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주의 선언 동물권리선언 시리즈 12
코린 펠뤼숑 지음, 배지선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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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9.17.

까칠읽기 99


《동물주의 선언》

 코린 펠뤼숑

 배지선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9.8.23.



‘숨결(생명)’을 보려면, 먼저 “‘나’는 어떤 숨결인가?”부터 들여다보면서 “‘나’를 둘러싼 ‘너’는 어떤 숨결이지?”를 나란히 바라볼 노릇이다. 나하고 너가 언제나 다르면서 하나인 몸마음인 줄 알아본다면, 어떤 숨결을 놓고서도 고스란히 헤아리면서 품을 수 있게 마련이다.


《동물주의 선언》을 읽는 내내 왜 이렇게 ‘우리말’을 안 쓰고 ‘일본말·옮김말’에 갇히나 싶어 아리송하다. 나란길(평등권)을 바라는 마음이라면 언제나 이 나라 누구나 어깨동무하면서 쉽게 읽을 만한 말글로 가다듬을 노릇이다. 말글부터 나란길이 아닐 적에는 으레 위아래로 가르고 만다.


모름지기 ‘글’이 아닌 ‘말’로 살아가며 살림하던 온누리 뭇사람은 ‘동물권·평등권’ 같은 일본한자말을 몰랐어도 서로 어깨동무하는 하루였다. 더구나 사람으로서 목숨을 이으려고 ‘먹을’ 적에도 짐승뿐 아니라 풀과 열매도 함부로 거두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이을 만큼 알맞게 다루고 품는 살림길이었는데, 나라(정부)가 서고서 벼슬자리가 늘고 임금붙이가 생길 무렵부터 이 모든 살림길이 흔들렸다.


조금만 짚어도 누구나 알 수 있다. 벼슬아치와 임금붙이는 손에 물도 흙도 안 묻힌다. 그들(벼슬아치·임금붙이)이 사내이건 가시내이건 똑같다. 그들(권력자)은 해바람비를 등지면서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먹었는데, 그들은 우리(살림꾼)가 아니기 때문이다. 살림꾼은 살림하는 대로 가려서 먹는다.


숨결(감수성)이 없는 목숨은 없다. 짐승만 숨결이 있지 않다. 벼와 밀한테도 숨결이 있다. 능금과 배한테도 숨결이 있다. 그대가 쌀알 한 톨을 짓밟으면 쌀알이 안 아프겠는가? 그대가 밤새 불을 켜놓으면 벼나 나무가 멀쩡한가? 아니다. 모든 풀꽃나무도 해바람비를 반길 뿐, 등불을 밝혀서 잠을 안 재우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동물권·동물주의’에다가 ‘식물권·식물주의’를 나란히 놓으면 “그럼 뭘 먹으란 소리예요!” 하고 외치거나 따질 수 있겠지. 그런데 ‘뭇숨결(동식물)’은 참말로 뭇숨결인 줄 알고서 먹을 노릇이다. 풀짐승한테 뜯기는 풀은 풀짐승을 미워하지 않는다. 고기짐승한테 잡아먹히는 풀짐승은 고기짐승을 미워하지 않는다. 다 이어갈 뿐이다. 풀짐승이 먹은 풀은 풀짐승을 이루고, 풀짐승을 먹는 고기짐승은 ‘풀짐승이 먹은 풀빛’이 어느새 스미면서 고기짐승이라는 몸을 이룬다. 이윽고 고기짐승이 몸을 내려놓고서 흙으로 돌아가면, 흙은 ‘고기짐승 뼈와 살과 가죽’을 개미와 지렁이와 굼벵이와 버섯과 쥐며느리에 갖은 잔숨결을 거쳐서 새흙으로 돌려보내니, 풀꽃나무는 새삼스레 무럭무럭 자란다.


풀꽃나무는 ‘시든 잎’과 ‘떨어진 열매’도 다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죽은 짐승 몸뚱이’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온누리 숨빛은 나란히 돌고돈다. 높거나 낮은 길이란 없이, 낫거나 나쁜 밥살림이란 없이, 그저 서로서로 몸과 숨결을 바꾸면서 흐른다.


