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사물
조경란 지음 / 마음산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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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9.19.

책으로 삶읽기 703


《소설가의 사물》

 조경란

 마음산책

 2018.8.25.



연휴 때 밀어둔 책들과 신간을 몇 권 읽었는데 그중에 중국 작가 장웨란의 단편 〈집〉을 보고는 다시 트렁크를 떠올리게 되었다. (37쪽)


조카들의 귀 청소를 해주면서 동시를 읊는다. (42쪽)


시간은 흐르는데 더 나은 인간이 되기는커녕 예전보다 못한 내가 될까 봐 겁난다. 그래서 느리게라도 계속해서 읽고 생각하고 듣고 보고 쓴다. (64쪽)


책을 쓰고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삼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이긴 하지만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운이 난다. (114쪽)


보내지 않아도 좋을 그 편지를 한 자 한 자 필압筆壓에 담고 느끼며 썼던 이유는 이 세상 누군가 한 사람에게만은 내 고백의 글이 가 닿기를 바랐던 간절함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296쪽)



《소설가의 사물》(조경란, 마음산책, 2018)을 읽으며 밑줄을 그을 만한 데를 못 찾았다. 두벌째 읽으며 겨우 몇 군데에 빗금을 쳤다. 마음에 와닿은 대목은 아니나, 글님 속내가 드러나는구나 싶은 곳을 눈여겨보았다. 소설을 쓰고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일하는 글님이라는데 옮김말씨라든지 일본말씨가 수두룩하다. “초등학교 때 살던 집의 재래식 부엌에서 나는 처음 요리를 했다(241쪽)”나 “책이라는 건 묘한 데가 있어서 한 문장이나 단어 하나만 봐도 그것을 읽고 있는 나의 삶, 나라는 존재로 곧장 눈을 돌리게 할 때가 많습니다(7쪽)” 같은 글은 겉보기는 한글이되 우리말은 아니다. 우리말은 이렇게 안 한다. “→ 어릴 적에 낡은 부엌에서 처음 밥을 지었다”나 “→ 책이란 재미있어서 슬쩍 보기만 해도 삶과 넋을 곧장 생각합니다”처럼 쓸 적에 비로소 ‘우리말’이라고 한다. “조카들의 귀 청소를 해주면서(42쪽)”는 어떨까? 우리말이라면 “→ 조카들 귀를 파 주면서”라 해야겠지. ‘-게 되다’나 ‘-해지다’는 모조리 옮김말씨+일본말씨인데, 이런 말씨는 글님 조경란만 쓰지 않는다. 웬만한 글꾼은 이처럼 쓰면서 무슨 글결인가를 못 느낀다.


이러다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몇 달간 아무 데서도 청탁이 없었고(30쪽)” 같은 대목에서 넌지시 무릎을 쳤다. 이 책 《소설가의 사물》을 쓴 분, 이 책을 펴낸 곳이 무엇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길들이려’ 하는가를 느꼈다. ‘푸념과 하소연’을 밑밥으로 삼아서 ‘너 힘들지? 나도 힘들어? 우리 다 힘들구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도록 이끄는 글을 엮어내는구나 싶다.


우리나라 숱한 글(소설)이 ‘사랑’이나 ‘연애’를 다룬다고 하지만, 내가 느끼기로는 사랑도 연애도 아닌 ‘툭탁질’이거나 ‘다툼질’이거나 ‘살섞기·살부빔’에서 그친다. 사랑 아닌 줄거리를 그리면서 마치 ‘사랑’이라도 되는 듯이 ‘사랑이라는 낱말을 쓰며’ 사람들을 홀린다고 할 만하다. 서울 지하철을 모는 분이 사람들한테 남우세를 무릅쓰고서 ‘데이트폭력 살인자’ 이야기를 밝히며 도와주기를 바란 마음을 《소설가의 사물》을 쓴 사람이나 이 책을 펴낸 곳에서는 터럭만큼이라도 느끼거나 생각할까? 그들 모든 때린이(가해자)는 입에 발린 ‘사랑·연애·데이트’란 낱말을 주워섬긴다.


지난 2008년에 ‘조경란 《혀》 표절’이 도마에 올랐을 적에 적잖은 ‘문단주류 쇠밥그릇 평론가와 작가’는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왜 그들이 입을 다물었는가는 그해 2008년 〈프레시안〉에 나온 ‘방현석 말’에 아주 잘 드러난다.


우리는 잘 생각해야 한다. 모든 ‘베낌질 말썽(표절 시비)’은 ‘문단권력자 + 문단주류 출판사 + 문단주류 쇠밥그릇 평론가·기자 + 큰책집(대형서점)’이 한통속이 되어 일어날 뿐 아니라, 이들이 똘똘 뭉쳐서 사람들 눈귀입을 싹 틀어막으려 한다. 몇 해 지났다고 스멀스멀 기어나와서 떡하니, 바로 그 ‘창비’에서 새책을 내놓은 신경숙을 보라. 고은이야 나이가 많아 책을 더 못 낼는지 모르나, 김봉곤은 어떨까? 도마에 오르지 않았으나 뒤에서 돈놀음·이름놀음·힘놀음을 하는 숱한 이들은 어떨까?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즐겁게 오래 살면서 허술하고 허접하게 껍데기를 내세워 장사를 하는 이들 민낯을 하나하나 느끼고, 우리는 스스로 새롭게 아름다우며 참다이 사랑스러운 글꽃을 가꾸면서 노래할 일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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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mod=news&act=articleView&idxno=12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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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9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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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이해인 지음, 이규태 그림 / 샘터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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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9.18.

