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6.5.

다듬읽기 262


《흰, 한강 소설》

 한강 글

 차미혜 사진

 난다

 2016.5.25.



온누리에 책이 있다. 책은 그저 책일 뿐, 처음에는 ‘작은책·큰책’이 따로 없었고, 글씨를 키운 ‘큰글씨책’하고, 글씨를 작게 넣어 알뜰살뜰 여민 ‘잔글씨책’만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큰책(= 잘팔린책·베스트셀러)’이라는 왼켠과 ‘작은책(= 안팔린책·절판본)’이라는 오른켠을 가르는 틀이 섰고, ‘읽는책(이야기를 익히는 책)’이 아니라 ‘이름책(글쓴이와 펴냄터 이름이 드날리기에, 이런 책을 손에 쥐는 사람도 덩달아 이름이 오른다고 여기는 책)’을 가까이하는 분이 부쩍 늘어났다.


‘이름책’을 가까이하다 보면, 누구라도 어느새 ‘이름뿐(허울뿐·껍데기뿐)’이게 마련이다. ‘읽는책’을 가까이하다 보면, 누구라도 천천히 ‘삶을 이루고 살림을 일으키고 사랑을 일구고 생각이 물결처럼 이는 길’로 나아간다. 한자말 ‘독서’는 나쁜 낱말은 아니되, 정작 우리가 하는 ‘읽다’를 ‘잊’는 굴레로 밀어놓는다. ‘읽다’라는 오랜 우리말은 ‘일다 + 익다’인 얼거리이다. 물결과 바람처럼 스스로 새롭게 이곳에 지어서 이루는 결이기에 ‘일다’요, 이야기를 스스로 살펴서 차분히 풀고 품는 결이기에 ‘익다’이니, 일으켜서 익히는 ‘읽다’를 제대로 느끼고 알아볼 적에 ‘이야기(잇는 말과 마음)’를 바라볼 수 있다.


모든 작은펴냄터가 ‘작은책(이름과 허울과 껍데기가 아닌 이야기를 살리는 씨앗책)’을 눈여겨보지는 않을 테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큰펴냄터는 갈수록 ‘작은책(씨앗책)’을 잊거나 등지는 얼거리가 깊다. 마을책집(작은책집)이 작은책만 건사해서는 살림을 꾸리기 벅찰 수 있다지만, 우리 스스로 서로 ‘작은이’라는 이웃으로 만나고 아우르는 길을 바로 작은책집(마을책집)부터 열어갈 적에, ‘큰이’ 몇몇이 벼슬자리를 움켜쥐는 굴레가 아닌, 모든 ‘작은이’가 보금자리와 마을에서 손수 짓고 일으키는 ‘작은이야기’를 온누리에 천천히 풀씨와 나무씨로 심어서 가꿀 만하다고 본다.


작은이가 작은책을 만나려고 작은책집으로 마실하면서, 작은씨 한 톨씩 누리고서 작은집으로 돌아가서 작은밭을 일구어 작은꿈을 작은빛으로 돌보면서 작은길을 작은살림으로 내는 사이에, 작은누리가 작은걸음으로 깨어나서 작은날개를 펴는 작은이웃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별로 물결칠 만하지 싶다.


《흰》을 읽었다. 글쓴이는 ‘흰’을 내면서 여러 ‘흰살림’을 짚으려 했구나 싶지만, 짚다가 그쳤다고 느낀다. ‘희다’하고 ‘하얗다’는 비슷하지만 다른 낱말이다. ‘희다’는 ‘희끗희끗’처럼 ‘흐리다’하고 맞물리는 낱말이다. 까만머리가 천천히 희끄무레하게 바뀌고, 까만밤이 어느덧 희뿌윰히 바뀐다. 아직 또렷이 알아볼 만하지 않고 잘 모르겠구나 싶은 어렴풋한 결을 ‘희다’로 나타내는데, 이 ‘희다’는 앞으로 다가올 길을 밝힌다. 해가 너머로 오르면 “날이 하얗다”고 한다. ‘하얗다’는 아침에 돋아 낮에 비추는 ‘해’를 보며 따온 낱말이다. 그래서 ‘해맑다·해밝다·해사하다’ 같은 낱말이 있다. 해는 ‘하늘’에 ‘하나’요, 더없이 ‘한(큰)’ 별이다. 끝없도록 커다랗기에 ‘하다’이고, ‘움트며 나아가는 몸짓’을 ‘하다’로 가리킬 뿐 아니라, 처음으로 이루거나 짓는 몸짓도 ‘하다’로 가리킨다. ‘한바탕·한껏·한참·한창·함박·함께·함함·함지’ 같은 낱말은 ‘해’한테서 비롯하고, 밑동은 ‘하’이다. ‘하얗다’는 하나로 덩이를 이루며 끝없고 가없는 빛깔이니, 그야말로 드넓은 결이고, 이를 ‘허옇다·허허·허허바다’로 잇고, ‘헌책’과 ‘헛발·헛심’으로도 잇는다. ‘하찮다’는 “하치 않다”는 얼거리이고, “크지 않다”는 뜻이다.


다시 ‘흰’을 돌아본다. ‘흐리다’는 “눈물로 눈앞이 흐리다”처럼 쓰기도 하고,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쓰는데, 이러한 결은 ‘흐르다’하고 맞닿는다. ‘하·허’가 갈마들듯 ‘희·흐’가 맞물리면서 ‘리·르’가 갈마든다. 끝없고 가없이 움직이면서 맑기에 ‘흐르다’이다. 끝없고 가없이 마음이 넉넉하기에 ‘흐뭇하다’이다. 끝없고 가없구나 싶도록 살림이 넉넉하기에 ‘흐드러지다’이다.


하늘빛은 얼핏 파란하늘로 여길 수 있되, 하늘을 이루는 바람은 어떠한 빛깔도 아니라고 여긴다. 그래서 “바람에는 아무 빛깔이 없다”고 여길 수 있으면서, “바람은 어떤 빛깔로도 물들일 수 있다”고도 여긴다. 흐르는 바람(하늘)처럼 흐르는 물(바다)이기에, 바람과 바다는 한빛이요, 바탕으로는 파랑이되 온빛이 감도는 숨빛이라고 여긴다. 이 땅에서 살림을 지으며 살아온 ‘한겨레(흰옷겨레)’란 ‘하늘겨레(흰빛겨레)’라는 뜻이다. 하늘은 하얗거나 흰 두 갈래이면서 하나인 숨빛인 터라, ‘흰옷겨레(백의민족)’라 할 적에는, 하양과 흼 둘이 얼크러진다는 밑뜻이다. 천조각인 옷만 희게 입지 않는다. 하늘처럼 하나인 숨결을 함께 가없이 이으면서 어떤 길과 일과 놀이라 하든 모두 받아들여서 품고 풀어낸다는 이름이다.