《동물주의 선언》은 나쁜책은 아닐 테지만, ‘동물주의·동물권’에 너무 얽매이는 나머지 ‘풀꽃나무’한테는 마음(감수성)이 아예 없다고 몰아붙인다. 터무니없다. 왜 이렇게 외쳐야 하나? 사람도 짐승도 풀꽃나무도, 돌과 모래와 흙도, 다 다르게 마음이 있는 줄 알아보려고 하지 않으면, 그들(권력자)하고 똑같을 뿐이다.


벼와 밀을 비닐집이나 유리집에 가두어서 키울 수 있을까? 어림조차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수박이며 상추이며 딸기이며 토마토이며 무화과에 유자까지 비닐집에 가두어서 꼭짓물(수돗물)을 먹이고 기름(석유)을 때서 겨울나기를 한다. ‘공장축산’일 뿐 아니라 ‘공장농업’이라는 굴레를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들빛(동물권)을 제대로 못 짚는다. 들빛이란, 사람과 짐승과 풀꽃나무가 몸만 다른 얼개일 뿐, 마음도 숨결도 나란히 하늘빛이라는 대목을 알아보고 받아들여서 함께 반짝이는 별로 피어나려는 길일 노릇이다.


ㅍㄹㄴ


인간은 동물이 ‘감수성’을 지녔음을 알면서도 동물을 도덕적으로 배려하지 않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섬세함을 억압하는 법을 배운다. (15쪽)


식물 역시 편견의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감수성’을 가진 존재만이 편견의 피해를 개별적이고 주체적으로 겪는다. 감수성은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 자아실현의 욕망, 죽음에 대한 공포, 강제된 삶의 조건에 대한 저항, 즐거움, 협력의 의지,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 모두를 포함한다. 따라서 식물에 관해서도 존중을 말해야 하지만 동물과 사람의 권익이 침해되는 것은 정의의 측면에서 문제를 불러일으키므로 동물과 사람이 실질적인 권리를 갖도록 촉구해야 한다. (65쪽)


푸아그라는 집오리나 거위에게 3주 동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양의 먹이를 억지로 먹인 결과로 만들어진 병든 간이다. 자연상태에서 오리나 거위는 장기 비행을 하기 전에 자연스런 방법으로 살을 찌우는데, 당연하게도 비행에 적합한 정도로만 절제한다. (109쪽)


#CorinePelluchon #Manifeste Animaliste (2017년)


+


《동물주의 선언》(코린 펠뤼숑/배지선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9)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

→ 사람과 짐승 사이는 사람이 어떤 숨결인지를 드러내는 거울과 같다

→ 사람과 얽히는 짐승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10쪽


반려동물이 버려지고, 동물 보호소는 가득 차 넘치며

→ 곁짐승을 버리고, 들돌봄터는 가득하며

→ 벗짐승을 버리고, 들돌봄울은 차고 넘치며

11쪽


나와 타자를 구별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동일시하는 연민은 타자를 외형에 따라 종, 종류, 공동체로 분류하지 않고 다 같은 생명체로 인식한다

→ 나와 너를 가르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으로, 남을 겉모습에 따라 씨·갈래·무리로 가르지 않고 다같이 숨결로 여긴다

12쪽


연민이 없는 정의로움은 가능한가

→ 불쌍히 안 보며 곧을 수 있나

→ 딱하게 안 보며 바를 수 있나

17쪽


공장식 축산의 과정에서 동물은 오직 하나의 기능만 수행하도록 강요받는다

→ 짐승은 가두리에서 오직 한 가지 쓰임새이다

→ 짐승가두리는 오직 한 가지만 바라본다

→ 짐승을 몰아놓는 곳에서는 오직 한 가지로 다룬다

22쪽


종차별반대주의antispeciesism는 종차별주의speciesism에서 비롯된 말이다

→ 나눔씨는 먼저씨란 말에서 비롯하였다

→ 나란씨는 앞씨란 말을 보며 지었다

→ 함께씨는 웃씨란 말 때문에 엮었다

→ 같이씨는 으뜸씨란 말과 맞물린다

→ 이웃씨는 꼭두씨란 말과 마주한다

27쪽


자연상태에서 오리나 거위는 장기 비행을 하기 전에 자연스런 방법으로 살을 찌우는데, 당연하게도 비행에 적합한 정도로만 절제한다

→ 들숲에서 오리나 거위는 오래 날기 앞서 차근차근 살찌우되, 날기 알맞게 먹는다

→ 들오리나 들거위는 오래 날기 앞서 천천히 살을 찌우되, 날 수 있을 만큼 먹는다

109쪽


동물에게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데 있어 앞장서는 국가는 경제적인 면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갖고 번영할 것이다

→ 짐승을 올바로 헤아리려는 나라는 살림살이를 비롯해 모든 곳에서 피어난다

→ 짐승을 곧게 살피려는 나라는 살림살이뿐 아니라 모든 곳에서 발돋움한다

12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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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 17호
유정훈 외 지음,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부 엮음 / 서울리뷰오브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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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9.16.

