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6.25.

아무튼, 내멋대로 16 육아 전담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닐 적에 여섯 달마다 ‘장래희망’이란 이름으로 무슨 종이를 빼곡하게 채워야 했다. 왜 이런 종이를 써내야 하는지 알 턱이 없으나, 배움터에서 뭘 시킬 적에 안 하면 엄청 얻어맞았기에 고분고분 다 해내야 했다. ‘난로 당번’으로 있을 적에 ‘우리가 낸 모든 숙제’를 불쏘시개로 쓰는 줄 알아채고는 그 뒤로 배움터에서 뭘 내라는 짐(숙제)을 참 하기 싫었다. 아무튼 13살에 이르도록 ‘짝 안 맺고 혼자 살겠다(비혼)’고 적었다. 푸른배움터에 다니던 14∼19살에도 한결같았다.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열린배움터(대학교)를 다니며 ‘아! 서울에 나와 보니 이 땅에는 꽉 막힌 사람만 있지 않구나? 찾아보면 열린 사람도 있겠구나!’ 하고 느꼈고 ‘짝을 맺고 살아도 되겠구나’ 하고 새마음을 품었다. 스무 살부터 제금을 나며 밥옷집 살림을 혼자 건사했다. 되도록 안 먹거나 가볍게 먹고, 모두 손으로 빨래하고, 집에는 보임틀(텔레비전)·거울·옷칸 따위를 안 들여놓고, 얇은 이불 한 채가 끝이고, 나머지는 책으로 채우고, 자전거 하나를 곁에 두기로 했다. 글을 쓰려고 셈틀을 켤 적을 빼고는 전기를 쓸 일이 없는 살림이었다. 싱싱칸(냉장고)조차 안 썼으니까. 내가 혼자 사는 집에 찾아온 분들은 입을 쩍 벌렸다. “와, 이 집엔 책밖에 없네. 아니, 옷도 없고 그냥 책만 있네.” “네, 책 말고 뭐가 더 있어야 하지요? 제가 숲에서 살면 책조차도 없고, 종이랑 붓 하나만 둘는지 모르는데, 나중에는 종이랑 붓조차 치울는지 몰라요.” 옷칸 없이 살다가 곁님을 만나 짝을 이루면서 옷칸을 놓았다. 아기가 태어날 때를 앞두고 집에 잔뜩 있던 책을 책마루숲(서재도서관)으로 옮겼다. 짝꿍하고 아이랑 함께 살아갈 적에는 집에 책만 놓을 수는 없다. 그릇에 수저에 수건에 이모저모 살림이 있어야 한다. 곁님은 피아노를 들이자고 했다. 집 한복판에 누구나 언제라도 실컷 노래를 누리도록 커다란 가락틀(악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더라. 목돈을 헐고 언니한테 빌려서 피아노를 들였고, 살림돈을 조금조금 모으는 대로 다른 가락틀을 하나둘 들였다. 2013년 무렵 빨래틀(세탁기)도 들였다. 내가 바깥일로 집을 비워야 할 적에 곁님이 천기저귀나 이불을 빨아야 할 수 있기에, 이제는 없으면 안 되겠더라. 빨래틀을 들였어도 난 예전처럼 손빨래를 한다. 