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폭력들 - 미투 이후의 한국, 끝나지 않은 피해와 가해의 투쟁기
이은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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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4.17.

인문책시렁 419


《상냥한 폭력들》

 이은의

 동아시아

 2021.11.3.



  이제는 사라진 말이라고 할 ‘사랑의 매’일 텐데, 매질은 터럭만큼도 사랑일 수 없고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주먹질도 사랑이거나 사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매질은 조금도 상냥하지 않고, 주먹질도 이와 마찬가지로 안 상냥합니다.


  《상냥한 폭력들》은 “미투 이후희 한국, 끝나지 않은 피해와 가해의 투쟁기”라는 이름을 달고서 나옵니다. 도움이(변호사)로 일하면서 마주한 여러 추레짓을 살펴본 바를 풀어낸 줄거리라고 할 만합니다. 터무니없는 말인 ‘사랑의 매’를 빗대듯 ‘상냥한 폭력들’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힘과 돈과 이름을 앞세워서 추레짓을 벌이는 모든 이가 겉으로는 상냥한 시늉을 한다는 뜻이라고 해야 할 테지요.


  사랑이라면 누구한테나 언제나 사랑입니다. 몇몇만 귀여워하고 누구는 괴롭힌다면 사랑이 아닌 허울과 눈속임과 괴롭힘질입니다. 상냥하려면 누구한테나 언제나 상냥해야지요. 뭇사람 앞에서는 상냥한 얼굴로 웃지만, 뒤에서는 응큼하고 추레한 손을 뻗는다면 거짓이요 눈가림과 막짓입니다.


  이 책에서 살짝 다루듯 “법은 오래도록 기득권을 지키는 굴레”로 이어왔고, 오늘날에도 이 틀은 고스란합니다. 벼랑끝에 몰렸기에 도움손을 바라는 사람들은 도움이(변호사)한테 목돈을 쥐어주면서 겨우겨우 실낱같은 끈 한 오라기를 붙들 뿐입니다.


  어찌하면 “상냥한 얼굴로 감춘 주먹질”을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있을까요? 상냥한 얼굴로 주먹질을 감추는 모든 무리는 ‘일’과 ‘살림’을 안 하는 무리입니다. 그들은 일을 하는 시늉일 뿐, 늘 높은자리에서 힘과 돈과 이름을 주무를 뿐이고, 집에서 살림을 안 하게 마련이에요. 그래서 남을 괴롭히고 응큼하거나 추레한 짓을 일삼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바보짓을 할 짬이 없기도 하지만, 바보짓을 하려는 마음조차 없습니다. 살림하며 집을 돌보고 아이곁에 있는 사람도 멍청한 추레짓을 할 틈이 없기도 하지만, 추레짓을 하려는 마음이 처음부터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들끼리 있도록 놔두고서 나올 노릇입니다. 응큼하고 추레한 그들끼리 그곳(힘·이름·돈)을 주무르라고 냅두고서 다 나올 노릇이에요.


  추레짓이나 엉큼짓을 하는 이들한테 “징역 10년”이나 “벌금 1억 원”을 매긴들, 그들은 코웃음을 칩니다. 이들한테는 “손빨래·아기돌봄·집안일 20∼30년”을 매기면서 “논일·밭일 20∼30년”을 매기면 됩니다. 일도 살림도 해본 적 없는 그들한테는 일과 살림을 이제부터 모두 스스로 해야 밥 한 그릇 받을 수 있다는 값을 치르라고 하면 됩니다. 이렇게 나아가야 비로소 이 나라가 바뀔 만합니다.


ㅍㄹ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법원의 이해도가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준비를 하지 않은 것에서 기인했는지도 모른다. (8쪽)


법은 약자의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겠지만 오랜 시간 기득권의 입장에서 운용되어 왔다. (38쪽)


‘미투’ 이후 관련 사건이 더 많아졌느냐고 여러 사람이 묻는다. 그 질문은 정말이지 현실을 모르거나, 현실을 외면하는 질문이다. 성폭력은 한국 사회에서 언제나 있던 일이다. (42쪽)


애매하지만 불쾌하고, 권력 구조상 말하기 어렵고, 여러 번 참았는데도 계속 불쾌한 행동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힘희롱’이다. 성희롱은 ‘힘희롱’의 한 갈래일 뿐이다. (101쪽)


