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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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4.17.

다듬읽기 261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창비

 2011.6.20.



  말더듬이 눈으로 온누리를 보면, 어쩜 사람들이 소리 하나 안 흘리거나 안 놓치거나 안 꼬이면서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놀랍기만 합니다. 도무지 가닿을 수 없는 아득한 곳이라고 느끼지요. 말을 잘 하는 사람도 스스로 애쓰고 힘쓸 테지만, 말더듬이는 그야말로 죽도록 스스로 다스리지만, 끝없이 용쓰더라도 실오라기 하나만큼조차 풀리지 않아서 괴롭거나 창피한 나날을 기나긴 해에 걸쳐서 보내게 마련입니다.


  둘레를 보면, 말더듬이가 길잡이(교사)를 하거나 알림꽃(아나운서·사회자)을 맡는 일은 아예 없다고 할 만큼 거의 못 봅니다. “말을 안 더듬는 사람이 많은데, 굳이 말더듬이한테 ‘말하는 일’을 시켜야 하느냐?”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안 더듬는다고 해서 어느 일을 잘 알거나 다루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말은 더듬지만 어느 일을 잘 알거나 다루거나 하”기도 합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으면 “사전은 원래 동어반복적이야(238쪽)” 같은 대목이 나오는데, 틀린 이야기입니다. 낱말책은 돌림풀이를 하지 않아야 할 꾸러미인데, 우리 낱말책은 그만 돌림풀이에 갇혔습니다. 어쩌면 ‘엉터리 우리나라 낱말책’을 가볍게 핀잔하는 말씨일 수 있고, 그냥 ‘낱말책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불쑥 끼워넣은 말씨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저 모두 사람입니다. 우리말에는 처음부터 ‘장애(障碍)’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부터 사람을 그저 사람으로 바라보되, 딸이면 딸이라 하고 아들이면 아들이라 했습니다. 아이면 아이라 하고 어른이면 어른이라 했어요. 크가 크니 키다리라 하고 키가 작으니 난쟁이라 했습니다. 앉은 몸짓이기에 앉은뱅이에 꿈에 잠기듯 눈을 감은 몸이라서 장님이라 하고, 꽃봉오리나 멧봉우리처럼 듬직하면서 곱게 피어나는 마음을 드러낸다고 해서 벙어리라 했습니다.


  말더듬이란, 그냥 더듬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더듬더듬하는 매무새는 풀벌레나 나비한테 있는 ‘더듬이’하고 같은 밑동입니다. 풀벌레하고 나비는 더듬이가 있기에 ‘눈코귀살’로 느끼지 못 하는 결을 더듬이로 더듬더듬 미리 느낍니다. 말더듬이는 말을 더듬더듬 겨우 하되, 스스로 들려주고 싶으면서 둘레에 나누고 싶은 마음을 한 올씩 풀어내려고 합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곰곰이 읽으면서, ‘처음부터 영화로 찍기를 바란 티’를 물씬 느꼈습니다. 2025년에 이르러 이 책을 읽고 나서 알아보니, 책은 2011년에 영화는 2014년에 나왔군요. 올바름(PC)을 외치려는 줄거리로 짰구나 하고 느끼는데, 글쓴이는 시골을 잘 모르는 듯합니다. 시골은 시골일 뿐 ‘농촌마을’이 아닙니다. ‘농촌마을·어촌마을’이란 틀린말인데, 아직도 모르는 듯합니다. 두 푸름이하고 여러 어른 사이에 어떤 마음이 오가는가 하는 대목을 짚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골이라는 터전을 들여다보고 눈여겨볼 뿐 아니라, 몸소 살아내 보지 않는다면, ‘터(배경)’만 시골일 뿐, 하나도 시골스럽지 않은 얼거리이게 마련입니다.


  1990년으로 접어드는 언저리에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책이 나오고 영화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 책과 영화를 2011∼14년판으로 다시 꾸몄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1980년대 푸름이는 손글과 소리(라디오)로 마음을 나누려 했다면, 2010년대 푸름이는 누리글과 손전화로 마음을 나누려는 틀로 바꾼 셈이라고 할까요.


ㅍㄹㄴ


《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 창비, 2011)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건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길은 우리가 찾지 않는다

→ 알 수가 없다. 삶은 우리가 세우지 않는다

6쪽


바람이 불면 내 속 낱말카드가 조그맣게 회오리친다

→ 바람이 불면 마음속 낱말집이 조그맣게 회오리친다

→ 바람이 불면 속에서 낱말종이가 작게 회오리친다

10쪽


해풍에 오래 마른 생선처럼 제 몸의 부피를 줄여가며 바깥의 둘레를 넓힌 말들이다

→ 바닷바람에 오래 마른 고기처럼 제 몸을 줄여가며 둘레를 넓힌 말이다

10쪽


바람에 풍경(風磬)이 흔들리듯 내가 물어 무언가 움직이는 거였다

→ 바람에 바람새가 흔들리듯 내가 물어 움직인다

→ 바람에 바람쇠가 흔들리듯 내가 물어보면 움직인다

11쪽


지상에 뿌리내린 것이 있고 식물의 종자처럼

→ 땅에 뿌리내리기도 하고 풀꽃씨처럼

→ 땅바닥에 뿌리내리거나 풀씨처럼

11쪽


중요한 건 그 말이 몸피를 줄여가며 만든 바깥의 넓이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 아무래도 말이 몸피를 줄여가며 이룬 바깥넓이를 가늠해야지 싶다

