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싫좋



  아침에 집을 나서기 앞서 작은아이랑 얘기한다. 요새 뒷집이며 마을앞이며 곳곳에서 쇳소리가 넘친다. 헌집을 헐고서 새집을 크게 올린다며 시끄럽고 먼지가 수북하다. 틀림없이 시끌소리에 매캐먼지이다. 시끄럽다고 여기며 싫어하면 도리어 귀를 쫑긋거리면서 미움씨를 심는다. “응, 저기서는 시끌삶을 지어서 누리는구나” 하고 느낀 다음에, 우리가 오늘 무엇을 하면서 즐거울는지 마음을 기울이면, 어느새 시끌먼지는 슥 스쳐서 사라진다.


  스스로 온마음을 기울여서 온몸으로 지을 하루를 그리면, 서울 한복판에서 작은새·큰새·나비·잠자리·벌·개미·거미·풀벌레처럼 푸릇한 이웃을 알아본다. 온마음을 딴청에 쏟기에 짜증스럽고 싫고 밉게 마련이다. 온마음을 쏟는 곳에 바로 ‘나’라는 숨결이 있다.


  누가 책을 읽는가. 책벌레는 시끌소리를 느끼는가. 누가 책을 쓰는가. 책벌레는 책이 아닌 시끌소리를 왜 느끼는가. 마을앞에서 시골버스만 타도 ‘시골버스가 내는 소리’가 엄청나게 시끄럽다. 시골버스를 타는 아재나 할배나 아지매나 할매나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나 어린이나 푸름이가 손전화를 켜서 쳐다보는 그림도 하나같이 시끄럽다. 고흥읍에 닿아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는 훨씬 시끄럽다. 그래서 우리는 시골버스이든 시외버스이든, 또 서울에 내려서 갈아타는 시내버스이건 ‘시끌소리가 싫다’고 느끼며 받아들일 수 있다. 또는 “시끄럽건 말건 내가 볼 곳”에 마음을 기울이면서 종이에 글을 쓰거나 책을 펴서 읽을 수 있다.


  온마음을 기울여서 하루를 그리고 짓고 돌보고 누리고 나누려 하기에, 온돈을 들여서 기쁘게 책을 사읽는다. 온사랑을 담아서 쓴 글을 알아보려고 온눈을 뜨기에 우리 스스로 밝고 즐겁다. 책벌레는 책소리를 듣는 책길이다. 잎벌레는 잎소리를 듣는 잎길이다. 나는 날개돋이를 그리는 작은벌레로 살아간다. 나는 돈그루(주식)가 아닌 나무그루(숲)를 그리며 바라본다. 나무가 서는 밑동인 그루가 뿌리랑 줄기를 나란히 담듯, 살림을 담는 그릇은 늘 밑바닥이라는 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이듯, 사랑을 짓는 살림집을 그려서 들려주려는 “그루이자 그릇이자 그림인 글” 한 자락을 길이길이 실오라기마냥 풀어내는 오늘길을 걷는다.


  작은아이한테 속삭인다. “좋아하는 대로 하는 사람은 얼핏 좋아 보이겠지? 그런데 좋아한다는 좋은 일만 하려는 사람은 이내 지겨워한단다. 싫어하니까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은, 큰일이든 작은일이든 다 안 하려 하면서 스스로 갉아. 그래서 뭘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똑같아. 둘 다 날마다 싸우면서 불타느라 스스로 죽어가. 이와 달리, ‘그저 하루를 그리며 일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맞이하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만 본단다. ‘어떻게’와 ‘하다’를 생각하기에 늘 스스로 길을 열어. 하루를 그리며 일하는 사람은 싫거나 좋다고 가리지 않으면서 다 배우려고 하지. 그렇지만 싫거나 좋은지 따지려는 사람은 이미 아무것도 안 배우려고 하니까 스스로 단단히 닫아걸어서 그만 고이고 썩어간단다.”


