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적인 평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부희령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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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7.4.

인문책시렁 436


《가장 사적인 평범》

 부희령

 교유서가

 2024.9.4.



  우리집에는 ‘에어컨’이 없습니다. ‘선풍기’도 안 씁니다. 이미 저는 1995년에 어버이집을 떠날 무렵부터 ‘맨손’과 ‘온몸’으로 살아가려는 뜻이었고, 빨래도 집안일도 으레 손발로 일굽니다. 이불도 손으로 빨래하고, 저잣마실은 등짐으로 나릅니다. 나라에서는 가난집(빈민)한테 에어컨을 들이는 일을 꽤 예전부터 했고, ‘에어컨을 돌리는 가난집이 치를 삯(전기세)’까지 내주는 줄 알지만, 이런 이바지를 모두 안 받기로 했습니다. 인천에서는 동사무소 일꾼이, 전남 고흥에서는 면사무소와 군청 일꾼이 놀라더군요. “아니, 왜 공짜인데 안 받으려고 해요?”


  낱말책(국어사전)을 쓰느라 온갖 책을 끝없이 읽지만, 언제나 주머니를 털어서 장만합니다. 펴냄터에서 보내주는 책을 으레 손사래칩니다. 그냥 보내주는 책이라 하더라도 ‘읽어 보고’서 ‘아닌 책은 아닙니다’ 하고 느낌글을 씁니다. 이 삶터에 이바지할 책이 아닌, 돈장사를 바라보면서 내놓는 책은 티가 나지 않나요? 티가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돈을 바라는 글과 그림과 빛꽃(사진)은 다 티가 납니다. 돈바라기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돈만 바라니 안쓰러울 뿐입니다. 먼저 글과 그림과 빛꽃을 가다듬고 갈고닦으면서 스스로 빛날 노릇이지 않을까요?


  까칠글을 쓰더라도 책을 꾸준히 보내는 펴냄터는 딱 한 곳이고, 글님도 딱 한 분 있습니다. 까칠글을 받아들이는 펴냄터하고 글님을 보면, 언제나 조금씩 스스로 거듭나는 대목을 엿봅니다. 이는 거꾸로 보아도 매한가지예요. 우리는 서로 배우려고 까칠하게 잔소리를 할 노릇입니다. 그냥그냥 좋게좋게 넘어가 주면, 서로 굴러떨어집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아기가 혼자서 서려고 할 적에 손을 안 잡습니다. 어버이는 아이가 걸음마를 떼려고 할 적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기다립니다. 어버이는 아이가 다릿심을 키우는 동안 일부러 안 업고 안 안습니다. 어미새는 새끼새가 둥지나기를 할 때부터 먹이를 더는 안 줍니다. ‘까칠읽기’에 ‘까칠쓰기’란, 누구나 스스로 까풀(꺼풀)을 벗고서 ‘껍데기’ 아닌 속빛으로 깨어나라고 북돋우는 길입니다.


  《가장 사적인 평범》을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꽤나 까칠하게 적는 글발이 반갑습니다. 다만 ‘너무 여린 까칠글인걸?’ 싶더군요. 이른바 ‘부드럼 까칠글’입니다. 조금 더 ‘매콤맛 까칠글’로 펼쳐냈다면 한결 빛났을 만하다고 느껴요. 우리나라 민낯을 신나게 벗겨낼 적에 이 나라가 아름답게 거듭날 길을 다같이 찾아나설 수 있습니다. 반드르르한 겉치레를 몽땅 벗겨내지 않고서야 새길을 못 갑니다.


  먼나라 옛말에 “새 포도술은 새 자루에”가 있어요. 새 자루 아닌 헌 자루에 새술을 담그면 어찌될까요? 퀴퀴하고 케케묵은 냄새와 맛이 고스란히 밸 뿐 아니라, 새로 빚은 술이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름지기 글빗(비평·평론)은 가장 까칠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글꾼은 글빗을 읽고서 울어야 합니다. 글꾼을 울리지 않으면 글꾼은 못 거듭납니다. 우리나라는 글빗과 글꾼이 짝짜꿍 장난질이 지나칩니다. 되도 않는 글을 끝없이 치켜세우면서 잔뜩 팔아치우니, 어느새 우리 스스로 눈이 멀고 말아요. “눈뜬 장님”인 글빗과 글꾼이 판치는 나라입니다.


  부디 “그저 나다운 나(가장 사적인 평범)”를 더 까칠하게 여미어서 선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 그대로 “그저 나다운 나”이면 됩니다. 껍데기를 벗고서 “나다운 나”를 품을 줄 알아야 “너다운 너”을 알아보게 마련이에요. 우리는 서로 “눈감은 눈”으로 마주할 노릇입니다. 겉모습에 사로잡히는 겉눈이 아닌, 속빛을 마주하는 ‘감은눈’으로 보는 눈길을 키울 일입니다.