11쪽


산 깊고 물 맑은 농촌마을이었다

→ 메 깊고 물 맑은 시골이었다

→ 두멧골 물 맑은 시골이었다

→ 물 맑은 두멧시골이었다

11쪽


사람들은 필요한 게 있으면 대부분 직접 기르거나 만들어 썼다

→ 사람들은 살림을 손수 기르거나 지어서 썼다

→ 사람들은 살림살이를 손수 기르거나 지었다

12쪽


포효하고픈 심정도 들었다

→ 소리치고도 싶었다

→ 벼락치고도 싶었다

17쪽


다섯 개의 손바닥은 일제히 숨죽인 채 내 존재를 느꼈다

→ 다섯 손바닥은 나란히 숨죽인 채 나를 느꼈다

→ 손바닥 다섯은 다같이 숨죽인 채 내 숨빛을 느꼈다

40쪽


나를 낳고 부모님이 뼈저리게 느낀 것 중 하나는 자신들이 모르는 게 많다는 거였다

→ 나를 낳은 두 분은 너무 모르는 줄 뼈저리게 느꼈단다

→ 엄마아빠는 나를 낳고서 너무 몰랐다고 뼈저리게 느꼈단다

59쪽


물론 아버지 입장에서도 아들의 클릭질이 한심하게 보일 게 틀림없었다

→ 뭐 아버지 보기에도 아들 딸깍질이 바보스레 보일 테지

→ 아버지 눈으로도 아들 또깍질이 우스워 보이리라

75쪽


부모는 왜 어려도 부모의 얼굴을 가질까

→ 어버이는 왜 어려도 어버이 얼굴일까

→ 엄마아빠는 왜 어려도 엄마아빠일까

77쪽


이유 같은 건 없어

→ 까닭은 없어

→ 다른 뜻은 없어

112쪽


너스레를 떠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 너스레를 떨어야 할 듯했다

→ 너스레를 떨어야겠다 싶었다

118쪽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 제가 여쭐 수 있는 말은

159쪽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건 정말 어려운 일 같거든요

→ 다 아는 분이 어떻게 모르는 놈을 알 수 있는지, 참 어려운 일 같거든요

→ 훌륭한 분이 어떻게 초라한 놈을 헤아릴 수 있는지, 참 어려운 일 같거든요

170쪽


마우스를 쥔 손이 조금 떨렸다

→ 다람이를 쥔 손이 조금 떨렸다

→ 또각이를 쥔 손이 조금 떨렸다

179쪽


내 또래의 여자아이에게 그런 메씨지를 받아본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 내 또래 가시내한테 그런 쪽글은 태어나 처음 받아보았다

187쪽


나는 그애에게 때이른 만족을 주고 싶지 않았다

→ 나는 그애가 벌써 기뻐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 나는 그애가 바로 반기기를 바라지 않았다

197쪽


나도 잘 살펴볼게

→ 나도 잘 볼게

→ 나도 살펴볼게

216쪽


나는 내가 도망치려 했던 시작이 다시 내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설렘과 두려움을 느꼈다

→ 나는 내가 달아나려 하던 처음이 다시 내 앞에 놓였기에 설레면서 두려웠다

→ 나는 내가 놓으려 하던 첫걸음이 다시 내 앞에 있기에 설레고 두려웠다

221쪽


시시한 얘기도 이메일을 통해 나누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기쁨을 주었다

→ 시시한 얘기도 누리글로 하곤 했다. 그렇지만 누리글은 누리글대로 기뻤다

→ 시시한 말도 누리글월로 나누곤 했다. 그런데 이런 글은 이런 글대로 기뻤다

230쪽


사전은 원래 동어반복적이야

→ 낱말책은 늘 되풀이말이야

→ 낱말책은 워낙 되풀이야

238쪽


두 사람의 실랑이는 계속됐다

→ 두 사람은 내내 실랑이였다

→ 두 사람은 또 실랑이질이다

34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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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높이뛰기 - 신지영 교수의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
신지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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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4.14.

다듬읽기 260


《언어의 높이뛰기》

 신지영

 인플로엔셜

 2021.9.1.



