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미운나무



  오늘은 미국으로 글월을 부치려고 읍내로 나온다. 책을 부치려다가 우표값이 세려나 싶어서 글종이만 꾸린다. 무게를 달고 보니 얼마 안 비싸다. 다만 배로 갈 테니 한 달은 걸리겠지. ems가 있다고 하니 이다음에는 그 길을 써 볼까 싶다. 나라안에서 주고받는 글월만 오래 쓰다 보니, 나라밖으로 글월을 보내는 길을 까맣게 잊었네.


  고흥읍으로 나가는 시골버스를 마을앞에서 기다리자니, 마을할매 두 분이 나무를 미워하는(저주하는) 말을 한참 퍼붓는다. 옆에 서서 한귀로 흘린다. 그저 빙긋빙긋 웃으며 노래 한 꼭지를 새로 쓰고서 책을 읽는다. 아무래도 이 시골 어느 누구도 스스로 배우려 하지 않으면 나무가 무엇이고 풀이 무엇이며 숲이 무엇인지 그저 모를밖에 없다. 바다하고 비하고 샘과 내가 어떻게 얽히는지 마냥 모르겠지. 그런데 땅을 만지는 일을 하는 사람한테 땅빛과 흙빛과 풀빛과 숲빛과 나무빛을 제대로 들려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 나라는 얼마나 더 망가지려는 셈일까.


  풀죽임물(농약)을 뿌리면 ‘심은 씨앗’을 빼고서 다른 풀을 싹 잡는 듯 여기는데, 개미도 거미도 풀벌레도 개구리도 벌나비도 새도 몽땅 죽인다. 무엇보다도 시골사람 스스로 마시는 물을 망가뜨리고, 시골에 흐르는 바람도 더럽힌다. 죽음켜(비닐)를 땅에 덮으면 얼핏 풀잡이를 하는 듯 여기는데, 죽음켜는 고스란히 쓰레기요, 죽음켜가 해바람비에 닳아서 여기저기 뒹굴면 땅도 흙도 들도 숲도 마을도 더럽힌다. 죽음거름(화학비료)을 논밭에 들이부으면 얼핏 더 많이 거두는 듯 보이지만, 죽음거름을 쓰는 논밭은 해마다 싯누렇게 앓으면서 죽어간다. 죽음거름을 쓰면 그때부터 죽음거름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 거둔다. 박정희 새마을바람이 일으킨 짓은 ‘ㅅㅈ(세죽음 : 풀죽임물·죽음켜·죽음거름)’이다. 이 ‘ㅅㅈ’를 걷어치울 때라야 시골이 살아날 수 있다.


  한집에서 아이랑 살아가는 나날이라면, 나무가 얼마나 이바지하는지 알 텐데, 아이가 있더라도 외려 아이한테 ‘미운나무’라고 자꾸 읊으며 길들일 수 있다. 곰곰이 보자. 우리 마을에서 나무를 돌보고 새로 심는 할배가 한 분 있는데,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다들 “나무 심는 할배”를 몹시 싫어하더라. “쓰잘데기없는 짓”을 한다는 뒷말을 숱하게 하더라. ‘나무할배’ 한 분을 깎아내리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아서 마을모임에 발을 끊기도 했다.


  우리 마을에서 ‘나무할배’는 이제 등허리가 나가서 엉금엉금 다니시기에 나무를 더는 못 심는다. 언젠가 할배는 “내가 죽고 없어도, 이 마을에 늙은이가 다 죽고 없어도, 나무는 남지 않겠소? 나무가 남으면 나중에 마을도 다시 살지 않겠소? 그러니 나무를 심지. 보쇼, 최 선비. 저그 언덕에 자라는 나무는 내가 다 심었소. 허허, 봄마다 꽃이 발갛게 올라오는데 참 보기 좋지 않소?” 하며 웃으셨다. 아마 나무할배도 마을 다른 모든 할매할배가 이녁한테 “쓰잘데기없는 짓”을 한다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말을 익히 들었겠지.