ㅍㄹㄴ


(백화점) 점원은 나를 흘낏 보더니 빠르게 말했다. “그거 비싼 거예요.”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듣고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한 말이지? (40쪽)


그해 겨울, 종로의 서점 앞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싶었던 사람은 너였을까? (47쪽)


(슬로베니아 분이) 대답했다. 너희들은 사회주의를 몰라서 그래. 속속들이 알아봐라. 똑같이 지어진 아파트 안 통로를 걸어가면, 어느 집에서나 할 것 없이 양배추 삶는 냄새가 나지. 양배추가 어떤 채소인지 아니? 냉장고에 넣어두면 한 달 동안 썩지 않는 거란다. 사회주의란 그런 거야. (96쪽)


이모는 일 년에 한두 번쯤 우리집에 불쑥 찾아왔다. 명절도 아니고 어머니 생일도 아니었다. 초인종 소리가 들려서 대문을 열면, 흐릿한 빛깔의 한복 차림에, 보따리를 가슴에 안은 이모가 서 있었다. (139쪽)


사람들은 정말 자유를 원하는 걸까. (174쪽)


인간을 바라볼 때 드론의 시점을 취하기 쉬운 위치가 있다. 한 집단의 리더, 군대의 지휘관, 대통령, 기업의 경영자, 고위 관료처럼 높은 지위와 권력이 밀어올려놓은 자리들이다. (187쪽)


+


《가장 사적인 평범》(부희령, 교유서가, 2024)


요즘에는 부캐라고 부르며 여러 자아를 운용하는 사람을 능력자로 여긴다

→ 요즘에는 곁빛이라 하며 여러 나를 돌보는 사람을 대단하다고 여긴다

→ 요즘에는 다른꽃이라며 여러 나를 부리는 사람을 빼어나다고 여긴다

10쪽


경로석에 앉아 마음껏 연애소설 읽는 할머니로

→ 어른자리에 앉아 마음껏 사랑글 읽는 할머니로

→ 늙님칸에 앉아 마음껏 사랑얘기 읽는 할머니로

11쪽


비행기를 탈 때마다 심한 불안을 느낀다. 그래도 아직은 호흡곤란이 오거나 기절한 적은 없다

→ 날개를 탈 때마다 몹시 두렵다. 그래도 아직은 헐떡이거나 넋나간 적은 없다

→ 하늘을 날 때마다 무척 떤다. 그래도 아직은 숨가쁘거나 뻗은 적은 없다

17쪽


식당에 가면 서빙하는 이들이 무척 바쁠 때가 있다

→ 밥집에 가면 나르는 이들이 무척 바쁠 때가 있다

→ 밥집에 가면 일하는 이들이 무척 바쁠 때가 있다

52쪽


류블랴나에서 십오 년을 살았다는 교민의 말이 떠올랐다

→ 류블랴나에서 열닷 해를 살았다는 이웃 말이 떠오른다

→ 류블랴나에서 열다섯 해를 산 한겨레 말이 떠오른다

98쪽


누군가가 빈정거린 것처럼 운하에서 물비린내나 하수도 썩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 누가 빈정거리듯 물골에서 물비린내나 밑길 썩는 냄새는 나지 않았따

→ 누가 빈정거리듯 뱃길에서 물비린내나 구정길 썩는 냄새는 나지 않았따

106쪽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전신마취를 하고

→ 아흔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온재움을 하고

→ 아흔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온몸잠을 하고

120쪽


필요 없는 책, 옷, 가구 등속을 모두 버렸다

→ 쓸데없는 책, 옷, 세간 들을 모두 버렸다

→ 안 쓰는 책, 옷, 살림을 모두 버렸다

17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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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회사의 입장에서 이야기할까? - 나의 사회학 에세이
박대리 지음, 안다연 그림 / 영수책방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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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7.1.

인문책시렁 435


《우리는 왜 회사의 입장에서 이야기할까?》

 박대리 글

 안다연 그림

 영수책방

 2021.4.22.



  《우리는 왜 회사의 입장에서 이야기할까?》는 이미 책이름에 줄거리하고 맺은말이 다 나온 셈입니다. 굳이 안 물어보아도 누구나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낱말을 하나만 돌려도 모든 곳에서 마찬가지인 줄 느낄 만합니다. “우리는 왜 학교 눈으로 이야기할까?”라든지 “우리는 왜 대통령이 말하는 대로 따를까?”라든지 “우리는 왜 나라가 시키는 대로 할까?”라든지 “우리는 왜 서울에 눌러앉아서 이야기할까?”처럼 되물을 노릇이에요.


