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슭에서, 나 홀로
우에노 지즈코 지음, 박제이 옮김, 야마구치 하루미 일러스트 / 청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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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6.6.

인문책시렁 428


《산기슭에서, 나 홀로》

 우에노 지즈코 글

 야마구치 하루미 그림

 박제이 옮김

 청미

 2025.2.20.



  전남 고흥에는 즈믄나무(1000년수)가 있습니다만, 군청은 “관리하기 귀찮”아서 숲빛(천연기념물)으로 올리지 않더군요. 그냥 팽개칩니다. 이뿐 아니라, 즈믄나무 바로 옆에 있는 어느 밥집은 저희 가게로 나뭇가지가 그늘을 드리운다고 하면서 함부로 가지를 동강내었고, 군청은 나무한테 바짝 붙여서 정자까지 짓느라 굵은가지를 치기도 했습니다.


  할 말을 잃을 만한 짓이어서 이제 더는 군청에 대고 말을 안 합니다. 그저 고흥읍 한켠에 선 즈믄나무 옆을 지날 적마다 나뭇잎을 살살 쓰다듬으면서 “너는 늘 푸르고 튼튼해. 즈믄해를 살아왔으니 요 몇 해쯤 너한테는 아무것이 아닌 줄 알 테지.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쯤 지나가면 이 모든 부스러기는 다 사라질 테니까, 아무쪼록 새롭게 즈믄해를 살아가기를 바라.” 하고 속삭입니다.


  《산기슭에서, 나 홀로》를 읽었습니다. 지난 2020년 언저리에 돌림앓이로 푸른별이 들끓을 즈음 큰고장을 떠나서 멧자락에 깃들며 지낸 이야기를 풀어낸 꾸러미입니다. 글쓴이는 돈이 있기에 멧자락에 땅을 사고 집을 얻어서 지내었지만, 돈이 없거나 적은 분은 시골살이를 엄두를 못 내었겠지요. 그러나 시골살이는 돈만으로 하지 않아요. 서울살이(도시생활)를 내려놓으면 얼마든지 ‘우리 집과 땅’을 장만해서 고즈넉이 지낼 만합니다.


  ‘서울살이’에 길든 몸을 ‘멧골살이’로 바꾸기란 어려울 만한데, 애써 매무새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천천히 놀면 됩니다. 아이도 어른도 새길을 배우려면 여러 해를 느긋이 들일 노릇이에요. 하루아침에 못 배웁니다. 하루아침에 장작패기를 잘 해낼 사람은 없습니다. 한 달도 안 되어 호미질을 솜씨있게 할 사람은 없습니다. 한 해만에 심고 거두는 흙살림을 훌륭히 하지 않습니다.


  서울에 처음 깃들어 자리를 잡기까지도 꽤 길게 보내야 합니다. 어느 고장이든 적어도 열 해쯤은 눌러앉고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흔들려 보아야 비로소 고을빛을 느끼고 마을빛을 헤아리지 않나요? 시골에서도 열 해쯤 느긋이 놀듯 보낼 적에 비로소 시골빛을 헤아리면서 품을 만합니다. 이런 대목으로 본다면 《산기슭에서, 나 홀로》는 꽤 섣부른 줄거리입니다. 몇 해 살지 않고서 덥석 써낸 글이라서 이모저모 아쉽거나 아리송하더군요. 글을 꾸준히 썼더라도, 열 해쯤 시골살이를 한 발자취를 가다듬어서 책으로 꾸렸다면 빛났으리라 봅니다.


ㅍㄹㄴ


장마가 끝나면 반딧불이의 계절도 끝난다. 어느 날 문득,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올해도 반딧불이의 계절을 놓치고 만 것이다. (35쪽)


우물물을 퍼 올리는 펌프도 고장 나서 교체했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니 기계가 못 버텨줄 뿐 아니라 고치려 해도 부품이 없다고 했다. (47쪽)


나에게 이렇게까지 ‘집순이’ 기질이 있었던가 싶어서 놀란다. 그랬다. 어릴 때부터 ‘읽기’와 ‘쓰기’가 좋았다. (75쪽)


옛날 사람들은 다리가 튼튼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시골사람일수록 걷는 거리가 적다. 아주 조금 떨어진 곳이나 장을 보러 갈 때도 자동차로 가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114쪽)