까칠읽기 96


《서울 리뷰 오브 북스 17》

 김두얼 엮음

 알렙

 2025.3.15.



《서울 리뷰 오브 북스 17》은 ‘비상계엄과 헌법’을 다룬다. 다른 달책과 마찬가지인데, ‘무안참사’를 다루는 글바치는 여태 아주 못 보는 판이다. 언제까지 미루려는 셈일까. 언제까지 못 본 척하려는 셈인가. 아니, 미루거나 못 본 척한다기보다, 아예 마음이 없어 안 쳐다본다고 해야 옳다고 느낀다.


이 책수다책(서평지)을 볼 때마다 ‘서울 리뷰 오브 북스’라는 미국스러운 이름이 얄궂다고 느낀다. 어느덧 열여덟걸음까지 내기는 했되, 열아홉째나 스무째부터 바로잡거나 바꿀 수 있을까? ‘리뷰 오브 북스’는 우리말도 아니지만 우리말씨일 수도 없고, 책을 곁에 두려는 이웃을 늘리거나 넓히는 길에 이바지할 수 없다고도 느낀다. 이렇게 영어 몇 마디쯤 쉽게 쓸 줄 알아야 하고, 어려운 말씨로 글을 적어야 한다는 담벼락이기도 하다.


우리말로 헤아린다면 “서울에서 책읽기”나 “서울에서 읽은 책”이나 “서울에서 말하는 책”이나 “서울책”이나 “서울사람 책읽기”나 “서울읽기 책읽기”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왜 서울이어야 할까? 글쓴이가 거의 서울에서만 살고 서울에서만 일하기에 ‘서울’을 앞에 내세울 수 있을 텐데, 뭇책을 두루 읽고서 나누려는 마음이라면 ‘서울’ 같은 이름은 덜어내야 맞다. “우리 함께 책읽기”라든지 “다같이 책읽기”처럼 품을 넓히면서 뭇고을을 아우르려는 눈길을 펴야 맞다.


이를테면 “컨트리 리뷰 오브 북스”라고 이름을 붙인 책노래책을 낸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그러나 우리는 “시골에서 책읽기”와 “숲에서 책읽기”처럼, 서울이 아닌, 푸른길과 푸른살림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책을 곁에 둘 노릇이라고 본다. 하나부터 열까지 서울에 쏠리고 휩쓸리고 집어삼키는 얼거리라면, 책읽기뿐 아니라 삶읽기라는 길은 너무 좁고 빠듯하고 바쁘면서 갇히게 마련이다.


으뜸길(헌법)도 잘 짚고 새롭게 바라볼 노릇이다. 그런데 먼저 짚고 바라볼 곳이 있지 않을까? 구의원과 군의원은 왜 있어야 하고, 어떻게 있어야 할까? ‘지방의원 조례’는 어떤 민낯이며, 나라돈이 얼마나 펑펑 샐까? 온통 ‘서울 줄거리’로만 책을 읽으려고 하면, 서울사람부터 스스로 눈이 잠기거나 갇히는 굴레로 치닫는 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빈다.


ㅍㄹㄴ


서울에서는 강남과 홍대밖에 몰랐던 나는 그나마 집과 가까운 홍대입구역을 자주 들락거렸다. 온갖 진귀한 가구가 가득한 디자인 카페, 외국 브랜드의 쇼룸이 즐비한 집을 걸으며 진로에 대한 불안을 마취시키고는 했다. 집에 돌아오면 불안이 숨통을 조여 왔지만 멋있는 장소와 사람들 틈에 앉아 있으면 현실의 문제가 다 해결된 미래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여느 날처럼 회피성 산책을 마친 후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작은 가게 문 앞에 붙어 있는 노란 종이가 눈을 끌었다. ‘스태프를 구합니다’ 그곳은 서점이었다. (93쪽/김수진)


