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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먹어요
고정순 지음 / 웃는돌고래 / 2022년 3월
평점 :
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4.19.
그림책시렁 1572
《우리는 먹어요》
고정순
웃는돌고래
2022.3.31.
‘먹다’를 잘못 여기는 분이 수두룩합니다. ‘먹다’하고 ‘머금다’가 말밑이 같고, ‘머물다’가 밑동이 나란한 줄 모르기 일쑤인데, 어느 곳에 있도록 받아들이는 결인 ‘먹다·머금다·머물다’입니다. 《우리는 먹어요》를 펴면, ‘밥’이 얼마나 고맙고 기쁘면서 커다란 일인가 하고 풀어내려는 듯하지만, 막상 어떻게 밥 한 그릇이 태어나는지 제대로 짚지는 않습니다. 얼핏 흙지기를 한 줄쯤 다루는 듯싶으나, 이 땅에서 씨앗이 어떻게 싹터서 낟알과 푸성귀와 열매를 맺는지 하나도 안 건드리고 안 짚습니다. 낟알과 푸성귀와 열매를 어떻게 거두고 갈무리하는지 조금도 못 건드리고 못 짚습니다. 낟알과 푸성귀와 열매를 서울로 실어나르는 손길을 한 줄쯤 다루고, 밥감을 매만져서 밥을 차리는 손길은 여러 줄쯤 다루는데, 이 그림책은 “남이 차려놓은 밥을 떠먹는 사람” 이야기만 내내 다루다가 끝납니다.
어린이한테 읽히려는 그림책이기에 “남이 차려놓으면 수저를 들고 먹는 일”만 그렸을 수 있다고 하겠으나, 어린이도 얼마든지 스스로 밥을 하고 국을 끓일 수 있으며, 예부터 어린이도 어른 곁에서 함께 밥살림을 맡았습니다.
손수 밥을 짓고 차리고 치우는 이야기는 왜 한 줄로도 안 다루거나 못 짚을까요? 손수 심고 가꾸고 거두는 이야기는 왜 한 줄로도 안 그리거나 못 쓸까요?
무엇보다도 이 별을 이루는 숨결은 ‘먹기’만 하지 않습니다. 풀벌레와 새도 밥을 누립니다만, 다들 먹기만 하지 않습니다. “먹어야 산다”는 말을 너무 높다란 뜻으로 올려세우려고 하는 나머지, 그만 ‘밥’이 무엇인지부터 잊어버린 듯합니다.
밥이란, 밭에서 거두는 바탕입니다. 밥이란, 우리 몸에 바람과 바다처럼 밑(바탕)을 이루는 빛으로 나아갈 살덩이입니다. 사람이 먹든 뭇짐승이 먹든, 밥을 이루려면 해바람비를 고루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밥으로 겉모습이 바뀐 해바람비”를 받아들이기에 몸을 얻고서 마음을 일구는 삶을 누립니다.
거룩한 말씀을 절집 이야기를 곁들여서 외치려 하기보다는, 아이어른이 함께 들숲바다를 돌보고 집안일을 즐기면서 밥 한 그릇을 반갑게 맞이하는 이야기를 펼 일이지 않을까요? 손수 심고 가꾸는 사람은 밥알 하나 안 흘릴 뿐 아니라, 남기지도 않습니다. 손수 돌보고 짓는 사람은 이웃하고 스스럼없이 나눌 줄 압니다.
오늘날 이 나라 어디에서나 밥쓰레기가 왜 넘치는지 제대로 짚고 바라볼 노릇입니다. 왜 서울은 그다지도 밥쓰레기를 어마어마하게 버리는지 이제라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손수 안 심고 손수 안 가꾸고 손수 안 거두고 손수 안 지으니 그냥그냥 돈으로 사다가 후다닥 쓰고 버리는 굴레에 스스로 갇힙니다.