#上野千鶴子 #八ヶ岳南麓から


+


《산기슭에서, 나 홀로》(우에노 지즈코/박제이 옮김, 청미, 2025)


친구란 참 고마운 존재여서 일단 신뢰 관계가 생기면

→ 동무란 참 고마워서 문득 믿으면

→ 동무란 참 고마우니 암튼 믿으면

7쪽


줄곧 이 산속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 줄곧 이 멧집에 머무른다

→ 줄곧 이 멧골집에 머문다

10쪽


활엽수가 나뭇잎을 죄 떨구고, 낙엽송마저 바늘 같은 잎을 떨구고 나면 숲은 순식간에 환해진다

→ 넓은잎나무가 잎을 죄 떨구고, 잎갈나무마저 바늘 같은 잎을 떨구고 나면 숲은 어느새 환하다

14쪽


산속 집을 불규칙하게 오가다 보니

→ 멧골집을 더러 오가다 보니

→ 멧집을 이따금 오가다 보니

→ 멧집을 드문드문 오가다 보니

20쪽


하계(下界)의 벚꽃이 다 지고

→ 땅에는 벚꽃이 다 지고

→ 이곳은 벚꽃이 다 지고

22쪽


주변에 종묘 농가가 여럿 있어서

→ 마을에 씨앗집이 여럿 있어서

→ 모를 파는 여러 집이 있어서

26쪽


산에 살아서 좋은 점은 화목 난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 멧골서 살면 나무를 땔 수 있어서 즐겁다

→ 멧집에서는 불을 땔 수 있어서 신난다

→ 멧골에서는 나무로 불을 때니 포근하다

39쪽


산 땅의 지목은 산림이다

→ 산 땅은 숲이다

→ 산 땅은 갈래가 숲이다

42쪽


두 번째 초간단요리는 역시나

→ 둘째 단출밥은 아무래도

→ 다음 쓱삭밥은 뭐

→ 이다음 뚝딱밥은

63쪽


1년에 한 번 산나물 튀김 파티를 주최하는데, 무척 큰 즐거움이다

→ 해마다 멧나물튀김잔치를 여는데 무척 즐겁다

→ 봄마다 멧나물튀김잔치를 무척 즐겁게 연다

86쪽


너무나도 훌륭한 싱글 라이프이기에 나는 명함도 못 내밀겠구나

→ 혼길이 더없이 훌륭하기에 나는 이름도 못 내밀겠구나

→ 혼살림이 무척 훌륭하기에 나는 얼굴도 못 내밀겠구나

→ 혼자서 참으로 훌륭히 살기에 나는 쪽도 못 내밀겠구나

89쪽


주변에 나 홀로족이 점점 늘고 있다

→ 둘레에 나홀로가 차츰 는다

→ 곳곳에 혼살림이 꾸준히 는다

101쪽


로그아웃만 하면 순식간에 나만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 나오기만 하면 바로 내 틈으로 돌아온다

→ 떠나기만 하면 곧장 내 삶으로 돌아온다

106쪽


주소를 하나로 정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 집을 하나로 둘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 사는곳이 하나일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113쪽


마당이 딸린 단독 주택을 지으리라는

→ 마당이 딸린 한채를 지으리라는

→ 마당이 딸린 홑채를 지으리라는

15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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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세대를 위한 세계시민 이야기 미래 세대를 위한 인문 교양 5
정주진 지음 / 철수와영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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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5.30.

인문책시렁 421


《미래 세대를 위한 세계시민 이야기》

 정주진

 철수와영희

 2025.2.16.



  마음을 잊으면 몸을 잃고, 마음을 찾으면 몸을 살립니다.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기에 몸에 휩쓸리고,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면서 몸을 깨웁니다. 마음부터 차릴 적에 몸에 빛이 차오릅니다. 마음부터 챙기지 않는다면 몸이 죽어갑니다.


  나라지기를 새사람으로 뽑는 길에 돌아봅니다. 누가 뽑히느냐는 얼마나 대수로울까요? 누가 뽑히든 나라일을 할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누가 누구를 뽑든 나라일을 맡고서 조용히 물러난 뒤에 시골에서 호미와 낫을 쥐고서 착하게 살아갈 작은일꾼을 가릴 노릇이라고 봅니다.