  싫어하는 사람은 시시하고 시들시들 말라비틀어간다. 좋아하는 사람은 졸졸졸 꽁무니를 좇느라 종살이에 조무래기로 구르니 어느새 좁아터진다. 누가 읽고 쓰는가. 싫다고 외치거나 좋다고 따르는 무리는 여태 책을 안 읽었다. 싫다며 등돌리는 무리는 늘 ‘읽는흉내’였다. 좋다고 모시거나 높이는 무리는 내내 ‘읽는척’이었다. 오직 구슬땀·이슬땀·노래땀·손땀·살림땀·푸른땀으로 일하는 사람만 ‘읽기’와 ‘쓰기’와 ‘나누기’와 ‘베풀기’를 했다.


  어느 쪽에 선들 대수롭지 않다. ‘읽는이(독서자)’일 적에 비로소 이야기가 흐른다. 어느 쪽에 선들 대단하지 않다. ‘안읽는이(비독서자)’일 적에는 아무 이야기가 없어서 서로 아무 마음이 안 흐른다. ‘안읽는이’일수록 목소리만 높다. ‘읽는이’일수록 먼저 가만히 들으면서 생각을 갈무리하고는 나즈막이 마음을 들려준다. ‘읽는이’는 으레 “먼저 듣기 + 나중에 말하기 + 다시 듣기 + 새로 말하기”라는 길을 잇는다. ‘안읽는이’는 그야말로 “혼자 말하기 + 말 끊기 + 또 혼자 말하기 + 다시 말 끊기”를 되풀이한다.


  누구나 읽고 쓰되, 아무나 읽고 쓰지 않는다. 언제나 읽고 쓰되, 아무렇게나 읽고 쓰지 않는다. 나는 읽고 쓰고 나누고 펴려는 하루그림이다. 그래서 숲부터 읽고 쓴다. 바람과 바다를 나란히 읽고 쓴다. 너도 나랑 같이 숲과 바람과 바다를 읽고 쓰고 나누면서 노래하기를 바라. 이제 흉내도 시늉도 척도 집어치우자. 늘 스스로 사랑하며 살림하자. 2026.5.1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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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해 만에 새로



  지난 2020해에 전주마실을 하면서 《남해에서 뭐 해 먹고사냐 하시면 아마도책방이겠지요》라는 책을 장만해서 읽었다. 전남 고흥과 경남 남해는 그리 멀지않으나, 뚜벅이나 두바퀴로 가기에는 하염없는 길이다. 여섯 해가 흐르는 동안 아직 남해에 첫발을 디디지는 못 한다. 앞으로 언제쯤 남해마실을 해볼는지 모른다.


  올 2026해 늦봄 어느 날 부산 언덕마루(산복도로) 한켠에 있는 마을책집 〈만만〉에 들르는데 〈아마도책방〉 지기님이 쓴 책이 보인다. 이미 사읽은 책이지만 새로 산다. 오늘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새로 읽는다. 이밖에 오늘 버스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는 책을 허벅지에 얹고서 해바라기를 해본다.


  서울이건 부산이건 인천이건 진주이건 마산이건 청주이건 대전이건 광주이건 속초이건 영양이건 안동이건 정읍이건 공주이건, 온나라 모든 마을책집이 반갑다. 우리 어버이가 나고자랐다는 당진은 언제쯤 책집마실을 해볼는지 아직 모른다. 아마도 예순 살이나 일흔 살에 갈는지 모르고 아흔 살이나 온 살에 갈 수 있을는지 모르지.


  엊그제 고흥 시골집에서 곁님과 두 아이랑 한참 ‘미치오 카쿠’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카쿠 할아버지는 어릴적에 ‘아인슈타인이 못 푼 길’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왜 엄마한테 안 물어봤대? 엄마한테 물어보면 엄마가 알려줄 텐데?” 하고 말했다지. 우리 곁님은 카쿠 할배 말마따나 아인슈타인이 ‘아인슈타인 엄마’한테 물어봤으면 즐겁게 모든 길을 풀었으리라고 얘기한다.