책으로 삶읽기 702


《친구에게》

 이해인 글

 이규태 그림

 샘터, 2020.6.25.



뭐 필요한 거 없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말해!

네 말에 내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너만 필요하다고 대답했지.

그런데 왜 너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을까. (16쪽)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하다는 나의 친구야.

오늘은 나랑 같이 사장에 가자.

꼭 무엇을 사지 않더라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흥정하는 사람들의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를 듣고 (38쪽)



《친구에게》(이해인·이규태, 샘터, 2020)를 읽었다. 짤막한 글에 그림을 곁들여 도톰하게 엮었다. 두멧시골로 삶터를 옮기고부터 동무를 만나는 일은 한 해에 몇 날 될까 말까 한다. 더 생각하면 어릴 적 동무는 딱 하나만 만나는데 인천에 살고, 서울에는 어느덧 동무 사이가 된 이웃이 있다. 나는 동무한테 “너만 있으면 돼” 같은 말을 안 한다. 동무도 나한테 이런 말을 않는다. 나하고 동무로 지내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은 설이나 한가위라고 딱히 쪽글을 보내지 않을 뿐더러, 난날(생일)을 챙기는 일조차 없다. “그럼 동무란 뭔데?” 하고 묻는다면, “옆집에 살든 머나먼 곳에 떨어져 살든 늘 마음으로 부르면서 속삭이는 사이”라고 하겠다. 마음으로 불러서 속삭이고 만나는 사이인 터라 몇 해 만에 얼굴을 보든 한 해에 하루쯤 말을 섞든 대수롭지 않기도 하거니와 ‘늘 함께하는 줄 느낀’다. 그리고 나도 동무도 서로 “뭐 바라니?(뭐 필요한 거 없니?)” 하고 물은 적이 여태 아예 없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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눕기의 기술 - 수평적 삶을 위한 가이드북
베른트 브루너 지음, 유영미 옮김 / 현암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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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책읽기 2021.8.15.

인문책시렁 199


《눕기의 기술》

 베른트 브루너

 유영미 옮김

 현암사

 2015.9.25.



  《눕기의 기술》(베른트 브루너/유영미 옮김, 현암사, 2015)을 읽으며 ‘눕다’를 가만히 돌아보는데, 글님은 “눕는 살림”을 자꾸 바깥에서 다른 눈치에 매여서 바라보는구나 싶습니다. 다른 사람이 ‘눕기’를 어떻게 말하든, 다른 책에서 ‘눕기’를 뭐라 다루든, 글을 써서 책을 여미기로 했으면 글님 스스로 누리고 느끼고 받아들여서 생각한 ‘내 나름대로 눕기’를 풀어놓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이 잠에서 즐겁게 깨어나려 했으나 헛심”이 되었다고 하지만, 글님도 늘 헛심이었을까요? 헛심이었다면 왜 헛심이었을까요? 스스로 마음에 즐거운 꿈을 그리지 않기에 잠들 무렵부터 안 즐겁고, 잠든 동안에도 안 즐거우며, 깨어난 뒤에도 안 즐거운 하루이지 않을까요?


  꿈은 남이 아닌 우리가 꿉니다. 우리가 스스로 꾸기에, 꿈은 늘 스스로 바꾸어 내요. 마음에 안 드는 꿈이라면 마음에 들도록 바꾸는 힘이 바로 우리한테 있어요.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그저 꿈을 지켜보겠다면 얼마든지 꿈을 지켜볼 만합니다.


  꿈읽기도 우리 나름대로 합니다. 남이 꿈풀이를 해주어야 하지 않아요. 스스로 풀어내면 됩니다. 스스로 꾸는 만큼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서 생각하면, 오늘 맞이한 꿈이 스스로 어떠한 삶길로 나아가라고 하는 뜻인가를 온몸으로 깨닫기 마련이에요.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누우면 됩니다. 즐겁고 싶다면 스스로 마음에 ‘즐거운 생각’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됩니다. 안 즐겁고 싶다면 스스로 ‘즐거운 생각’은 아예 마음에서 밀쳐내면 됩니다. 늘 이뿐입니다.


ㅅㄴㄹ


누워 있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눕는 행동은 어떤 때는 수동적이고, 어떤 때는 능동적인 행위가 된다. (23쪽)


많은 사람들이 깨어남을 유쾌한 일로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헛수고였다. (67쪽)


그렇다면 경우에 따라 잠깐 낮잠 자는 것을 제외하면 눕는 건 밤에만 허용되어야 하는 걸까? (85쪽)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어서건, 아니면 더 나은 삶을 찾아 길을 떠나서건, 아니면 유목 문화에 속해서건, 지구의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은 이동해 왔고 지금도 이동하고 있다. (138쪽)


이제 여러 가지로 조절 가능한 의자는 온갖 곳에 널렸다. 수술에, 미용에, 아이를 낳는 데, 심각한 혹은 별로 심각하지 않은 여러 종류의 진찰에 이런 의자가 동원된다.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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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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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8.11.

