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광주. 생각. - 광주를 이야기하는 10가지 시선
오지윤.권혜상 지음 / 꼼지락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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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5.24.

책으로 삶읽기 1125


《요즘. 광주. 생각.》

 오지윤·권혜상

 꼼지락

 2020.4.9.



《요즘. 광주. 생각.》은 광주에 아무 끈이 없는 채 이곳에 깃들면서 “광주는?” 하고 물어보며 다가서려고 하는 젊은이 눈길을 풀어내는 줄거리인 듯싶다. 첫머리는 “광주를 틀에 박지 않겠다”는 마음이 엿보이되, 막상 한 사람 두 사람 만나는 동안에 묻고 듣고 헤아리는 길은 “이미 숱하게 나온 말”에서 맴돌다가 끝난다.


1980해를 돌아보는 ‘늦봄빛고을(오월광주)’이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이곳을 1980해에 세워놓았다. 그러나 빛고을은 1970해에도 사람이 살았고, 1950해에도, 1800해에도, 1500해에도, 1000해나 500해나 더 옛날에도 사람이 살았다.


어느 곳이든 여태 살아온 나날과 얽혀서 ‘가장 굵다’고 할 발자국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발자국은 하나일 수 없다. 이를테면 전남 고흥은 우리나라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지만, 정작 고흥군은 고인돌에 아무 마음이 없다. 꼭 고인돌이 가장 많은 곳에서 ‘고인돌을 기리고 살피는 일’을 해야 하지는 않다. 마음이 있는 곳에서 즐겁고 알차게 하면 된다. 이제는 고흥이 고인돌이 덜 많은 곳으로 바뀌었을 만하다. 논밭이건 들이건 곳곳에 널브러진 고인돌을 ‘집돌(건축자재)’로 꽤 오래도록 썼으니까.


일본이 총칼로 억누르던 무렵에 ‘광주학생운동’이라 일컫는 일이 있었다. 전남광주는 이미 백제라는 기나긴 발자국도 있다. 그런데 백제와 얽힌 이야기를 펴고 나누고 길어올리는 곳은 거의 부여나 공주 같은 충청이다. 전라광주에 얽힌 백제 이야기가 수두룩할 텐데, 이 대목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매우 적다. 전라남도는 우리나라에서 들녘이 가장 넓다. 이 너른들은 빛고을로 모이게 마련이다. ‘빛고을’이건 ‘광주’이건, 고을이름에 왜 ‘빛’이 깃드는지 곰곰이 짚을 일이다. 김남주 같은 노래지기가 왜 해남에서 광주로 가서 배움길을 닦고서 노래꽃을 밝혔을까?


‘1980해만 있는 빛고을’이 아니라 ‘1980해도 있는 빛고을’로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전남 광주는 ‘계림동 책골목’이 눈부시던 곳이었으나, 이제 계림동은 책골목이 아니라 ‘빈거리’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 인천과 광주는 “누가 더 책을 안 읽나 내기하거나 겨루는 곳”으로 밑바닥에서 손꼽는다. 어제·오늘·모레를 나란히 엮고 맺으면서 나아갈 적에 비로소 눈뜨고 깨어난다. 우리는 오늘만 볼 수 없고, 모레만 볼 수 없지만, 어제만 볼 수 없다. 세길을 나란히 보고 품으면서 풀 때에, 비로소 사람이 빛나고 숲을 품으며 하늘바람이 싱그러운 터전일 수 있다.


ㅍㄹㄴ


이 도시에도 ‘왜’라고 물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게 문을 열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설거지를 하는 일상이 왜 난장판이 되어야 했는지, 왜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는지, 궁극적으로 그들이 어떤 가치를 믿고 있었는지, 그 질문을 던져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14쪽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발굴해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정치적이든 뭐든 간에 있는 그대로 알리는 게 중요해요. 40쪽


그 청동기 유물이 만약 일본에서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제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일본은 테마파크 설립을 취소했을 것 같아요. 일본에서 현장체험을 할 기회가 많았는데, 일본은 자신들의 역사를 정말 정말 소중히 여겨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43쪽


+


《요즘. 광주. 생각.》(오지윤·권혜상, 꼼지락, 2020)


