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꾸지람



  나더러 ‘꾸지람(비판)’을 늘 한다고 여기는 분이 많다만, 나는 언제나 나를 스스로 꾸짖을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남을 못 꾸짖는다. 남한테는 그저 “왜?” 하고 물어볼 뿐이다. “왜 그 마음을 그 낱말을 골라서 그 얼거리로 짜서 들려주려 하느냐?” 하고 물어보기만 한다. 언뜻 보면 “그 마음은 그 낱말이 아니고서는 못 나타낸다”고 여기기 쉽지만, 우리가 말을 하는 뜻을 곰곰이 짚는다면 ‘말이란 마음을 나타내는 소리’로 그치지 않는다. 기쁘거나 슬플 적에 우리는 ‘기쁘다·슬프다’라 하지만, 중국과 일본은 중국말과 일본말로 다르게 나타내고, 영국과 미국은 영국말과 미국말로 다르게 나타낸다. 우리는 ‘나타내기’만 할 일이 아니라, “왜 나타내려 하느냐?”를 스스로 돌아보면서, “스스로 나타낸 마음을 스스로 풀려고 하느냐?”를 더 물어봐야지 싶다.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마음’을 그리는 소리이기는 하되, “마음을 눈여겨보면서 가꾸는 사람 스스로 그리는 소리”일 뿐이다.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겉으로 꾸미거나 치레하는 사람은 그저 꾸미거나 치레하는 시늉”이다. 이제 누구나 말을 글로 담아서 책을 묶을 수 있는 즐거운 나날이되, 넘치도록 숱한 사람들은 ‘말나래 책나래’라기보다는 ‘많이 팔아서 이름을 날리고 돈을 잔뜩 거머쥐고 힘을 뽐내려는 늪’으로 쉽게 치닫는다. 그러니까 ‘한글로 적었’기에 글(우리글)이지 않다. ‘무늬만 한글’이라면 ‘무늬글(시늉글)’이다. 옷을 갖춰입기에 사람이 바뀌지 않고, 까맣거나 커다랗거나 비싼 달구지를 몰아야 사람이 드높지 않다. ‘마음을 그리는 소리’인 말로 나부터 스스로 드러내면서, 나랑 마주하는 너를 바라보고 이야기로 잇고 일으키는 빛을 씨앗으로 심을 적에 비로소 ‘말하기·글쓰기’라고 본다.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말을 듣고서 말을 들려줄” 적에는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눈을 거쳐서 빛줄기가 흐른다. 글이나 책을 읽을 적에는, 몸이 옆에 없거나 이미 떠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서로 나란히 앉아서 두런두런 말을 나누면서 이야기로 잇는다. 이야기란, “‘좋은말’ 나누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며 ‘하루’를 살림하는 마음”을 주고받는 일일 테지. 책으로 마주하는 두 사람은 언제나 ‘오늘·하루’하고 ‘삶·살림’을 가만히 주고받으면서, 저마다 스스로 지필 새길을 곱씹을 테고. 이웃이 편 뜻을 읽기에, 이웃으로서 곰곰이 익히며 깜냥껏 일구는 마음을 글쓴이한테 들려주는 길이 ‘빗글(비평)’이라고 본다.


  나는 국이나 찌개를 안 짜게 끓인다. 우리집에 놀러와서 국이나 찌개를 한 그릇 받는 이웃님은 “뭐래? 왜 이렇게 싱거워? 이 집은 가난해서 소금도 못 쓰나?” 같은 핀잔을 한다. 더욱이 곁님과 살아오며, 또 두 아이를 낳아 함께 돌보며, 굵은 돌소금을 따로 먹기는 하지만, 밥살림은 되도록 심심하게 가눈다. 오늘(2026.4.28.) 곁님이 쑥미역국을 먹다가 “이제 슬슬 날이 더울 듯한데 국은 좀더 짜게 해야 할 텐데.” 하고 들려준다. 그래, 더위로 가는 길목이라면 조금은 짜게 해야지. 낮에 올린 쑥미역국을 저녁에 덥힐 적에 소금을 더해서 살짝 짠맛이 도는 국으로 바꾼다.