일상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이 합당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사랑의 매’라는 말로 포장된 교사의 폭력이 난무했다. (115쪽)


‘왜’라는 질문에 납득할 만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 피해자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자신이 당한 일이 성폭력이 아니라는 선언을 마주하게 된다. (153쪽)


가해자의 죽음으로 모든 법적 절차가 중단되면, 피해자의 권리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가해자의 죽음에 대한 동정은 이내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원망으로 치환된다. (267쪽)


+


《상냥한 폭력들》(이은의, 동아시아, 2021)


갑을관계가 명징한

→ 위아래가 뚜렷한

→ 종굴레가 또렷한

→ 더없이 굴레인

27쪽


별책부록처럼 함께 파생되는 논란이 있다

→ 곁딸리는 말썽거리가 있다

→ 덧붙는 골칫거리가 있다

→ 함께 도마에 오르는 일이 있다

5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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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김진주 지음 / 얼룩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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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4.11.

인문책시렁 414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김진주

 얼룩소

 2024.2.28.



  어릴적부터 곧잘 생각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돌이라는 몸이 아닌, 순이라는 몸을 입고서 태어났으면 어찌 살았을까?”입니다. 제가 태어날 즈음 둘레에서는 하나같이 딸이 태어날 줄 알았다고 여겼고, 어린날과 푸른날을 보내는 내내 마을이웃은 언제나 “딸 같은 아들”이 태어났다고 얘기했습니다. 요새야 “집안일 거들기뿐 아니라, 집안일 함께하기에다가, 집안일 도맡는” 사내가 제법 늘었으나, 1970∼90해무렵에는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고 하는 터무니없는 소리가 판쳤습니다. 누구보다 우리 언니가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서 고추가 떨어졌으면 사내는 밥먹지 말아야지.” 하면서 저한테 설거지를 어떻게 하고 부엌일은 어떻게 돕는지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여러모로 보면 우리 언니는 ‘일찍부터 깨인 사내’였습니다. 1987년에 나라지기를 새로 뽑을 적에 ‘백기완’ 같은 사람도 있다고 알려주기도 했거든요.


  김진주 님은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어떻게 이런 책을 써낼 수 있을까 싶어서 놀랍습니다. 글을 쓸 적마다 생채기에 멍울이 너울처럼 올라왔을 텐데, 끝까지 꾹꾹 참아내면서 매듭을 지었구나 싶어요. 글 사이사이 “얼마나 불타올랐는지(분노)” 적기도 했지만, 웬만한 불길을 잠재우고서, “앞으로 이 나라가 바꾸어 갈 가시밭길”이란 무엇인지 적어내려고 했다고 느낍니다.


  이 나라는 “모든 힘여린 사람이 살기 괴로운 곳”입니다. 힘있는 사람이라면 ‘순이돌이’ 누구라도 걱정없이 살아갈 만한 곳입니다. 어처구니없는 터전이기에 이 어처구니없는 굴레를 바꾸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꾸준히 있습니다. 다만, 함께 애쓰다가도 힘·이름·돈을 얻거나 거머쥐면 슬쩍 발뺌을 하는 사람이 꽤 많아요. 벼슬이나 높자리를 꿰차면 입씻이를 숱하게 합니다.


  길을 가던 ‘아무개’한테 주먹이나 발길질을 휘두르는 이는 “아무 생각이 없는” 삶입니다. ‘부산 돌려차기 남자’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말 그대로 ‘아무한테’나 발길질을 안 합니다. 생각 안 하는 사람이기에 그만 김진주 님이 이이 옆을 지나다가 벼락을 맞았습니다. 김진주 님이 아니었어도 이진주 님이나 박진주 님이 그 길을 지나갔다면 벼락을 맞았을 테고, 순이가 아닌 돌이였어도 벼락을 맞았을 만합니다. ‘덩치 큰 돌이’가 아닌 ‘덩치 작은 돌이’나 ‘어린이’였어도 벼락을 맞았겠다고 느껴요.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라는 책에 잘 나오기도 하는데, 오늘날 사슬터(감옥)는 사슬살이를 하는 사람을 매우 잘 먹이고 입히고 재웁니다. 사슬꾼(죄소·재소자)도 사람이기에 사람몫(인권)을 지켜주는 일은 올바르되, ‘재소자 인권’을 챙기기만 할 뿐, ‘재소재 참회·회개’에는 영 마음을 못 쓰는 나라이기까지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잘못과 말썽을 저지른 놈팡이는 ‘갈래(성별)·높이(지위)·돈(재산)’을 모두 떠나서, 사슬터에서 스스로 땀흘려 일하면서 제 밥값을 내야 하고, 사슬터에서 먹고자는 돈을 내야 맞습니다. 절집에서 열가름삯(십일조)을 내듯, 사슬꾼은 나라에 두가름삯(제 벌이 가운데 1/2을 바치기)을 내면서 값을 치를 일이고, 밭일에 쓸고닦기에 갖은 궂은일을 도맡아야 마땅합니다.


