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 로봇 퐁코 8 - S코믹스 S코믹스
야테라 케이타 지음, 조원로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12.2.

헌살림이란 손살림


《고물 로봇 퐁코 8》

 야테라 케이타

 조원로 옮김

 소미미디어

 2025.9.24.



  누구나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고 느낍니다. 마음소리가 늘 또렷하게 들리는 사람이 있고, 얼핏 느끼는 사람이 있고, 아직 귀를 덜 틔워서 잘 느끼지 못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만 누구나 마음이 있기에 마음소리도 누구한테나 흐릅니다.


  까다롭거나 버겁구나 싶은 일을 맞닥뜨릴 때면 으레 마음소리 한 마디를 들어요. “자, 얼마나 즐겁니? 이 모든 고비와 가시밭과 봉우리는 네가 기쁘게 맞닥뜨리면서 넘어갈 배움길이란다.” 하는 마음소리를 가만히 들으면서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그렇지요, 수월하면 수월하게 거닐며 배웁니다. 고단하면 고단하게 내딛으며 배웁니다. 힘겨우면 힘겹게 맞이하며 배웁니다. 가벼우면 가볍게 풀면서 배웁니다.


  《고물 로봇 퐁코 8》을 읽으며 지난 일곱걸음을 되새깁니다. ‘낡은아이 낡다’라 할 만한 줄거리인데, 나이만 먹은 아이로 여기면 ‘낡다’요, 오래오래 사람 곁에서 이야기를 펴고 들려주고 들으며 함께 자라는 사이로 본다면 ‘날다’입니다. 언제나 말끝 하나로 만나고 닿고 잇습니다. 하루하루 함께 날듯 어울린다면 ‘날다’라는 이름이요, 그저 나이만 잔뜩 먹어서 곧 죽을 텐데 하고 여기면 하나도 안 배우면서 그만 ‘낡다’라는 이름입니다.


  어린이만 배우지 않습니다. 푸름이만 배우지 않습니다. 스무 살에 이르면 그만 배워도 되나요? 스물다섯 살이나 서른 살이면 안 배워도 되나요? 마흔 살이나 쉰 살에 배움길을 안 걸으면 어찌 바뀔까요? 예순 살이나 일흔 살이기에 굳이 뭘 배우냐고 손사래치면 어떤 모습인가요? 누구나 여든 살이건 온 살이건 두온 살이건 기쁘게 배우기에 새롭게 피어나는 나날입니다.


  꽃은 그저 꽃이되, 암꽃과 수꽃이 나란합니다. 모든 꽃은 그저 꽃이되, 첫달꽃과 셋쨋달꽃과 닷쨋달꽃과 일곱쨋달꽃과 아홉쨋달꽃과 열한쨋달꽃처럼, 다달이 다른 꽃입니다. 우리는 이른꽃과 늦꽃으로 나누기도 하고, 봄꽃과 여름꽃과 가을꽃과 겨울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달과 철마다 다르기에, 어떻게 다른지 그립니다. 암수가 다른 결이니 겉모습과 속빛을 헤아려 새롭게 이름을 붙입니다.


  나쁘게 붙이는 이름이 아니고, 따돌리거나 괴롭히려고 붙이는 이름이 아닙니다. 언제나 그저 그대로 고스란히 바라보는 동안 차분히 받아들이면서 나누는 이름입니다. 일본말 ‘퐁코’이든 우리말 ‘낡다’이든 대수롭지 않아요. 서로 다른 두 나라에서 서로 나란히 가리키면서 즐겁게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 이름 하나롤 혀에 얹으면서 새롭게 이 하루를 맞이하면 느긋하겠지요. ‘헌살림’이란 ‘한살림’하고 나란하되 다릅니다. ‘한살림’이란 함께 가꾸면서 하늘빛을 품는 길입니다. ‘헌살림’이란 우리가 저마다 손을 대어 손길과 손빛을 담으며 새롭게 허허바다처럼 뻗는 가없이 즐거운 길입니다.