우리가 스스로 한겨레(흰옷겨레)인 줄 잊었기에 그만 벼슬자리와 감투를 놓고서 ‘조선 오백 해’이든 ‘고려와 네나라’이든 끝없이 칼부림으로 싸웠고, 일본굴레를 거치고 나서도 한겨레끼리 피비린내를 일으키는 싸움수렁을 건너야 했다. 그런데 이 싸움수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살림을 짓는 보금자리를 일굴 노릇인데, 자꾸 ‘언놈’을 ‘우두머리’에 앉혀야 하느냐를 놓고서 가없이 싸운다. ‘그들’이 아닌 ‘나·너·우리’를 바라볼 노릇이지만, 스스로 흰빛과 하얀빛으로 물드는 하늘님이라는 숨결인 줄 잊어버리고 만다.


“하얗게 밤을 새운다”고 말하되, “희게 밤을 새운다”처럼 말하지 않는다. “해처럼 하나인 마음으로 함께 어울리는 자리라서, 하얗게 밤을 새운다”이다. 들숲마을에 “눈이 하얗게 덮는다”고 말한다. 들숲마을을 끝없고 가없이 하나인 빛과 무늬로 여미듯 눈으로 아우른다는 뜻이다.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리면서 “하늘이 흐리”기에, 앞으로 어떤 날씨로 이어갈는지 까마득하게 모르게 마련이지만, 이 ‘흐린빛’이 가시고 나면 어떤 맑밝은 하루로 이을는지 두근두근한 마음이 ‘흐른’다. 아직 뿌옇다고 할 만큼 잘 모르거나 헤매는 길이란, 애벌레가 고치에 깃들어 끝없이 잠들면서 새날을 그리는 꿈과 같다. 흐릿흐릿 흐리멍덩한 고치잠을 한참 보내고 나서야 마참니 ‘흐린빛’에 ‘알록달록 빛그림’을 담고, 이때에 애벌레는 옛몸을 사르르 녹이듯 풀어낸 다음에 새빛을 품어서 ‘날개돋이’라는 길에 따라서 나비로 거듭난다(다시 태어난다). 뜨겁게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날개돋이를 이룬다. 바보(밥벌레·애벌레)라는 몸을 스스로 녹이고 풀어내기에 비로소 새몸을 입는다. 새몸을 입기에 하늘과 땅을 잇는 사이를 새삼스레 날면서 활짝 웃는다. 하얀 바탕에 무엇이든 그릴 수 있듯, 바보마냥 흐린 마음과 몸과 머리이기에 이 마음과 몸과 머리에 꿈씨앗을 담아서 또렷하게 깨어난다.


《흰》은 무엇을 짚는 글일까? ‘흰’도 ‘하양’도 못 짚거나, 조금 짚는 듯하다가 얼렁뚱땅 맺고서 달아났다고 느낀다. 글감(주제의식)을 잘 뽑기에 훌륭하거나 대단할 수 없다. 글감만으로 쓰지 않는 글이다. 글감만 앞세우려고 하기에 갖은 옮김말씨하고 일본말씨가 춤추고야 만다. 글감을 앞세우지 않고서 ‘글(말을 그리는 빛살)’을 쓰려고 했다면, 《흰》은 그야말로 흰길과 하얀길이 서로 다른 듯 나아가지만, 속으로는 두 길이 언제나 한꽃같이 어울리면서 흐르는 햇빛인 줄 알아차리면서 이 얼거리를 이야기로 풀어냈으리라 본다.


《흰》은 쓰다가 만 글이지 싶다. 아니, 쓰는 시늉을 했으나 정작 첫자락조차 아직 붓을 못 댄 글이지 싶다. ‘흰’을 쓰려면 ‘흰’부터 온삶을 기울여서 알아보면서 품고 풀고 녹이고 사랑할 노릇이다. 사랑은 이 삶에서 가장 쉬운 길이다. 사랑시늉이나 사랑흉내란 그야말로 꾸밈(연극·문예창작)이라서 가장 고단한 가시밭길이다. 굳이 꾸밈글을 써야 할 까닭이 없이, 오롯이 사랑으로 글을 노래하면 될 텐데 싶다.


ㅍㄹㄴ


《흰》(한강, 난다, 2016)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 흰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봄에 줄거리부터 짰다

→ 흰빛을 쓰겠다고 여긴 봄에 이름부터 죽 적었다

→ 무엇이 흰지 쓰려고 한 봄에 벼리부터 엮었다

9쪽


이것을 쓰는 과정이 무엇인가를 변화시켜줄 것 같다고 느꼈다

→ 이를 쓰는 길에 무엇을 바꿀 듯하다고 느꼈다

→ 이 이야기를 쓰면 무엇을 바꿀 만하다고 느꼈다

10쪽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 시작을 미루었다

→ 물어도 말하기 어려워 첫글을 미루었다

→ 묻지만 말하기 어려워 미루었다

10쪽


열네 살 무렵 시작된 편두통은 예고 없이

→ 열네 살 무렵부터 한골앓이는 갑자기

→ 열네 살 무렵부터 외골앓이는 불쑥

11쪽


누군가가, 아마 그동안 이 집에 세들었던 사람들 중 하나가

→ 누가, 아마 그동안 이 집에 깃들던 누가

→ 누가, 아마 그동안 이 집을 빌린 사람이

15쪽


짐을 정리한 다음날 흰 페인트 한 통과 큼직한 평붓을 샀다

→ 짐을 꾸린 다음날 흰 물감 한 통과 큼직한 넓적붓을 샀다

→ 짐을 추스른 다음날 흰 물감 한 통과 큼직한 넓붓을 샀다

16쪽


내 어머니가 낳은

→ 어머니가 낳은

→ 울 어머니가 낳은

20쪽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자랐다

→ 나는 이 이야기로 자랐다

22쪽


죽은 백구는 진돗개의 피가 절반 섞여 유난히 영리한 개였다고 했다

→ 죽은 흰개는 진돗개 피가 섞여 유난히 똑똑했다고 한다

→ 죽은 흰둥이는 진돗개 피가 섞여 유난히 빼어났단다

23쪽


오래전 이렇게 안개가 짙었던 섬의 아침을 기억한다

→ 언젠가 이렇게 안개가 짙던 섬아침을 돌아본다

→ 예전에 섬에서 이렇게 안개가 짙던 아침을 떠올린다

27쪽


오래전 성城이 있었다는 공원에서

→ 옛날에 담이 있었다는 쉼터에서

→ 예전 높터가 있었다는 쉼뜰에서

30쪽


이 도시에는 칠십 년 이상 된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 이 고장에는 일흔 해 넘는 살림이 있지 않다

→ 이곳에는 일흔 해가 넘는 살림이 없다

30쪽


결국 타살되었을 여섯 살배기 아이의 최후를 상상하고 싶지 않아

→ 끝내 목숨을 빼앗긴 여섯 살 배기 마지막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 마침내 목숨을 앗긴 여섯 살 아이 끝길을 그려내고 싶지 않아