어수룩하거나 모자란 대목은 으레 곁님이 따박따박 들려주는 꾸지람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면서 천천히 추스르거나 고친다. 집안일하고 아이돌봄을 도맡아 하는 길에 “아름답고 아늑하여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는 언제 어떻게 이룰 만한가 하고 짚어 보았다. 사내(아빠·남자)란 자리는 머스마(머슴)라는 이름 그대로 모든 일을 맡아서 할 노릇이다. 가시내(엄마·여자)란 자리는 갓(메·山)이란 이름 그대로 기쁘게 노래하고 가락틀을 타면서 신나게 놀 노릇이다. ‘몸쓰는 힘(힘살·근육)’을 타고난 사내(머슴·벗)는 기쁘게 일하면서 “가시내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노래를 사랑으로 들으면서 기운을 내면 즐겁”다. ‘몸쓰는 힘’이 아닌 ‘마음을 달래며 사랑을 그릴 줄 아는 숨결’을 타고난 가시내(갓)는 “기쁘게 놀고 노래하면서 아이들하고 짝꿍(사내)이 삶을 즐기는 웃음꽃을 눈부신 빛살로 받아안으면서 깨어나도록 북돋우면 즐겁”다. ‘육아분담’은 부질없다. 가시버시(여남) 모두 집안일하고 아이돌봄을 할 줄 알아야 하면서, 이 몫을 버시(사내)가 도맡으면 된다. 이따금 버시가 멀리 바깥일을 다녀와야 할 적에 비로소 가시(가시내)가 집안일하고 아이돌봄을 살짝 맡아 주면 된다. 오늘날 터전을 돌아보면, 숱한 사내는 집안일을 안 하고 아이도 안 돌본다. 아이 똥기저귀를 손수 갈며 빨래하고 씻기는 우두머리(대통령)가 있었나? 어느 감투꾼(국회의원·장관·시도지사)이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를 돌보는가? 사내들이 집안일·아이돌봄을 안 하니 자꾸 싸움판(군대)을 키우고 총칼(전쟁무기)을 만들어서 바보짓(전쟁)을 일삼는다. 그리고 바보짓 사내처럼 ‘놀고 노래하며 웃음꽃을 지피는 가시내 살림길’이 아닌 ‘감투랑 벼슬을 노리는 가시내’가 너무 늘었다. ‘나라 없는 나라’여야 아름답다.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지어’야 비로소 사랑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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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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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6.25.