  어릴적부터 길듭니다. 어릴적부터 남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걷는 길이 익숙합니다. 어른이 보내니까 들어가야 하고, 남들도 다 하니까 따라가야 하고, 뒤처지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종이(졸업장·자격증)가 없으면 돈벌자리를 못 찾으면서 그만 굶어죽을 수 있다고 걱정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몸마음에 순이돌이(남녀)라는 빛이 나란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매한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은 몸마음을 넋으로 돌보고 얼로 감쌉니다. 모든 사람은 몸마음에 삶을 담고서 살림을 짓는 동안 사랑을 스스로 깨달아 둘레에 넉넉히 펴는 하루입니다. 그런데 어릴적부터 길들고 물들고 젖어들면서 ‘나(참나·참다운 나)’를 잊고 잃어요. 오늘날 이 나라와 배움터와 마을과 책은 온통 “내가 나를 잊고 잃으면서 나라가 등을 떠미는 대로 톱니바퀴 노릇을 하는 서울살이”에 얽매이는 얼거리입니다.


  아이를 길들여야 일자리를 얻어서 돈을 법니다. 아이를 길들여야 나중에 “길든 어른”으로 굳어서 “서울을 안 떠납”니다. 아니, 서울을 벗어나야 한다는 마음이 아예 싹트지 않아요. 아이를 길들이면서 아주 메마른 마음으로 바꾸어 놓거든요. 배움터에서 책읽기를 시키기는 하되, 다 다른 아이가 어느 책을 읽건 다 다르게 느껴서 다 다르게 사랑을 찾아나가도록 북돋우지 않아요. 모든 책을 온통 ‘독서지도’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똑같이 외워서 대학입시에 맞도록 옳아맵니다.


  이미 어린이집과 배움터를 다니는 동안 “나라가 시키는 대로 길들”었기에, “열린배움터를 마치고서 일터에 들어갈” 적에는 아주 길든 쳇바퀴입니다. 스스로 살림을 짓고 건사하는 보금자리를 돌아보는 하루일 때라야 비로소 ‘나’를 알아보고서 ‘너’를 마주하는 ‘우리’라고 하는 푸른별 숨결을 되찾습니다.


ㅍㄹㄴ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동료에게 당당하게 할 수 있지? 저런 발언은 고리타분한 경영자쯤 되어야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대리, 과장 정도만 되도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언어를 남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16쪽)


절이 이상하다면 절을 고쳐 나가면 될 일인데 절은 바뀔 생각이 없고 선택의 몫을 중에게 맡긴다. (53쪽)


책마다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고 책은 많이 읽는 것보다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할 텐데 그런 건 상관없단다. 단지 몇 권을 읽는지가 중요했고 많이 읽기만 하면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87쪽)


조직 안에 있는 건 사람이다. 사람이 바뀌다 보면 구조도 따라서 변할지 모른다. (196쪽)


+


《우리는 왜 회사의 입장에서 이야기할까?》(박대리, 영수책방, 2021)


역지사지의 가르침을 받아왔거늘 잊고 있었다

→ 거울을 배워 왔거늘 잊었다

→ 뒤집어보기를 배웠거늘 잊었다

9쪽


회사 동료 여럿과 술자리를 가졌다

→ 일동무 여럿과 술자리를 했다

→ 일벗 여럿과 술자리에 갔다

20쪽


어쨌든 결국에는 교육이 시작된다. 나는 너를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 어쨌든 마침내 가르친다. 나는 너를 가르쳐야만 하니까

30쪽


위의 발언만 놓고 본다면 누가 더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 이 말만 놓고 본다면 누가 더 버릇없는 사람이라고

→ 이 소리만 놓고 본다면 누가 더 건방진 사람이라고

37쪽


난 성실하다 생각하는데 누군가는 내가 성실하지 않다고 한다

→ 난 애쓴다 여기는데 누구는 내가 애쓰지 않는다고 한다

→ 난 땀흘린다 보는데 누구는 내가 땀을 안 흘린다고 한다

8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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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우주가 산업이 되는 뉴 스페이스 시대 가이드
켈리 제라디 지음, 이지민 옮김 / 혜윰터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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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6.26.

인문책시렁 423


《우주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켈리 제라디

 이지민 옮김

 혜윰터

 2022.8.15.



  무슨무슨 때(시대)라고 하는 말이 나그네처럼 떠돌곤 합니다. 우리 삶터를 돌아본다면, ‘옛조선’이던 때를 지나고 ‘세나라·네나라·닷나라’라 할 때를 지나고 ‘봉건왕조’나 ‘중국 사대주의’라는 때를 지나고 ‘식민지’라는 때를 지나고 ‘한겨레싸움’에 ‘군사독재’라는 때를 지났습니다. 이러다가 ‘세계화’에 ‘누리’라는 때에 이른다고도 합니다.