  우리나라는 기나긴 사슬살이에 끔찍한 잿더미일 뿐 아니라, 서슬퍼런 총칼수렁을 거쳐야 했지만, 이런 사슬과 잿더미와 총칼 사이를 뚫고 제법 잘사는 나라를 이루었다고 여깁니다. 무척 빠르게 일어선 나라로 손꼽습니다. 다만 ‘먹고살기(경제성장)’를 지나치게 꼭두에 놓은 탓에 ‘먹고살기’를 뺀 다른 모든 길은 뒷전이었고 팽개쳤으며 잊어버린 채 치달렸습니다. 무엇보다도 배움수렁(입시지옥)이 크나크고, 싸움불굿(전쟁)으로 마높(남북)이 으르렁거리는 담벼락이 높습니다.


  누구나 알듯 우리나라는 일본앞잡이를 하나도 쳐내지 못 하거나 않았습니다. 이 나라 모든 곳에 또아리를 튼 일본앞잡이는 그야말로 모든 곳에서 활개를 치면서 새롭게 돈·이름·힘을 거머쥐었습니다. 이제 글판(문학계)은 예전과 다르되 ‘앞잡이’가 없을 뿐 “앞잡이가 쓰던 말글”은 고스란합니다.


  《언어의 높이뛰기》는 우리가 아직 털지 않은 채 스스로 갇히는 ‘굴레말’과 ‘사슬말’을 짚습니다. 서로 아끼고 돌볼 줄 아는 말글이 아닌, 서로 미워하거나 깎거나 팽개치는 말글이 왜 불거지는지, 왜 우리는 스스로 우리말을 얕보고 깔보면서 내내 바깥말을 드높이는지 짚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을 얕보면서 바깥말을 드높이는 고름과 수렁”을 짚는 줄거리를 ‘우리말’이 아닌 ‘일본말씨·옮김말씨’로 풀어내고 맙니다.


  책이름인 “언어의 높이뛰기”는 그냥 일본말씨입니다. 글님은 이 대목을 알아채면서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 바로잡거나 가다듬거나 손질하면서 우리말을 익힐 수 있을까요? 흔히들 “갈수록 책을 안 읽는다”며 하소연을 하고, “요새 누가 종이사전을 사읽느냐”고 타박을 하지만, 말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부터 스스로 책을 널리 읽고 종이사전을 곁에 두면 됩니다.


  꽃사람(연예인)이라는 길도 ‘말’을 다루는 일입니다. 보임틀(방송)에 나오는 모든 사람도 ‘말’을 다루는 일입니다. 여러모로 보면 벼슬꾼(대통령·국회의원·공무원) 모두 ‘말’을 다루는 일입니다. 이들은 모두 ‘한국어능력시험’이 아니라, 우리말로 이야기를 풀어낸 알찬 책을 늘 곁에 두면서 읽을 노릇이고, 종이사전도 곁에 놓고서 꾸준히 말글을 새로 익힐 노릇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 내놓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틀린 곳이나 빠진 곳이나 엉뚱한 곳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틀리거나 빠지거나 엉뚱한 곳은 좀처럼 안 바뀝니다. 우리 스스로 말글을 잘 모르는 탓이 있고, 우리 스스로 말글을 즐겁고 아름답게 익히려는 마음이 모자라는 탓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만 탓할 수 없이, 우리 모두 나란히 “우리말을 너무 모르는데, 정작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너무 안 배우려”고 합니다.


  한글학회에서 낸 《우리말 큰사전》이 있고, 높녘(북녘)에서 낸 《조선말 대사전》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낱말책도 ‘네이버 사전’에 함께 담아야 할 텐데, 아직 국립국어원은 이런 데에 돈과 힘과 마음을 아예 못 쓰다시피 합니다. 또한, 낱말책은 너무 서둘러서 내면 안 되고, 적어도 쉰 해를 차근차근 추스르면서 천천히 낱말 하나하나 짚고서 풀어야 하지만, 우리는 그야말로 벼락에 콩을 볶아먹듯 지나치게 서둘렀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처음으로 돌아가서 바탕말(기본어휘)부터 뜻풀이를 제대로 펴는 길을 열 노릇입니다.


  우리나라 낱말책뿐 아니라, 말글을 다루는 사람들 거의 모두, ‘겹말(중복표현)’에 갇히고, ‘돌림풀이(순환정의)’에 얽매입니다. 그냥그냥 익숙하게 길든 말글이기에 그냥 써도 되지 않습니다. 어린이와 푸름이를 바라보면서 오늘부터 다같이 우리말을 새롭게 배울 노릇입니다. 낱말풀이나 낱말짓기는 꾼(전문가)이 아닌, “살림하는 수수한 사람”이 고을과 마을마다 새롭게 할 일이기도 합니다. 새말을 들일 적에는 언제나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물어보면서 가다듬을 일이지요.


  말글을 다루고 가다듬고 다독이는 길을 제대로 열 적에 비로소 말이 말답게 살아나고 글을 글빛으로 일구는 살림을 다함께 누리리라 봅니다. 높이뛰기를 해도 나쁘지는 않되, ‘함께걷기’나 ‘나란걷기’처럼 ‘어깨동무’를 할 적에 비로소 말글이 반짝일 만하다고 봅니다.


