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월간 토마토> 2024년 2월호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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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8


말을 모으자면 으레 걷는다. 걸으며 온누리를 보고 느끼고 담고 살필 적에, 온누리를 나타내는 말을 깨닫고 새롭게 배운다. 남들은 부릉부릉 앞서 달리지만, 낱말책을 여미려고 두 다리로 걷는다. 두 손으로 슥슥 종이에 적는다. 조금 번다 싶으면 책을 사들이니 살림돈은 으레 가난하다. 이런 삶길을 이 나라에서는 ‘저소득층’이라 일컫는데, 이름부터 바꾸면 눈길이 바뀔까? 늦꽃이 피듯 ‘가난꽃’이라고.



딸아들

국립국어원을 비롯해 여러 낱말책은 ‘아들딸’만 올림말로 삼는다만, 적잖은 사람들은 ‘딸아들’이란 낱말을 널리 쓴다. 이제 두 낱말 모두 올림말이어야지 싶다.


딸아들 (딸 + 아들) : 딸하고 아들. 딸하고 아들을 함께 가리키는 말. (= 아들딸. ← 자녀, 자식, 후예, 후손, 후대, 자손, 손孫, 손주, 손자, 손녀, 손자손녀, 자제子弟, 이세二世, 키드kid, 키즈, 존재)

아들딸 (아들 + 딸)  : 아들하고 딸. 아들하고 딸을 함께 가리키는 말. (= 딸아들)



늦별

해가 넘어가자마자 돋는 별이 있고, 한밤에 이르러 돋는 별이 있다. ‘이른별’도 ‘늦별’도 똑같이 별이다. 처음부터 잘 해내거나 이내 익숙하게 선보이는 사람이 있되, 오래오래 했어도 서툴거나 엉성한 사람이 있다. 이르니 이르다 여기고, 늦으니 늦다고 여긴다. 이르게 펴도 꽃이고, 늦게 돋아도 별이다.


늦별 (늦 + 별) : 1. 늦게 뜨거나 돋거나 나타나는 별. 2. 늦게 뜨거나 돋거나 나타나는 별처럼, 말·일·몸짓이 늦거나 서툴다고 여길 만하지만, 느슨하면서 느긋하게 말·일·몸짓을 다스리거나 다독이거나 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 늦꽃·늦게 핀 꽃. ← 만화晩花, 대기만성), 만성晩成, 미숙, 발달장애, 발달지연)



가난꽃

가난한 사람을 두고 ‘가난뱅이’라 하면서 낮잡곤 한다. 수수하게 ‘가난이’라고만 할 수 있을 텐데, 없거나 모자라거나 적으면 마치 나쁘다고 여기는 말씨이다. 한자말로 가리키는 ‘빈민·저소득층·무산자·영세민’도 다 낮춘다는 결이다. 돈이나 살림이 적더라도 나쁠까? 가난하면서 오붓하게 사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그래서 ‘가난꽃’이나 ‘가난별’처럼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가난꽃 (가난하다 + 꽃) : 가난한 꽃. 가난한 사람을 빗대는 말. 돈이 적거나 살림이 모자란 사람. 돈이나 살림을 넉넉하게 쓸 수 없는 사람. (= 가난하다·가난이·가난뱅이·가난님. ← 빈자, 무산無産, 무일푼, 빈곤, 빈한, 빈궁, 곤궁, 궁벽, 궁핍, 무전無錢, 궁하다, 저소득, 공황, 영세민)



뒷북치다

한창 할 적에는 조용하다가, 모두 끝나고서 불쑥 나서서 떠드는 사람이 있다. 함께 땀흘리며 모인 자리에서는 뒷짐을 지더니, 다 끝낸 자리에 뜬금없이 나서서 티내려는 사람이 있다. 뒷북인 셈인데, 혼자 돋보이려는 마음도 있겠지만, 한창이던 무렵에는 막상 알아차리지 못 한 터라 뒤늦게 알아차리고서 나서는 마음도 있다. 얄궂으면 ‘뒷북꾼’이요, 귀여우면 ‘뒷북아이’에 ‘뒷북노래’이다.