ㅍㄹㄴ


“으음, 할아비는 이제 그만 가도 되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7쪽)


“날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아니에요. 방금 건 어쩔 수 없이.” (12쪽)


“할아버지가 복잡한 곳 안 좋아하는 거 뻔히 아는데도, 여기저기 막 데리고 돌아다녔으니까, 그래도 할아버지가 도쿄를 마음에 들어하면, 이렇게 퐁코랑 같이 가끔씩 놀러올 거 아니야?” (20쪽)


“유우나는 이런 데서 공부하고 있구나∼.” “훌륭하시죠!”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 거 맞겠지?” “모두가 즐거워하는 훌륭한 학교예요!” (46쪽)


“어지간히 소중한 로봇인가 봐요?” “뭐? 난 그냥 아직 쓸 수 있는 걸 버리는 게 아까워서!” “하지만 이렇게까지 오래된 로봇은 보통 수리를 안 해서요.” (96쪽)


“퐁코네 할아버지다!” “와―! 퐁코네 할아버지!” “퐁코네 할아버지가 아닌데.” (145쪽)


#ぽんこつポン子 #矢寺圭太


+


《고물 로봇 퐁코 8》(야테라 케이타/조원로 옮김, 소미미디어, 2025)


이런 망측한 곳을

→ 이런 끔찍한 곳을

→ 이 볼썽없는 곳을

→ 이 꼴사나운 곳을

8쪽


같이 가끔씩 놀러올 거 아니야

→ 같이 가끔 놀러올 수 있잖아

20쪽


보통 수리를 안 해서요

→ 으레 안 고쳐서요

→ 다들 손을 안 봐서요

9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몸과 지구를 지키는 화장품 사용 설명서 철수와영희 세계시민 문해력 1
배나린.배성호 지음, 최경호 감수 / 철수와영희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5.8.16.

푸른책시렁 183


《내 몸과 지구를 지키는 화장품 사용 설명서》

 배나린·배성호

 철수와영희

 2025.4.5.



  ‘꾸리다’하고 ‘꾸미다’는 말끝도 다르고, 말뜻과 말길도 다릅니다. ‘꾸미다’하고 ‘일구다’는 말빛과 말씨와 말숨도 다르고요. ‘화장품(化粧品)’은 “화장을 하는 가루나 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화장(化粧)’을 “화장품을 바르거나 문질러 얼굴을 곱게 꾸밈”으로 풀이하는군요. 뜬금없습니다. 여러모로 보면 ‘화장 = 꾸밈’입니다. 우리말 ‘꾸밈·꾸미다’는 “보기에 좋게 만지다”를 뜻하고, “없는 모습을 굳이·애써·따로·억지로 만들다”를 나타내요. 오늘날 우리가 ‘화장·꾸밈’을 할 적에는 “나한테 없다고 여기는 좋은 얼굴빛이기에, 사람들이 나를 좋게 보아주기를 바라면서 억지로 얼굴빛을 만들다”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꾸밈길은 안 나쁘되, 딱히 좋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꾸미느라 힘과 돈과 품과 하루를 쏟아부어야 하니, 정작 ‘겉모습’ 아닌 ‘마음’을 가꾸는 길하고는 자꾸 멀어요. 겉얼굴을 보기좋게 만지느라, 마음을 가꾸는 길하고는 등지게 마련이요, 마음은 빈 채 겉몸만 반드레하고 맙니다. 게다가 ‘얼굴꾸밈’으로 안 그쳐요. ‘얼굴뜯기(성형수술)’로 치달으면서, 우리 스스로 몸에 칼을 대어 괴롭히고 죽이는 셈입니다.


  우리가 다 다른 사람이라면, 다 다른 키에 몸무게에 몸피에 팔다리에 얼굴일 노릇입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마음과 삶과 살림을 가꾸며 어깨동무할 적에 아름다운 터전이라면, 어떤 몸짓과 매무새와 얼굴과 말씨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경상사람이 경상말을 하고 전라사람이 전라말을 하면 됩니다. 다만, 막말이나 깎음말이나 밉말이나 고약말을 하지는 말아야지요.