  말은 시골에서 태어나기에 들숲메바다를 품으면서 누구나 즐겁게 쓰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말이 아닌 글을 서울에서 벼락비처럼 쏟아내는 터라 그만 종잡을 수 없고 걷잡을 수 없도록 어지럽게 널뛴다고 느낍니다. 말부터 토닥이면서 글을 품을 적에 말글이 빛납니다. 말 한 마디를 아이곁에서 하고, 글 한 줄을 아이랑 손잡고 걷는 매무새로 쓴다면, 바로 우리 스스로 이처럼 말글살림을 짓는다면, 오늘부터 이 나라는 아름길로 접어들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ㅍㄹㄴ


《언어의 높이뛰기》(신지영, 인플로엔셜, 2021)


원고가 필자의 손에서 일단 떠나면

→ 글쓴이 손에서 글이 떠나면

→ 글쓴이가 글을 떠나보내면

5쪽


아내의 등만 보아야 하는 긴 시간을 잘 견딤은 물론

→ 곁님 등만 보아야 하는 긴 나날을 잘 견디면서

→ 짝꿍 등만 보아야 하는 긴날을 잘 견딜 뿐 아니라

9쪽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 처음 만나는 분하고 말을 섞으며

15쪽


나의 오해는 전적으로 당신의 탓

→ 내 잘못은 모두 그대 탓

→ 내가 잘못 들어도 네 탓

16쪽


말이든 글이든 언어는 상대를 전제한 행위다

→ 말이든 글이든 서로 있기에 주고받는다

→ 말이든 글이든 서로 있어야 나눈다

21쪽


역지사지의 원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역지사지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경험적으로 너무나도 잘 안다

→ 거울보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거울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무척 잘 안다

→ 거꾸로보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거꾸로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들 흔히 겪는다

22쪽


10월 20일 방송이 내게 그런 깨달음을 주었다

→ 10월 20일 이야기로 깨달았다

→ 10월 20일 얘기로 깨닫기도 했다

29쪽


펀딩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 그림을 에코백에 담기 위해

→ 도르리 뜻을 잘 살릴 수 있는 그림을 천바구니에 담고자

→ 품앗이를 잘 살릴 수 있는 그림을 천바구니에 담으려고

29쪽


일견 초면인 관계에서 나이를 묻는 것이 한국어 사용자들에게 매우 익숙하고 허용적인 것처럼 보인다

→ 우리는 낯선 사이에서 나이를 물어도 된다고 익숙하게 여기는 듯하다

→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도 나이를 물을 수 있다고 익숙하게 여긴다

33쪽


더 큰 기득권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 더 크게 힘을 쥐기에 

→ 더 크게 쥐락펴락하기에

37쪽


한국어 높임법에 신분의 차별은 없어졌다. 하지만 이를 대신하는 연령의 차별은 건재하다

→ 우리 높임말은 위아래로 긋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직 나이로 단단히 긋는다

→ 우리는 높임말로 높낮이를 안 가른다. 그러나 아직 나이로 굳게 가른다

41쪽


한국어로 적절한 말하기를 하기 위해서는

→ 우리말을 알맞게 하려면

→ 우리가 알맞게 말을 하려면

47쪽


숨겨야 할 결함이 가득한 것이고

→ 숨겨야 할 흉이 가득하고

→ 숨겨야 할 멍울이 가득하고

61쪽


주류의 관점을 담은 언어 표현은 학습을 통해 굳어지면서 가장 일상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 큰줄기 눈길을 담은 말씨를 자꾸 듣기에 차츰 퍼져서 흔히 쓰고 만다

→ 우두머리 눈빛을 담은 말결을 자꾸 들으면서 삶으로 자리잡는다

64쪽


이런 질문에 대해 다음의 질문을 던져 보자

→ 이렇게 물으면 다음처럼 되물어 보자

→ 이렇게 본다면 다음처럼 되묻자

70쪽


병원에서 많이 듣게 되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자

→ 돌봄터에서 자주 듣는 말씨를 알아보자

→ 돌봄집에서 으레 듣는 말결을 알아보자

81쪽


문법을 훼손해도 좋으니 공손성을 유지하라고 요구한 사람은 누구인가

→ 말틀을 밟아도 되니 납작하게 굴라고 밀어대는 사람은 누구인가

→ 누가 말을 망가뜨려도 되니 다소곳이 굴라고 바라는가

87쪽


일본으로부터 수입되어 사용되었던 때와 엄청난 온도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일본에서 들여와 쓰던 때와 엄청나게 다른 줄 알 수 있다

→ 일본한테서 받아들여 쓰던 때와 엄청나게 틈이 있다

104쪽


우리는 우리가 지닌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 우리는 틀에 박힌 우리 마음부터 벗어나야 한다

→ 우리는 스스로 갇힌 틀부터 벗어나야 한다

→ 우리는 스스로 묶은 굴레부터 벗어나야 한다

180쪽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 것은 말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말에 대한 태도였던 것이다