  우리는 스스로 꾸짖으면서 나아간다. 스스로 안 꾸짖으면 쳇바퀴로 맴돌다가 어느새 뒷걸음질이나 샛걸음으로 빠진다. 꾸짖는 말은 “널 나쁘게 본다”는 뜻이 아니라 “너랑 오래오래 함께 놀고 어울리면서 얘기하고 싶어”라는 뜻이라고 느낀다. 앞으로도 즐겁게 나아가고 싶기에 즐겁게 “나를 스스로 꾸짖으면서 네 매무새와 말씨를 놓고서 한마디 거들며 들려주”게 마련이다. 그래서 모든 글빗·빗글(비평)은 “어느 글과 책을 쓴 이를 꾸짖거나 호통하는 글”이 아니라 “빗질을 하듯 찬찬히 가다듬는 길을 보여주는 글”이라고 본다. 우리는 추킴글(주례사비평)이 아닌 글빗·빗글(비평)을 서로 즐겁게 주고받으면서 스스로 일으킬 때일 텐데 싶다. 2026.4.28.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책나래 책날글날



  1995해 ‘한봄 스물셋쨋날(4.23.)’에 ‘World Book Day·World Book and Copyright Day’라는 이름으로 잡는 날이 생겼다. 에스파냐 까딸루냐에서 “책을 사읽는 님한테 꽃 한 송이를 건네는” 잔치라는 ‘세인트 조지 날’이 있으면서, 1616해에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나란히 죽은 일을 기린다는 뜻이라지. 그무렵 나는 서울 이문동에서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했다. 새벽에는 새뜸을 나르고서, 낮부터 밤까지 짐바리(배달자전거)를 몰면서 서울 곳곳에 있는 작은책집 나들이로 하루를 보내었다.


  그때 짐바리로 돌리던 〈한겨레〉에도 ‘책날글날’이 이야기가 실리기는 했을 테고, 이날 저녁 서울 용산에 있는 헌책집 〈뿌리서점〉에서는 ‘책날글날’ 이야기로 북적북적했다. 책집지기 아저씨는 “어디 먼나라에서는 책을 사면 꽃을 한 송이 준다지? 허허. 그런데 우리는 여기(책집) 와서 책을 안 사도 커피를 한 잔씩 주는데. 허허.” 하고 말씀했다. 날마다 책집마실을 하시는 여러 책벌레 아재와 할배는 “유네스코에서 책날인지 뭔지 외치기 앞서, 먼저 〈뿌리서점〉에서는 날마다 ‘책날’을 했는데 말이지요.”라든지 “책을 얼마나 안 사고 안 읽으면 꽃까지 준다고 할까요?”라든지 “책을 사는 사람이 많으면 꽃이 남아나지 않겠는데?”라든지 “그런데 꽃은 누가 주지? 책집에서 주나? 출판사에서 주나? 지은이가 주나?” 같은 말이 나왔다.


  이런 말을 곁에서 한참 듣기만 하는데, 책집지기님이 불쑥 나한테 “여보게 최 선생, 자네도 한말씀 해보시지? 책은 뭐 늘 와서 보는데 오늘은 좀 그만 보고, 젊은이로서 책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해 보시구려.” 하면서 팔뚝을 잡아끈다. “네? 저도요. 음, 무엇보다도 책을 오지게 안 읽으니까 굳이 ‘책날글날’을 삼는다고 느껴요. 사람들이 스스로 늘 책을 읽으면 한 해 내내 책날일 테니까 굳이 책날을 안 삼겠지요. 그렇지만 늘 책을 읽으면서 사랑한다면 ‘태어난날’을 기리고 즐기듯 책날을 삼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제가 태어난 날짜라고 해서 뭘 기리거나 즐길 마음도 없고, 난날잔치도 안 하니까, 책날은 쓸데없을 듯해요. 굳이 뭘 해야 하면 ‘책날’ 말고 ‘책집날’이나 ‘헌책집날’을 삼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애써서 책날을 하루 잡는다면, 책날에 책을 사는 사람한테 꽃을 한 송이 주기보다는, “자, 오늘 책을 산 만큼 나무를 심으십시오!” 하고 나무씨앗을 나눠주겠습니다. 책을 열 자락 샀으면 나무씨앗을 열 톨 받아서 심어야 한달까요. 책을 사읽는 만큼 나무를 벤다는 뜻이니까요.” 하고 좀 까칠하게 말했다. 책집지기님은 활짝 웃으면서 “그러게! 책을 샀으니 나무를 심어야지! 옳은 말이오. 아무래도 젊은이는 우리 같은 늙은이하고 생각이 달라. 하하.” 하셨다.