  어제오늘 부산으로 이야기꽃을 펴러 나들이를 하는 동안 이 대목을 내내 곱씹었다. “아빠한테 물어보았다면 풀었을까?” 하고 곱씹자니 아무래도 아빠한테 물었으면 그저 풀죽었으리라 느낀다. 엄마는 아빠와는 달리 “그래? 무슨 일이야? 뭐? 못 푸는 길이 있다고? 이리 줘 봐. 이렇게 하면 돼!” 하고 알려주고는 다른 일을 하러 갔으리라 본다.


  시골내기는 시골내기가 반갑다. 낯도 이름도 모른다만, 말을 섞은 바도 없지만, 아무래도 싱그럽고 시원한 골짜기가 짙푸른 모든 시골은 나란히 이웃이라고 느낀다. 일거리와 읽을거리를 새로 품고서 우리집으로 돌아간다. 버스는 순천에서 쉴 테고, 나도 순천에서 기지개를 켤 테고, 늦봄볕은 슬슬 여름티가 스미고, 바람에는 곧 밤꽃가루빛이 번질 테며, 논마다 사름이 오르겠구나. 어느덧 모래내(섬진강)를 스친다. 2026.5.1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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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맛길



  고흥을 떠난 시외버스는 빗길을 가른다. 부산에 닿으니 해가 나다가 소나기에 여우비가 지나간다. 그러려니 여긴다. 여러빛을 베푸는 하늘인걸. 가맛길(산복도로) 한켠에 깃든 마을책집 〈만만 meet_n_make〉으로 마실한다. 인천에서는 오르내리막이 물결치는 골목마을을 으레 ‘언덕·언덕길’이라 했다. 조금 높거나 가파르다 싶으면 ‘고개·고갯길’이라 했다. 부산과 인천은 일찍 나루를 열어야 했기에 일본사람이 우루루 몰려들며 일본말이 춤춘 고장이요, 두 곳에는 오래도록 일본말씨가 걷히지 않았지만, 이제 인천은 웬만한 일본말씨는 자취를 감추고, 부산은 ‘일본말씨를 부산말씨’로 여기면서 못 놓거나 안 놓기도 한다. 이를테면 ‘산복도로’는 부산에서 흔히 보는 골목마을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닌, 그냥 일본말이다. 요즈막에 부산과 마산은 서로 “우리가 ‘산복도로 원조’야!” 하고 내세운다. 일본말을 그냥그냥 안 버린대서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부산’은 ‘가마솥’을 닮은 숲터로 여기니, ‘가마’라는 말씨를 살린 ‘가마 + ㅅ + 길’ 얼거리로 ‘가맛길’ 같은 부산말씨를 오롯이 새로 지을 만하다.


  가맛길을 따라 걷고, 가맛마실을 하고, 가맛집에 깃들고, 가맛가게를 차리고, 가맛하루를 누리고, 가맛잔치를 열고, 가맛노래를 부르고, 가맛걸음을 나누고, 가맛빛을 헤아리고, 가맛꽃과 가맛나무를 아끼고, 가맛새를 만나고, 가맛나루를 이야기하고, 가맛살이를 즐기고, 가맛살림을 배우고, 가맛이웃을 사귀고, 가맛동무랑 어우렁더우렁 웃을 만하다.


  부산 동대신동2가 〈만만 meet_n_make〉은 버스나루하고 나란하다. 책집을 서성이며 책시렁을 돌아보노라면, 어느새 부산시내버스가 슥 멈춘다. 가맛길로 나들이를 온 이웃나라 사람들이 여러 이웃말을 주고받다가 버스를 타고서 떠난다. 느긋이 책을 읽고 장만한다. 등짐을 메고서 이곳에 다다른 등허리를 편다. 잎물을 마시고 이야기가 흐른다. 다시 등짐을 멘다. 이제 190 부산버스를 탄다. 얼추 열 몇 해 앞서 타본 버스로구나. 새삼스레 굽이굽이 도는 가맛길을 돌아보다가 책을 읽는다. 《망고와 수류탄》은 류우큐우 사람들 발자취를 짚는다. 버스에서도 읽고 쓰다가 내린다. 구름은 차츰 걷힌다. 곧 해가 눈부시다. 환하고 따뜻한 늦봄하루이다. 2026.5.12.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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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쫀두 탕후루 마라탕



