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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침묵의 봄
그녀가 쓴 《침묵의 봄 silent spring》은 감수성 깊은 문학적 수사를 통해 살충제와 농약 등의 피해를 통렬히 경고한 책으로 환경운동의 시발점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책이다
《달렌 스틸/김형근 옮김-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양문,2008) 53쪽
침묵(沈默)
1. 아무 말도 없이 잠잠히 있음
2. 정적(靜寂)이 흐름
정적(靜寂) : 고요하여 괴괴함
레이첼 카슨 님은 1962년에 벌써 “입을 다문 채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봄” 이야기를 책으로 남겼습니다. 이무렵 아직 한국에는 “조용한 봄”이 없었습니다. 얼어붙던 냇물이 와지끈 소리를 내면서 녹고 풀리기 마련이었습니다. 눈이 녹는 소리도, 눈이 펑펑 쏟아지는 소리도 또렷하게 찾아왔습니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맑고 밝게 사람들 몸과 마음으로 퍼졌습니다. 그무렵에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봄이나 가을이란 없었습니다. 제비가 아직 서울에도 찾아가던 1950∼60년대이고, 박쥐도 함께 살며, 개구리가 노래하던 한국이었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조용한 봄”이나 “고요한 봄”이 찾아왔다고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시끌벅적한 봄이나 왁자지껄한 봄을 맞이했다고 할 만합니다.
조용한 봄
고요한 봄
경제성장율을 따지고 국민소득을 헤아리는 오늘날에는 새나 개구리나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문화와 예술이 흐드러진다는 오늘날에는 냇물이나 바람이나 구름이 들려주는 소리에는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조용한 봄”이거나 “고요한 봄”입니다. 봄을 맞이해서 봄노래를 부르거나 봄잔치를 즐기겠노라 외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봄꽃마실을 다니더라도 봄노래잔치를 새랑 개구리랑 풀벌레하고 누리려는 사람을 만나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물도 사다가 마시고, 옷은 사다가 입으며, 밥도 사다가 먹습니다. 집도 돈으로 사서 잠을 잡니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아주 오랫동안 있으며, 삶을 손수 짓는 길하고는 자꾸 멀어집니다. 바야흐로 “말 없는 봄”이요 “노래 없는 봄”이자 “소리 없는 봄”입니다.
소리 없는 봄
소리 죽은 봄
소리가 사라진 봄
소리가 잠든 봄
손이 아닌 돈이 빨래를 합니다. 손이 아닌 돈이 밥을 합니다. 발이 아닌 돈이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몸이 아닌 돈이 가방을 나르고 짐을 나릅니다.
소리가 없고, 소리가 죽으며, 소리가 사라집니다. 노래가 없고, 노래가 죽으며, 노래가 사라져요. 노랫소리가 잠들고, 노랫소리가 자취를 감추며, 노랫소리가 가뭇없이 메마릅니다.
새벽나절 이슬이나 서리를 보면서 하루를 여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침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별자리 움직임을 가늠하면서 철을 헤아리거나 날씨를 느끼던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봄소리를 잊고 여름소리를 버리고 가을소리를 멀리하며 겨울소리를 잃습니다. 찻소리를 얻고 기곗소리를 듣습니다. 전화기 울리는 소리가 가득하며, 광고노래가 퍼지는 소리가 넘실거립니다.
죽은 봄
싸늘한 봄
깨어나지 않는 봄
사라진 봄
자취를 감춘 봄
1962년에 미국에서 처음 나온 《침묵의 봄》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1970년대에 ‘탐구당 손바닥책’으로 한 번 옮겨졌으나 거의 안 읽혔습니다. 이러다가 1990년대 첫무렵에 다시 한 번 나왔는데, 이때에도 안 읽혔습니다. 비로소 2000년대로 접어들어서 새로운 옮김판이 나오니 그제서야 조금 읽힙니다만, 깨작깨작입니다.
이웃 여러 나라에서는 《침묵의 봄》을 일찌감치 읽으면서 삶과 삶터를 새롭게 가꾸려는 몸짓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책을 읽어도 삶과 삶터를 새롭게 다스리려는 몸짓이 좀처럼 안 일어납니다. ‘침묵(沈默)’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일까요? 책이름에 붙은 “침묵의 봄”에서 ‘침묵’은 ‘정적’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자말 ‘정적(靜寂)’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고요하여 괴괴함”을 뜻한다고 하는데, ‘괴괴하다’라는 한국말은 “쓸쓸한 느낌이 들 만큼 아주 고요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사전 낱말풀이는 엉터리입니다. ‘괴괴하다 = 아주 고요하다’라는데, “고요하여 괴괴함”이라는 낱말풀이라면 “고요하여 아주 고요하다”라는 소리가 되니, 그야말로 엉터리예요.
아무튼, ‘정적’이라는 한자말은 ‘고요하다’를 뜻합니다. 그리고, ‘침묵’이라는 한자말도 한국말로 옮기면 ‘고요’입니다.
그러면, ‘고요·고요하다’는 어떤 모습을 가리칼까요? 소리도 몸짓도 없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으며 나타나지 않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숨결이 없고, 힘차게 움직이는 목숨이 없으며, 싱그럽거나 맑은 바람조차 없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래, “입 다문 봄”입니다. 아니, “입 닥친 봄”입니다. “입이 꿰매어진 봄”입니다. “입을 잃은 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입을 다문 사람입니다. 아니, 입 닥치는 사람입니다. 아니, 입이 꿰매어진 사람입니다. 아니, 입을 잃은 사람입니다. 4341.11.2.해/4348.5.6.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책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