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 -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인터뷰집
애덤 바일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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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1.31.

까칠읽기 117


《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

 애덤 바일스 엮음

 정혜윤 옮김

 열린책들

 2025.2.10.



“The Shakespeare and Company Book of Interviews”를 옮긴 《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다. 이 책을 읽은 분이라면 알 텐데, 프랑스 파리에 있는 작은책집이자 마을책집인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이고, 이곳은 ‘영어로 쓴 책’을 팔 뿐 아니라, ‘영어로 글을 쓰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며, ‘영어책을 읽으며 배우는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새책도 다루지만 밑바탕은 헌책집이다. 지난날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모든 책을 다루고 읽으려는 이음길이라고 할 만하다.


영어로 나온 책이라면 그냥 “Shakespeare and Company”를 넣을 만하다면, 한글로 옮길 적에는 책집이름을 그대로 살려도 되고, 수수하게 ‘책집’이나 ‘헌책집’이라 할 만하다. 프랑스에 있는 작은책집·마을책집·헌책집을 모르는 분한테 이 책을 알리려는 뜻이라면 책이름을 “작은책집에서 만난 사람”이라든지 “마을책집에서 이야기하다”라든지 “헌책집에서 나눈 말” 즈음으로 붙일 만하다.


다시 짚자면, “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 같은 책이름이 아주 틀리지는 않지만, 작은책집에서 여러 글바치를 불러서 이야기밭을 펼 적에는 ‘책집에서 모인다’는 뜻부터 살필 노릇이다. 으리으리하거나 커다란 곳에서 펴는 이야기밭이 아니다. 책숲(도서관)에서 꾀하는 이야기밭이 아니다. 책을 사고팔면서 읽고 나누는 마을책집에서 일구는 이야기밭이다. 그래서 헌책집 한 곳으로 찾아온 글바치뿐 아니라, 헌책집에 책손으로 드나드는 사람이 어울리는 이야기밭에서 피어나는 온갖 말은 ‘글쓰기’만 안 짚는다. 먼저 ‘삶읽기’를 짚고 ‘삶쓰기’를 바라보고 ‘삶짓기’로 나아간다. 한글판 책이름을 ‘소설쓰기’로 옭아매거나 좁혀야 할 까닭은 터럭만큼도 없다.


글을 쓰거나 읽을 적에는 ‘옳고그름’이나 ‘좋고나쁨’을 안 따질 노릇이다. 그저 삶을 쓰고 읽을 노릇이요, 언제나 삶을 쓰고 읽기에 이웃을 알아가고 나를 들여다보며 우리가 함께 살림을 펴는 이 푸른별을 가꾸는 길을 돌아볼 만하다. 프랑스 작은책집에 모이는 글바치가 너른눈으로 모든 책을 다 읽으려고는 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녁이 하는 말을 들으면 다 알아챌 수 있다. 어떤 이는 어느 아무개를 비아냥대거나 놀리거나 할퀸다. 어떤 이는 어느 무리만 옳거나 맞고 다른 쪽은 다 틀리거나 엉터리라고 나무란다. 다 다른 사람이 쓰는 다 다른 글이기에, 다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올 만하고, 마을책집은 이 다 다른 목소리를 그저 들려주고 듣고 나누면서 생각씨앗을 지피는 몫이다.


우리나라 책집은 어떠한가? 모든 목소리를 고루 담는 터전인가? 아니면 몇몇 목소리만 외곬로 치닫는 굴레나 늪인가? 첫머리에 나오는 글바치 한 사람은 “뭐든지 닥치는 대로 읽는다”고 밝힌다. 싫어할 만한 글도 찾아서 읽는다지. 글을 쓰는 사람은 늘 모두한테서 배워야 마땅하니까.


우리한테 귀가 둘인 까닭은 왼귀와 오른귀를 열고 틔워야 한다는 뜻이다. 눈이 둘인 까닭은 왼눈과 오른눈을 함께 뜨고 틔워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우리는 다 다른 몸이라서 눈이나 귀가 하나일 수 있다. 그런데 눈이나 귀가 하나여도 온소리와 온빛을 고루 받아들일 노릇이다. 우리 입이 하나인 까닭은, 다른 두 목소리와 빛을 아우르고 어우르면서 아름답게 한빛으로 펼쳐내라는 뜻이다.