  푸른책 《내 몸과 지구를 지키는 화장품 사용 설명서》는 오늘날 푸름이가 얼굴을 꾸미려는 길에 어떤 꽃물(화장품)을 어떻게 가려서 쓰면 어울릴는지 찬찬히 짚습니다. 꽃물을 아예 안 쓰는 길이 그야말로 아름답습니다만, 굳이 써야 한다면 왜 어떤 꽃물을 쓸 노릇인가 하고 살피는 줄거리입니다.


  우리는 ‘몸’이라는 옷을 입는 사람입니다. 우리 숨결은 ‘넋’이 바탕인데, 우리 넋은 몸을 입고서 삶을 누리고 겪고 마주하면서, 이 모든 하루를 마음에 이야기로 담습니다. 그래서 얼굴이나 몸을 꾸미는 길에 힘을 쓸수록 정작 ‘삶을 마음에 담기’하고 먼 채, ‘겉모습에 얽매이느라 하루 이야기가 없이 삶이 흐르’고 맙니다. 어른과 푸름이는 무엇을 볼 노릇일까요? 푸름이와 어른은 몸과 옷과 얼굴을 어떻게 바라볼 일인가요?


  ‘풀’과 ‘털’한테서 얻은 실로만 뜨개질을 하려고 힘을 기울여도, 이 땅을 사랑하고 살리는 길이 될 만합니다. 그런데 뜨개하는 분 가운데 ‘손맛(질감)’을 더 따지느라, 정작 실이 어떤 밑감인지 안 들여다보는 분이 대단히 많아요. 옷도 매한가지입니다. 풀과 털한테서 얻은 실로만 지은 옷을 입을 적에는 쓰레기가 나올 일이 없습니다만, 풀과 털이 아닌 실로 만든 옷이라면 으레 쓰레기판입니다. 밑감이 아닌 멋을 챙기려 하면 땅과 바다도 망가뜨릴 뿐 아니라, 먼저 우리 몸을 망가뜨려요. 꽃물(화장물)도 매한가지입니다. 숱한 꽃물은 흙이나 냇물이나 바다나 논밭으로 스미면 이 땅과 터전을 몽땅 어지럽히거나 더럽힙니다.


  《내 몸과 지구를 지키는 화장품 사용 설명서》를 쓴 글님은 꽃물(화장품)을 여태껏 썼고 앞으로도 쓸 마음으로 이 꾸러미를 여미었구나 싶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굳이 꽃물을 안 쓰려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이제껏 꽃물을 쓴 적이 없고 앞으로도 쓸 마음이 없는 사람들 마음과 살림길을 더 찾아보고서 글을 여미면 어떨는지요?


ㅍㄹㄴ


화장품의 유해성과 부작용에 대한 생각보다 화장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에요. (23쪽)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성형 수술이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일 년에 약 65만 건이나 된다고 해요. (54쪽)


화장품 안전성 검사 과정에서 오랫동안 수많은 동물들이 희생되었습니다. (64쪽)


선크림의 이런 유해 성분은 산호초뿐 아니라 다양한 해양생물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작은 물고기나 플랑크톤도 이런 물질에 노출되면 생존율이 낮아지고, 이는 해양 생태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74쪽)


파마약과 염색약에 들어 있는 포름알데히드는 미용실 공기 상태를 악화시키는 발암 물질입니다. (81쪽)


화장품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잠을 자서 다음날까지 있으면 피부에는 큰 부담이 생긴답니다. 피부에 화장품이 남아 있으면 모공을 막아 여드름이나 피부 질환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또한 피부가 쉴 수 없게 되면서 피부가 건조해지고 피부 노화가 빨리 진행되거든요. (86쪽)


피부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매일 화장을 하면 피부가 숨을 쉴 수 없게 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없답니다. (96쪽)


샴푸의 성분 중 특히 계면활성제라든지 향료가 두피에 남아 있으면 염증을 유발할 수 있고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10쪽)