  나무가 서야 겨울이 포근하다. 나무가 둘러야 여름이 시원하다. 나무를 심고 돌보기에 마을을 비롯해서 이 별이 빛난다. 나무 한 그루 못 자라는 모래벌(사막)에 기름이 퐁퐁 솟기에 떼돈을 버는 나라가 제법 있는데, 돈과 기름만으로는 무너지게 마련이다. 숱한 ‘기름나라(산유국)’는 하나같이 먹을거리를 먼나라에서 사다먹는다. 숱한 기름나라는 기름을 팔아서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돈으로 ‘아름살림’이 아닌 ‘겉멋내기’나 ‘싸움질(전쟁무기 개발)’로 치닫더라. 오늘날 우리나라는 잇(반도체)으로 먹고산다고 외치는데, “잇(반도체)을 판 돈으로 먹을거리를 사들이기”에 살아남을 뿐이다.


  기름이나 잇을 팔아서 먹을거리를 먼나라에서 사들이면 ‘큰나라·좋은나라’일까? 나무 한 그루를 누구나 마당에 심고서 보살필 수 있어야 비로소 아름나라이지 않을까? 나무 한 그루가 푸르게 서지 않는 서울이나 시골이라면 이미 죽음터이지 않은가? 나무 한 그루가 어떤 숨빛인지 들려주거나 가르치거나 이야기하는 배움터나 마을이나 나라나 집이 아니라면, 이미 우리는 사람빛을 팽개친 셈이지 않은가? ‘밉나무’가 아니라 ‘푸른나무’와 ‘살림나무’인 줄 알아보고 얘기하고 아낄 노릇이다. 나는 어느 책을 손에 쥐든, 너른숲에서 부는 바람을 마신다. 모든 책은 나무요, 모든 책은 숲이며, 모든 책은 파란바람을 머금은 풀 한 포기요, 모든 책은 푸른들을 이루고 푸른숲으로 일렁이는 푸른빛이니까. 2026.4.29.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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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법 시골 할매 밭일



  열흘 앞서 마을 할매네 마늘밭 일손을 도왔다. 할매는 곤드레밭 일손도 도와주기를 바라셨고, 그러마 했다. 할매가 얘기한 날 05시에 곤드레밭에 갔더니 아무도 없다. 한참 기다리다가 집으로 왔다. 할매가 힘들어서 쉰다고 여겼다. 엊저녁에 할매가 전화했다. “어이, 작가네인가? 공(고흥)에 있나? 공에 있어? 그라믄 낼 새벽에 밭에 좀 나올 수 있는가? 잉, 새벽 다섯 시에 나와 주면 고맙지. 우린 네 시에 나와서 먼저 빌 텡게. 어이, 그라믄 낼 봅세.”


  밤새와 낮새가 갈마드는 무렵이 03∼05시이다. 밤새는 얼추 이무렵에 쉬러 떠나고, 낮새는 거의 이무렵부터 일어나서 노래한다. 멧밭(산밭)으로 걸어가며 새소리를 듣는다. 늦봄 끝자락이기에 04시도 05시도 환하다. 할매 여섯 분이 먼저 ‘비’ 놓은 곤드레를 자루에 쏟아서 천천히 여민다. 곤드레자루가 하나둘 열스물 쌓이고 난 뒤에는 수레를 밀어서 큰자루(15∼20kg)를 길가로 옮겨서 쌓는다.


  지난해에는 곤드레밭 일손을 도울 적에 05∼08:30이면 마쳤는데, 올해에는 꽤 더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할매가 곤드레를 베고서 큰바구니에 척척 쌓은 뒤에 자루에 쏟으셨다면, 올해에는 내가 큰바구니를 날라서 자루에 쏟은 다음에 빈바구니를 할매 옆으로 갖다놓는다. 이렇게 하는 틈틈이 곤드레자루를 단단히 여미고, 여민 자루를 수레에 싣고서 길가로 옮기는데, 할매들 낫질이 나보다 훨씬 느리다.


  무엇보다도 할매는 쉴참을 못 낸다. 아침해가 일찍 뜨는 첫여름 어귀이다 보니, 할매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데, “아구야, 심들어 죽갓소. 숨도 못 쉬겠네.” 하시면서도 낫을 못 놓는다. 안 되겠구나 싶어서 물병을 들고서 할매 곁에 쪼그려앉는다. “할머님, 낫 좀 놓고서 물 한 모금 마시면서 숨을 돌리셔요.”