  나는 여태 ‘마라탕’도 ‘탕후루’도 ‘두쫀두’도, 그때그때 이름이 드높은 온갖 먹을거리도 곁에 두거나 아이들한테 사준 바 없다. 우리집 아이들도 그런 데에 아무런 마음을 안 쓴다. 갑자기 물결치듯 뭐가 일어나면 또 우르르 쏠리는구나 하고 느낀다. 큰보람(문학상)을 탔다고 뜨기에 어느 책을 읽어야 한다면, 책으로서는 이미 빛바랬다고 느낀다. 벌써 스물다섯 해가 넘은 일이다만, 권정생 할배가 “내 책은 추천도서에서 빼 달라.” 하고 아주 세게 말하고 손사래치던 일을 떠올린다. 반짝하고 뜨면 이레 만에 ‘100만’이 팔릴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지만, ‘100만’은커녕 ‘1만’이나 ‘1천’이 팔릴 만한 일을 굳이 안 할 수 있는 글꾼과 책집지기가 늘어나야 할 노릇이지 싶다.


  ‘문학상 공모전’에 글을 안 내야 하지는 않지만, ‘문학상 공모전’에서 으뜸으로 뽑혔을지라도 ‘문학상 수상집’이라는 이름을 창피하다고 여길 줄 알 때에, 비로소 글과 책이 제값을 한다고 느낀다. 우리가 글을 쓰고 읽다가, 문득 책을 쓰기도 하고 사읽기도 하는 뜻이라면, “남보다 높다랗게 올라서는 으뜸자리”가 아닌, “이웃과 나란히 어깨동무하는 마을과 들숲메바다라는 푸른자리”에 서려는 마음이 바탕일 노릇이라고 본다. 으뜸자리를 가볍게 치우고서, 푸른자리를 가만히 열기에 글지기에 책지기이다. 버금자리나 딸림자리란 없이, 꼴찌나 막째도 없이, 누구나 파란하늘과 푸른들숲을 머금는 살림자리를 바라보면서 일구기에 일꾼에 글꾼에 책꾼에 살림꾼이다.


  우리말 ‘돈’은 ‘도 + ㄴ’인 얼개이다. ‘도’를 기둥으로 삼아서 ‘ㄴ’을 받침으로 놓는다. ‘ㄴ’은 부드럽게 서로 잇는 결을 나타낼 뿐 아니라, ‘나·너’를 나타내는 ‘ㄴ’이기도 하다. 기둥 구실을 하는 ‘도’는 ‘돕다·돌다·돌보다·돌아보다·동그라미·동무’라는 낱말을 이루는 뿌리이면서, ‘두르다·둘러보다·둘레·둥글다·두레·둘’로 맞닿는 뿌리이다. 그러니까 ‘돈’이 돈다우려면, 나하고 너를 둥글게 돕듯 돌고돌면서 잇는 실마리라는 뜻이다. 돈을 돈답게 살릴 적에는 언제나 서로 동무하고 두레하는 마음을 밑자락에 놓는다는 뜻이고.


  움켜쥐면 돌더미 같은 돈에다가, 돌머리로 굳는 돈이다. 똑같은 돈이어도 어느 곳에 놓고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다. 똑같은 글과 책이어도 어떤 손길로 쥐어서 어떤 눈길로 읽어낸 뒤에 어떤 살림살이로 풀어내느냐에 따라서 아주 다르다. 더 낫거나 좋은 책이란 없이, 더 나쁘거나 떨어지는 책도 없이, 우리 손길과 눈길과 발길과 마음길과 숨길에 따라서 새롭게 깨어나는 책이라고 느낀다.