  이 사람이어야 하거나, 저 사람은 안 된다고 틀을 세울 까닭이 없습니다. 누가 언제 어느 자리를 맡든, 바르고 착하면서 아름답게 일하는 틀을 세울 노릇입니다. 힘과 이름과 돈으로 주무르려고 하면 이내 끌어내려서 잘못한 값을 치르는 틀이 튼튼하면 됩니다. 틀은 아주 쉽습니다. 다른 사람을 헐뜯거나 할퀴는 말을 한 마디라도 하면 바로 끌어내릴 뿐 아니라, 비싸게 값을 물리면 되어요.


  적잖은 분들이 “우리나라에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읊거나 퍼뜨리는데, 터럭만큼도 옳지 않습니다. 종이(투표권)를 쥔 모든 사람이 어른일 노릇입니다. 우리 스스로 어른스럽지 않다면 종이를 내려놓을 노릇입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어른이어야 누구를 나라지기로 뽑더라도 그사람이 나라일을 하는 작은일꾼으로 섭니다. 우리 스스로 어른이라고 여기기 어려운 터전이라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을 자리에 앉히더라도 나라는 엉망진창입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세계시민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온사람(세계시민)’이란 무엇인지 짚는 줄거리입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을 잊고 잃은 채 떠돌기에 엉망으로 뒹구는 푸른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남’이 아닌 ‘나’부터 착하지 않고 참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탓에 이 별이 망가지는 줄 짚는다고 할 만합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탓’이 아니라 ‘남탓’을 하면서 바깥으로 화살을 돌리는 말과 글이 쏟아집니다. 왜 자꾸 남탓을 해야 할까요? ‘어른’이라면 모름지기 남탓을 안 합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나라틀을 이대로 망가뜨린 ‘나탓’을 하겠지요.


  배움불굿(입시지옥)은 왜 안 사라질까요? 입으로는 배움불굿을 걱정하는 시늉이지만, 정작 우리부터 스스로 종이(졸업장)를 단단히 거머쥘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도 종이를 단단히 물려주려고 하는걸요. 우리나라 신문사·방송사·출판사 가운데 종이(졸업장)가 아닌 마음을 바라보면서 일꾼을 찾거나 품는 곳이 한 군데라도 있는지요? 어린배움터(초등학교)조차 안 다녔더라도 착하게 일할 줄 아는 사람을 찾거나 품는 데가 한 군데라도 있습니까?


  나라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보면 으레 벼슬자리부터 높고, 돈과 힘과 이름부터 크거나 많거나 셉니다. 이들은 으레 ‘서울대학교’나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대학교’나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아이들을 집어넣으려고 아주 발버둥인 판입니다. 아이가 바로 집부터 살림길을 익혀서 어른으로 철드는 길을 함께 살피고 지으면서 나누는 어버이여야, 비로소 누구를 나라지기에 앉히든 이 나라가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 ‘어른’이 되려고 철빛을 읽고 살펴서 깨닫는 사람으로 설 적에, 바야흐로 어느 한 사람한테 기대는 굴레가 아닌 저마다 스스럼없이 땀흘려서 나누는 살림나라를 이룹니다.


  ‘온사람’이란, 다르게 말하자면 ‘어른’입니다. 굳이 어렵게 ‘세계시민’이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따로 한자말로 ‘세계시민’ 같은 이름만 새로 엮을 까닭도 없습니다. 오래도록 잇고 흐른 가장 수수한 말씨인 ‘어른’을 스스로 찾아보고 알아볼 노릇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어른이면 됩니다. 나이만 많이 먹는 몸뚱이가 아닌, 온마음에 철빛과 슬기와 사랑을 담아서, 먼저 스스로 일하고 노래하며 어린이 곁에서 푸르게 살림을 짓는 매무새를 일으킬 노릇입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허튼짓이 안 생깁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뒷돈을 안 챙기고, 우리가 어른이라면 헤살이나 담벼락이란 아예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른으로 서려고 마음을 기울이지 않기에, 다들 하나같이 허울만 좋거나 겉만 번드르르하게 꾸미고 맙니다.


