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마리코 9
오자와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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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여든살림 지나 온살림



《80세 마리코 9》

 오자와 유키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11.30.



  나라가 차츰 늙어 간다고 합니다. 어려운 말로는 ‘고령화 사회’일 텐데, 쉽게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씨로는 ‘늙는 마을’입니다.


  늙는 마을이란 나쁠까요. 또는 좋을까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을까요.


  마을이 늙는다면, 늙은 사람만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나라가 늙는다면, 참말로 나라에 늙은 사람이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에다가 젊은이가 꿈날개를 펴면서 날아오를 만한 터전이 아니라는 얘기이지요.



“나나미도 가엾네. 우리 딸아이가 생각난다.” “네?” “마음씨 고운 아이란다. 내가 잘 키웠지. 나나미도 아빠 엄마한테 사랑 듬뿍 받으면서 커서, 남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착한 아이야.” (23쪽)



  마을이며 나라가 너무 어리기만 해도, 너무 젊기만 해도 치우칩니다. 너무 늙기만 해도 치우치는 판입니다. 아기, 어린이, 푸름이, 젊은이, 늙은이, 이렇게 고루 있으면서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는 터전이 아름다우면서 살기에도 좋겠지요. 어린이한테서 새롭게 피어나는 꿈을 바라보고, 젊은이한테서 꿈을 지피는 땀방울을 바라보며, 늙은이한테서 꿈을 가꾸며 얻은 슬기를 바라봅니다. 푸름이는 이들 사이에서 스스로 새롭게 나아가고픈 꿈을 익히는 눈빛을 바라보겠지요.



‘사랑은 당연히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몇 년을 수십 년을 거듭 쌓아왔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거야.’ (29∼30쪽)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는 큰고장에 어린이랑 푸름이랑 젊은이가 지나치게 쏠렸습니다. 이 나라 큰고장에는 숲도 바다도 들도 없는데 어린이·푸름이·젊은이가 지나치게 많아요. 이 나라 시골이며 숲이며 바다이며 들에는 너무 늙은이투성이입니다.


  이 골을 슬기롭게 풀 길은 틀림없이 있어요. 일자리나 배움터를 시골로 옮겨야 하지 않아요. 살아가는 마음이며 생각을 확 엎어야지요.


  몸이 아프면 어마어마한 돈도 부질없습니다. 간당간당한 목숨줄이라면 엄청난 이름값도 덧없습니다. 골골대고 앓다가 곧 죽을 판이라면 무시무시한 주먹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돌림앓이가 판을 치는 2020년 한국은 어떤 살림길을 내다볼까요? 왜 이 나라는 한 해쯤 대학입시를 아예 그만두려는 생각을 못 할까요. 무서워서 엄두를 못 낼까요? 그러나 돌림앓이가 걱정스럽고 무서우며 두렵기에 학교를 한 달 넘게 쉬었지요. 언제 학교를 다시 열는지 모를 노릇이지요. 하늘길도 거의 다 막히거나 막아요. 왜 그런가요? 그 어떤 것보다 우리 몸을 튼튼하게 건사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이 첫째이기 때문입니다.


  여든 살 할머니가 ‘누리잡지’ 편집장이 되어 ‘늙어버린 마을’을 뒤집어엎는 생각을 새롭게 지피는 이야기가 흐르는 《80세 마리코 9》(오자와 유키/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을 읽으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여든 살 할머니는 일할 적에 스스로 몇 살인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저 하고픈 일을 합니다. 더구나 하고픈 일을 할 적에는 ‘여든이란 나이까지 살아오며 지켜보고 겪고 마주하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웃고 울며 노래하고 춤춘 모든 걸음걸이’가 새 앞길에 새 빛줄기가 되는 줄 깨닫습니다.



“고부간이란 참 어려운 거야. 좋아서 맺게 된 관계가 아니니까. 내가 낳았다고 해도 나와 코지는 다른 인간이고, 코지가 선택한 당신은 내가 선택한 인간이 아니야.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더 숨이 막히게 되지.” (50쪽)



  열여섯 살 푸름이한테 ‘어느 대학교에 시험을 치르려 하느냐’만 묻는다면 삶이 메마르지 않을까요? 열여덟 살 푸름이한테 ‘어느 일터에 들어가서 돈을 얼마나 벌려 하느냐’만 묻는다면 삶이 팍팍하지 않을까요? 열두 살 어린이한테 ‘인문교양 학습만화’만 손에 쥐어 준다면 삶이 따분하지 않을까요?


  스물여섯 살 젊은이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활짝 웃을 만할까 하고 생각할 때입니다. 서른여섯을 지나고 마흔여섯을 거치며 쉰여섯을 가로질러 예순여섯을 달리다가 일흔여섯을 뛰어넘고 여든여섯을 노래하는 나이에는 하루를 어떻게 지어서 어떤 기쁨슬픔을 나누면서 환하게 빛나는가를 돌아볼 때라고 여겨요.



“청과점 사장입니다. 40년간 채소를 팔아 왔습니다. 모델은 처음이에요! 잘 부탁 드립니다!” (101쪽)



  청와대를 없애면 좋겠습니다. 구태여 꽉 맏힌 집에 틀어박혀 책상맡에 앉을 까닭이 없어요. 굳이 서울 한켠에 머물지 말고 다달이 나라 곳곳을 돌면서 조그마한 길손집 한켠을 일터로 삼아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경호원이란 사람으로 둘둘 감싼 우두머리가 아닌, 손수 밭을 가꾸고 손수 밥을 짓고 손수 빨래랑 설거지를 하고 아기를 돌보는 어버이다운 마음결로 나라일을 돌보는 이가 나라지기로 서면 좋겠어요.


  어깨띠를 두르고서 목청 높여 ‘나를 찍으시오’ 하고 굽신거리는 이가 아닌, 4월이 눈부신 이맘때 밭자락에서 같이 마늘을 캐고, 숲자락에서 나무를 어루만질 줄 아는 착하고 참한 사람이 벼슬아치 노릇을 하면 좋겠습니다. 바람을 알고 별을 알며 흙을 알고 풀꽃나무를 아는 이가 나라일이며 벼슬을 맡을 적에 이 나라가 아름답게 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상점가가 계속될지 그거야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손님이 와준다’는 게 제일 행복해요.” (127쪽)



  만화책 《80세 마리코》에 나오는 마리코 할머니는 여든을 넘긴 나이입니다. 할머니 곁에는 나이 많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제 한국도 일본도 어디나 늙은 사람이 가득하니까요. 일흔 줄에도 옷집을 꾸리고, 푸성귀집을 이끌며, 찻집을 보듬는 이들은 그동안 무엇을 보고 느끼며 생각했을까요. 오랜 나날 한길을 파면서 마을살림을 지은 이들 마음에는 어떤 새싹이 돋을까요.