뒷북치다 : 하거나 누리거나 펴거나 있을 적에는, 안 하거나 안 누리거나 안 펴거나 없더니, 모두 끝이 난 뒤에 하거나 누리거나 펴거나 있으려고 움직이거나 나오거나 나서거나 떠들다. (= 뒷북·뒷북노래·뒷북이·뒷북아이·뒷북님·뒷북꾼·뒷북쟁이. ← 지각遲刻, 후발주자, 후순위, 지연遲延, 체납, 체불, 연체延滯, 연기延期, 지체遲滯, 시간관념이 없다, 나태, 안일, 태만, 불성실, 서서徐徐, 슬로slow, 둔감, 둔하다鈍-, 사후事後, 사후대책事後對策,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만년晩年)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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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7


요새는 시골이라 하더라도 읍내나 면소재지조차 불빛이 밝아 별을 못 본다. 서울이나 부산뿐 아니라, 대전이나 인천도 별바라기는 어림마저 못 한다. 그러면 달은 볼까? 달도 높은집에 가려 안 보이지 싶다. 그믐달과 보름달 사이를 흐르는 조각달을 보다가 ‘달이름’을 헤아려 본다.



책숲

사람이 많으면 ‘사람물결·사람바다’라고도 하는데 ‘사람숲’이라 할 수 있다. 꽃이나 풀이 많기에 ‘꽃밭·풀밭’인데 ‘꽃숲·풀숲’이라고도 한다. 이야기를 넉넉히 나누는 ‘이야기밭·얘기밭’일 테고 ‘이야기숲·얘기숲’처럼 푸른숨결을 헤아릴 만하다. 그러면 ‘마음숲·생각숲·사랑숲·보금숲’처럼 책을 놓고 ‘책숲’이라 한다면, 일본 한자말 ‘도서관’을 우리말로 옮길 수 있다. 책가게·책집도 ‘책숲’ 노릇이요, 책마을(출판계)이 함께 일구는 ‘책살림(책문화)’도 ‘책숲’으로 빗댈 만하다.


책숲 (책 + 숲) : 1. 숲처럼 있는 책. 책으로 이룬 숲. 숲을 이루던 나무가 책으로 바뀌고서, 이러한 책을 차곡차곡 두어 마치 숲을 옮긴 듯이 여러 가지 책이 어우러지면서 푸른 이야기가 흐르는 곳·집·가게. (= 책숲집. ← 도서관, 도서실, 라이브러리, 서점, 책방, 책사, 서림, 서사書肆, 북스토어, 북숍, 서재, 서고書庫, 문서고, 문고文庫, 문학관) 2. 숲처럼 나누거나 펴거나 누리는 책·이야기·자리·생각. 숲을 이루던 나무가 책으로 바뀌고서, 이러한 책을 차곡차곡 나누고 읽고 짓듯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면서 푸르게 생각을 펴거나 일이키는 곳·자리·흐름. (← 책문화, 책세계, 책세상)



고니못

영어로 “Swan Lake”를 일본사람은 “白鳥の湖”로 옮겼다. 우리나라는 일본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백조(白鳥)의 호수(湖水)”로 적었다. 그러나 연꽃이 피는 못을 어떤 이름으로 가리키는지 생각할 노릇이다. ‘연못’이다. 개구리가 왁자그르 노래하는 못이면 ‘개구리못’이다. 고니가 내려앉는 못이라면 마땅히 ‘고니못’이다.


고니못 (고니 + 못) : 고니가 머물거나 쉬거나 내려앉거나 모이거나 살거나 어울리는 못. (← 백조의 호수)



왼달 오른달 조각달

달은 햇빛을 받아서 밤에 빛난다. 우리가 보는 달빛은 ‘밤햇빛’이다. 달이 햇빛을 비추지 않는다고 여기는 그믐을 지나면 오른쪽부터 천천히 차고, 이때에는 ‘오른조각달’인 ‘오른달’이다. 오른달을 지나 더 차오르면 보름달을 이루고, 보름을 이룬 달은 거꾸로 오른쪽이 조금씩 이울면서 ‘왼조각달’인 ‘왼달’로 바뀐다. ‘온달’로 동그랗게 찬 달을 두 조각으로 가르니 ‘조각달’일 텐데, 야윈 조각달이라면 ‘눈썹달’로 여길 만하고, 웃는 입을 닮았다고 여겨 ‘웃는달’이라 할 수 있다.