광주에 연고는 1도 없습니다만

→ 광주와 하나도 안 닿습니다만

→ 광주와 끈이 아예 없습니다만

→ 광주와 아는 사이 아닙니다만

→ 광주에 밑동은 없습니다만

4쪽


정치색이나 저의를 따지는 질문도 더러 받았다

→ 길눈과 속뜻을 따지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 결과 밑뜻을 따지는 분도 더러 있었다

7쪽


주절주절 늘어놓던 What(무엇)의 시대가 수명을 다하고 브랜드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Why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 주절주절 늘어놓던 ‘무엇’이 숨을 다하고 이름빛을 이야기하는 ‘왜’를 연다

→ 주절주절 늘어놓던 ‘무엇’이 저물고 이름값을 이야기하는 ‘왜’가 떠오른다

13쪽


궁극적으로 그들이 어떤 가치를 믿고 있었는지, 그 질문을 던져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 무엇보다 어떤 길을 믿는지 물어볼 사람을 바랐다

→ 속으로 어떤 빛을 믿는지 건드릴 사람을 기다렸다

14쪽


이촌향도 현상도 비정상적으로 빨리 일어난 편이죠

→ 서울길도 마구마구 빨리 일어났죠

→ 지나치게 빠르게 서울로 몰려갔죠

→ 서슴없이 빠르게 시골을 버렸죠

5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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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응 거부선언 - 학살의 시대를 사는 법 파도문고
이하루 지음 / 온다프레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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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5.20.

책으로 삶읽기 1120


《사회적응 거부선언, 학살의 시대를 사는 법》

 이하루

 온다프레스

 2023.6.23.



  두 낱말 ‘다시’하고 ‘반복(反復)’은 얼마다 다르면서 닮은 낱말일까? 우리말과 한자말로 다를 수 있고, 그저 나란한 결이지만 한자말이 익숙하거나 나아 보여서 그냥 쓸 수 있다. 한자말 ‘반복’을 좋아한다면 “반복되는 일상생활” 같은 말씨도 좋아한다. 우리말 ‘다시’를 헤아린다면 “다시 오는 하루”나 “다시 찾는 삶”처럼 말결을 살피고 살려서 이야기한다.


  그저 똑같이 오는 날이라고 여기면, 모든 하루를 다르다고 느끼지 못 한다. 마냥 똑같이 맞는 나날이라고 느끼면, 오늘 이곳에서 보내는 일이 지겹거나 힘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야 하고, 멀리 길을 나서야 한다.


  《사회적응 거부선언, 학살의 시대를 사는 법》을 읽었다. 이 나라 서울(도시)에서는 길을 찾기 어렵다고 여기면서 바깥(외국)에서 낯선 사람과 낯선 마을과 낯선 하루를 마주하면서 ‘다른’ 길을 보리라 여기는 마음이 흐른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서 다르면서 새로운 길을 볼 수 없다면, 먼나라나 이웃나라에 간들, 아무 길을 볼 수 없다. 모든 길은 저마다 ‘나부터’이다. 스스로 나고자란 곳과 집과 마을부터 차분히 들여다보는 길에서 다르면서 새로운 길을 낼 수 있다.


  ‘아는이’가 하나 있대서 ‘사는이’이지 않다. 아무도 몰라도 된다. 스스로 그곳에 몸을 옮겨서 살아가야 ‘사는이’이다. 낯선 곳에 가서 얼마쯤 보내고서 몇몇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아는이·사는이’로 확 바뀌지 않는다. 한 해를 차분히 살아내면서 다 다른 철과 달과 날을 온몸으로 느껴야 ‘엿본이’요, 이렇게 여러 해를 보내다가 열 해쯤 지나면 비로소 ‘사는이’쯤 된다. 어느 곳에서 스무 해쯤 살아내야 ‘살짝 아는이’로 한 걸음 디딘다.


  살거나 알려면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한 해를 살아내지 못 하고서 섣불리 ‘살았다’나 ‘알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다. 더욱이, 글쓴이는 ‘고기로 잡히는 짐승’만 슬퍼할 뿐, 죽음켜(비닐)에 갇힌 풀과 나물과 나무를 보면서 괴로운 줄 느끼지는 못 한다. 가지치기뿐 아니라 줄기치기로 시달리는 길나무를 바라보면서 함께 아플 수 있을까. 이미 논밭을 ‘좁아터진 땅뙈기에 몰아 키우기’를 하는 나라가 된 터라 ‘고기로 삼는 짐승’도 나란히 괴롭힌다.