ㅍㄹㄴ


옷을 버리는 건 소비자만이 아닙니다. 의류 회사들은 생산한 옷의 10∼40퍼센트를 버립니다. 떨이 판매를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것을 염려해 차라리 버리는 선택을 합니다. (13쪽)


패션 회사들은 이런 오명과 비난을 벗기 위해 ‘친환경’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거짓말이었고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22쪽)


과잉 관광의 문제를 겪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서도 관광 수입은 국가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44쪽)


가난한 국가들은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요? 많은 가난한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불안과 전쟁입니다. (84쪽)


전쟁 범죄를 저지른 국가, 집단, 개인은 국제 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109쪽)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 직후인 2022년 3월 이후 2025년 1월 현재까지 한 번의 평화 협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 시달리는 국민은 종전을 원했으나 우크라이나 정부는 승리를 원했습니다. (113쪽)


우리는 흔히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국가에만 많다고 생각합니다. (142쪽)


+


《미래 세대를 위한 세계시민 이야기》(정주진, 철수와영희, 2025)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 늘 빼놓지 않습니다

→ 날마다 합니다

→ 꼭 하는 일입니다

→ 언제나 합니다

5쪽


세계시민이 관심을 가져야 할 몇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 온이웃이 눈여겨볼 몇 가지를 다룹니다

→ 온사람이 들여다볼 몇 가지를 다룹니다

→ 누구나 지켜볼 몇 가지를 다룹니다

→ 모두 헤아릴 만한 몇 가지를 다룹니다

6쪽


그것은 대부분 거짓말이었고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 이는 거의 거짓말이고 푸른시늉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 이는 온통 거짓말이고 푸른눈가림이라고 나무랍니다

22쪽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입니다. 한국어로는 과잉 관광이라 부릅니다

→ 이럴 때에 북새길이라 합니다. 사람으로 넘쳐요

→ 이럴 적에 복닥길이라 합니다. 사람이 지나쳐요

41쪽


최악의 여름을 보냈습니다

→ 여름을 끔찍히 보냈습니다

→ 여름을 무덥게 보냈습니다

→ 찜통여름을 보냈습니다

56쪽


특히 국가 차원에서 환금 작물, 즉 판매만을 위한 작물 재배에 집중하는 경우에 그렇습니다

→ 더욱이 나라에서 돈나물, 곧 팔기만 하는 나물을 키울 적에 이렇습니다

→ 게다가 나라에서 벌잇감, 그저 내다팔 남새만 키울 적에 이렇습니다

86쪽


전쟁 범죄를 저지른 국가, 집단, 개인은 국제 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 온누리는 불질을 저지른 나라, 무리, 사람을 몹시 나무랍니다. 그러나 값을 치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10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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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란 무엇인가 - 자유롭고 평등한 사귐의 길을 찾아서
박홍규 지음 / 들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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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5.14.

인문책시렁 422


《우정이란 무엇인가》

 박홍규

 들녘

 2025.4.10.



  《우정이란 무엇인가》를 읽자니, 첫머리부터 “‘우정’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이 없어서 그대로 사용합니다(15쪽)”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설마 말이 될까요? ‘사이좋다’나 ‘어깨동무’나 ‘손잡다’나 ‘발맞추다’나 ‘어울리다·아우르다’는 모두 한자말 ‘우정’을 가리키는 우리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살갑다’나 ‘도란도란·두런두런·오순도순’도 매한가지입니다. 따로 ‘띠앗’이라는 낱말이 있기도 하며, ‘띠·끈·줄’로도 어우르는 마음결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우리말도 잊을 뿐 아니라 생각조차 못 하는 터라, 몸을 둘러싼 수수께끼도 쉽게 잊습니다. 이를테면 한자로 적는 ‘암(癌)’은 우리말로 하자면 ‘좀’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우리 몸에 자리잡으려고 하는 좀스러운 것이 뭉쳐서 ‘암’이라 하는데, 좀이 늘어나는 까닭이라면, 우리가 스스로 좀을 몸밖으로 못 내보내는 탓입니다. 좀이 생기면서 뭉쳐서 밖으로 나가야, 우리 몸은 낱(세포)을 튼튼하게 새로 낳게 마련이니, ‘좀(암)’이란 ‘나쁜것’이 아닌 ‘낫는길’이기도 합니다.


  ‘늙다(노화)’란, 나이만 늘리면서 안 배우는 결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여든이나 아흔 나이여도 새롭게 배우려는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서는 ‘죽음냄새’가 안 나요. 나이가 젊더라도 안 배우려는 사람한테서는 으레 ‘죽음냄새’가 나더군요.


