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걷는 사람은



  걷는 사람은 걸어다닐 수 있는 얼거리에서 집과 일터를 두려고 한다. 달구지를 모는 사람은 퍽 멀리까지도 일을 다니지. 걷는 사람은 걸어다니는 길에서 하나하나 짚고 느끼고 맞아들이면서 하루를 보내려 한다. 달구지를 모는 사람은 퍽 멀리까지 죽 잇느라 “이곳과 저곳 사이에 있는 삶터”를 느끼거나 돌아볼 새가 없다.


  ‘사회(社會)’란 여러 뜻인 일본말이다. 이 일본말을 쓰는 곳에 따라서 뜻과 쓰임새가 확 다르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 이 일본말을 쓰든 ‘둘레’나 ‘터전’이나 ‘삶터’를 가리킨다. 때로는 ‘마을’을 가리킨다. ‘같이’나 ‘함께’나 ‘나란히’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남’과 ‘나라’나 ‘바깥’을 가리키기도 한다. 때로는 ‘사람’이나 ‘살다’를 가리킨다. 그저 ‘곳’이나 ‘자리’를 가리킬 수도 있다.


  우리는 어느 곳이 집이고 일터이고 마을일까? 우리는 집으로 삼는 곳 둘레를 어떻게 일구거나 가꾸거나 돌볼까? 우리는 집으로 삼는 곳을 둘러싼 마을이 모인 큰터인 나라를 어떻게 바라보거나 품거나 살필까?


  일삯을 주는 곳에 따라서 몸을 움직인다면, 삶이 아니라 심부름이 있을 테지. 일터에서 시키거나 맡기는 대로 움직인다면, ‘나’도 ‘너’도 ‘우리’도 없이, ‘벼슬’과 ‘높낮이’만 맴돈다. ‘나·너·우리’가 사라진 곳이라면, ‘사람’도 사라지고 ‘삶’도 사라지기에, 마침내 ‘집’까지 잊다가 잃는다.


  오늘은 한낮부터 바람처럼 다니고서야 비로소 집으로 간다. 갑작스레 찾아온 분이 있으나, 가만히 말을 섞고 마음을 나누었다. 삶을 짓는 길이 아닌, 자리(돈을 버는 자리)를 걱정하는 마음을 곰곰이 들었다. 걸어다니면서 집과 마을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걱정거리나 근심거리가 있을 틈을 굳이 내지 않는다. 모든 틈에 씨앗을 놓고, 어느 틈이든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가 깃들면 되며, 틈이 나는 데마다 바람과 해와 비가 드나들면 되니까.


  달구지를 달리며 멀리 오가는 일터에 몸을 두기에 으레 걱정거리하고 근심거리가 잇달아 생긴다. 집과 일터 사이에 있는 집과 들숲메바다를 바라볼 틈이 없으니, 새도 풀벌레도 개구리도 이웃이 아닌걸. 이웃이 없는 채 빠르게 오가야 하니 그야말로 틈이 없고, 틈이 없으니 햇볕을 쬐거나 별을 보거나 바람을 쐬거나 비로 씻을 조그마한 짬마저 없기 일쑤이다. 달구지를 달리기에 나쁠 까닭이 없다. 달구지에 얽매이면서 스스로 심부름에만 마음을 기울이고 몸을 움직이느라 근심걱정이 자꾸자꾸 싹트고 버지고 자랄 뿐이다.


  나는 이제 등허리를 펴려고 집으로 간다. 새와 나무가 있는 집으로 간다. 풀빛이 싱그럽고 꽃빛이 환한 집으로 간다. 멧딸기가 익고 앵두가 나란히 익는, 감꽃과 고욤꽃이 나란히 톡톡 떨어지는 집으로 간다. 개오동나무가 밝게 숨결을 베풀고, 잘 자란 쑥과 돌나물이 산뜻하게 속삭이는 집으로 간다. 2026.5.21.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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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 5·18)



  ‘청소년 십지지문 강제채취’라고 있다. 이름쪽(주민등록증)을 처음 받을 적에 열손가락 손그림을 따는 미친짓이다. 푸름이가 아무 잘못한 바가 없더라도 “모든 국민은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면서 손그림을 딴다. 왜 모든 사람이 손그림을 따야 하는지 묻거나 따지면서, 이런 멍청짓을 없애는 길이 ‘사람길(인권)’을 이루는 첫걸음이라는 대목을 짚는 일꾼(공무원·국회의원)은 한 놈이라도 있을까?


