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의 고양이를 만났기를
우치다 햣켄 지음, 김재원 옮김 / 봄날의책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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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30


《당신이 나의 고양이를 만났기를》

 우치다 햣켄

 김재원 옮김

 봄날의책

 2020.4.20.



길고양이를 길고양이인 채로 키운다곤 해도 키우는 이상 이름은 있어야겠지. 길고양이니 노라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10쪽)


어제 아침에도 둑을 확인하러 가다가 구두가게에 들렀는데 그 집 줄무늬 고양이가 나흘간 집에 들어오지 않다가 오늘 아침에야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 걱정이 많으시죠. 그때 남편 분도 아주머니와 함께 나와서 그렇게 말해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해 주는 친절한 마음이 참 고맙다. 하지만 고양이 일로 그런 인사를 받는 게 조금은 이상하기도 하다. (42쪽)


길 잃고 헤매는 집고양이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 집으로 온 이상 배곯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94쪽)


노라가 사라진 3월 27일로부터 벌써 반년이 흘렀지만 그사이 한 번도 스시를 먹지 않았다. (147쪽)


숨이 끊어진 쿠루를 한동엔 품에 안아준다. 물론 여전히 따뜻하고 여전히 사랑스러운 얼굴이다. 그러나 앙상하게 말라 평소의 절반 정도로 가볍다. 몹쓸 짓을 했다. 이렇게 야윌 때까지 무엇 하나 해주질 못했다. (221쪽)



  보리똥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고, 대추꽃이 말간 노란빛으로 맺는 여름으로 깊이 접어드는 날입니다. 멧자락에 안개가 하얗게 퍼지고, 멧새는 밤에도 낮에도 바지런히 노래합니다. 메뚜기가 토실하고, 사마귀하고 거미가 서로 노려보다가 날렵하게 비껴 가는 풀숲입니다. 맨발로 풀밭에 서면 갖은 딱정벌레하고 하늘소가 어깨에 내려앉거나 발치에서 더듬이를 갖다 댑니다. “오늘 너희는 어떤 하루이니?” 이 모두한테 말을 겁니다. 나무한테, 꽃한테, 풀벌레한테, 멧새한테, 또 우리 스스로한테 오늘은 어떻게 다가온 새날일까요.


  지난 열 해 가운데 아홉 해 내내 우리 집 헛간에서 마을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돌보던데, 올해에는 새끼를 낳으려는 마을고양이가 없습니다. 지난해에 태어나 무럭무럭 자란 마을고양이 하나가 어째 사람손을 타려고 우리 집 마당에서 자리를 차지하면서 다른 마을고양이는 그닥 얼씬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손을 타겠다며 찾아온 마을고양이는 처음에 배가 홀쪽하고 어설펐지만, 조금씩 기운을 찾더니 이내 쥐에 새를 곧잘 사냥하면서 제법 듬직한 몸꼴로 거듭나더군요. 이제는 마을 한 바퀴를 휘 돌고서 마당으로 돌아올 적에 이야옹이야옹 큰소리로 우리를 부르면서 “나 다녀왔어! 나 다녀왔다구!” 하면서 쓰다듬어 달라고 합니다.


  길고양이를 쓰담쓰담하면서 곁에 두고프던 나날을 적바림한 《당신이 나의 고양이를 만났기를》(우치다 햣켄/김재원 옮김, 봄날의책, 2020)을 읽었습니다. 글쓴님은 처음에 마음이 끌린 길고양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서 영 입맛을 잃고 하루하루 기운이 없었다고 합니다. 부디 이 길고양이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알림종이를 뿌리고 이곳저곳 찾아다녔다고 해요.


  집고양이 아닌 길고양이라면 어느 날 어느 집에 살며시 깃들어 보려는 몸짓이었다고 하더라도 새삼스레 집살이 아닌 들살이로 나아가기도 하겠지요. 매이지 않기에 들넋이고, 얽히지 않아서 길숨이거든요.


  어쩌면 그 길고양이는 들길로 새롭게 나아갔을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자동차에 치여서 이승을 떠났다든지, 다른 사람 손길을 타면서 꽤 멀리멀리 갔을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나아가는 삶길을 생각합니다. 아늑히 품는 보금자리도 좋고, 가시밭길이라 하더라도 씩씩히 나아가는 자리도 좋습니다. 낯설거나 힘들지만 스스로 이루고픈 꿈길로 걸어가는 자리도 좋고, 텃밭일 일구며 시골에서 조용히 보내는 자리도 좋아요.