  《우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줄거리를 펴자면, ‘늙음길’이 아닌 ‘배움길’을 짚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서로 들려주고 듣는 사이로 지내기에 어깨동무를 합니다. 한쪽만 말을 한다면 어울림이나 동무하고 멀어요. 우리말 ‘동무’도 한자말 ‘우정’을 가리키는데, ‘동글다·둥글다·두레·돌보다·돕다’를 밑동으로 삼는 낱말입니다. 이 낱말이 모두 ‘우정’을 가리켜요.


  애써 먼나라 옛자취를 들추면서 띠앗길을 알아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스스로 옛날 옛적부터 갖가지로 곳곳에 쓰던 수수한 낱말을 짚기만 해도 넉넉합니다. 두레란 무엇이고 품앗이란 무엇일까요? ‘돕다’하고 ‘돌보다(돌아보다)’하고 ‘보살피다’하고 ‘보다’는 얼마나 닮으면서 다른 삶결일까요? 배우기에 삶이고, 익히기에 살림입니다. 배워서 익히고서 나눌 줄 알기에 사랑입니다.


  띠앗이란 씨앗과 같습니다. 심고 실처럼 잇는 씨앗이듯, 빛깔을 드러내면서 서로 부드럽게 잇는 띠앗입니다. 머리띠만으로는 잇지 않아요. 팔띠로는 자칫 자랑이나 윽박질로 기웁니다. 씨앗처럼 작고 수수하게 이 땅에 깃들면서 함께 푸르게 우거지려는 매무새로 나아가는 띠앗이기에 비로소 함께 배우고 같이 익혀서 서로 나누는 하루를 짓습니다. 박홍규 님은 이제 ‘하늬책(서양철학서)’은 제발 다 내려놓고서, 이 땅을 맨손으로 매만지면서 흙말과 들말과 숲말과 바람말과 바다말과 멧말과 살림말과 사랑말을 익혀 보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해야 띠앗이 왜 띠앗인지 몸과 마음으로 고루 알아보게 마련입니다.


ㅍㄹㄴ


‘이런 글을 쓰면 잡혀가지 않을까’ 심지어 ‘이런 생각을 하면 잡혀가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5쪽)


자유(freedom)와 친구(friend)는 사랑을 의미하는 초기 인도유럽어의 동일 어근 fn- 또는 pri-를 공유합니다. (19쪽)


우정은 평등입니다. 우월감에 사로잡힌 교만한 상태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친구라 일컬어서는 안 됩니다. (21쪽)


삼강오륜은 자유도, 평등도, 사랑도, 우정도, 정의도 아닙니다. 상하는 임금을, 자식은 부모를,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삼강이고, (46쪽)


디오게네스는 말합니다.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좋은 친구나 열렬한 적이 필요하다. 친구는 당신을 가르치고 적은 당신의 결점을 폭로한다.” (124쪽)


+


《우정이란 무엇인가》(박홍규, 들녘, 2025)


그런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 그런 날이 오면 얼마나 기쁠까요

→ 그런 나날이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4쪽


국민의 공복이라는 공무원들은 물론 대통령도 친구이기를 바라지만

→ 우리 심부름꾼이라는 벼슬아치에 나라자기도 동무이기를 바라지만

→ 우리 일꾼이라는 구실아치에 우두머리도 동무이기를 바라지만

5쪽


그야말로 관존민비(官尊民卑)라는 관념이 내 안에는 아직도 건재한 것입니다

→ 나는 그야말로 엎드린다는 마음에 아직도 있습니다

→ 나는 아직도 시키면 따른다는 마음이 그대로입니다

5쪽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인구밀도를 자랑합니다

→ 온누리 으뜸 사람밭을 자랑합니다

→ 푸른별에서 가장 빽빽하게 살아갑니다

→ 사람이 가장 촘촘하게 사는 나라입니다

8쪽


박지원보다 한 세기 정도 뒤의 사람인 중국의 담사동은 충결망라(衝決網羅), 즉 세상의 모든 덫을 깨뜨릴 것을 촉구하면서

→ 박지원보다 온해쯤 뒤에 태어난 중국 담사동은 모든 덫을 치우라고 외치면서

→ 박지원보다 온해쯤 뒷사람인 중국 담사동은 모든 그물을 찢으라고 외치면서

9쪽


아이들은 힘들기 마련이라고요

→ 아이들은 힘들게 마련이라고요

→ 아이들은 힘들다고요

15쪽


환경 위기가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 무너지는 들숲메가 틀림없이 가장 큰일입니다