  이 나라가 틀을 반듯하게 세운다면, 잘못과 말썽이 터질 까닭이 없습니다. 멍청한 주먹질과 응큼질이 안 끊이는 까닭은 돈·이름·힘을 내세워서 여린 사람을 밟고 괴롭히는 틀이 버젓할 뿐 아니라, 때린놈이 제값을 톡톡히 치르는 일조차 드문 탓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나라뿐 아니라, 모든 나라는 “착한 사람을 괴롭히는 굴레”입니다. 모든 나라는 “나라가 시키는 대로 따르는 사람한테 떡과 고물을 나눠주는 틀”입니다. 착하게 살고 참하게 일하고 사랑으로 서로 아끼는 사람이 어떤 가시밭길을 걷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반성문’을 쓰면 뜬금없이 잘못값을 깎아주는 멍청한 짓이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빕니다. ‘반성문’이 아닌 ‘재산몰수’를 해서 아픈이한테 돌려주면 됩니다. 이 나라가 멀쩡한 틀로 거듭나려고 한다면, 이제부터 모든 벼슬자리를 ‘일자리’로 바꾸어야 합니다.


ㅍㄹㄴ


이게 바로 가해자의 이름이구나 하면서 스크롤하니, 바로 밑에 가해자가 반성문을 제출했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아니, 쟤는 누구한테 반성한다는 거야? 처음으로 가해자에게 진심으로 화가 났다. 반성문 같은 게 있는지도 처음 알았는데 도대체 뭐라고 적어놨을까 궁금했다. (46쪽)


흔히 ‘묻지 마 범죄’라고 하는 말은 사실 맞지 않는 표현이다. 아무 동기가 없는 범죄는 있지 않다. 모든 범죄에는 범인이 지닌 동기가 있다. (66쪽)


사건을 알고 나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 계속 비하하려고 애를 썼던 것 같아요. 아휴, 겁쟁이네. 그만큼 가소롭고 약한 인간이구나. 그런 식으로 가해자를 하찮게 여기고 나니까 조금 더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하고요. (100쪽)


구치소 안에서 치장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역겨워ㅕㅆ다. 착석하려는 순간에 눈에 띄었던 건 가해자의 죄수복이었다. 죄수복이 살에 파묻혀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얼마나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살이 저렇게 불려서 나왔을까 기가 찼다. (127쪽)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지만 아직도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는 생각을 여전하게 가지고 있다. 피해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에 백번 공감한다. 왜 이렇게 착하게 사는 사람들을 괴롭힐까. (165쪽)


국가는 피해자의 스케줄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212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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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벽 - 평화로운 일상을 가로막는 냉전의 유산
김려실 외 지음 / 호밀밭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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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4.5.

인문책시렁 413


《냉전의 벽》

 김려실과 일곱 사람

 호밀밭

 2023.6.25.



  여덟 사람이 다르지만 하나인 목소리를 낸 《냉전의 벽》을 읽었습니다. 이 나라 이 땅이 아직 얼마나 차디차게 얼어붙은 담벼락인지 짚는 줄거리입니다. 첫머리를 인천 이야기로 여는데, ‘자유공원·인천상륙작전·맥아더·월미도’를 하나로 묶어서 짚습니다.


  인천이 아닌 부산에서 이렇게 짚는 목소리를 들으니 낯설면서 새롭습니다. 이 네 가지를 하나로 묶는 이야기를 인천 바깥에서는 아예 들을 수 없다시피 하거든요. 다만 조금 더 “사람들 곁으로” 스미려고 했다면 ‘얼음담’을 훨씬 낱낱이 부드러이 풀어냈을 텐데 싶더군요.