36쪽


그런 그녀가 이 도시의 중심가를 걷는다

→ 그런 사람이 이 고을 북새길을 걷는다

→ 그런 그이가 이 고장 북적길을 걷는다

39쪽


그 지방의 사람들은

→ 그곳 사람들은

→ 그 마을에서는

→ 마을사람은

47쪽


흰 비늘의 물고기들이 보였다

→ 비늘이 흰 헤엄이가 보인다

→ 흰비늘 헤엄이를 본다

47쪽


이 도시의 외곽에서 그녀는 그 나비를 보았다

→ 그사람은 이곳 귀퉁이에서 그 나비를 본다

→ 그이는 이 마을 기스락에서 그 나비를 본다

49쪽


언젠가 만년설이 보이는 방에서 살고 싶다고 그녀는 생각한 적 있다

→ 그이는 언젠가 늘눈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다

→ 그사람은 눈갓이 보이는 데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다

56쪽


몇 년 전 대설주의보가 내렸을 때였다

→ 몇 해 앞서 눈벼락이라는 때였다

→ 몇 해 앞서 함박눈이라는 때였다

63쪽


보름의 달을 볼 때마다 그녀는 사람의 얼굴을 보곤 했다

→ 그는 보름달이 뜨면 사람얼굴을 보곤 한다

→ 그사람은 보름달마다 사람얼굴을 본다

69쪽


어느 추워진 아침

→ 어느 추운 아침

→ 추운 아침

72쪽


왜 흰 새가 다른 색의 새와는 다른 감동을 주는 것인지 그녀는 알지 못한다

→ 그는 왜 흰새가 다른 깃빛보다 가슴을 울리는지 모른다

→ 그사람은 왜 흰새가 다른 새보다 찡한지 모른다

74쪽


회복될 때마다 그녀는 삶에 대해 서늘한 마음을 품게 되곤 했다

→ 살아날 때마다 삶이 서늘하다고 느낀다

→ 몸이 나을 때면 삶이 서늘하다고 여긴다

98쪽


칠삭둥이로 그녀는 태어났다

→ 일곱달둥이로 태어났다

→ 일곱달이로 태어났다

104쪽


백지 위에 쓰는 몇 마디 말처럼

→ 흰종이에 쓰는 몇 마디처럼

→ 종이에 쓰는 몇 마디 말처럼

123쪽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 긴 하루가 끝나면 조용히 지내야 한다

→ 긴긴 하루가 끝나면 입을 쉬어야 한다

12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5.31.

다듬읽기 263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아포리아

 2013.3.13.첫.5만 부/2013.3.18.2벌.10만 부



  모든 말은 우리 마음을 드러내는 소리입니다. 모든 마음은 저마다 살아낸 나날입니다. 모든 글은 말을 그려낸 무늬입니다. 그래서 ‘삶 → 마음 → 말 → 글’이라는 얼거리이고, 어느 글을 읽더라도 ‘이 글을 쓴 사람 마음·삶’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글을 꾸미는 사람은 삶도 꾸미고 마음도 꾸밉니다. 멋스러이 글을 쓰는 사람은 삶과 마음과 말도 멋스럽게 보이려고 애씁니다. ‘좋은글’을 쓰거나 남기려 하는 사람은, 이미 이이 삶부터 ‘좋지 않’기에 ‘좋지 않은 삶과 마음을 숨기거나 가리면서 좋아 보이는 모습’을 슬그머니 씌우게 마련입니다.


  맞춤길이나 띄어쓰기를 빈틈없이 다스릴 줄 알면 ‘좋은글’일 수는 있어도, ‘삶글’이나 ‘마음글’이지는 않기 일쑤요, ‘나눔글’이나 ‘살림글’로 읽을 만하지 않더군요. 마음을 밝히려고 힘쓰는 사람은, 이미 말을 할 적부터 이녁 사투리를 씁니다. 서울사람이라면 서울사투리를 쓰고, 광주사람이라면 광주사투리를 쓰고, 대구사람이라면 대구사투리를 써요. 왜 사투리를 쓰느냐 하면, 언제나 그사람 속내를 말과 글에 그대로 담으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좋은글(좋아 보이도록 꾸민 글)’을 쓰려는 사람은 ‘사투리를 안 씁’니다. 사투리가 없이 말끔한 ‘맞춤말(교양 있는 서울사람이 쓰는 틀에 박힌 말)’에 갇혀요.


  《어떻게 살 것인가》를 펴면, 글쓴이 유시민 씨는 이녁이 이만 한 이름을 붙인 책을 쓸 만하지 않다고 밝히는 시늉을 합니다. 참말로 유시민 씨가 이만 한 이름을 붙인 책을 쓸 만하지 않은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이런 책은 안 씁니다. 그러나 유시민 씨는 “고매한 인품을 인정받은 사람이라야” 쓸 수 있을 책을 “나(유시민)는 고매한 인품도 아니고, 이런 인품이 있다고 인정받은 사람도 아닌데” 무턱대고 쓴다고 슬그머니 밝히고, “고매한 인품”인 사람을 살그머니 빈정댑니다.


  곰곰이 보면, 모든 사람은 저마다 ‘살아가’기에, 저마다 살아가는 나날과 발자국을 쓸 수 있고, 쓰면 되며, 쓸 노릇인데다가, 아이한테 물려주면 넉넉합니다. 구태여 깜냥(자격)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고 처음부터 갈라칠 까닭이 없습니다.


  유시민 씨가 쓴 이 책은 책자취(판권)에 몇 자락을 찍었는지 자랑스레 밝힙니다.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5만이고 10만이고 척척 팔아치울 수 있을 만큼 자랑스럽다고 밝히면서 “어떻게 살겠는가” 같은 줄거리를 다룰 만하지 않은 깜냥이라면, 여태 겉멋으로 책팔이를 했다는 셈입니다. 잘 모르는 분은 ‘1벌 5만, 2벌 10만’이라고 책자취에 밝힌 일은 펴냄터가 했다고, 글쓴이가 안 했다고 말씀하지만, 글쓴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펴냄터에서 함부로 이렇게 못 밝힙니다. 펴냄터하고 글쓴이가 한마음과 한몸이라서 이렇게 자랑스레 밝힙니다. 이른바 “고매한 인품인 작가” 분은 으레 “내가 아니고 출판사에서 이렇게 해서요” 하고 넌지시 펴냄터 탓으로 돌리기 일쑤인데, 참으로 거짓말쟁이에 눈속임입니다. “고매한 인품인 나는 책팔이를 잘한다는 자랑질은 안 하는 착한놈”이라고 읊으면서 뒤에서 웃거든요.