  고작 여든밖에 안 된 나이에 ‘스스로 신나서 하는 일’이 없이 골칸에 갇혀서 골골거리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쳐다보아야 하는 어린이나 푸름이라면, 이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앞으로 지피고 싶은 꿈이 자랄 만할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아,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살려나?’ 하는 생각을 얼결에 품지 않을까요. ‘아, 나도 저 나이에 저렇게 빛나면서 꿈길을 가면 즐겁겠네!’ 하는 마음을 가만히 품도록 우리 삶터를 구석구석 가꿀 노릇이리라 생각해요.



‘내일 일은 모른다. 답이란 없다. 하지만 지금을 바꾼다면 다른 내일이 올지도 모르지.’ (131쪽)



  나이는 몸에 깃든 해입니다. ‘해’는 하늘에서 이 별을 비추는 별이면서, 삼백예순닷새를 아우르는 이름입니다. 여든 ‘해’를 몸에 품는 동안 어떤 ‘해’를 마음에 품은 삶일까요.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란 ‘해를 먹는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철마다 다른 숨결을 먹고, 네 철을 꾸러미로 여민 해를 먹으며, 숱한 바람이며 풀꽃나무이며 노래이며 빛이며 사랑을 고스란히 먹기에 ‘해’를 차곡차곡 모두지 싶습니다.


  온살림을 바라보는 마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혼자 차지하면서 꼭두에 서는 다툼판이 아닌, 고루두루 어우러지는 마을길을 닦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요. 대학입시를 없애기를 바라요. 전쟁무기를 없애기를 바라요. 저마다 다른 살림지기로 살아가면서, 서로서로 곱게 살림빛을 지피기를 바라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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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리 1 - S 코믹스
이시이 아스카 저자, 김현주 역자 / ㈜소미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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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타고난 마음은 오롯이 하나



《세상의 소리 1》

 이시이 아스카

 김현주 옮김

 소미미디어

 2019.7.25.



  우리 입에서 흐르는 말은 언제나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이지 싶어요. 이야기이거나 핑계입니다. 또는, 참말이거나 거짓말입니다. 속말이거나 빈말입니다. 마음말이거나 겉말입니다. 삶말이거나 굴레말입니다.


  두 갈래로 흐르는 말길인 줄 느낀다면 스스로 어느 쪽으로 갈 적에 즐거운가 하고 헤아릴 만하겠지요. 가붓하게 이갸기나 참말이나 속말이나 마음말이나 삶말로 나아갈 만합니다. 눈치를 보면서 핑계나 거짓말이나 빈말이나 겉말이나 굴레말에 매일 수 있습니다.



“어째서? 당연히 알 수 있지 않나? 섬에서 태어난 아이니까.” (20쪽)



  새해 새봄으로 맞이한 사월 첫머리에 모과나무 곁에 섭니다. 사다리를 척 받칩니다. 모과꽃을 훑으면서 모과잎도 땁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터지는 꽃은 어마어마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씨앗이었습니다만 어느새 어린나무로 자랐고, 이윽고 푸른나무로 빛나더니, 어느새 어른나무로 활짝 우거져요.


  어린나무일 적에는 꽃이 피지 않습니다. 푸른나무로 접어들며 한두 송이쯤 꽃이 터져요. 기다리고 지켜보고 쓰다듬고 말을 걸고 아낀 나날이 흐르며 비로소 꽃이 열 스물 쉰이 터지더니 이제는 가지마다 백이 넘는 꽃망울이 맺어요.


  그런데 이 꽃은 모두 열매로 이어가지 않아요. 생각해 봐요. 모과뿐 아니라 모든 열매나무가 매한가지인데요, 피어난 꽃이 모두 열매가 되면 나뭇가지가 찢어집니다. 나무 스스로 바람을 불러서 꽃을 떨굽니다. 벌나비나 새를 불러 꽃을 또 떨구지요. 그리고 사람을 불러 꽃을 새롭게 쓰기를 바랍니다.



“타츠미 군, 아까 하던 얘기 말인데, 소리라고 하면 섬은 소리로 가득해.” “조용하다 생각하는데요.” “맞아. 조용하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더 가득한 거야. 파도와, 벌레, 바람의 소리.” (37쪽)



  모과꽃을 해말림으로 건사해서 찻물을 마시면 좋겠다고 느꼈어요. 처음부터 느끼지 않았고, 둘레에서 꽃차를 누리는 모습을 보다가 ‘우리 집 나무도 꽃을 잔뜩 피우’니까, 나무 한 그루에서 우리 집안에서 누릴 꽃차를 얻으면 되겠다고 깨달았어요.


  사람이 나무를 지켜보듯, 나무도 사람을 지켜보았으리라 생각해요. 사람이 어린나무를 두고두고 아끼듯, 나무도 사람이 자라는 결을 고이 바라보면서 오래오래 사랑하지 싶어요. 《세상의 소리 1》(이시이 아스카/김현주 옮김, 소미미디어, 2019)를 읽으며 온누리를 감도는 뭇소리를 떠올렸습니다.


  만화영화 〈포카혼타스〉에서 포카혼타스라는 아가씨는 언제나 ‘버드나무 할머니’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해요. 다른 사람은 버드나무뿐 아니라 돌이나 꽃하고 말을 섞지 못하지만, 포카혼타스만큼은 버드나무를 비롯한 뭇숨결하고 말을 섞고 웃음을 나눕니다. 자, 버드나무 할머니하고 이야기를 펴면서 마음을 살찌운 포카혼타스는 무어라고 노래하지요? “Can you paint with all the colors of the wind?”란 노랫말을 가만히 마음으로 담아 봐요.



“선생님, 완전 하얗네요.” “그런가요?” “네∼! 전 완전 새까만데!” “소우는 매일 바다에서 수영하니까. 그렇지. 머리까지 다 탔잖아.” “타츠미 선생님도 같이 가요, 바다!” (70쪽)



  우리 집 모과나무는 지난해하고 지지난해에 모과알을 우리가 훑지 않았다고 서운해 하지 않습니다. 아니, 살짝 섭섭해 했어요. 어느덧 꽃을 잔뜩 맺고 열매를 주렁주렁 달았는데 무슨 다른 일이 그리 많아 이 열매를 못 보았느냐고 따지지는 않되, 다음해에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어요. 저는 모과나무한테 “하나 새로 배웠어. 네 꽃에 햇볕을 듬뿍 먹여서 말리면 겨우내 새삼스레 누릴 수 있더라. 사탕수수가루에 재우지 않더라도 오직 햇볕하고 네 꽃만으로 달콤하고 포근한 기운을 겨우내 누릴 만하겠더라.” 하고 속삭였습니다.


  낫으로 풀을 벨 적에는 풀한테 “우리가 너희를 먹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너희를 흙바닥에 눕혀 놓으면 너희 풀은 땡볕에 흙이 마르지 않도록 돌봐 줄 뿐 아니라, 너희 스스로 새롭게 까무잡잡한 흙으로 거듭나면서 이곳을 아름터로 북돋아 주지.” 하고 속삭여요.