→ 흔들리는 들숲이 무엇보다 걱정입니다

→ 막다른 숲이 더없이 근심스럽습니다

24쪽


우정은 소수를 따로 선택하는 일인 만큼,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현대는 우정을 경시하게 만듭니다

→ 띠앗을 몇 사람을 따로 고르는 일인 만큼, 나보다 나라를 앞세우는 요즘은 띠앗을 얕잡습니다

28쪽


친구는 항상 신실하지만 신실함이 친구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 동무는 노상 미덥지만 미덥대서 동무를 사귀지는 않습니다

→ 동무는 늘 믿음직하지만 믿음직하기에 사귀지는 않습니다

31쪽


평등주의에 근거한 불교공동체 승가의 운영 원리는 화합갈마(和合?磨samaggakamma), 즉 구성원들이 전원 출석한 자리에서 올바른 진행 절차에 따라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 나란길로 나아가는 절집은 한목소리, 곧 모두 있는 자리에서 올바른 노눗길로 함께갑니다

→ 어깨동무가 바탕인 절집은 한마음, 곧 다들 나온 자리에서 올바르게 꾸려서 같이갑니다

43쪽


삼강오륜은 자유도, 평등도, 사랑도, 우정도, 정의도 아닙니다

→ 세틀닷길은 날개도, 나란도, 사랑도, 띠앗도, 바름도 아닙니다

46쪽


오십의 나이에 아테네로

→ 쉰 나이에 아테네로

→ 쉰 살에 아테네로

112쪽


각각의 경우에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인간이자 신성으로 간주되는 누군가를 모방함으로써 구원을 추구했습니다

→ 마을 모두는 그때그때 사람이자 거룩한 누구를 따르면서 빛을 바랐습니다

→ 마을 누구나 그때그때 사람이자 거룩한 분을 모시면서 빛살을 바랐습니다

14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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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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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5.6.

인문책시렁 424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

 루이스 세풀베다

 엄지영 옮김

 열린책들

 2025.1.10.



  고래는 바다에서 삶을 짓기에 바다를 말할 만합니다. 사람은 들숲메에 깃들면서 바다를 품는 삶을 누리기에 들숲메바다를 두루 말할 만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들도 숲도 메도 바다도 좀처럼 말을 못 합니다. 들소리를 못 듣고, 숲빛을 못 보고, 멧자락에 깃들지 않고, 바다를 사랑하지 않거든요.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를 읽는데, ‘흰고래’가 ‘고래잡이배’하고 싸우는 줄거리만 가득합니다. 정작 흰고래가 들려주는 바다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첫머리에 살짝 바다와 아이 이야기를 짚는가 싶더니, 이내 끝없는 쌈박질과 죽임질만 다룹니다. 이 책은 “고래잡이를 죽인 흰고래”라든지 “흰고래를 죽이려는 사람”쯤으로 이름을 붙여야 어울릴 텐데 싶습니다.


  바다는 모든 숨결을 받아들이는 바탕입니다. 바다는 받아들여서 새롭게 배는 밭입니다. 바다가 드넓기에 비구름이 태어나고, 비구름이 맑은 물줄기를 들숲메에 흩뿌리기에 샘이 솟으며 내가 흐릅니다. 이윽고 이 물줄기는 바다로 돌아가서 바다를 새롭게 북돋아요.


  “바다를 말하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바다가 흐르는 숨결을 들려줄 노릇입니다. 흰고래가 바다를 말한다면, 흰고래가 살아숨쉬는 바다가 어떻게 이 별을 살찌우고 일으키는지 짚을 노릇입니다. 바다는 싸움터일 수 없고, 바다에서 돈을 얻으려는 얕은 눈짓으로는 하나도 못 배웁니다.