  책을 훑거나 새뜸(신문)을 넘기면서 얻은 부스러기(지식·정보)로 말잔치를 펴는 일은 안 나쁩니다. 다만, 유시민 씨 같은 분들은 부디 ‘서울 좀 떠나’서 ‘시골에서 맨손으로 호미를 쥐고서 텃밭살림’부터 해보기를 바랍니다. 우리한테 《토지》를 남긴 박경리 님은 ‘글을 쓰는 짬’보다는 ‘밭을 일구는 짬’에 ‘집안일과 부엌일을 하는 짬’을 한결 넉넉히 즐기고 누렸습니다. 밭일과 집안일과 부엌일을 하는 단단하고 푸진 몸빛을 날마다 일굴 줄 알기에 글빛도 단단하고 푸지게 여밀 수 있습니다. 밭일도 집안일도 부엌일도 안 하는 채, 더구나 아이를 돌보는 나날도 보내지 않는 채, 말만 하고 글만 쓰는 자리에서 돈벌이를 일삼는다면, 이때에는 그만 ‘촉새’가 되고 말아요. 이름이 촉새인 새한테는 안된 말입니다만, ‘입방정’이 아닌 ‘살림말’을 둘레에 들려주고 베푸는 글바치로 거듭나셔야 하지 않을까요? 서울 한복판에서 글팔이와 책팔이를 이어가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맨몸에 하늘빛과 흙빛과 숲빛과 들빛을 머금는 땀방울을 맞아들이는 하루를 살아내고 보면, ‘서울에서 벌이는 갖은 말잔치와 글잔치’가 얼마나 덧없는 밥그릇싸움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밥그릇싸움으로 쓰는 책은 그만 내놓아도 될 텐데 싶어요. 삶이 아깝잖아요? 밥그릇싸움으로 돈을 긁어모으는 삶이 재미있나요? 봄이 저물고 여름이 다가오는 길목에서 봄새와 여름새가 들려주는 노래잔치를 누리는 마음을 글로 옮길 적에 그야말로 빛나지 않나요?


ㅍㄹㄴ


《어떻게 살 것인가》(유시민, 아포리아, 2013)


성공적인 삶을 살았거나 고매한 인품을 인정받은 사람이라야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 잘살거나 밝은 사람이라야 쓸 수 있지 않은가

→ 훌륭하거나 대단한 사람이라야 쓰지 않는가

7쪽


누구나 나름의 자기 검열을 한다

→ 누구나 제 나름대로 고친다

→ 누구나 가다듬는다

→ 누구나 깎고 자른다

9쪽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한 존중, 그런 것들을 위해 자기가 쓴 글을 객관적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수정하는 것이다

→ 다른 마음인 사람을 헤아리면서 스스로 쓴 글을 여러모로 따지고 살펴보고 고친다

→ 다른 사람을 눈여겨보면서 제 글을 이모저모 짚고 살펴보고 손질한다

9쪽


인생의 품격을 찾으려고 고민하는 모든 분들의 건투를 빈다

→ 멋스런 삶을 찾으려고 애쓰는 모든 분이 꿋꿋하기를 빈다

→ 삶멋을 찾으려고 힘쓰는 모든 분이 기운내기를 빈다

11쪽


나는 노는 게 좋다. 일도 좋지만 노는 건 더 좋다

→ 나는 즐겁게 논다. 일도 즐겁지만 놀이를 즐긴다

→ 나는 놀고 싶다. 일도 즐겁지만 놀이가 더 즐겁다

18쪽


대중의 사랑을 받기 전까지 많은 서러움을 겪었다

→ 사람들이 좋아하기 앞서까지 꽤 서러웠다

→ 사람들이 반기기 앞서까지 제법 서러웠다

27쪽


평범한 삶이 아름답고 행복할 수 없다는 게 아니다

→ 삶이 수수하기에 안 아름답고 안 즐겁지 않다

→ 여느삶이 안 아름답고 안 기쁘다는 뜻이 아니다

32쪽


의미 있는 삶을 원해서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 삶이 뜻있기를 바라서다. 삶은 그렇다

→ 뜻있게 살고 싶어서다. 삶은 그렇다

47쪽


삶의 의미는 사회나 국가가 찾아주지 않는다

→ 삶길은 남이나 나라가 찾아주지 않는다

→ 남이나 나라가 삶뜻을 찾아주지 않는다

51쪽


나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 나는 스스로 즐거울 일을 하고 싶다

→ 나는 그저 즐겁게 일을 하고 싶다

62쪽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내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활동으로 내 삶을 채우는 것이 옳다

→ 바로 여기에서 스스로 뜻있게 일하며 살면 된다

→ 오늘 여기에서 스스로 뜻깊게 살아가면 된다

90쪽


나이를 먹는 게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 나이를 먹기에 나쁘기만 하지 않다

→ 나이를 먹어서 꼭 나쁘지는 않다

→ 나이가 늘 나쁘지만은 않다

118쪽


생의 마지막 열흘 동안 곡기를 끊고 누워 있으면서

→ 마지막 열흘 동안 낟알을 끊고 누워서

→ 죽음을 앞둔 열흘을 밥을 끊고 누워서

134쪽


직업을 잘 선택하려면 열등감을 극복해야 한다

→ 일거리를 잘 고르려면 부끄러워도 이겨야 한다

→ 자리를 잘 찾으려면 모자라도 견뎌야 한다

171쪽


연대solidarity의 한 방법이었다. 연대는 아픔과 기쁨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사회적인 선과 미덕을 실현하는 행위이다

→ 손잡기이다. 함께 아프고 기뻐하며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서 착하고 아름답게 사는 길이다

→ 같이하는 일이다. 같이 아프고 기쁘며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서 착하고 아름답게 가는 길이다

186쪽


내면이 의미와 기쁨으로 충만한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 속이 깊고 기쁜 사람이 되기를 빈다

→ 마음이 참하고 기쁘기를 바란다

195쪽


아는 체 하지 않고 겸손하게 처신한다

→ 아는 체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다

→ 아는 체하지 않고 다소곳이 산다

224쪽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청년들에게 위로와 더불어 한마디 고언苦言도 드리고 싶다

→ 끝을 받아들이기 힘든 젊은이를 다독이면서 잔소리도 하고 싶다

→ 끝맺음을 못 받아들이는 젊은이를 달래면서 쓴소리도 하고 싶다

232쪽


이름 남기기 그 자체를 인생 목표로 설정할 경우 삶을 왜곡하게 된다

→ 그저 이름을 남기려고 살면 뒤틀린다

→ 그냥 이름을 남기려고 살면 비틀린다

32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 난임에 관한 사적이고도 정치적인 에세이
이계은 지음 / 빨간소금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5.19.

다듬읽기 199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이계은

 빨간소금

 2024.3.13.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이계은, 빨간소금, 2024)를 읽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기를 낳아서 돌보려는 길’이 어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글을 매우 어렵게 쓰기’ 때문입니다. 글멋과 글치레를 너무 부리는구나 싶습니다. ‘페미니즘 리부트’란 뭘까요? 우리는 왜 우리말을 이토록 미워하고 싫어하고 따돌릴까요? 우리 삶과 길과 하루와 생각과 마음을 바로 우리말로 수수하게 주고받으면서, 이곳에서 나고자랄 아이들 곁에서 꽃피울 작은말을 차분히 되새길 노릇이라고 봅니다.