  하루 내내 노래하는 새를 바라보면서 “이토록 고운 노래는 어떻게 배웠니?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는 어떻게 너희 몸에서 깨어나니?” 하고 묻습니다. 이렇게 물으면 뭇새는 까르르 웃으면서 “너희한테도 언제나 마음 가득 노래가 흐르는걸. 너희도 너희 노래를 터뜨려 봐?” 하고 대꾸합니다.



“유물울, 토기든 옥돌이든 서적이든, 형태는 달라도 그 모든 게 손으로 만지면 그것들이 만들어진 아주 먼 옛날과 그것들을 만든 누군가와 이어지는 기분이 들어서요.” (76쪽)


“지금은 몰라도 돼. 말로만 알면 머리만 커지니까 말이야. 자신의 몸을 통해 얻은 것들이 이어지고 이어져, 언젠가 그곳으로 이끌어 줄 거야.” (103쪽)



  우리는 입으로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한테는 입말만 있지 않아요. 글말하고 다른 입말도 대수롭습니다만, 입말을 넘어선 마음말이 더할 나위 없이 대수롭습니다. 마음말 곁에 있는 삶말이 대수롭고, 삶말하고 나란히 흐르는 사랑말이 대수로워요.


  우리가 어른이란 자리에서 살아가는 몸이라면, 아이라는 자리에서 살아가는 이웃이며 동무한테 어떤 말을 물려줄 만할까요? 우리는 인문지식이 가득한 말을 물려주어야 할까? 일본 한자말이나 번역 말씨를 아이들한테 노래할 만할까요? 걱정이며 근심이며 두려움이며 조바심이 가득한 말을 들려줄 만할까요? 틀에 박히거나 쳇바퀴를 돌거나 수렁에 잠긴 말로 입시지옥에 내모는 말을 알려줄 만할까요?



“번개는 벼 이외에도 여러 작물을 키워 줘요. 밭에 떨어지기도 하고, 나무에 떨어지기도 하고, 그때 열매나 뭔가가, 번개의 알을 품는 경우가 있어요.” (123쪽)


“타츠미 선생님은 선생님인데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우리가 선생님의 선생님이 되어 줘야겠다.” (124쪽)



  작은 섬에는 작은 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섬이란 얼마나 작을까요. 작은 섬은 참말로 작을까요. 구태여 다른 섬하고 겉크기를 대니까 작아 보이지 않을까요.


  크기란 처음부터 없지 않을까요. 잘생기거나 못생긴 얼굴도, 세거나 여린 몸도, 가멸차거나 가난한 주머니도, 처음부터 아예 없는 노릇 아닐까요. 《세상의 소리 1》는 여러모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온누리가 태어난 소리를 들려주고, 온누리가 아주 작은 섬에서 태어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온누리를 이룬 작은 조각인 ‘나’ 하나가 더더욱 작은 소리에서 깨어난 빛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치만 아침 바다는 완벽하단 말이야. 투명한 빛이 몸속을 지나 빠져나가는 것 같아서.” (133쪽)



  온누리 모든 나라가 우뚝 멈춥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멈출는지 모르고, 이 멈춤길이 잦아들고 나서는 어떻게 다시 흐를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우리는 오늘길이나 앞길을 어느 만큼 헤아릴까요?


  이렇게 학교가 멈추고 하늘길이 멈춘 모습이 풀릴 앞날에 ‘예전하고 똑같이 다시 흐르도록 하면 될’까요, 아니면 ‘예전하고 확 다르게 우리 삶터를 싹 갈아엎으면서 아름다이 흐르는 새길을 찾으면 될’까요?


  어느 나라는 2020년 대학입시를 벌써 집어치우기로 했답니다. 대학입시가 대수롭지 않은 줄 알아챈 셈이겠지요. 한국은 오늘 뭘 할까요? 한국은 개학을 늦추고 입시 일정을 미루기는 하지만, 막상 앞길을 내다보는 눈이나 걸음이나 몸짓은 도무지 안 보입니다.


  찻길하고 시멘트집하고 자동차하고 가게로 그득한 큰고장 한복판을 치우고서 그자리에 ‘예전’처럼 숲이며 들이며 냇물이 푸르게 춤추도록 바꾸자는 생각을 내는 벼슬아치나 우두머리가 있을까요? 돌림앓이가 무서우니 집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말은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만한 숲이며 들이며 바다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어른은, 아이들더러 아름답고 깨끗한 숲으로 가라고 말하는 어른은, 이 나라에 참말로 없을까요?



“나 말이야, 옛날부터 생각했어. 우리가 이렇게 내쫓으면, 여기 있던 벌레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하고.” (186∼187쪽)



  타고난 마음은 오롯이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은 숨결을 물려받아서 태어납니다. 이 숨결이란 그냥 밥을 먹고 그냥 숨을 쉬는 결이 아닙니다. 스스로 빛나고 이웃을 밝히는 숨결입니다. 스스로 사랑으로 반짝이면서 다같이 꿈날개를 펴면서 활활 날아오르는 숨결이에요.


  한국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나라가 숲·들·바다·가람을 깡그리 짓밟으면서 서울을 세웠습니다. 시멘트로 높다랗게, 아스팔트로 새까맣게, 가게로 빼곡하게, 자동차는 물결치도록 내몰았어요. 여기에다가 전쟁무기랑 군부대를 엄청나게 들여놓았지요. 이런 서울에서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뛰놀거나 어른들이 사이좋게 어우러지며 일할 틈이란 없습니다.


  이뿐인가요. 들풀이며 나무가 자랄 틈바구니마저 없어요. 자, 이런 서울 한복판에, 여러 나라 큰고장 한복판에 무엇이 불거질까요? 바로 시샘하고 다툼질이 불거지고, 시샘하고 다툼질 사이에서 ‘내가 이 쳇바퀴에서 밀려나거나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근심·끌탕이 불거집니다. 걱정·근심·끌탕은 조바심으로 이어지고, 두려움이 되다가는, 이내 무시무시한 돌림앓이로 번져요.


  방역만 꼼꼼히 한대서 안 아플 수 없습니다. 벌나비가 춤추고 풀벌레가 노래하며 멧새가 하늘을 가르고 푸나무가 싱그럽게 우거진 곳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뛰놀고 어른들이 왁자지껄 수다를 펴며 일하는 살림자리일 적에, 비로소 아픈 사람이 사라지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꽃이 피어나리라 느껴요. 우리는 이제야말로 타고난 마음, 곧 사랑을 다시 찾아나설 때라고 생각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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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6 - silent voice
후지타니 요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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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숲노래 푸른책

- 돌·모래도 소곤소곤 말을 걸지



《소곤소곤 6》

 후지타니 요코

 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9.5.15.



  돌이나 모래나 쇠한테 마음이 없다고 여기는 분이 꽤 많습니다. 이렇게 여기는 분을 볼 때면 ‘참말로 볼 줄 모르네’ 하고 느끼지만 이런 분이 엉뚱하거나 뜬금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직 스스로 마음눈을 틔우지 않을 뿐이거든요.