왼달 (외 + ㄴ + 달) : 보름달을 지나, 조금씩 이울면서 오른쪽이 사라지듯 안 보이고, 왼쪽만 밝게 남은 달. (= 왼조각달·조각달·동강달·토막달. ← 하현下弦/하현달, 편월片月, 반달半-, 반월)


오른달 (오르·옳 + ㄴ + 달) : 그믐날을 지나, 조금씩 차오르면서 오른쪽을 다 채우며 밝은 달. (= 오른조각달·조각달·동강달·토막달. ← 상현上弦/상현달, 편월片月, 반달半-, 반월)


조각달 (조각 + 달) 그믐날을 지나거나 보름달을 지나면서, 왼쪽이나 오른쪽 가운데 한쪽만 밝은 달. (= 동강달·토막달. ← 편월片月, 반달半-, 반월, 상현上弦/상현달, 하현下弦/하현달)


온달 (온 + 달) : 보름날 밤에 둥그렇게 밝은 달. 온통 둥그렇게 채워 밝은 달. (= 보름달. ← 만월滿月, 망월望月)


눈썹달 (눈썹 + 달) : 왼달이나 오른달에서 더 이울면서 눈썹처럼 조금만 밝게 남은 달. (= 웃는달. ← 초생달(初生-), 편월(片月)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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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짓는 글살림 

43. 수수께끼로 배우는 삶말



  수수께끼란 무엇일까요? 한자말로 비겨 본다면 ‘비밀·정체불명·불가사의·불가해·원인불명·비결·미궁·오리무중·미로·난맥·묘하다·신묘·신비·신기·의문·미해결·미제·형이상학·기이·기묘·기상천회·오묘·괴상·괴이·비정상’이기도 합니다. 영어로 비겨 본다면 ‘퀴즈·미스터리·베일·퍼즐’이기도 합니다. 가볍게 한두 가지 뜻풀이로 ‘수수께끼’를 바라볼 수 있으나,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말 그대로 수수께끼가 되어 도무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는 수렁이나 바다밑으로 풍덩 빠져든다고 할 만해요.


얼핏 단단해 보여. 아마 딱딱해 보이지. 어쩌면 튼튼해 보이고. 그런데 무척 부드럽지. 모래를 품었지. 흙을 품었어. 뜨거운 불길을 품었고. 비바람 듬뿍 담았어. 눈을 감고 돌아다녀. 조용히 온누리를 돌아. 묵직한 몸을 두고 다녀. 그저 마음으로 날지. 너희는 날 다리로도 삼고. 디딤자리로도 삼고. 집으로도 삼지. 무덤으로도 삼더라. (수수께끼 001)


  2020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라는 동시책이자 수수께끼책이자 낱말책이자 이야기책이자 노래책(시집)을 내놓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거나 곁에 두거나 쉽게 말하는 온갖 살림을 새롭게 바라보는 이야기를 열여섯 줄로 164꼭지를 갈무리했어요. 첫머리 ‘수수께끼 001’가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차린 분이 있을까요? 다음 ‘수수께끼 079’은 얼마나 빠르게 알아내실는지 궁금합니다.


까마귀도 하고 까치도 하지. 지렁이도 하고 개미도 해. 범나비도 하고 제비나비도 하고. 고추잠자리도 하고 모기도 하네. 구름은 비를 뿌리며 하고. 냇물은 흐르면서 해. 바위는 가만히 앉아서 하고. 풀무치는 날아오르면서 해. 입으로 한다. 손으로 한다. 눈으로 한다. 마음으로 한다. 생각이 노래되어 솟는다. 마음이 또랑또랑 들린다. 꿈을 이렇게 펴고 나누네. 씨앗이 되고 이름이 돼. (수수께끼 079)