+


《서울 리뷰 오브 북스 17》(김두얼 엮음, 알렙, 2025)


매번 모일 때마다 고민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 모일 때마다 걱정스레 이야기를 한다

→ 모이면 늘 근심스레 이야기를 한다

4


최근 K-문학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원어로 읽고 느껴 보고자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풍이 세계 곳곳에서 불고 있음을 절감한다

→ 요즘 우리글꽃이 뛰어난 줄 알아보고서 우리글꽃을 한글로 읽고 느끼려고 우리글을 배우려는 바람이 온누리에서 부는 줄 느낀다

→ 요새 배달글꽃이 빼어난 줄 알아채고서 배달글꽃을 한글로 읽고 느끼려고 한글을 배우려는 바람이 여러 나라에서 부는 줄 느낀다

5


좋은 서평지를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 책이야기책을 잘 엮으려고 밤낮 애쓰는

→ 책노래책을 알뜰히 여미려고 늘 땀흘리는

→ 책수다책을 알차게 묶으려고 그토록 힘쓰는

5


나는 이 글 서두에서

→ 나는 글머리에서

→ 나는 첫머리에서

70


이 어려움을 넘어서서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불편함들이 기다리고 있다

→ 이 어려운 고비를 넘어서 들여다보면 또 힘겨운 고비가 있다

→ 이 어려운 길을 넘어서 들어서면 또 거북한 길이 나온다

→ 이 어려운 늪을 넘어서면 또 고단한 늪이 있다

106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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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내 일 - 일 잘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내 직업을 발견했을까?
이다혜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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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9.12.

까칠읽기 95


《내일을 위한 내 일》

 이다혜

 창비

 2021.1.15.



누구나 즐겁게 새하루를 여는 첫가을 아침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시골에서도 서울에서도 아이어른이 나란히 철갈이나 철맞이를 헤아릴 수 있기를 빈다. 여름이 저물 적에는 여름을 맛보고, 겨울이 다가올 적에는 겨울을 겪으며, 새봄이 찾아올 적에는 새봄을 느끼면서 조금씩 철들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구나 철이 들기에 어른으로 선다. 철들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라 철바보이다. 나이는 많다지만, 나무처럼 든든히 나이테가 늘어나며 너른 품을 베풀지 않는다면, 어른이 아닌 그저 늙은 몸뚱이일 뿐이다.


일이란 무엇인가. ‘일’은 ‘일다’와 한동아리이다. 바람이 일고 물결이 일듯, 스스로 일어서 일으키고 일어서는 길이 ‘일’이다. 남이 시키면 ‘심부름’이다. 돈을 벌면 ‘돈벌이’이다. 돈을 벌려고 사고팔 적에는 ‘장사’이다. 장사하는 곳을 차리면 ‘가게’이다. 이 얼거리를 읽어야 ‘일’을 알고 ‘돈벌이(직업)’가 무엇인지 제대로 바라본다.


《내일을 위한 내 일》은 한자말 ‘내일(來日)’과 우리말 “내 일”을 말장난처럼 맞추었다. 다만, 말장난처럼 맞추되, 두 낱말에 흐르는 말밑과 말빛은 못 맞추고 못 보았구나 싶다. 이 책을 여민 분은 “우리 터전에서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제법 쥐었다고 여길 만한 순이” 여러 사람을 만나서 나눈 말을 묶는다. 어찌 보면 이 책에서 만난 분과 같은 길을 갈 수도 있지만, 누구나 갈 수 있지는 않다. 더구나 그런 자리에 ‘올라서’려면, 아이들이 불굿(입시지옥)에서 겪었듯, 또래나 이웃을 다시금 밟아야 한다. 이른바 ‘꼭두’라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불태워서 싸워야 했는가.


그런데, 싸워서 자리를 거머쥔 분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를테면 ‘배구’라는 길을 가는 사람으로는 양효진 씨가 아니라 김해란 씨를 만나야 어울리지 않을까? 양효진처럼 “타고난 키와 몸”은 드물다. 이미 타고난 키와 몸으로 배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앞세운다면, 키도 작고 몸도 여린 아이들은 뭘 봐야 하지? 김해란 씨는 키도 몸도 작지만, 스스로 바닥을 구르고 다시 일어서고 또 땀흘리면서 “우리나라 배구판에서 누구도 이루기 어려운 일”을 일구었다. 더구나 김해란 씨는 아기를 낳으려고 한동안 쉬고서 다시 뛰기까지 했으며, 이동안 곁님이 아기를 돌보면서 “순이로서 뜻을 펴고 길을 내는 삶”을 북돋았다.