  이날 서울 용산까지 달린 짐바리를 다시 서울 이문동으로 달렸다. 이날 산 책은 짐받이에 묶었다. 늘 짐받이랑 바구니에 가득가득 책을 묶고 담으면서 달렸다. 땀을 빼어 일터(신문사지국)로 돌아왔고, 씻고 옷을 갈아입고 빨래를 한 뒤에 일찍 누웠다. 이러고서 서른 해가 흐른다. 언제나처럼 저녁에는 일찍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 저물녘에 소쩍새노래와 개구리노래를 들으면서 잠들고, 새벽에는 모두 잠드는 고즈넉한 밤빛으로 하루를 열다가 이윽고 동트면서 아침새가 베푸는 노래를 듣는다.


  흔히들 ‘세계 책의 날’이라는 일본말씨를 쓰는데, 우리는 그저 ‘책날’이다. 또한 ‘글날’이기도 하다. “저작권의 날”이라고 붙인 뜻이 있다. 그러니까 ‘책날글날’처럼 써야 맞다.


  책은 펴냄터 손길만으로 못 태어난다. 책은 책집지기 손끝만으로 빛나지 않는다. 먼저 “이야기를 갈무리해서 글로 남기는 일꾼”이 있을 노릇이다. 말로 주고받으면서 입에서 입으로 잇는 이야기가 흐를 적에는 따로 ‘책’이 있을 까닭이 없다. 우리가 “살아가며 살림하는 모든 사랑”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숲을 거쳐”서 종이에 앉힌 책이 태어나자면, ‘지은이’가 첫째이기에 “책날과 글날(책과 저작권의 날)”이라는 이름이다.


  그러나 지은이가 첫째라서 가장 대수롭다는 뜻이 아니다. 지은이가 처음 있고, 펴낸이가 나란히 있고, 책집지기가 함께 있기에, 하나와 둘과 셋이 서로 살갑게 ‘세모’를 이루어서 선다(일어선다). 처음 글을 짓는 사람은 꼭지(점)이다. 글을 짓는 사람을 눈여겨보는 펴냄터는 꼭지하고 꼭지를 잇는 줄(선)이다. 지은이와 펴냄이를 세울(일으켜세울) 몫이 바로 책집지기이니, 셋은 ‘사이’를 ‘새’로 가꾸는 빛살이다.


  책과 나무는 언제나 한몸이다. 책에 담는 이야기는 사람이 살아온 나날과 늘 함께 흐른다. 책을 이루는 나무는 해마다 새롭게 꽃을 피운다. 책 한 자락 곁에 꽃 한 송이란, 언제나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뜻과 길이 무엇인지 넌지시 비추는 향긋내음이다.


  ‘ㅅㅅㅅ’이 모여서 ‘책’이다. ‘ㅅㅅㅅ = 삶 살림 사랑 + 사람 사이 숲’이다. 두 가지 ‘ㅅㅅㅅ’으로 이루는 책이란, ‘채우다 + 차다 + 챙기다 + 채 + 참 + 착하다 + 차곡 + 차분 + 찬찬 + 천천 + 첫 + 처럼’이기도 하다. 책은 빨리 태어날 수 없다. 펴냄터에서 후다닥 뚝딱 하고 만질 수도 있겠지만, 지은이가 책을 한 자락 써내기까지 온삶을 들인다. 지은이가 서둘러서 글을 맺으면, 이런 서투른 글로는 ‘책’이 아닌 ‘책시늉’에 그친다.

