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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주의 선언 ㅣ 동물권리선언 시리즈 12
코린 펠뤼숑 지음, 배지선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9년 8월
평점 :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9.17.
까칠읽기 99
《동물주의 선언》
코린 펠뤼숑
배지선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9.8.23.
‘숨결(생명)’을 보려면, 먼저 “‘나’는 어떤 숨결인가?”부터 들여다보면서 “‘나’를 둘러싼 ‘너’는 어떤 숨결이지?”를 나란히 바라볼 노릇이다. 나하고 너가 언제나 다르면서 하나인 몸마음인 줄 알아본다면, 어떤 숨결을 놓고서도 고스란히 헤아리면서 품을 수 있게 마련이다.
《동물주의 선언》을 읽는 내내 왜 이렇게 ‘우리말’을 안 쓰고 ‘일본말·옮김말’에 갇히나 싶어 아리송하다. 나란길(평등권)을 바라는 마음이라면 언제나 이 나라 누구나 어깨동무하면서 쉽게 읽을 만한 말글로 가다듬을 노릇이다. 말글부터 나란길이 아닐 적에는 으레 위아래로 가르고 만다.
모름지기 ‘글’이 아닌 ‘말’로 살아가며 살림하던 온누리 뭇사람은 ‘동물권·평등권’ 같은 일본한자말을 몰랐어도 서로 어깨동무하는 하루였다. 더구나 사람으로서 목숨을 이으려고 ‘먹을’ 적에도 짐승뿐 아니라 풀과 열매도 함부로 거두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이을 만큼 알맞게 다루고 품는 살림길이었는데, 나라(정부)가 서고서 벼슬자리가 늘고 임금붙이가 생길 무렵부터 이 모든 살림길이 흔들렸다.
조금만 짚어도 누구나 알 수 있다. 벼슬아치와 임금붙이는 손에 물도 흙도 안 묻힌다. 그들(벼슬아치·임금붙이)이 사내이건 가시내이건 똑같다. 그들(권력자)은 해바람비를 등지면서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먹었는데, 그들은 우리(살림꾼)가 아니기 때문이다. 살림꾼은 살림하는 대로 가려서 먹는다.
숨결(감수성)이 없는 목숨은 없다. 짐승만 숨결이 있지 않다. 벼와 밀한테도 숨결이 있다. 능금과 배한테도 숨결이 있다. 그대가 쌀알 한 톨을 짓밟으면 쌀알이 안 아프겠는가? 그대가 밤새 불을 켜놓으면 벼나 나무가 멀쩡한가? 아니다. 모든 풀꽃나무도 해바람비를 반길 뿐, 등불을 밝혀서 잠을 안 재우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동물권·동물주의’에다가 ‘식물권·식물주의’를 나란히 놓으면 “그럼 뭘 먹으란 소리예요!” 하고 외치거나 따질 수 있겠지. 그런데 ‘뭇숨결(동식물)’은 참말로 뭇숨결인 줄 알고서 먹을 노릇이다. 풀짐승한테 뜯기는 풀은 풀짐승을 미워하지 않는다. 고기짐승한테 잡아먹히는 풀짐승은 고기짐승을 미워하지 않는다. 다 이어갈 뿐이다. 풀짐승이 먹은 풀은 풀짐승을 이루고, 풀짐승을 먹는 고기짐승은 ‘풀짐승이 먹은 풀빛’이 어느새 스미면서 고기짐승이라는 몸을 이룬다. 이윽고 고기짐승이 몸을 내려놓고서 흙으로 돌아가면, 흙은 ‘고기짐승 뼈와 살과 가죽’을 개미와 지렁이와 굼벵이와 버섯과 쥐며느리에 갖은 잔숨결을 거쳐서 새흙으로 돌려보내니, 풀꽃나무는 새삼스레 무럭무럭 자란다.
풀꽃나무는 ‘시든 잎’과 ‘떨어진 열매’도 다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죽은 짐승 몸뚱이’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온누리 숨빛은 나란히 돌고돈다. 높거나 낮은 길이란 없이, 낫거나 나쁜 밥살림이란 없이, 그저 서로서로 몸과 숨결을 바꾸면서 흐른다.
《동물주의 선언》은 나쁜책은 아닐 테지만, ‘동물주의·동물권’에 너무 얽매이는 나머지 ‘풀꽃나무’한테는 마음(감수성)이 아예 없다고 몰아붙인다. 터무니없다. 왜 이렇게 외쳐야 하나? 사람도 짐승도 풀꽃나무도, 돌과 모래와 흙도, 다 다르게 마음이 있는 줄 알아보려고 하지 않으면, 그들(권력자)하고 똑같을 뿐이다.