글바치도 눈뜰 노릇이지만, 책을 읽는 모든 사람도 눈뜰 노릇이다. “좋아하는 책”만 읽는 사람은 언제나 외곬로 잠기면서도 외곬인 줄 스스로 못 알아챈다. 아이가 없거나 나이가 들었대서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안 읽거나 등지거나 깔보는 손길과 눈망울이라면, 이미 글러먹은 ‘늙은이’일 뿐이다. 만화책을 안 펴거나 얕보면서 소설책이나 인문책만 읽는 손끝과 눈길일 적에도, 벌써 틀려먹은 ‘늙다리’이다. 못마땅해 보이거나 마음에 안 차는 글도 읽어야 한다. 싫거나 미운 사람이 쓴 글도 읽어야 배워서 사람이 된다. 버스기사는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과일장수와 마트 계산원은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그저 모두 이웃이고 사람일 뿐이다.


ㅍㄹㄴ


“저는 뭐든지 가리지 않고 다 읽습니다. 제가 싫어하는 글조차, 아니 종종 싫어하는 글이 오히려 좋아하는 글보다 소설 쓰기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주거든요. 제가 하고 싶지 않은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도요 … 책상이 깔끔하면 뭔가 잘못된 겁니다.” (38, 39쪽/에버렛)


“정치는 제 할머니 집 안에 있는 온갖 것에도 스며들어 있었거든요. 거기 제 사진은 없는데 총리 사진은 있었지요.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74쪽/제임스)


“미안하지만, 글쓰기에는 카타르시스가 없습니다.” (119쪽/크네우스고르)


“사회는 항상 여성들에게 죄책감이 들게 하지요. 집에 있으면 사람들이 “아, 일을 안 하시는군요. 아이를 돌보는 건 정말 훌륭한 일이죠.”라고 하지만, 내심 경멸하고 있다는 걸 압니다. 바깥일을 열심히 하면 사람들이 “아, 아이를 직접 돌보지 않으시는군요. 출장이 많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요. 멋지세요.”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내심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169쪽/슬리마니)


#TheShakespeareandCompanyBookofInterviews #AdamBiles


+


《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애덤 바일스/정혜윤 옮김, 열린책들, 2025)


아버지는 이것을 “평생 교육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야간학교”라고 여겼다

→ 아버지는 이곳을 “늘 배우려는 사람한테 열린 밤배움터”라고 여겼다

→ 아버지는 이곳을 “내내 배우는 사람한테 마련한 밤배움터”라고 여겼다

11쪽


미국에는 ‘비백인’이라는 말이

→ 미국에는 ‘안하양’이라는 말이

→ 미국에는 ‘안하얀’이라는 말이

27쪽


관심의 대상으로서 말인가요, 아니면 조롱의 대상으로서 말인가요

→ 눈길받이로 말인가요, 아니면 비웃음거리로 말인가요

→ 바라보기 말인가요, 아니면 비꼬기 말인가요

→ 들여다볼 적에 말인가요, 아니면 놀릴 적에 말인가요

29쪽


만약 저한테 어떤 도덕적 진실을 기대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예요

→ 제가 착하기를 바란다면 잘못 보셨어요

→ 제가 참하기를 빈다면 틀렸어요

→ 제가 깨끗하기를 바란다면 잘못 짚었어요

31쪽


난센스가 재밌는 점은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할 때보다 패턴을 더 단단히 더 엄격히 고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 엉터리는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할 때보다 갈래를 더 단단히 꼼꼼히 지켜야 해서 재밌습니다

→ 우스개는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할 때보다 가지를 더 단단히 깐깐히 버텨야 해서 재밌습니다 

36쪽


일인자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게 여태 불문율이었는데 누군가가 그를 건드렸으니까요

→ 꼭두는 아예 안 건드리기로 했는데 누가 꼭두를 건드리니까요

→ 첫째는 아주 안 건드리기로 했는데 누가 첫째를 건드리니까요

71쪽


뭔가가 들리기는 하는데 이해하지는 못하는 그런 느낌이었죠

→ 뭐 들리기는 하는데 알지 못했지요

→ 들리기는 하는데 아리송했지요

→ 들리지만 몰랐지요

72쪽


제 할머니 집 안에 있는 온갖 것에도 스며들어 있었거든요

→ 할머니집에 있는 온갖 곳에도 스며들거든요

→ 우리 할머니집 온갖 곳에도 스며들거든요 

74쪽


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설명이 복잡해지는데요, 그건 제 집필 과정이 아주 직관적이고 반복적이기 때문입니다

→ 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말이 긴데요, 저는 바로 쓰고 거듭 쓰기 때문입니다

→ 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갈피를 못 잡는데요, 저는 그냥 쓰고 자꾸 쓰거든요