  여든 언저리이거나 아흔 가까운 나이인 할매들은 여태 ‘쉬잖고’ 일만 해왔다. 일손을 잡을 적에는 참을 낸다는 마음조차 없이 몸을 부린다. 문득 돌아본다. 할배라면 막걸리나 ‘쐬주’를 걸친다면서 꼭 참을 내는데, 할매는 어느 분조차 1분쯤 쉬는 참조차 스스로 못 낸다. “순이한테 일만 시키며 부린 굴레(가부장제)”가 뼛속 깊이 스몄을 테니, 이제 와서 씻거나 내려놓기는 어려울 만하겠구나 싶다. 할매들은 몸이 고되어 물병 있는 데로 오갈 기운이 없기도 하시지만, 내가 물병을 들고서 한 분씩 물을 떠서 드릴 때까지 “목타서 죽는 줄 알았소!” 같은 말조차 못 하셨다. 그저 “어떻게 작가양반은 우리가 목타서 죽는 줄 알고서 물도 다 갖다 주쇼잉? 고맙구마!” 하실 뿐이다.


  거의 해마다 마을 곤드레밭 일손을 도왔다. 참말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침 08∼08:30이면 다 끝났고, 할매도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가셨으나, 올해에는 10:00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마쳤고, 나는 온갖 일손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더 많이 맡았다. 그런데 할매들은 “아따 09시 버스로 선거 하러 갈랑캤는데 못 가것네. 다음 버스가 언제 있다야?” 하신다.


  나는 오늘 뽑기를 하러 갈 수 있을까? 어제 읍내에 갔더니 도무지 뽑기를 할 수 없이 먼 곳 하나만 열려서 못 했다. 오늘 뽑기를 하러 못 가면 제때뽑기(본투표)는 못 한다. 첫여름 사흗날(6.3.)은 쉼날(공휴일)인 터라 시골버스가 안 다니니, 면소재지에 나갈 수 없다. 마을 할매들도 이 대목을 알기에 오늘 꼭 미리뽑기(사전투표)를 하러 가려고 하신다.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숨돌리고, 등허리를 펴고, 손끝과 발끝에 밴 흙을 조금 빼다가, 나라지기가 남긴 말을 들었다. 깜짝 놀랐다. 박근혜·윤석열·이명박이든 이재명·문재인·노무현이든, 섣불리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함부로 했구나 싶다.


이 대통령 “투표 포기, 공동체 해치는 그들 편드는 것”

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347145


  시골사람은 뽑기를 하러 가기 힘들다. 서울·큰고장이라면 “걸어서 오갈 만한 곳”에 뽑기터(투표소)가 있지만, 시골은 면소재지나 읍내에만 있는데, 면소재지나 읍내에 둔 뽑기터는 마을사람이 걸어가기에는 먼 데에만 있다. 다시 말하자면, “마을 할매할배가 시골버스를 타고서 면소재지나 읍내 버스나루에 내려서 걸어가기에 먼” 곳이면서, 종이를 내고서 다시 마을로 돌아가려면 시골버스를 한두 시간을 멀뚱멀뚱 기다리고서 또 먼길을 걸어야 한다.


  시골사람은 우리나라에서 1%도 안 되는 줄 안다. 그나마 이 1% 가운데 면소재지나 읍내에 사는 사람은 그냥 걸어가서 종이를 내기도 하지만, 요새 웬만한 분들은 달구지(자동차)를 몰더라. 이와 달리 시골 할매할배는 달구지를 못 몰거나 안 몰기도 하지만, 지팡이조차 못 쓰고서 아기수레를 천천히 밀면서 “10m를 1분에 걸쳐서 기듯 걷는”데, 이분들은 ‘투표 포기’라기보다는 ‘투표권을 나라에서 빼앗은’ 셈이다. 시골에서는 뽑기날에 따로 ‘버스를 마을마다 대어서 할매할배를 태우며 다녀’야 맞다. ‘투표 포기’를 안 하고서 ‘투표권 지키기’를 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할 노릇 아닌가?