 

  ‘책날글날’이 선 지 서른 해가 지난 2026해에, 종이값을 짬짜미로 껑충 올려서 장사를 한 여러 곳이 이제 들통났다지. 낛(세금)을 잔뜩 물어야 한다더라. 짬짜미로 종이값을 마구 부풀린 곳에서 뱉어야 할 낛이 3000억 원이 넘는단다. 이 엄청난 낛은 어디로 가려나? 종이값을 올릴 적에 ‘큰펴냄터(대형출판사)’는 그리 힘들지 않다. 큰펴냄터는 워낙 책을 많이 찍기에 ‘더 에누리’를 해주니까. 종이값을 올릴 적에는 ‘작은펴냄터’가 온통 덤터기를 쓴다. 큰펴냄터하고 굳이 책을 내지 않고서 작은펴냄터하고 더 작고 조촐히 이야기를 여미어 내놓는 ‘작은글꾼(재야작가)’이 나란히 덤터기를 쓴다. 이다음으로 책집과 책손이 덤터기를 쓴다.


  책을 사읽는 사람도 덤터기를 쓰지만, “책값이 오르면 안 산다”는 분이 많은 터라, 누구보다도 작은펴냄터와 작은글꾼이 가장 크게 고단한 나날을 보내야 했을 텐데, “제지업계가 내야 하는 과징금”을 나라에서 어떻게 쓸는지 궁금하구나. 껑충 오른 종이값 탓에 휘청휘청 힘들지만 꿋꿋하게 견디면서 애쓴 작은펴냄터하고 작은글꾼한테 힘내라고 하는 길(정책)이 있을까? 적어도 ‘책날글날’에는 ‘잘난책(베스트셀러)’이 아닌, ‘작은책’을 눈여겨보면서 널리 알리고 이야기하는 책집과 책집지기과 책글꾼(서평가·MD)이 있기를 빌 뿐이다. 2026.4.2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황석희한테서 배운다



  나는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말’은 늘 ‘마음’을 담게 마련이면서, 마음은 늘 ‘삶’을 담는 얼거리인 줄 느낀다. 아니, 이 얼거리를 안 느끼거나 못 느낀다면 우리말꽃을 못 쓰고, 낱말책을 못 엮는다. ‘말·마음·삶’이 늘 나란히 흐르는 줄 느낄 때라야 말을 말로 할 수 있고 글을 글로 쓸 수 있다. 누구나 똑같다. 마음없이 뱉는 말은 차갑거나 밋밋하거나 부질없거나 쭉정이라 할 수 있다. 마음없이 꾸미거나 치레하는 글은 그저 ‘주례사비평·주례사창작’이다. 이미 이 나라는 ‘주례사비평’이라는 ‘서평단 주례사 독후감’이 넘치는데, ‘주례사창작’이라 할 ‘듣기 좋은 듯 목소리만 옳게 내는 주례사창작’이 물결친다.


  우리가 읽고 쓰는 모든 ‘글’은 ‘삶을 담은 마음인 말’을 그린 ‘소리무늬(말소리를 눈으로 읽는 무늬로 그린 자국)’이다. 그래서 ‘글’을 글로 그대로 쓰는 분이라면, 언제나 “스스로 살아낸 하루를 먼저 스스로 마음에 담아서 스스로 소리로 옮기는 길”부터 열게 마련이다. 이와 달리 ‘문학창작’이라는 이름을 앞세우려고 하면, 스스로 삶이 없고 마음이 없는 채 겉으로 보기좋게 ‘글꾸미기’를 하고야 만다. 해마다 쏟아지는 ‘문학상 작품집’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보기좋게 꾸미는 글”에서 머무는구나 싶더라.