→ 뭔가 안 맞는다고 여기는 까닭은 말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말을 보는 눈 탓이다

→ 뭔가 낯설다고 느끼는데 말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말을 보는 눈길 탓이다

235쪽


외래어는 새로움과 함께 낯설고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 들온말은 새롭고 낯설고 어렵다고 느낀다

→ 바깥말은 새롭지만 낯설고 어렵기도 하다

237쪽


남들이 만든 말을 그냥 가져다 쓰면 당장은 쉬울 수 있다

→ 남이 지은 말을 그냥 쓰면 한동안 쉬울 수 있다

→ 남이 지은 말을 그냥 쓰면 처음은 쉬울 수 있다

242쪽


그렇게 되면 그 말에 종속되어 자신의 말을 만들 수 없게 된다

→ 그러면 그 말에 얽매여 우리말을 지을 수 없다

→ 그러면 그 말에 갇혀 우리 삶말을 못 짓는다

242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사전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내가 사랑한 사진책》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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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차 내가 좋아하는 것들 12
박지혜 지음 / 스토리닷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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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4.7.

다듬읽기 172


《내가 좋아하는 것들, 차》

 박지혜

 스토리닷

 2023.12.31.



  손수 쓴 글을 받으면 즐겁습니다. 저도 누구한테나 손수 종이에 글을 적어서 띄웁니다. 손수 지은 밥을 누리면 따뜻합니다. 언제나 집에서 아이들하고 함께 밥살림을 짓는데 으레 혼자 도맡곤 하지만 신나게 밥하고 치우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전라도 시골살이를 하기 앞서는 잎물을 거의 안 마시다시피 했으나, 우리 보금자리와 뒤꼍을 누리면서 우리집 여러 나무가 베푸는 잎과 꽃과 열매로 잎물을 누리곤 합니다. 첫봄에는 바람에 떨어진 매꽃을 주워서 볕을 먹이고, 이윽고 피어나는 모과꽃을 훑어서 볕을 먹이고, 곧이어 돋는 뽕꽃을 훑어서 볕을 먹이고, 틈틈이 쑥을 훑어서 볕을 먹입니다. 어느 꽃이며 잎이든 모두 꽃물에 잎물을 낼 수 있습니다. 아주 쉬워요. 보름쯤 볕을 먹이고서 유리그릇에 꾹 재우면 한 해를 너끈히 누립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차》를 읽었습니다. 처음부터 잎물에 사로잡히지는 않았다지만, 어느새 잎물에 사로잡힌 삶길을 차곡차곡 들려주는 꾸러미입니다. 어느 잎물이건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하늘로 가지를 뻗어서 내놓는 잎사귀로 스미는 해바람비와 이슬과 별빛을 머금습니다. 여기에 사람손을 탄 마음이 스며요. 뚝딱터(공장)에서 찍어내는 꽃물이나 잎물이라면 ‘고르게 똑같은’ 맛과 내음이라면, 사람이 손으로 돌보고 여민 꽃물이나 잎물이라면 ‘언제나 다르면서 새로운’ 맛과 내음입니다. 잎물을 누리려고 여러 그릇이나 살림을 챙기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손수 여러 잎과 꽃을 스스로 훑고 볕을 먹여 볼 만하지 싶어요. 불기운으로 덖으면 불맛이 깃들지만, 그저 햇볕을 먹이면서 바람을 쏘이면 해바람맛이 스밉니다. 시골에서만 해볼 만한 ‘잎물살림’이지 않아요. 서울 한복판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내어 손품을 들이면 될 뿐입니다.


ㅍㄹㄴ


《내가 좋아하는 것들, 차》(박지혜, 스토리닷, 2023)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며

→ 여러 나이인 사람을 만나며

→ 다 다른 사람을 만나며

19쪽


치안도 좋지 않아 항상 퇴근 후 집에서 요리하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

→ 마을도 좋지 않아서 집에 돌아오면 오직 밥하기에 즐겼다

→ 나라도 좋지 않아서 집에 오면 그냥 밥짓기에 재미를 붙였다

25쪽


예쁜 틴케이스에 든

→ 예쁜 네모그릇에 든

→ 예쁜 집에 든

→ 예쁜 칸에 든

→ 예쁜 주머니에 든

26쪽


영국에 애프너눈 티타임이 있다면

→ 영국에 낮짬이 있다면

→ 영국에 샛짬이 있다면

26쪽


누군가는 차를 우리는 과정이 정신 수양이나 힐링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 누구는 잎물을 우릴 적에 마음을 벼리거나 쉬기 때문이라고 한다

→ 어느 분은 잎물을 우리며 마음을 닦거나 숨돌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31쪽