  냇물을 바라보면서 냇물빛을 마음으로 담으면, 우리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냇물빛이 피어나는 말 한 마디로 나아갑니다. 파란하늘을 헤아리면서 바람빛을 마음으로 품으면, 우리가 속삭이는 이야기는 파랗게 깨어나는 글 한 줄로 거듭납니다.


  말을 바꾸기에 마음을 바꿉니다. 말을 안 바꾸기에 마음을 못 바꿉니다. 말부터 숲빛으로 가꾸기에 마음이 나란히 숲빛으로 물들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별과 누리와 마을과 보금자리에서 스스로 지을 살림살이를 숲길로 이을 수 있습니다.


  짝을 맺고 아기를 낳는 삶이 “페미니즘의 반역자(27쪽)”일 까닭이 없을 뿐 아니라,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짝을 만나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사랑을 알아보고 돌아보는 하루를 짓고 생각씨앗을 심는 보금자리를 이루는 길이야말로 어깨동무(페미니즘)이게 마련입니다. 바보나 얼간이나 멍텅구리를 손가락질하거나 나무라는 길이란 어깨동무(페미니즘)하고 한참 멉니다. 바보에 얼간이에 멍텅구리인 “덜되고 얼뜬 사내”를 찬찬히 이끌고 가르쳐서 ‘사람으로 바꾸어서 사랑을 깨닫도록 북돋우는 길’이야말로 어깨동무(페미니즘)이라고 느낍니다. 사랑을 모르는 철딱서니없는 사내가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나라일수록 모든 사람이 살아가기 괴롭습니다. 사랑을 모르는 철없는 사내를 따끔하게 나무라기도 하되, 부드럽게 달래며 가르치고 일(집안일)을 맡길 줄 아는 가시내일 적에, 어깨동무(페미니즘)라는 빛이 온누리를 일으키리라 봅니다.


ㅍㄹㄴ


한때 나의 세계는 난임으로 무너졌고, 내던져진 상황에서 극한으로 휘둘렸으며, 대립하고 불화했다

→ 나는 한때 아기가 안 서 무너졌고, 모질게 대들고 들이받았다

→ 나는 한때 아기를 못 낳아 무너졌고, 끝없이 휘둘렸으며, 다투고 부딪쳤다

5쪽


이제는 익숙한 구호에 따라 내면의 파도를 언어화하며 살아가려는 사람으로서

→ 이제는 익숙한 말소리로 물결치는 마음을 그리며 살아가려는 사람으로서

→ 이제는 익숙한 소리로 너울대는 마음빛을 밝히며 살아가려는 사람으로서

6쪽


그에게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이라는 패를 꺼내 보이고 싶었다

→ 그한테 스스로 홀로서는 순이라는 이름을 꺼내 보이고 싶었다

→ 그한테 몸소 일어서는 순이라는 이름판을 꺼내 보이고 싶었다

13쪽


슈퍼마켓에 다니기 전까지 간식은 구황작물뿐이고

→ 가게에 다니기 앞서까지 곁밥은 살림남새뿐이고

→ 가게에 다니기 앞서까지 주전부리는 살림풀뿐이고

15쪽


비로소 안심한 나는 뒤늦은 퇴행을 겪었다

→ 비로소 마음놓고서 뒤늦게 너덜거렸다

→ 비로소 가라앉고서 뒤늦게 뭉그러졌다

18쪽


엄마를 이해하려 애쓰는 조숙한 아이였다

→ 엄마를 헤아리려 애쓰는 일된 아이였다

→ 엄마를 살피려 애쓰는 올된 아이였다

23쪽


남편과 2세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 짝꿍과 아이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았다

→ 짝과 아기 이야기는 뚜렷이 하지 않았다

→ 곁님과 딸아들 이야기는 깊이 하지 않았다

→ 곁짝과 뒷아이 이야기는 딱히 하지 않았다

26쪽


나는 결혼한 페미니스트라는 점에서 이미 페미니즘의 반역자가 된 기분이었다

→ 나는 짝을 맺은 가시냇길이기에 이미 수수한꽃을 어긴 듯했다

27쪽


홧김에 배란일에 피임하지 않는

→ 골나서 알슬기에 삼가지 않는

→ 불나서 알슬기에 사리지 않는

→ 발끈해서 알슬기에 막지 않는

28쪽


몸이 냉한 편이었기에

→ 몸이 찼기에

→ 몸이 차가웠기에

29쪽


계류유산으로 소파수술을 받은 뒤 한동안 상실감과 함께, 불운을 겪었다는 충격과 자기연민으로부터 좀처럼 헤어나지 못했다

→ 죽은낳이라서 긁어낸 뒤 한동안 망가졌고, 가싯길을 겪었기에 괴롭고 눈물이 흘러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했다

35


회차가 늘어날수록 병원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 걸음이 늘어날수록 돌봄터를 보는 눈길도 바뀌었다

→ 발걸음이 늘어날수록 돌봄집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49쪽


주변에 별다른 함구령을 내리지 않았다

→ 딱히 입을 막지 않았다

→ 굳이 입다물라 하지 않았다

→ 구태여 조용하라 하지 않았다

62


내 어머니는 자식을 넷이나 자연임신으로 낳았는데

→ 어머니는 아이를 넷이나 멀쩡히 낳았는데

→ 울 어머니는 아이를 넷이나 그냥 낳았는데

94


엄마의 성정을 알기에

→ 엄마 마음을 알기에

→ 엄마 마음새를 알기에

126


언니의 출산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는 심정의 내가 미웠다

→ 언니 아기를 참으로 기뻐하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 언니 아기를 그저 반기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127


마지노선은 무사히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닌, 가진 돈이 모두 고갈될 시점으로 바뀌었다

→ 마지막은 아이를 잘 낳기가 아닌, 우리 돈이 모두 떨어질 때로 바뀌었다

→ 마감은 아이를 잘 낳기가 아니라, 우리 돈이 바닥날 때로 바뀌었다

178


예후가 좋지 않다며 조심스레

→ 나중이 좋지 않다며 넌지시

→ 다음이 좋지 않다며 살며시

184


자연분만을 시도하던 나는 진통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러

→ 푸른낳기를 하던 나는 배아픈 막바지에

→ 보금낳기를 하던 나는 배앓이 막바지에

186쪽


나중에 후회한다는 말이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붙잡고 이유를 물었다

→ 나중에 뉘우친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려는데 억지로 붙잡고 까닭을 물었다

→ 나중에 땅을 친다는 말이 바로 튀어나오려는데 겨우 붙잡고 왜냐고 물었다

203쪽


부모님의 도움을 받거나 돌봄을 외주화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이였다

→ 어버이가 돕거나 남이 돌봐줄 수 있는 돈이 있는 이였다

→ 어버이가 돕거나 돈으로 돌봄손길을 받을 수 있는 이였다

238


타인의 시간을 전액 자부담으로 사는 것은 당연히 우리에게 너무나 비쌌다

→ 남한테 손을 빌리는 돈을 스스로 대야 하는 우리한테는 너무나 비쌌다

→ 우리 살림살이로 이웃손길을 빌려서 돈을 대려니 너무나 비쌌다

→ 우리가 이웃손길을 받으려고 돈을 대려니 너무나 힘들었다

239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4.17.