  아무래도 우리말꽃을 쓰는 일을 하기 때문에, 모든 글을 다 읽으려고 하면서 이모저모 살피고 짚고 따진다. “삶과 마음을 사람과 숲이라는 숨빛으로 담는 글”인지 살핀다. 아니면 “삶과 마음과 사람과 숲을 다 등진 채 겉으로 보기좋게 꾸며서 이름·돈·힘을 얻으려는 텍스트 조합”인지 짚는다. “나라면 이런 글감을 어떻게 이야기로 살려서 줄거리를 여미어 이웃한테 들려줄 글로 쓸”는지 따져 본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삶’을 스스로 지으면서 몸소 ‘살림’이라는 하루를 ‘사랑’으로 지핀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라는 이름이다. 서로서로 어떤 ‘사이’에 있는지 새삼스레 생각을 해본다면, 황석희나 서정주나 료나 신경숙이나 정지돈이나 숱한 글바치 겉모습을 누구나 어렵잖이 벗겨내거나 알아채거나 읽어낸다고 느낀다. 우리가 책벌레라는 이웃으로서 오늘부터 새삼스레 ‘읽눈’을 ‘글눈’으로뿐 아니라 ‘삶눈·살림눈·사랑눈·사람눈·숲눈’으로 틔우려 한다면, 참으로 이 별을 아름답게 가꿀 만하지 싶다.


  황석희 같은 사람이 그동안 숨긴 민낯이 드러난 일이란 뭘까? 우리로서 여태껏 어떤 읽눈과 글눈이었는지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그놈 하나’를 탓하기는 쉽다. ‘그녀석 하나’를 감싸는 일도 쉽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닌, 우리 스스로 가꾸고 배울 대목을 바라볼 노릇이다. 여태껏 ‘꾸밈글쓰기’를 제대로 알아낼 눈썰미가 아니었다면 이제부터 가꿀 노릇이라고 배우는 징검다리라고 느낀다. 이미 황석희 글결에서 ‘눈가림’인 줄 눈치채거나 느낀 분이라면, 이이 민낯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적부터 글눈과 읽눈을 찬찬히 일군 줄 깨닫는 일이기도 할 테고.


  아름글을 읽으면서도 배운다. 꾸밈글을 읽으면서도 배운다. 아름이웃을 마주하면서도 배운다. 꾸밈꾼과 돈꾼과 허울꾼과 힘꾼을 스치면서도 배운다. 늘 배운다. 배우기에 차분히 달래고 다독여서 익힌다. 배우고 익히니, 서로 새롭게 잇는 사이에 어떻게 징검돌을 놓고서 이야기를 펼는지 헤아린다. 헤아리고 살피고 짚으니 바야흐로 스스로 생각을 밝힌다. 말 한 마디는 ‘말씨’로 거듭나기에 ‘말씀’으로 깨어날 수 있다. 글 한 줄은 ‘글씨’로 주고받기에 ‘글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 2026.4.1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조금 산 책



  어제는 부산에 닿아서 세 군데 마을책집을 들러서 책을 조금 샀다. 어제 산 책을 오늘 04시부터 09시까지 읽다가 주섬주섬 짐을 꾸린다. 10:50에 부산 사상나루에서 순천으로 건너가는 버스를 타려고 한다. 등과 가슴에 책짐을 묵직하게 지고 안으며 한참 걷는다. 2000길(m) 남짓일까. 서면에서 갈아타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조금 헤매고 빙그르르 돈다. 살짝 땀방울이 돋고, 등허리랑 팔뚝이 조금 결린다. 밖으로 나오니 햇볕이 뜨끈하고 햇살이 눈부시고 햇빛이 환하다. 맞이칸에 등짐과 책짐을 부린다. 종이를 끊는다. 숨을 돌리고서 발바닥과 발가락을 천천히 푼다. 어깨를 토닥이고 옆구리를 주무른다. 목과 머리를 꾹꾹 누르고, 눈 언저리도 살살 꼬집는다. 이제 순천버스가 들어온다. 짐칸에 싣고서 버스일꾼한테 꾸벅 허리를 숙인다. 자리에 앉는다. 가늘게 한숨이 나온다. 여기까지 잘 날랐다. 시외버스 짐칸에 톡 실은 짐은 아늑히 쉬겠지. 나도 글붓짐하고 책 석 자락만 챙겼다. 그런데 첫 책을 펼치려 하니 바로 졸립다. 앉자마자 졸린 셈인가. 책을 좀더 읽고, 노래도 한두 꼭지 새로 쓰고, 하루글도 몇 쪽 쓰려고 했는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졸음꽃이 흐드러진다. 아, 아, 아, 왼손에 쥔 책을 옆으로 밀친다. 오른손에 쥔 붓을 제자리에 꽂는다. 왼손을 명치에 대고, 오른손을 배에 댄다. 두 손으로 속을 포근히 토닥이면서 숨부터 돌리자. 한숨 자고 나서 뭘 하든지 하자. 까무룩 꿈길로 가려는데 손전화가 덜덜덜 춤춘다. 이웃님이 물어볼 말이 있다고 하신다. 가만히 듣고 들려준다. 다시 눈을 감는데 어느새 졸음꽃이 모두 졌다. 그런가? 그렇다면 무엇부터 할까. 노래부터 한 꼭지 쓴다. 하루글을 두 꼭지 쓴다. 책을 한 자락 읽는다. 책을 한 자락 더 읽는다. 새로 쓸 노래 한 꼭지는 밑틀만 짚어 놓는다. 하루글을 한 꼭지 더 쓴다. 석 자락째 책을 쥐다가 덮는다. 이제 순천에 닿는구나.


