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싸우는 책(군대일기)

팔굽혀펴기



  어릴적에 팔굽혀펴기를 참 못 했다. 그저 힘들고 너무 고달팠다. 팔굽혀펴기라면 한둘을 겨우 할 만했고, 턱걸이라면 한둘을 가까스로 했다. 팔굽혀펴기도 턱걸이도 못 하는 나를 보는 또래나 언니한테서 “사내애가 팔힘도 없어서 어쩌려고?”라든지 “계집애보다도 못 할 수 있냐? ○○가 창피하지도 않냐?” 같은 꾸지람과 놀림말을 내내 들었다. 어린배움터에서 지낸 여섯 해 동안 ‘체육’이라는 이름으로 너른터에 나올 적에 제발 ‘팔굽혀펴기’나 ‘턱걸이’ 좀 안 시키기를 바랐다.


  팔심이 오지게 없지만 심부름꾼이나 짐꾼으로는 한몫을 했다. 우리집은 ‘연탄을 때는 5층 아파트(13평형)’였는데, 기름보일러가 갓 나와서 퍼질 적에 아버지는 1984해 무렵에 2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들였다(36달 나눠내기). 아버지는 집에 연탄 아닌 기름을 때자고 말하면서도 밤마다 술떡이 되어 돌아왔고, 다달이 나갈 목돈은 어머니가 곁일(부업)을 하면서 메꿨으며, 언니와 나는 어머니가 하는 곁일을 신나게 도와서 가까스로 값을 다 치러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기름보일러를 들이면 기름통에 기름을 받아서 날라야 한다.


  우리집은 넷째(4층)이다. 빈 기름통(20ℓ)을 둘 들고서 기름집으로 간다. 기름을 꾹꾹 눌러담아서 받은 뒤에 집까지 들고 간다. 고작 열 살인 아이가 두 손에 ‘꽉 찬 기름통’을 들고서 나른다. 한 해 내내 나른다. 이듬해에도 다음해에도 나르지. ‘계단만 있는 5층 아파트’를 떠나던 1991해 여름까지 신나게 기름통을 날랐다. 이동안 아버지라는 분은 기름통을 나른 적이 없다. 지난날에는 다들 이랬다. 이른바 ‘가부장권력’이었고, 언제나 아이들이 모든 심부름과 일을 맡아야 했다.


  어머니가 신포시장으로 저잣마실을 갈 적이면, 나는 언제나 같이 가서 짐꾼 노릇을 했다. 그러나 억지로 짐을 견디면서 날랐을 뿐이다. 나는 팔힘도 손힘도 다릿심도 여렸다. 어머니가 엄청난 저잣짐을 집까지 혼자 나르면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느꼈다. 집안일을 나랑 언니가 나눠야겠다고 여겼다. 힘이 없어도 젖먹던 힘을 짜내어 짐꾼 노릇을 했다. 그나마 팔굽혀펴기랑 턱걸이는 못 했어도, 오래달리기는 용케 버티면서 열손가락(55명 한 반)에 들었다.