다듬읽기 261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창비

 2011.6.20.



  말더듬이 눈으로 온누리를 보면, 어쩜 사람들이 소리 하나 안 흘리거나 안 놓치거나 안 꼬이면서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놀랍기만 합니다. 도무지 가닿을 수 없는 아득한 곳이라고 느끼지요. 말을 잘 하는 사람도 스스로 애쓰고 힘쓸 테지만, 말더듬이는 그야말로 죽도록 스스로 다스리지만, 끝없이 용쓰더라도 실오라기 하나만큼조차 풀리지 않아서 괴롭거나 창피한 나날을 기나긴 해에 걸쳐서 보내게 마련입니다.


  둘레를 보면, 말더듬이가 길잡이(교사)를 하거나 알림꽃(아나운서·사회자)을 맡는 일은 아예 없다고 할 만큼 거의 못 봅니다. “말을 안 더듬는 사람이 많은데, 굳이 말더듬이한테 ‘말하는 일’을 시켜야 하느냐?”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안 더듬는다고 해서 어느 일을 잘 알거나 다루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말은 더듬지만 어느 일을 잘 알거나 다루거나 하”기도 합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으면 “사전은 원래 동어반복적이야(238쪽)” 같은 대목이 나오는데, 틀린 이야기입니다. 낱말책은 돌림풀이를 하지 않아야 할 꾸러미인데, 우리 낱말책은 그만 돌림풀이에 갇혔습니다. 어쩌면 ‘엉터리 우리나라 낱말책’을 가볍게 핀잔하는 말씨일 수 있고, 그냥 ‘낱말책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불쑥 끼워넣은 말씨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저 모두 사람입니다. 우리말에는 처음부터 ‘장애(障碍)’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부터 사람을 그저 사람으로 바라보되, 딸이면 딸이라 하고 아들이면 아들이라 했습니다. 아이면 아이라 하고 어른이면 어른이라 했어요. 크가 크니 키다리라 하고 키가 작으니 난쟁이라 했습니다. 앉은 몸짓이기에 앉은뱅이에 꿈에 잠기듯 눈을 감은 몸이라서 장님이라 하고, 꽃봉오리나 멧봉우리처럼 듬직하면서 곱게 피어나는 마음을 드러낸다고 해서 벙어리라 했습니다.


  말더듬이란, 그냥 더듬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더듬더듬하는 매무새는 풀벌레나 나비한테 있는 ‘더듬이’하고 같은 밑동입니다. 풀벌레하고 나비는 더듬이가 있기에 ‘눈코귀살’로 느끼지 못 하는 결을 더듬이로 더듬더듬 미리 느낍니다. 말더듬이는 말을 더듬더듬 겨우 하되, 스스로 들려주고 싶으면서 둘레에 나누고 싶은 마음을 한 올씩 풀어내려고 합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곰곰이 읽으면서, ‘처음부터 영화로 찍기를 바란 티’를 물씬 느꼈습니다. 2025년에 이르러 이 책을 읽고 나서 알아보니, 책은 2011년에 영화는 2014년에 나왔군요. 올바름(PC)을 외치려는 줄거리로 짰구나 하고 느끼는데, 글쓴이는 시골을 잘 모르는 듯합니다. 시골은 시골일 뿐 ‘농촌마을’이 아닙니다. ‘농촌마을·어촌마을’이란 틀린말인데, 아직도 모르는 듯합니다. 두 푸름이하고 여러 어른 사이에 어떤 마음이 오가는가 하는 대목을 짚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골이라는 터전을 들여다보고 눈여겨볼 뿐 아니라, 몸소 살아내 보지 않는다면, ‘터(배경)’만 시골일 뿐, 하나도 시골스럽지 않은 얼거리이게 마련입니다.


  1990년으로 접어드는 언저리에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책이 나오고 영화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 책과 영화를 2011∼14년판으로 다시 꾸몄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1980년대 푸름이는 손글과 소리(라디오)로 마음을 나누려 했다면, 2010년대 푸름이는 누리글과 손전화로 마음을 나누려는 틀로 바꾼 셈이라고 할까요.


ㅍㄹㄴ


《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 창비, 2011)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건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길은 우리가 찾지 않는다

→ 알 수가 없다. 삶은 우리가 세우지 않는다

6쪽


바람이 불면 내 속 낱말카드가 조그맣게 회오리친다

→ 바람이 불면 마음속 낱말집이 조그맣게 회오리친다

→ 바람이 불면 속에서 낱말종이가 작게 회오리친다

10쪽


해풍에 오래 마른 생선처럼 제 몸의 부피를 줄여가며 바깥의 둘레를 넓힌 말들이다

→ 바닷바람에 오래 마른 고기처럼 제 몸을 줄여가며 둘레를 넓힌 말이다

10쪽


바람에 풍경(風磬)이 흔들리듯 내가 물어 무언가 움직이는 거였다

→ 바람에 바람새가 흔들리듯 내가 물어 움직인다

→ 바람에 바람쇠가 흔들리듯 내가 물어보면 움직인다

11쪽


지상에 뿌리내린 것이 있고 식물의 종자처럼

→ 땅에 뿌리내리기도 하고 풀꽃씨처럼

→ 땅바닥에 뿌리내리거나 풀씨처럼

11쪽


중요한 건 그 말이 몸피를 줄여가며 만든 바깥의 넓이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 아무래도 말이 몸피를 줄여가며 이룬 바깥넓이를 가늠해야지 싶다