  제 나름대로 수수께끼를 새롭게 “1. 어떤 뜻이거나 이름인가를 스스로 알도록 말·그림·몸짓으로 들려주거나 빗대는 이야기·놀이 2. 알기·풀기·찾기·헤아리기가 어렵거나 어수선하거나 오래 걸리는 것·일·이야기·마음·생각·뜻 3. 앞으로 알거나 풀거나 찾거나 헤아리거나 해내야 하는, 아직 모르거나 낯선 것·일·이야기·마음·생각·뜻”이라고 풀이해 봅니다.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어느 나라나 겨레이든 어른이나 어버이는 아이한테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한 줄짜리로 가볍게 낼 적이 있다면, 열여섯 줄뿐 아니라 서른 줄이나 쉰 줄에 걸쳐 길게 낼 때가 있어요. “밤에 일하고 낮에 쉬는데, 뭐지?” 하는 단출한 수수께끼가 있다면, “여러해를 산다고 하는데, 아주 오래 살 수 있지. 따로 몇 해를 사는가, 센 적은 없어.”처럼 알쏭달쏭하게 첫머리를 여는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다음 ‘수수께끼 108’도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나무그늘 같아서 아늑. 풀밭 닮아서 포근. 구름송이처럼 맑고 시원. 처마밑같이 비노래 듣고. 갈참 잣 솔 대 느티. 갖가지 나무를 옮겼나. 머위 달래 맹개 마삭줄. 갖은 들풀을 심었나. 살살 펴면서 가슴 펴는 길. 슬슬 넘기며 어깨동무 길. 솔솔 새기며 반짝이는 길. 작은 꾸러미가 이끄는구나. 이야기로 숲을 이룬 집. 노래로 바다가 되는 집. 살림하는 사랑이 영그는 집. 책숲 책집 책마루 책마당. (수수께끼 108)


  생각이 얕으면 수수께끼를 내지 못합니다. 생각을 깊거나 넓게 다스리지 않으면 수수께끼를 맞추지 못합니다. 모든 수수께끼는 삶자리에서 태어납니다. 무럭무럭 자라서 어린이라는 길을 지나 바야흐로 어른이라는 자리에 들어설 숨결을 사랑으로 마주하면서, 이 아이 스스로 삶을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가슴에 품기를 바라기에 수수께끼를 지어서 내요.


  곰곰이 보면, 이 수수께끼란 다른 한자말로 ‘화두’라 할 만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이 나라 옛사람은 아주 쉽고 수수하며 투박한 몇 낱말을 엮어서 수수께끼를 냈는데, 이 수수께끼란 ‘삶길’이나 ‘삶말’이나 ‘삶다짐’이 되었어요.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 제대로 읽지 못하던 깜깜한 대목을 스스로 수수께끼를 푸는 동안 어느새 실마리도 실타래도 솔솔 풀면서 새롭게 매듭을 짓거나 옷을 지을 줄 아는 셈입니다. 다음 ‘수수께끼 143’도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다 아는 사람은 아니네. 기꺼이 새로 배우는 사람이지. 먼저 나설 줄 알고. 의젓하면서 상냥한 마음이야. 하루하루 지어서 겪는 동안. 새삼스레 느끼고 익힌 사랑을. 참으로 부드럽고 환히 엮어. 도란도란 이야기꽃으로 들려주네. 맨손으로 짓는 길을 보여준다. 빈몸으로 이루는 삶을 알려준다. 누구나 다르면서 같은 줄 알고. 저마다 고우면서 밝은 빛을 봐. 함께 가꾼 모두 물려주고. 새로 피는 꽃을 반겨. 바람결 흙내 풀숨을 읽고. 나무숲 철노래 오늘을 잇지. (수수께끼 143)


  오늘 이곳에서 어른이란 몸을 입은 이웃님은 둘레 다른 어른 곁에서 얼마나 슬기롭게 수수께끼를 내면서 어깨동무를 하는지요? 어른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웃님은 이녁 아이나 마을 푸름이 곁에서 얼마나 슬기롭고 상냥하면서 참하게 수수께끼를 넌지시 건네는 마음빛을 밝히시는지요?