96쪽


4∼5년의 노력 끝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 너덧 해 용쓴 끝에 곧 안 되고 말았습니다

→ 너덧 해 땀뺐지만 끝내 날리고 말았습니다

108쪽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드는 생각들이 너무 많았어요. 하나는 존재론적인 차원이었고, 다른 하나는 물리적 차원이었습니다

→ 아버지가 이승을 떠났을 때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어요. 하나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몸이었습니다

→ 아버지가 이곳을 떠났을 때 머리가 뒤죽박죽이었어요. 하나는 숨빛이고, 다른 하나는 몸뚱이였습니다

109쪽


저는 대체로 제약이 되는 외부 시선을 피하고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려 노력했습니다

→ 저는 으레 가로막는 남눈을 꺼리고 홀가분한 곳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 저는 무릇 가두는 바깥눈을 비켜서 가벼운 자리를 열려고 애썼습니다

116쪽


왜 이 책은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잉태 기간이 그렇게나 긴지

→ 왜 이 책은 품기까지 그렇게나 길었는지

→ 왜 이 책은 움트기까지 그렇게나 길었는지

→ 왜 이 책은 싹트기까지 그렇게나 길었는지

128쪽


서로에게 일련번호를 알려 주면서

→ 서로 줄을 알려주면서

→ 서로 줄이름을 알려주면서

→ 서로 이름줄을 알려주면서

150쪽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려 애썼습니다

→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느긋이 들으려고 했습니다

→ 다른 사람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려고 했습니다

158쪽


할당제로 뽑힌 사람들은 그 일을 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 나눔길로 뽑힌 사람은 일을 할 만하지 못하다

→ 몫으로 뽑힌 사람은 일할 깜냥이 없다

→ 자리를 나눠받으면 일할 그릇이 안 된다

196쪽


일인칭으로 쓰는 게 더 쉽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삼인칭으로 쓰면 제가 모든 선택을 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 내 눈길로 쓰기가 더 쉽습니다. 남눈으로 쓰면 제가 모든 길을 고르는 줄 지나치게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나로서 쓰기가 더 쉽습니다. 그로서 쓰면 제가 모두 고르는 길을 지나치게 바라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215쪽


그러다 보면 여성은 천천히 비인간화되지요

→ 그러다 보면 순이는 사람과 멀어가지요

→ 그러다 보면 가시내는 사람이 안 되지요

345쪽


우리가 말하는 언어를 변화시키지 않기도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생각한 것 같습니다

→ 우리가 쓰는 말을 바꾸지 않기도 얼마나 어려운지 헤아린 듯합니다

→ 우리가 나누는 말을 안 바꾸기도 얼마나 어려운지 살핀 듯합니다

360쪽


케루악의 블루칼라 성향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싶은데요

→ 푸른옷 자리에 서는 케루악을 이야기해 보고 싶은데요

→ 풀빛옷꾼 쪽에 있는 케루악을 다뤄 보고 싶은데요

400쪽


이런 질문을 드리는 게 온당치는 않습니다만, 당신의 삶이 보리스 베커의 삶보다 더 낫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느끼는지요

→ 이렇게 물어보면 알맞지 않습니다만, 그대 삶이 보리스 베커 삶보다 낫기에 기쁜지요

→ 이리 여쭈면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그대가 보리스 베커보다 낫게 살기에 즐거운지요

41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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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에서 - 간호사가 들여다본 것들
김수련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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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1.17.

