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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미니언 3무비 컬렉션 (3disc) - 미니언즈 + 슈퍼배드 + 슈퍼배드 2
크리스 리노드 외 감독, 스티브 카렐 외 목소리 / 유니버설픽쳐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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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언즈

Minions, 2015



  아이들하고 함께 볼 만한 영화를 찾다가 〈미니언즈〉를 본다. 아이들한테 보여주기 앞서 혼자 먼저 본다. 두 아이한테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자장노래를 불러서 재운 뒤 조용히 본다. ‘미니언즈’라고 하는 조그맣고 노란 아이들은 괴물일 수 있고 다른 생명체일 수 있으며 지구별 이웃일 수 있다. 노란 손가락이랄는지, 바나나랄는지, 아무튼 이 아이들은 귀엽게 바라보면 귀엽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 만화영화 〈미니언즈〉에 나오는 ‘미니언’은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른다. 아니, 스스로 생각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는다. 재미있거나 신나게 놀기를 좋아하지만, 어떤 바보스럽거나 엉뚱한 악당 우두머리를 섬기지 않고서는 ‘사는 재미’나 ‘사는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한 시간 반 즈음 흐르는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꼭 하나이다. 왜 이런 만화영화를 만들어서 아이들한테 보여주려고 하나? 구태여 이런 만화영화를 아이들한테 보여주어서 무슨 재미나 어떤 이야기를 나눌 만할까?


  생각이 없이 살아가는 오늘날 사람들을 넌지시 비꼰다고 할 만한 영화인가? 생각이 없이 사회 틀에 맞추어 길드는 오늘날 사람들을 우스꽝스레 보여준다고 할 만한 영화인가?


  〈미니언즈〉는 꼭 한 번 혼자서 보고 난 뒤, 아이들한테는 안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런 만화영화 아니고도 볼 만한 만화영화는 많다. 우리 집 아이들은 〈미래소년 코난〉을 벌써 대여섯 해째 질리지도 따분해 하지도 않으면서 즐겁게 보고 또 본다. 만화영화 〈미니언즈〉에는 ‘줄거리’는 있으나 ‘이야기’는 없다. 〈미니언즈〉라고 하는 영화에는 ‘캐릭터’는 있으나 ‘사랑’이나 ‘마음’이나 ‘생각’은 없다. 4348.10.27.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영화생각/영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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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 일반판 (3disc)
봉준호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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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Snowpiercer, 2013



  적잖은 사람이 영화 〈설국열차〉를 보았다 하고, 이 영화가 좋았다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안 본(보았던)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하나였다). 먼저, 시골에는 극장이 없다. 그러니, 시골사람은 극장에 갈 수 없고, 극장에 갈 일도 없으며, 극장에 갈 일조차 없다. 시골에는 극장보다 훨씬 재미난 쉼터가 많다. 이를테면 바닷가라든지 골짜기라든지 마을 빨래터라든지 ……. 그러면, 〈설국열차〉는 보았는가? 디브이디로 나오고 나서 보았다. 한국에서 거의 천만 사람 가까운 숫자가 이 영화를 보았다 하니, 나는 ‘한국사람 아닌 사람’으로도 손꼽을 만할 텐데, 얼마 앞서 본 〈인터스텔라〉를 뺀다면, ‘한국 역대 관객 순위’ 열 손가락 안팎에 드는 영화 가운데 내가 본 영화는 거의 없다. 〈괴물〉은 지난해에 비로소 보았고, 〈아바타〉는 지지난해쯤 본 듯하다. 〈디워〉는 극장에서 본 듯한데, 〈동막골〉도 지지난해쯤 보았지 싶다.