  이런저런 때를 더듬자면, 으레 나라지기나 벼슬아치 같은 몇몇 사람들 힘으로 이끄는 얼거리입니다. ‘나라’는 있되 ‘나’는 없어요. ‘나라’만 보이고 ‘사람’은 안 보입니다.


  《우주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푸른별 바깥을 오가는 길하고 얽히는 일 가운데 하나를 맡은 분이 쓴 글입니다. 왜 푸른별 바깥을 오가는 길을 열 만한지 알리는 글이요,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맡는지 들려주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누리때(우주시대)에 이르렀다는 오늘, 푸른별은 얼마나 푸르게 어울리는지 궁금합니다. 푸른별 바깥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배우면서 푸른별 살림길을 열려는 뜻인지 궁금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돈을 쏟아부어야 오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면 푸른별 바깥을 못 오갈는지 궁금하고, 이 어마어마한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누리배(우주선)를 타고서 푸른별 바깥으로 나갈 적에는 무엇을 보고 살피면서 푸른별로 돌아올까요. 누리배에서 바라보아야 온누리를 넓거나 깊게 살피거나 알 만할까요. 누리마실을 하는 길은 누리배가 아니고 없을까요.


  예나 이제나 별이 흐릅니다. 예나 이제나 숲사람과 들사람과 멧사람과 바닷사람은 별바라기를 하면서 살림을 헤아렸습니다. 들숲메바다를 품은 누구나 별읽기를 누리면서 이 숨빛을 아이한테 물려주었습니다. 이제까지 온사람은 돈이 아닌 마음으로 별빛을 읽어서 부스러기(지식·정보)가 아닌 사랑을 담은 이야기로 아이한테 이어주었습니다.


  사람을 이루는 몸도 누리요, 사람이 익히는 모든 이야기를 담는 마음도 누리이며, 사람이 마주보는 눈길도 누리입니다. 사람을 이끄는 넋도 누리이고, 사람이 짓는 사랑도 누리예요. 오늘날이 ‘누리때’라면, 돈으로 올려세우는 잿더미가 아닌, 마음으로 나누면서 함께하는 누리길을 열 때라는 뜻일 텐데 싶습니다.


ㅍㄹㄴ


이듬해 나치 독일이 전쟁에 패배하자 연합국은 앞다퉈 독일이 개발한 강력한 기술을 차지하려 했다. (28쪽)


미국 전역에는 약 40만 명의 남녀가 아폴로 계획에 참여하고 있었다. 2만 개에 달하는 기업과 대학도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36쪽)


흐릿한 먼지구름은 우리 은하 귀퉁이에 자리한 가스나 먼지 성단이 아니라 관측 결과 팽창하고 있는 우주 건너편에 자리한 자체 은하였다. (53쪽)


스푸투니크호 오직 탐사 목적만을 위해 만들어졌을 거라는 환상에 빠진 사람들을 위래 본래 우주는 우주 개발 경쟁 초창기부터 군사 영역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07쪽)


#NotNecessarilyRocketScience #ABeginnersGuidetoLifeintheSpaceAge

#KellieGerardi


+


《우주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켈리 제라디/이지민 옮김, 혜윰터, 2022)


태양으로부터 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았으며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하기에 아주 적절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 해한테서 알맞게 멀어서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았으며 얼지 않은 물이 있을 만한 터전이었다

→ 해하고 알맞게 떨어져서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았으며 물이 얼지 않을 만한 곳이었다

17쪽


특정 누군가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이들이 인류의 생존에 이바지하고 있다

→ 어느 누가 아니라 숱한 사람이 이 별을 살린다

→ 몇몇이 아니라 숱한 사람들이 서로 살리며 돕는다

60쪽


평생 자신의 가치와 적성을 입증한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자격이 아닐까 하는 내 안의 우려를 잠재워야 한다

→ 이제껏 제 값어치와 빛을 밝힌 몇몇만 누리지 않나 하는 걱정을 잠재워야 한다

→ 이제껏 제 몸값과 밑동을 밝힌 몇몇만 되지 않나 하는 근심을 잠재워야 한다

61쪽


우주 분야의 아웃사이더였던 내가 인사이더가 된 구체적인 순간을

→ 별누리 바깥이던 내가 따로 안쪽이 된 때를

→ 별밭 바깥에 있던 내가 이른바 안사람이 된 때를

100쪽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무척 궁금했다

→ 처음 이야기를 듣던 날 몹시 궁금했다

146쪽


물론 나의 동료 가운데에도 이 같은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 다만 일벗 가운데에도 이 같은 말을 내치는 이가 있다