  ‘그들(권력자)’끼리 쓰고 맺은 발자취가 아닌, ‘우리(사람들)’가 어떻게 살림을 지으면서 마을을 이루고 어깨동무를 하는 터전을 사랑해 왔는지 알아보려면, 말 그대로 “사람들 곁으로” 스밀 노릇입니다. ‘송학동·월미도’ 같은 이름으로 그치기보다는, 스스럼없이 마실해 보았다면 달랐을 텐데요. 송학동 1가와 2가와 3가를 벼슬자리(시청·구청·동사무소)에서 가르기는 하지만, 가만히 보면 그저 골목이자 마을입니다. 송학동 곁에 있는 관동과 송월동과 만석동과 화수동과 화평동과 송현동 모두 그저 사람골목이자 사람마을이요, 곳곳에 텃밭과 쪽마당과 나무가 그윽하면서 크고작은 새가 넘실넘실합니다.


  나라지기 아닌 우두머리는 이 땅을 ‘겨울담’으로 틀어막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멋도 모르고 나라가 시키는 대로 ‘싸움노래(전쟁가요·군가)’를 고무줄놀이뿐 아니라 모든 골목놀이를 하면서 그냥 부르면서 자랐어요. 순이가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부르기만 하지 않았어요. 돌이도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나 갖은 놀이를 하면서 함께 불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학술연구·학술논문’으로 뜻깊은 글감을 잡아서 되도록 쉽게 풀려고 애쓴 책이라고 느끼되, 왜 쉽게 풀려고 애썼나 싶어서 아쉽습니다. “쉽게 풀려고 애쓰기”보다는, 그저 “사람들 곁에서 나란한 사람으로 서서 살림하는 사람으로 있으”면 저절로 삶말·살림말·마을말·골목말로 모든 겨울나라를 녹일 새 줄거리와 이야기를 펼쳤을 텐데 싶더군요. 줄거리를 고갱이로 이끌려는가 싶다가도 자꾸 ‘학술’이라는 걸림돌에 붙들리면서 넘어가지 못 해서 여러모로 아쉽기까지 합니다. 또한 ‘외톨이(전쟁고아)’를 나라(이승만·박정희·전두환 + 박근혜·문재인·윤석열에 이르기까지 아직도)에서 어떻게 아기장사를 하면서 괴롭혔는가 하는 대목은 한 줄로도 못 짚습니다.


ㅍㄹㄴ


인천시 중구 송학동에는 ‘자유공원’이라는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 있다. 1883년에 제물포항이 개항하고 1년 뒤 조선 정부와 미·영·청·독·일의 외교관들이 서명한 인천제몰포각국조계장정의 첫 항에 따라 1888년에 조성된 공원이다. (17쪽)


그렇다면 9월 10일은 무슨 날일까? 인천 상륙 작전의 공식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그날, 월미도에서는 적이 아니라 강력한 우방 미군이 투하한 네이팜탄 폭격으로 줌니 100여 명이 사망하고 온 마을과 숲이 불에 탔다. 북한군이 월미산 정상에서 상륙 부대의 움직임을 간파할 수도 있다고 예상한 맥아더 사령부가 그 섬을 초토화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30쪽)


이처럼 위기 상황에서 무질서로 일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능하고 무기력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 혼란 정국 수십의 힘은 누구에게 있을까. 그것은 과학자와 군인이다. (52쪽)


기억의 재생산은 주로 전투(군인) 위주의 연구 혹은 콘텐츠 제작에 쏠려 있지 않았던가? (81쪽)


+


《냉전의 벽》(김려실과 일곱 사람, 호밀밭, 2023)


우리나라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언제였을까

→ 우리나라가 멀쩡하지 않은 줄 언제 알았을까

→ 우리나라가 똑바르지 않은 줄 언제 알았을까

7쪽


편집자에게 필진을 대표하여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 지은이는 모두 엮은이한테 고맙다고 절을 올린다

