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쑥국을 끓이고서



  쑥이 돋은 지 한 달 남짓 지난다. 처음 쑥이 돋을 적에는 쓰다듬고서 지켜보았다. 언제 훑으면 즐거울까 헤아리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쑥이 봄볕을 머금고 봄비를 마시고 봄바람을 누리고 봄별을 그리는 동안 가만히 기다렸다. 이렇게 한 달을 보내고서야 “첫 쑥국”을 어제 끓였다. 갓 돋는 쑥도 향긋하되 햇볕을 듬뿍 머금은 쑥도 그윽하다.


  쑥국은 덥히고 더 끓일 적에 한결 그윽하다. 쑥을 끓이면 온집에 쑥내음이 번진다. 어제오늘은 모과꽃을 훑는다. 흐드러지는 꽃망울을 즐겁게 솎아서 햇볕에 말리면 여름과 가을과 겨울까지 꽃물을 조촐히 누린다. 무엇보다도 모과꽃을 훑으면 온몸에 모과꽃내음이 물든다. 여러 날 가더라.


  흙을 만지면 흙내음이 여러 날 가고, 나무를 만지면 나무내음이 여러 날 간다. 멧딸기를 훑으면 멧딸기내음이 여러 날 가고, 속꽃(무화과)을 따서 졸이면 속꽃내음이 여러 날 간다. 이따금 잠자리나 나비가 팔등에 앉으면, 날개를 쉰 잠자리나 나비가 스스로 날아갈 때까지 팔을 들고서 기다린다.


  시골버스를 내리고서 나래터로 가는 길에, 다시 걸어서 저잣마실을 볼 적에, 이러고서 집으로 돌아갈 시골버스를 타러 거닐며 두 가지 책을 읽는다. 언제나 ‘걷는읽기’이다. 스스로 속빛을 보려고 읽고 쓰고 생각한다. 오늘은 나래터에서 이웃님한테 글월을 띄우면서 노래꽃을 곁들였다.


  아침까지 해가 비추다가 낮부터 빗방울이 듣고, 저녁은 구름밭으로 가려나 싶다. 해마다 가지치기로 시름시름 앓는 읍내 부채나무(은행)도 잎망울을 틔운다. 가지가 잘리고 줄기가 끊길 적마다 모든 나무가 운다. 나무는 서로 눈물을 나누면서 응어리를 씻고 생채기를 달랜다. 새해에 새롭게 가지를 내고 줄기를 올리자고 이야기한다. 우는 나무를 바라보다가 손바닥으로 줄기를 살짝 토닥이고서 지나간다.


  손길을 받는 글이 가만히 웃는다. 손끝이 닿으면 애벌레가 문득 옴찔하다가 파르르 떤다. 손가락으로 종이를 넘기면 모든 책이 춤추며 기뻐한다. 부엌에서 손수 다듬고 썰고 짓는 결에 따라서 솥과 그릇과 수저가 노래한다. 손이 닿는 곳마다 바람이 새롭고, 손씨가 슬며시 깃들면 온누리에 풀씨 한 톨이 깨어난다.


  돌나물은 아직 조고마하다. 햇볕을 더 머금으면 한봄이 깊을 즈음부터 뜯을 수 있으려나. 이제 앵두꽃이 지면서 멧딸기꽃이 가득하다. 겨울은 잠들었다. 봄빛이 살랑인다. 나는 이 봄길을 걸어가면서 누구나 보금숲을 짓고서 살림하는 나날을 그린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골버스가 들어오는구나. 2026.4.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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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6.4.8.

숨은책 1152


《月刊 全每 3호》

 심상우 엮음

 전남매일신문사

 1979.6.1.



