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5.6.

숨은책 1057


《時體自解 內鮮間牘》

 김동규 글

 덕흥서림

 1943.5.20.



  우리는 아직 ‘우리말로 글쓰기’라는 길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은 누구나 말글을 마음껏 누리지만, 정작 ‘누구나 우리말로 글쓰기’를 한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지난날에는 임금한테 조아리는 ‘한문으로 글쓰기’를 얼추 오백 해 동안 잇다가 ‘일본말로 글쓰기’를 한참 해야 했습니다. 1945년 뒤로도 ‘한문·일본말로 글쓰기’라는 틀이 오래 이었어요. ‘수수하고 사랑스럽게 우리말로 글쓰기’라는 길은 이제 처음으로 세워야 하는 셈입니다. 《時體自解 內鮮間牘》은 1943년에 나옵니다. 이무렵에는 앞으로도 일본굴레가 그대로 이으리라고 여긴 사람이 대단히 많았다지요. 그냥 일본말과 일본글을 쓰면서 ‘일본사람 시늉’으로 살아야 한다고 여겼다지요. ‘내선(內鮮) + 문독(間牘)’이란 ‘일본을 섬기는 조선 + 글월쓰기 물음’으로 풀이할 만한데, 조선사람도 일본사람하고 똑같이 글월을 쓰는 매무새를 다스리는 ‘문화시민’이 될 수 있다는 줄거리입니다. ‘윗사람·벼슬아치(공무원)’한테 글월을 올릴 적에 이렇게 쓰면 된다고 알립니다. 적잖은 글바치는 중국글로 중국바라기를 하다가, 일본글로 일본바라기를 했습니다. 2000년을 훌쩍 넘어선 이즈음은 우리 스스로 어떤 말빛과 글결을 세우고 펴는 하루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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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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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5.6.

숨은책 1053


《日淸戰爭實記 第貳拾七編》

 河村直 엮음

 博文館

 1895.5.17.



  일본이 쳐들어오고 나서 얼마나 괴롭고 힘겨웠는가 하고 되새기면서 앞으로 나라를 다시 일구어야 한다는 뜻을 담은 《징비록》이란 책이 있되, 막상 조선 임금이나 벼슬아치는 안 거들떠보았습니다. 거꾸로 일본은 ‘징비록 일본옮김판’을 곧바로 펴내어 곱새겼다지요. 어느 일을 치르거나 겪든 쓴소리부터 살피고 삼켜야 비로소 거듭나면서 바로세우게 마련입니다. 이와 달리 어쩐지 우리나라에서는 쓴소리를 손사래치거나 아예 가로막는 얼거리라고 느낍니다. 《日淸戰爭實記 第貳拾七編》을 보았습니다. 일본이 1894∼95년에 일으킨 싸움판을 담아낸 꾸러미인데, 이태 만에 스물일곱째를 내놓았다는군요. 언제까지 얼마나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옆나라 일본은 스스로 무슨 ‘일이나 짓’을 꾀하든 차곡차곡 스스로 남겨서 돌아보는 버릇이 깊구나 싶어 새삼스럽습니다. 우리는 여러 우두머리(대통령)를 보았습니다만, 이제껏 어느 우두머리도 “나 잘했어!” 하고 외치는 꾸러미만 잔뜩 내놓았을 뿐, 잘잘못을 낱낱이 새긴 꾸러미를 내놓은 적이 없습니다. 뭐, 〈한겨레〉이든 〈조선일보〉이든 똑같아요. 글바치도 이녁 발자취를 남길 적에 ‘잘’만 적을 뿐, ‘잘못’은 거의 몽땅 숨기거나 가리거나 귀퉁이만 조금 적더군요. 잘못을 저질렀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잘못을 안 뉘우칠 뿐 아니라 숨기면서 잘난 척하니까 사납고 고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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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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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 1048


《文學과 民族》

 고은 글

 한길사

 1986.7.20.