자연스레 차우(차 친구)들이 생긴다

→ 저절로 잎벗이 생긴다

→ 어느새 잎지기를 사귄다

32쪽


유독 혼자만의 시간이 붕 떠 있는 시간처럼 느껴졌단다

→ 혼자 있을 때 남달리 붕뜬다고 느꼈단다

→ 혼자 있으면 더욱 붕뜬다고 느꼈단다

34쪽


우주처럼 깊은 과거의 역사가 존재한다

→ 온누리처럼 깊고 오래되었다

→ 별누리처럼 깊으며 오래 흘렀다

37쪽


차나무에서 나는 찻잎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안 지

→ 잎물나무에서 나는 잎으로 우리는 줄 안 지

→ 잎꽃나무에서 나는 잎새로 내리는 줄 안 지

38쪽


어떻게 제다(가공)했는지에 따라

→ 어떻게 다스렸는지에 따라

→ 어떻게 마련했는지에 따라

→ 어떻게 손질했는지에 따라

38쪽


내가 욕심을 내는 것이 바로 다구이다

→ 나는 잎살림을 차리고 싶다

→ 나는 잎물살림을 늘리고 싶다

→ 나는 잎꽃살림을 갖추고 싶다

44쪽


차 문화 르네상스의 시작처럼 보였다

→ 잎물살림 꽃바람이 부는 듯 보였다

→ 잎꽃살림 빛길을 여는 듯 보였다

83쪽


차가 맛있어지기 위해서는 일교차가 커야 한다

→ 잎맛이 깊으려면 밤낮이 크게 달라야 한다

→ 잎물맛이 나려면 하루날씨가 확 달라야 한다

86쪽


습기가 없는 바람이 불어온다

→ 바람이 메마르다

→ 바람이 까슬하다

97쪽


어린 나이에 비해 꽤 이직이 잦았다

→ 어린 나이에 꽤 자주 옮겼다

→ 나이가 어려도 꽤 자주 바꿨다

114쪽


야외 찻자리 청춘다회(靑春茶會)를 열다

→ 들에서 푸른잎뜰을 열다

→ 마당에서 풀빛잎꽃을 열다

→ 뜰에서 푸릇잎길을 열다

132쪽


촉촉한 엽저를 만지는 느낌도 좋거니와

→ 촉촉한 잎자루를 만져도 즐겁거니와

→ 촉촉한 잎꼭지를 만지면 싱그럽거니와

145쪽


그녀만을 위한 일일 찻집을 열었다

→ 혼자 누리는 하루 잎물집을 연다

→ 호젓이 즐기는 오늘 쉼터를 연다

166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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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과 닭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소설집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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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3.15.

다듬읽기 259


《달걀과 닭》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배수아 옮김

 봄날의책

 2019.6.24.



  새를 비롯한 숨붙이를 돌아보면, 으레 수컷이 끝없이 맑고 밝게 노래하면서 암컷을 바랍니다. 암컷도 나란히 노래하지만,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새노래는 거의 다 수컷가락입니다. 저(수컷)을 바라보아 주기를 바라는 님(암컷)을 부르려고 목청을 가다듬어서 노래를 펴는 그(수컷)입니다. 노랫가락에 담긴 뜻과 마음이 애틋하구나 싶을 무렵, 님(암컷)은 그(수컷)한테 다가와서 묻지요. “그래, 네 노래는 잘 들었어. 그런데 집은?” 이 말(새소리)을 들은 그(수컷)는 “우리집! 그럼, 네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이렇게 둥지를 틀었지!” 하고 외칩니다. 님(암컷)은 그(수컷)가 틀어놓은 둥지를 요모조모 보면서 “쯧쯧, 안 되겠는걸? 이대로는 모자라!” 하면서 그(수컷)가 어설피 엮은 둥지를 고치고 다듬으며 가꿉니다.


  긴긴 나날을 거친 사람살이는 어떠한가 하고 돌아봅니다. 사람도 숫사람이 먼저 말을 트고서 암사람을 불렀을 만하지 싶습니다. 암사람은 언제나 마음과 마음을 잇는 눈빛으로 이야기를 펼 줄 알았다면, 숫사람은 마음과 마음으로는 좀처럼 이야기를 알아차리지 못 하면서 따로 목청을 돋워서 ‘말소리’를 지었지 싶어요. 이때에 암사람이 숫사람한테 다가와서 첫말을 터뜨리지요. “그래, 그래, 네 말 잘 들었어. 그런데 좀 엉성하지 않니?” 이윽고 암사람은 숫사람한테서 어떤 마음이 어설픈지 차근차근 짚고 알려주면서 ‘이야기’를 소리로 옮기는 살림을 짓습니다.


  그런데 암수가 서로 맺던 사랑이라는 길을 잊어버린 웃사내(가부장권력자)는 그들끼리 주고받는 벼슬자리를 마련합니다. 이 벼슬자리는 ‘말’이 아닌 ‘글’을 마치 굴레처럼 씌워요. 꽤 오래도록 ‘글’은 ‘수글(숫놈끼리 차지하는 힘글)’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글 = 한문’이었고, 일본이 쳐들어온 뒤에는 ‘수글 = 한문 + 일본말’이었습니다. 일본이 물러간 뒤에는 이제 이 굴레를 털어낼 만했으나, 웃사내는 ‘수글’을 놓기 싫었어요.