+


《내 몸과 지구를 지키는 화장품 사용 설명서》(배나린·배성호, 철수와영희, 2025)


매일 화장을 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에 비해

→ 날마다 꾸미고 이야기를 하지만

→ 늘 꽃꾸밈에 이야기를 하는데

4쪽


이 빽빽한 외계어들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 이 빽빽한 별말은 도무지 무슨 뜻인지

→ 이 빽빽한 저쪽말은 참말 무슨 뜻인지

→ 이 빽빽한 먼말씨는 참으로 뭔 뜻인지

5쪽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 낯설게 느낄 수도 있어요

10쪽


안쓰러운 눈빛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안쓰러운 눈빛입니다

→ 안쓰럽게 누구를 바라봅니다

40쪽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성형 수술이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 우리나라를 보면 가장 많이 뜯어고친다고 합니다

→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 많이 칼을 댄다고 합니다

54쪽


꾸밈 노동과 외모지상주의로 인해 불필요하게 힘든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 꾸밈일과 얼굴꽃 때문에 쓸데없이 힘듭니다

→ 꾸밈일과 얼굴 내세우기 탓에 덧없이 힘듭니다

54쪽


위와 같은 조문을 읽고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답니다

→ 이 글을 읽고서 아름다운 숨빛을 다시 생각해 본답니다

→ 이 글자락을 읽고서 빛나는 숨결을 더 생각해 본답니다

→ 이 밝힘글을 읽고서 우리 숨꽃을 새로 생각해 본답니다

67쪽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 따가운 햇갈을 그으려고

→ 햇살이 따가워서

72쪽


모공을 막아 여드름이나 피부 질환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 털구멍을 막아 여드름이나 살갗앓이가 생기거든요

→ 살구멍을 막아 여드름이나 살갗앓이로 번지거든요

86쪽


세안의 기본적인 목적은 피부에 자극을 적게 주면서 피부의 오염을 씻어 내는 것이랍니다

→ 살갗을 살살 건드리면서 때를 벗기려고 얼굴을 씻습니다

→ 살결을 가볍게 비비면서 찌꺼기를 벗기려고 낯을 씻습니다

87쪽


피부가 민감하거나 트러블이 있을 때는

→ 살이 쉽게 다치거나 뾰루지가 날 때는

→ 살결이 여리거나 두드러기가 날 때는

96쪽


화장을 하지 말자는 노 메이크업 운동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많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 얼굴을 꾸미지 말자는 물결이 온누리에서 널리 일어납니다

→ 꽃꾸밈을 하지 말자는 너울이 푸른별에서 두루 일어납니다

9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 - Yerong's Doodles 예롱쓰의 낙서만화
예롱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7.12.

“한국말 잘하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

 예롱

 뿌리와이파리

 2019.10.28.



  처음 보는 사람한테 “한국말 잘하네?” 하고 말을 찍 뱉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이 그이보다 나이가 많을 수 있으나 아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한국말 잘하네?”를 가볍게 웃음말로 삼으면서 하하호호 떠드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이런 말을 이웃나라 사람한테 함부로 뱉는 사람도 많지만, 우리나라 사람한테 마구 뱉는 사람도 많아요. 저는 열 살 무렵부터 쉰 살에 이르도록 “한국말 잘하네?” 하고 뱉는 말을 숱하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뱉는 이는 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어머, 한국사람이야? 한국사람 같지 않은데? 외국사람 아니야?” 하고 되묻기 일쑤입니다. 그야말로 스스로 얼굴에 쇠가죽이라도 뒤집어썼는지, 창피도 부끄럼도 모르는 말과 매무새예요.