  나는 힘없는 아이로 살며 늘 얻어맞는 나날인데, 열네 살(중1)에 또 마을 야살이(깡패)한테 얻어맞고서 돈을 빼앗기고 들어온 날, 우리 언니는 야살이보다 더 두들겨패면서 “어머니, 이 새끼 이대로 두면 안 되겠어요! 무술학원에 집어넣어서 주먹을 기르라고 해야지, 어떻게 맨날 쥐어터지면서 돈을 뜯기고 울면서 집에 들어와요?” 하면서 큰소리를 냈다. 언니는 내 멱살을 쥐고서 인천에 있는 내로라하는 무술학원을 하루 내내 돌았다. 한참 ‘대련·훈련’을 지켜보면서 “야, 여긴 안되겠다! 딴 데 가자!” 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다가 마침내 ‘박문여고 옆에 있던 특전무술 도장’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보고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여기는 좀 낫겠지!” 하고서 들어갔다. 언니는 ‘여고 옆 특전무술 도장’에서 펴는 ‘대련·훈련’을 한참 보더니 드디어 웃는다. 마음에 드는 듯했다. 그러나 옆에서 나는 ‘설마? 이런 데에 날 넣으려고? 나더러 죽으란 소리?’ 하면서 끔찍했다. 1988해에 ‘여고 옆 특전무술 도장’에 그날로 들어가야 했다. 이무렵 한 달에 이곳에 내는 삯은 55000원이었다. 그때 유도나 태권도나 합기도나 레슬링이나 뭐 이런저런 길을 가르치는 곳은 비싸야 15000원이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지난날 무술학원은 ‘돈을 받으면서 공식으로 두들겨패도 되는 곳’이었다. ‘여고 옆 특전무술 도장’을 다니는 첫 한 달 동안 ‘안 죽을 만큼 실컷 얻어맞았’는데, 날마다 멍이 시퍼렇게 들고 입술이 찢어져도 용케 안 빠지는 나를 지켜보던 길잡이(사범)가 한마디 한다. “넌 언제까지 맞을 생각이야? 너도 때려야지!” 하면서, 그곳에서 가장 어린 나더러, 적어도 서너 살부터 열 살이 더 넘는 ‘특전무술 유단자’한테 제대로 맞서라고 꾸짖는다. “넌 기술이 없잖아. 기술이 없으면 뭐가 있어야겠니? 맷집이 있으면 돼. 때리는 놈이 지칠 때까지 버티면, 그때 마지막으로 네가 한 주먹을 갈겨서 넘어뜨릴 수 있어. 우리 도장 2층에 헬스클럽 있는 거 알지? 넌 수련을 오기 전에 먼저 헬스클럽에서 한 시간씩 역기를 들고서 와!” 하고 을러댔다.


  이른바 ‘맞아죽’지 않으려고 날마다 한 시간씩, 나중에는 두 시간씩 쇳덩이를 들어 보았다. 처음에는 10kg도 버거웠지만 20kg과 30kg과 40kg을 지났다. 선 채로 한 손으로 60kg을 들고 내릴 수 있을 즈음, 이제 이곳에서 나보다 쇳덩이를 잘 드는 언니는 아무도 없다. 다만 내가 가장 무거운 쇠를 들고 버틸 수는 있되, 언제나 얻어맞기만 했다. 맷집만 늘었달까.


  한참 얻어맞은 지 석 달이 지날 무렵부터 팔굽혀펴기가 ‘이렇게 쉬웠나’ 하고 느꼈다. 어느새 턱걸이 서른∼마흔을 가볍게 할 수 있었다. 이곳(특전무술 도장)에서 시키는 턱걸이는 ‘빨리 해내는 길’이 아니다. 10초를 밑에서 있다가 10초에 걸쳐서 천천히 몸을 올려서 쇠작대 너머로 머리를 밀어올리고서 10초를 버틴 다음, 다시 천천히 10초에 걸쳐서 몸을 내려야 ‘1번 했다’고 쳤다. 이곳에서 시키는 팔굽혀펴기는 그냥 팔만 굽혀서 펴는 길이 아니었다. 손바닥을 바닥에 대는 자리를 바꾸어 숱하게 하고, 주먹으로 바닥을 대며 또 숱하게 하고, 다섯손가락과 세손가락과 두손가락과 한손가락을 바닥에 대면서 숱하게 갈마든다. 이러고 나면 오른팔만 쓰는 팔굽혀펴기를 하되, 손바닥과 주먹과 손등과 손가락을 다 다르게 쓰는 길을 시키고, 왼팔만 쓰는 팔굽혀펴기로 바꾼다. 이다음으로는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 팔굽혀펴기를 시킨다. 이때에도 두손과 한손을 모두 갈마든다. 이다음으로는 다른 사람이 뒤에서 두 다리를 잡은 채 팔굽혀펴기를 처음부터 모두 새롭게 시킨다. 이리하여 이곳에서 시키는 팔굽혀펴기만으로 40분쯤 걸리고, 모두 즈믄(1000)벌을 해내야 한다. 날마다.