  지난날 암사람은 글을 구경하거나 얼씬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드문드문 착한 숫사람은 곁님이 글을 읽고 새기기를 바랐어요. 아무래도 숫사람은 스스로 말을 지을 줄 모르고, 말씨(말씨앗)·글씨(글씨앗)를 못 낳았거든요. 그리고 딸을 낳으면서 딸한테 글을 가르치고 물려주는 사내(아버지)가 하나둘 나타납니다. 이윽고 누구나(암수 모두) 말빛과 글빛을 살려야 하는 줄 알아보는 글순이가 나타나고, 어느새 온누리 글밭(문학계)은 차츰차츰 깨어납니다.


  다만, 이러한 발자취가 있더라도, 오늘날 숱한 글순이(여성작가)는 ‘수글’을 붙잡으려고 합니다. 웃사내가 웃사내질을 하면서 뭇사람을 억누르던 ‘수글(한문 + 일본말)’인데, 이 수글은 ‘한문 + 일본말 + 옮김말씨(번역체)’로 더욱 볼썽사납게 뒤틀립니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말씨를 알아보고 눈여겨보고 귀담아듣는 마음을 열까요?


  《달걀과 닭》을 읽는 내내 ‘수글잔치’를 느낍니다. 설마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님이 이녁 ‘엄마말’을 이런 수글잔치로 썼을는지 아리송합니다. 한글로 옮길 적에는 ‘무늬한글’인 ‘수글’이 아닌, ‘살림글·삶글·숲글’로 가다듬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수글’은 예나 이제나 굴레입니다. 살림글이요 삶글이요 숲글일 적에는 그저 수수하게 ‘글’입니다.


#O Ovo e a Galinha 1960년


ㅍㄹㄴ


《달걀과 닭》(클라리시 리스펙토르/배수아 옮김, 봄날의책, 2019)


나는 단 한 번의 시선으로 부엌 탁자의 달걀을 응시한다

→ 나는 바로 부엌 자리맡 달걀을 본다

→ 나는 곧장 부엌에서 달걀을 본다

8쪽


달걀은 외재화外在化하는 사물이다

→ 달걀은 밖에 있다

→ 달걀은 바깥에 있다

9쪽


닭의 몸에 관해서 말하자면, 닭의 몸은 달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최대의 증거가 된다

→ 닭몸을 말하자면, 닭몸은 달걀이 있지 않다는 뜻이다

→ 닭이라는 몸은, 달걀이 있지 않은 줄 보여준다

12쪽


정확히 바로 이 순간부터, 하나의 달걀은 존재하지 않는다

→ 바로 이때부터, 달걀 하나는 있지 않다

→ 바로 여기부터, 달걀이란 없다

16쪽


그리고 나를 비밀 안에서 웃게 만든다

→ 그리고 나는 슬그머니 웃는다

→ 그리고 나는 넌지시 웃는다

→ 그리고 나는 몰래 웃는다

19쪽


구불구불한 길 위에서 그녀는 여자의 운명으로 떨어졌고

→ 그이는 구불구불한 길을 가시내라는 삶으로 걷고

→ 구불구불한 길을 순이로서 살아가고

25쪽


그러나 삶은 그녀를 벌벌 떨게 만들었다

→ 그러나 사는 내내 벌벌 떤다

→ 그러나 삶이란 늘 두렵다

36쪽


가정부가 들어오자, 도전적으로 성급하게 지시했다

→ 집일꾼이 들어오자, 서둘러 들이치듯 말한다 

→ 부엌지기가 들어오자, 싸울듯이 얼른 시킨다

55쪽


기분이 상하고, 승리감에 들떠서, 나는 반항적으로 대꾸했다

→ 못마땅하고, 우쭐거리면서, 까불며 대꾸했다

→ 싫고, 으쓱거리면서, 덤비듯 대꾸했다

96쪽


그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 걸음은 차츰 느려졌고

→ 그는 나를 쳐다본다. 나는 차츰 느리게 걷고

→ 그는 나를 본다. 나는 어느새 느릿느릿 걷고

107쪽


수태고지의 성녀처럼, 바로 그렇다. 그는 내가 최소한 자신을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을 허용했고, 그것을 통해 나에게 고지한 것이다

→ 아기를 알린 꽃님처럼, 그렇다. 그는 나를 보며 웃는다. 웃으며 말한다

→ 아기를 속삭인 님처럼, 그렇다. 그는 나랑 웃음짓는다. 웃음으로 얘기한다

120쪽


결과적으로 끊임없이 보호를 해줘야 해요. 쓰다듬는 것도 정말 위험하구요

→ 그래서 내내 돌봐줘야 해요. 쓰다듬어도 안 되구요

→ 그러니까 늘 보살펴야 해요. 쓰다듬다가 다치구요

186쪽


때때로 그는 아내에게 굴욕을 주기 위해서, 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 아내가 창피하다는데도, 그사람은 곁님이 옷을 갈아입는 곳에 곧잘 들어갔다