  수수께끼 한 토막이나 꾸러미란, 낱말 하나를 알아맞히는 놀이가 되면서, 살림을 새삼스레 바라보는 길잡이가 됩니다. 말 한 마디가 태어나고 자란 결을 살피는 눈썰미를 키우면서, 어린이·푸름이가 앞으로 스스로 새말을 빚으면서 살림살이를 추스르는 씩씩하고 다부진 어른으로 크는 디딤돌이 되어요.


  수수께끼란 틀에 매이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똑같은 한 가지를 놓고서 다 다르게 마음으로 읽어내어 줄거리를 엮습니다. 자, 생각해 봐요. ‘바다’나 ‘바람’을 놓고서 열여섯 줄로 수수께끼를 지어 볼까요? ‘옷’이나 ‘눈’을 놓고서 열여섯 줄짜리 수수께끼를 엮어 볼까요?


  말을 말답게 다스리는 첫자리를 든든하게 가눌 줄 안다면, 글꽃(문학)이며 밝꽃(과학)이며 벼슬(정치·행정)이며 생각(철학)이며 살림(경제)이며 빛살(예술)이며 일감(산업)이며 배움(교육)이며, 모두 즐거우면서 아름답게 여밀 만하지 싶습니다. 말부터 말답게 건사하지 못한 채 온갖 일을 붙잡으려 한다면, 그만 너무 어렵거나 여느 사람들하고 동떨어진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기울기 쉽다고 느낍니다.


 잣나물 잣나무


  저는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란 책을 써냈는데요, 이 나라 푸나무를 살피는 어느 이웃님은 《한국식물생태보감》이란 책을 써냈어요. 《한국식물생태보감》에서 ‘잣나물’ 꼭지를 읽으니, ‘잣나무’처럼 나물에서도 ‘잣’이란 이름이 붙은 풀이 있기 마련이라고, ‘잣나무·잣나물’에서 ‘잣’은 ‘젖’하고 맞물린다고 밝힙니다. 옳거니, 나무잣이건 풀잣(쇠별꽃)이건 그렇게 기름지면서 맛난 까닭이 이름에 숨었군요.


  우리는 가을이면 논밭에서며 멧골에서며 ‘갈무리’나 ‘갈망’을 해요. 나락이며 열매이며 짚이며 갈무리하는데요, ‘간수하다·건사하다’하고 잇닿는 이 낱말 ‘갈무리·갈망’이란 으레 ‘가을(갈)’에 합니다. ‘갈잎·갈바람’에 깃드는 이 ‘갈’을 비롯해서 ‘간(간수·간직), 건(건사), 갖(갖추다·가지다)’으로 가지를 치는 숱한 낱말하고 얽힌 수수께끼는 실타래처럼 얽히면서도 재미나게 풀어낼 만해요. 가을이 ‘가을·갈’인 까닭이 ‘갈무리·갈망’에 깃들었달까요.


  누구보다 이 나라 어린이하고 푸름이부터 말을 말다우면서 슬기롭게 즐겁게 다루면서 누리기를 바라기에 “우리말 수수께끼”를 “우리말 동시”이자 “수수께끼 동시”라는 얼개로 짜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린이 곁에서 어른도, 푸름이 곁에서 어버이도, 함께 수수께끼를 풀면서 우리 삶길이 앞으로 나아갈 새그림을 조곤조곤 가다듬어 보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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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6


“나무 곁”하고 “나무 밑”은 어디일까? “나무 아래”는 어디일까? 우리는 “가랑잎을 밟으며” 걷고, “눈밭을 거닐” 뿐인데, “가랑잎 위를 걷다”나 “눈 위를 걷다”처럼 잘못 쓰는 사람이 많다. ‘위·밑·아래’를 가려서 쓸 줄 아는 글눈을 잃는다면, 왼오른을 살피는 삶눈도 함께 잃을 텐데 싶다.



