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푸르게 읽는 책
《솔로 이야기》 1∼7 / 타니카와 후미코, 대원씨아이, 2012∼2019
푸른목소리 : 사람을 마주하기(인간 관계)가 너무 힘들어요.
김치하고 빵 이야기부터 할까 싶어요. 한국사람이라면 다들 김치를 잘 먹으리라 여기지요? 빵을 좋아해서 즐기는 푸름이가 많겠지요? 이때에 가만히 생각해 보기로 해요. 김치를 못 먹는 사람이 둘레에 있을까요? 밀가루가 깃든 먹을거리를 몸에 넣으면 끙끙 앓거나 뾰루지가 돋으면서 괴로운 사람을 둘레에서 보았을까요?
달걀을 먹을 수 없는 몸인 사람도 있습니다. 잘못해서 달걀 기운이 섞인 밥이나 국이나 케익이나 빵을 먹었다가는, 그만 온몸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괴로운 사람이 있어요.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다든지, 소고기나 닭고기를 먹을 수 없는 사람이 있어요. 어른 가운데에는 술을 못 마시는 몸인 사람, 담배를 못 피우는 몸인 사람도 있습니다.
자, 어떤가요? 한국사람이라면 으레 김치를 잘 먹거나 즐긴다고 여길 텐데, 김치라고 하는 ‘삭힌 푸성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몸이라면, 푸름이 여러분은 어떻게 마주하시겠어요? 김치를 먹을 수 없는 동무더러 “넌 한국사람이 아니야!”라든지 “너 한국사람 맞니?” 하고 따지거나 물으실는지 궁금해요. 몸에 받지 않아서 못 먹는 사람을 앞에 두고서 냠냠짭짭 맛나게 먹을 수 있을는지도 궁금합니다.
모든 사람은 달라요.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먹지만 도무지 살이 안 붙어요. 어떤 사람은 적게 먹는데 그만 먹는 대로 살이 붙어요. 어느 사람은 키나 덩치가 크지만 힘이 여리고, 어느 사람은 키나 덩치가 작지만 힘이 세지요. 어느 사람은 다리가 죽죽 뻗지만 달리기를 못하고, 어느 사람은 다리가 그리 안 길어도 달리기를 잘해요.
얼굴이며 몸매이며 모두 다른 사람입니다. 자, 곰곰이 본다면 말이지요, 우리는 몽땅 다 다른 사람인 터라, 서로 사이좋게 어울리거나 지내기가 매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더없이 다른 사람이잖아요. 게다가 푸름이 여러분이 학교란 곳에 오기까지 만난 적도 말을 섞은 적도 없는 또래를 이 학교라는 곳에서 하루아침에 잔뜩 마주하지요. 더구나 하루 내내 낯선 또래하고 보내야 해요. 학교에서 만나는 어른도 매한가지일 테고요. 처음부터 서글서글해서 누구하고라도 잘 섞이고 말을 하는 동무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낯설거나 서먹서먹할 뿐 아니라,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되도록 서먹서먹하거나 낯선 기운을 못 털어내는 동무도 있어요.
앞서 김치 얘기를 꺼냈습니다만, 이는 제 얘기입니다. 저는 한국사람이면서 김치라는 곁밥을 거의 못 먹다시피 하는 몸으로 태어났어요. 마흔 몇 해를 살며 하도 김치에 시달리느라 이제는 한두 조각을 몸에 넣을 수는 있지만, 한두 조각으로도 몸이 괴로워하는 줄 느껴요. 저는 김치뿐 아니라 찬국수도 못 먹어요. 찬국수를 빚는 ‘삭힌 국물’을 몸에 넣었다가는 며칠쯤 배앓이를 합니다.
이런 몸을 타고났는데, 누구를 미워할 수 있을까요? 제가 어릴 적이던 1980년대에는 ‘김치를 못 먹는다’는 꾸지람과 놀림과 꿀밤만 실컷 먹었습니다. 김치는 못 먹되 갖은 꾸중에 손가락질에 회초리를 먹어야 했어요.
못 먹는 몸인 사람한테 못 먹는다고 놀리거나 때리기까지 하면, 이를 어떻게 견뎌야 할까요? 그래도 저는 용케 그 나날을 살아남아서 오늘까지 왔어요. 그래서 푸른벗한테 “사람을 마주하는 일, 인간관계” 이야기를 새롭게 들려주고 싶어요.