  여태까지 누가 “한국말 잘하네?”를 읊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할매할배도 많지만, 아줌마 아저씨도 많고, 젊은 순이돌이도 많고, 어린이와 푸름이도 많습니다. 그냥 다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어떤 굴레나 틀에 길들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한국말 잘하네?”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읊습니다. 그렇다면 이분들은 이런 말만 읊을까요? 아닙니다. 이 터전과 마을과 푸른별과 들숲메를 바라보는 눈도 나란히 일그러지더군요. 들녘을 들녘으로 안 바라보고, 숲을 숲살림으로 안 느끼고, 멧자락을 멧빛으로 안 헤아리는 삶인 터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일그러진 말씨를 그냥그냥 읊는다고 느낍니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는 검은살갗인 짝지하고 지내는 동안 보고 듣고 겪고 치러야 한 숱한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를 간추린 꾸러미입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2019년뿐 아니라, 지난 2009년이나 1999년에도, 또 2025년에도 아직 단단히 틀어박힌 굴레와 말뚝을 짚는다고 할 만합니다. 살짝 샛길로 빠진 줄거리가 더러 있되, 우리 스스로 눈에 들보를 쓴 얄궂은 모습과 민낯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바꾸고 가꾸자는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우리나라를 보면, 서울사람은 스스로 으뜸이자 첫째입니다. 서울밖은 언제나 버금이나 둘째일 뿐 아니라 밑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서울에서조차 높낮이가 있어요. 서울 어느 곳이 더 높거나 낮다고 여겨요.


  숲에는 아무런 높낮이가 없습니다. 바다와 하늘에는 아무런 높낮이가 없지요. 더 뛰어난 별이나 덜떨어지는 별은 없습니다. 서로 다르기에 나란한 별이자 숲이자 바다이자 하늘입니다. 서로 다르기에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울 삶과 사람 사이입니다. 이제 눈에서 들보를 치울 노릇입니다. 들보는 집에 놓아야지요. 들보를 집에 안 놓고서 눈에 두면 집도 와르르 무너집니다.


ㅍㄹㄴ


가나의 여러 가지 문화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Akan이 이름을 짓는 방식이었다. (119쪽)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면, 내가 가진 틀부터 부숴야 될 것 같아. (190쪽)


“‘좋은 의도’로 하면 차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239쪽)


차별 자체에 공감하기 어려울 수는 있어. 하지만 상대방이 겪었을 감정에 먼저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없는 걸까? (302쪽)


아무리 몇몇 교사들이 노력해도, 가정이나 사회에서 다시 도루묵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321쪽)


우리는 모두 한때 아이였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며 경험하고 배웠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333쪽)


“내가 너한테 ‘영어 잘한다’고 평가할 필요가 없지.” … “그 사람이 한국인일 수도 있고, 한국어를 나보다 잘할 수도 있는데, 겉모습만 보고 평가하는 거니까.” (378, 379쪽)


+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예롱, 뿌리와이파리, 2019)


나만의 책이 아닌 너와 나의 책을 만들게 되어서 기뻐

→ 나만이 아닌 너와 내가 함께 책을 지어서 기뻐

→ 내 얘기만이 아닌 너와 내 얘기로 책을 묶어서 기뻐

5


뭐, 그거야 이해할 수 있다지만

→ 뭐, 그쯤이야 그렇다지만

→ 뭐, 그 일이야 끄덕이지만

17


흑인은 성기가 크다는 인종차별적인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 같아

→ 검으면 고추가 크다고 비웃는 굴레에서 비롯한 듯해

→ 검은이는 밑이 크다고 깔보는 버릇에서 비롯한 듯싶어

46


사회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상대적 약자인 여성으로서, 인종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야

→ 삶터로나 몸으로나 여린 순이로서, 사람씨보다 아늑하느냐가 큰일이야

→ 마을에서나 몸으로나 작은 쪽인 순이로서, 갈래보다 든든하냐가 큰일이야

84


미의 기준이라는 실체도 없는 것을 왜 남들이 함부로 판단해?

→ 귀엽다는 눈금은 없는데 왜 남들이 함부로 따져?

→ 멋있다는 잣대는 없는데 왜 남들이 함부로 가름해?

→ 곱다는 길은 없는데 왜 남들이 함부로 다뤄?