  또한 “누구를 찍는 몫”만 ‘투표권’이지 않다. “찍을 만한 놈이 보이지 않을 적에는, 어느 누구도 안 찍는 몫”도 ‘투표권’이다. 어느 누구도 안 찍는 사람들은 “이놈도 저놈도 그놈도 모두 한통속”이라고 느낀다고 “말없이 말하는 몸짓”이다. 이른바 ‘손사래(기권)’도 “한 표 행사”이다. 손사래를 할 몫으로 말없이 말하려는 사람도 적잖게 마련인데, 나라지기가 손사래를 하는 사람을 싸잡는 말을 함부로 한다면, 이 나라는 앞날이 캄캄하다. 손사래를 하는 사람들 앞에 무릎꿇으면서 “앞으로 투표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나라일을 고르게 아름답게 착하게 하겠습니다!” 하고 뉘우쳐야 할 일이다. 2026.5.30.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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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멀미



  서울이나 큰고장으로 바깥일을 하러 다녀올 적에는 길손집에서 묵는다. 어제 동작구 여러 길손집 가운데 47000원 하는 곳에 묵는데 밤새 못 잤다. 누우면 어디서든 잘 자는 몸인데 어제는 꿈길로 못 가더라. 꽤 좁기도 했지만, 바닥에 뭘 바르거나 흘렸는지 미끄럽고 냄새가 짙어서 끙끙댔다. 안 되겠구나 싶기에, 누워서 등허리를 펴다가 일어나서 바닥닦이를 했다. 바닦을 닦으니 냄새가 조금은 가신다.


  이 길손집과 가까이 있는 넓고 깨끗한 곳은 하루 90000원이다. 43000원 벌어지는 값이면 책이 몇 자락이냐 싶어 싼곳에 깃들었는데, 아침에 고흥으로 달리는 시외버스에서 모처럼 멀미를 했다. 버스에서 잠들지도 글쓰지도 못하다니. 버스에서 눈을 감아도 어지럽고, 책을 쥐어도 눈에 힘을 꽉 주어야 하고, 고흥읍에 닿기 앞서 비로소 노래 한 자락을 썼다.


  43000원을 아낀다고 하다가 된통 애먹은 셈이다. 기쁘게 43000원쯤 쓰고서 푹 잤다면 시외버스에서 신나게 읽고 썼을 테지. 43000원으로 장만할 책이 여럿이더라도 사흘쯤 책을 굶는다고 여기면 되는데, 책값을 어림하는 버릇을 아직 떼지 못 했다. 혼자 묵는 길손집이 아닌, 아이를 데리고 움직였다면 47000원 집이 아닌 90000원 집에 갔으리라.


  09:30∼14:07 사이에 멀미를 참으며 책을 석 자락 읽어냈다. 속이 울렁거리지만 고흥읍에 내려서 낯을 씻고서 숨돌린다. 집으로 돌아갈 14:40 시골버스를 기다리다가 제비집을 올려다본다. 고흥읍 버스나루 처마에 제비 둘이 둥지를 새로 짓는다. 헐리고 다시 헐려도 씩씩하게 날갯짓이다. 제비야, 넌 늘 사람을 가르치는구나. 네 날갯짓과 노랫가락을 앞으로 누구나 널리 받아들이고 누릴 수 있기를 바라. 너는 오롯이 사랑으로 둥지틀기를 하면서 새길을 그리기에 이토록 의젓하겠지.


  나도 곧 우리집으로 간다. 뭇새가 함께살고, 사마귀알집이 톡 터질 앵두나무가 있는, 나무숲 이룬 보금자리로 간다. 개구리도 노래로 반길 숲집으로 돌아간다. 돌나물과 멧딸기가 싱그럽고, 잠자리도 같이사는 푸른집으로 간다. 책으로 묵직한 등짐을 시골버스에 싣는다. 시골버스에서 오늘 넉 자락째 책을 쥔다. 시골길 15km를 달리는 동안 74쪽을 읽는다. 이제 내리자. 2026.5.27.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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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도 버리지 않겠다고 (+ 진보교육감)