우리는 참으로 다른 몸이자 마음이에요. 우리는 서로 다른 동무나 또래가 어떤 마음이거나 생각인지 하나도 못 읽거나 아예 잘못 읽어버릴 수 있어요. 이 대목을 마음에 품어 주셔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나 동무한테는 더없이 깊은 생채기일 수 있어요. 나는 손쉽게 털어내지만 동무로서는 열 해나 스무 해가 넘도록 마음이 다칠 수 있어요. 거꾸로 다른 동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나는 아주 큰 일이 있고, 다른 동무는 가볍게 넘기지만 나는 서른 해 넘게 마음앓이가 되는 일도 있어요.
어른이라고 해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는 못해요. 어른 사이에서도 이 ‘인간관계’가 참 만만하지 않아요. 그러나 어른들은 이를 어떻게 풀까요? 잘 보셔요. 어른들도 서로 즐겁거나 슬기로이 어우러지는 길을 모르는 나머지, 삿대질을 일삼거나 막말을 퍼붓는 분이 있어요. 쉽게 다툰다든지 막짓을 해대는 분도 있지요.
푸름이 여러분뿐 아니라 어른도 즐겁고 상냥한 사이가 되기를 바라면서 무척 애쓴답니다. 이때에 가장 바탕이 되는 한 가지라면 “내가 나를 사랑하자”라고 할 수 있어요. 푸름이 여러분이 바로 푸름이 여러분부터 깊고 넓게 사랑할 수 있다면, 쉽게 마음이 다치거나 잘할 줄 아는 것이 없어 보이는 바로 나를 스스로 사랑할 수 있다면, 말을 더듬거나 쭈뼛거리거나 어쩐지 서툴거나 엉성한 나를 내가 사랑할 수 있다면, 어렵다 싶은 ‘인간관계’도 살짝살짝 새롭게 푸는 길이 보이리라 느껴요. 힘들면 힘든 대로 있어도 되어요. 조바심을 안 내면 돼요. 끝까지 마음이 안 맞는 동무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맞는 동무하고 따사로이 마음을 나누는 길을 가노라면, 어느새 앙금도 실타래도 풀리라 봅니다.
......
다른 사람을 마주하기 어렵다는 푸른벗한테 《솔로 이야기》라는 만화책 꾸러미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 만화책은 2012년부터 한국말로 나옵니다. 2019년에 일곱걸음이 나왔고, 앞으로 더 나오리라 생각해요. 책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이 스스로 무엇을 생각하고, 둘레에 있는 사람이 저마다 어떤 마음이나 생각일까 하고 궁금하게 여기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만화책은 사랑타령을 다루지 않아요. 이 마음은 사랑인가, 아니면 나 혼자 끄달리면서 휘둘리던 모습인가 하고 헤매는 모습을 다루고, 그윽하면서 포근하게 함께하는 고운 사랑을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가꾸는가 하는 살림을 다룹니다. 혼자이기에 쓸쓸하다고 느끼는 마음을 다루면서도, 혼자이기에 홀가분하게 씩씩하다고 느끼는 마음을 나란히 다룹니다.
마음이 흐르는 결을 찬찬히 짚어 주기에, 또 이 마음을 스스로 곱게 다스리는 결을 넌지시 밝혀 주기에, 《솔로 이야기》라는 만화책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혼자여도 좋다’가 아닙니다. ‘혼자이든 여럿이든 오늘 내가 스스로 즐거운 길은 어디일까?’를 생각하는 줄거리를 다루지요.
동무나 또래뿐 아니라 어른이나 동생하고 마주하는 하루가 고단하다면, 그저 조용히 홀로 떨어져서 우리 마음을 읽어 보기로 해요. 그리고 속삭여 봐요. “오늘 하루도 애썼구나. 이제 푹 쉬렴. 사랑하는 나.” 같은 말을. “오늘 하루 힘들었니? 그래 이제 고이 쉬렴. 아름다운 나.” 같은 말을. “오늘 어떻게 보냈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모두 내려놓고 가만히 쉬렴. 상냥한 나.” 같은 말을. 푸름이 여러분이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을 수 있다면, 아무리 잘못하거나 엉성한 대목을 자주 느끼더라도, 이 모든 모습을 사랑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