읽었습니다 343



  밑이 있기에 몸을 세웁니다. 밑이 없으면 못 서기도 하지만, 못 걷고 못 달리고 못 뛰며 못 삽니다. 나무를 마주할 적에 흔히 줄기나 가지나 잎이나 꽃을 보는데, 때로는 나뭇가지에 앉은 새와 나비를 보는데, 막상 땅밑에서 든든히 뻗는 뿌리를 헤아리지 못 하는 분이 많아요. 땅밑에 있어서 얼핏 눈에 안 띄기에 뿌리가 없을 수 없습니다. 푸른별에서 바다가 바닥을 이루면서 뭇숨결이 태어나는 바탕으로 있기에 바람이 파랗게 들숲메가 푸를 수 있습니다. 《밑바닥에서》는 돌봄터(병원)에서 밑자리를 이루지만 정작 온나라가 거의 못 들여다보거나 안 쳐다보는 돌봄이(간호사)가 겪는 나날을 수수하게 풀어놓습니다. 첫머리를 펴면 돌봄지기(의사)라는 이름인 이들이 얼마나 사납거나 마구잡이인지 밝힐 듯싶으면서도, 정작 책을 펴면 ‘얄궂은 짓을 일삼는 돌봄지기’ 모습은 몇 가지 안 나옵니다. 글쓴이가 돌봄이로 지내며 마주하는 아픈이(환자)하고 얽힌 나날이 가득해요. ‘태움’이 무엇인지 밝히겠다는 머리말과는 달리 ‘태움’이 몇 가지로 나타나는지 단출히 적바림하고서 끝납니다. 그러면 이 책은 “이 나라 돌봄터에서 밑바닥을 이루는 이슬방울 같은 땀방울 이야기”라는 대목으로 눈길을 맞추어서 첫머리와 머리말을 적고서 풀어야 맞을 텐데요? 이렇게 풀어내는 글도 훌륭합니다만, 글을 ‘문학’처럼 잘 쓰려고 너무 힘을 들였다고도 느낍니다. 그저 수수하게, 나무뿌리와 같이, 푸르게 우거지는 나무를 받치는 든든한 살림빛이라는 곳을 들여다보면 넉넉했을 텐데 싶어서 아쉽습니다.


ㅍㄹㄴ


《밑바닥에서》(김수련, 글항아리, 2023.2.10.)


담당 레지던트는 그다지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전화하면 안 받거나, 받은 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더대로 해요”라고 했다. 혹은 “어쩌라고요”라거나 “바빠죽겠는데 진짜”라면서 끊기도 했다. 대답 없이 끊을 때도 있었다. 다른 간호사에게는 욕설을 했다고도 들었다. 욕설쯤 들어도 괜찮으니 그저 내가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만 줬으면 싶었다. (37쪽)


+


여기에 실린 글은 누군가에게 불쾌함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여기에 실은 글을 읽다가 거북할 수 있다

→ 이 글을 읽고서 떨떠름할 수 있다

→ 이 글을 읽다가 짜증날 분이 있으리라

→ 누구는 이 글이 거슬릴 수 있다

→ 누구는 이 글이 못마땅하겠지

8쪽


간호사로 일을 시작한 후 쌓아온 개인적인 경험과 소회를 담았다

→ 돌봄이로 일하며 쌓아온 삶과 얘기를 담는다

→ 보살핌이로 지내며 겪은 일과 속내를 담는다

12쪽


그때는, 데이Day 출근이면

→ 그때는, 낮일을 하면

→ 그때는, 낮에 일하면

21쪽


그냥 완충지대가 되라는 뜻이다

→ 그냥 바람막이가 되라는 뜻이다

→ 그냥 막아주라는 뜻이다

→ 그냥 뽁뽁이가 되라는 뜻이다

→ 그냥 감싸주라는 뜻이다

→ 그냥 누그러뜨리라는 뜻이다

→ 그냥 재우라는 뜻이다

26쪽


대체로 딸들의 용서, 혹은 아빠들의 변화, 그리고 시간이 요구되거나 혹은 그 모두가 요구된다

→ 으레 딸이 봐주거나 아빠가 바뀌거나 오래 걸리거나 이 모두가 있어야 한다

→ 여태 딸이 눈감거나 아빠거 거듭나거나 한참 들거나 이 모두가 있어야 한다

96쪽


힘으로는 팔척귀신처럼 훌쩍 자란 아들을

→ 힘으로는 꺽다리처럼 훌쩍 자란 아들을

→ 힘으로는 큰깨비처럼 훌쩍 자란 아들을

→ 힘으로는 크게 자란 아들을

→ 힘으로는 우람하게 자란 아들을

98쪽


여기서 우리는 어떤 인성들의 밑바닥을 본다. 그 바닥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것을 닮아간다

→ 여기서 우리는 어떤 사람 밑바닥을 본다. 바닥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냥 닮아간다

→ 여기서 우리는 됨됨이 밑바닥을 본다. 바닥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대로 닮아간다

143쪽


모두가 알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 모두한테 알리려고 온힘을 다했다

→ 모두한테 알리고 싶어 땀을 뺐다

→ 모두 알기를 바라며 힘을 다했다

150쪽


내가 대신 말할 때조차 그들의 이름은 익명이어야만 한다고 요구받았다

→ 내가 나서서 말할 때조차 그들 이름은 숨겨야 한다고 내걸었다

→ 내가 나가서 말할 때조차 그들 이름은 감춰야 한다고 닦달했다

24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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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1.2.