  2026해 늦봄 열여드레에 ‘스타벅스 탱크데이’가 말밥에 올랐다. ‘미국 스타벅스’가 아닌 ‘한국 스타벅스’에서 혼자 꾀했다고 하는데, 늦봄 열드레에 맞춘 깜짝잔치라면 ‘늦봄꽃날’로 삼아서 그야말로 반짝이는 이야기를 열 만했다. 꼭 ‘5·18’이 아닌 다른 날이었어도 ‘탱크데이’란 터무니없으며 멍청하다. 이런 깜짝잔치를 꾀한 몇몇 얼뜨기 탓에 ‘스타벅스 알바생’을 비롯한 작은사람은 난데없이 벼락을 맞은 셈이다.


  끝(극단)과 끝(극단)은 만나게 마련이다. 아무리 목소리가 훌륭하더라도 끝으로 치달을 적에는 다른 끝하고 만나면서 온누리에 불을 지르는 싸움박질을 부추긴다. 멍청한 깜짝잔치를 꾀한 몇몇 사람도 얄궂고, ‘스타벅스 불매운동’을 하자고 외치는 나리(정치꾼)도 얄궂다. 이런 판에 ‘스타벅스 인증샷’을 지르는 이는 또 얼마나 얄궂은가. 다들 싸우고 싶어서 근질근질한 듯싶다. 싸워서 ‘저놈’을 때려잡자고 여기는구나 싶다.


  우리는 왼날개하고 오른날개가 어깨동무하면서 하늘을 날아올라서 아름답게 삶을 짓는 길을 가면 된다. 왼팔을 자르거나 오른팔을 자르는 짓은 스스로 죽으려는 가장 멍청한 굴레이다. 넌 저놈이 싫으니 오른눈을 도려내니? 넌 그놈이 미워서 왼눈을 파내니? 넌 왼쪽에 서니까 오른귀와 오른팔다리와 오른콩팥과 오른손발을 다 자르니? 넌 오른쪽에 서니까 왼귀와 왼팔다리와 왼콩팥과 왼손발을 다 자르니?


  대통령이 잘못했으면 대통령을 나무라고, 시장이나 도지사가 잘못했으면 시장이나 도지사를 꾸짖고, 국회의원 출마후보자가 잘못했으면 이 출마후보자를 꾸중하면 된다. 그러나 ‘그사람’을 손가락질하거나 내쳐야 하지 않다. 그사람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고개숙이면서 잘못값을 치르는 길을 차분히 알려줄 노릇이다.


  이른바 ‘좋은책’을 많이 사읽는다고 해서 ‘좋은사람’이지 않다. 책을 아예 안 읽기에 ‘나쁜사람’이지 않다. 무엇보다도 ‘좋은책·나쁜책’이라고 섣불리 금을 긋지 않아야 할 노릇이다. “누가 ‘좋은책’인지 ‘나쁜책’인지 가르는가?”를 짚을 노릇이다. ‘좋고나쁨’부터 모두 걷어내고서 ‘아름길’과 ‘살림길’과 ‘숲길’과 ‘사람길’과 ‘아이를 돌보는 포근길’을 헤아려야지 싶다.


  ‘스타벅스 5·18 이벤트’가 엉터리에 미친짓이었으면 이런 일을 꾀한 사람을 나무랄 일이다. 그사람이 잘못값을 치르면 된다. 이제 우리는 어느 만큼은 알 만하지 않은가. ‘스타벅스 말썽’이 일어났대서 ‘스타벅스 알바생’을 비롯해서 ‘스타벅스 협력업체’를 섣불리 싸잡거나 흔들지 않을 수 있는 눈길이어야 한다. 다만, 내가 살아가는 전라남도 고흥군에는 스타벅스가 없다. 작은시골에는 스타벅스이건 뭐건 없으니까 그곳에 갈 일도 없고 안 갈 일도 없다. 이 작은시골에는 ‘롯데리아’는 있고, ‘맘스터치’가 한때 있다가 사라졌다가 아주 조그맣게 새로 열기는 했다. 둘레에서 나한테 ‘커피상품권’을 보내시기도 하는데, 시골에서는 아예 쓸 일이 없다.