  밥살림을 바꾸려면 목소리만 낸들 안 바뀐다. 시골에서 살면 된다. 흙사람이 되고, 들숲사람으로 하루를 지으면 된다. 이름만 커다랗게 “사회적응 거부선언”이라 외쳐도 나쁘지는 않으나, “함께사는 집과 마을을 짓는 나”라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해보고 다시 마주하고 다시 걸으면 된다. 늦봄에 시골에서 마늘밭에서 일하면 된다. 첫여름에 곤드레밭에서 일하면 된다. 철마다 다른 흙일을 마주하면 된다. 길이란 모든 곳에 있고 아주 쉽다. 우리나라 작은시골에서 살아가려고 하지 않으니, 아무리 멀디먼 ‘좋은나라’에 가 본들, 길을 못 찾는다. 마음이 있으면 살아내려고 움직일 테고, 알아보려고 걸어갈 테지. 마음이 없으면 목소리만 내다가 끝난다.


ㅍㄹㄴ


현지인 한 명과 ‘아는 사이’로 발전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그 지역의 구경꾼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이 되었다. 19쪽


그 어떤 동물이라도 그 안에 갇혀 있으면 ‘더럽고 멍청한’ 이미지를 덮어쓸 수밖에 없어 보였다. 189쪽


육식이 기본값이로 정상적인 사회에서 개인이 이를 거부하는 데서 오는 모든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쉽지 안을 뿐 아니라 무척 부당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개인을 탓하기보다 사회구조적인 변화를 계속해서 요구해야 할 것이다. 238쪽


+


《사회적응 거부선언》(이하루, 온다프레스, 2023)


소, 돼지, 닭 등의 비인간 동물들에게 가해진 폭력을 고발하고

→ 소, 돼지, 닭을 괴롭힌 짓을 까밝히고

→ 소, 돼지, 닭 같은 뭇숨결을 들볶은 짓을 밝히고

→ 소, 돼지, 닭 같은 숨빛을 밟은 짓을 따지고

5쪽


길 위의 사람들은

→ 길에서 사람들은

→ 길마다 사람들은

→ 사람들은

7쪽


기약 없는 여행의 시작을 엄마에게 통보했다

→ 마감 없는 길을 나선다고 엄마한테 말했다

→ 끝 없는 나들이를 한다고 엄마한테 알렸다

17쪽


까만 하늘에 포물선의 점을 찍으며

→ 까만 하늘에 동그스름 콕 찍으며

→ 까만 하늘에 팔매로 쿡 찍으며

23쪽


사용하지 않는 땅이나 건물을 점거해 살아가는 행동을 스쾃(squatting, 무단거주)이라고 부른다

→ 쓰지 않는 땅이나 집을 차지해서 살아가면 그냥살기라고 한다

→ 안 쓰는 땅이나 집채를 잡아서 살아가면 눌러앉기라고 한다

29쪽


반드시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 반드시 누가 돕는다고 여겼고

→ 반드시 누가 돕는 줄 느꼈고

35쪽


카우치서핑 미팅에 나갔다가 워커웨이workway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다

→ 잠자리찾기 모임에 나가서 일길이라는 낱말을 들었다

→ 자리찾기 맞선에 나가서 일살림이라는 낱말을 들었다

49쪽


생추어리 부지가 꽤나 넓어서

→ 보금터가 꽤나 넓어서

→ 푸른터가 꽤나 넓어서

→ 돌봄터가 꽤나 넓어서

22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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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아주 짧은 역사 - 충돌하는 역사 속 진실을 찾아서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 교유서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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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5.14.

인문책시렁 477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아주 짧은 역사》

 일란 파페

 유강은 옮김

 교유서가

 2025.7.1.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아주 짧은 역사》를 지난여름(2025 여름)에 읽었으나 좀처럼 느낌글을 못 썼습니다. 어느새 물고물리듯 치고받으면서 서로 할퀴고 갉으면서 나란히 죽음물결에 서고 만 두 나라인 ‘팔레스타인·이스라엘’입니다. 여러모로 본다면, 미국이란 나라가 ‘모둠(연방제)’을 하듯, 두 나라도 “다르기에 크게 아울러서 함께 땅을 나누고 누리는 길”을 가면 됩니다. 그렇지만 이미 두 나라는 서로 끔찍하게 내쫓고 죽이고 괴롭히는 짓을 한참 일삼은 나머지 “다른 한 나라”로 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한쪽이 마구잡이로 두들겨패거나 죽였다고 해야 맞습니다. “돈과 힘과 이름을 더 거머쥔 쪽”에서 귀퉁이조차 나누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그야말로 마구마구 들이치고 사납게 밟으며 함부로 쏘아댔습니다.