까칠읽기 115


《인류의 눈물을 닦아주는 평화의 어머니》

 한학자

 김영사

 2020.2.4.첫/2020.7.13.12벌



지난 2025년 12월 31일, ‘김영사’라는 곳은 이녁 누리집에 뜬금없는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한학자 총재 자서전”을 뉘우치는 글인가 했더니 아니더라. 《인류의 눈물을 닦아주는 평화의 어머니》라 하는 오글오글한 책을 펴내며 돈벌이에 눈이 돌아간 민낯을 고개숙여 빌겠다는 글이 아니더라.


2026년 1월 1일에도 ‘통일교 우두머리 독생녀 한학자’ 책은 버젓이 잘팔린다. 나는 헌책집에서 1500원을 치르며 샀다. 너무 비싼값에 소름이 돋아서 한참 망설였지만, 500원도 50원도 아닌 1500원씩이나 받느라, 왜 사야 할까 하고 두어 달 지켜보다가 ‘지르’기로 했다. 까짓 1500원, 기꺼이 써 주마 하고 소리쳤다.


헌책으로 받은 《인류의 눈물을 닦아주는 평화의 어머니》는 다섯 달 만에 12벌을 찍었더라. 2025년까지 몇 벌이나 찍었을까? ‘김영사’는 ‘통일교 우두머리 독생녀 한학자’ 책을 펴내어 얼마나 벌었을가? 뭐, 하나도 안 궁금하다. 한쪽은 돈잔치로 임금노릇을 하고, 다른쪽도 돈벼락으로 우쭐거리는 이 민낯은 바로 우리나라 참모습이겠지. ‘참어머니’ 한 분은 우리나라 곳곳에 웅크린 ‘돈버러지’ 참낯을 고맙게 비춰냈다고 느낀다. ‘참어머니’가 안 계셨어도 돈벌레 얼뜬낯은 이미 둘레에 흐드러지기는 했되, 아직 참배움길에 들어서지 못 하고서 이름만 ‘참’을 붙이니, 허참, 혀를 찰밖에 없다.


ㅍㄹㄴ


이러한 연유에서 나는 그동안 본연의 하늘부모님의 위상을 되찾아 드리기 위해,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동으로 서로 남에서 북으로 지구 곳곳을 다니며 하늘 섭리의 진실을 알리는 데 모든 것을 투입했습니다. (6쪽)


내가 아이를 많이 낳아 집안이 화기애애한 만큼, 교회는 이 도시 저 마을에 계속 생겨나고 식구들도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한국에서 가장 큰 교회’나 ‘신도가 가장 많은 교회’와 같은 세속적 목표는 애당초 없었습니다. 세계를 구원하는 종교, 인류의 눈물을 닦아 주는 참된 교회만을 소망했습니다. (152쪽)


내가 바다를 사랑하는 이유는 강인한 몸과 마음을 길러 줄 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가 바다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육지보다 훨씬 넓습니다. 깊은 파도 아래에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금은보화가 묻혀 있습니다. 바다를 먼저 개척하는 사람이 곧 세계를 이끄는 사람이 됩니다. (262쪽)


문선명 총재와 나는 한평생을 하나님의 조국 평화를 위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았습니다. 결코 뒤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처한 상황에 연연하지 않았고 좌고우면하지도 않았습니다. (405쪽)


+


《인류의 눈물을 닦아주는 평화의 어머니》(한학자, 김영사, 2020)


에메랄드 빛깔의 푸른 바다에서 인사하는 듯 떠밀려 오는 새하얀 파도를 맞으며 해변을 거닐었습니다

→ 쪽빛바다에서 절하듯 떠밀려 오는 새하얀 물결을 맞으며 바닷가를 거닙니다

4쪽


내 뒤를 감싸는 따사로운 햇살, 참으로 평화로운 순간이었습니다

→ 내 뒤를 감싸는 따사로운 햇볕, 참으로 포근한 때입니다

→ 내 뒤를 감싸는 따사로운 햇볕, 참으로 아늑합니다

→ 내 뒤를 감싸는 햇볕이 따사로워 참으로 고요합니다

4쪽


독생녀라는 나의 또 다른 이명(異名)을 통해 얘기합니다

→ 고명딸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얘기합니다

→ 첫아이라는 곁이름으로 얘기합니다

→ 외딸이라는 새이름으로 얘기합니다

→ 외동이라는 덧이름으로 얘기합니다

7쪽


절기상 봄으로 접어든 3월의 첫날이었지만

→ 철눈은 봄으로 접어든 셋쨋달 첫날이지만

→ 철은 봄으로 접어든 셋쨋달 첫날이지만

17쪽


저 옷은 어느 나라의 전통의상일까요

→ 저 옷은 어느 나라일까요

→ 저 옷은 어느 내림옷일까요

→ 저 옷은 어느 나라옷일까요

30쪽


처한 상황에 연연하지 않았고 좌고우면하지도 않았습니다

→ 그때그때 얽매이지 않았고 망설이지도 않았습니다

→ 무슨 일이든 매이지 않았고 허둥대지도 않았습니다

40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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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의 생각 없는 생각 - 양장
료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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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12.31.