  짧게 만났다가 헤어지고 만 길고양이라는데, 처음부터 이 아이 자리가 있지 않았다지만, 문득 찾아들어 생긴 자리가 텅 비니 새삼스레 집이 조용했고, 이렇게 한 해 두 해 흐르던 어느 날 새로운 길고양이가 찾아들었다고 해요.


  떠나간 아이가 있고, 찾아온 아이가 있습니다. 길바람을 탑니다. 길에서 흐르는 내음을 듬뿍 묻히고서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조용조용 보내던 집안에 길고양이 하나는 웃음이며 수다를 새로 베푸는 숨결이 됩니다. 사람들이 지내는 마을이 시끌벅적하거나 북적북적 즐거웁자면, 사람만 있기보다는 길고양이도, 멧새도, 풀벌레도, 벌나비도, 또 여러 숲짐승도 얼크러질 노릇이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은 “그대가 이 고양이를 만났기를”처럼 이름을 고쳐야 알맞겠다고 느껴요. 집고양이 아닌 길고양이를 “나의 고양이”라 하니 안 어울립니다. ‘나의’는 한말이 아닌 일본 말씨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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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 가족,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 다섯 가지 표상으로 보는 한국영화사
박유희 지음 / 책과함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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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31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박유희

 책과함께

 2019.10.27.



한국영화사에서는 아버지에게 역사적 책임을 물은 적이 없다. 식민지화와 함께 근대가 도래하며 전근대에 속한 아버지는 무능한 존재로 전락했다. (70쪽)


20세기 한국영화사에서 아버지는 부재할 수는 있어도 부정될 수는 없었다. 식민지의 못난 아비일지라도 딸은 몸을 팔아 그를 봉양해야 했고, 아들은 그를 축출할 수 없었다. (74쪽)


재판을 둘러싼 논리와 다각적인 역사 문제들이 ‘조선인 피해자 대 가해자 일본’이라는 이분법 구도 속에 묻히고 만다. 관부 재판을 도왔던 일본 시민단체의 항의 또한 이 영화가 법정 멜로드라마의 해묵은 틀로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과정에서 결락하고 왜곡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168∼169쪽)


4·19가 영화에서 재현된 것도 21세기 들어서다. 4·19라는 역사적 사건 자체를 극영화에서 재현한 경우가 20세기에는 없었다. 그러다가 2004년에 개봉한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서 주인공의 인생에 주요한 계기가 되는 사건으로 4·19가 등장한다. (278쪽)


대개 영화를 직업적으로 보고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전문가 집단은 관습적인 영화에 대해 박하게 평가하기 마련이다. 그에 비해 일반 관객은 영화 형식이 관습적이라고 하더라도 실화의 충격이나 그것에 대한 관심도, 혹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감동을 받으면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438∼439쪽)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른 살이 될 무렵까지는 한국영화가 아니고서는 볼 생각을 안 했지만, 서른 살이 지나고부터는 아예 한국영화를 끊습니다. 서울살이가 아닌 숲살이를 바라는 길이고, 아이를 돌보느라 책을 들출 쪽틈을 내기도 빠듯한데다가, 한국말사전이라는 책을 쓰다 보니 어느덧 한국영화는 따분하거나 틀에 박히거나 우물개구리로구나 싶었습니다. 어쩐지 한국영화는 줄거리나 이야기가 좁아 보여요. 다루는 길도 뻔해 보입니다. 사랑을 그리기보다는 사랑타령을 그리고, 숲을 그린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고, 별바라기로 생각을 틔우는 영화는 좀처럼 못 만납니다.


  극장에 걸어서 사람을 모으고 돈을 벌려면 어쩔 길 없이 ‘연속극을 찍어야’ 할는지 모르겠고, ‘연속극이 되어야’ 팔릴 뿐 아니라 ‘한류’란 이름으로 이웃나라로도 퍼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집에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을 뿐더러 연속극이라면 아예 쳐다보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한국영화에 눈이 가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마음을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박유희, 책과함께, 2019)를 읽으면서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500쪽 남짓으로 도톰한 이 책은 한국영화를 ‘가족·국가·민주주의·여성·예술’ 다섯 갈래로 나누어서 다룹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나온 영화는 크게 이 다섯 가지로 묶으면 거의 다 들어간다고 여길 만하기도 하겠구나 싶습니다.


