져도 되는 걸까 / 겉보다 속이 중요하다고 /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하면서 / 쯧쯧쯧 선생님 속이 궁금하다 (속이 궁금하다/35쪽)


+


《칠판 볶음밥》(이장근 , 창비, 2015)


하지만 좋아하면 자기도 모르게 자꾸 하게 되잖아요

→ 그런데 좋아하면 저도 모르게 자꾸 하잖아요

4쪽


레이다처럼 눈동자를 굴린다

→ 더듬이처럼 눈알을 굴린다

→ 이리저리 눈알을 굴린다

12쪽


이번이 마지막이다 실패하면 모든 게 끝이다 우주의 기를 모아

→ 이제 미자막이다 안되면 모두 끝이다 온기운을 모아

→ 이제 미자막이다 망치면 모두 끝이다 온빛을 모아

26쪽


몸살 괴물에게 혼나는 걸까

→ 몸살깨비가 꾸중을 할까

→ 몸살깨비가 다그칠까

58쪽


가로선 위에 세로선 하나 그으면

→ 가로금에 세로금 하나 그으면

→ 가로에 세로 하나 그으면

7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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