  그러면 이런저런 영화를 왜 안 보았거나 뒤늦게 보는가? 내 마음을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른 영화는 젖히고 〈설국열차〉를 2015년에 접어들어 본 느낌은 어떠한가? 따분하며, 덧없는 싸움질이 흐르고, 덧없는 싸움질조차 매우 어설프구나 싶다. 어린 가시내가 앞칸에서 어떤 사람들이 나올는지 미리 알아채는 모습이 곧잘 나오는데, 사람한테는 누구나 ‘셋째 눈(온눈, 제3의 눈)’이 있기 때문에, 이 눈을 뜬다면 얼마든지 알아챌 수 있다. 바퀴벌레 먹는 모습이 끔찍하기라도 하듯이 나오는데, 항생제와 농약과 비료로 절디전 곡식과 열매와 고기를 먹는 오늘날 사람들 밥버릇은 안 끔찍할는지 아리송하기도 하다.


  아무튼, 영화 〈설국열차〉는 만화책 《설국열차》를 바탕으로 찍었을 텐데, 만화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찬찬히 살리려는 몸짓이 없을 뿐더러, 그렇다고 영화에서만 남달리 보여줄 수 있는 숨결도 따로 도드라지지 않는다고, 아니 나타나지조차 않는다고 느낀다.


  다만, 영화 〈설국열차〉는 만화책 《설국열차》에서 가장 아쉽고 어설프다고 할 만한 대목을 영화감독이 눈치를 챈 듯, 이 대목을 맨 마지막에서 넌지시 보여준다.


  그렇다면, 만화책 《설국열차》에서 무엇이 가장 아쉽거나 어설픈가? 바로 ‘열차에 그대로 머물면 모두 죽는다’는 대목에서 아무도 벗어나려 하지 못하는 모습이 가장 아쉽고 어설프다. 만화를 그린 이한테는 이런 생각힘(상상력)이 없었구나 싶다. 왜냐하면, 끔찍한 전쟁무기 때문에 지구별이 꽁꽁 얼어붙었으면, ‘끔찍한 전쟁무기를 만든 생각과 힘과 슬기’를 ‘꽁꽁 얼어붙은 지구별이 다시 녹을 수 있도록 이끌 생각과 힘과 슬기’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이 이를 깨닫고 마지막 대목에서 이런 이야기를 보여주었는지, 아니면, 원작 만화와는 아무튼 다르게 꾸미고 싶어서 마지막 대목에서 이런 이야기를 끼워넣었는지 알 길은 없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두 아이가 살아남아서 ‘눈이 그치는 바깥누리’로 걸어서 나가는 모습을 그리지 않았으면, 나는 〈설국열차〉라는 영화를 한낱 덧없는 돈놀이로 흐르다가 그친 쓰레기 영화라고밖에 더 할 말이 없다. 4348.2.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영화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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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전쟁
사토 신스케 감독, 오카다 준이치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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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전쟁

圖書館戰爭, Library Wars, 2013



  책과 책방과 도서관을 이야기감으로 삼은 영화 〈도서관 전쟁〉을 보았다. 이 작품(만화와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그럴 만하다’ 싶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만할 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진작 이런 일이 있었다. 책 하나를 놓고 국가보안법 잣대를 들이밀면서 불태우는 짓이 얼마나 잦은가. 게다가 아직 이런 짓이 끝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스스로 ‘우익’이나 ‘보수’라고 밝히는 이들이 ‘책 불사르기’를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또한, 한국에서는 스스로 ‘좌익’이나 ‘보수’라고 밝히는 이들마저 ‘책 불사르기’를 아무렇지 않게 일삼는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책을 아무렇게나 마주한다.


  다시 말하자면, 평화를 지키겠다면서 군대를 만드는 사람은 평화를 지킬 뜻이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평화를 지키려면 평화가 평화가 되도록 하는 길을 가야 한다. 도서관을 지키려고 군대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러면, 군대가 있는 도서관은 무엇을 지키는가? 책을 지키는가, 책이라고 하는 껍데기를 지키는가, 책이 있는 도서관을 지키는가, 도서관이라고 하는 껍데기를 지키는가?


  책과 도서관은 지키더라도 숲을 지키지 못한다면 책과 도서관은 모두 사라진다. 최첨단 장비와 시설이 있기에 책과 도서관을 지킬 수 있지 않다. 숲이 있어야 책과 도서관을 지킬 수 있다. 지구별에 물과 바람과 햇볕이 없어도 책과 도서관이 남을 수 있을까? 아니지, 없다.