  우리집 큰아이는 올해(2026해)에 이름쪽(주민증록증)을 받는다. 여덟 살부터 올해까지 해마다 ‘입학유예신청서’를 내느라 애썼다. 작은아이는 앞으로 세 해 더 이 종이를 써야 한다. ‘우리집배움터’라는 길을 걸어가는 모든 아이와 어버이는 이 종이를 꼬박꼬박 써야 한다. 그저 집에서 스스로 배우는 길을 걷는데, 나라에서는 ‘위기청소년’이라든지 ‘학교밖 청소년’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얼핏 보면 ‘학교밖’이 맞다만, 이런 이름을 굳이 붙이려 한다면, 집에서 스스로 배우지 않는 아이들은 ‘집밖’인 셈 아닌가. 요즈음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언제 집에 발붙을 수 있는가. 숱한 어린이와 푸름이는 여덟 살이 되기 앞서부터 스무 살에 이르도록 “집이란 자느라 살짝 스치는 곳”일 뿐이다. 집에서 함께하는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 없이 몸뚱이가 커야 하는 오늘날 어린이·푸름이인 줄 알아챌 수 있을까.


  전남 고흥에 깃든 지난 열여섯 해를 되새긴다. 이동안 배움일꾼(교육감)이라는 사람을 늘 갈아치우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때껏 모든 ‘전남교육감’은 “전라남도 시민사회·교육단체가 밀어주는 진보교육감 후보”가 뽑혔다. 그런데 이때껏 뽑힌 모든 ‘전남 진보교육감’은 ‘새길(진보)’이 아닌 ‘벼슬꾼(공무원)’으로 곧장 나뒹굴었다. 이때껏 뽑힌 모든 ‘전남 진보교육감’은 너나없이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내걸었다. 이들은 ‘집밖(학교안)’과 ‘학교밖(집안)’에서 배우는 모든 어린이·푸름이가 고르게 제몫을 누리는 길을 열겠다고 밝혔으나, 아직 어느 누구도 이 말을 안 지켰다. 그래서 올해에 전남광주교육감을 새로 뽑는 마당에서 다시금 ‘새새새새 진보교육감 후보’를 밀기로 했다.


  전남뿐 아니라 경남도 충남도 비슷한데, 모든 고장에서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는 푸름이”한테 꽃돈(장학금)을 엄청나게 몰아준다. 이와 달리, 푸른배움터(중고등학교)나 어린배움터만 마치고서, 시골에서 논밭을 돌보거나 들숲메바다를 아끼는 길을 걷겠노라 밝히는 푸름이한테는 언제나 0원을 이바지한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어버이한테 땅이 없으면, 시골아이여도 어떤 ‘농업지원’을 못 받는다. 이미 땅임자(지주)끼리 돌라먹는 얼거리요 판이며 고을(지방자치)이다.


  시골에서 나고자란 사람이 시골빛을 배우고 익혀서 시골살림을 북돋우고 살리려는 배움길과 익힘길을 열겠다고 밝힌 일꾼(교육감·군수·도지사 후보자)을 전남광주뿐 아니라 대구경북이나 부산경남이나 서울경기나 강원이나 대전충청 어디에서도 보거나 들은 바 없다. 즈믄해쯤 거뜬히 살아내는 나무를 어떻게 바라보고 품고 사랑할 노릇인지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는 어린배움터나 푸름배움터가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작은배움터(폐교)를 살려서 새롭게 꾸릴 수 있다.


  이미 배움터가 닫을 때까지 일을 안 한 그들(교육청·군청·도청 공무원)이다. 시골아이가 시골에 뿌리내리는 배움길이 없고 익힘길이 없으니, 시골배움터는 갈수록 사라질밖에 없다. 파란바다 한복판과 푸른메 한켠에 때려박는 ‘태양광·풍력’이 푸른길(친환경)일 수 없다. 시골에서 서울로 끝없이 긴 빛줄(송전선)을 어마어마한 돈과 품을 들여서 새로 놓아야 하는데, 이런 짓은 터럭만큼도 푸른길이 아니다.