→ 글쓴 모두는 엮은이한테 고맙다는 말씀을 여쭌다

13쪽


함께 참전한 아들이 전사해 참척의 고통을 당한

→ 함께 싸운 아들이 죽는 바람에 괴로운

→ 함께 나간 아들이 일찍 죽으며 쓰라린

27쪽


투하되는 순간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 떨구면 둘레 모든 숨붙이를 죽이고

→ 떨어지면 둘레 모든 숨결이 떼죽음이고

35쪽


이처럼 냉전 시대가 갈음한 피아(彼我)의 정체와

→ 이처럼 얼음나라가 갈음한 너나라는 모습과

41쪽


한국의 정치적 특성만으로 세계적 데당트 분위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 우리나라 흐름만으로 온누리 온누리 어깨동무를 막을 수는 없었다

→ 우리 나랏일만으로 얼음이 녹는 온누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54쪽


전쟁은 인간에게 가장 참혹한 고통을 주는 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싸움은 사람한테 가장 끔찍한 막짓일 뿐이다

→ 싸움은 사람을 가장 사납게 괴롭히는 짓이다

69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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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문학 - 모두가 일구고 누구나 누리는 너른 마당
강경주 외 지음 / 곳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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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4.1.

인문책시렁 410


《살림문학》

 김대성 엮음

 강경주와 13사람

 곳간

 2024.12.31.



  열네 사람이 열네 삶으로 보내는 하루를 추스른 《살림문학》을 읽습니다. 열네 사람은 우리말을 쓰는 나라에서 살고, 경상도 어디쯤에서 지내지만, 열네 가지 삶입니다. 열네 사람이 한마을에 살더라도 열네 삶이게 마련이고, 한자리에 모여서 배우거나 이야기하더라도 열네 목소리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 다른 삶인 줄 자꾸 잊어갑니다. 배움터를 오래 다닐수록 차림새와 매무새뿐 아니라 마음까지 닮아가고, 일터에 오래 머물수록 솜씨와 눈길뿐 아니라 몸짓까지 닮아갑니다.


  다만 아무리 닮더라도 다르지요. ‘닮다’는 ‘같다’가 아닌, ‘담되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배움터나 일터에 오래 머물수록 ‘닮아가는 모습’을 떨치고서 ‘나답게’ 나아가는 길을 그리곤 합니다.


  말끝 하나가 다를 뿐이어도, 바로 낱말 하나부터 차근차근 가다듬으면서 스스로 바꾸는 삶과 배움길입니다. 어느 곳(학교)만 배움터일 수 없습니다. 집부터 배움터이고, 마당과 마을과 골목이 배움터이며, 들과 숲과 바다와 하늘이 온통 배움터입니다. ‘학교·수업·강좌’라는 배움터에 얽매일수록 오히려 못 배우는 굴레입니다. 집과 마을과 들숲바다라는 삶터를 품을수록 스스로 배우는 길입니다.


  고작 온해(100년) 앞서만 해도, 임금과 글바치와 벼슬아치와 나리를 뺀, 온나라 99.9푼에 이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집과 옷과 밥과 말과 마음을 스스로 지었습니다. 따로 배움터를 안 다닌 수수한 사람들은 손수 집밥옷을 지었고, 말과 마음을 지으면서, 아이한테 사랑이라는 씨앗을 물려주는 길을 걸어왔어요. 이와 달리 오늘날은 손수 집밥옷을 짓는 사람이 0.1푼이 될 동 말 동하면서, 말과 마음을 손수 짓는 사람도 0.1푼이 될까 말까 합니다.


  《살림문학》에 흐르는 글은 대수롭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오늘 하루를 스스로 추슬러서 적기에 대수롭습니다. 우리 삶은 다른 글바치(기자·작가)가 귀담아듣거나 눈여겨보거나 담아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은 우리 스스로 글살림꾼으로 서면서 손수 적으면 됩니다. 요즘 잘못 퍼지는 말 가운데 하나는 “남이 해주는 밥이 가장 맛있다”인데,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가장 맛있는 밥이란, 손수 지은 푸성귀와 낟알과 열매를, 손수 거두고 손질해서 손수 차려서 누리는 밥”입니다.


  남이 해주는 밥이 가장 맛있다고 여기면, “남이 쓴 글과 책”이 우리 삶을 빛내는 길잡이라고 잘못 여기고 맙니다. 우리 삶에 길잡이로 삼을 글은 “훌륭한 어른이 쓴 글과 책”이 아닌 “우리가 손수 사랑으로 일구어서 스스로 쓴 글”입니다. 손수 밥을 짓는 길을 열 노릇이고, 손수 옷을 짓거나 기우는 살림을 익힐 노릇이고, 손수 집을 짓거나 손보는 살림을 배울 노릇입니다. 글쓰기와 책쓰기도 누구한테서 따로 배우기보다는, 스스로 하나부터 열까지 천천히 배우고 익히고 가다듬을 노릇입니다.