ㅍㄹㄴ


뾰족한 산호초의 충격조차 견디지 못할 만큼 허술한 배를 타고 거친 파도에 맞서려고 하는 그들의 용기와 불굴의 의지를 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20쪽)


그들(사람)이 나를 향해 감탄과 놀람의 함성을 지를 때마다 괜히 기분이 으쓱해지곤 했다. (34쪽)


나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인간들을 꼬리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것도 모자라 나는 배를 향해 필사적으로 헤엄쳐 가던 인간들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97쪽)


나는 끈질기고 집요한 인간들을 볼 때마다 몸서리가 쳐졌다. 당연히 그들이 어디서 오는 건지, 바다나 육지 어느 곳에 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는지, 언젠가 그들이 탐욕을 채우는 모습을 보게 될지 궁금해졌다. (107쪽)


할머니 고래들과 바다에 사는 모든 존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셈이다. 이제 우리는 위대한 여행을 떠나지도 못한 채, 인간의 탐욕을 피해 도망 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112쪽)


#LuisSepulveda


+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루이스 세풀베다/엄지영 옮김, 열린책들, 2025)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가운데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 물결이 밀려오고 밀려간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 바다가 밀려오고 밀려간다. 우리는 한동안 가만히 앉았다

13쪽


어떻게 물 위에서 움직이는지

→ 어떻게 물에서 움직이는지

→ 어떻게 물낯에서 움직이는지

19쪽


대양에서 가장 커다란 존재가 되어 완전히 혼자 살 수 있을 때까지

→ 바다에서 가장 커다란 숨붙이로 혼자 오롯이 살 수 있을 때까지

→ 너른바다에서 가장 커다란 몸으로 혼자 잘 살 수 있을 때까지

27쪽


나를 향해 감탄과 놀람의 함성을 지를 때마다 괜히 기분이 으쓱해지곤 했다

→ 나를 보며 놀라서 소리를 지를 때마다 그저 으쓱했다

→ 나를 보며 놀라서 외칠 때마다 어쩐지 으쓱했다

34쪽


조금 전에 본 것처럼 크고 웅장한 배였다

→ 조금 앞서 보았듯 커다란 배이다

35쪽


내가 본 어떤 장면도 그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었다

→ 내가 본 어떤 모습도 그한테는 새롭지 않았다

50쪽


계절이 바뀌면서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일조량도 줄어들었다

→ 철이 바뀌면서 낮이 차츰 짧고 해도 줄어든다

→ 철이 바뀌어 낮이 조금씩 짧고 볕도 줄어든다

57쪽


너는 당장 대장정을 떠나지는 않을 거야

→ 너는 바로 먼길을 떠나지는 않아

→ 너는 곧장 멀리 떠나지는 않아

58쪽


비몽사몽간에 배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때도

→ 꿈결에 배가 가까이 다가오는 줄 느낄 때도

→ 멍하니 배가 가까이 다가온다고 느낄 때도

77쪽


나는 끈질기고 집요한 인간들을 볼 때마다 몸서리가 쳐졌다

→ 나는 끈질긴 사람들을 볼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 나는 물고늘어지는 사람을 볼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107쪽


수로의 출구 쪽에 있던 배에서도 소형 보트 여러 척을 물 위에 띄워 놓았다

→ 물골 밖에 있던 큰배도 작은배 여럿을 띄운다

→ 뱃길 너머에 있던 배도 쪽배 여럿을 띄운다

112쪽


할머니 고래들과 바다에 사는 모든 존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셈이다

→ 할머니 고래하고 바다 모든 이웃이 바라는 대로 못한 셈이다

→ 할머니 고래하고 바다 모든 숨붙이 뜻대로 못 이룬 셈이다

11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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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폭력들 - 미투 이후의 한국, 끝나지 않은 피해와 가해의 투쟁기
이은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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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4.17.

인문책시렁 419


《상냥한 폭력들》

 이은의

 동아시아

 2021.11.3.



  이제는 사라진 말이라고 할 ‘사랑의 매’일 텐데, 매질은 터럭만큼도 사랑일 수 없고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주먹질도 사랑이거나 사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매질은 조금도 상냥하지 않고, 주먹질도 이와 마찬가지로 안 상냥합니다.


  《상냥한 폭력들》은 “미투 이후희 한국, 끝나지 않은 피해와 가해의 투쟁기”라는 이름을 달고서 나옵니다. 도움이(변호사)로 일하면서 마주한 여러 추레짓을 살펴본 바를 풀어낸 줄거리라고 할 만합니다. 터무니없는 말인 ‘사랑의 매’를 빗대듯 ‘상냥한 폭력들’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힘과 돈과 이름을 앞세워서 추레짓을 벌이는 모든 이가 겉으로는 상냥한 시늉을 한다는 뜻이라고 해야 할 테지요.