까칠읽기 114


《료의 생각 없는 생각》

 료/이효정

 열림원

 2025.6.16.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은 2025년 11월로 접어들 즈음 갑자기 책집에서 사라진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이 벌인 민낯이 드러나면서 하루아침에 책팔기를 멈추고, 누리길(sns)도 막고, 이모저모 입막음이 휘몰아쳤다. 쉴틈없이 일해야 하던 젊은이는 저승으로 갔고,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저승값(사고배상금)을 ‘죽은 젊은이 집안’에 발빠르게 치른다. 여태 마치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잠재우는 바람을 탔다. 이러고서 두 달이 지난다. 숱한 사람들은 마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까맣게 모른다. 료 씨가 낸 책이름하고 똑같이 ‘생각 없는 머리’로 ‘런던베이글뮤지엄 맛집마실’을 즐기고, 그들 누리집이나 누리글에 신나게 올린다.


2024년 12월 29일 무안나루에서 날개가 난데없이 펑 터지기 앞서, 2024년 12월 첫머리에 슬그머니 무안나루 ‘새로열기(재개장)’를 크게 벌였다. 어느덧 한 해가 흐르지만, 전라남도에서 어느 누구도 값을 치르지 않았다. 이 죽음수렁을 글로 쓰거나 목청을 높이는 사람은 그야말로 보기 어렵다.


새해로 접어들면 나라 곳곳에서 뽑기를 또 한다. 말 그대로 ‘뽑기’이다. 우리는 아직 아름길(민주주의)이 아니다. 일꾼을 못 가리고, 못 보고, 못 찾고, 못 만난다. 느닷없이 새책집에서 사라진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을 헌책집에서 찾아냈다. 두 달 즈음 조금조금 넘겼다. 료 씨가 어떤 마음으로 이런 글을 쓰면서 ‘빵팔이 + 글팔이 + 얼굴팔이’를 했는지 궁금하지 않고, 알아야 하지도 않다. 그저 겉치레에 허울이 가득할 뿐이다. 다만, 이런 겉치레와 허울을 2025년 10월 31일까지 숱한 사람은 아예 안 알아보거나 못 알아보는 판이었고, 2025년 12월 31일까지 돌아보니, 그냥그냥 흘려넘기거나 지나친다.


앳된 젊은이가 눈물겹게 죽지 않았다면, 쓰잘데없는 책 한 자락이 ‘2025년 올해책 꾸러미’에 들지 않았을까? 참으로 끔찍한 짓이 일어날 뻔했다.


뉘우침글을 쓰는 사람은 왜 없을까? 아니, 어디에 틀림없이 있으나, 내가 못 찾아냈을 뿐이리라. 이런 책을 못 알아보고서 넙죽넙죽 별다섯을 꾹꾹 눌러서 잘못했다고 고개숙이는 사람은 왜 없을까? 아니, 어디에 반드시 있을 텐데, 내가 영 찾아내지 못 할 뿐이리라. 한 해를 마무르는 섣달그믐에 우리 모두 나란히 곰곰이 삶길을 돌아보기를 빈다. 새해에는 누구나 ‘눈뜨는’ 말과 글과 책과 이야기와 살림과 들숲메바다와 풀꽃나무와 해바람비를 고이 품기를 빈다.


ㅍㄹㄴ


《료의 생각 없는 생각》(료, 열림원, 2025)


우리 모두는 모두에게 유일한, 스스로에게 가장 첫 번째로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인지할 때부터, 누군가를 진짜 사랑할 수 있는 특권을 선물 받게 되는 것 같아, 오늘도 바래 봅니다

→ 우리 모두는 저마다 하나인, 스스로 가장 먼저 사랑받을 사람인 줄 알 때부터, 서로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빛을 받는 듯하다고, 오늘도 바랍니다