  거꾸로 생각해 볼까요. 돌이나 모래나 쇠한테 마음이 있는 줄 알아채고는 소곤소곤 말을 섞는 사람을 엉뚱하거나 뜬금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분이 있겠지요. 이때에 ‘돌마음을 읽지 못하는 분’은 ‘돌마음을 읽는 이’를 ‘어떤 눈’으로 쳐다볼까요?



‘이상하게 담담한 기분이야. 능력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후련하지도 않아.’ (11쪽)



  돌이며 모래이며 쇠한테 마음이 있다면 플라스틱한테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플라스틱한테 마음이 있다면 폭탄이나 미사일이나 총알한테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폭탄·미사일·총알에 마음이 있다면 칼·창·방패를 비롯해 전투기·군함·탱크한테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우리가 손에 쥐는 종이책이나 붓에는, 우리가 손에 쥐는 수저나 밥그릇에는, 우리가 손에 쥐는 호미나 낫에는, 또 우리가 타고다니는 자동차에는 어떤 마음이 흐를까요?



‘엄마랑 비슷해. 40대는 훨씬 더 어른이고, 완전히 다른 존재인 줄 알았는데.’ (21쪽)



  마음읽기를 하는 두 사람이 나오는 《소곤소곤 6》(후지타니 요코/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9)입니다. 여섯걸음에서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마음읽기를 하는 둘 가운데 한쪽은 고등학생이요, 한쪽은 어린이집에서 초등학교로 접어드는 아이입니다.


  둘은 어린이하고 푸름이인 셈인데, 나이가 좀 벌어졌어도 마음으로 마음을 읽는 동무로 지냅니다. 아니, 그 어느 동무보다도 포근하면서 살가운 사이요, 그 누구하고도 제대로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고 사는 하루를 밝히는 반가운 사이라 할 만합니다.



“남자랑 여자니까 앞으로 많은 게 변해 갈지도 모르지만, 가족인 건 변함없잖아. 지금만 잠깐 여자애랑 같이 있기가 창치해진 것뿐이야.” “바보 같아. 찌질해.” “맞아. 좀만 더 크면 여자애랑 같이 못 있어서 안달일걸.” (48쪽)



  나이가 같거나 비슷한 또래여야 동무가 되지 않습니다. 나이가 열 살이나 서른 살 즈음 벌어졌어도 ‘마음이 맞을’ 적에 동무가 됩니다. 나이가 쉰 살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만날’ 적에 동무가 되어요.


  또래이더라도 따돌림질이나 괴롭힘질이 그치지 않아요. 왜 따돌리거나 괴롭힐까요. 둘 사이에 마음이 안 흐르거든요. 이쪽에서 아무리 마음을 보내거나 읽어도, 저쪽에서 어떤 마음도 안 보내거나 안 읽는다면, 그만 따돌림질이나 괴롭힘질이 불거집니다.


  모든 다툼이며 따돌림을 풀어내는 길은 매우 쉽습니다. 마음을 읽는 길을 밝히면 되어요. 서로 마음을 읽도록 자리를 마련하면 되어요. 같이 마음을 읽으면서 스스럼없는 사이로 거듭나도록 이끌면 되어요. 나란히 마음을 읽고, 차근차근 마음을 새기며, 천천히 마음을 빛내면 됩니다.



“어떤 핸드폰이었어요? 그 아이는.” “밝고 명랑했어. 장난꾸러기랄까.” “물건에도 성품이 있나 봐요.” “응.” “금방 고칠 수 있을 거예요.” (96∼97쪽)



  이웃이며 동무를 마음으로 아끼는 사람이라면 어떤 살림이나 세간도 함부로 다루지 않아요. 사람한테뿐 아니라 모든 살림살이에도 마음이 있는 줄 느끼고 아니까요. 느끼고 알기에 살가이 다가가요. 느끼며 아니까 쓰담쓰담 보살펴요.


  사람·살림을 아낄 줄 알기에 풀이며 꽃이며 나무를 고이 아낍니다. 풀꽃나무를 고이 아끼니 뭇숨결을 두루 아껴요.


  아낄 줄 아는 눈빛이라면 섣불리 삽질을 안 하고, 서둘러 다니지 않습니다. 아낄 줄 아는 손빛이라면 함부로 굴지 않으며, 윽박지르거나 마구마구 해대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이야기할 적에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어떻게 만나고 어깨동무할 적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을 적에 사랑이 될까요.



“어른이 된다는 건 다른 존재가 되는 게 아니라, 이어져 가는 거야. 그대로 쭉. 무섭지 않아. 넌 능력이 없는 나랑은 이제 놀기 싫어? 그리고 지금 넌 사물의 목소리를 못 듣는 사람하고도 친구가 될 수 있잖아.” (124쪽)



  마음읽기를 하는 눈빛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마음읽기를 하는 눈빛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어떠한 모습이어도 우리한테는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돌마음을 읽기에 대단하지는 않아요. 돌마음을 못 읽기에 바보이지 않아요. 마음을 읽으면서도 등돌리기도 하는걸요. 마음을 못 읽지는 따스히 다가서기도 하는걸요.


  책을 읽기에 글쓴이 마음을 읽나요? 책을 읽지만 글쓴이 마음은 안 읽지 않나요? 책은 많이 읽되 글쓴이 넋이며 숨결이 아닌 줄거리만 붙잡지 않나요? 책은 안 읽어도 온누리를 고루 품으면서 사랑어린 숨소리를 지피려는 넋을 알아차리면 어떨까요?



‘동물과 사물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메신저! 능력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지만, 안 될까?’ (154쪽)



  우리는 서로 징검다리입니다. 나는 네가 거듭나도록 돕는 징검다리예요. 너는 내가 허물벗기를 하도록 북돋우는 징검다리입니다. 나는 네가 꽃처럼 눈부시도록 일어나도록 이끄는 징검다리이지요. 너는 내가 하늘처럼 파랗게 싱그러운 하루를 살도록 톡톡 찾아와서 동동 춤추도록 손을 잡는 징검다리입니다.


  눈을 감고 모래알을 손바닥에 얹어요. 눈을 뜨고 물 한 모금에 깃든 숨결을 읽어요. 눈을 감고 서로 손을 맞잡아요. 눈을 뜨고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면서 달려요. 이렇게 하면 모두 피어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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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소년 아톰 14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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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파란하늘을 함께 먹는 이웃



《우주소년 아톰 14》

 테즈카 오사무

 박정오 옮김

 학산문화사

 2001.12.25.



아톰과 우란은 가끔씩 생각합니다. 인간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싶어하지만, 어른이란 게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라고요. (213쪽)



  아픈 몸이란 한켠으로는 괴롭거나 고달프지만, 아프기 때문에 헤아리거나 느끼거나 알아차리는 길이 꽤 깊거나 넓구나 싶습니다. 아프면서 괴롭기에 곁에서 누가 아파하면 가만히 다가가서 달랠 줄 압니다. 아프면서 고달프기에 둘레에서 누가 아파 울면 넌지시 찾아가서 토닥일 줄 알아요. 아픈 터라 이 아픔을 털거나 씻는 길을 찾아나설 뿐 아니라, 이런 아픔을 이웃이 겪거나 치르지 않기를 바라는 길을 갈고닦기도 해요. 이런 아픔에 걸려 넘어지는 이웃을 마주하면 빙그레 웃으면서 손을 내미는 몸짓이 되기도 하지요.


