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길잃는 길



  우리는 “망가진 길”을 익히 보고 겪었다. 첫마음을 잊으면서 돈과 이름과 힘으로 치달으면서 귀닫고 눈감은 모든 곳은 가뭇없이 무너지고서 사라진다. 이를테면, 이런저런 이름을 들 수 있다. ‘하이텔·나우누리·프리챌·싸이월드·다음·페이스북’에, ‘인스타’ 같은 데는 한결같이 비슷비슷한 모습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광고’를 하나도 안 놓으면서 열었으나, 이윽고 ‘광고’를 하나둘 끼워넣다가 아주 ‘광고’에 잡아먹히고는 스스로 망가져서 사라졌고, 사라지려고 한다.


  요 몇 달 사이에 ‘인스타’는 쓰레기(광고 + 쇼츠)가 잔뜩 늘었다. 이웃님 글이나 그림은 확 가리고서 끝없이 쓰레기를 늘어뜨린다. 돈으로 굴리며 돈으로 물들이려는 굴레인데, 이렇게 길을 잃으면 가닿는 데는 으레 벼랑끝이다. 책이야기를 담는다고 하던 ‘교보북로그·반디북·예스24블로그’가 어떻게 사라졌을까? ‘교보’하고 ‘예스24’는 예전 글밭을 그들 스스로 몽땅 없애고서 새판을 깔아놓았는데, 새판은 예전과 같을 수도 없지만, 살아날 구멍이 하나도 없다고 느낀다.


  우리는 왜 종이책을 굳이 사읽겠는가? 종이책은 “가장 오랜 읽기”는 아니지만, “가장 수수한 읽기”도 아니지만, “배움길을 가려는 사람이 천천히 삶을 되새기는 틀”이게 마련이다. 우리는 먼저 눈으로 둘레를 읽는다. 아니, 우리는 먼저 마음으로 온빛을 읽는다. 아니, 우리는 먼저 넋으로 온사랑을 읽는다. 누구나 넋으로서 온사랑을 읽기에, 마음으로 온빛을 읽고, 이윽고 눈으로 온모습을 읽는다. 이렇게 넋과 마음과 눈을 거친 뒤에라야 ‘살림·삶·사이·사람’이 드러나고 ‘숲·들·메·바다’라는 푸른길을 파란하늘과 나란히 품으면서 하루를 익힌다.


  종이책을 다루는 길(누리책집)이라면, 적어도 ‘알라딘서재’처럼 스무 해 가까이 투박하고 수수한 ‘글밭’을 고스란히 살리면 된다. 글쓰기는 멋질(멋내기 자랑놀이)이 아니다. 글멋을 부리면 확 티가 날 뿐 아니라, 알맹이가 훅 사라진다. 글치레는 언제나 “티가 날” 뿐 아니라 “티끌로 간”다. 글재주나 글솜씨란 덧없고 부질없다. 오롯이 삶을 담은 삶글을 쓰고 읽으면 되고, 살림을 실은 살림글을 쓰고 읽으면 되며, 사랑을 얹은 사랑글을 쓰고 읽으면 된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아도 이야기가 흐른다. 서로 멀리 있어도 마음은 늘 하나로 나란하기에 숨빛으로도 이야기가 어울린다. 내가 이곳에서 늘 바라보는 새랑, 네가 그곳에서 언제나 스치는 새 사이에도 이야기가 감돈다. 우리는 이야기로 만나고 잇는다. 이야기를 지우거나 치우는 무리나 담벼락이라면, 조금 춤추는 듯해도 이내 시들게 마련이다. 자, 전남 고흥 시골자락에서 동틀녘에 흐르는 멧새소리를 조금 담아서 너한테 띄울게. 새소리로 새롭게 사이를 틔우지 않겠니? 2026.6.2.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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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놓고 나와서



  앵두를 훑고서 재웠다. 멧딸기를 훑고서 재웠다. 곧 훑을 이다음 열매가 기다린다. 시끄러운 뽑기는 지나갔다. 그러나 아직 더 시끄럽다. 누가 뽑히든 무슨 대수인가. 들길(민주)이라면 누가 뽑히든 손뼉치면서 이들이 벼슬꾼 아닌 일꾼으로 서도록 지켜보며 잔소리를 할 노릇이다. 큰소리만 내려 한다면 들길이 아닌 가두리이다.