  순천에 닿아서 고흥 가는 종이를 끊는다. 바로 옆에 선 고흥버스에 짐을 싣는다. 자리를 잡는다. 옆 너머에 앉은 아재가 발바닥을 긁으면서 쩌렁쩌렁 소리에 걸쭉한 고약말을 섞어서 한참 떠든다. 귀에 꽂아서 노래를 듣는데 눈금을 둘 키운다. 아까 읽다가 덮은 《학교는 죽었다》(에버레트 라이머)를 뒤부터 다시 읽는다. 1994해에 처음 만나셔 여태껏 이미 여러 벌 읽은 책인데, 새로 쥐어서 읽을 때마다 그야말로 새롭다. “School is Dead.” 이 책이 이웃나라에서 처음 나올 때뿐 아니라, 한글판이 처음 나온 1982해에도, 또 올해 2026해에도, 아직 우리나라는 “배움터가 죽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집 두 아이는 8살부터 ‘졸업장학교’를 다니지 않는데, ‘집에서 스스로 살림길을 익히며 배움길을 걷는 아이’한테는 이 나라가 1원조차 내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집은 꼬박꼬박 낛(세금)을 다 낸다. 두 아이는 어린이집도 안 다녔기에, ‘아동장려금’하고 먼 채로 지냈다. 한때에는 우리집 아이들처럼 집에서 스스로 배우는 어린이와 푸름이를 ‘비행청소년’이나 ‘학교부적응자’나 ‘학교밖 청소년’이라 하더니, 요새는 ‘위기 청소년’이라는 이름을 쓰더라. 아이들은 여덟 살에도 열아홉 살에도 똑같은 ‘사람’인데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가리키는 이름은 늘 널뛰기를 한다. 그들은 이 아이들한테 1원조차 쓴 바가 없지만, 이 아이들을 가리키는 이름은 언제나 사납다.


  어제 부산책집 세 곳에서 책을 조금 샀다. 조금 산 책이 얼추 일흔 자락 남짓이지 싶다. 지난달까지 신나게 사들인 책이 꽤 많아서, 이달 한봄에는 어제하고 그제까지 딱 120자락 책을 샀다. 사읽고 싶은 책은 500자락이 넘는데, 눈에 밟히는 책을 참고 못 본 척하고 눈감으면서 견딘다. 그래도 어제는 부산에서, 그제는 누리책집에서 이럭저럭 120자락을 장만했으니 조용히 읽자. 시외버스는 어느덧 고흥읍에 닿는다. 저잣마실을 가볍게 한다. 모처럼 택시를 부른다. 택시에 타고서 하루글을 한 꼭지 더 쓴다. 집 앞에 닿는다. 짐을 내린다. 큰아이가 해놓은 빨래를 뒤집는다. 햇볕을 고루 먹여야지. 발바닥과 고무신을 헹군다. 짐을 다 들이고서 씻는다. 씻고 나서 드디어 오늘 밥 한 그릇을 누려 본다. 구름 한 조각조차 없이 새파란 하늘을 가르는 제비가 노래한다. 제비뿐 아니라 크고작은 뭇새가 노래숲을 편다. 한봄 한낮볕이 꽤 뜨끈한 탓인지 개구리는 조용하다. 개구리는 아무래도 저물녘부터 노래가락을 펴겠지. 2026.4.1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날리면