  아픈 몸이기에 아프게 보낸 나날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 이야기를 글이나 말로 옮길 때가 있습니다. 저로서는 그냥 저 혼자 아픈 줄 알았다면, 이 아픔을 글이나 말로 나타낸 뒤에는 ‘우리 곁에는 아파도 말을 않거나 못하면서 끙끙거린 이웃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하고 새삼스레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서로 길잡이가 되고, 서로 동무가 되고, 서로 이바지를 하고, 서로 말벗이 됩니다.



“아톰, 사실은 네가 부서졌을 대, 코발트와 우란의 부속품을 써서 널 고친 거란다.” “예?” “코발트도 우란도 널 위해서 기뻐하며 몸의 일부분을 내주었단다. 그 둘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라, 아톰.” (48쪽)



  사람은 처음에 아무 연장이 없었습니다. 어떤 연장도 없이 맨몸으로 모든 철이며 날씨이며 바람이며 숲을 두루 받아들였습니다. 두 손에 연장이 없던 날에는 손가락이며 발가락이 연장 구실이었어요. 아니, 따로 연장이란 이름이나 구실이 아니어도 숲에서 누구나 오붓하면서 아늑하게 어우러졌습니다. 뚝딱거리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만났고, 마음으로 사랑했으며, 마음으로 삶을 지었어요.


  둘레를 봐요. 온누리 어떤 풀벌레도 연장을 거머쥐지 않습니다. 온누리 어떤 바다벗도 연장을 쥐려 하지 않아요. 온누리 어떤 벌나비에 새에 숲짐승도 굳이 연장을 바라지 않습니다. 모든 숨결은 연장 하나 없이 하루를 누리고, 하루를 살아가며, 하루를 넉넉히 나누어요.


  연장을 쥐지 않은 숨결은 다른 숨결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습니다. 연장을 움켜쥐지 않기에 빼앗거나 혼자 차지할 마음이 없습니다. 연장이 없는 푸나무에 풀벌레에 새에 숲짐승에 바다벗은 이 별에서 다같이 얼크러지면서 함께 보금자리를 일굽니다. 언제나 정갈하고 푸르며 아름다운 터전으로 나아가요.


  그러나 사람은 어느 날 문득 연장을 손에 쥐면서 눈빛이 바뀝니다. 돌맹이를 연장으로 삼고, 작대기를 연장으로 놀리면서, 그만 이웃 숨결을 건드리고 죽이고 거느리지요. 이뿐 아니라 이웃마을 사람까지 괴롭히거나 짓밟는 일마저 서슴지 않아요.



“왜 도망을 친 거야?” “응. 나를 이용해서 큰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녀석이 있어서. 사실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나는 폭탄이야.” “뭐라고?” “나는 별 하나를 산산조각 낼 정도의 폭탄이거든. 내 얘기를 들어줘. 나, 폭탄으로서 사용되는 게, 너무나 싫어서 참을 수 없었어.” (72쪽)


“다들 대피해서 사람은 한 명도 없구나. 어디로 도망쳐 봤자 다 똑같은데, 인간들은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117쪽)



  연장맛을 본 사람은 도끼나 호미로 그치지 않습니다. 삽이나 낫으로 그치지 않아요. 칼을 부엌에서뿐 아니라 여느 자리에서까지 휘두르면서 그만 싸울아비가 태어납니다. 칼잡이가 춤추지요. 이윽고 총잡이가 생기고, 마구잡이로 싸움질을 일삼는 사람살이가 되고 맙니다. 크나큰 싸움판을 일으키면서 서로 죽이고 죽더니, 어느새 이 연장꾸러미를 앞세워 누가 잘나거나 못나느냐를 가릴 뿐 아니라, 그만 이 연장꾸러미 없이는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는 생각에까지 사로잡힙니다.


  바야흐로 전쟁무기하고 군대라는 연장을 붙잡은 사람터가 된 셈이랄까요. 이제 사람은 더 치달리면서 로봇을 지으려 하고, 이 로봇을 내세워 새로운 싸움판을 벌이고, 새로운 돈판이며 장사판까지 꾀합니다. 《우주소년 아톰 14》(테즈카 오사무/박정오 옮김, 학산문화사, 2001)은 이런 사람터 한복판에서 아톰이라고 하는 작은아이가 사람들한테 온몸으로 외치는 목소리를 들려주어요. 이 만화를 빚은 테즈카 오사무 님은 조그마한 아이 아톰 목소리로 묻습니다. “왜 싸우나요?” “왜 거짓말을 하나요?” “왜 사랑하지 않나요?” “왜 나누지 않나요?” “왜 꿈을 글로 쓰지 않나요?” “왜 오늘 이곳에서 어깨동무하면서 기쁜 놀이를 그림이며 사진으로 담아내지 않나요?” “왜 아이를 낳고서 아이한테 숲을 사랑하는 싱그러운 마음을 물려주지 않나요?” “왜 다들 틀에 박힌 길을 가나요?” “왜 스스로 짓고 스스로 나누는 기쁜 꿈길을 가지 않나요?”



“하다못해 최후의 날이 올 때까지 할머니의 손녀로 있고 싶기도 했고.” “벰, 넌 정말 마음이 따뜻한 애로구나.” “나, 갈게. 가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는 거니까.” “어디로 간다는 거야?” “저 별로 뛰어들어서 저 별을 파괴하는 거지. 아직은 늦지 않았어.” “뭐라고? 너 자폭하려는 거니?” “응, 난 폭탄이니까. 아톰, 안녕. 나 행복해. 이렇게 아름다운 지구에서 얼마 동안이라도 살 수 있었으니까. 아톰, 안녕. 널 만나서 다행이었어. 언제까지나 지구를 지켜 줘.” “벰!” (137∼138쪽)



  로봇이란 몸을 입었으나 틀림없이 마음이 흐르는 아톰입니다. 비록 원자력 기운으로 몸을 움직이는 아톰이지만, 밥을 먹고 똥오줌을 누는 사람들 못지않게, 아니 바로 사람들이 잃거나 잊어버린 사랑이라는 마음빛을 환하게 비추는 아톰입니다.


