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꽃 / 숲노래 우리말 2023.12.26.
나는 말꽃이다 149 시간
언제부터 일본스러운 한자말 ‘시간’을 썼나 하고 돌아보면 꽤 어릴 적입니다. 어머니한테 여쭈지요. “어머니, ‘시간’이 뭐예요?” 왜냐하면 어머니가 곧잘 “시간 없어. 서둘러!” 하고 말씀하셨거든요. “얘가. 그럴 틈 없어.” 하고 대꾸하시면 ‘아하, ‘틈’이라는 뜻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때’를 나타내고, ‘적’도 나타내고, ‘동안·나절’이나 ‘겨를·말미’나 ‘사이·새·짬·자리’나 ‘무렵·즈음·쯤’이나 ‘언저리·둘레·앞뒤’도 나타내요. ‘오늘·날’이나 ‘하루·이제·삶’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둘레 어른들이 쓰는 ‘시간’이란 한자말은 퍽 어렴풋했습니다. 우리는 이 한자말이 없이 오래오래 이야기를 펴고 생각을 나누고 살림을 지은 터라, 하나하나 짚자면 숱한 자리가 떠오르고, 온갖 나날을 열 만하더군요. 다만, 한자말 ‘시간’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그저 이 한자말을 쓰는 사이에 우리 삶결을 고루고루 담아내던 갖가지 말씨를 잊다가 잃어버릴 뿐입니다. 고작 하루쯤이 아니고, 조그마한 틈새가 아니에요. 모든 말은 스스로 쓰기에 살아나면서 빛나고, 어느 말이건 스스로 안 쓰기에 스러지면서 우리 곁을 떠납니다. 이제는 스스로 짬을 내면서 오늘을 새롭게 밝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