모레(내일·미래)를 그리는 아이들한테는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길을 찾고 뜻을 이루며 살림을 짓는 하루”를 더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돈벌이’를 하는 자리라 할 적에도, “시내버스나 시외버스를 모는 아줌마”라든지 “아이를 여럿 낳고서 집안일을 하면서 살다가, 어느 날 스스로 꿈과 길을 찾아나서면서 글을 쓰고 책을 낸 수수한 아줌마나 할머니”가 꽤 많다. 잘난책(베스트셀러)이 아니라, 고만고만하게 사랑받는 작은책을 내놓고서 즐겁게 삶·살림·사랑을 바라보면서 새길을 꾸리는 분이 꽤 있다. 어린이와 푸름이한테는 바로 이렇게 “으레 우리 옆에 있을 만한 작은이웃”을 만나서 이야기를 펴고는, 이 이야기를 담는 길이 어울린다.


《내일을 위한 내 일》을 보면, 돈(수익)을 말하는 소설가 한 분이 나오는데, 좀 너무하지 않나? 글이건 보임꽃(영화)이건 돈(수익)을 좇아서 해야 하나? ‘앞꿈(내일·미래)’을 들려주려는 책하고는 그야말로 동떨어지고 너무 안 맞지 않은가?


아이들은 순이라는 몸으로 태어나건 돌이라는 몸으로 태어나건, 다르지만 나란하게 앞날을 맞이하며 걸어간다. 때로는 꽃길일 테지만, 무척 오래 가시밭길을 걸을 수 있다. 아이들 앞날이 저마다 “반갑건 반갑잖건, 여태 모르거나 놓치던 내 모습과 마음과 하루를 문득 느끼고 돌아보는 길이란 여러모로 고마운 배움살림”인 줄 짚어주고 알려주고 들려주는 ‘어른’을 만난 이야기를 씨앗으로 물려줄 수 있어야겠다고 본다. 번드레하거나 높아 보이거나, 잘나거나,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거머쥔 자리가 아니라, “살림하는 손길에 흐르는 땀빛”을 나눌 만한 이야기를 물려주어야겠지.


왜 이야기를 담는 흉내로 그치는 글·그림이 넘치는가. 부디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지 싶다. 겉으로 보이는 몸집이나 벼슬이 아닌, 속으로 눈부신 사랑을 바라보려고 해야 비로소 온누리를 새롭게 갈아엎고서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


ㅍㄹㄴ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잖아요. 전문가도 그렇고 일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다들 서울로 가죠. 그런데 커피만큼은 부산을 한번 최고로 만들어 보자 싶었어요.” (88쪽/전주연)


“결혼을 하면 얽매이는 게 더 많고 저처럼 밤을 새우기 어려워요.” (95쪽/전주연)


“글을 쓰는 사람이 모두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다른 사람의 업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고, 나 자신도 안 해치고 타인도 안 해치면서 예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17쪽/정세랑)


“수익 면에서는 소설보다 10배, 적어도 10배거든요. 소설에만 집중하고 싶은 작가라면 그래도 좋지만, 마음이 열려 있는 편이라면 다른 매체도 고려해 보시면 좋겠어요.” (120쪽/정세랑)


“게다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한국에 자리가 없었던 거죠.” (183쪽/이상희)


“예전에는 사대문 안에도 고아원이 많았어요. 88올림픽 때문에 서울 외곽으로 다 쫓겨났지만, 우리가 가르쳤던 신림동에 있던 고아원도 이제는 없어요. 아파트촌이 됐지.” (208쪽/이수정)


+


《내일을 위한 내 일》(이다혜, 창비, 2021)


진로 고민을 평생 하게 될지는 몰랐다

→ 앞길 걱정을 내내 할지는 몰랐다

→ 일감 근심을 노상 할지는 몰랐다

→ 새길을 늘 돌아볼지는 몰랐다

4쪽


커리어의 시작은 채용되는 것에서부터지만 지금은 채용하는 일을 하면서 얻게 된 통찰을 나누어 준 사람도 있다

→ 뽑혀야 발걸음도 있지만, 요즘은 뽑는 일을 하면서 깨달은 바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 일자리를 얻어야 살림길을 여는데, 이제 누구를 뽑으면서 느낀 바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7쪽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가 훤히 보인다