→ 그러나 일동무도 이 같은 말을 꺼리곤 한다

167쪽


내가 올린 첫 게시물이 입소문이 났을 때

→ 내가 올린 첫글이 알려졌을 때

→ 내가 처음 올린 글이 퍼졌을 때

206쪽


한 가지 덧붙인다면 모든 것을 건 뒤의 혼돈을 기꺼이 껴안으라고 말하고 싶다

→ 한 가지 덧붙인다면 모두 건 뒤에 어지러워도 기꺼이 껴안으라고 말하고 싶다

21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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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지 마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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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6.15.

인문책시렁 432


《눈감지 마라》

 이기호

 마음산책

 2022.9.25.



  찰칵이를 늘 쓰되 으레 헌것으로 장만합니다. 마지막으로 새것을 장만해 본 적이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언니가 장만해 준 무릎셈틀을 열 해째 쓰다가 지난해에 숨을 거두어 떠나보낸 뒤, 살림돈을 어찌저찌 헐어서 헌것으로 장만했는데, 셈틀집에서 들려주는 달콤말에 홀렸는지 자꾸 간당간당하면서 숨이 넘어가려고 합니다.


  시골집을 떠나서 바깥일을 할 적에 늘 곁에 둘 무릎셈틀입니다. 어떡해야 하느냐 한참 곱씹지만 뾰족한 길은 안 나옵니다. 지난이레에도 어제오늘도 간당간당 무릎셈틀을 붙잡고서 울지만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뻐근한 등허리를 쉬다가, 땀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고서 빨래를 하다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면서, 지난 한 해 애쓴 무릎셈틀을 쓰다듬으면서 속삭입니다. “고마워, 애썼어. 네가 나한테 와서 우리집에서 함께 지내기에 반가워.”


  《눈감지 마라》를 2025년 첫여름에 읽었습니다. 서울과 인천으로 일하러 다녀오는 길에 읽었습니다. 엄청나게 붐비고 시끄러운 복판마을(센트럴시티)에서 첫 쪽을 폈고, 한참 읽다가 눈을 드니 곧 시외버스를 탈 때이더군요. 한 시간 즈음 책에 파묻혔습니다. 눈을 들고 나서야 둘레가 그야말로 왁자지껄한 줄 다시 느꼈습니다.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마저 읽는 동안, 이 시외버스에서 떠드는 다른 손님 말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습니다. 마지막 쪽을 덮고서 고개를 들고 보니, 둘레 적잖은 손님이 참으로 시끌시끌 손전화로 수다를 떨더군요.


  이기호 님이 쓴 《눈감지 마라》는 아주 잘 엮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두 젊은이는 그다지 ‘돈을 쓰는 일’이 없어 보이는데, 끝없이 곁일을 하면서도 왜 빚을 못 갚거나 목돈을 못 모으는지 꽤 알쏭달쏭했습니다. 모르는 분은 그냥 모르는데, 서울과 큰고장에서는 나절삯(시급)으로 곁일을 하지만, 시골에서는 ‘통크게’ 곁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시골에는 밥집도 술집도 찻집도 적습니다만, 요사이는 ‘이웃일꾼’이 시골에 어마어마하게 많은데다가 나들꾼(관광객)이 두멧시골로 꽤 찾아다녀요. 그래서 밥집과 술집과 찻집이 드물지는 않고, 이제 웬만한 시골 면소재지까지 나들가게(편의점)가 있습니다. 시골은 한 해 내내 다 다른 일거리가 줄줄이 있어요. 논과 밭뿐 아니라 공장이 되게 많은 시골이에요. 바닷가라면 김공장까지 있습니다. 젊은이가 김공장에서 한 해만 일해도 빚을 다 갚고도 목돈이 남습니다.


  그렇지만 젊은이가 뜻을 펴거나 꿈을 이루는 길을 열기는 만만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나라와 고을에서 젊은이를 북돋우려는 길을 여러모로 내려고 힘쓰기는 하지만, 막상 모든 젊은이한테 안 와닿기도 하고, 가난한 젊은이한테는 아주 안 와닿기까지 합니다. 또한, 차츰 ‘젊은돌이’가 설 만한 자리가 얕고 버거워요. 지난날 ‘젊은순이’가 겪어야 하던 높다랗고 까마득한 담벼락을 이제는 젊은돌이가 꽤 버겁게 맞닥뜨리면서 헤매기도 합니다.