  말하는 대로 스스로 살아낼 줄 안다면 아무 말이나 함부로 읊지 않을 뿐 아니라, 먼저 몸소 살아내지 않고서야 섣불리 말하지 않게 마련입니다. 말을 번드레하게 하기란 안 어렵습니다. 몸소 안 하더라도 입으로 읊을 적에는 둘레에서 ‘겉말’에 따라서 모시거나 추키기 쉽습니다. 몸소 안 하지만 글로 남길 적에도 둘레에서 ‘겉글’을 좋아하거나 따르기 쉽습니다. 1986년에도 굳이 한자로 책이름을 적은 《文學과 民族》은 ‘고은 말모음’이라지요. 이녁은 술이 좋아 술에 절어서 살아내는 사이에도 곳곳을 다니며 갖은 ‘좋은말’을 쏟아냈습니다. 이 좋은말을 펴냄터(출판사)와 새뜸(신문)에서 넙죽 받아서 퍼뜨렸습니다. 곰곰이 보면 고은을 비롯한 ‘겉말·겉글 무리’는 ‘까칠말’을 안 합니다. ‘까칠말’이란, 말하거나 글쓰는 사람부터 스스로 바꾸고 일구는 살림살이를 밝히는 말입니다. 몸소 바꾸고 일구는 살림길을 이웃한테 알리고 들려주면서 함께 바꾸고 일구자고 속삭일 적에 비로소 ‘속말·속글’로 피어납니다. 위에 앉아 내려다보는 우두머리 같은 마음으로 쏟아낸 말글이 지나치게 퍼진 이 나라입니다. 나란히 서서 삶글을 짓고 삶말을 펴는 이야기는 도리어 멀리하거나 쳐내는 이 나라이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고은 찌꺼기’를 말끔히 털어낸 글밭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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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 년 동안의 수많은 강연을 통해서 얻어진 논설의 일부가 이 책이 되고 있다. 곳곳에 강연의 흔적 그대로의 구술 분위기가 생생한데 굳이 가필하지 않았다. (3쪽)


마지막으로 내가 내 형제이며 내 불가피한 공동체인 오늘의 대학생에게 부탁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민중주체적 통일에의 행진입니다 … 대학생은 고민과 행위의 지성일지 모르나 특권과 소유의 야만이 아니어야 합니다. 이 점에서 대학생은 최후로 창조하는 사람들입니다. (368, 36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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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 1051


《La Mare au Diable》

 George Sand 글

 Librairie Hachette

 1935.



  헌책집을 다니다가 이따금 《La Mare au Diable》을 봅니다. 1846년에 처음 나온 글이라 하고, 손바닥만큼 자그마한 판에 얇게 묶은 ‘Librairie Hachette’ 판입니다. 프랑스는 제 나라 이야기를 퍽 작고 야무지면서 값싸게 1935년에도 알뜰히 여미는구나 하고 느끼는데, 우리로서는 한창 일본총칼에 억눌리면서 숨소리마저 못 내던 즈음입니다. 프랑스말을 익힌 어느 분이 지난 어느 날 이 책을 기쁘게 장만해서 반갑게 읽었을 테지요. 프랑스로 배움길을 다녀오며 읽었을 수 있고, 가까운 일본에서 장만해서 읽었을 수 있습니다. 또는 일본책을 다루는 우리나라 작은책집에서 슬쩍 들여와서 팔았을 수 있습니다. 두 나라를 잇는 일꾼(대사)이 아이들을 이끌고서 이 나라에서 지내는 동안 읽다가 책짐이 무거워서 내려놓느라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어른이 읽을 글뿐 아니라 어린이가 읽을 글을 두루 남긴 조르주 상드 님은 1876년에 숨을 거두는데, 1900년 너머까지 살며 글붓을 이었다면 셀마 라게를뢰프 님하고 나란히 보람(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만했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미처 때를 잡지 못 한 이슬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가시밭길을 이슬 한 방울이 되어 걸어간 앞사람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날 포근히 살림밭을 누릴 수 있습니다. 봄비가 봄들을 적시고, 봄볕이 봄숲을 북돋우고, 봄별이 모두한테 드리웁니다.