  힘이 모자라거나 없거나 못 미친다면, 작고 낮고 더딘 몸으로 더 천천히 느긋이 걸으면 넉넉하지 싶다. 이제 온나라에 작은책집이 꽤 있다. 온나라 골골샅샅에 마을빛을 헤아리는 마을책집이 조촐히 선다. 이 작은책집과 마을책집을 곁에서 늘 지켜보는 ‘책집아이’도 꽤 있다. 어느 책집아이는 어버이가 꾸리는 책집을 시킨둥히 여길 테지만, 어느 책집아이는 어버이가 가꾸는 책집을 함께 가꾸고픈 꿈을 키울 만하다.


  작은책집이나 마을책집을 물려받고 싶은 아이가 있다면, 작은책집에서 곁일(알바)을 틈틈이 해보라고 북돋우면서, 작은책집을 새롭게 빛내고 밝히는 일손을 돕는 자리부터 첫걸음을 뗄 만하지 싶다. 어버이가 꾸려가는 책집에서 일손을 돕는 보람이란, 아이를 더없이 반짝반짝 일깨우고 세운다. 돌고도는 책과 돌고도는 돈을 동무하고 두레하다가 ‘한동아리’로 엮는 슬기로운 빛은 언제나 아이들 손끝에서 피어난다고 본다. “책집을 물려받고 싶으면, 책집에서 열 해쯤 일손을 도와 보렴. 그러고 나서 다시 이야기해 보자.” 하고 들려줄 수 있을 테지.


  작은책집은 너른숲을 이룬 모든 나무가 처음 빚은 모습인 ‘작은씨앗’이라고 하는 책을 다 다르게 품은 곳이다. 마을책집은 푸른멧숲을 이룬 모든 풀꽃나무가 처음 이 별에 온 모습인 ‘작은씨앗’과 같은 책을 서로서로 다르게 돌보는 곳이다. 이름난 책은 안 나쁘지만, 그저 ‘푸른책’을 품는 작은책집이 아름답다. 널리 팔리는 책은 안 나쁘되, 언제나 ‘파란책(파란하늘과 같은 책)’을 토닥이고 나누는 마을책집이 사랑스럽다. 푸르기에 파랗고, 파랗기에 푸르다. 하늘빛을 받기에 들숲메이다. 들숲메에서 흐르는 샘물과 냇물을 받는 바다라서 파랗다. 2026.2.1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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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손털기



  저잣거리에서 일하는 사람하고 손을 잡다가 자꾸자꾸 ‘손털기’를 하는 모습이 찍혀서 말밥에 오른 하정우 씨가 있다고 한다. 말밥에 오른 지 이틀쯤 지난 뒤에는 마치 ‘허리꺾기’를 하듯 온몸을 숙이면서 ‘손잡기’를 하는 모습을 찰칵찰칵 잔뜩 찍어서 누리길(sns)에 올린다고 한다.


  얼추 쉰 살이라는 나이를 살아오면서 ‘손잡기’를 해본 바가 없을까? 손을 마주잡은 사람이 뻔히 보는 눈앞에서 ‘손털기’를 하면, 왜 이렇게 손을 터는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손털기를 하는 이가 ‘저놈(저짝 무리 놈)’이면 화살을 퍼붓고, 손털기를 하는 이가 ‘이놈(우리 무리 놈)’이면 감싸려고 할 뿐이다.


  아이가 손을 잡자고 하면서 “사탕과 침과 흙이 범벅인 손”을 내밀 적에 어찌하려는지 물어보고 싶다. ‘우리집 아이’뿐 아니라 ‘이웃집 아이’가 코딱지를 후비다가 입으로 쏙 넣던 손을 슥 내밀면서 “아저씨, 나랑 손잡아요!” 하고 방긋 웃으면 어찌하려는지 물어볼 노릇이다.