  인천이란 데에서 나고자란 지난날을 돌아보면, ‘경기도 이야기’를 다루는 새뜸(신문)은 인천에 있으나, 막상 ‘인천 이야기’는 아예 안 다루다시피 했습니다. 작은고을에도 ‘○○방송사 ○○지국’이 있으나, 인천은 여태 어느 ‘방송사 지국’조차 아예 없습니다. 서울곁이라서 거꾸로 따돌리는 셈입니다. 이제는 전라남도에서 살아가며 오늘날을 돌아보는데, ‘전라남도 이야기’를 다루는 새뜸은 하나같이 광주에 있고, 으레 ‘광주 이야기’를 크게 다룰 뿐, 전라남도 골골샅샅을 누비는 듯하지는 않습니다. 1979해에 처음 나온 《月刊 全每》을 문득 헌책집에서 들추었습니다. ‘조선일보’만이 아니라 적잖은 고을새뜸(지역신문)이 아직도 이름에 한자를 씁니다. 안 바꾸거나 못 바꾸는 모습인데, 스스로 누구 곁에서 무슨 목소리를 담으려 하는지 모르는 탓입니다. ‘모윤숙’은 일찌감치 일본바라기로 이름이 높았는데 《月刊 全每 3호》 머릿노래로 버젓이 이이 글을 싣습니다. 2014해에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가라앉았고, 슬픈나라를 안타깝게 여기는 말글이 쏟아졌습니다. 2024해에 전남 무안나루에서 날개가 펑 터졌는데, 슬픈나라를 나무라는 말글은 드뭅니다. 무엇을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 모르니, 영 못 바꾸고 맙니다.


《月刊 全每 4호》(심상우 엮음, 전남매일신문사, 1979.7.1.)


+


광주공항 국제선 취항은 요원…무안공항 폐쇄는 장기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6007097?sid=103


무안공항 올해 재개항 난항… 4월부터 공항 외곽 조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840067?sid=102


오염된 채 방치된 유해에 또 무너졌다... 무안공항 못 떠나는 유족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922248?sid=102


무안공항 마대자루를 열었더니 사람이 나왔다 [김채수의 "왜 가만히 있어?"]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119/0003074971?sid=100


'12·29 여객기 참사' 후폭풍에 멈춘 지역경제…지원·회복 '과제'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3873841?sid=101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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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6.4.3.

숨은책 1108


《싣달타 (印度의 詩)》

 헬만 헷세 글

 김준섭 옮김

 정음사

 1957.12.20.



  오늘 우리가 널리 읽는 숱한 책이 언제 우리말로 나왔나 하고 곰곰이 돌아보곤 합니다. 모든 이웃책은 우리말로 옮겨야 이 땅에서 읽히게 마련이라, 옮긴이에 따라서 글결이 다르고, 옮긴해에 따라서 글빛이 다릅니다. 이제는 일본책을 되옮기는 일은 아주 없다고 할 테지만, 2000해 언저리까지 그냥 일본책을 되옮기는 판이 꽤 많았고, 적잖은 옮긴이는 예전 일본옮김판(일본에서 옮긴 판을 다시 한글로 옮긴 판)을 옆에 놓고서 옮기거나 짚기도(교정교열) 했습니다. 1957년에 나온 《싣달타 (印度의 詩)》는 독일글을 그대로 옮겼을까요, 아니면 일본글을 거쳤을까요? 이제는 모를 일입니다만, 빛나는 글자락을 나누려는 마음으로 여민 조그마한 책입니다. 요즈음 나오는 한글판 《싯다르타》는 그리 안 두껍고 값도 썩 안 비쌉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오래오래 널리널리 읽힐 판이라면 작고 가볍게 선보일 수 있기를 바라요. 책숲에 건사하는 무거운 판보다는 뒷주머니에 슥 꽂고서 두바퀴를 달려서 냇가나 들녘에 앉아서 손에 쥘 만한 판으로 낸다면 참으로 어울립니다. 묵은 한글판을 굳이 읽으면 지난날 글결과 말씨를 살짝 엿볼 만합니다. 일본옮김판이건 바로옮김판이건,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헤아를 글빛과 말마디를 살필 수 있습니다.


그는 드디어 말하였다. “산간에서 축복을 받거든 와서 나에게도 가르쳐다고. 싱망하거든 다시 돌아오라. 나와 같이 신(神)들을 섬기도록 하자. 자, 그러면 가서 어머니에게 입을 맞추고 가는 곳을 말씀 사되도록 하여라. 나는 강에 가서 첫 목욕 할 시간이 되었다.” (20쪽)


남의 말을 잘 듣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 뱃사공의 장점 중의 장점이었다. (141쪽)


“그러나 나에게서는 아닌 것이오. 그 듣는 법이란 이 강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니까. 당신도 그것을 강에게서 배우실 것이오. 이 강은 모든 것을 알고 있소. 그러므로 사람은 모든 것을 강에서 배울 수 있소. 보시오, 당신은 이미 이 강에서 배울 것이 있소. 밑바닥으로 들어가 그곳에 잦아들어 깊은 것을 탐구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부귀를 누리던 싣달타가 노젓는 사람이 되고, 학자인 파라문의 아들 싣달타가 뱃사공이 된다는 이것도 강이 당신에게 일러준 것이오. 당신은 많은 다른 것을 또한 이 강에서 배우실 것이오.” (142∼143쪽)


#Siddhartha #HermannHesse (1877∼1962) #싯다르타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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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6.4.3.