  새롭게 가는 길이라면, 서로 다른 줄 받아들여서 보금자리를 함께짓는 살림살이라고 느낍니다. 아기를 낳으려면 “아주 다른 둘”이면서 “사람이라는 빛으로는 나란한” 가시내하고 사내가 어울려야 합니다. 몸과 마음은 다르지만, 숨결과 넋은 나란해요. 살아온 길이 다르지만, 사랑하려는 길은 나란히 두기에 한빛을 이루어 새빛(아기)을 낳을 수 있습니다.


  2026해 봄부터 이스라엘·미국이 이란이라는 나라에 펑펑 쏘아댑니다. 이란은 이스라엘한테도 맞받지만, 애먼 옆나라에 마구잡이로 끝없이 쏘아댑니다. 바다도 하늘도 누구나 누리는 길이지만, 이란은 바다를 막으면서 푸른별 뭇나라롤 옥죄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란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는 하나같이 ‘웃사내(마초)’입니다. 이들 뭇사내는 ‘혁명수비대’라는 이름을 내세웁니다. 허울은 ‘혁명’이지만 몸짓은 ‘막짓(독재)’입니다. 이들은 기름을 뽑아올려서 벌어들이는 어마어마한 돈으로 나라살림을 북돋울 뜻이 없습니다. 그저 총칼을 잔뜩 만들어서 사람들을 즈려밟는 길에 온힘을 쏟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아주 짧은 역사》를 읽으면서 “다른 둘이 함께 살아가는 길”이 있을는지 없을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들뿐 아니라 이 별에 깃든 모든 나라가 “다르기에 함께살기”를 찾아보자는 뜻을 나눌 수 있을까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 하고 다투는 길이 아닌, 서로 다른 줄 받아들여서 총칼을 모두 녹여서 없애는 길을 갈 노릇입니다. 끝없는 앙갚음질을 멈출 노릇입니다. 기름을 내다팔아서 몇몇 무리가 거머쥐는 멍청짓을 끝낼 노릇입니다.


  새길을 가자면 무엇보다도 믿음(종교)을 함께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믿지 않아야 비로소 밑동을 다질 수 있습니다. 믿는 탓에 밀어붙입니다. 믿음이 아니라 밑받침을 다지려고 마음을 기울이기에 함께 집을 지어서 보금자리로 가꿉니다. 가시버시는 서로 믿는 사이가 아니라, 함께 밑동을 놓고서 밑마음을 나누기에 사랑을 지피는 사이입니다. 다른 둘이 한마음으로 한사랑을 꽃피울 때라야 아기를 낳고서 살림을 돌봅니다. 다른 둘이 등돌린 채 다투거나 싸우면 아기를 못 낳을 뿐 아니라, 다른 둘은 그저 늙어서 죽고서 모두 잿더미로 바뀔 테지요.


  이를테면, 우리나라 삼성전자에서 엄청나게 길미를 거두었다면, 이 길미를 온나라 모든 사람한테 밑돈(기본소득)으로 돌려주면 됩니다. 그곳(삼성전자)이 엄청나게 길미를 얻기까지 낛(세금)을 엄청나게 받아들였고, 그곳이 내다팔 살림을 뽑아낼 일터도 온나라 사람이 기꺼이 내주었거든요. 저마다 다른 일터에서 저마다 새롭게 길미를 얻을 적에 스스럼없이 온나라 누구나 누리도록 베풀 줄 아는 마음이라면, 싸우거나 다투지 않아요. 사랑이란, 나 혼자 쥐는 멍청짓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미운놈한테 떡 한 조각 더 주는 손길입니다. 사랑이란, 다른 둘(가시버시)이 한마음으로 빚는 빛입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믿음(종교)’은 있되 ‘밑’은 아직 바라보지 못 하는 굴레부터 풀어낼 일입니다.