  우익이든 좌익이든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두 덧없다. 이들은 모두 숲 앞에서는 한 줌 재일 뿐이다. 어느 누구라도 밥을 먹으며, 물을 마시고, 바람으로 숨을 쉬면서, 볕을 쬐어야 목숨을 잇고 삶을 누린다. 전두환도 밥을 먹고 똥오줌을 눈다. 독재자 박정희와 이승만도 밥을 먹었으며 똥오줌을 누었다.


  영화 〈도서관 전쟁〉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 영화는 이야기감을 ‘책과 도서관’에서 따오기만 할 뿐, 막상 보여주려고 하는 이야기는 ‘전쟁과 폭력과 총질’이지 싶다. 그러니까, ‘새로운 총질 싸움’을 보여주려고 하는 영화라고 할까.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손에 연필과 호미를 쥐지, 총이나 칼을 들지 않는다. 책을 올바로 읽은 사람이라면, 시골로 가서 숲과 들을 가꾸지, 도시에서 최첨단시설에 온갖 전쟁무기를 갖추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 4347.10.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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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 새끼
유재영 외 감독, 오달수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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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운 오리 새끼
2012


  방위병으로 여섯 달을 머물다가 군대를 마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러 가지 까닭이 있었으니 여섯 달 만에 군대를 마칠 수 있었는데, 군대 안팎에서 이들은 여러모로 아픈 생채기가 남는다. 군대에 있는 여섯 달 동안에도 고단하고, 사회로 돌아온 뒤에도 고단하다. 왜 한국 사회는 아프거나 힘든 사람한테 더 아프거나 힘든 굴레를 들씌울까?

  노닥거리면서 지낼 만한 군대는 없지만, 노닥거리면서 지내는 아이들이 있다. 여섯 달 만에 군대에서 벗어난대서 노닥거리지 않는다. 가슴에 현역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서 노닥거리는 아이들이 참으로 많다. 이 아이들은 군대에 왜 왔을까. 노닥거리려면 차라리 군대에 안 오면 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노닥거리려고 군대에 오는 아이들이 있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이들이 하는 어떤 일에서는 ‘현역 딱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는 ‘군대에서 노닥거렸는지 안 노닥거렸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현역인지 아닌지’를 따질 뿐이다. ‘남들처럼 군대에서 여러 해 썩었다’는 티를 ‘숫자로 보여주’면 다 끝나는 듯이 여긴다. 정치도 문화도 경제도 교육도 모두 이렇다. ‘숫자’와 ‘졸업장’과 ‘자격증’만 볼 뿐이다. 속내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곽경택이라는 분이 찍은 영화 〈미운 오리 새끼〉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이 영화는 왜 찍었을까? 군대 속살을 보여주려는 영화인가? 폭력을 쓸 수밖에 없다는 핑계를 대려는 영화인가? 폭력을 무시무시하게 저질러 놓고 ‘미안하다’라든지 ‘어쩔 수 없었다’라 말하면 된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영화인가?

  군대에서고 어디에서고 폭력을 둘러댈 수 없다. 군대에서 어떻게 폭력을 안 쓰고 버티느냐 하고 물을는지 모르나, 참말 그 끔찍한 군대에서 손찌검이나 거친 말 없이 슬기롭게 지내는 사람이 꼭 있다. 참과 거짓 사이에서 참에는 등지고 거짓에 기대면서 휘두르는 폭력이다. 영화에 나오는 ‘여섯 달 방위’인 주인공 삶은 어떠한가? 이 아이는 얼마나 거짓스럽게 살아왔는가. 모든 것에 등을 지고, 모든 것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스스로 핑계만 내세우면서 살았는가. 아버지가 핑계이고, 주인공이 마음에 둔 여군 하사관을 다른 아이가 여관에 데리고 가는 모습을 보았으니 핑계인가. 행자라고 하는 만만한 ‘군대 죄수’가 핑계이고, 바보스러운 중대장이 핑계이니, 이 아이는 언제 어디에서나 마구 폭력을 휘둘러도 되는가?