  읍내 나래터로 나오는 길에 노래책 하나를 챙긴다. 그런데 손전화를 놓고 나왔네. 집으로 얼른 돌아가니, 작은아이가 챙겨서 마당에 나왔다. 가져다주려고 했구나. 고맙다. 마을앞으로 나온다. 15:05 시골버스를 탄다. 시골버스에서 노래 한 자락 쓴다. 내려서 거닐며 노래책을 읽는다. 얼추 30분을 거닐며 바깥일을 보니까, 한 자락 책은 뚝딱 읽고서 덮는다. 이제 고개를 들고서 제비를 본다. 제비가 곤두박을 치다가 씽하니 가르는 춤짓을 바라본다.


  오늘저녁은 김치를 담글까 싶다. 나는 한입조차 못 먹어도, 나만 못 먹을 뿐, 세 사람은 즐거이 먹는다. 이러면 나도 즐거운 일이다. 두둑히 추스른 등짐을 진다. 저잣짐을 지고서 걷는다. 첫여름바람이 부드럽다. 구름이 소복히 감싼다. 시골도 읍내는 시끄럽고, 서울이어도 멧자락 곁이나 골목길이라면 호젓하겠지.


  붉구슬(석류)꽃이 곱상하게 피었다. 후박알이 굵어간다. 낮에 모시를 조금 베었다. 오늘은 별밤하고 멀 테지만 뻐꾸기가 내도록 노래를 베푼 하루이다. 시골 읍내에 새소리는 드문드문 있되, 달구지가 내는 소리가 크고, 길에서 담배를 태우는 아재가 많다. 아름드리 여러 그루가 올해에 난데없이 잘린 읍내라 더욱 스산하다. 바깥일을 마치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시골버스에서 다시 개구리소리를 듣는다. 마을앞에 내려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 개구리소리를 넉넉히 듣는다. 이제 다시 우리 보금숲이다. 2026.6.4.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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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노란



  어느 해에는 늦겨울에 흰민들레부터 올라왔다. 올해에는 첫봄 한복판에 텃노랑부터 올라오고, 첫봄 끝자락에 흰민이 올라온다. 오늘(2026.4.2.) 세어 보니 텃노랑은 거의 온(100) 송이에 이르고, 흰민은 다섯 송이 즈음이다. 곧 흰민도 온 송이를 넘겠지.


  모과꽃망울이 하나둘 오른다. 이제 모과꽃을 훑을 철이다. 멧딸기꽃은 아직 멀고 찔레싹도 더 기다려야 나물로 삼을 수 있다. 돌나물은 아직 가늘다. 살갈퀴하고 갈퀴덩굴이 나란히 오른다. 갓은 장다리를 올려서 노랗게 꽃을 피운다. 아이들이 올해에는 벌을 거의 못 본다고 얘기한다. 벌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너무 적다. 벌뿐 아니라 나비도 유난히 적은 올봄이다.


  새봄은 모든 풀잎과 나뭇잎을 나물로 누린다. 하나같이 반갑고 고맙다. 한결같이 새롭고 기쁘다. 아침에 마당에서 일하다가 제비 둘이 어울리며 바람을 가르는 춤짓을 보았다. 제비를 늘 보고 만날 수 있는 하루란 얼마나 놀라운가. 제비를 비롯해서 딱새에 뱁새에 박새에 참새에 동박새에 굴뚝새에 쇠박새에 할미새처럼 조그마한 새가 언제나 잔치를 이루듯 날고 노래한다.


  낮에는 직박구리가 “너희 왜 마당에 있어? 너희가 거기 있으니 내(직박구리)가 거기서 못 놀잖아?” 하고 한참 지저귄다. 그래, 너도 놀고 싶지? 우리도 볕바라기로 놀고 싶어. 그냥 우리 눈치 보지 말고 놀다가 가면 돼.