그림책 《우리는 먹어요》에는 ‘짓기’가 없을 뿐 아니라, ‘심기·가꾸기·거두기·갈무리’란 하나도 없이, 오직 ‘먹기’만 있는데, 어린이가 무엇을 느끼거나 배울까요? 틀에 딱딱하게 가두어서 “고맙게 먹을 줄 알아야지!” 하고 윽박지르는 매질(훈계·훈육)일 뿐이라고 느낍니다. 서울아이라 하더라도, 손수 도시락을 싼다면, 도시락을 싹싹 말끔히 비웁니다. 구태여 절집에서 ‘바리때모심’을 안 해도 누구나 다 압니다. 손수 심어서 거두는 사람도 말끔히 먹을 뿐 아니라, 손수 짓고 차리고 치우는 사람도 말끔히 먹습니다.
부디 집안일을 집살림으로 여겨서 기꺼이 모시기를 빕니다. 부디 잿더미(아파트)와 잿길(찻길)이 아닌, 밭과 뜰과 빈터와 숲을 곁에 품기를 빕니다. 맨발로 흙을 밟고서 맨손으로 나무를 쓰다듬고서 맨몸으로 해바람비를 맞아들일 적에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빛나는 사람이로 이 별에 나란히 서서 어깨동무를 하게 마련입니다.
ㅍㄹㄴ
《우리는 먹어요》(고정순, 웃는돌고래, 2022)
모든 생명은 먹어야 삽니다
→ 모든 목숨은 먹으며 삽니다
→ 모두가 먹으며 삽니다
6쪽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의 목숨으로 살아갑니다
→ 모든 목숨은 다른 목숨을 받아들여 살아갑니다
→ 모든 숨결은 다른 목숨을 받아서 살아갑니다
6쪽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자기의 목숨을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목숨을 고이 여기며 제 목숨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 숨빛을 크게 여기며 제 목숨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8쪽
땅의 특성을 알려주는 벌레에게
→ 땅빛을 알려주는 벌레한테
→ 땅을 알려주는 벌레한테
10쪽
한 알은 농부의 몫입니다
→ 한 알은 흙지기 몫입니다
→ 한 알은 논밭님 몫입니다
10쪽
하늘을 나는 새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 하늘을 나는 새도 사랑스럽습니다
→ 하늘을 나는 새도 아름답습니다
10쪽
다듬고 조리한 사람이 있기에 우리에게 무사히 올 수 있습니다
→ 다듬고 지은 사람이 있기에 우리한테 잘 올 수 있습니다
13
자연과 사람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 숲과 사람한테 고맙다고 빕니다
→ 숲과 사람이 고마워 비나리를 합니다
14
우리 가족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우리한테 하루밥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 우리가 오늘 먹을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15
음식의 소중함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기도문입니다
→ 고마운 밥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말입니다
16
한 알의 물에도 우주의 은혜로움이 깃들어 있으며, 한 알의 곡식에도 중생의 수고로움이 있습니다
→ 물 한 방울에도 온누리 빛이 깃들며, 낟알에도 여러 사람 손길이 있습니다
→ 물 한 방울에도 모든 빛이 깃들며, 낟알 하나에도 뭇사람 손빛이 있습니다
18
음식이 담겼던 그릇을 씻고 그 물까지 마시는 것을 발우공양이라고 합니다
→ 밥을 담은 그릇을 씻고 물까지 마시는 바리때모심이 있습니다
→ 밥을 담은 그릇을 씻고 물까지 마시며 그릇모심을 합니다
→ 밥을 담은 그릇을 씻고 물까지 마시며 밥모심을 합니다
21
음식을 만든 이의 수고로움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듭니다
→ 밥을 지은 수고를 고개숙여 받듭니다
21
굶주린 사람들의 고통을 몸으로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 굶주려 괴로운 사람을 몸으로 느끼려고 합니다
→ 굶주려 고단한 사람을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25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굶주린 이는 누구라도 뒤주를 열고 쌀을 퍼 가라는 뜻입니다
→ ‘누구나 연다’라는 글을 적었습니다. 굶주린 이는 누구라도 뒤주를 열고 쌀을 퍼 가라는 뜻입니다
26
다른 생명과 함께 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 다른 숨결과 함께 사는 줄 잊지 말아야
28
자연의 선물이며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과 정성을 먹고 우리는 살아갑니다
→ 우리는 숲이 베풀며 보이지 않는 사람들 땀과 마음을 먹고 살아갑니다
30
오늘도 음식을 먹습니다
→ 오늘도 밥을 먹습니다
→ 오늘도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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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