  줄거리를 알뜰살뜰 품어내는 손끝에 ‘시골살이’와 ‘일자리’와 ‘곁일’을 조금 더 깊넓게 짚으면서 얼거리를 살피려 했다면 한결 나았겠다고 느낍니다. 앞으로 글을 쓰실 적에는, 겉훑기로 그려내고서 그치기보다는 몸소 여러 ‘시골일’과 ‘시골일자리’를 해보고 나서, 살갗과 삶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로 여미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ㅍㄹㄴ


대학 졸업과 동시에 그들은 대번에 채무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냥 조용히 대학만 다녔을 뿐인데도 정용은 800만 원, 진만은 1200만 원 빚이 생겼다. (19쪽)


정용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도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모두 혼자 사는 사람들이었다. 연차나 반차, 월차 같은 것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코인 세탁소를 이용하지도 않는 사람들이었다. (70쪽)


그래, 사는 게 팍팍하지 않으면 한국 현대사의 쟁점들이 궁금하기도 하겠지. 최저임금이나 고용 상황이니 하는 것들보다, 한국 현대사의 쟁점들도 만만치 않게 중요한 거겠지. (98쪽)


“너 왜 가난한 사람들이 화를 더 많이 내는 줄 알아? 왜 가난한 사람들이 울컥울컥 화내다가 사고치는 줄 아냐구!” (112쪽)


진만이 어렸을 땐 무슨 돌림노래처럼 하루건너 한 번씩 이웃집에서 악다구니가 들려왔다.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 누군가 서럽게 우는 소리, 또 그 사람들을 말리는 목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이젠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143쪽)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늘 무언가가 묻어 있거나 작은 것들이 떨어져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아이들 옆에서 계속 계속 그걸 치우다 보면 어쩐지 어떤 수치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199쪽)


진만이 죽었다는 것,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국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 차가운 길에 오랫동안 홀로 누워 있었다는 것, 그 모든 것이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았다. (294쪽)


“나 여기 올라와서 아직까지 한 명도 만난 사람이 없어요. 형 말고 말해본 사람도 없고.” (314쪽)


+


《눈감지 마라》(이기호, 마음산책, 2022)


엄지손가락만 해져 있었다

→ 엄지손가락만 하다

→ 엄지손가락만큼 작다

11


다른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 다른 무엇이 되어 가는 듯했다

→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듯했다

38


그게 다 자신의 기초학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 이는 다 제 밑동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 다 제 밑머리가 어리숙하기 때문이라고

→ 다 제 바탕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41


가끔씩 놀라기도 했으니까

→ 가끔 놀라기도 했으니까

124


바로 고향인 무안으로 내려갔다

→ 바로 둥우리 무안으로 갔다

→ 바로 보금자리 무안으로 갔다

158


오래된 구옥 20여 채가 모여 있는 작은 동네였다

→ 오래된 집 스무 채 즈음 모은 작은 마을이다

→ 옛집이 스무 채 즈음 모인 작은 마을이다

261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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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 결혼한 여자들의 페미니즘
엄마페미니즘탐구모임 부너미 지음 / 민들레 / 2019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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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6.10.

인문책시렁 418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부너미

 민들레

 2019.2.28.



  ‘마누라’가 높임말이라 하더라도, 이 낱말을 쓰는 사람이 ‘사람답지 않은 마음’이라면, ‘마누라·마님’ 모두 낮춤말인 듯 깎아내리려는 자리에 함부로 씁니다. ‘계집·가시내’는 낮춤말이 아닌 높임말이라고 할 만한 말밑이요 말뿌리이지만, 정작 숱한 사내는 ‘계집·가시내’를 “한짝(함께 살아갈 짝)을 깎아내리거나 얕보거나 놀리려는 마음을 듬뿍 얹어서 마구마구 내뱉”기 일쑤였습니다. 워낙 높임말이라 할 말밑이요 말뿌리였어도, 우리 스스로 어떤 마음으로 낱말 하나를 마주하느냐에 따라서, 낱말 하나는 엉겁결에 낮춤말 자리로 곤두박을 칩니다.


  ‘사내’를 가리키는 ‘머스마’는 ‘머슴’하고 같습니다. ‘머슴’이라 하면 낮은자리인 사람을 나타낸다고 여기지만, 정작 ‘머슴·머스마’가 같은말인 줄 알아채지 못 하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사내는 ‘머슴·머스마’라는 낱말을 능구렁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 ‘마누라·마님·마나님’과 ‘계집·가시내’라는 낱말은 아무렇게나 밟거나 깔본 나날을 꽤 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얄궂고 멍청한 나라입니다.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는 ‘아줌마’로 살아가는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그저 마땅한 일인데, ‘들빛(페미니즘)’을 밝히는 사람이 짝을 안 맺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랑(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이기에 꼭 짝을 맺어야 하지도 않습니다. ‘무지개(페미니즘)’을 바라건 안 바라건, 짝을 맺고 싶으니 짝을 맺어요. ‘너나우리(페미니즘)’를 바라건 안 바라건, 짝을 안 맺고 싶으니 짝을 안 맺습니다.