  이웃한테 띄울 책에 넉줄글을 적는다. 이 봄에 서로 빛나는 눈망울로 싹트자는 마음을 그린다. 우리는 아무리 멀리 다른 고을에서 살아도 한 하늘을 이고 한 구름을 만나고 한 별무리를 바라본다. 우리는 바로옆에 붙는다지만 딴마음이라 내내 딴청이다가 헤어진다. 우리는 이 별에서 언제나 한동아리로 어울리고 만나고 떠난다. 우리는 이 별을 품은 온누리를 아우르는 다 다른 별씨를 속으로 품고서 다 다르게 하루를 살아내며 배운다.


  뒤꼍에 새로 심은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에 천천히 움이 튼다. 날마다 움을 들여다본다. 날마다 줄기를 쓰다듬는다. 무럭무럭 커서 우리집 뒤꼍나무로 든든히 서렴. 2026.4.2.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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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6.6.2.

숨은책 1155


《農業協同組合槪論》

 구재서 글

 권태헌 엮음

 농업협동조합중앙회

 1962.7.10.



  나라에서 꽃종이(상품권)을 잔뜩 나눠줍니다. 서울·큰고장이라면 꽃종이를 쓸 곳이 많을 테지요. 서울·큰고장에서는 마을책집에서 꽃종이로 책을 사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꽃종이를 쓸 만한 곳이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이를테면 꽃종이(지역상품권)로 저잣마실을 할 수 없습니다. 2026해에는 ‘비싼기름(고유가)’을 풀라며 꽃종이를 나눠주었습니다만, ‘농협기름집’에서 쓸 수 없는 얼거리였습니다. 뒤늦게 농협기름집은 풀었다고 들었으나, 겨울 아닌 여름에 기름집을 푼들, 달구지를 몰지 않는 사람은 꽃종이를 쓸 데가 없을밖에요. 《農業協同組合槪論》이라는 책이 태어난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그무렵에는 시골에서 논밭을 돌보는 사람 가운데 한자는커녕 한글도 못 읽는 분이 많았는데, 그들(농협)은 왜 한자로 시커먼 책을 내놓았을까요? ‘논밭두레’로 나아가야 할 곳이지만, ‘농협’은 예순 해가 넘도록 두레가 아닌 힘터(권력층)로 눌러앉습니다. 온나라는 서울로 쏠리기에 시골에 터를 둔 농협이 무엇을 하건 모르기 일쑤이거나 들여다보지 않습니다만, 먹고마시는 모든 살림이 흙에서 비롯하기에, 서울이 크면 클수록 농협도 돈잔치를 벌여요. 흙을 잊은 사람한테는 어떤 앞날이 있을는지요.


- 農協敎科書시리즈 2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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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나무



  오늘은 미국으로 글월을 부치려고 읍내로 나온다. 책을 부치려다가 우표값이 세려나 싶어서 글종이만 꾸린다. 무게를 달고 보니 얼마 안 비싸다. 다만 배로 갈 테니 한 달은 걸리겠지. ems가 있다고 하니 이다음에는 그 길을 써 볼까 싶다. 나라안에서 주고받는 글월만 오래 쓰다 보니, 나라밖으로 글월을 보내는 길을 까맣게 잊었네.


  고흥읍으로 나가는 시골버스를 마을앞에서 기다리자니, 마을할매 두 분이 나무를 미워하는(저주하는) 말을 한참 퍼붓는다. 옆에 서서 한귀로 흘린다. 그저 빙긋빙긋 웃으며 노래 한 꼭지를 새로 쓰고서 책을 읽는다. 아무래도 이 시골 어느 누구도 스스로 배우려 하지 않으면 나무가 무엇이고 풀이 무엇이며 숲이 무엇인지 그저 모를밖에 없다. 바다하고 비하고 샘과 내가 어떻게 얽히는지 마냥 모르겠지. 그런데 땅을 만지는 일을 하는 사람한테 땅빛과 흙빛과 풀빛과 숲빛과 나무빛을 제대로 들려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 나라는 얼마나 더 망가지려는 셈일까.