→ 두드러진 사람이 훤히 보인다

→ 뛰어난 님이 훤히 보인다

53쪽


생수를 올린 트레이를 테이블 위에 놓았을 때

→ 샘물을 그릇에 올려 자리에 놓을 때

→ 물을 받침에 올려 자리에 놓을 때

79쪽


전주연 바리스타에 대한 나의 가장 큰 오해는

→ 나는 잎물지기 전주연 씨를 잘못 여겼는데

→ 나는 내림지기 전주연 님을 잘못 보았는데

81쪽


매 이야기마다

→ 이야기마다

112쪽


새로운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 새롭게 이름을 부를 때마다

→ 새 이름을 부를 때마다

→ 새로 부를 때마다

112쪽


가장 먼 시대까지 점프할 수 있지만

→ 가장 먼 나날까지 뛸 수 있지만

→ 가장 멀리 가로지를 수 있지만

→ 가장 멀리 날아갈 수 있지만

126쪽


백인 남자가 많기 마련이거든요

→ 흰사내가 많게 마련이거든요

19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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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란 뭘까? - 쓰기에서 죽기까지 막간 1
유진목 지음 / 난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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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8.31.

까칠읽기 93


《재능이란 뭘까?》

 유진목

 난다

 2025.4.5.



  누가 나더러 “그대는 무슨 재주가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나한테 재주가 있다고 느낀 적은 아예 없고 “재주가 없는 몸도 재주라면 재주가 있습니다.” 하고 여쭈었다.


  어릴적에 나무타기를 즐겼지만 나무를 훌륭히 타지는 못 했다. 나비나 잠자리를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지만 여러 동무처럼 손가락마다 나비랑 잠자리를 열이고 스물이고 끼우지 않았다. 나는 한 마리만 잡고서 한나절 바라보면 즐거웠다. 두바퀴도 영 못 굴려서 으레 곤두박고 자빠지며 온몸에 피가 철철 흘렀는데, 끈덕지게 타고 또 달리면서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 노릇을 두바퀴로 했다.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엮는 길을 걷지만, 말더듬이에 혀짤배기라는 몸을 타고난 터라 그야말로 죽도록 용을 써서 말소리를 내려고 했다. 그런데 죽도록 용을 쓰노라니, 이 나라 글바치가 얼마나 말글을 엉성하게 치레하면서 겉멋에 사로잡힐 뿐 아니라, 모든 글을 일부러 어렵게 중국말과 일본말과 미국말을 섞어서 ‘여느사람’을 괴롭히는지 알아볼 수 있더라.


  《재능이란 뭘까?》를 읽었다. 글쓴이는 스스로 어떤 재주가 있다고 여기려나? 글을 팔아서 책을 내는 재주라든지, 살핌이(심사위원)라는 자리를 얻어서 다른 글바치가 보람(상)을 받을 만한지 가리는 재주라든지, 짝맺기(연애)를 즐기는 재주라든지, 온갖 재주가 있을 만하다. 다만, 재주를 따지거나 헤아리거나 짚으려는 글은 언제라도 덧없다고 느낀다. 뭣하러 재주를 돌아봐야 할까? 삶을 바라보면 될 텐데.


  어떤 엄마아빠도 ‘애낳는 재주’나 ‘아이돌봄 재주’를 타고나지 않는다. 그저 사랑으로 짝을 맺어서 아기를 낳아서 함께 살아가는 동안 살림길에 눈을 뜨면서 스스로 삶을 가꿀 뿐이다. 이른바 재주는 ‘자격증·졸업장’과 같으니, 아예 거들떠볼 까닭이 없다. 오직 손끝과 발길과 눈빛을 헤아리면 된다. 우리가 손끝으로 오늘 무엇을 빚는지 보면 되고, 발길이 닿는 곳에서 어떻게 하루를 짓는지 살피면 되고, 눈빛을 어떻게 펴면서 스스로 배우고 익히며 노래하는지 들려주면 된다.