  제가 영화를 찍는다고 한다면 이 책에서 다룬 다섯 갈래가 아닌 ‘숲·사람·사랑·살림·소리’라는 다섯 갈래에 들도록 찍고 싶습니다. ‘숲·사람·사랑·살림·소리’을 영화 한 자락에 모두어 낼 수도 있어요. 이를테면 〈말괄량이 삐삐〉에는 이 다섯 가지가 모두 나옵니다. 어린이부터 누릴 만한 삐삐 이야기에서 삐삐는 숲이라는 푸른빛도, 사람다이 사는 길도, 참다운 사랑이란 무엇인지도, 손수 짓는 살림도, 또 우리 곁에 흐드러지는 숱한 소리도 고루 보여줍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도 이 다섯 가지가 모두 흘러요. 만화영화 〈우주소년 아톰〉이라든지 〈이웃집 토토로〉도 이 다섯 가지가 함께 있겠지요. 일본영화 〈스윙걸즈〉나 〈워터보이즈〉도 이 다섯 가지를 잘 보여준다고 느낍니다. 한국영화라면 〈집으로〉나 〈천하장사 마돈나〉가 이러한 결을 어느 만큼 다룬다고 느껴요.


  곰곰이 보면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는 영화평론보다 조금 더 어려운 글입니다. 영화평론도 ‘직업 평론가’들이 ‘영화를 삶자리에서 수수하게 즐기는 사람하고 동떨어진 채’ 온갖 잣대를 들이민다고 느끼는데요, ‘한국영화가 무엇을 그리는지’를 말할 적에 구태여 논문을 써야 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논문보다는 이야기로, 학문보다는 삶으로, 이론이나 지식보다는 사랑으로 바라보면서 풀어낼 적에 한국영화가 달라질 새길을 보여줄 만하지 않을까요.


  제가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숲·사람·사랑·살림·소리’를 바탕으로 ‘어린이·길·바다·별·새’라는 다섯 가지를 보태고 싶습니다. 이 열 가지를 아우르는 영화라면 기꺼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열 가지를 고이 품는 한국영화가 나오지 않으면, 저로서는 굳이 한국영화를 볼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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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노는 정원 - 딱 일 년만 그곳에 살기로 했다
미야시타 나츠 지음, 권남희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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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27


《신들이 노는 정원》

 미야시타 나츠

 권남희 옮김

 책세상

 2018.3.20.



“이 일대는 봐요, 머위 꽃줄기, 두릅 새싹, 고비, 산나물을 산더미처럼 캘 수 있고요. 왕머루나 자두도 잔뜩 나요. 우리 딸은 배가 고프면 자기가 산나물을 뜯어와서 튀김을 해먹어요.” (41쪽)


공기가 맛있다. 제일 처음 공기를 ‘맛있다’고 표현한 사람의 마음을 알 것같다. 공기에는 정말로 맛이 있다. (48쪽)


이곳 중학교에는 중간고사도, 기말고사도 없다. 중1은 세 명밖에 없다. 게다가 중2와 중3은 한 명씩이다. 등수를 매겨도 의미가 없고, 애초에 전원이 충분히 이해했다는 걸 알면 시험을 칠 필요가 없다. (210쪽)



  팥배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려면 마당 한켠에 팥배나무를 심어서 돌보면 됩니다. 또는 숲정이에 팥배나무가 섞이도록 하고, 또는 숲으로 팥배나무를 만나러 마실하면 되어요. 책이나 사진만으로는 팥배나무를 알 길이 없어요. 가만히 쓰다듬고, 뺨을 대어 숨결을 느끼고, 부둥켜안으면서 이야기를 걸 적에 비로소 팥배나무가 마음을 열어요.


  오월은 팥배나무에 말간 꽃이 눈부십니다. 이 오월에 우리 삶자락은 어떤 모습일까요? 벌써부터 더운 날이라 에어컨을 틀려고 집안을 꾹꾹 닫아거나요, 싱그러이 오월바람이 집안 구석구석으로 스며도록 활짝 틔우는가요. 빛나는 햇살을 누리려고 마당이며 뒤꼍이며 고샅에 서서 해바라기를 하나요, 햇살은 쳐다볼 겨를이 없이 막힌 집안에 가만히 있는가요.


  아이들하고 큰고장을 떠나 두멧시골에서 누린 한해살이를 다룬 《신들이 노는 정원》(미야시타 나츠/권남희 옮김, 책세상, 2018)을 읽었습니다. 글쓴이는 두려우면서도 설레면서 큰고장을 씩씩하게 떠났다고 해요. 아이들은 거리끼지 않고 두멧시골 한해살이를 맞아들였다고 합니다. 더 많은 또래가 웅성거리는 큰고장이 아닌, 몇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조그마한 배움터에 눈밭이며 들숲이 너른 두멧시골을 가슴으로 폭 맞아들였다고 합니다.