  한 아이도 팽개치지(포기) 않겠다고 말하려면,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를 고이 아끼고 보살피는 길을 열어야 맞다. 나무 한 그루와 아이 하나가 나란하다. 시골과 서울이 함께살 수 있는 길이 아니라면 모두 겉치레요 눈속임이며 거짓말이다. 삽질로 목돈을 끌어들이는 짓을 멈출 때라야 비로소 아이어른이 함께웃는 터전으로 나아가겠지. 2026.5.2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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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은



  걷는 사람은 걸어다닐 수 있는 얼거리에서 집과 일터를 두려고 한다. 달구지를 모는 사람은 퍽 멀리까지도 일을 다니지. 걷는 사람은 걸어다니는 길에서 하나하나 짚고 느끼고 맞아들이면서 하루를 보내려 한다. 달구지를 모는 사람은 퍽 멀리까지 죽 잇느라 “이곳과 저곳 사이에 있는 삶터”를 느끼거나 돌아볼 새가 없다.


  ‘사회(社會)’란 여러 뜻인 일본말이다. 이 일본말을 쓰는 곳에 따라서 뜻과 쓰임새가 확 다르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 이 일본말을 쓰든 ‘둘레’나 ‘터전’이나 ‘삶터’를 가리킨다. 때로는 ‘마을’을 가리킨다. ‘같이’나 ‘함께’나 ‘나란히’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남’과 ‘나라’나 ‘바깥’을 가리키기도 한다. 때로는 ‘사람’이나 ‘살다’를 가리킨다. 그저 ‘곳’이나 ‘자리’를 가리킬 수도 있다.


  우리는 어느 곳이 집이고 일터이고 마을일까? 우리는 집으로 삼는 곳 둘레를 어떻게 일구거나 가꾸거나 돌볼까? 우리는 집으로 삼는 곳을 둘러싼 마을이 모인 큰터인 나라를 어떻게 바라보거나 품거나 살필까?


  일삯을 주는 곳에 따라서 몸을 움직인다면, 삶이 아니라 심부름이 있을 테지. 일터에서 시키거나 맡기는 대로 움직인다면, ‘나’도 ‘너’도 ‘우리’도 없이, ‘벼슬’과 ‘높낮이’만 맴돈다. ‘나·너·우리’가 사라진 곳이라면, ‘사람’도 사라지고 ‘삶’도 사라지기에, 마침내 ‘집’까지 잊다가 잃는다.


  오늘은 한낮부터 바람처럼 다니고서야 비로소 집으로 간다. 갑작스레 찾아온 분이 있으나, 가만히 말을 섞고 마음을 나누었다. 삶을 짓는 길이 아닌, 자리(돈을 버는 자리)를 걱정하는 마음을 곰곰이 들었다. 걸어다니면서 집과 마을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걱정거리나 근심거리가 있을 틈을 굳이 내지 않는다. 모든 틈에 씨앗을 놓고, 어느 틈이든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가 깃들면 되며, 틈이 나는 데마다 바람과 해와 비가 드나들면 되니까.


  달구지를 달리며 멀리 오가는 일터에 몸을 두기에 으레 걱정거리하고 근심거리가 잇달아 생긴다. 집과 일터 사이에 있는 집과 들숲메바다를 바라볼 틈이 없으니, 새도 풀벌레도 개구리도 이웃이 아닌걸. 이웃이 없는 채 빠르게 오가야 하니 그야말로 틈이 없고, 틈이 없으니 햇볕을 쬐거나 별을 보거나 바람을 쐬거나 비로 씻을 조그마한 짬마저 없기 일쑤이다. 달구지를 달리기에 나쁠 까닭이 없다. 달구지에 얽매이면서 스스로 심부름에만 마음을 기울이고 몸을 움직이느라 근심걱정이 자꾸자꾸 싹트고 버지고 자랄 뿐이다.


  나는 이제 등허리를 펴려고 집으로 간다. 새와 나무가 있는 집으로 간다. 풀빛이 싱그럽고 꽃빛이 환한 집으로 간다. 멧딸기가 익고 앵두가 나란히 익는, 감꽃과 고욤꽃이 나란히 톡톡 떨어지는 집으로 간다. 개오동나무가 밝게 숨결을 베풀고, 잘 자란 쑥과 돌나물이 산뜻하게 속삭이는 집으로 간다. 2026.5.21.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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