96


완전 시혜적인 태도잖아요

→ 아주 베푸는 눈이잖아요

→ 그저 내주겠다잖아요

236


‘좋은 의도’로 하면 차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 ‘뜻이 좋으’면 따돌림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듯해요

→ ‘좋게좋게’ 하기에 빻지 않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구나 싶어요

239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톨이의 지구 침략 6
오가와 마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7.5.

이 별과 저 별


《외톨이의 지구 침략 6》

 오가와 마이코

 김시내 옮김

 학산문화사

 2016.8.25.



  쳐들어간다거나 쳐들어온다고 여기지만, 막상 치거나 자르거나 벨 수 없습니다. 얼핏 보면 목이 날아가고 팔이 잘리는 듯하지만, 겉모습일 뿐입니다. 모든 풀과 나무는 아무리 잘리고 베여도 다시 줄기를 올리고 가지를 냅니다. 벌레가 아무리 잎을 갉아도 새로 잎이 돋습니다.


  벌레가 먹어도 잎은 잎이요 풀은 풀입니다. 도끼로 베여도 나무는 나무입니다. 불타더라도 나무는 늘 나무예요. 들숨날숨을 잇는 몸을 입어도 사람이고, 들숨날숨을 멈추더라도 사람입니다.


  《외톨이의 지구 침략 6》을 곱씹습니다. 이 별로 찾아온 저 별 누구는 이 별을 빼앗으려는 마음입니다. 드디어 이 별을 빼앗을 수 있구나 하고 느끼던 날 아무래도 이 별을 빼앗지 못 합니다. 이 별로 쳐들어와야 할 ‘우리별 사람들’이 아무도 안 오거든요. 이미 우리별은 저 먼 별누리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는다고 여깁니다. 틀리지는 않은 얼개이지만, 맞지 않기도 한 얼개입니다. 무엇이 태어나고 무엇으로 살아가고 무엇이 죽을까요? 이 실마리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삶도 죽음도 헛바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넋과 얼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몸을 헌옷처럼 내려놓고서 새옷처럼 갈아입습니다. 여러모로 보면 푸른별에 갇힌 굴레요, 곰곰이 보면 파란별에서 사랑을 빛내는 잔치입니다.


  이 별은 이곳에서 반짝입니다. 저 별은 저곳에서 눈부십니다. 낮에는 어느 별에서나 환하게 해를 품고서 활짝활짝 활갯짓을 폅니다. 밤에는 어느 별에서나 밝게 이웃별을 받아들이면서 방긋방긋 웃음꽃을 맞아들이는 꿈길로 나아갑니다.


  모든 주먹질과 죽임질이 덧없는 줄 알아볼 때라야 사람입니다. 주먹을 움켜쥐면서 윽박지르고 터뜨리는 동안에는 어느 누구도 사람이 아니요, 별사람도 아닌, 그저 죽음깨비입니다.


ㅍㄹㄴ


“어제랑 분위기가 전혀 다른 게 기분 나쁘다 싶어서.” “하항! 정에 얽매여서 금방 눈물을 보이는 사람한테는 듣고 싶지 않거든?” (30쪽)


“난 아직 오르베리오의 계약에 묶여 있어. 내 상태 같은 건 상관없이 그렇게 명령할 수 있을 텐…….” “무슨 소리야? 넌 내 친구잖아. 이렇게 무서워하는 친구한테 억지로 전투를 강요할 수 있겠냐고!” (117쪽)


‘무서워. 무섭다. 그치만, 리코도 언제나 이런 기분이었겠지.’ (131쪽)


“너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었어? 그 사람들은 어디 있지? 가르쳐 줘! 다들 어디 있어? 난 언제까지 이 별에서 기다리면 되는 거야?” (141쪽)


“아무리 바보 취급을 당한다 해도 난 친구가 죽도록 내버려두는 짓은 못 해.” (164쪽)


#ひとりぼっちの地球侵略 #小川麻衣子


+


《외톨이의 지구 침략 6》(오가와 마이코/김시내 옮김, 학산문화사, 2016)


밤하늘이 보인다. 저 반짝임 속에 고향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 밤하늘이 보인다. 저 별빛 사이에 우리별은 이미 있지 않다

→ 밤하늘이 보인다. 저렇게 반짝이지만 우리별은 이미 없다

18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와, 같은 3
아소 카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1년 11월
평점 :
품절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7.5.