바닷방울

밝게 울리는 소리를 담는 ‘방울’인데, ‘물방울’이나 ‘이슬방울’이나 ‘눈물방울’ 같은 데에 붙인다. ‘빗방울’이라고도 한다. 맑고 밝으면서 동그란 숨결을 나타내는 ‘방울’이니, 바닷물을 마주할 적에도 철썩철썩 튕기며 솟는 맑고 밝고 동그란 물빛을 ‘바닷방울’이라 할 만하다.


바닷방울 (바다 + ㅅ + 방울) : 바다를 이루어 흐르는 물에서 작고 동글게 이루는 하나.



위밑옆

위하고 아래를 함께 가리킬 적에는 ‘위아래’라 한다. 위랑 밑을 나란히 나타낼 적에는 ‘위밑’이라 한다. 위에 아래에 왼에 오른을 함께 가리킨다면? ‘위아래왼오른’처럼 조금 길 수 있는데, 단출히 ‘위밑옆’이라 할 만하다. ‘위밑곁’이라 해도 어울리고, ‘위밑둘레’라 해도 또렷하다. 생각해 보면 어디나 잘 볼 수 있고, 어느 곳이든 알맞게 그릴 수 있다.


위밑옆 (위 + 밑 + 옆) : 위와 밑과 옆(왼오른)을 함께 가리키거나 묶거나 나타내는 말. (= 위밑곁·위밑둘레·위아래옆·위아래곁·위아래둘레. ← 상하좌우)



나무묻이

씨앗을 흙에 묻는다. 흙에 묻힌 씨앗은 흙결을 가만히 품으면서 사르르 녹아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다. 주검을 흙에 묻는다. 숨결이 빠져나온 몸이 흙으로 돌아가도록 포근히 묻는다. 때로는 주검을 불로 사른다. 때로는 주검을 물에 놓는다. 씨앗은 ‘씨묻이·씨앗묻이’요, 주검은 ‘흙묻이·불묻이·물묻이’를 한다. 때로는 나무 곁에 주검을 묻는다. ‘나무묻이’를 하면서 고요히 시나브로 흙으로 돌아가서 숲빛으로 녹아들기를 바란다.


나무묻이 (나무 + 묻다 + -이) : 나무 곁이나 둘레에 묻다. 나무 곁이나 둘레에 묻으면서 기리거나 되새기거나 돌아보거나 생각하다. 죽은 몸을 나무 곁이나 둘레에 묻으면서 숲빛으로 기리거나 되새기거나 돌아보거나 생각하다. (← 수목장樹木葬)



길죽음

그만 길에서 죽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는 숲짐승이나 들짐승이 길에서 죽는 일이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제는 두 가지 ‘길죽음’이 있다. 사람도 슬프게 길에서 죽고, 숱한 짐승도 길에서 부릉부릉 쇳더미에 치이거나 밟혀서 죽는다. ‘치여죽다’가 길죽임인 셈이고, 벼락죽음이요 슬픈죽음이다. 이웃이나 동무가 없이 홀로 길에서 죽으면 쓸쓸죽음에 외죽음이다. ‘길눈물’을 그칠 수 있도록 부릉부릉 내달리는 길을 줄여야 할 텐데 싶다.


길죽음 (길 + 죽다 + ㅁ) : 길에서 죽음. 숨을 다하여 길·바깥·한데에서 죽는 일이나 주검. 길에서 자동차에 치여서 죽는 일이나 주검. (= 길에서 죽다·길주검·길눈물·치여죽다·슬픈죽음·개죽음·벼락죽음·슬픈죽음·쓸쓸죽음·외죽음. ← 로드킬, 객사客死, 사고事故, 교통사고)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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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간 토마토> 2023년 10월호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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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5


단단하게 쌓거나 올리면서 ‘담기에(담다)’ ‘담·담벼락’이고, 아우르거나 어우르듯 너랑 나를 함께 일컫는 결을 품기에 ‘울·울타리’이다. 너랑 나를 아우르는 ‘우리·울’에는 틈이 있다. 울타리도 틈이 있어 바람이나 풀벌레나 새가 드나든다. 단단히 세운 담이기에 비바람을 막기에 좋으면서, 자칫 안쪽에서 끼리끼리 힘(권력)을 부리기도 한다. 낱말 하나로 가리키는 모습은 같으나, 이 낱말을 다루는 마음은 모두 다르다. 다르기에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까? 다르기에 뚝 끊거나 자르거나 쳐내야 할까?