  우리나라에서는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면 싸움터(군대)를 하염없이 미룰 수 있다. 나는 열린배움터에 들어갔되 그만두었다. 그만두기 무섭게 종이(입대영장)가 날아들었고, 열린배움터를 그만둔 지 한 달이 안 된 1995해 늦가을에 싸움터에 끌려갔다. 그러려니 여기면서 논산훈련소에 갔고, 두들겨패고 괴롭히고 윽박지르는 굴레에서도 “난 너희 노리개는 아니야. 난 언제나 나를 사랑하면서 돌봐.” 하고 혼잣말을 했다. 또래(훈련소 동기)는 두들겨패고 괴롭히고 윽박지르는 이곳에서 지쳐서 나가떨어지는데, 나는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앞서 ‘그곳(여고 옆 특전무술 도장)’에서 가르쳐 준 팔굽혀펴기를 잊지 않으려고 꼬박꼬박 몰래 했다.


  이러던 어느 날 훈련소 조교가 나를 봤다. “이 새끼 봐라? 우리 훈련이 안 힘든가 봐? 이 새끼는 이제 쉬라고 자유시간을 줬더니 혼자 팔굽혀펴기를 하고 지랄이네? 너 그렇게 운동 좋아해? ○○○ 그러면 이제 팔굽혀펴기 200회 실시한다, 실시!” 하고 뇌까린다. 훈련병이 무슨 재주가 있는가. 없지. 그래서 나는 “훈련병 ○○○번 최종규, 팔굽혀펴기 200회 실시!” 하고 따라한다(복명복창). 싸움터에서는 따라하기(복명복창)를 먼저 안 하면 “안 했다”고 친다. 아니, 안 했다고 치기 앞서 주먹이나 발이 먼저 날아온다.


  나는 그무렵 하루에 팔굽혀펴기를 혼자서 즈믄(1000)씩 몰래 했기에 200벌을 따로 더 한들 대수롭지 않았다. 곧 “훈련병 ○○○번 최종규, 팔굽혀펴기 200회 종료했습니다!” 하고 외쳤다. 조교는 말이 없었다. 멍한 듯했다. “어, 그래? 200회 실시했네. 앞으로 또 이러지 마, 이 미친새끼야!” 하고는 곧 달아났다.


  훈련소에서도 자대에서도 놈(상급자)이 시키는 모든 얼차려와 주먹질과 발길질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열네 살부터 얼결에 기른(?) 맷집 때문일까. 놈(상급자)은 놈(하급자)이 모두 따르면 두려워하더라. 때로는 무서워하더라. 이 놈(놈새끼)이 설마 끝까지 해낼 줄이야 싶으면서 눈 가장자리가 파르르 떨린다. 그곳(군대)에서 스물여섯 달 동안 놈(상급자)이 파르르 떠는 눈망울을 보았다. 다만, 그뿐이다. 그들이 파르르 떨든 말든, 그들이 터무니없는 짓을 시키든 말든, 그들은 스스로 갉고 스스로 무너지고 스스로 망가지려고 멍청짓을 시키면서 괴롭히고 밟으려고 한다. 그들이 시키는 모든 멍청짓을 바람과 바다처럼 가만히 흘려넘기면서 “그래, 기쁘게 받아들일게, 즐겁게 할게.” 하고 여기면 어느새 다 지나간다.


  1995해 한겨울 논산훈련소에서 ‘벌 얼차려로 팔굽혀펴기 200회’를 갑자기 해내야 했지만, 이미 ‘나살리기’를 하면서 나를 지키려고 날마다 저녁이나 밤에 몰래 했기에, 오히려 나를 괴롭히려던 놈(상급자)이 달아났고, 그놈은 그 뒤로 나를 안 쳐다보았다. 그런데 2026해 늦봄에 어느 싸움터에서 어느 놈(상급자)이 “멀쩡한 젊은이”를 괴롭히려고 팔굽혀펴기를 억지로 시키면서 몸을 망가뜨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국방부장관·대통령·국가인권위원회장·여성가족부장관·민주당대표·진보당대표’ 같은 이들은 어디에서 뭘 하며 무슨 말을 하는가?


  팔굽혀펴기는 스스로 하고 싶은 사람이 스스로 몸을 살펴서 알맞게 해야 할 뿐이다. 남이 시키면서 괴롭힐 짓이 아니다. 팔굽혀펴기를 하고 싶으면 ‘니들(상급자)’이 스스로 해야지. ‘국방부장관·대통령·국가인권위원회장·여성가족부장관·민주당대표·진보당대표’도 나란히 해야지. 입꾹닫을 할 일이 아니다. 싸움터로 끌려가서 뒹굴어야 하는 앳된 젊은이가 피눈물을 흘릴 끔찍한 짓을 이제는 모조리 걷어치워야 한다. 2026.5.28.