11쪽


산 깊고 물 맑은 농촌마을이었다

→ 메 깊고 물 맑은 시골이었다

→ 두멧골 물 맑은 시골이었다

→ 물 맑은 두멧시골이었다

11쪽


사람들은 필요한 게 있으면 대부분 직접 기르거나 만들어 썼다

→ 사람들은 살림을 손수 기르거나 지어서 썼다

→ 사람들은 살림살이를 손수 기르거나 지었다

12쪽


포효하고픈 심정도 들었다

→ 소리치고도 싶었다

→ 벼락치고도 싶었다

17쪽


다섯 개의 손바닥은 일제히 숨죽인 채 내 존재를 느꼈다

→ 다섯 손바닥은 나란히 숨죽인 채 나를 느꼈다

→ 손바닥 다섯은 다같이 숨죽인 채 내 숨빛을 느꼈다

40쪽


나를 낳고 부모님이 뼈저리게 느낀 것 중 하나는 자신들이 모르는 게 많다는 거였다

→ 나를 낳은 두 분은 너무 모르는 줄 뼈저리게 느꼈단다

→ 엄마아빠는 나를 낳고서 너무 몰랐다고 뼈저리게 느꼈단다

59쪽


물론 아버지 입장에서도 아들의 클릭질이 한심하게 보일 게 틀림없었다

→ 뭐 아버지 보기에도 아들 딸깍질이 바보스레 보일 테지

→ 아버지 눈으로도 아들 또깍질이 우스워 보이리라

75쪽


부모는 왜 어려도 부모의 얼굴을 가질까

→ 어버이는 왜 어려도 어버이 얼굴일까

→ 엄마아빠는 왜 어려도 엄마아빠일까

77쪽


이유 같은 건 없어

→ 까닭은 없어

→ 다른 뜻은 없어

112쪽


너스레를 떠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 너스레를 떨어야 할 듯했다

→ 너스레를 떨어야겠다 싶었다

118쪽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 제가 여쭐 수 있는 말은

159쪽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건 정말 어려운 일 같거든요

→ 다 아는 분이 어떻게 모르는 놈을 알 수 있는지, 참 어려운 일 같거든요

→ 훌륭한 분이 어떻게 초라한 놈을 헤아릴 수 있는지, 참 어려운 일 같거든요

170쪽


마우스를 쥔 손이 조금 떨렸다

→ 다람이를 쥔 손이 조금 떨렸다

→ 또각이를 쥔 손이 조금 떨렸다

179쪽


내 또래의 여자아이에게 그런 메씨지를 받아본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 내 또래 가시내한테 그런 쪽글은 태어나 처음 받아보았다

187쪽


나는 그애에게 때이른 만족을 주고 싶지 않았다

→ 나는 그애가 벌써 기뻐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 나는 그애가 바로 반기기를 바라지 않았다

197쪽


나도 잘 살펴볼게

→ 나도 잘 볼게

→ 나도 살펴볼게

216쪽


나는 내가 도망치려 했던 시작이 다시 내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설렘과 두려움을 느꼈다

→ 나는 내가 달아나려 하던 처음이 다시 내 앞에 놓였기에 설레면서 두려웠다

→ 나는 내가 놓으려 하던 첫걸음이 다시 내 앞에 있기에 설레고 두려웠다

221쪽


시시한 얘기도 이메일을 통해 나누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기쁨을 주었다

→ 시시한 얘기도 누리글로 하곤 했다. 그렇지만 누리글은 누리글대로 기뻤다

→ 시시한 말도 누리글월로 나누곤 했다. 그런데 이런 글은 이런 글대로 기뻤다

230쪽


사전은 원래 동어반복적이야

→ 낱말책은 늘 되풀이말이야

→ 낱말책은 워낙 되풀이야

238쪽


두 사람의 실랑이는 계속됐다

→ 두 사람은 내내 실랑이였다

→ 두 사람은 또 실랑이질이다

34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의 높이뛰기 - 신지영 교수의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
신지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4.14.

다듬읽기 260


《언어의 높이뛰기》

 신지영

 인플로엔셜

 2021.9.1.



  우리나라는 기나긴 사슬살이에 끔찍한 잿더미일 뿐 아니라, 서슬퍼런 총칼수렁을 거쳐야 했지만, 이런 사슬과 잿더미와 총칼 사이를 뚫고 제법 잘사는 나라를 이루었다고 여깁니다. 무척 빠르게 일어선 나라로 손꼽습니다. 다만 ‘먹고살기(경제성장)’를 지나치게 꼭두에 놓은 탓에 ‘먹고살기’를 뺀 다른 모든 길은 뒷전이었고 팽개쳤으며 잊어버린 채 치달렸습니다. 무엇보다도 배움수렁(입시지옥)이 크나크고, 싸움불굿(전쟁)으로 마높(남북)이 으르렁거리는 담벼락이 높습니다.


  누구나 알듯 우리나라는 일본앞잡이를 하나도 쳐내지 못 하거나 않았습니다. 이 나라 모든 곳에 또아리를 튼 일본앞잡이는 그야말로 모든 곳에서 활개를 치면서 새롭게 돈·이름·힘을 거머쥐었습니다. 이제 글판(문학계)은 예전과 다르되 ‘앞잡이’가 없을 뿐 “앞잡이가 쓰던 말글”은 고스란합니다.


  《언어의 높이뛰기》는 우리가 아직 털지 않은 채 스스로 갇히는 ‘굴레말’과 ‘사슬말’을 짚습니다. 서로 아끼고 돌볼 줄 아는 말글이 아닌, 서로 미워하거나 깎거나 팽개치는 말글이 왜 불거지는지, 왜 우리는 스스로 우리말을 얕보고 깔보면서 내내 바깥말을 드높이는지 짚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을 얕보면서 바깥말을 드높이는 고름과 수렁”을 짚는 줄거리를 ‘우리말’이 아닌 ‘일본말씨·옮김말씨’로 풀어내고 맙니다.


  책이름인 “언어의 높이뛰기”는 그냥 일본말씨입니다. 글님은 이 대목을 알아채면서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 바로잡거나 가다듬거나 손질하면서 우리말을 익힐 수 있을까요? 흔히들 “갈수록 책을 안 읽는다”며 하소연을 하고, “요새 누가 종이사전을 사읽느냐”고 타박을 하지만, 말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부터 스스로 책을 널리 읽고 종이사전을 곁에 두면 됩니다.


  꽃사람(연예인)이라는 길도 ‘말’을 다루는 일입니다. 보임틀(방송)에 나오는 모든 사람도 ‘말’을 다루는 일입니다. 여러모로 보면 벼슬꾼(대통령·국회의원·공무원) 모두 ‘말’을 다루는 일입니다. 이들은 모두 ‘한국어능력시험’이 아니라, 우리말로 이야기를 풀어낸 알찬 책을 늘 곁에 두면서 읽을 노릇이고, 종이사전도 곁에 놓고서 꾸준히 말글을 새로 익힐 노릇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 내놓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틀린 곳이나 빠진 곳이나 엉뚱한 곳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틀리거나 빠지거나 엉뚱한 곳은 좀처럼 안 바뀝니다. 우리 스스로 말글을 잘 모르는 탓이 있고, 우리 스스로 말글을 즐겁고 아름답게 익히려는 마음이 모자라는 탓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만 탓할 수 없이, 우리 모두 나란히 “우리말을 너무 모르는데, 정작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너무 안 배우려”고 합니다.


  한글학회에서 낸 《우리말 큰사전》이 있고, 높녘(북녘)에서 낸 《조선말 대사전》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낱말책도 ‘네이버 사전’에 함께 담아야 할 텐데, 아직 국립국어원은 이런 데에 돈과 힘과 마음을 아예 못 쓰다시피 합니다. 또한, 낱말책은 너무 서둘러서 내면 안 되고, 적어도 쉰 해를 차근차근 추스르면서 천천히 낱말 하나하나 짚고서 풀어야 하지만, 우리는 그야말로 벼락에 콩을 볶아먹듯 지나치게 서둘렀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처음으로 돌아가서 바탕말(기본어휘)부터 뜻풀이를 제대로 펴는 길을 열 노릇입니다.