아무튼, 내멋대로 15 김치 달걀



  처음으로 마주하는 이웃님이 “밥으로 뭐 좋아하셔요?” 하고 물으시면 “안 먹기를 가장 반깁니다.” 하고 말씀한다. ‘안 먹기’를 늘 첫째로 꼽는데, 내가 ‘안 먹기’를 누리도록 헤아린 이웃님을 여태 두 사람 만났다. “그래도 뭘 좀 먹어야 하지 않아요? 안 먹고 어떻게 살아요?” 하는 말에 “그러면 안 매우면 됩니다. 그리고 개나 미꾸라지나 선지는 빼고요.” 하고 보탠다. “따로 좋아하는 밥은 없어요?” 하고 더 물으시면 “국수나 라면이나 짜장국수도 되고, 빵 한 조각이어도 됩니다.”라 하는데, 이렇게 밝히는 뜻을 헤아린 이웃은 아직 못 만났다. 나는 김치를 못 받아들이는 몸이다. 찬국수(냉면)도 못 받아들이고, 크림을 듬뿍 넣은 달콤이(케익)도 못 받아들인다. 요구르트·요거트를 찻숟가락만큼 맛은 볼 수 있되 썩 가까이하고픈 마음이 없다. 여기에 김조차 꺼린다. 어린날(1975∼1987)을 보내는 동안 무엇보다 ‘밥먹기’가 괴로웠다. 동무네에 가서 놀다가 동무네 어머니가 “같이 밥 먹자.” 하고 부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 몸이 못 받아들이는 먹을거리가 수두룩하기에 우리 집에서뿐 아니라 동무네 집에서도 언제나 ‘밥때’가 날마다 끔찍했고 골이 아팠다. 숱한 사람들은 ‘먹는 재미’로 산다고 말하더라. 그러나 ‘안 먹는 기쁨’으로 살고픈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안 먹는 기쁨’으로 살고픈 사람이 고작 1/1,000,000,000이라고 하더라도 틀림없이 있다. 더구나 나는 김치를 진저리나도록 못 받아들이는 터라, 어느 집에나 있는 김치를 볼 적에는 눈앞이 어질어질하다. 우리 아버지는 ‘김치 못 먹는 아들’을 밥자리에서 늘 한숨에 짜증으로 나무랐고, 억지로 김치를 입에 욱여넣으면 뱃속이 뒤집혀 바로 게우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으나, 그야말로 악을 쓰며 참고 또 참아 꿀꺽 겨우 삼키면 어느새 어머니 아버지 언니는 밥그릇을 다 비웠다. 나 혼자 김치 한 조각하고 오래오래 씨름했다. 우리는 왜 굳이 ‘덩이진 밥’을 먹어야 할까? 굶으며 산다고 죽을까? 고기밥(육식)도 당기지 않지만 풀밥(채식)조차 당기지 않는다. 고기밥만 목숨이 아니다. 풀밥도 목숨이다. 돼지·소·닭만 목숨이 아니다. 시금치·배추·당근·무도 목숨이다. 사람들은 다른 목숨을 밥으로 삼아 제 목숨을 잇는다고 하는데, 바람을 마시고 물을 머금기만 하면서도 얼마든지 즐겁게 삶을 누릴 만하다고 느낀다. 우리가 바람밥·물밥을 잊은 채 고기밥·풀밥을 허겁지겁 욱여넣으려 하면서 자꾸 싸움이 불거지지 않나? 먼먼 옛날사람이 들살림(수렵채집)을 할 적에 ‘잘 먹지도 못 하고 힘들게 살았으리라 지레 어림’하는 이들(역사학자·문화인류학자)이 많은데, 난 그렇게 바라보지 않는다. 먼먼 옛날사람은 조금만 먹어도 넉넉한 살림이었으리라 느끼고, 굳이 안 먹고 바람이랑 물만 누려도 튼튼한 몸이었으리라 느낀다. 내가 “김치를 못 받아들이는 몸”이라고 말할 적에 알아듣는 사람은 여태 둘이었는데, 두 사람을 빼고는 “어떻게 한국사람이 김치를 못 먹어?” 하는 핀잔이나 비웃음이나 놀람이었다. 난 “왜 한국사람이라고 해서 다 김치를 먹어야 하지요? 우리 겨레가 김치를 먹은 지 고작 오백 해(500년)가 안 된 줄 모르시나요? 고춧가루를 넣은 김치라면 고작 백 해조차 안 되는데 모르나요?” 하고 대꾸한다. 돌이켜보니 외할머니도 나를 헤아려 주셨구나 싶다. 김치를 못 먹기에 밥자리에서 힘든 나를 알아챈 외할머니는 외사촌 누나한테 “야, 얼른 가서 우리(닭우리)에서 달걀 하나 가온나.” 하고 시켰다.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그무렵 달걀은 웃어른이 이따금 누리는 값진 먹을거리였으니까. “내 몫으로 줄 테니 암말 말어.” 하시며 내 밥에 손수 날달걀을 톡 까서 부어 주셨다. 나는 날달걀도 못 먹기는 했으나 김치보다는 나았다. 차마 외할머니 앞에서 ‘날달걀도 못 먹는 티’를 낼 수는 없더라. 그 뒤 나는 밥때에 이르면 일부러 밖에서 뛰놀며 멀리 달아났다. “쟤가 노느라 바빠서 밥 먹을 때도 모르는가 보다.” 하는 소리가 나오도록.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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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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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6.24.