"제발 멈춰달라" 묵살한 강제 팔굽혀펴기…병사 근육 녹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6099737?sid=102


군대서 팔굽혀펴기하다 근육 녹았다…피해 가족 “엄벌해달라”

https://n.news.naver.com/article/119/000309533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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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노래 2021.6.22.

놀이하는 어린이 6 놀이사람



  어린이책은, 삶을 그리는 손길을 글이라는 이야기로 담는 책이라고 본다. 그림책은, 사랑을 그리는 꿈을 그림이라는 이야기로 엮는 책이라고 본다, 노래책(동시집)은, 살림을 그리는 숲을 노래라는 이야기로 짓는 책이라고 본다. 이 세 가지 책을 스스로 읽다가, 아이한테 읽어 주다가, 아이가 손수 읽고 누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처럼 생각했다. 우리말 ‘놀다’는 몸을 움직이는 길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노을’이라든지 ‘노랗다·누렇다(땅)’하고 맞물리기도 하고, ‘노닥거리다’로 이어가기도 한다.


  놀이란 무엇일까? 곁에 무엇이 있어야 놀까? 아기가 문득 목을 가누고 눈망울을 어버이하고 맞추는 몸짓도 ‘놀이’가 된다. 어버이가 아이 발을 한손으로 모아서 세우는 몸짓도 놀이가 된다. 걸음마도 놀이요, 짝짜꿍도 놀이가 될 뿐 아니라, 맘마를 먹는 손짓까지 놀이에다가, 입을 벙긋해서 터뜨리는 말길까지 놀이라는 얼거리를 본다면, 놀이란 가장 쉽고 즐거우면서 수수한 우리 오늘이라고 느낀다.


  놀이는 남이 시켜서는 못 한다. 언제나 스스로 놀고, 놀잇감을 찾고, 놀이를 지으며, 놀이동무를 사귄다. 일은 어떠한가. 일은 남이 시켜야 하는가? 시키는 일이란 심부름이다. 스스로 하기에 ‘일’이다. 스스로 일어나는 몸짓이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니까 놀이나 일은 모두 우리 마음에서 피어나는 몸짓이다. 눈을 굴려서 ‘눈사람’을 빚듯 놀이를 같이하는 ‘놀이사람(인형)’이다. 놀이말은 참 쉽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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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빛 2021.6.22.

놀이하는 어린이 5 즐겁게 고졸



  나는 ‘고졸’이고, 곁님은 ‘중졸’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무학’이다. 바깥(사회)에서 보면 이렇다. 나는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갔으나 그만두었다. 곁님은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곁님 아버지 등쌀(입시지옥 압박)에 씩씩하게 그만두었다. 나도 곁님도 배움터를 그만두기로 하면서 마침종이(졸업장)를 거머쥐지 못하는 판이 되자, 나나 곁님이 아닌 “우리 어버이”하고 “곁님 어버이”가 큰일이 나더라. 마침종이 없이 삶을 누리고 살림을 짓고 사랑을 속삭이면서 살아갈 마음을 두 어버이는 끝내 못 읽고 아직도 못 읽는다. 두 사람은 1990년대 한복판에 배움터를 떠났는데, 두 어버이는 이 대목을 여태 아쉽게 여긴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스스로 어린배움터(초등학교)에 발을 안 디뎠다. 딱 하루만 디뎠다. 두 아이 스스로 찾아가 보고서 “난 안 다닐래. 집에서 스스로 배울래.” 하고 가름했다.


  둘레에서는 ‘고졸·중졸·무학’으로 어떻게 일자리를 얻거나 돈을 버느냐고 걱정투성이. 나는 말한다. “돈부터 벌어야 하나요? 살림을 지을 줄 알고, 사랑을 나눌 줄 안 다음에야 돈을 벌어야 하지 않나요? 오늘날 다들 살림짓기와 사랑나눔을 모르는 채 돈부터 벌기에 이토록 나라가 어둡지 않나요?”


