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15. 흰종이 댄 책시렁 - 헌책방 대륙서점 2013.4.24.
대구에는 대구를 밝히는 예쁜 책터 있습니다. 부산에는 부산대로, 광주에는 광주대로, 인천에는 인천대로, 저마다 고을빛 밝히는 책쉼터 있습니다. 고을빛 밝히는 몫은 정치꾼이 하지 않습니다. 고을빛 북돋우는 구실은 경제꾼이 하지 않습니다. 고을빛은 고을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스스로 밝힙니다. 곧, 여느 사람들이 아기자기하며 예쁘게 삶 일구면 고을빛 아기자기하며 예쁩니다. 여느 사람들이 거칠거나 메마른 나날 허덕이면 고을빛 거칠거나 메마릅니다. 흙과 동무하는 여느 사람들로 이루어진 고을이라면, 고을빛은 흙빛과 흙내음이지요. 자가용과 아파트로 둘러싼 여느 사람들 보금자리라 한다면, 고을빛은 자가용 배기가스와 시멘트덩이가 됩니다.
대구 중구 동인동1가에 헌책방 한 곳 있습니다. 예순 해 넘게 책사랑 펼치면서 책빛을 일구는 책쉼터입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쉬고, 책을 살피며 몸을 쉽니다. 책을 만나며 마음을 돌보고, 책을 장만하며 몸을 보살핍니다.
보약을 먹어야 몸을 살찌우지 않아요. 마음을 끌어올리거나 가꾸는 책 하나 읽으며 몸 또한 살찌웁니다. 밥을 먹을 때에만 기운을 얻지 않아요. 마음을 다독이거나 어루만지는 책 하나 헤아리며 몸 또한 사랑하지요.
헌책방 〈대륙서점〉 책시렁 가만히 바라봅니다. 책 아래쪽에 하얀빛 납니다. 뭔가 하다가 이내 알아차립니다. 어쩜, 책시렁 바닥에 흰종이를 댔구나. 책을 알뜰히 보듬으려고 흰종이를 책시렁 바닥에 댔구나.
나는 내 서재 책시렁 바닥에 신문종이를 댑니다. 신문종이를 대면 먼지를 덜 먹고 좀이 슬지 않습니다. 열 해 스무 해 지나고 보면, 책시렁 바닥에 댄 신문종이가 새삼스러운 재미를 불러일으키기도 해서, 신문종이를 즐겨 대곤 합니다. 그런데, 흰종이를 책시렁 바닥에 대니, 헌책방 책시렁 한결 밝고 환하게 빛나는구나 싶어요. 정갈한 종이 하나 마련하고, 책시렁에 책 꽂는 틈 더 쪼개어, 이렇게 책터 일굴 수 있다고 깨닫습니다.
손길 하나로 돌보는 책이니까요. 손길 하나 따사롭게 보듬는 책터이니까요. 손길 하나에 사랑을 실어 사람들 가슴마다 고운 책넋 스미기를 바라는 헌책방지기 마음이요 꿈이니까요. 4346.4.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