아무튼, 내멋대로 13 영화평을 쓰려면



  곁님을 만나서 아이를 낳기 앞서까지는 영화는 아예 안 보다시피 하면서 살았다. 어느 날 곁님이 그러더라. “여보, 그대가 책을 좋아하는 줄은 알겠지만, 아이들한테 책만 보라고 할 생각이에요? 이 세상에 아름다운 노래하고 영화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책을 안 보고 아름다운 노래하고 영화만 찾아서 듣고 본다고 해도 다 듣거나 볼 수 없어요.” 뒷통수를 호되게 맞았다. 주먹이 아닌 말로 맞았다. 큰아이를 낳아 날마다 똥오줌기저귀를 빨고, 아이랑 곁님을 먹이고, 집안을 쓸고닦고 하느라 해롱거리던 어느 날 또 핀잔을 들었다. “여보, 난 아이들한테 책도 영화도 다 안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이들한테는 숲을 그대로 보여주고,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어버이로서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곁님 꾸지람을 듣고서 몇 달 동안 밤새 재미난(?) 꿈을 꾸었다. 글도 책도 영화도 없던 아스라이 머나먼 옛날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그림이 꿈자리마다 영화처럼 흐르더라. 책도 영화도 학교도 관광지도 없는 까마득히 먼 옛날 옛적에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살림을 지으면서 늘 넉넉하게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면서 숲 한복판에서 모든 숨붙이(생명)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잘 살더라. 책을 삶에서 떼지 못하고 살면서 영화를 아이들하고 함께 보내는 나날을 누리다가 문득 생각했다. ‘우리가 집에서 보는 이 영화’를 다른 이웃은 어떻게 느끼거나 보려나 궁금했다. 평론가란 이들이 남긴 영화평을 찾아보다가, 그냥그냥 영화를 본 사람들이 남긴 영화평을 죽 훑다가, “어쩜, 이 사람들은 영화를 되게 미워하나 봐!” 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나왔다. 영화를 딱 한 판만 보고서 이 영화를 ‘보았다’거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사회 한 판을 보고서 영화평을 써도 될까? 나는 책이야기(서평)를 쓸 적에 적어도 그 책을 일고여덟 판을 되읽고 나서야 쓴다. 한 판만 슥 훑고서 쓸 수 있는 책이야기란 없다. 말이 안 되잖은가? 고작 한 판을 슥 첫 줄부터 끝 줄까지 훑고서 어떻게 그 책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러면, 영화평을 쓰려면 영화 한 자락을 몇 판쯤은 차분히 보아야 할까? 아이들하고 함께 영화를 보고서 이따금 영화평을 남겨 보곤 했는데, 내가 글로 옮긴 영화평은 “적어도 쉰 판을 본 영화”이다. 그러나 “적어도 백 판을 본 영화”여야 그 영화를 어느 만큼 짚어낼 만하다고 느낀다. 아이들하고 어느 영화를 깊고 넓으면서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한다면, “이럭저럭 500판은 보아야” 영화평을 쓸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고작 한두 판을 겨우 보고서 끄적이는 글은 ‘영화평’이 아니라고 느낀다. 우리나라 영화평론가는 영화를 끔찍하게 미워하거나 싫어한다고 느낀다. 그들이 영화를 좋아하거나 사랑한다면, 영화평을 쓰려고 어느 영화 하나를 적어도 쉰 판이나 백 판, 때로는 삼백 판이나 오백 판쯤은 보고 나서야 써야 옳지 않을까? 이웃나라 일본에서 그림꽃(만화)을 그린 테즈카 오사무 님은 영화를 볼 적에 ‘새벽 첫 상영’부터 ‘밤 마지막 상영’까지, 내내 한자리에 앉아서 대여섯이나 예닐곱 판을 내리 보았다고 했다. 마감에 쫓겨 바쁘지만, 드디어 하루쯤 말미가 나면 새벽부터 밤까지 극장에 눌러앉아 ‘똑같은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 만큼 다시 보면서 즐겼다’지. 영화평이란 글을 쓰는 분 가운데 ‘적어도 열 판쯤 다시보기’를 하고서 쓴 사람이 있을까?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우리나라 영화평론가는 모조리 쓰레기글조차 안 되는 엉터리라고 본다. 제발, 영화를 사랑해 주기를 빈다. 100판이나 500판을 다시보기를 하고 싶은 영화가 아니라면 1판조차 안 보아야 맞다고 생각한다. 두고두고 건사하면서 끝없이 되읽을 책이 아니라면, 구태여 돈을 들여서 살 책이 아니라고 느낀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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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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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6.23.