  새끼 오리는 밉지 않다. 새끼 오리는 그저 새끼(아기)이고 오리이다. ‘미운’이라는 말은 남이 붙이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나한테 붙인다. 영화 〈미운 오리 새끼〉에는 군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그악스러운 일이 처음에는 찬찬히 흐르는 듯하지만, 어느새 줄거리가 엉뚱하게 흐른다.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군대는 앞으로도 이렇게 가야 하는가. 삶은 앞으로도 이렇게 종살이처럼 되어야 하는가. ‘소재’를 다루는 몫은 감독한테 있다. 4347.10.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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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 아웃케이스 없음
스파이크 존즈 감독, 호아킨 피닉스 외 출연, 스칼렛 요한슨 목소리 / 하은미디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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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Her, 2013



  스파이크 존스라는 분이 만든 영화 〈Her〉가 있다. 적잖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았다 하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촉촉하게 적셨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 영화에 마음이 끌리지 않아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다. 곁님이 〈Her〉와 〈루시〉를 놓고, 〈루시〉는 죽고 죽이는 끔찍한 모습이 너무 많이 나오니 〈Her〉를 보자고 해서 디브이디를 장만해서 보기로 한다. 나는 바깥일을 보느라 부산을 다녀와야 했는데, 이동안 곁님이 먼저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니 어떠했느냐고 물었는데, 나더러 굳이 보지 말라고 얘기한다. 이러면서 이 영화가 사람들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까닭과 왜 볼 만하지 않은가 하는 대목을 들려준다. 가만히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헤아려 본다. 오늘날 현대문명 한국 사회에서 ‘큰식구’를 이루며 사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하나, ‘다른 어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드물며,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았어도 아이와 조곤조곤 이야기꽃을 나누는 일이 참으로 드물다. 요즈음 어른은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 보내기만 하고, 요즈음 어른들은 ‘더 큰 어른’하고 따로 산다. 도시에서는 위층과 아래층과 옆집이 가까이 맞닿은 채 지내지만 정작 서로 만날 일이 매우 드물고, 만나더라도 깊이 말을 섞지 않는다. 참으로 외롭고 쓸쓸하게 바깥에서 돈을 벌거나 집에서 살림만 도맡는 얼거리로 갈린다. 이동안 저마다 무엇을 할까?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들여다보는 겨를은 참으로 길지만, 얼굴을 맞대고 한집 식구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조차 드물다. 다시 말하자면, 이제는 ‘집안’이라는 말조차 쓰기 어렵다. 남과 여, 아니면 여와 남, 둘이서 오롯이 죽거나 살거나 붙어서 기나긴 나날을 보내는 얼거리가 된다. 남과 여, 또는 여와 남은 저마다 어떻게 살면서 무엇을 바라볼까. 둘은 어떤 꿈을 키우면서 어떤 삶을 가꾸는가. 커다란 도시에 사람은 되게 많지만, ‘이웃’이나 ‘동무’뿐 아니라, ‘어버이’와 ‘아이’조차 제대로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갈가리 쪼개져서 따로따로 움직인다. 도시에서 저마다 제 일터를 지키는 부속품처럼 일을 하고 돈을 번다.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고, 마음을 달래거나 보듬을 ‘한집 식구’조차 없다. ‘그 사람’한테만 자꾸 마음이 갈밖에 없다. ‘그 사람’도 그 사람 나름대로 힘드니, 서로 힘든 일로 부딪히기 일쑤요, 서로 힘들어서 서로 감싸야 살가울 테지만, 서로 힘들어서 서로 부딪히다 보니, 처음에는 남과 여 아니면 여와 남으로 만났으나 이윽고 갈라선다. 외롭거나 쓸쓸한 몸과 마음은 더 외롭거나 쓸쓸하게 바뀐다. 가상공간이든 현실이든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까? 영화 〈Her〉를 보면 좀 나아질까? 영화 〈Her〉는 어떤 실마리를 보여줄까? 소재가 그저 소재로 끝나고 만 영화로구나 싶다. 4347.9.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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