  조그마한 배움터에는 따로 시험이 없을 뿐더러, 줄세우기가 없었답니다. 아이들은 시험이나 줄세우기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즐거운 나날을 누렸다고 해요. 틀리면 알려주고, 몰라도 그러려니 하면서, 하나하나 온몸으로 부대끼며 새록새록 배우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나라 사이에 줄세우기가 있어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사람 사이에 왜 줄세우기를 해야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잘하거나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을 텐데요.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모두 새롭게 부대끼는 길일 텐데요. ‘더 빨리, 더 많이, 더 크게’는 사람다움하고 멀어도 한참 멉니다. 아니, 아예 아무런 사람다움이 아니겠지요. ‘즐겁게, 사랑스레, 아름다이’가 되어야 비로소 하늘님이 드리우는 터전이 되고, 우리 누구나 저마다 하늘빛이 되는 길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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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거주불능 지구 -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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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26


《2050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김재경 옮김

 추수밭

 2020.4.22.



불과 몇 해가 지나지 않았음에도 (2016년 파리기후)협약의 요구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는 산업 국가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2도 상승이라는 기준은 놀랍게도 최상의 시나리오에 가까워 보이며, 2도 상승을 넘어서는 끔찍한 미래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그런 전망은 대중의 시야에서 교묘히 숨겨지고 있다. (25쪽)


지난 100여 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는 도시 생활을 나아가야 할 미래상이라고 생각했으며 결과적으로 대도시의 규모는 인구 500만 명 이상, 1000만 명 이상, 2000만 명 이상으로 계속 늘어났다. (81쪽)


지구 표면의 70퍼센트가 물로 뒤덮여 있다는 점에서 바다는 지구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우세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수많은 역할에 더해 바다는 일단 우리를 먹여살린다. (147쪽)


오대호에서는 조사한 어류 중 과반수가, 북서대서양에서는 조사한 어류 중 73퍼센트가 미세플라스틱을 함유하고 있었다. (161쪽)


컴퓨터 덕분에 효율성과 생산성이 올라가기는 했지만 동시에 기후변화 때문에 기술 혁신의 영향력이 줄어들거나 완전히 상쇄돼서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났을 수 있다. (183쪽)


아이러니하게도 기후변화 연구를 통해 드러나는 내용이 암울해질수록 전문가의 조심성은 점점 더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235쪽)


지난 몇백 년 동안 수많은 서양사람이 진보와 번영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던 요소가 사실 거대한 기후재난의 전조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301쪽)



  1997년에 교토의정서가 나왔다 하고, 2016년에 파리기후협약이 나왔다 합니다. 하나는 스무 해가 지났고, 다른 하나는 다섯 해쯤 되었는데, 막상 이 두 가지를 제대로 지킨 나라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라를 이끄는 벼슬아치만 안 지켰을까요? 우리가 함께 안 지킨 셈 아닐까요?


  시골 군청은 어디를 가도 으리으리합니다. 아직 으리으리하지 않은 군청이 남았다면 머잖아 으리으리하게 올리려고들 합니다. 해가 가면 갈수록 시골 지자체는 어린이하고 푸름이하고 젊은이가 빠르게 사라지면서 사람도 줄고, 남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더 늙습니다. 그러나 시골 지자체 벼슬아치는 외려 나날이 늘어납니다.


  서울은 나날이 더 뚱뚱해집니다. 서울 곁에 있는 큰고장도 뚱뚱해집니다. 나즈막한 아파트는 빠르게 사라지면서 높다란 아파트로 바뀝니다. 이제 시골 읍내에까지 높다란 아파트가 올라섭니다.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오래된 아파트를 허물 적에 나오는 시멘트랑 플라스틱 쓰레기는 모두 어디로 갈까요? 찻길을 새로 깔면서 나오는 낡은 아스팔트 쓰레기는 다 어디로 갈까요? 핵발전소를 돌리면 핵쓰레기가 나오는데, 핵방사능 쓰레기는 몽땅 어디에 있을까요? 화력발전소를 돌리면 석탄쓰레기가 나오는데, 석탄쓰레기는 또 어디에 있을까요?