  가시내가 다 똑같을 수 없고, 사내가 다 마찬가지일 수 없습니다. 한 걸음씩 떼는 사람이랑, 한 걸음조차 안 떼는 사람은 달라요. 겉몸이 순이라서 다르거나 돌이라서 다르지 않아요. 스스로 살아가고 살림하는 매무새에 따라 다릅니다. 전라도에 살거나 경상도에 살기에 다를까요? 터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터는 핑계나 겉모습입니다. 어느 곳에 살든 ‘스스로 짓는 마음’에 따라서 삶과 살림이 다릅니다. 전라도에 살아도 꼰대이면서 닫힌 사람이 수두룩하고, 경상도에 살아도 밝고 열린 사람이 숱합니다.


  짝을 맺고 살아가려고 한다면, 짝을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살림을 짓는 보금자리를 이루려 할 적에 서로 아름답게 사랑이면서 서로 한꽃같이 사랑을 나눌는지 생각하고 얘기하고 나누면서 길을 새롭게 열 노릇입니다. 짝을 안 맺고 살아가려고 한다면, 나로서는 짝을 안 맺을 마음이되, 스스로 이 터전에서 어느 자리에 서서 어느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웃·동무하고 어떻게 어울리는 살림과 사랑을 지으려 하는지 생각하고 얘기하고 나누면서 길을 새롭게 틔울 노릇입니다.


  짝맺기를 하기에 아기를 낳아서 돌봅니다만, 모든 사람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몸이지 않습니다. 짝맺기를 해서 아기를 낳더라도, 누구는 하나를 가까스로 낳고, 누구는 서넛이나 대여섯이나 열쯤 낳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기를 똑같이 낳아야 할 까닭이 없을 뿐 아니라, 짝을 맺고도 아기를 안 낳으면서 보금자리를 일굴 수 있습니다.


  아름길(페미니즘)은 그저 아름빛을 심고 가꾸는 길입니다. 온길(페미니즘)은 내가 나부터 사랑하면서 너를 너로서 나와 마찬가지인 하늘빛으로 헤아리면서 오롯이 살리는 온숲하나요, 온숲노래입니다. 참길(페미니즘)은 나부터 스스로 착하고 참하게 삶을 일구면서, 나너없이 너나하나라는 꽃길을 아름답게 하나로 이루는 나날입니다. 한사랑(페미니즘)은 바로서기이기도 하되, 들빛으로 하나를 이루는 한꽃사랑이라고도 여길 만합니다. 우리는 굳이 ‘페미니즘’이라는 낱말에 얽매일 까닭이 없습니다. 나답고, 너답고, 서로 하나이자 다 다른 하늘빛인 숨결과 넋인 줄 알아볼 노릇입니다.


  아기를 낳아서 딸아들 모두 푸른넋(페미니즘)을 품을 줄 알 적에 어깨동무(페미니즘)를 이룹니다. 온삶빛(페미니즘)을 바라보고 배우는 하루이기에 한꽃같이(페미니즘) 숲하나를 이룰 뿐 아니라, 빛길(페미니즘)을 여는 수수꽃(페미니즘)에 이르게 마련입니다. 낱말을 굴레처럼 붙잡지 않을 적에 스스로 싹틔웁니다. 낱말 하나는 낟알 하나와 같아요. 낱말도 말씨(말씨앗)입니다. 언제나 새롭게 스스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바다처럼 품으려는 눈길이기에 수수한꽃(페미니즘)을 피우고서 씨앗을 맺어서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꽃살림(페미니즘)을 바라보기에 너는 꽃순이요 나는 꽃돌이로서 함께 꽃사람으로 섭니다. 꽃이란, 스스로 곱게 피어날 줄 아는 빛이라는 뜻이면서, 스스럼없이 시들어서 씨앗을 맺고 열매로 무르익어서 뒷사람한테 자리를 내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시내도 꽃이고 사내도 꽃입니다. 그래서 암꽃과 수꽃인걸요. 암꽃과 수꽃이 나란하기에 온누리가 푸른별을 이루고, 암나무와 수나무가 어울리기에 이곳이 파란별로 반짝반짝 즐겁습니다.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는 여러 사람 여러 목소리를 다룹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니, 다 다르게 손을 잡습니다. 똑같이 손을 잡아야 하지 않습니다. 책이름을 “페미니스트는 어떻게 결혼하나요?”라든지 “페미니스트가 결혼을 하면?”쯤으로 붙이면 훨씬 나았으리라 봅니다. ‘페미니스트’라는 길이 ‘끝장’을 바라지 않는다면, 짝을 맺을 적에 어떻게 아름살림을 바라보느냐 하고 풀어내면 될 노릇입니다.