아무튼, 내멋대로 14 그림책



  어린이로 살던 무렵(1975∼1987)에는 ‘그림책’이 있는 줄조차 몰랐고, ‘그림책’이란 낱말조차 못 들었다. 푸름이로 지내던 무렵(1988∼1993)에는 ‘동화책’은 “애들이나 읽는 책이니 기웃거리지 말라”는 핀잔을 들었다. 싸움터(군대)에 끌려가서 짓밟히던 무렵(1995.11.6.∼1997.12.31.)에는 종이책을 하나도 못 읽었고, 새뜸(신문)조차 읽을 수 없었다. 이태 남짓 그냥 바보로 뒹굴며 총을 쏘고 등짐(군장)을 짊어지며 멧골을 끝없이 걸어서 넘으며 보냈다. 삶터(사회)로 돌아오고서 1998년 1월 4일에 《몽실 언니》를 읽는데 눈물을 가없이 흘렸다. “나는 왜 어린이로 살던 무렵에는 이런 아름책을 알려주는 어른도 없고, 배움터(학교)에서는 이런 책을 읽으라는 길잡이(교사)도 없는 채 반공독후감에 반공웅변에 허덕여야 했나?” 하고 울고 또 울었다. 1998년 1월 5일부터 어린이책(그림책+동화책+동시집)을 샅샅이 읽어내기로 다짐했다. 어린이란 몸으로 못 읽었어도 스물세 살 젊은 사내가 앞으로 ‘사람답고 사내답고 아저씨답고 할배답게’ 살자면, 책벌레로서는 ‘어린이책 사랑돌이’로 나아가야겠다고 느꼈다. 그런데 막상 책집에 가서 어린이책을 살피고 쥐고 펴고 읽으면, ‘엄마 손을 잡고 그림책을 보려던 아이들’이 “엄마, 저기 아저씨 있어! 어떡해?” 하더라. 얘야, 아저씨가 스물세 살이긴 해도 아직 아저씨 소리는 좀 낯간지럽지 않니? 그러나 네가 보기엔 그냥 아저씨일 테지. ‘아이 손을 잡은 엄마(아줌마)들’은 “저기요, 남자가 여기서 책을 보니 아이들이 못 보잖아요? 저리 비켜 주세요!” 하신다. 어린이책 있는 칸에서 책을 볼 적에는 아이나 아줌마가 있는지부터 살폈다. 이분들이 없을 적에만 부랴부랴 들여다보고, 아이나 아줌마가 이쪽으로 올라치면 먼저 달아났다. 지난 2020년에 서울시장 박원순 씨는 응큼질(성추행)을 뉘우치고서 값(처벌)을 달게 받는 길이 아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갔다. 그해에 서울시장·부산시장은 응큼질 탓에 새로 뽑아야 했다. 2022년 6월에 ‘포항 포스코 본사 무더기 응큼질(집단 성폭행)’이 불거진다. 이쪽 놈이건 저쪽 놈이건, 응큼짓을 일삼는 이는 수두룩하다. 겉만 번드르르한 응큼사내가 많으니 “모든 남자를 잠재적 성폭행범으로 여기는 주의주장”이 불거질 만하다. 그런데 “모든 남자를 잠재적 성폭행범으로 여기는 주의주장”을 펴면서 순이돌이 사이를 쫙 갈라치기를 하기보다는, 철없는 사내랑 어린 사내랑 젊은 사내 손에 어린이책(그림책·동화책)을 쥐어 줄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책을 읽혀서 ‘철없는 사내들이 마음부터 맑게 씻고 다스리도록 일깨우지’ 않고서야, 이 나라 ‘바보사내짓(남성 가부장권력 횡포)’이 사라질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기 똥기저귀를 맨손으로 갈 줄 모른다면, 아기를 부드러이 씻길 줄 모른다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함께 읽지 않는다면, 먼저 나서서 동화책을 살펴 읽다가 눈물에 젖고 웃음꽃을 터뜨리지 않는다면, 사내들은 메마른 바보넋으로 뒹굴지 않을까? 사내들 손에 있는 인문책을 덮으라 하자. 젊은이도 할아버지도 인문책은 그만 읽어도 좋다. 그림책과 동화책을 함께 읽자. 착하면서 참한 마음빛부터 가꾸어야 사내답고 사람다워 사랑을 속삭이는 아름살림을 지으리라 생각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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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젠더 전쟁’이 아닌 ‘어깨동무’로 나아가도록

함께 어린이책을 읽고

함께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함께 그림책을 읽고 노래하면

우리 삶터는 조금씩

아름다이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싸우지 마요.