  어린이도 푸름이도 어른도 즐거울 노릇이다. 즐겁게 씨앗을 심고, 밭일을 하고, 설거지·빨래를 하고, 삶을 노래하면 된다. 즐거이 하루를 지어야 사랑이 싹튼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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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노래 2021.6.21.

놀이하는 어린이 4 입시지옥은 폭력



  열세 살이 저물던 1987년 겨울에 어머니가 “얘야, 너도 학원에 가지 않을래?” 하고 물었다. “네? 학원이요? 그럴 돈 없잖아요?” “이제 중학생이 되면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데, 다른 집에서는 벌써 다 하더라.” “에이, 다른 집에서 해도 우리랑 달라요. 돈도 아깝고, 중학교에 들어가서 배우는 대로 해야지, 먼저 중학교 과정을 학원에서 배우기 싫어요.”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러다가 뒤처지지 않겠니?” “학원 안 가고 중학교에 들어가서 진도를 못 따라간다면, 학교 잘못이에요. 국민학교 1학년에 들어갈 적에 저는 한글을 몰랐지만, 그냥 학교에서 뗀 한글로 잘 배웠잖아요. 영어나 수학도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배우면 돼요.” “엄마는 걱정되는데? 잘 생각해 봐.”


  며칠 뒤 “얘야, ○○ 알지?” “네.” “걔네가 대학생을 불러서 과외를 한대. 거기서 같이 배워라.” “과외면 더 비싸잖아요.” “워낙 이십만 원 내야 하는데, 한 사람 옆에 앉혀서 오만 원만 내기로 했어. 한 달만 해도 돼.”


  난 ‘고졸’이다. 고졸로 살며 아랑곳할 일이 없지만, 이 나라를 보면 “졸업장을 따니 다른 졸업장을 따려고 학교에 더 들어간다”고 느낀다. 자격증도 같다. 졸업장은 졸업장을 낳고, 자격증은 자격증을 낳는다. 이 고리를 안 끊으면 삶터가 엉망이다. “배움수렁은 주먹질(입시지옥은 폭력)”이다. 걱정은 걱정을 낳고, 사랑이어야 사랑을 낳는다. 어린이를 수렁에 밀어넣으면 아이는 죽음을 배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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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노래 2021.6.21.

놀이하는 어린이 3 때리고 맞다



  나는 대단히 많이, 참으로 자주, 맞으며 자랐다. 그때(1980년대)에는 다들 그랬다고 하지만, 그때(1980년대)까지 맞은 적 없이 자랐다고 하는 이웃이 제법 있다. 나는 그때(1980년대)까지 어린날을 보낸 사람이라면 모두 어른한테서 얻어맞고 막말을 듣고 시달리면서 자랐으리라 여겼는데, 아니더라. 어린이를 안 때린 어른이 그때(1980년)까지 꽤 있었을 뿐 아니라, 1950년대나 1930년대에도 어린이를 안 때린 어른이 퍽 있더라.


  거꾸로 헤아려 본다. 어른은 언제부터 어린이를 때렸을까? 1900년대로 접어들고, 이웃나라가 총칼을 쥐고 쳐들어오던 그무렵부터 어린이를 윽박지르고 때리지 않았을까? 흙을 짓고, 모든 살림을 손수 짓던 옛사람은 어린이를 ‘왜 때리지?’ 하고 알쏭하게 보았다고 느낀다. 삶터(사회)를 주무르는 힘꾼(권력자)이 사람들을 족치는 판이 되고, 배움터(교육기관·학교)가 선 1900년대 첫무렵부터 비로소 ‘어린이를 때리고 족치고 윽박지르는 짓’이 불거지고 퍼졌지 싶다.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가 되고부터 주먹으로 어린이를 때리는 짓은 수그러들지만, 배움수렁(입시지옥)에 가두는 짓은 그대로이다. 어린이한테 놀이할 틈을 안 주는 짓이 바로 주먹질(폭력)이다. 푸름이가 꿈이 아닌 셈값(시험점수)에 얽매이도록 내모는 짓이 바로 때림질이다. 아이를 사랑이 아닌 배움수렁에 밀어넣으면, 이 아이는 무엇을 보고 듣고 배우는 어른이 될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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