"지금 끝내면 우린 다 죽어"…이란인이 전쟁 중단을 두려워하는 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I2isr00ss7g


"하메네이 죽음에 오열? 정권이 고용한 배우"…이란인이 목숨 걸고 전하는 진실

https://www.youtube.com/watch?v=cplwYasyjtg


ㅍㄹㄴ


1972년,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는 유명한 발언을 했다. “팔레스타인인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31쪽


정착민들은 토착 사회의 역사를 지워버린다. 그리고 자신들이 처음 도착한 때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듯 여긴다. 오랜 관습이 사라지고, 정착민들은 토착 음식을 자기네 전통 음식인 양 군다. 43쪽


그들은 시온주의자들이 먼저 무력으로 차지하기만 하면, 팔레스타인인들이 되찾으려 해도 국제 사회가 돕지 않으리라고 정확하게 계산했다. 73쪽


시온주의자들은 분할안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분노를 활용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유대인 정착촌을 공격하자 시온주의자들은 집단 처벌로 대응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쪽의 폭력을 구실로 삼아 미래 유대 국가의 팔레스타인 아랍 지역을 일소하기 시작했다. 84쪽


이스라엘이 육일 전쟁을 통해 골란고원을 차지했을 때, 1백 개 가까운 그 지역 마을을 종족 청소하면서 주민들을 시리아로 추방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119쪽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에 진정한 좌파가 전혀 없고, 심지어 이제 더는 진정한 평화 진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80쪽


#AVeryShor HistoryoftheIsraelPalestineConflict #IlanPappe


+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아주 짧은 역사》(일란 파페/유강은 옮김, 교유서가, 2025)


이 충돌은 10월 7일에 시작된 게 아니다

→ 이들은 10달 7날에 부딪히지 않았다

→ 이들은 10달 7날부터 맞붙지 않았다

6쪽


방대한 문헌이 존재한다

→ 책이 잔뜩 있다

→ 글더미가 수북하다

→ 글자락이 엄청나다

7쪽


외국에서 들어온 수입품이었다

→ 밖에서 들여왔다

→ 멀리서 들어왔다

13쪽


활기찬 문예부흥이 있었다

→ 무럭무럭 살림꽃이 폈다

→ 북적북적 삶꽃이 피었다

→ 꽃나래를 기운차게 폈다

→ 반짝반짝 일어났다

13쪽


그들이 산 땅은 대부분 부재지주가 소유한 곳이었다

→ 그들이 산 땅은 거의 먼임자가 거느린 곳이다

→ 그들은 으레 먼내기가 품던 땅을 샀다

→ 그들은 흔히 바깥임자가 쥔 땅을 샀다

18쪽


보통 개인이 사유 재산으로 땅을 소유할 수 없었다

→ 누구라도 따로 땅을 거느릴 수 없었다

→ 누구든지 땅을 내것으로 쥘 수 없었다

18쪽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가 시작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진다

→ 팔레스타인 죽음바다가 열렸고, 이는 오늘날까지 잇는다

→ 팔레스타인 떼죽음판에 나섰고, 이는 오늘날까지 그대로이다

→ 팔레스타인 피비린내가 벌어졌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온다 

41쪽


이런 종족 청소와 제노사이드의 행위가 벌어지기 전과 도중에

→ 이런 겨레밟기와 떼죽음바다가 벌어지기 앞서와 한복판에

→ 이런 겨레뜯기와 죽음질이 벌어지기 앞서와 한복판에

44쪽


하지만 스스로 떠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해 강제 이주가 여전히 의제로 남아 있었다

→ 그런데 스스로 떠나지 않을까 싶어 내쫓을 셈이었다

→ 그렇지만 스스로 안 떠날 적에는 몰아내려 했다

→ 그러나 스스로 떠나지 않는다면 쫓아내려 했다

46쪽


점점 더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농업 노동에서 밀려나는 가운데 판자촌이 등장했다