→ 우리 모두는 스스로 하나인, 나부터 첫째로 사랑받을 사람인 줄 느낄 때부터, 서로 참답게 사랑할 수 있는 듯하다고, 오늘도 바라봅니다

7


그렇게 말처럼 쉬울 수는 없는 것이다

→ 그렇게 말처럼 쉬울 수는 없다

13쪽


발바닥 마사지를 하고, 배가 전보다 자주 고파진다는 특이점을 찾아볼 수 있겠다

→ 발바닥을 주무르고, 배가 예전보다 자주 고파서 다르다

→ 발바닥을 토닥이고, 배가 예전보다 자주 고프니 다르다

21쪽


곁에 두고 지낼 수 있음이 더없이 감사한 시간들

→ 곁에 두고 지낼 수 있어서 더없이 고마운 하루

→ 곁에 두고 지낼 수 있으니 더없이 기쁜 오늘

24쪽


단순히 표현하고 기뻐해주는 상관관계뿐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는 일이 늘 뒤따를 때

→ 그저 나타내고 기뻐하는 사이뿐 아니라 열매로 늘 따질 때

→ 마냥 드러내고 기뻐하며 지낼 뿐 아니라 마감을 늘 잴 때

56


듣고, 만지며, 기억하는 자연스러운 습관도 가질 수 있었다는 건, 한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 듣고, 만지며, 떠올리는 버릇이 저절로 밴 줄은 한참 나중에서야 알았다

→ 듣고, 만지며, 되새기는 버릇이 어느덧 밴 줄은 한참 나중에서야 알았다

74쪽


절기의 표식과 상관없이 기운으로 알아버리는 나는 어느새 진짜 어른인 것이고, 오늘은 입추인 것이다

→ 철눈을 몰라도 기운으로 알아버리는 나는 어느새 어른이고, 오늘은 새가을이다

→ 눈금을 몰라도 기운으로 알아버리는 나는 어느새 어른이고, 오늘은 가을길이다

100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느낄 수 있는 매일의 고마움 말이야

→ 값을 치르지 않고도 느낄 수 있는 고마운 하루 말이야

→ 돈을 내지 않고도 느낄 수 있는 고마운 나날 말이야

146


저 끝의 진짜 감사함이 나오게 되는 끝없던 사이클을, 싫증 없이 사랑해

→ 저 끝, 참으로 고맙다고 말하는 끝없던 돌잇길을 그저 사랑해

→ 저 끝, 그저 고맙다고 밝히는 끝없던 길이 안 싫어, 사랑해

146


나를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은 먼저 남을 구하는 것이듯

→ 나를 살리는 오직 하나는 먼저 남을 살리기이듯

→ 나를 돕는 딱 한 가지는 먼저 남을 돕기이듯

191쪽


나는 종종 일에 경중이 없이 모든 일을 같은 강도로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 나는 가끔 모든 일을 높낮이 없이 하는 나를 본다

→ 나는 이따금 모든 일을 똑같이 하는 나를 느낀다

235


모두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서로가 흥미로운 그런 세상이 오기를, 그리고 함께 그 꿈을 만들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모두가 다른 누구가 아닌 나로서 서로 반가울 나날이기를, 그리고 함께 이 꿈을 짓기를 참으로 바랍니다

→ 모두가 다른 남가 아닌 나로서 서로 즐거울 날이기를, 그리고 함께 이 꿈을 일구기를 참말로 바랍니다

356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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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자살하는 나라 김달 단편집 1
김달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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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12.22.

까칠읽기 110


《여자가 자살하는 나라》

 김달

 문학동네

 2025.4.4.



사랑이라는 마음이라면 싸우지 않습니다. 사랑시늉이나 사랑흉내를 하기에 허울을 스스로 쓰면서 싸웁니다. 사랑이라는 마음을 스스로 지피지 않기에 온누리를 품고 푸는 푸근한 품을 잃어요. 푸르게 품는 품을 스스로 잃으니 어지럽게 헤매다가 사납게 할퀴는 손끝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시골을 깡그리 잊을 만큼 들숲메바다를 등진 서울살이”입니다. 서울시가 아닌 다른 큰고장·작은고장에서 살아가는 하루도 “시골을 낮잡는 얼거리”예요. 이런 마음이 바탕으로 고스란히 자리잡으니 ‘촌스럽다’ 같은 사납말을 그냥 쓰고, ‘도시적·세련된’ 같은 겉치레말도 그냥 씁니다.