  ‘이란’이란 나라가 ‘신정독재’를 하면서 숱한 사람을 마흔일곱 해에 걸쳐서 끔찍하게 괴롭히고 죽였더라도, 이란에서 보임꽃(영화)을 아름답게 찍는 일꾼이 있다. 얼뜬 우두머리(독재자)는 나무라되, 그 나라에서 살림을 짓는 작은사람을 함부로 싸잡을 일이 아니다. 예나 이제나 껍데기를 걷어치우는 길을 어질게 바라봐야 한다. 이미 우라나라에서 〈껍데기는 가라〉처럼 놀랍고도 아름다운 노래를 박정희 사슬나라에서 나즈막이 외친 작은사람이 있다. 또한 이 작은사람 신동엽 님은 〈산문시 1〉라는 놀라운 노래도 남겼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지킴이(경호원)가 없이 두바퀴(자전거)를 털레털레 밟는 작은일꾼(권력자 아닌 대통령과 공무원)”일 노릇이다. 이런 일꾼을 뽑을 줄 아는 눈길을 가꿔야지. 우리 스스로 이런 일꾼으로 살아가는 하루를 그리면서 오늘을 노래해야지 싶다. 그루(주식)를 안 하는 사람만 나라일을 맡을 노릇이다. 걸어다니는 사람만, 좋은책이 아닌 ‘그저 책’을 읽는 사람만 벼슬을 맡아야 한다. 2026.5.20.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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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좋



  아침에 집을 나서기 앞서 작은아이랑 얘기한다. 요새 뒷집이며 마을앞이며 곳곳에서 쇳소리가 넘친다. 헌집을 헐고서 새집을 크게 올린다며 시끄럽고 먼지가 수북하다. 틀림없이 시끌소리에 매캐먼지이다. 시끄럽다고 여기며 싫어하면 도리어 귀를 쫑긋거리면서 미움씨를 심는다. “응, 저기서는 시끌삶을 지어서 누리는구나” 하고 느낀 다음에, 우리가 오늘 무엇을 하면서 즐거울는지 마음을 기울이면, 어느새 시끌먼지는 슥 스쳐서 사라진다.


  스스로 온마음을 기울여서 온몸으로 지을 하루를 그리면, 서울 한복판에서 작은새·큰새·나비·잠자리·벌·개미·거미·풀벌레처럼 푸릇한 이웃을 알아본다. 온마음을 딴청에 쏟기에 짜증스럽고 싫고 밉게 마련이다. 온마음을 쏟는 곳에 바로 ‘나’라는 숨결이 있다.


  누가 책을 읽는가. 책벌레는 시끌소리를 느끼는가. 누가 책을 쓰는가. 책벌레는 책이 아닌 시끌소리를 왜 느끼는가. 마을앞에서 시골버스만 타도 ‘시골버스가 내는 소리’가 엄청나게 시끄럽다. 시골버스를 타는 아재나 할배나 아지매나 할매나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나 어린이나 푸름이가 손전화를 켜서 쳐다보는 그림도 하나같이 시끄럽다. 고흥읍에 닿아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는 훨씬 시끄럽다. 그래서 우리는 시골버스이든 시외버스이든, 또 서울에 내려서 갈아타는 시내버스이건 ‘시끌소리가 싫다’고 느끼며 받아들일 수 있다. 또는 “시끄럽건 말건 내가 볼 곳”에 마음을 기울이면서 종이에 글을 쓰거나 책을 펴서 읽을 수 있다.


  온마음을 기울여서 하루를 그리고 짓고 돌보고 누리고 나누려 하기에, 온돈을 들여서 기쁘게 책을 사읽는다. 온사랑을 담아서 쓴 글을 알아보려고 온눈을 뜨기에 우리 스스로 밝고 즐겁다. 책벌레는 책소리를 듣는 책길이다. 잎벌레는 잎소리를 듣는 잎길이다. 나는 날개돋이를 그리는 작은벌레로 살아간다. 나는 돈그루(주식)가 아닌 나무그루(숲)를 그리며 바라본다. 나무가 서는 밑동인 그루가 뿌리랑 줄기를 나란히 담듯, 살림을 담는 그릇은 늘 밑바닥이라는 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이듯, 사랑을 짓는 살림집을 그려서 들려주려는 “그루이자 그릇이자 그림인 글” 한 자락을 길이길이 실오라기마냥 풀어내는 오늘길을 걷는다.