서로 사랑하는 어린이책으로

마음을 가꾸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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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6.21.

아무튼, 내멋대로 12 오리궁둥이



  어린이로 살던 무렵, 힘든 여럿 가운데 하나는 바지였다. 나는 돌이(남자)란 몸으로 태어났는데 ‘돌이바지’를 입기 힘들었다. 둘레 어른들은 “오리궁둥이네. 톡 튀어나온 궁둥이가 귀엽네.” 하고 말했고,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 들어가니 ‘오리궁둥이’를 놀리는 순이(여자)가 참 많았다. 오리궁둥이인 터라 여느 돌이바지를 꿰자면 ‘엉덩이가 안 끼는 치수인 바지’라면 허리가 너무 헐렁해서 흘러내리고, 허리가 맞는 바지라면 엉덩이가 꽉 끼어 쉽게 튿어졌다. 엉덩이가 꽉 끼어 튿어지면 얼마나 창피한지. 튿어진 바지 엉덩이를 툭하면 기우던 어머니는 늘 한숨을 쉬며 “또 튿어지니? 어떡하니? 그렇다고 엉덩이에 맞는 바지는 허리가 너무 헐렁하고.” 하셨는데, 어느 날 엉덩이가 잘 맞고 허리가 안 흘러내릴 만한 바지를 내미셨다. 진작 이런 바지가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신나서 걱정없이 뛰놀았다. 그런데 이날 배움터(학교)에 가니 순이들이 깔깔대며 놀린다. “어머! 뭐야! 너 왜 여자바지를 입었어! 깔깔깔!” 어머니는 한참 골머리를 앓으시다가 마을 이웃집에서 ‘다 큰 순이가 못 입는 작은바지’를 얻어오셨더라. 비록 놀림을 받으며 얼굴이 벌개지기 일쑤였어도 ‘돌이바지’는 이제 더 안 입겠다고 다짐했다. 놀림질이란 그냥 한동안 손가락질을 하고 깔깔대다가 끝이지만, 엉덩이가 꽉 끼는 돌이바지로 뛰거나 달리자면 자칫 또 튿어질까 봐 걱정해야 하니, ‘놀림받으며 순이바지를 입기’로 했다. 돌이 몸으로 태어나도 오리궁둥이인 사람이 이따금 있다. 오리궁둥이인 돌이는 모두 바지 탓에 호된 어린날을 보냈겠지. 2022년 6월 20일 낮, 서울 어느 옷집에서 깡동바지(반바지)를 고르는데 옷집 일꾼 네 사람이 갈마들면서 “여긴 여자바지예요! 남자바지는 저쪽이에요!” 하고 큰소리를 낸다. “전 오리궁둥이입니다. 남자바지 못 입습니다.” 하고 말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곁짝한테 사줄 바지’를 고를 수도 있고, ‘딸아이한테 사줄 바지’를 살필 수도 있잖은가? 왜 멀쩡한 사람을 마치 ‘미친놈’이나 ‘치한’으로 여기면서 ‘순이바지’를 만지작거리지 말라며 뱀눈을 치켜뜰까? 순이(여자)도 돌이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순이가 치마를 훌훌 벗어던지고서 바지를 꿸 수 있는 삶(권리)을 누린 지 얼마나 되었는가? ‘바지순이(바지를 입은 여성)’를 그렇게 괴롭히고 손가락질하던 ‘미친 사내나라(가부장국가)’를 호되게 겪지 않았는가? 순이옷하고 돌이옷을 가를 까닭이 있을까? 저마다 몸에 맞는 옷을 살필 뿐이요, 저마다 즐길 옷을 누리면 아름다울 뿐이다. 순이가 바지를 마음껏 입는 삶을 누리듯, 돌이도 치마를 신나게 입는 삶을 누릴 때에, 비로소 이 나라는 아름빛으로 가득하면서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조그마한 길에 살짝 발을 내딛는 셈이리라 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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