  아톰은 싸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만, 아톰이라는 몸은 ‘작은 싸울아비’입니다. 아톰은 꽃을 좋아하고 나비하고 놀기를 바라지만, 아톰 몸을 지은 과학자는 아톰한테 무시무시한 무기를 잔뜩 집어넣었습니다. 아톰은 제 몸에 있는 모든 무기를 떨쳐내고서 아주 가볍게 바람을 가르고 땅을 거닐면서 즐거이 삶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어른들은 아톰한테 ‘망가진 저 로봇을 막아내라’든지 ‘엄청난 전쟁무기인 저 로봇을 무찔러라’ 같은 말을 할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몸이 되도록’ 아톰을 지었으면서, 마치 아톰이 거짓말을 한다고 여기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거짓말쟁이 로봇을 만든 것은 내 잘못이지.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만이야.” “그랬군요. 하지만 역시 거짓말은 나쁜 건데.” (156쪽)



 과학꾼은 왜 자꾸 더 무시무시하다 싶은 전쟁무기를 자꾸 만들어 낼까요? 정치꾼은 왜 자꾸 더 끔찍하다 싶은 벼랑길로 나라를 내몰까요? 벼슬꾼은 왜 자꾸 더 외곬로 치닫는 행정을 꾀할까요? 글꾼은 왜 참다운 사랑으로 온누리를 넉넉하고 따사롭게 품는 이야기를 지을 생각하고 멀어질까요?


  작은 아이가 묻습니다. 작은 아이 아톰이 묻고 또 묻습니다. 한글판 이름은 《우주소년 아톰》인데, 일본판 이름은 “쇠주먹 아톰”입니다. 한글판을 낸 분들 마음이 갸륵합니다. 그래요, 아톰은 비록 쇠주먹으로 태어나야 한 몸이었어도 ‘우주를 품는 아이’로 살아갈 마음이에요. 온누리가 하나라는 뜻을 사람들한테 이야기할 몫으로 빛 한 줄기를 얻어서 태어난 작은 아이가 바로 아톰이지 싶어요. 그러고 보니 테즈카 오사무 님이 아톰 이야기를 처음 그릴 적에 붙인 이름은 “아톰 대사(大使)”입니다. 사랑도 꿈도 평화도 나눔도 모두 잊거나 잃은 사람들한테 바로 이 사랑과 꿈과 평화와 나눔이 무엇인가를 온몸이며 온마음으로 보여주고 알리는 몫을 맡은 작은 아이가 아톰입니다.


  이 별에 사랑이 흐르기를, 이 별에 어리석은 싸움질이 끝장나기를, 이 별을 비롯해 온누리 모든 별에 어깨동무하는 착한 마음으로 참하게 노래하는 꿈이 퍼지기를, 언제나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눈뜨며서 기쁘게 별빛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이 뛰어놀기를 바라는 작은 목소리인 《우주소년 아톰》이라고 느낍니다.



“이번에는 단숨에 2001년으로 날아가 보자. 2001년의 고속도로네. 앗, 토비오다. 텐마 박사님의 외아들인데 트럭에 받혀 죽었다고 했었지. 박사님, 저는 지금 그 애를 꼭 구하고 싶어요.” “안 돼! 그러면 안 된다! 아톰! 그런 짓은 그만둬! 그런 짓을 했다간 역사가 바뀌게 된다.” “그럼 두 눈 똑바로 뜬 채 사고가 나는 것을 보고만 있으라는 말인가요?” “그만둬! 가면 안 돼! 아톰!” “그럴 순 없어요!” (170쪽)



  이 나라 어른이며 어버이는 어린이한테 어떤 책을 읽히는지 궁금합니다. 지식하고 정보를 내세운 책을 읽히나요? 나중에 대학입시에 이바지를 할 만한 수험서나 교재나 학습만화를 읽히나요? 어린이한테 ‘생태환경 그림책·동화책’을 읽히지만 막상 아파트에 살면서 하루 1초조차도 흙을 못 만지거나 못 밟는 데에서 아이들은 하루 1분조차 볕바람을 못 쐴 뿐 아니라 구슬땀으로 뛰어놀 틈조차 없는 나날은 아닌가요?


  이제는 빠른길을 더 내지 않기를 바라요. 이제는 빠른길을 줄이고 숲터를 가꾸기를 바라요. 이제는 아름다운 시골터에 커다란 발전소나 공장이나 공항이나 관광단지나 폐기물처리장이나 댐이나 군부대를 들이려 하지 말고, 서울에서도 집집마다 스스로 전기를 지어서 쓸 수 있는 작은 살림길로 가면 좋겠습니다. 시골 커다란 발전소부터 송전탑하고 전깃줄로 이어서 큰고장에서 쓰는 전기가 아닌, 집집마다 알맞게 전기를 지어서 쓰는 틀로, 또 아파트를 짓더라도 아파트 너비 열 곱은 될 만한 숲을 둘레에 품을 줄 아는 마을로, 또 빠른길을 내야 하더라도 아름드리 숲은 건드리지 않도록 헤아리는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아톰은 전자 두뇌를 가졌으니까 잘하는 게 당연해요.” “아니에요. 나도 인간하고 똑같아요.” “공부 안 해도 기억을 잘할 수 있잖아?” (161쪽)



  온누리에 돌림앓이가 퍼지니 학교를 비롯해 모두 닫아걸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졸업장보다 우리 튼튼한 몸이 대수롭기 때문일 테지요. 첫째로 살필 대목이란 졸업장이 아닌 우리 몸을 튼튼히 가꿀 숲터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눈부신 살림살이가 퍼지더라도 물이며 바람이 맑지 않다면 떼죽음뿐이에요. 첫째로 생각하면서 돌볼 곳이란 숲입니다. 자동차를 세울 곳을 늘리기보다 나무가 자라고 풀벌레가 깃들 숲을 늘릴 노릇입니다. 올림픽이며 운동경기를 끌어들이기 앞서 숲이며 멧골이며 냇물을 맑게 건사할 노릇입니다. 전쟁무기하고 군부대에는 더는 돈을 쓰지 않을 노릇이며, 젊은이가 전쟁무기하고 군부대에 얽매이지 않는 정치하고 행정이 될 노릇이에요. 바로 오늘 이곳부터 해야지요. 옆나라에서 먼저 안 한다고 우리마저 안 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맙니다.


  입가리개를 하지 않고도, 방역을 하지 않고도, 병원을 가지 않고도, 큰가게에 먹을거리를 사러 다니지 않고도, 누구나 넉넉히 살림을 지으며 하루를 빛낼 새로운 숲터로 온누리를 가꾸는 슬기로운 마음으로 거듭날 수 있는 오늘이 되기를 바라요. 오늘부터, 우리부터, 이 길을 가면 좋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아톰이 아닌, 웃음을 짓는 아톰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씩씩하게 첫걸음을 떼기를 바라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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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만쥬의 숲 5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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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바람이 부는 숲에서



《파란 만쥬의 숲 5》

 이와오카 히사에

 오경화 옮김

 미우

 2019.12.31.



  비가 오면서 하늘이 맑고 땅이 깨끗합니다. 바람이 불면서 먼지가 걷히고 땅에 뒹굴던 찌끄레기가 쓸립니다. 비란, 하늘이며 온땅을 말끔하게 다스리는 님이로구나 싶습니다. 바람이란, 이 별을 구석구석 어루만지면서 정갈하게 돌보는 님이로구나 싶어요. 비바람이 있기에 숲이며 들이며 마을이 아름다워요. 비바람이 들지 않는 숲이나 들이나 마을이라면 언제나 지저분하거나 매캐할 테지요.