  작은아이한테 속삭인다. “좋아하는 대로 하는 사람은 얼핏 좋아 보이겠지? 그런데 좋아한다는 좋은 일만 하려는 사람은 이내 지겨워한단다. 싫어하니까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은, 큰일이든 작은일이든 다 안 하려 하면서 스스로 갉아. 그래서 뭘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똑같아. 둘 다 날마다 싸우면서 불타느라 스스로 죽어가. 이와 달리, ‘그저 하루를 그리며 일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맞이하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만 본단다. ‘어떻게’와 ‘하다’를 생각하기에 늘 스스로 길을 열어. 하루를 그리며 일하는 사람은 싫거나 좋다고 가리지 않으면서 다 배우려고 하지. 그렇지만 싫거나 좋은지 따지려는 사람은 이미 아무것도 안 배우려고 하니까 스스로 단단히 닫아걸어서 그만 고이고 썩어간단다.”


  싫어하는 사람은 시시하고 시들시들 말라비틀어간다. 좋아하는 사람은 졸졸졸 꽁무니를 좇느라 종살이에 조무래기로 구르니 어느새 좁아터진다. 누가 읽고 쓰는가. 싫다고 외치거나 좋다고 따르는 무리는 여태 책을 안 읽었다. 싫다며 등돌리는 무리는 늘 ‘읽는흉내’였다. 좋다고 모시거나 높이는 무리는 내내 ‘읽는척’이었다. 오직 구슬땀·이슬땀·노래땀·손땀·살림땀·푸른땀으로 일하는 사람만 ‘읽기’와 ‘쓰기’와 ‘나누기’와 ‘베풀기’를 했다.


  어느 쪽에 선들 대수롭지 않다. ‘읽는이(독서자)’일 적에 비로소 이야기가 흐른다. 어느 쪽에 선들 대단하지 않다. ‘안읽는이(비독서자)’일 적에는 아무 이야기가 없어서 서로 아무 마음이 안 흐른다. ‘안읽는이’일수록 목소리만 높다. ‘읽는이’일수록 먼저 가만히 들으면서 생각을 갈무리하고는 나즈막이 마음을 들려준다. ‘읽는이’는 으레 “먼저 듣기 + 나중에 말하기 + 다시 듣기 + 새로 말하기”라는 길을 잇는다. ‘안읽는이’는 그야말로 “혼자 말하기 + 말 끊기 + 또 혼자 말하기 + 다시 말 끊기”를 되풀이한다.


  누구나 읽고 쓰되, 아무나 읽고 쓰지 않는다. 언제나 읽고 쓰되, 아무렇게나 읽고 쓰지 않는다. 나는 읽고 쓰고 나누고 펴려는 하루그림이다. 그래서 숲부터 읽고 쓴다. 바람과 바다를 나란히 읽고 쓴다. 너도 나랑 같이 숲과 바람과 바다를 읽고 쓰고 나누면서 노래하기를 바라. 이제 흉내도 시늉도 척도 집어치우자. 늘 스스로 사랑하며 살림하자. 2026.5.1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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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해 만에 새로



  지난 2020해에 전주마실을 하면서 《남해에서 뭐 해 먹고사냐 하시면 아마도책방이겠지요》라는 책을 장만해서 읽었다. 전남 고흥과 경남 남해는 그리 멀지않으나, 뚜벅이나 두바퀴로 가기에는 하염없는 길이다. 여섯 해가 흐르는 동안 아직 남해에 첫발을 디디지는 못 한다. 앞으로 언제쯤 남해마실을 해볼는지 모른다.


  올 2026해 늦봄 어느 날 부산 언덕마루(산복도로) 한켠에 있는 마을책집 〈만만〉에 들르는데 〈아마도책방〉 지기님이 쓴 책이 보인다. 이미 사읽은 책이지만 새로 산다. 오늘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새로 읽는다. 이밖에 오늘 버스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는 책을 허벅지에 얹고서 해바라기를 해본다.


  서울이건 부산이건 인천이건 진주이건 마산이건 청주이건 대전이건 광주이건 속초이건 영양이건 안동이건 정읍이건 공주이건, 온나라 모든 마을책집이 반갑다. 우리 어버이가 나고자랐다는 당진은 언제쯤 책집마실을 해볼는지 아직 모른다. 아마도 예순 살이나 일흔 살에 갈는지 모르고 아흔 살이나 온 살에 갈 수 있을는지 모르지.


  엊그제 고흥 시골집에서 곁님과 두 아이랑 한참 ‘미치오 카쿠’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카쿠 할아버지는 어릴적에 ‘아인슈타인이 못 푼 길’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왜 엄마한테 안 물어봤대? 엄마한테 물어보면 엄마가 알려줄 텐데?” 하고 말했다지. 우리 곁님은 카쿠 할배 말마따나 아인슈타인이 ‘아인슈타인 엄마’한테 물어봤으면 즐겁게 모든 길을 풀었으리라고 얘기한다.