  맞거나 틀리는 길은 없고, 옳거나 바른 길도 없다. 다 다르게 살아가는 길이다. 밉거나 싫다는 마음을 씨앗으로 심으니 언제나 밉거나 싫은 일을 스스로 맞이한다. 좋거나 재미나다는 마음을 씨앗으로 심으니 오히려 안 좋거나 따분한 일을 스스로 일으킨다. 삶은 그저 길이다. 길은 재주가 아닌 ‘손씨(솜씨)’이다. 손씨란, 잘하는 길이 아니라, 저마다 손으로 다듬고 가꾸고 일구어 가는 삶에 따라 다 다르게 반짝이는 오늘 하루일 뿐이다.


ㅍㄹㄴ


집마다 사람이 살고 있지만 정작 사람이 보이면 당혹스럽다. 더군다나 벌거벗은 사람을 보는 것은 더욱 그렇다. 집에서 저 사람은 저렇게 있구나. (58쪽)


다행히도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동안에는 살아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게 너무 달콤하다. (72쪽)


나는 깃발에 아빠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쓴다. 그리고 광장으로 가서 깃발을 높이 들고 서 있다. 그러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하나둘 깃발 아래로 모여든다. (90쪽)


9월에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이혼을 확정받았다.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다 짧은 질의에 대답하니 그걸로 끝이었다. 그날 밤에는 갑자기 울음이 터져 소리내 울었다. (107쪽)


+


《재능이란 뭘까?》(유진목, 난다, 2025)


세상에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답이다. 나의 세상에는 대답이 없다

→ 온누리에 없는 하나라면 맞글이다. 내가 사는 곳은 대꾸가 없다

→ 둘레에 없는 하나라면 맞말씀이다. 내가 사는 곳은 대척이 없다

8쪽


이 책은 매일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다

→ 이 책은 늘 새롭게 여는 이야기이다

→ 이 책은 오늘을 새로 여는 이야기이다

→ 하루를 여는 이야기로 이 책을 쓴다

9쪽


각자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도록 하자

→ 저마다 즐거운 길을 생각하자

→ 스스로 즐거울 길을 생각하자

12쪽


여행은 그렇게 시작한다

→ 그렇게 나들이를 한다

→ 그렇게 마실을 간다

13쪽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 내 모든 힘을 다해 여행을 간다

→ 나는 글을 쓰려고 온힘을 다해 나들이를 간다

→ 나는 글을 쓰고 싶어서 온힘을 다해 멀리 간다

14쪽


한때 내 전부였던 것들을 잊으려고 이 글을 쓰는 중이다

→ 한때 모두였던 삶을 잊으려고 이 글을 쓴다

→ 한때 그저 다이던 삶을 잊으려고 글을 쓴다

18쪽


시야가 좁고 편협했다

→ 눈이 좁다

→ 눈길이 좁다

→ 좁게 본다

→ 좁다

→ 비좁다

20쪽


다음 달의 내가 월세를 벌어 내지 않을까

→ 다음달은 다음대로 달삯을 내지 않을까

→ 다음달은 그때대로 달삯을 내지 않을까

21쪽


내가 쓰는 글들이 더이상 궁금해지지 않은 것은 언제부터인지 생각해 보는 중이다

→ 언제부터 내가 쓰는 글이 더는 안 궁금한지 헤아려 본다

→ 언제부터 내 글이 더는 안 궁금한지 곱씹어 본다

24쪽


밤 사이 쓴 글을 타이핑하고 고쳐쓴다

→ 밤에 쓴 글을 옮기고 고쳐쓴다

29쪽


대출금을 모두 갚아서

→ 빌린돈을 모두 갚아서

→ 빚을 모두 갚아서

32쪽


다음 차시가 되면 과제를 주고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 다음에는 쓸거리를 알리고 맞추어 본다

→ 다음에는 할거리를 알리고서 묻고 알려준다

34쪽


무엇을 글에 쓰지 않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 무엇을 글에 쓰지 않는지 이야기한다