“인간인 너는 아무것도 못 해.” “아뇨. 내가 그를 막을 겁니다. 나무들과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겠지만, 내가 꼭 막지 않으면 안 돼요. 난 시나코 씨도, 다른 이들도 살아 있기를 바라니까.” (87쪽)



  돌림앓이가 나라 안팎으로 퍼지기 앞서까지 사람들은 그냥그냥 살았습니다. 날씨가 미친다고 해도, 남북극 얼음이 녹는다고 해도, 숲이 망가져 바람이 매캐하다 해도, 한국이며 중국이며 인도이며 베트남이며 공장을 잔뜩 지어서 화학제품을 끝없이 쏟아내어 누리기만 하면서 이 별을 안 쳐다보았어요. 얼추 스무 해쯤 앞서 권정생 님은 “자가용을 버려야 이라크 파병을 안 한다”는 말씀을 남긴 적 있는데, 자가용을 버리면 달라지는 대목이 아주 많은데, 막상 자가용을 버리고서 살림을 두 손 두 다리로 짓거나, 자가용을 버린 자리에 나무를 심으려고 하는 분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글로는 읽고 머리에 지식으로는 담되, 마음으로 새롭게 살아가는 슬기로운 사랑으로는 좀처럼 나아가지 않는 몸짓이었지 싶습니다.


  우리가 짓는 살림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울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살림을 넉넉하게 짓습니다. 이 넉넉살림을 몇몇 우두머리하고 장사꾼이 거머쥐는 굴레를 더 깊고 단단히 여미기에 가난하거나 굶는 사람이 나옵니다. 우두머리하고 장사꾼은 전쟁무기하고 군대를 자꾸 늘리면서 엉뚱하게 살림돈을 들이부으니 가난하거나 굶다가 죽는 사람이 자꾸 나오고 말아요.


  이제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돌림앓이가 퍼지면 대통령이고 시장·군수이고 부질없을 뿐 아니라, 학교도 비행기도 멈추기 마련입니다. 군대가 쓸모있을까요? 아무 쓸모가 없어요. 이즈막에 쓸모있는 한 가지는 바로 비바람입니다. 비가 씻고 바람이 쓸어냅니다. 이동안 숲하고 들이 되살아나서 맑고 파란 하늘이며 정갈하며 푸른 땅을 되찾는구나 싶습니다. 참말로 하늘빛이 확 바뀌는데 이러한 하늘빛을 바라보면 좋겠어요. 2020년 겨울 끝자락하고 봄 첫머리에 유난히 비바람이 잦아요. 그만큼 이 어지럽고 매캐하며 지저분한 지구라는 별을 곱게 달래듯 씻고 털어 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건 평범한 카드였다. 그런데도 소이치가 갖고 있으면서 오랜 세월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 (151쪽)



  바람아씨하고 숲돌이 두 사람이 맺고 얽히는 삶을 그린 《파란 만쥬의 숲 5》(이와오카 히사에/오경화 옮김, 미우, 2019)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은 다섯걸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바람아씨는 끝없는 나날을 살아내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거나 엉터리인지, 그러나 이 어리석고 엉터리인 한복판에서도 사랑이라는 따사로운 빛을 넉넉히 나누려는 이가 한둘쯤 어김없이 있는 줄 지켜봅니다. 바람아씨는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이 별을 돌보기만 하면 죽음 없이 살아갈 만합니다. 그렇지만 바람아씨는 자꾸자꾸 숲이며 마을에 사뿐히 내려앉으려 합니다. 제 숨결을 숲돌이랑 숲순이한테 조금씩 나누어 준달까요.


  이런 바람아씨를 지켜본 다른 바람사내도 어느새 사랑스러우면서 의젓한 숲돌이나 숲순이를 만나다가 이내 모든 숨결을 숲사람한테 나누어 주고서 먼지처럼 사라지기까지 했어요. 다른 바람사내는 어리석고 엉터리인 사람 때문에 바람님이 사라지는 꼴이 못마땅합니다. 이리하여 바람님 사이에서 다툼질이 생겨요. 이 다툼질을 가장 어리석고 엉터리라는 ‘사람 하나’가 아무 힘도 없이 온마음을 맡겨서 녹여내는 길을 간다는 줄거리를 그린 만화책 《파란 만쥬의 숲》입니다.



“집에 가자.” “싫어! 할아버지도 이 숲을 지키고 싶잖아. 도망치면 안 돼!” (74쪽)


“이봐, 소이치. 들리냐? 난 무사해! 나무들도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 마음껏 써먹어 줘.” (77쪽)



  만화책 하나는 참으로 작습니다. 이 별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참으로 작아요. 우리는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사람은 매우 작기 때문에 때로는 더없이 커다란 빛이 되곤 합니다. 작기 때문에 크지요. 크기 때문에 다시 줄어요.


  고요하면서 아늑한 사랑은 크기가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일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람님이 바람님일 적에는 어떠한 크기도 힘도 따로 없습니다. 오롯이 바람님이에요. 사람이 사람일 적에는 어떠한 힘이나 이름이나 돈이 따로 없습니다. 옹글게 사람이지요.


  우리는 오늘 어떠한 살림을 펴는 하루를 짓는가요? 우리는 오늘 ‘우한 폐렴’이든 ‘코로나 19’이든 이런저런 이름으로 일컫는 돌림앓이를 어떤 눈으로 지켜보는가요? 입가리개를 하거나 집밖에 나서지 않으면 되나요. 화학약품으로 방역을 하거나 수돗물로 손을 씻으면 되나요. 질병관리본부라는 곳을 건사하면 되나요. 아니면 우리 모든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새길을 생각하면서, 앞으로는 수돗물 아닌 냇물을 다같이 누리는 마을로 거듭날 만한가요. 정수기도 수돗물도 댐도 아닌 냇물이며 샘물이며 우물물일 적에 비로소 몸이 맑게 트이는 줄 알아챌 수 있나요. 방독면이나 공기정화장치가 없이 맑게 일렁이는 바람을 쐬고 따사로이 드리우는 햇볕을 쬐며 싱그러이 내리는 빗물을 머금기에 사람을 비롯한 뭇숨결이 튼튼하면서 아름다운 길이 되는 줄 알아낼 수 있나요.



‘이 마음만은 부디 제대로 전달되기를. 와 줘서 고마워. 잠시나마 만날 수 있어 기뻤어.’ (209쪽)



  나라 안팎을 떠도는 온갖 이야기를 가만히 보면 ‘오늘은 확진자가 얼마나 늘고, 또 얼마나 숨을 거두었나 하는 숫자놀이’ 같습니다. 이 대목이 대수롭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너무 여기에 목을 매달면서 이런 이야기만 자꾸 퍼나르는 셈 아닌가 궁금해요. 입가리개를 하면 한결 나을 수 있습니다만, 입가리개하고 손씻기만으로 더러워진 이 별을 깨끗하게 돌리지 못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한바탕 춤추는 돌림앓이 하나만 지나간다고 해서 끝나지 않아요. 요일에 맞추어 누가 입가리개를 살 수 있다고 알리는 나라지기라면, 또 사람들을 약국 앞에서 한참 줄서기를 하도록 내모는 나라일꾼이라면, 이 나라 앞길은 참으로 아찔합니다.