그리 멀잖은 지난날까지 ‘아무나’ 글을 못 배우고 못 읽고, 책은 더더구나 손에 쥘 수 없게 마련이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글을 배우고 읽고 쓸 뿐 아니라, 책을 장만하거나 쓰는 일까지 몹시 쉬워요. 그런데 ‘저마다’ 글을 쓰거나 읽거나 책을 내거나 읽을 수 있는 놀라운 삶을 맞이했지만, 막상 ‘스스로’ 배우려고 챙겨서 읽는다든지, ‘스스럼없이’ 나누려고 거듭거듭 익혀서 글·책을 쓰는 사람은 오히려 줄어드나 싶기도 합니다.


《여자가 자살하는 나라》를 읽었다. 그림님은 ‘거칠게(과격)’ 안 그렸다고 밝히는데, ‘거칠다(과격)’기보다는 ‘생각않는(무데뽀)’라 해야 맞다고 느낀다. 생각하며 그렸다기보다, 그냥그냥 붓을 휘둘렀다. 우리는 예부터 미운놈한테 떡 하나를 더 주며 함께살기를 이루었는데, 《여자가 자살하는 나라》 같은 책은 미운놈이니까 흠씬 두들겨팰 뿐 아니라, 붓으로 확확 죽이는 얼거리라고 할 수 있다.


순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곳이라면, 그 별은 이미 끝장났습니다. 돌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곳이어도, 이 별은 벌써 막장입니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서, 서로서로 헤아리고 살피고 사랑하는 별일 때라야, 비로소 별빛이 흐릅니다. 끝장과 막장을 더하면 싸움판이고 죽음밭이다. 칼부림판이요, 아무렇지 않고 찌르고 베고 쑤셔서 없애는 얼뜬짓이다.


남(사회·정부)이 나를 잘 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쁘지 않지만, 남(기존 출판사)이 우리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이름난 숱한 펴냄터에서 쏟아지는 책이 오히려 ‘속빈강정’이나 ‘텅빈수레’이기 일쑤이다. 언제나 즐겁게 이 하루를 아로새기면서 새길과 새뜻을 이루기를 바랄 뿐이다. 칼부림으로는 하나도 못 낳는다. 실컷 밟고 죽인들 응어리를 못 푼다. 그저 돌려받을 뿐이다. 다른 붓질이야말로 사납다고 둘러댄들 부질없다. 멍한 눈망울인 사람을 그려대는 붓으로는 스스로 할퀴기만 하겠지.


ㅍㄹㄴ


헬레나는 식민지에 도착했다. 식민지 여자들은 전부 추하고 웃기게 생겼다. 헬레나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47쪽)


아버지와 막냇동생의 시체에는 파리가 새카맣게 앉아 있었다. 다른 동생들은 아마 도망간 것 같았다. 코토하는 눈에서 눈물이 멈췄다. 교토하는 집밖으로 나왔다. (82쪽)


심지어 여자가 남자를 잔인하게 살해해도, 죄를 추궁받지 않는다. 남자 따위야 우글우글하기 때문이다. “제 안의 파괴 충동에 그만.” “그러실 수 있죠.” “아, 매일매일이 즐거워. 내가 하지 못할 일은 없고. 갖지 못할 것도 없지.” (152쪽)


제 만화는 사실 별로 과격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국민적인 인기를 끄는 웹툰이나 영화들을 봐도 제 만화보다 훨씬 폭력적인 게 많습니다. (234쪽)


+


《여자가 자살하는 나라》(김달, 문학동네, 2025)


엄마의 미모를 물려받아

→ 엄마 몸매를 물려받아

→ 엄마처럼 잘빠져서

→ 엄마처럼 고와

→ 엄마처럼 매끈해서

8쪽


열여섯 살이 되었다. 이팔청춘

→ 열여섯 살이 된다. 꽃망울

→ 열여섯 살이다. 푸른나이

9쪽


심각한 우울증에 약간의 조현증세까지 생긴 공주는

→ 눈물꽃에 미치기까지 한 아이는

→ 멍울꽃에 넋나가기까지 한 아이는

22쪽


말더듬증이 심해서

→ 말을 몹시 더듬어

→ 말더듬이라서

31쪽


태양 아래 얼굴을 마음껏 드러내고 다녔다

→ 햇빛에 얼굴을 마음껏 드러내고 다녔다

→ 얼굴을 마음껏 드러내고 다녔다

47쪽


그는 일 년 만에 풍토병으로 죽었다

→ 그는 한 해 만에 흙앓이로 죽었다

→ 그는 한 해 만에 텃앓이로 죽었다

48쪽


사십 일의 밤과 낮 동안 사막을 홀로 걸었구나

→ 마흔 밤낮을 홀로 모래벌을 걸었구나

→ 모래밭을 밤낮으로 마흔 날 홀로 걸었구나

67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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