  사흘 앞서 거의 다 쓴 글을 단추 하나 잘못 눌러서 날렸다. 늘 글을 쓰노라면 즐겁게 맺기도 하지만 뜬금없이 날리기도 한다. 날린 글을 문득 돌아본다. 처음부터 아예 새롭게 쓰라는 뜻이지 싶다. 어찌저찌 살리려고 용쓰지 말고, 새마음 새눈 새손길로 차분히 쓰라는 뜻일 테지.


  모두가 반기는 글이 있을 테고, 웬만하면 안 반기는 글이 있다. 숱한 사람이 챙겨읽는다지만 누구한테 이바지하는지 모를 글이 있고, 찾아읽는 사람이 적으나 더없이 알찬 글이 있다. 누구는 ㅈㅈㄷ에 실린 글이라며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누구는 ㅎㄱㅇ에 실렸으니 그냥 젖히고, 누구는 어느 종이에도 안 실렸으니 값어치없다고 여긴다.


  어제아침에 텃노랑(토종노랑민들레) 씨공을 하나 끊고서 집 곳곳에 새로 심었다. 오늘도 씨공 하나를 끊으려다가 그대로 놓았다. 아이들한테도 맡겨야지. 혼자 다하지 말자. 혼자 씨묻기를 누리지 말자. 동그란 민들레씨공을 손바닥으로 살며시 감싸면 몹시 따뜻하다. 흰공을 이룬 민들레씨는 두근두근하는 마음을 손바닥을 거쳐서 온몸으로 훅 퍼뜨린다. 민들레씨를 한 톨씩 톡 뽑아서 흙바닥에 살살 놓으면 “아! 아! 이곳이 내가 깃들어서 새롭게 살아갈 터전인가!” 하면서 기뻐한다.


  오늘은 고흥읍에서 마을로 돌아오는 16:40 버스가 없는 줄 엊그제 ‘읍내 버스나루 종이 알림쪽 잔글씨’로 보았다. 이런 일이야말로 마을알림을 할 노릇이지만, 버스길을 알리는 마을알림은 지난 열여섯 해 동안 아예 없다. 이 알림글을 못 봤으면 오늘 14:05나 15:05 시골버스로 읍내마실을 갔다가 “왜 또 버스가 안 와?” 하다가 하염없이 기다리며 지칠 뻔했다. 아무튼 오늘은 옆마을로 달려가서 12:20 시골버스를 잡는다.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는다. 돌아올 버스는 14:40이다.


  숨돌리고서, 거닐면서, 볼일을 마치고서, 저잣마실을 보고서, 스웨덴 어린이책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험》 한 자락을 다 읽는다. 아름답네. 아름다워. 이렇게 아름다이 이야기를 여미는 손끝이 반갑고, 퍽 깔끔이 한글로 옮긴 손길이 고맙다. 이다음으로 읽을 책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당신을 위한 기후 학교》도 손에 쥔다. 이야기꽃(인문강의)을 편 글인데, ‘나라한테 외칠 일거리’가 아닌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몸소 할 작은일’이 무엇인지 짚는다면 한결 나으리라고 본다.


  바람이 싱그럽다. 구름 사이로 해가 비칠 듯하지만 좀처럼 얼굴을 안 내민다. 읍내에서 제비를 세 마리 만난다. 아직 세 마리뿐이지만, 올해에 읍내제비를 세 마리 보았으니 고마운 노릇이다. 묵직한 등짐을 이고서 뚜벅뚜벅 걷는다. 버스를 탄다. 마을앞에 내린다. 새바람과 새소리를 맞이한다. 박새가 꽁지를 까딱이며 노래한다. 직박구리가 후두둑 크게 소리내며 날아간다. 슬슬 논삶이에 모내기를 하는 철인데, 사람소리는 하나도 없이 흙수레(농기계)하고 삽차 소리만 커다랗다. 2026.4.1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