숨은책 1150


《岩波文庫 88 伯父ワ-ニヤ》

 アントン チェ-ホフ 글

 米川正夫 옮김

 岩波書店

 1927.7.10.



  모든 길잡이가 모든 책을 읽어 보고서 푸름이한테 “이런 책을 읽어 보라”고 하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이른바 ‘추천목록·권장목록’을 서로 챙기고 돌리고 나눌 분, 정작 “푸름이한테 읽힐 만한지 아닌지” 짚거나 살필 겨를이 없다고 느껴요. 1927년에 일본글로 나온 《岩波文庫 88 伯父ワ-ニヤ》를 헌책집에서 보았습니다. 어느새 온해를 살아낸 오래책입니다. 이미 일본은 이무렵에도 체홉(체호프)을 누구나 읽을 만하게 책으로 여미었다는 뜻이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본판을 “일본사람이 우리나라에 세운 일본책집”에 마실해서 하나둘 찾아서 사읽었을 테지요. 예나 이제나 느끼는데, “글쓰기·글읽기를 아주 좋아하는 푸름이”가 아니라면 섣불리 ‘세계문학·세계명작’이 아닌 ‘아름다운 그림책·어린이책’을 읽혀서 함께 이야기를 할 노릇이라고 봅니다. 열넷∼열아홉이라는 나이는 “빼어나다는 이웃책”이 아닌 “사람으로서 이 삶을 사랑하며 손수 살림을 짓는 길을 밝히는 작은노래”인 그림책·어린이책을 제대로 되새기면서 글눈과 삶눈과 숲논을 틔울 일이에요. 푸른배움터 길잡이도 그림책·어린이책부터 곰곰이 읽고서 “글로 담는 길(문학표현)”을 어떻게 일굴 적에 함께 아름다울는지 살펴야겠지요. 멋진 글이 아니라 “살리는 말”을 익힐 푸른철입니다.


#안톤체홉 #안톤체호프 #요네카와마사오 (1891∼196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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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6.3.30.

숨은책 1149


《鎭魂歌》

 김남주 글

 청사

 1984.12.10.



  처음 김남주 노래를 만난 때는 1990해라고 떠오릅니다. 누가 이이 노래를 읽으라고 시키거나 알리지는 않았습니다. 오래도록 사슬살이를 하다가 1988해에 풀려난 이야기를 읽었어요. 어머니랑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를 하면서 날마다 새뜸을 뒤적였는데, 어느 날 문득 이이 이야기를 읽고서 이름을 새겼고, 노래책은 몇 해 지나서야 겨우 손에 쥡니다. 들물결이 한창이어도 사거나 빌릴 수 없는 책이 수두룩했고, 푸른배움터를 다니면서 찾아보기 어려운 책도 흔했습니다. 그렇지만 《鎭魂歌》 같은 노래책을 애써 내놓는 곳이 1984해에 있었고, 이렇게 태어난 책을 기꺼이 맞아들여 품은 곳도 있어요. 비록 이 작은 노래책은 새책집에서 사라졌어도 드문드문 헌책집으로 흘러나와서 새롭게 읽히려고 기다립니다. 누런종이에 차곡차곡 찍힌 글씨를 되읽으면서 오늘날 글자락은 무엇을 적거나 남기는지 돌아봅니다. 벌써 마흔 해 남짓 묵은 아스라이 옛책인 노래책 하나를 앞으로 눈여겨보면서 숨빛과 땀빛과 글빛과 살림빛과 사람빛을 다스릴 이웃은 오늘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려나 하고 헤아립니다. 아프고 앓고 죽고 다치고 쓰러지고 우는 모든 넋을 씻을 노래라면, 어떤 손끝으로 태어나서 어떤 눈길로 읽힐 수 있으려나 되새깁니다.


- 한국사립문고협의회, 한신교회문고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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