글담

담을 쌓으면서 비바람을 가리고 집을 튼튼히 돌볼 수 있다. 담을 쌓기에 아무도 드나들지 못 하고, 안팎이 서로 막혀서 마음이나 생각을 못 나눌 수 있다. 담이란, 좋거나 나쁘지 않다. 틈을 없애는 담이고, 드나들 길을 막는 담이다. 담을 올리기에 누가 쳐들어오기 어려울 만하고, 담을 올린 터라 ‘안쪽 사람’끼리 어울리면서 ‘나눠먹기’를 이루기도 한다. 어떤 글담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삶이 다르고, 글담을 어떻게 일구거나 가꾸느냐에 따라, 우리가 ‘말을 옮기는 글’이 확 다르게 마련이다.


글담 (글 + 담) : 1. 글을 담은 곳. 글을 담아서 오래오래 잇도록 두거나 돌보는 곳. ‘담다’는 “단단하게 두른 안쪽에 두어서 밖으로 새거나 빠지거나 나가지 않도록 하다”를 나타내기에, 글을 지키거나 돌보려고 하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2. 글로 쌓거나 세우거나 막거나 둘러친 담. 글을 써서 얻은 돈·이름·힘으로 담을 둘러치고서 끼리끼리 어울리는 사람들과 이들이 하는 짓을 가리키는 말. 글로 얻는 돈·이름·힘을 담 안쪽에서 그들끼리 나누면서 바깥쪽을 쳐내거나 가로막거나 끊거나 밟으면서 돈·이름·힘을 더욱 키우는 사람들과 짓거리를 나타내는 말. (= 글담벼락·글울·글울타리·글힘. ← 문단권력, 문학권력)



라온눈

옛말 ‘라온’이라지만, 오늘날 적잖은 사람들은 ‘라’라는 소리하고 ‘온’이라는 소리가 어울리는 이 낱말을 무척 따스하고 넉넉하면서 반갑게 맞이한다. 노래를 부를 적에 저절로 흘러나오는 소리인 ‘라·라랄라·랄랄라’이다. 셈으로 치면 ‘100(百)’을 나타내고, ‘모두’하고 비슷한 뜻이면서 ‘올·알’하고 맞물리는 ‘온’이다. “노래하는 모든 숨결”이라면 더없이 즐거울 만하다. 노래하는 모든 숨결로 바라보는 ‘눈’이라면 언제나 스스로 기쁨씨앗을 심으면서 사랑빛을 밝히는 아름길로 나아가는 밑바탕을 이룰 만하다.


라온눈 (라 + 온 + 눈) : 즐겁게 바라보거나 누리거나 받아들이거나 살아가는 눈. (= 라온·라온빛·기쁨·기쁨눈·기쁨빛·즐거움. ← 행복, 행복지수, 복福, 해피happy, 환희, 만족, 만족감, 만족도, 유쾌)



함박구름

크고 시원하게 웃으니 ‘함박웃음’이다. 크고 시원하게 피는 ‘함박꽃’을 닮은 웃음이라고 여긴다. ‘함박’은 ‘하·한’이 말밑이요, ‘하늘·크다·하나’를 밑뜻으로 담는다. ‘한바탕·함께·함함하다’도 말밑과 밑뜻이 같다. 이런 얼거리를 헤아리면, 크고 시원하게 내리는 ‘함박눈·함박비’에 ‘함박구름·함박물결’처럼 새말을 여밀 수 있다.


함박구름  (함박 + 구름) : 굵고 크게 피어난 구름.

함박 ㄴ (함지박) : 1. 속에 넉넉히·잔뜩·많이 담을 수 있도록 통나무를 둥그렇게 움푹 파서 쓰는 그릇. 2. 겉으로 드러나는 길이·넓이·높이·부피 같은 모습이 여느 것·다른 것보다 더 되거나 더 있거나 넘거나 넉넉히 남을 만하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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