  전남 고흥은 2020년에 ‘스마트팜’을 나라돈을 받아서 짓는다고 합니다. 널따란 ‘고흥 스마트팜’을 짓는 자리에 석탄쓰레기가 엄청나게 파묻혔습니다. 석탄쓰레기더미에 시멘트를 잔뜩 들이붓고, 여기에 유리온실을 세워서 스마트팜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이 스마트팜에서 거둔 남새는 모조리 큰고장으로 보내겠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시멘트 바닥 밑에 석탄쓰레기를 어마어마하게 파묻은 유리온실에서 거둔 ‘수경재배 남새’를 먹으면서 즐거울 만할는지요? 튼튼한 몸이 되고 아름다운 마음이 될 만한지요?


  미국에서 뉴욕 한복판에 사는 어느 분이 《2050 거주불능 지구》(데이비드 월러스 웰즈/김재경 옮김, 추수밭, 2020)라는 책을 써냈다고 합니다. 앞으로 서른 해쯤 뒤에 이 별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목숨붙이도 살아남을 만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서른 해쯤 뒤에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서른 해가 아닌 2020년 오늘을 돌아볼 적에 이 별이 얼마나 살 만한지부터 생각해야지 싶어요.


  돌림앓이가 크게 퍼지는 요즈음 이 별은 얼마나 살 만할까요? 돌림앓이가 크게 퍼지면서 거의 모든 하늘길이 멈춥니다. 하늘길이 멈추고 공장도 꽤 많이 멈추고 자동차물결도 이럭저럭 줄어드니, 하늘빛이 파랗게 바뀝니다.


  멀리 내다보지 않아도 되어요. 오늘 여기를 보면 되어요. 우리는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 정년퇴직을 맞이할 때까지 회사원이 되어 톱니바퀴로 굴러야 한다는 생각,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의무교육을 차근차근 밟고서 입시지옥을 거쳐 대학졸업장을 거머쥐어야 한다는 생각, 목돈이 좀 생기면 여러 나라를 비행기 타고 휘휘 돌며 사진을 찍어서 누리집에 올려야 한다는 생각, 조금 더 크고 시커먼 자가용을 굴려야 한다는 생각, 마당 한 뼘도 없는 시멘트 아파트를 몇 억이든 십 억이든 이십 억이든 들여서 장만해야 비로소 숨을 돌릴 만하다는 생각, …… 갖은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삽니다. 하늘빛을 볼 겨를도 못 내지만, 하늘빛을 보자는 생각도 안 합니다. 하늘빛을 안 보니 흙빛도 풀빛도 나무빛도 바라보지 않습니다.


  미국만 아니라 한국도 ‘조개 플라스틱’이나 ‘물고기 플라스틱’을 알아보면, 또 ‘돼지고기 플라스틱’이나 ‘소고기 플라스틱’을 따진다면 엄청 무시무시할 만하리라 봅니다. 가게에서 비닐자루를 쓰지 않도록 법을 마련한다지만, 정작 ‘비닐바구니 아닌 천바구니’를 쓰더라도 웬만한 먹을거리는 진작에 비닐로 겹겹이 싸 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읽는 책, 《2050 거주불능 지구》조차 겉종이를 비닐로 씌웠어요.


  사람들이 먹는 거의 모든 남새는 비닐밭에서 거둡니다. 고추밭도 비닐밭이지만, 배추밭도 비닐밭입니다. 여름에 나와야 알맞을 딸기가 겨울 한복판부터 가게에 나돌아요. 딸기는 겹겹이 비닐로 두른 집에서 석유난로를 때어서 거둡니다. 그러니까, 겉모습은 딸기이지만, 속알은 비닐하고 석유로 둘러친 것을 먹는 셈이에요.


  한겨울에도 딸기를 사다 먹을 만하니 살기 좋은 나라인가요, 아니면 무늬만 딸기인 비닐하고 석유를 목돈 들여 사다 먹으니 살기 나쁜 나라인가요?


  이제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 나라에서 우두머리를 맡는 분한테도, 새로 국회의원으로 뽑힌 이한테도, 시장·군수뿐 아니라 여느 공무원 모두한테도, 또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 물어볼 노릇입니다. 맨발로 디딜 풀밭이나 맨흙이 싱그러운 마당 한 뼘조차 누리지 못하면서 자가용하고 시멘트집을 오가며 벌어들이는 돈으로 우리 삶은 얼마나 즐겁거나 아름다운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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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 마음사전 걷는사람 에세이 6
현택훈 지음, 박들 그림 / 걷는사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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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24


《제주어 마음사전

 현택훈 글

 박들 그림

 걷는사람

 2019.11.20.