34쪽


매일 다른 글을 써야 한다고 나에게 주지시킨다

→ 날마다 글을 달리 써야 한다고 되새긴다

→ 늘 글을 새로 써야 한다고 곱새긴다

46쪽


카메라는 무언가를 바라본다

→ 찰칵이는 무엇을 바라본다

→ 빛틀은 무엇을 바라본다

54쪽


최근에 나는 많은 것과 작별했다

→ 요즘 나는 여러 가지를 보냈다

→ 요새 나는 숱한 일을 놓았다

59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 더위가 넘실거리면

→ 불볕더위이면

61쪽


그 열패감을 견디는 게 몹시 힘들었다

→ 부끄러워 견디기가 몹시 힘들었다

→ 창피해서 견디기가 몹시 힘들었다

79쪽


글은 나를 통해 나온다

→ 글은 나를 거쳐 나온다

→ 글은 나한테서 나온다

→ 글은 내 손으로 나온다

93쪽


산문을 쓰자면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 삶글을 쓰자면 삶을 들여다본다

→ 줄글을 쓰자면 삶을 들여다본다

→ 긴글을 쓰자면 삶을 들여다본다

100쪽


나는 그래서 쓴다. 지금도 그래서 쓰고 있다

→ 그래서 쓴다. 그래서 오늘도 쓴다

→ 그래서 쓰고, 오늘도 쓴다

101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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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바로티, 김호중 (스페셜 에디션)
김호중 지음, 스토리베리 구성 / 스튜디오오드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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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8.31.

까칠읽기 94


《트바로티, 김호중》

 김호중

 바이포엠/스튜디어오드리

 2020.8.14.첫/2020.8.28.40벌



  2024년 5월 9일, 김호중 씨는 술에 절었어도 부릉부릉 몰면서 비틀비틀 달리다가 다른 쇳덩이를 쿵 들이받고서 달아났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갖은 뒤틀린 짓을 일삼으며 달아나려 했고, 돈은 돈대로 벌려고 노래잔치는 그냥 밀어붙이려고 했다. 김호중 씨는 ‘여느 술집’이 아닌 ‘텐프로’를 드나든 줄 드러났고, 긴긴 길을 거쳐서 2025년 5월 15일에 ‘30달 사슬살이’가 나온다. 그런데 2025년 8월 18일에 ‘민영교도소 소망교도소’로 옮겨갔단다.


  김호중 씨는 처음부터 ‘착하게’ 살면서 노래꾼이라는 자리에 선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못되게’ 구렁텅이를 뒹굴다가 여러 길잡이가 이끌어 준 보람으로 목소리를 살리는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지. 타고난 목소리가 있기에 못된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길이 있었다고 여길 만하지만, 이름·돈을 거머쥐고 나서 ‘참마음’을 가꾸지는 못 했구나 싶다.


  술에 절어 부릉부릉 모는 사람은 ‘어쩌다가 한 벌 걸릴’ 뿐이다. 이들이 ‘딱 하루 술을 마신 채 몬 일’이란 아예 없다시피 하다. 그동안 안 걸렸을 뿐이고, 여태 둘레에서 쉬쉬하면서 이이를 안 나무라고 안 꾸짖고 안 타일렀겠지.


  그나저나 고작 서른 달로 ‘새사람’이 될 수 있을까? 믿기는 어렵다고 본다. 여러모로 보면, 나라지기를 비롯해서 숱한 나라일꾼이라는 무리도 ‘술지랄(음주운전)’이 잦다. 모든 술지랄은 ‘한칼(원스트라이크아웃)’로 쳐내야지 싶다. 술지랄을 한 사람은 주먹질(폭력·학폭)을 일삼은 놈하고 마찬가지로 그냥 잘라낼 노릇이다. 이들은 서울에서 쫓아내어 시골로 보내야 맞다. 시골이 막놈(범죄자)을 받는 곳은 아니되, 이런 막짓놈을 따로 모으는 시골마을을 마련해서, 이들은 ‘사슬살이’를 한 만큼 ‘× 시골살이’를 시켜서, 손수 심고 가꾸고 거두어 먹고사는 나날을 온몸으로 겪도록 할 일이라고 본다. 김호중 같은 이라면 시골살이 60달을 하면서 손수짓기를 배워야 한다. 이러한 길을 거친 뒤에라야 다시 글을 쓰건 노래를 하건 벼슬을 얻건 하도록 열어 놓으면, 이 나라에 망나니가 하나둘 사라질 만하리라.


  그런데 《트바로티, 김호중》이라는 책이 2020년 8월에 나왔고, 보름이 안 되어 40벌을 찍었더라. 얼마나 팔아먹었나 모르겠으나, 2025년 9월에 이르도록 멀쩡히 잘만 파는 듯하다. 나는 1500원을 주고서 헌책으로 사보았다. 우리나라는 여러모로 대단하다.


ㅍㄹㄴ


― 다시 살아볼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 없습니다. 항상 현재에 충실하게 살고 싶기도 하고,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22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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