#조르주상드 #악마의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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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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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 1052


《성모는 이것을 원하신다》

 파울 하인쯔 슈미트 엮음

 동항 천주교회

 1965.7.10.



 ‘동항 천주교회’는 부산 부산진구 우암동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1965년에 내놓은 조그마한 꾸러미인 《성모는 이것을 원하신다》를 문득 펴며 그무렵 사람들은 무엇에 하루하루 마음을 기울여야 했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한겨레가 두나라로 갈려서 싸운 잿더미를 조금조금 추스르면서 자리를 잡아가는 마당이니, 숨돌리고 아이를 돌보면서도 미움과 그리움이 엇갈릴 뿐 아니라, 나라를 휘어잡은 서슬퍼런 총칼에 말소리도 섣불리 못 내던 나날은 그야말로 만만하지 않습니다. 버리는 책이란 없으며, 쪽종이 하나가 길에서 구를 일마저 없던 무렵을 살던 어제란, 어쩌면 까마득할는지 모르나 기껏 쉰 해 남짓입니다. 쉰 해 사이를 지나면서 버리는 책이 수두룩하고, 넘치는 종이 사이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는지 헤매기도 하고, 좋거나 훌륭하다는 책을 읽더라도 마음까지 빛나거나 거듭나지는 않는 요즈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묵은책을 넘기면서 ‘걱정’과 ‘싸움’을 읽습니다. “잘못을 저지르는 이들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거룩하되, 정작 절집부터 이 대목을 못 품는다고 느껴요. 나하고 눈길과 마음결과 삶길이 다른 사람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기란 참 어려울는지 모르나, ‘바로 나’라는 넋부터 그대로 맞아들이기가 훨씬 어려울 수 있습니다.


ㅍㄹㄴ


- 부산시 부산진구 우암동 189


서방 여러 나라에서도 그들의 원조와 경험으로 한국을 도우려고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 교회에서도 한국의 곤궁을 덜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꾀하고 있긴 하지만, 만약 어느때 가서 쏘련이나 중공이 다시 침략하게 되는 날에는 모든 것을 잃고 실의에 빠지고 말 것이 아닌가? 저 억센 공산주의 블로크를 대적해 싸우는 일은 이 작은 한반도 한국으로서는 벅차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1쪽)


더욱 곤란한 일은 1917년 조직화된 무신론이 공산주의라는 탈을 쓰고 쏘련에서 권력을 잡게 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천주께 대한 도전에 대항해서 천상 모후께서는 ‘거룩한 매괴의 모후’로 폴투갈의 파티마에 여섯 번이나 발현하셔서 쏘련의 그 그릇된 사상에 대항하도록 전세계에 호소하신 것이다.(11쪽)


마리아께서 하신 다음 말씀을 전했다. “죄인들을 위해 희생하라! 그리고 너희가 희생을 바칠 때면 ‘예수여, 네게 대한 사랑과 죄인들의 회개와 마리아의 하자 없으신 성심을 상해 드린 것을 기워 갚기 위해 하나이다’ 하며 하라고 말씀하시며, 성모께서는 지난번 여러 번의 발현 때 하신 것처럼 당신 손을 펴셨다.” (21쪽)


한국에서 천주의 사업을 위한 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이 책자의 소임이다 … 한국은 기구하기 위해 합장할 수많은 손을 가지고 있다. 비단 가톨릭 교우들의 손만이 아니라, 이 기구 군단의 대열에는 다른 교파들의 그리스도 신자들과 불교도들도 참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과 함게 규모가 큰 기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정치가들이 정책을 수립하고 협상을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 기구해야 하는 것이다. (116, 117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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