  견디고 참고 이겨낼 돌림앓이만 바라보기보다는, 이제는 우리 ‘펑펑질(소비주의)’을 끝장내고서 큰고장이며 시골이며 비닐·농약·화학비료 없는 흙짓기랑 살림짓기를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아스팔트하고 시멘트는 차츰차츰 줄이면서 숲정이를 가꾸는, 돈벌이 관광산업이며 골프터나 커다란 경기장은 그만 짓고서 오롯이 해맑은 숲을 돌보는, 이러한 길을 내다볼 노릇이지 싶습니다. 2020년 일본 도쿄 올림픽을 멈추느냐 미루느냐로 말이 많은데, 앞으로는 올림픽을 아예 없애도 되어요.


  미국에서는 농구에 야구까지 멈추었어요. 미국사람은 곧 죽어도 농구(NBA)하고 야구(MLB)를 보는 하루를 살았다지만, 또 유럽사람은 곧 죽어도 축구(프리미어리그·라리가·세리에)를 보는 하루를 누렸다지만, 온누리 모든 운동경기가 한꺼번에 멈추었어요.


  잘 봐야 합니다. 돌림앓이가 퍼지니 모든 관광시설이며 경기장이며 쓸데없어요. 그런 관광시설이며 경기장이 없으니, 게다가 학교마저 멈추니 ‘집에서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붙어서 살아야 해서 괴로’운가요? 관광시설이며 경기장이 멈추니 나라 안팎 하늘이 파랗게 트이고 온갖 먼지가 줄어드는 줄 느낄 만하지 않나요? 더구나 여태 관광시설이며 경기장에 들이부은 돈이란, 갖가지 ‘운동경기 세계대회’를 치른 일이란, 우리 스스로 이 별을 망가뜨린 바보짓인 줄 깨달을 만할까요?



“그게 정말로 재미있던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좀더 충족되어 있어야죠.” “어?” “당신은 그걸로 만족이 안 됐잖아요. 당신뿐만이 아니에요. 시나코 씨도 충족이 안 됐으니까, 그래서 아마 이 숲에 도달한 거겠죠. 당신들을 알아보는 존재가 있는 이 숲에.” (109∼110쪽)



  고작 백 해는커녕 쉰 해조차 안 되었는데요, 우리가 학교랑 회사랑 관공서랑 정치랑 경제랑 문화랑 교육이랑 종교에 안 얽매이고 살아갈 무렵에는, 모든 집마다 하루 내내 아이들하고 복닥이면서 새롭게 놀이하고 이야기를 지폈습니다. 아이들은 빈터나 들이나 숲이나 바다나 멧골로 가서 스스로 놀이를 지어서 놀았고, 어른들은 집이며 마을이며 숲이며 들이며 바다에서 밥살림·옷살림·집살림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아름별을 되찾을 노릇입니다. 아름살림이며 아름마을이며 아름놀이에 아름일을 되찾을 길입니다. 아름사랑으로 가야지요. 어른도 어린이도 아름이란 몸빛으로 거듭나야지요. 아직은 입가리개를 하고 방역을 하고 질병관리본부가 땀흘려야 한다면 한동안 이대로 가되, 이 모든 돌림앓이를 씻어낸 뒤부터 비바람이며 햇볕이며 풀숲이며 어떻게 마주하고 건사할 적에 다시는 아프지 않는, 아니 눈부시게 튼튼한 우리가 될는지를 생각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이야기할 때라고 여깁니다. 집집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마을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학교를 다시 열 수 있을 텐데, 아예 올해는 모든 교육과정을 없애도 되어요. 올해는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까지 ‘한 해치 교육과정’을 일찌감치 접어놓고서, 앞으로 이 지구라는 별에서 우리가 지을 꽃살림이며 숲살림이며 사랑살림을 어디에서 어떻게 누가 어떠한 땀빛이며 웃음빛으로 함께할 적에 즐겁고 튼튼한 터전이 되려나 하는 이야기를 해야지 싶습니다. 입시도 시험도 돌림앓이 앞에서는 부질없는 줄 지켜보았다면, 우리가 참말로 지켜볼 길이 어디인가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할 노릇이지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틈을 넉넉히 누릴 만한 요즈음이겠지요.



둘이서 있을 수 있는 건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나는 카드론 일으킬 수 없는 기적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다. 숲에서 모두가 평온하게 웃는, 노와키조차도 같이 웃고 있는 모습을. (88쪽)



  이럴 때일수록 모든 나라가 ‘전쟁무기 없애기’에 뜻을 모으기를 빕니다. 모든 나라가 바로 이런 때에 ‘군대 없애기’에 뜻을 같이하기를 바랍니다. 학교만 멈출 일이 아니지 싶습니다. 전쟁무기하고 군대도 모조리 멈추고서, 이제까지 전쟁무기하고 군대에 퍼붓던 살림돈을 사람들한테 고루 나누어 주기를 바라요. 모든 군인을 집으로 돌려보내서 텃밭을 가꾸고 살림을 돌보는 마을일꾼이 되도록 북돋우기를 바라요.


  ‘국방비’라는 돈을 ‘재난기금’으로 모조리 돌리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한국뿐 아니라 이 지구라는 별에 있는 모든 나라에서 모든 사람이 다달이 150∼200만 원쯤 누릴 만하리라 생각해요. 그만큼 모든 나라 국방비가 어마어마하거든요.


  전쟁무기하고 군대를 다같이 없애면 아무 걱정이 없어요. 이 지구를 이룬 모든 나라에서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마을가꾸기랑 숲가꾸기에 온힘을 쏟는다면 돌림앓이가 더는 불거지지 못합니다. 그리고, 비행기나 자동차나 기차가 아닌, 두 다리나 자전거로 어느 나라이든 홀가분하게 마실을 다니는 새터가 될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달이 살림돈을 넉넉히 누리니 훔치거나 빼앗거나 가로챌 일이 없이, 아름답고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겠지요.


  오늘도 비바람이 불어 매캐하고 지저분한 이 별을 고이 씻고 쓸어 줍니다. 《파란 만쥬의 숲》에 나오는 두 숨결, 바람아씨하고 숲돌이는 온몸을 맡겨 바람숲을 지키는 길로 나아갑니다. 이윽고 두 숨결은 하늘나라에서 빛으로 새롭게 만나서 이 땅에 ‘사람’이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사랑’으로 처음부터 작은 살림을 꾸려 나갑니다. 그리고 이 둘 곁에서 바람이랑 숲이랑 모든 넋이 즐겁게 웃으면서 따스히 맞이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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