→ 팔레스타인사람은 차츰 흙을 못 짓고 밀려나면서 가난마을이 생겼다

→ 팔레스타인사람은 어느새 논밭일에서 밀려나면서 널집마을이 나타났다

50쪽


민족운동을 진두지휘하는 듯 보였다

→ 겨레물결을 끌어가는 듯 보였다

→ 겨레바람을 이끄는 듯 보였다

→ 겨레너울에 앞장서는 듯 보였다

79쪽


자신들의 계획이 성공하리라 확신하면서 세력을 규합하며 시기를 기다렸다

→ 저희 그림대로 이루리라 믿으면서 힘을 모아 그날을 기다렸다

→ 저희 밑그림대로 되리라 여기면서 무리를 모아 때를 기다렸다

84쪽


5백 개가 넘는 마을이 파괴되며, 소읍과 도시 대부분이 폐허가 된다

→ 500곳이 넘는 마을이 부서지며, 시골과 서울도 거의 잿더미이다

→ 500군데 넘는 마을이 무너지며, 작은골과 큰고을도 주저앉는다

92쪽


진정한 좌파가 전혀 없고, 심지어 이제 더는 진정한 평화 진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왼나래는 제대로 없고, 이제 더는 참답게 손잡는 두레도 없다

→ 거짓없는 왼날개는 없고, 이제 더는 밝게 어깨동무하는 무리도 없다

18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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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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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5.2.

책으로 삶읽기 1115


《보통의 존재》

 이석원

 달

 2009.11.4.



《보통의 존재》(이석원, 달, 2009)를 2026해에 들어서고서야 읽었다. 이런 책이 있는 줄 진작 알았으나, 예전에는 책집마실을 하며 들추고서 이내 내려놓았다. 속말을 꾸밈없이 드러낸 듯싶으면서, ‘사랑’이 아닌 ‘끌림·살섞기’를 마치 ‘사랑’으로 잘못 여기면서 풀어내는 글은 마음에도 가슴에도 눈에도 와닿지 않는다. 우리 시골집에 놀러온 어느 이웃님이 모는 달구지를 큰아이하고 얻어탄 적이 있는데, 그때 이웃님 달구지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언니네 이발관〉이었다. 큰아이가 문득 누구 노래냐고 묻기에 그자리에서는 좀처럼 안 떠올랐는데, 그날 내내 머리를 쥐어짜고 보니 〈언니네 이발관〉이란 이름이 떠올랐다. 들은 지 거의 서른 해가 된 노래이니 가물거릴밖에. 이모저모 찾아보니 그 〈언니네 이발관〉을 이룬 사람이 이석원 씨요, 《보통의 존재》를 쓴 줄 이제서야 알아채고는 다시 챙겨서 읽어 보려 했는데, 아무래도 글은 접고서 노래를 하셔야지 싶다. 또는 ‘끌림·살섞기’라는 ‘허물’을 다 내려놓는, 그야말로 ‘허물벗기’를 하고서 나비로 거듭날 수 있다면, 비로소 ‘사랑’이 무엇인지 천천히 눈뜰 테니, 끌림과 살섞기를 몽땅 씻어낸 뒤에 글을 쓰시기를 빈다.


ㅍㄹㄴ


그런 사람들에게 손잡기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들은 왜 손을 놓지 않을까. 나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굳게 결속한 이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더 이상 서로를 봐도 가슴이 뛰지 않고 키스는 짜릿하지 않을 때, 잡은 손은 무디어 별 느낌이 없을 때, 17쪽


+


모르는 남녀가 거리낌 없이 하룻밤을 보내는 원 나잇 스탠드가 요즘처럼 횡행하는 세상에서도

→ 모르는 둘이 거리낌없이 하룻밤을 보내는 요즘이어도

→ 모르는 두 사람이 거리낌없이 몸을 섞는 요즘이어도

→ 모르는 순이돌이가 거리낌없이 밤을 노는 요즘이어도

14쪽


여전히 황홀한 사랑을 시작한다. 물론 시작은 시작일 뿐이다

→ 아직 반짝이며 사랑을 한다. 다만 처음은 처음일 뿐이다

→ 늘 새롭게 사랑을 한다. 그러나 새로워도 첫발일 뿐이다

16쪽


그런 사람들에게 손잡기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 그런 사람들한테 손잡기란 어떤 뜻일까

→ 그런 사람들은 손을 잡는 뜻이 있을까

17쪽


불결함도 나로선 그리 불쾌하지 않게 묵과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생활 범주 안의 더러움이기 때문이다

→ 더러워도 나로선 그리 싫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데, 다 내 삶이기 때문이다