  목소리만 내기보다는, 말소리를 서로 주고받을 적에 어느 집에서나 아름살이(페미니즘)를 이룹니다. 이제껏 멍청한 사내가 머저리 같은 웃사내질(가부장권력)을 해왔기에, 이제부터 가시내가 웃가시내질을 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위아래 없이 어깨를 겯는 길일 때에 비로소 온숲넋(페미니즘)입니다. 잘잘못을 가리고 따지면서도, 오늘부터 함께 살림을 짓는 참눈을 틔우려고 하기에 풀꽃하나(페미니즘)입니다.



‘마누라’가 배우자를 향한 존칭이라면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70쪽)


나는 “한국 남자는 다 똑같아. 비혼, 비출산이 답이야”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남자라고 다 똑같지 않다. 차려주는 밥만 먹는 남자와 요리하는 남자는 다르고, 돈 버는 유세를 떠는 남자와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는 남자는 많이 다르다. (87쪽)


드라마 속 여자는 책을 읽지 않는다 … 과연 책은 누가 더 많이 읽을까? (97쪽)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아빠가 혼자 육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생가해 보면, 나 또한 서툴다는 이유로 남편의 육아 기회를 빼앗은 적이 있다. 나도 처음부터 육아를 잘했던 것은 아니라고 분노하면서도, 남편이 육아에 숙련될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독박이 더욱 견고해질 뿐이다. 놀랍게도 우리 아이를 가장 잘 돌보는 사람은 친정 아빠다. 어찌나 잘 놀아주는지 아이가 할아버지만 오면 온종일 생글생글 웃는다. (123쪽)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선택권을 넓히고 남성의 선택권을 줄여야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에게 젠더 경계를 넘나드는 더 넓은 선택지를 보여준다면, 여자아이들의 선택지도 자연스레 넓어질 것이다. (134쪽)


여자에게만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한 나에게 문제가 있었다. 남자아이에게만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하고 행동하라고 가르치면 충분할까? 남자아이도 자신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35쪽)


남편이 밤늦도록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애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육아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이고, 그건 내가 집에서 그의 몫까지 아이를 돌봤기 때문이라고 정신승리를 해왔지만 ‘돈 버는 유세’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155쪽)


나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으로 동료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을 먹었다. 그때 나는 고마워했던가. 도시락을 싸는 게 내 일이라 생각하고 노력이라도 해봤던가. 그때의 나는, 우리 엄마의 수고와 고마움도 모르고 밥을 받아먹는 지금 내 남편과 다르지 않았다. (223쪽)


+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부너미, 민들레, 2019)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 종이쪽도 맞들면 낫다?

→ 종이도 맞들면 낫다?

22쪽


노선이라고 해서 무슨 거창한 각오나 실천이 수반되는 건 아니었다

→ 길이라고 해서 무슨 대단한 다짐으로 뭘 해야 하지는 않는다

→ 갈피라고 해서 무슨 놀라운 뜻으로 뭘 펼쳐야 하지는 않는다

33


알림이 울린다. 조조할인을 받고

→ 울린다. 새벽에누리를 받고

→ 알려온다. 새벽마련을 하고

36


당연히 돕기 마련이다

→ 마땅히 돕는다

→ 으레 돕게 마련이다

63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고

→ 말은 생각을 다스린다고

→ 말에 따라 생각한다고

→ 말로 생각을 한다고

70


무언가가 변하면 그것을 따라 변화하는 것들이 있다

→ 무엇이 바뀌면 이에 따라 바뀌곤 한다

→ 하나가 바뀌면 덩달아 바뀌기도 한다

101


누군가 엄마기라는 말을 꺼냈다

→ 누가 엄마날이라는 말을 한다

→ 누가 엄마철이라고 말한다

121


내가 경력단절여성이었어?

→ 내가 일멎이였어?

→ 내가 쉬는순이였어?

→ 내가 일끊긴 사람이었어?

146


그건 내가 집에서 그의 몫까지 아이를 돌봤기 때문이라고 정신승리를 해왔지만

→ 내가 집에서 그이 몫까지 아이를 돌봤기 때문이라고 내세워 왔지만

→ 내가 집에서 그이 몫까지 아이를 돌봤기 때문이라고 둘러대 왔지만

155


이틀 머물고 난 후에 시가로 향했다

→ 이틀 머물고서 버시집으로 갔다

→ 이틀 머문 뒤에 벗집으로 갔다

199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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