→ 아내가 부끄러워하는데도, 그이는 곁님이 옷을 갈아입을 적에 불쑥 들어갔다

239쪽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한 명의 인간이다

→ 그렇지만 나는 그대로 한 사람이다

→ 그렇지만 나는 늘 사람이다

266쪽


나는 동정녀의 영혼을 가졌으며, 그래서 보호가 필요하다

→ 나는 숫색시 넋이며, 누가 돌봐야 한다

→ 나는 숫몸인 넋이며, 누가 지켜야 한다

341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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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 조급하고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마음 처방전, 100만 부 기념 전면 개정판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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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3.14.

다듬읽기 258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와타나베 준이치

 정세영 옮김

 다산초당

 2018.4.10.



  ‘둔감(鈍感)’은 ‘둔 + 감’이고, ‘鈍’은 ‘무디다’를 뜻합니다. ‘무디다’는 ‘무뚝뚝·무겁다·무덤덤’으로 잇습니다. ‘뭉툭’으로도 나아가고요. 이다음으로는 ‘뭉떵·몽땅’으로 닿고, ‘뭉텅이·뭉치’에 ‘뭉치다·뭉개다’로 다다르기도 합니다. ‘무·모’로 잇는 결은 ‘몸·뭇·물’로 만나지요. 누구나 무엇이든 느끼게 마련이되, 지나치게 얽매이기보다는 물처럼 흘려보내면서 스스로 흐를 줄 안다면 몸부터 차분히 다스리고 마음을 가만히 다독일 만합니다. 몽땅 느끼고 누리되 모두 내보낸달까요. 마시는 바람을 고스란히 내쉬듯, 나날이 마주하는 모든 일을 스스럼없이 맞아들이고서 기꺼이 내려놓는 셈입니다. 이를테면, 돈을 움켜쥐기에 더 넉넉하지 않아요. 이름을 거머쥐기에 더 높지 않아요. 힘으로 휩쓸기에 더 즐겁지 않습니다. 이 같은 삶결을 헤아리면 누구나 알맞게 하루를 지어요.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는 우리 스스로 지나치게 붙잡는 굴레를 여러모로 짚는 듯싶지만, 어쩐지 알맹이에서는 좀 비껴간 듯합니다. “너무 매이지 말자”는 목소리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왜’ 마주하는지 바라보지 않거나 들여다보지 않고서야 “안 매일” 수 없어요. 언제나 모든 이 삶이 ‘무엇’인지 차분히 보고서 ‘왜’ 겪고서 다시 ‘무엇’을 배우는지 살핀다면, 걱정근심이란 가볍게 털 수 있어요. 일본에서는 ‘둔감력’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이라는데, “무딘 힘”이나 “무뚝뚝한 힘”으로는 삶을 보내지 못 합니다. “뭇는 기운”과 “물빛”으로 스스로 돌볼 수 있으면 이 삶이 느긋할 만합니다.


ㅍㄹㄴ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와타나베 준이치/정세영 옮김, 다산초당, 2018)


만일 누군가가 자신을 둔하다고 말한다면 대부분 불같이 화를 내지 않을까요

→ 누가 나를 굼뜨다고 말한다면 거의 부아나지 않을까요

→ 누가 나를 느리다고 한다면 으레 불나지 않을까요

17쪽


부정적인 뜻으로 받아들여지곤 합니다

→ 나쁜뜻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 싫어하곤 합니다

17쪽


K는 회사 안에서 매우 평범한 편에 속합니다

→ ㄱ은 일터에서 매우 수수합니다

→ ㄱ은 일터에서 튀지 않습니다

19쪽


원고가 그대로 반송되기도 합니다

→ 글이 그대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24쪽


당시 우리 같은 무명작가에게 편집자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 그때 우리 같은 새내기한테 엮는이가 먼저 찾아오는 일은

→ 그즈음 우리 같은 병아리한테 엮는이가 먼저 묻는 일은

25쪽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유지했던 게 분명합니다

→ 피가 부드럽게 흘렀구나 싶습니다

→ 피가 잘 흐른 듯합니다

43쪽


조금만 혼나도 세상이 무너진 듯 충격을 받는 사람이

→ 조금만 꾸중해도 하늘이 무너진 듯 놀라는 사람이

→ 조금만 다그쳐도 나라가 무너진 듯 흔들리는 사람이

51쪽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즐길 때였습니다

→ 이야기를 하며 거닐 때였습니다

→ 이야기하며 걸을 때였습니다

69쪽


물론 사이비 종교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 다만 거짓절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면 얄궂습니다

→ 다만 속임절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면 걱정스럽습니다

95쪽


요즘 사람들의 저향력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못 견디는지

→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못 배기는지

113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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