벼와 밀을 비닐집이나 유리집에 가두어서 키울 수 있을까? 어림조차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수박이며 상추이며 딸기이며 토마토이며 무화과에 유자까지 비닐집에 가두어서 꼭짓물(수돗물)을 먹이고 기름(석유)을 때서 겨울나기를 한다. ‘공장축산’일 뿐 아니라 ‘공장농업’이라는 굴레를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들빛(동물권)을 제대로 못 짚는다. 들빛이란, 사람과 짐승과 풀꽃나무가 몸만 다른 얼개일 뿐, 마음도 숨결도 나란히 하늘빛이라는 대목을 알아보고 받아들여서 함께 반짝이는 별로 피어나려는 길일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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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이 ‘감수성’을 지녔음을 알면서도 동물을 도덕적으로 배려하지 않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섬세함을 억압하는 법을 배운다. (15쪽)
식물 역시 편견의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감수성’을 가진 존재만이 편견의 피해를 개별적이고 주체적으로 겪는다. 감수성은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 자아실현의 욕망, 죽음에 대한 공포, 강제된 삶의 조건에 대한 저항, 즐거움, 협력의 의지,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 모두를 포함한다. 따라서 식물에 관해서도 존중을 말해야 하지만 동물과 사람의 권익이 침해되는 것은 정의의 측면에서 문제를 불러일으키므로 동물과 사람이 실질적인 권리를 갖도록 촉구해야 한다. (65쪽)
푸아그라는 집오리나 거위에게 3주 동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양의 먹이를 억지로 먹인 결과로 만들어진 병든 간이다. 자연상태에서 오리나 거위는 장기 비행을 하기 전에 자연스런 방법으로 살을 찌우는데, 당연하게도 비행에 적합한 정도로만 절제한다. (109쪽)
#CorinePelluchon #Manifeste Animaliste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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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주의 선언》(코린 펠뤼숑/배지선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9)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
→ 사람과 짐승 사이는 사람이 어떤 숨결인지를 드러내는 거울과 같다
→ 사람과 얽히는 짐승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10쪽
반려동물이 버려지고, 동물 보호소는 가득 차 넘치며
→ 곁짐승을 버리고, 들돌봄터는 가득하며
→ 벗짐승을 버리고, 들돌봄울은 차고 넘치며
11쪽
나와 타자를 구별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동일시하는 연민은 타자를 외형에 따라 종, 종류, 공동체로 분류하지 않고 다 같은 생명체로 인식한다
→ 나와 너를 가르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으로, 남을 겉모습에 따라 씨·갈래·무리로 가르지 않고 다같이 숨결로 여긴다
12쪽
연민이 없는 정의로움은 가능한가
→ 불쌍히 안 보며 곧을 수 있나
→ 딱하게 안 보며 바를 수 있나
17쪽
공장식 축산의 과정에서 동물은 오직 하나의 기능만 수행하도록 강요받는다
→ 짐승은 가두리에서 오직 한 가지 쓰임새이다
→ 짐승가두리는 오직 한 가지만 바라본다
→ 짐승을 몰아놓는 곳에서는 오직 한 가지로 다룬다
22쪽
종차별반대주의antispeciesism는 종차별주의speciesism에서 비롯된 말이다
→ 나눔씨는 먼저씨란 말에서 비롯하였다
→ 나란씨는 앞씨란 말을 보며 지었다
→ 함께씨는 웃씨란 말 때문에 엮었다
→ 같이씨는 으뜸씨란 말과 맞물린다
→ 이웃씨는 꼭두씨란 말과 마주한다
27쪽
자연상태에서 오리나 거위는 장기 비행을 하기 전에 자연스런 방법으로 살을 찌우는데, 당연하게도 비행에 적합한 정도로만 절제한다
→ 들숲에서 오리나 거위는 오래 날기 앞서 차근차근 살찌우되, 날기 알맞게 먹는다
→ 들오리나 들거위는 오래 날기 앞서 천천히 살을 찌우되, 날 수 있을 만큼 먹는다
109쪽
동물에게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데 있어 앞장서는 국가는 경제적인 면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갖고 번영할 것이다
→ 짐승을 올바로 헤아리려는 나라는 살림살이를 비롯해 모든 곳에서 피어난다
→ 짐승을 곧게 살피려는 나라는 살림살이뿐 아니라 모든 곳에서 발돋움한다
12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