빛나는 두 얼굴


《와, 같은. 3》

 아소 카이

 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21.12.15.



  흔히들 ‘행운’이 찾아오기에 ‘행복’하다고 여기지만, 가시밭길을 그저 조용히 걸어가는 삶도 ‘기쁨’이자 ‘보람’입니다. 꽃밭을 가꾸면서 꽃내음을 맡으면서 언제나 고즈넉이 꽃빛을 품는 시골살림도 ‘즐거움’이자 ‘빛’입니다.


  얼핏 보면 돈을 아끼겠다면서 ‘에어컨’을 안 쓸 수 있지만, 이보다는 ‘에어컨’을 틀면 틀수록 몸이 망가지기 때문에, 여름에 기쁘게 땀을 흘리면서 스스로 몸을 돌보는 길을 나아갈 만합니다. 푸른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에어컨’을 쓴 지는 기껏 온해(100년)조차 안 되고, 쉰 해도 안 되며 서른 해가 될 동 말 동합니다.


  땀흘려 일하면서 몸을 튼튼히 돌보고, 느긋이 쉬면서 마음을 든든히 가꾸는 삶입니다. 땀과 삶과 하루를 글로 옮겨도 아름답고, 따로 글로 안 옮겨도 아름답습니다. 글로 태어나지 않은 아름다운 나날이 흐드러진 곳이 우리별이지 싶습니다.


  《와, 같은. 3》(아소 카이/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21)을 돌아봅니다. 아이하고 살아가는 길이 어떻게 새길이면서 새살림이면서 새사랑으로 피어나는지 뒤늦게 알아보는 줄거리입니다. 내가 설마 이렇게 해낼 수 있을까 싶어서 걱정하고 두려웠지만, 막상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기에, 오히려 언제나 아이한테서 배우는 나날을 들려주는 줄거리이기도 합니다.


  함께 듣고 같이 배우는 모든 하루가 빛납니다. 아이를 낳아서 돌보자면 틀림없이 아이한테 온하루를 기울일 노릇인데, 이렇게 아이한테 들이는 온하루가 있기에, “늘 나를 나로서 바라보는 틈”을 누려요. 아이하고 눈을 마주하는 사이에 “언제나 나를 나로서 품는 손길”을 누리고요.


  아이는 어버이 얼굴을 보면서 빛납니다. 어버이는 아이 얼굴을 보면서 빛나요. 우리가 꼭 아기를 낳아야 하지는 않습니다. 몸으로 낳든, 이웃집 아기를 돌아보든, 모두 나란히 빛나는 숨결입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가 다 다르게 빛나는 사랑인 줄 알아보려고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으면 되어요. 내딛기에 배우고, 배우기에 익히고, 익히기에 나누고, 나누기에 사랑이 샘솟고, 사랑이 샘솟으니 이 삶을 언제나 노래합니다.


ㅍㄹㄴ


“나도 이 나이 먹도록 아직 잘 모르는 매너도 있거든. 하지만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계속 식사를 해야 하지. 기왕이면 깔끔하게 먹을 수 있는 게 좋지 않겠니? 젓가락질하는 법을 잊어버리면, 잘하는 사람을 흉내내면 돼.” (22쪽)


“어머니가 예쁜 옷을 입고 싶어하는 것처럼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아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전혀 안 입은 옷도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입혀 주세요. 아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크니까요. 아깝지 않습니까.” (45쪽)


“나도 젊고 돈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몰라서 쩔쩔맸을 거야.” “그런가.” “나이를 먹어도 전혀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54쪽)


‘아이란 굉장하구나. 그저 우는 줄만 알았는데, 갑자기 상을 준다.’ (120∼121쪽)


#のような #麻生海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