  우리가 어버이라면, 또 어른이라면, 아이 손에 뭐가 묻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버이나 어른이라면 가만히 손수건을 꺼내어 먼저 아이 손을 살살 쓰다듬으면서 닦아 주겠지. 손수건을 미처 못 챙겼으면 옷자락이나 옷소매로 먼저 아이 손을 살살 닦아 줄 테고. 이러면서 “그래, 손을 잡자. 그런데 네가 신나게 놀면서 손에 이모저모 많이 묻었네. 놀다 보면 뭐가 잔뜩 묻게 마련인데, 손을 자주 씻고, 또 손수건을 챙겨서 닦으면 손이 무척 기뻐해. 그래서 아저씨가 네 손을 이렇게 손수건으로 살살 닦아 주고 싶단다.” 하고 한마디를 곁들이면 서로 즐겁다. 이때에 아이는 문득 한 가지를 배우지.


  벼슬(국회의원)을 얻고 싶어서 “서울살이를 한동안 접고서 부산으로 ‘내려갈’” 수 있다. 위에 계신 분이 밑으로 내려갈 적에는 종이(표)를 얻고픈 마음일 텐데, 벼슬을 얻는 분은 뽑기를 앞둘 적에만 사람들을 만나서 손을 잡더라. 뽑기를 마친 뒤에는 “손잡기는커녕 얼굴조차 볼 수 없”더라. 아무튼, 하루 내내 손에 물과 먼지와 얼룩과 이모저모 묻히면서 바지런히 일하면서 땀흘리는 사람은 아주 마땅히 손에 이모저모 많이 묻는다. 벼슬아치가 저잣사람하고 손을 잡는다고 할 적에는 무슨 뜻일까? 기꺼이 물도 때도 먼지도 얼룩도 비린내도 받아들이면서 배우겠다는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벼슬을 얻기 앞서 부디 왼손에는 종이(수첩)를 쥐고서, 오른손에는 손수건을 챙기기를 빈다. 저잣사람뿐 아니라 마을사람이 무엇을 바라는지 들을 적마다 얼른 종이에 적기를 빈다. ‘꾸밈머리(에이아이)’한테 시키거나 맡기지 말자. 몸소 듣고 손수 적자. 이러면서 저잣거리 사람들한테 손수건을 하나씩 나눠줄 수 있다. “이렇게 애써 일하시는 땀내음을 저도 손바닥으로 물씬 느낍니다. 애써 주시는 손끝으로 이 나라가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그래서 여러분 손을 잡고서 손수건으로 땀도 물도 얼룩도 닦아 주고 싶습니다.” 하고 속삭이면서 손수건을 하나씩 드리면 될 노릇 아닐까?


  핑계를 대지 말자. 아직 모르니까 배울 뿐이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잘못을 했으니 더 고개숙이면서 “제가 나이가 쉰 살이 넘었어도 아직 철이 없습니다. 철없이 군 짓을 부디 너그러이 보아주십시오. 더 허리숙이면서 애쓰겠습니다.” 하고 말 한 마디 하면 될 일이지 않나? 종이(수첩)하고 손수건을 안 챙기면서 그저 허리만 굽신굽신하는 몸짓인 이들이 벼슬자리에 앉는 일은 다시는 없기를 빈다. 귀담아듣고, 받아적고, 이야기하고, 바로바로 바꾸고 고치는 모습을 보이기를 빈다. 벼슬을 거머쥔 다음에 하지 말고, 벼슬을 아직 안 쥐었을 적부터 일해야 비로소 ‘일꾼’이다. 벼슬(국회의원)은 “사람들이 낸 낛(세금)으로 일삯을 받는 심부름꾼이라는 자리”이다. 사람들이 낸 낛을 다달이 엄청나게 받는 벼슬인데, 기껏 즈믄(1000) 사람 손쯤 잡았다고 손이 저린다면, 벼슬을 가로채려고 하지 말아야지. 2026.5.2.


ㅍㄹㄴ


하정우, 악수 후 '손 털기' 논란… "유권자가 벌레냐" 야권 한목소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928467?sid=100


하정우의 '손 털기' 논란 팩트체크…'풀 영상' 모두 찾아봤다|지금 이 장면

https://www.youtube.com/watch?v=eAbVse4PYog


하정우, '악수' 사진 무더기 SNS 게재…'손털기' 논란 정면 돌파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3922635?sid=100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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