→ 더러워도 내 삶이니까 그리 안 거슬려 넘어갈 수 있다

→ 더러워도 내 삶이라 그리 거북하지 않다

→ 더러워도 난 그렇게 산다

31쪽


나도 그런 아이 중 하나였다

→ 나도 그런 아이였다

→ 나도 그랬다

37쪽


산책이란 누군가에겐 즐거움이요, 또 어떤 이에겐 건강을 위한 몸의 움직임이기도 하고, 또다른 누군가에겐 고민과 생각의 장이 되어주기도 한다

→ 누구는 마실하며 즐겁고, 누구는 튼튼하려고 몸을 움직이고, 누구는 근심과 생각하는 마실이기도 하다

→ 누구는 거닐며 즐겁고, 누구는 걸으며 튼튼하고, 누구는 걷기에 걱정과 생각을 풀어낸다

48쪽


서로 안 맞으면 그게 바로 상극 아닌가

→ 서로 안 맞으면 바로 남남 아닌가

→ 서로 안 맞으면 따로놀지 않는가

→ 서로 안 맞으면 바로 갈라서지 않나

17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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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거울 - 왜곡된 반사 또는 부풀려진 신화
손석춘 지음 / 시대의창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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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5.1.

책으로 삶읽기 1114


《박근혜의 거울》

 손석춘

 시대의창

 2011.5.18.



《박근혜의 거울》(손석춘, 시대의창, 2011)을 돌아본다. 2011해에서 2026해 사이에 나라지기라는 자리에도 섰다가, 사슬터에도 들어갔다가, 이제는 풀려나서 혼자 살아가기도 하는 한 사람이 스스로 어떤 ‘옷’을 입은 모습인가 하고 짚는 얼거리이다. 글쓴이는 ‘저쪽’에 있는 무리가 ‘겉옷’으로 사람들을 홀리면서 ‘저들’ 길미만 챙긴다고 짚는다. 곰곰이 보면 저쪽뿐 아니라 이쪽과 그쪽도 매한가지이다. 이쪽 저쪽 그쪽 모두 ‘겉옷’으로 숨기고 감추고 꾸미는 채 사람들을 홀린다. 우리는 뭘 믿고서 ‘바람몰이(지지율 조사)’를 할 수 있을까? 어느 자리에 선 사람이 정작 속으로 무슨 마음이요 꿍꿍이인지 하나도 모르는 채 겉옷만으로 ‘좋다·나쁘다’를 찍을 뿐이지 않은가? 지난 1997해에 나라지기로 뽑힌 분은 〈DOC와 함께 춤을〉이라는 노래를 〈DJ와 함께 춤을〉이라고 바꾸어서 온나라에 퍼뜨렸다. 우리는 그동안 어떤 춤을 누구하고 펴는 하루일까? 곧 다가오는 뽑기판에서 또 어떤 노래가 흘러넘칠까? 우리는 겉옷이 아니라 속낯을 들여다보면서 가늠하는 눈을 틔울 수 있을까?


ㅍㄹㄴ


박근혜 자신은 물론, 대다수 언론이 1980년대와 90년대 박근혜의 삶을 절망, 실의, 울분, 소름, 은둔의 ‘기호’로 ‘해설’하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분석이다. ‘잃어버린 18년’이라는 규정도 성급하고 일면적이다. 왜 그런가? 박근혜는 그 18년 동안 영남대학 재단이사장, 육영재단 이사장,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더구나 18년 내내 “조용히 살아”간 것도 아니다 … 생각해 보라. 나이 스물여덟 살에 대학 재단이사장이라면 결코 단순한 직위가 아니다. 다만 유신체제의 퍼스트레이디에 비해 ‘작은 자리’였을 뿐이다. 38쪽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는 유세장에서 〈새마을 노래〉를 계속 틀고 “경제를 살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 수 있도록 한 표를 부탁한다”며 대구 지역의 ‘박정희 향수’를 한껏 자극했다. 45쪽


이명박의 ‘샐러리맨’ 신화는 그가 현대건설 회장 자리에 앉아 있던 1990년에 한국방송이 방영한 드라마 〈야망의 세월〉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널리 퍼졌다. 195쪽


+


봄은 순탄하게 올 수 없었다

→ 봄은 부드럽게 올 수 없었다

→ 봄은 멀쩡하게 올 수 없었다

→ 봄은 그냥 올 수 없었다

13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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