  어제오늘 부산으로 이야기꽃을 펴러 나들이를 하는 동안 이 대목을 내내 곱씹었다. “아빠한테 물어보았다면 풀었을까?” 하고 곱씹자니 아무래도 아빠한테 물었으면 그저 풀죽었으리라 느낀다. 엄마는 아빠와는 달리 “그래? 무슨 일이야? 뭐? 못 푸는 길이 있다고? 이리 줘 봐. 이렇게 하면 돼!” 하고 알려주고는 다른 일을 하러 갔으리라 본다.


  시골내기는 시골내기가 반갑다. 낯도 이름도 모른다만, 말을 섞은 바도 없지만, 아무래도 싱그럽고 시원한 골짜기가 짙푸른 모든 시골은 나란히 이웃이라고 느낀다. 일거리와 읽을거리를 새로 품고서 우리집으로 돌아간다. 버스는 순천에서 쉴 테고, 나도 순천에서 기지개를 켤 테고, 늦봄볕은 슬슬 여름티가 스미고, 바람에는 곧 밤꽃가루빛이 번질 테며, 논마다 사름이 오르겠구나. 어느덧 모래내(섬진강)를 스친다. 2026.5.1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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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맛길



  고흥을 떠난 시외버스는 빗길을 가른다. 부산에 닿으니 해가 나다가 소나기에 여우비가 지나간다. 그러려니 여긴다. 여러빛을 베푸는 하늘인걸. 가맛길(산복도로) 한켠에 깃든 마을책집 〈만만 meet_n_make〉으로 마실한다. 인천에서는 오르내리막이 물결치는 골목마을을 으레 ‘언덕·언덕길’이라 했다. 조금 높거나 가파르다 싶으면 ‘고개·고갯길’이라 했다. 부산과 인천은 일찍 나루를 열어야 했기에 일본사람이 우루루 몰려들며 일본말이 춤춘 고장이요, 두 곳에는 오래도록 일본말씨가 걷히지 않았지만, 이제 인천은 웬만한 일본말씨는 자취를 감추고, 부산은 ‘일본말씨를 부산말씨’로 여기면서 못 놓거나 안 놓기도 한다. 이를테면 ‘산복도로’는 부산에서 흔히 보는 골목마을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닌, 그냥 일본말이다. 요즈막에 부산과 마산은 서로 “우리가 ‘산복도로 원조’야!” 하고 내세운다. 일본말을 그냥그냥 안 버린대서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부산’은 ‘가마솥’을 닮은 숲터로 여기니, ‘가마’라는 말씨를 살린 ‘가마 + ㅅ + 길’ 얼거리로 ‘가맛길’ 같은 부산말씨를 오롯이 새로 지을 만하다.


  가맛길을 따라 걷고, 가맛마실을 하고, 가맛집에 깃들고, 가맛가게를 차리고, 가맛하루를 누리고, 가맛잔치를 열고, 가맛노래를 부르고, 가맛걸음을 나누고, 가맛빛을 헤아리고, 가맛꽃과 가맛나무를 아끼고, 가맛새를 만나고, 가맛나루를 이야기하고, 가맛살이를 즐기고, 가맛살림을 배우고, 가맛이웃을 사귀고, 가맛동무랑 어우렁더우렁 웃을 만하다.


  부산 동대신동2가 〈만만 meet_n_make〉은 버스나루하고 나란하다. 책집을 서성이며 책시렁을 돌아보노라면, 어느새 부산시내버스가 슥 멈춘다. 가맛길로 나들이를 온 이웃나라 사람들이 여러 이웃말을 주고받다가 버스를 타고서 떠난다. 느긋이 책을 읽고 장만한다. 등짐을 메고서 이곳에 다다른 등허리를 편다. 잎물을 마시고 이야기가 흐른다. 다시 등짐을 멘다. 이제 190 부산버스를 탄다. 얼추 열 몇 해 앞서 타본 버스로구나. 새삼스레 굽이굽이 도는 가맛길을 돌아보다가 책을 읽는다. 《망고와 수류탄》은 류우큐우 사람들 발자취를 짚는다. 버스에서도 읽고 쓰다가 내린다. 구름은 차츰 걷힌다. 곧 해가 눈부시다. 환하고 따뜻한 늦봄하루이다. 2026.5.12.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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