  우리나라 낱말책뿐 아니라, 말글을 다루는 사람들 거의 모두, ‘겹말(중복표현)’에 갇히고, ‘돌림풀이(순환정의)’에 얽매입니다. 그냥그냥 익숙하게 길든 말글이기에 그냥 써도 되지 않습니다. 어린이와 푸름이를 바라보면서 오늘부터 다같이 우리말을 새롭게 배울 노릇입니다. 낱말풀이나 낱말짓기는 꾼(전문가)이 아닌, “살림하는 수수한 사람”이 고을과 마을마다 새롭게 할 일이기도 합니다. 새말을 들일 적에는 언제나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물어보면서 가다듬을 일이지요.


  말글을 다루고 가다듬고 다독이는 길을 제대로 열 적에 비로소 말이 말답게 살아나고 글을 글빛으로 일구는 살림을 다함께 누리리라 봅니다. 높이뛰기를 해도 나쁘지는 않되, ‘함께걷기’나 ‘나란걷기’처럼 ‘어깨동무’를 할 적에 비로소 말글이 반짝일 만하다고 봅니다.


  말은 시골에서 태어나기에 들숲메바다를 품으면서 누구나 즐겁게 쓰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말이 아닌 글을 서울에서 벼락비처럼 쏟아내는 터라 그만 종잡을 수 없고 걷잡을 수 없도록 어지럽게 널뛴다고 느낍니다. 말부터 토닥이면서 글을 품을 적에 말글이 빛납니다. 말 한 마디를 아이곁에서 하고, 글 한 줄을 아이랑 손잡고 걷는 매무새로 쓴다면, 바로 우리 스스로 이처럼 말글살림을 짓는다면, 오늘부터 이 나라는 아름길로 접어들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ㅍㄹㄴ


《언어의 높이뛰기》(신지영, 인플로엔셜, 2021)


원고가 필자의 손에서 일단 떠나면

→ 글쓴이 손에서 글이 떠나면

→ 글쓴이가 글을 떠나보내면

5쪽


아내의 등만 보아야 하는 긴 시간을 잘 견딤은 물론

→ 곁님 등만 보아야 하는 긴 나날을 잘 견디면서

→ 짝꿍 등만 보아야 하는 긴날을 잘 견딜 뿐 아니라

9쪽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 처음 만나는 분하고 말을 섞으며

15쪽


나의 오해는 전적으로 당신의 탓

→ 내 잘못은 모두 그대 탓

→ 내가 잘못 들어도 네 탓

16쪽


말이든 글이든 언어는 상대를 전제한 행위다

→ 말이든 글이든 서로 있기에 주고받는다

→ 말이든 글이든 서로 있어야 나눈다

21쪽


역지사지의 원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역지사지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경험적으로 너무나도 잘 안다

→ 거울보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거울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무척 잘 안다

→ 거꾸로보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거꾸로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들 흔히 겪는다

22쪽


10월 20일 방송이 내게 그런 깨달음을 주었다

→ 10월 20일 이야기로 깨달았다

→ 10월 20일 얘기로 깨닫기도 했다

29쪽


펀딩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 그림을 에코백에 담기 위해

→ 도르리 뜻을 잘 살릴 수 있는 그림을 천바구니에 담고자

→ 품앗이를 잘 살릴 수 있는 그림을 천바구니에 담으려고

29쪽


일견 초면인 관계에서 나이를 묻는 것이 한국어 사용자들에게 매우 익숙하고 허용적인 것처럼 보인다

→ 우리는 낯선 사이에서 나이를 물어도 된다고 익숙하게 여기는 듯하다

→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도 나이를 물을 수 있다고 익숙하게 여긴다

33쪽


더 큰 기득권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 더 크게 힘을 쥐기에 

→ 더 크게 쥐락펴락하기에

37쪽


한국어 높임법에 신분의 차별은 없어졌다. 하지만 이를 대신하는 연령의 차별은 건재하다

→ 우리 높임말은 위아래로 긋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직 나이로 단단히 긋는다

→ 우리는 높임말로 높낮이를 안 가른다. 그러나 아직 나이로 굳게 가른다

41쪽


한국어로 적절한 말하기를 하기 위해서는

→ 우리말을 알맞게 하려면

→ 우리가 알맞게 말을 하려면

47쪽


숨겨야 할 결함이 가득한 것이고

→ 숨겨야 할 흉이 가득하고

→ 숨겨야 할 멍울이 가득하고

61쪽


주류의 관점을 담은 언어 표현은 학습을 통해 굳어지면서 가장 일상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 큰줄기 눈길을 담은 말씨를 자꾸 듣기에 차츰 퍼져서 흔히 쓰고 만다

→ 우두머리 눈빛을 담은 말결을 자꾸 들으면서 삶으로 자리잡는다

64쪽


이런 질문에 대해 다음의 질문을 던져 보자

→ 이렇게 물으면 다음처럼 되물어 보자

→ 이렇게 본다면 다음처럼 되묻자

70쪽


병원에서 많이 듣게 되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자

→ 돌봄터에서 자주 듣는 말씨를 알아보자

→ 돌봄집에서 으레 듣는 말결을 알아보자

81쪽


문법을 훼손해도 좋으니 공손성을 유지하라고 요구한 사람은 누구인가

→ 말틀을 밟아도 되니 납작하게 굴라고 밀어대는 사람은 누구인가

→ 누가 말을 망가뜨려도 되니 다소곳이 굴라고 바라는가

87쪽


일본으로부터 수입되어 사용되었던 때와 엄청난 온도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일본에서 들여와 쓰던 때와 엄청나게 다른 줄 알 수 있다

→ 일본한테서 받아들여 쓰던 때와 엄청나게 틈이 있다

104쪽


우리는 우리가 지닌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 우리는 틀에 박힌 우리 마음부터 벗어나야 한다

→ 우리는 스스로 갇힌 틀부터 벗어나야 한다

→ 우리는 스스로 묶은 굴레부터 벗어나야 한다

180쪽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 것은 말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말에 대한 태도였던 것이다

→ 뭔가 안 맞는다고 여기는 까닭은 말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말을 보는 눈 탓이다

→ 뭔가 낯설다고 느끼는데 말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말을 보는 눈길 탓이다

235쪽


외래어는 새로움과 함께 낯설고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 들온말은 새롭고 낯설고 어렵다고 느낀다

→ 바깥말은 새롭지만 낯설고 어렵기도 하다

237쪽


남들이 만든 말을 그냥 가져다 쓰면 당장은 쉬울 수 있다

→ 남이 지은 말을 그냥 쓰면 한동안 쉬울 수 있다

→ 남이 지은 말을 그냥 쓰면 처음은 쉬울 수 있다

242쪽


그렇게 되면 그 말에 종속되어 자신의 말을 만들 수 없게 된다

→ 그러면 그 말에 얽매여 우리말을 지을 수 없다

→ 그러면 그 말에 갇혀 우리 삶말을 못 짓는다

242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사전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내가 사랑한 사진책》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