쌀밥을 ‘곤밥’이라 부른 것은 보리밥이나 조밥을 주로 보다가 쌀밥을 보니 그 하얀 빛깔이 고와서 ‘곤밥’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23쪽)


할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저 ‘굴룬각시’ 보라.” 그 말은 부정적인 여자를 보며 하는 말이었다. ‘굴룬각시’가 있으니 ‘굴룬서방’도 있다. 물론 ‘내연남’이라는 뜻이다. (37쪽)


그런데 이젠 제주도 하천에서 뱀을 보기 어렵다. 버려진 농약병이 가끔 보일 뿐이다. 뱀도 개구리도 아이들도 없다. (50쪽)


곤조. 일본말이다. 우리말로 하면 ‘근성’이다. 삼촌은 그 말을 할 때만은 구부정한 어깨를 순간 활짝 폈다. (71쪽)


중학생 때 잠깐 만난 그 교생 선생님 때문에 나는 이렇게 시를 쓰고 있다. ‘몰멩진’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준 그 교생 선생님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계실까. (87쪽)



  우리가 쓰는 말은 우리가 오늘 살아가는 하루를 그대로 나타냅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이 삶을 바라보고 생각하기에 저마다 다른 삶말이 흐릅니다.


  우리가 쓰는 말은 우리를 낳아 돌본 어버이가 맨 먼저 알려주었습니다. 이윽고 우리 어버이를 둘러싼 여러 이웃이며 동무가 찾아와서 들려주었지요. 어느새 찾아간 학교나 일터나 삶터 곳곳에서 보고 듣고 마주한 온갖 말 가운데 스스로 마음에 든다고 여긴 몇 가지를 차곡차곡 품으면서 생각을 한껏 폅니다.


  서울사람은 서울말을 씁니다. 부천사람은 부천말을 쓰고, 하남사람은 하남말을 씁니다. 고장이란 틀로는 경기도일 테지만, 고을은 저마다 다르니 다른 말씨예요. 고장이란 틀로는 경상도라 하더라도 대구랑 부사 말씨는 대구랑 부산 삶터만큼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제주사람이 제주란 터전에서 언제나 마주하면서 맞아들인 제주말은 어떤 빛깔이거나 결일까요?


  시를 쓰는 길을 걸으며 제주말을 새삼스레 돌아본 이야기가 《제주어 마음사전》(현택훈 글·박들 그림, 걷는사람, 2019)에 한 땀 두 땀 흐릅니다. 글쓴님은 어릴 적 어버이한테서 들은 말을, 또 할매가 읊은 말을, 또 동무에 여러 살붙이가 알린 말을 문득 곱새깁니다. 어릴 적에는 심드렁하게 지나치던 말씨가 어른이 되고 보니 새삼스럽다지요. 어릴 적부터 간직하던 말씨가 어른이 되고 보니 더욱 빛난다지요.


  이 책을 보면 글쓴님은 ‘곤조’는 일본말이고 ‘근성’이 한국말이라 적은 대목이 있는데, 이는 알맞지 않아요. ‘근성’이란 한자말을 일본사람이 ‘곤조’로 읽을 뿐이요, ‘근성’은 한국말이 아니거든요. 한국말은 ‘배짱’입니다. 또는 ‘뱃심’이에요.

  한 가지 제주말을 놓고서 한 가지 삶자락을 펼쳐 놓은 《제주어 마음사전》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제주님은 제주말로 제주살이를 그렸다면, 부산님은 부산말로 부산살이를 그리면 재미있을 테고, 강릉님은 강릉말로 강릉살이를 그리면 아름답겠구나 싶어요.



  서울 표준말은 ‘서울에서 표준으로 나고 자라며 살아온 사람’한테는 걸맞을는지 모르나, 나라 곳곳 다 다른 터전에 따라 다 다르게 나고 자라며 꿈꾼 사람한테는 썩 어울릴 만하지 않다고 느껴요. 같은 낱말 하나를 놓고서 다 다른 삶이 자란다는 숨결을, 그냥그냥 낱말 하나가 아닌 저마다 다른 사랑을 받고 태어나서 저마다 다른 꿈을 키운 어제를 오늘 되새겨 본다면, “순창말 마음노래”나 “봉화말 마음꾸러미”나 “홍천말 마음밭” 같은 책이 하나둘 깨어날 만하지 싶습니다. 다 다른 고장 다 다른 글님이 다 다른 삶을 노래한다면 참으로 좋겠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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