  살아가는 하루란, 늘 지켜보고서 다시 기다리는 오늘이지 싶습니다. 목빠지게 기다리더라도 오히려 안 오는 듯싶고, 문득 잊어버리면서 하루하루 살림을 이으면 어느새 눈앞에 마주한다고 느낍니다. 어느새 겨울이 저물듯, 어느덧 셋쨋달로 넘어오듯, 이윽고 넷쨋달로 접어들듯, 차분히 흐르는 해와 바람을 맞이하면, 모두 풀리면서 바뀌어 갈 테지요.


  서두르기에 섣부르고 어설픕니다. 느긋하기에 좀 느릴 수 있지만 느슨하면서 넉넉하게 살림을 짓습니다. 잘 써야 하는 글이 아닌, 잠자리에서 꿈씨앗으로 삼을 글입니다. 잘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닌, 작은씨앗으로 삼아서 작은살림을 가꾸는 작은손길을 누리면 넉넉할 책입니다.



살림하는 이는 글 쓸 시간이 없고, 글을 쓰는 이는 살림을 꾸릴 시간이 없다 여겨왔지만 손수 살림을 꾸리는 이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대성/8쪽)


나는 그 모습을 외면하고 싶었다. 사실 나는 거북이가 차도를 건너는 것부터 비정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차 안의 어색하고 불편했던 침묵이야말로 너무나 비정상이었다. (이지원/41쪽)


글은 그냥 써지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지나온 경험과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것이었다. (공윤경/93쪽)


달리기가 힘들었던 이유를 지금 생각해 보니, 나만의 속도가 아닌 강요된 속도와 경쟁, 대열 이탈에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박진이/163쪽)


서면에서 전포동 산을 넘어 문현동까지 걸어서 다니거나 돌아서 다니며 자주 걷던 어린 시절도 보냈다. 약하게 태어나 자주 앓고 아팠고 누워 있었던 (더) 어린 시절을 났지만 그렇게 자주 뛰어다니며 건강을 만들어 간 게 아닐까 싶다. (노연정/176쪽)


+


《살림문학》(김대성·강경주와 12사람, 곳간, 2024)