  사랑이라면 누구한테나 언제나 사랑입니다. 몇몇만 귀여워하고 누구는 괴롭힌다면 사랑이 아닌 허울과 눈속임과 괴롭힘질입니다. 상냥하려면 누구한테나 언제나 상냥해야지요. 뭇사람 앞에서는 상냥한 얼굴로 웃지만, 뒤에서는 응큼하고 추레한 손을 뻗는다면 거짓이요 눈가림과 막짓입니다.


  이 책에서 살짝 다루듯 “법은 오래도록 기득권을 지키는 굴레”로 이어왔고, 오늘날에도 이 틀은 고스란합니다. 벼랑끝에 몰렸기에 도움손을 바라는 사람들은 도움이(변호사)한테 목돈을 쥐어주면서 겨우겨우 실낱같은 끈 한 오라기를 붙들 뿐입니다.


  어찌하면 “상냥한 얼굴로 감춘 주먹질”을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있을까요? 상냥한 얼굴로 주먹질을 감추는 모든 무리는 ‘일’과 ‘살림’을 안 하는 무리입니다. 그들은 일을 하는 시늉일 뿐, 늘 높은자리에서 힘과 돈과 이름을 주무를 뿐이고, 집에서 살림을 안 하게 마련이에요. 그래서 남을 괴롭히고 응큼하거나 추레한 짓을 일삼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바보짓을 할 짬이 없기도 하지만, 바보짓을 하려는 마음조차 없습니다. 살림하며 집을 돌보고 아이곁에 있는 사람도 멍청한 추레짓을 할 틈이 없기도 하지만, 추레짓을 하려는 마음이 처음부터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들끼리 있도록 놔두고서 나올 노릇입니다. 응큼하고 추레한 그들끼리 그곳(힘·이름·돈)을 주무르라고 냅두고서 다 나올 노릇이에요.


  추레짓이나 엉큼짓을 하는 이들한테 “징역 10년”이나 “벌금 1억 원”을 매긴들, 그들은 코웃음을 칩니다. 이들한테는 “손빨래·아기돌봄·집안일 20∼30년”을 매기면서 “논일·밭일 20∼30년”을 매기면 됩니다. 일도 살림도 해본 적 없는 그들한테는 일과 살림을 이제부터 모두 스스로 해야 밥 한 그릇 받을 수 있다는 값을 치르라고 하면 됩니다. 이렇게 나아가야 비로소 이 나라가 바뀔 만합니다.


ㅍㄹ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법원의 이해도가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준비를 하지 않은 것에서 기인했는지도 모른다. (8쪽)


법은 약자의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겠지만 오랜 시간 기득권의 입장에서 운용되어 왔다. (38쪽)


‘미투’ 이후 관련 사건이 더 많아졌느냐고 여러 사람이 묻는다. 그 질문은 정말이지 현실을 모르거나, 현실을 외면하는 질문이다. 성폭력은 한국 사회에서 언제나 있던 일이다. (42쪽)


애매하지만 불쾌하고, 권력 구조상 말하기 어렵고, 여러 번 참았는데도 계속 불쾌한 행동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힘희롱’이다. 성희롱은 ‘힘희롱’의 한 갈래일 뿐이다. (101쪽)


일상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이 합당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사랑의 매’라는 말로 포장된 교사의 폭력이 난무했다. (115쪽)


‘왜’라는 질문에 납득할 만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 피해자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자신이 당한 일이 성폭력이 아니라는 선언을 마주하게 된다. (153쪽)


가해자의 죽음으로 모든 법적 절차가 중단되면, 피해자의 권리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가해자의 죽음에 대한 동정은 이내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원망으로 치환된다. (267쪽)


+


《상냥한 폭력들》(이은의, 동아시아, 2021)


갑을관계가 명징한

→ 위아래가 뚜렷한

→ 종굴레가 또렷한

→ 더없이 굴레인

27쪽


별책부록처럼 함께 파생되는 논란이 있다

→ 곁딸리는 말썽거리가 있다

→ 덧붙는 골칫거리가 있다

→ 함께 도마에 오르는 일이 있다

5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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