  풀죽임물(농약)을 뿌리면 ‘심은 씨앗’을 빼고서 다른 풀을 싹 잡는 듯 여기는데, 개미도 거미도 풀벌레도 개구리도 벌나비도 새도 몽땅 죽인다. 무엇보다도 시골사람 스스로 마시는 물을 망가뜨리고, 시골에 흐르는 바람도 더럽힌다. 죽음켜(비닐)를 땅에 덮으면 얼핏 풀잡이를 하는 듯 여기는데, 죽음켜는 고스란히 쓰레기요, 죽음켜가 해바람비에 닳아서 여기저기 뒹굴면 땅도 흙도 들도 숲도 마을도 더럽힌다. 죽음거름(화학비료)을 논밭에 들이부으면 얼핏 더 많이 거두는 듯 보이지만, 죽음거름을 쓰는 논밭은 해마다 싯누렇게 앓으면서 죽어간다. 죽음거름을 쓰면 그때부터 죽음거름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 거둔다. 박정희 새마을바람이 일으킨 짓은 ‘ㅅㅈ(세죽음 : 풀죽임물·죽음켜·죽음거름)’이다. 이 ‘ㅅㅈ’를 걷어치울 때라야 시골이 살아날 수 있다.


  한집에서 아이랑 살아가는 나날이라면, 나무가 얼마나 이바지하는지 알 텐데, 아이가 있더라도 외려 아이한테 ‘미운나무’라고 자꾸 읊으며 길들일 수 있다. 곰곰이 보자. 우리 마을에서 나무를 돌보고 새로 심는 할배가 한 분 있는데,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다들 “나무 심는 할배”를 몹시 싫어하더라. “쓰잘데기없는 짓”을 한다는 뒷말을 숱하게 하더라. ‘나무할배’ 한 분을 깎아내리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아서 마을모임에 발을 끊기도 했다.


  우리 마을에서 ‘나무할배’는 이제 등허리가 나가서 엉금엉금 다니시기에 나무를 더는 못 심는다. 언젠가 할배는 “내가 죽고 없어도, 이 마을에 늙은이가 다 죽고 없어도, 나무는 남지 않겠소? 나무가 남으면 나중에 마을도 다시 살지 않겠소? 그러니 나무를 심지. 보쇼, 최 선비. 저그 언덕에 자라는 나무는 내가 다 심었소. 허허, 봄마다 꽃이 발갛게 올라오는데 참 보기 좋지 않소?” 하며 웃으셨다. 아마 나무할배도 마을 다른 모든 할매할배가 이녁한테 “쓰잘데기없는 짓”을 한다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말을 익히 들었겠지.


  나무가 서야 겨울이 포근하다. 나무가 둘러야 여름이 시원하다. 나무를 심고 돌보기에 마을을 비롯해서 이 별이 빛난다. 나무 한 그루 못 자라는 모래벌(사막)에 기름이 퐁퐁 솟기에 떼돈을 버는 나라가 제법 있는데, 돈과 기름만으로는 무너지게 마련이다. 숱한 ‘기름나라(산유국)’는 하나같이 먹을거리를 먼나라에서 사다먹는다. 숱한 기름나라는 기름을 팔아서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돈으로 ‘아름살림’이 아닌 ‘겉멋내기’나 ‘싸움질(전쟁무기 개발)’로 치닫더라. 오늘날 우리나라는 잇(반도체)으로 먹고산다고 외치는데, “잇(반도체)을 판 돈으로 먹을거리를 사들이기”에 살아남을 뿐이다.


  기름이나 잇을 팔아서 먹을거리를 먼나라에서 사들이면 ‘큰나라·좋은나라’일까? 나무 한 그루를 누구나 마당에 심고서 보살필 수 있어야 비로소 아름나라이지 않을까? 나무 한 그루가 푸르게 서지 않는 서울이나 시골이라면 이미 죽음터이지 않은가? 나무 한 그루가 어떤 숨빛인지 들려주거나 가르치거나 이야기하는 배움터나 마을이나 나라나 집이 아니라면, 이미 우리는 사람빛을 팽개친 셈이지 않은가? ‘밉나무’가 아니라 ‘푸른나무’와 ‘살림나무’인 줄 알아보고 얘기하고 아낄 노릇이다. 나는 어느 책을 손에 쥐든, 너른숲에서 부는 바람을 마신다. 모든 책은 나무요, 모든 책은 숲이며, 모든 책은 파란바람을 머금은 풀 한 포기요, 모든 책은 푸른들을 이루고 푸른숲으로 일렁이는 푸른빛이니까. 2026.4.29.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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