막연하고 두루뭉술하게 다가올 때가 많으니

→ 두루뭉술할 때가 잦으니

→ 두루뭉술하곤 하니

18쪽


저마다가 꾸리는 살림엔

→ 저마다 꾸리는 살림엔

23쪽


진주텃밭에서는 생활재를 최대한 포장하지 않고 판매한다

→ 진주텃밭에서는 살림살이를 되도록 싸지 않고서 판다

25쪽


화해를 통해 지난 감정은 새로운 감정으로 바뀐다

→ 손을 잡으면서 묵은 마음은 새로운 마음이 된다 

→ 서로 녹이면서 묵은 마음은 새롭게 바뀐다

37쪽


딸들이 건조한 말투로 팩트를 날렸다

→ 딸이 까끌하게 바른말을 한다

→ 딸이 심드렁히 참말을 한다

→ 딸이 지겨워하며 속을 찌른다

40쪽


눈을 맞춰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 눈을 가볍게 맞춘다

→ 눈을 가볍게 찡긋한다

45쪽


중간중간 아이는 계속 훌쩍인다

→ 사이사이 아이는 내내 훌쩍인다

→ 아이는 이따금 훌쩍인다

→ 아이는 틈틈이 훌쩍인다

45쪽


트램펄린 위에서 신나는 음악에 맞춰

→ 방방이에서 신나는 노래에 맞춰

→ 붕붕이에서 신나는 가락에 맞춰

51쪽


자리를 이동함으로써 공놀이는 끝난다

→ 자리를 옮기면서 공놀이는 끝난다

→ 자리를 옮기며 공놀이는 끝난다

53쪽


몇 자 후기를 적고 보니

→ 뒷글을 좀 적고 보니

→ 뒷얘기를 적고 보니

70쪽


갱년기 증상이 심할 때는 떨어지는 낙엽도

→ 고갯길이 모질 때는 떨어지는 잎도

→ 늙고개가 힘들 때는 가랑잎도

157쪽


수업 중이던 선생님과 샤바샤바 후 나를 나오라 지목했다

→ 가르치던 길잡이와 뒷일을 하고서 나를 나오라 했다

→ 가르치던 샘님과 알랑거리고서 나를 나오라 가리켰다

173쪽


횡단보도와 육거리를 지나

→ 건널목가 엿거리를 지나

180쪽


여전히 비염처럼 알 수 없는 과민반응이 찾아와

→ 오늘도 코앓이처럼 알 수 없이 뾰족해서

→ 아직 코머거리처럼 알 수 없이 날이 서서

193쪽


분노를 삼키기 위해 과격한 근력운동도 했다

→ 불길을 삼키려고 마구 몸을 썼다

→ 불을 삼키려고 사납게 힘을 썼다

193쪽


차분하게 매트 위에 앉아서

→ 차분하게 깔개에 앉아서

→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서

194쪽


문해력, 리터러시를 이야기하는 요즘

→ 글눈, 글읽기를 이야기하는 요즘

→ 글귀, 풀이눈을 이야기하는 요즘

→ 글눈길, 읽꽃을 이야기하는 요즘

→ 한글읽기, 풀이꽃을 얘기하는 요즘

201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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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간의 영혼 여행 - 임사체험으로 알게 된 의식과 육체에 관한 새로운 진실
안케 에베르츠 지음, 추미란 옮김 / 샨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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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3.29.

인문책시렁 409


《9일간의 영혼 여행》

 안케 에베르츠

 추미란 옮김

 샨티

 2025.2.10.



  “죽음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 아빠몸과 엄마몸에 있는 다른 두 씨앗이 하나로 맞물릴 적에 누구나 처음으로 죽습니다. 이때까지는 온누리에서 가볍게 날아다니는 홀가분한 빛씨였는데, 엄마몸하고 아빠몸에 있는 씨앗 둘이 하나로 만나면서 번쩍 하고 빛이 퍼지면서 “몸없는 빛”에서 “몸있는 빛”으로 거듭납니다.


  어려운 말로 ‘체세포분열’이라 합니다만, 몸없는 빛으로 온누리를 돌다가 그만 몸있는 빛으로 확 붙들리면서 끝없이 조각조각 가르고 퍼지는 사이에 아주 넋이 나갈 판입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찾고서 갈라지기(체세포분열)를 지켜봐요. 이러던 어느 날 어느새 ‘아기’란 몸을 이루는 줄 알아봅니다.


  이제 엄마몸에서 자그마한 몸으로 새근새근 잡니다. 힘들었으니까요. “몸있는 빛”으로 붙들린 일로도 힘들고, 조각조각 갈리는 동안에도 힘들었어요. 엄마몸에서 열 달 즈음 아늑하게 자다가 다시금 죽음을 맛봅니다.


  그냥그냥 느긋이 끝없이 자고 싶지만, 엄마는 우리더러 그만 나가라고, 나오라고, 나라고(태어나라고) 속삭입니다. 바야흐로 죽을맛이지만 “고요한 밤”에서 “시끄러운 낮”인 삶터(세상)로 빠져나옵니다.


  우리는 어린이로 자라고 푸름이로 철들며 어른으로 서는 동안에 ‘아기로 맺어서 몸을 이루는 길’을 다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을 언제나 안 잊는 사람도 수두룩합니다. 또한 밤에 잠자리에 드는 몸은 “또다른 죽음”인 줄 아는 사람도 많고, 새벽에 동트는 하늘을 보면서 눈뜨는 몸은 “또다시 태어남”인 줄 아는 사람도 많아요.


  《9일간의 영혼 여행》은 “몸있는 빛”으로 살기는 하되, “꿈없는 몸”으로 바쁘게 스스로 닦달하던 어느 분이 그만 아주 서두르다가 온몸이 활활 타올라서 “새삼스레 몸죽음을 맛보고 난 뒤”에 바라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몸있는 빛으로 살아갈 적에는 언제나 이 몸에 꿈씨를 심을 노릇입니다. 꿈씨를 안 심기에 바쁘거나 서두릅니다. 꿈씨를 심는 사람은 안 바쁘고 안 서둘러요.


  우리한테 왜 밤과 낮이 있을까요? 우리말은 왜 ‘밤낮’처럼 밤을 먼저 말할까요? 이 대목을 고요히 곱씹을 틈을 스스로 낸다면, 왜 날마다 모든 사람이 죽음을 맛보고서 이튿날 새로 태어나는 길을 겪는지 깨닫겠지요.


  도무지 스스로 깨달을 낌새를 안 보이는 탓에, 스스로 꿈씨를 버리거나 팽개치는 바람에, “몸있는 빛”을 이룬 우리 넋이 화르르 타오릅니다. “제발 넋을 차리라구! 언제까지 꿈을 안 심고서 죽어가려 하니?” 하고 다그쳐요. 《9일간의 영혼 여행》을 쓴 분은 불타오르는(화상) 몸앓이를 호되게 겪으면서 비로소 모든 바쁜 굴레를 내려놓기로 합니다. 그리고 굴레를 내려놓는 바로 그날 그때부터 “꿈을 심는 새길”을 걸어요.


  알고 보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지만, 우리 스스로 잊은 채 맴도는 이야기입니다. 글쓴이는 ‘죽어보기(임사체험)’를 어쩌다가 하루 겪은 듯 여기지만, 알고 보면 날마다 숱하게 겪는 ‘죽어보기’입니다. 날마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줄 천천히 바라보실 수 있다면, 책을 좀 다르게 썼을 텐데 싶어서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ㅍㄹㄴ


나는 불길과 싸우기를 그만두었고, 다른 무엇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싸우기를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32쪽)


착각 중에서도 가장 큰 착각이, 우리가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다! (55쪽)


그때 이후로 나는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진동 영역이 다른 세계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다. (127쪽)


내가 내 몸을 바라보는 동안 빛의 존재는 조용히 나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157쪽)


당신 안에 깃들어 있는 사랑이 얼마나 우리를 가볍게 하는지 기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당신이 자신을 신성한 존재로 알아차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당신은 언제나 그런 존재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96쪽)


#Neun Tage Unendlichkeit #Anke Evertz

#Was mir im Jenseits uber das Bewusstsein, die korperliche Existenz und den Sinn des Lebens gezeigt wurde. Eine außergewohnliche Nahtoderfahrung


+


《9일간의 영혼 여행》(안케 에베르츠/추미란 옮김, 샨티, 2025)


그날 무자비하게 내 얼굴을 강타하던 그 불길의 소리가 들리고

→ 그날 얼굴을 마구 후려치던 불길소리가 들리고

→ 그날 얼굴을 모질게 갈기던 불길소리가 들리고

8


오늘 나는 그때의 나였던 그녀를 아주 다정한 눈으로 돌아본다

→ 오늘 나는 그때 나이던 아이를 아주 다사로이 돌아본다

→ 오늘 나는 그때 나이던 사람을 아주 포근히 돌아본다

11


아주 짧은 기간에 거의 저절로 써지다시피 했다

→ 어느새 거의 저절로 쓰다시피 했다

→ 휘리릭 저절로 쓰다시피 했다

16


그 많은 정보와 통찰 덕분에 깊은 곳으로부터 무언가가 벅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 이야기를 듣고 눈을 뜨면서 깊은 곳부터 벅차오르는 빛을 느꼈다

73


물에 합류하자마자 용해되므로

→ 물에 섞이자마자 녹으므로

79


지금의 나의 시각

→ 오늘 내 눈

→ 이제 내가 보는

117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창조자이다

→ 우리는 스스로 삶을 짓는다

→ 우리는 저마다 삶을 빚는다

→ 우리는 누구나 삶을 일군다

117


섬망?妄이란 오랫동안 혼수 상태에 있다가 깨어난 환자들이 많이 보이는 증세로

→ 오랫동안 드러눕다가 깨어난 사람들이 잠꼬대를 많이 하는데

→ 오랫동안 넋이 나가다가 깨어난 사람들이 으레 멍한데

→ 오랫동안 거의 죽다가 깨어난 사람들이 곧잘 헛소리를 하는데

185


나는 당신이 자신을 신성한 존재로 알아차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당신은 언제나 그런 존재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나는 네가 스스로 거룩한 줄 알아차리기를 참으로 바란다. 너는 언제나 거룩했고 앞으로도 거룩하다

→ 나는 우리가 스스로 빛인 줄 알아차리기를 참으로 바란다. 우리는 언제나 빛났고 앞으로도 빛난다

296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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