인문책시렁 196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난다

 2017.7.1.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박준, 난다, 2017)을 예전에 읽었다. 딱 ‘요즘스러운 글과 책’이겠으나 ‘오래갈 만하지는 않을 글’이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글과 책이 오래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스스로 마음눈을 뜨지 않거나, 삶을 서울스러운 틀이 아니라 스스로 푸르게 가꾸며 바라보는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이러한 글과 책이 오래가기도 하겠지요.


  겉을 꾸미려고 걸치는 옷이라면 삶을 누비거나 누리지 못합니다. 삶을 누비거나 누리려고 걸치는 옷이라면 어떤 옷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삶에는 왼쪽이나 오른쪽이 없고, 가운데나 바깥이 없습니다. 삶에는 서울이나 시골이 없고, 잘생기거나 못생긴 얼굴이 없습니다.


  삶에는 오직 삶이 있습니다. 바람을 한 줄기 마시면서 바람을 쓰면 됩니다. 새벽빛을 보며 새벽을 쓰면 됩니다. 아이랑 놀다가 아이다운 놀이를 쓰면 되고, 풀벌레를 손바닥에 얹고서 지켜보다가 풀벌레하고 동무하는 하루를 쓰면 됩니다.


  요즈막 사람들이 왜 이렇게 겉글(겉치레 글쓰기)에 사로잡히면서 속글(스스로 마음을 사랑하는 글)은 밀쳐낼까 하고 생각하다가, 삶부터 겉멋이 가득한데 속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을 생각조차 못하거나 안 하니 그럴 만하겠다고 느낍니다.


  삶은, 우리가 스스로 울거나 웃거나 노래하거나 춤추기에 달라집니다. 안 울거나 안 웃거나 안 노래하거나 안 춤추면 삶은 쳇바퀴나 수렁에 갇혀서, 남(우두머리나 먹물붙이)이 시키는 대로 길들기 마련입니다.


ㅅㄴㄹ


어느 커다란 무덤 앞에서 당신이 내 손바닥을 펴더니 손끝을 세워 몇 개의 글자를 적어 보였다. 그러더니 다시 손바닥을 접어 주었다. 나는 무엇이 적힌 줄도 모르면서 고개를 한참 끄덕였다. (15쪽)


손 편지를 주고받은 지가 오래다. 가장 최근에 받은 편지는 지난봄 샌프란시스코에서 신혼여행을 보내고 있는 새신랑에게서 온 것이었다. “사랑하는 詩人께”로 시작되어 “여기에 와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고 있자니 그저 어디에서건 살아지는 게 답답하고 또 좋습니다. 여백이 많지 않습니다”로 끝맺는 짧은 편지였다. (24쪽)


그리고 그날들이 다 지나자 다시는 아무것도 빌지 않게 해달라고 스스로에게 빌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47쪽)


지금도 종종 뵙는, 종로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살고 계시는 한 선생님에게서는 서울의 노포老鋪들과 다양한 독주를 배웠다. (62쪽)


요즘은 일을 너무 많이 한다. 오늘 하루만 해도 두 권의 책에 대한 서평을 썼고 잡지에 실을 인터뷰 글을 썼다. 오후에는 서대문에 있는 출판사에 들러 윤문을 할 원고 꾸러미를 잔뜩 들고 왔다. 주말에는 낡은 차를 몰고 경남에 있는 한 사찰로 취재를 가야 한다. 제법 돈이 되는 일도 있고 돈을 생각했다면 하지 않았을 일도 있다.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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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의 작은 식물은 언제나 나보다 큽니다 - 식물의 언어로 전하는 유연하고 단단한 일상
김파카 지음 / 카멜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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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8.3.

인문책시렁 203


《내 방의 작은 식물은 언제나 나보다 큽니다》

 김파카

 카멜북

 2020.6.22.



  《내 방의 작은 식물은 언제나 나보다 큽니다》(김파카, 카멜북, 2020)를 읽다가 곳곳에서 갸웃갸웃합니다. 이를테면 37쪽 “식물도 생각할 줄 아는 존재가 된다면 ‘나는 왜 사는가, 내 인생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고민할 것이다”라든지 99쪽 “크게 자라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못생겨지는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라든지 “식물의 인생을 지탱하는 것은 물과 바람 그리고 흙이다” 같은 대목입니다.


  우리는 으레 사람 눈썰미로 보려 하기에 풀꽃나무나 들짐승이나 헤엄이가 ‘늘 생각한다’는 대목을 모릅니다. 어떻게 풀꽃나무가 생각할 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풀꽃나무나 애벌레한테는 “못생겨지는 시간”이란 없습니다. 그저 사람 눈썰미인데, 사람 가운데에서도 틀에 박힌 서울내기 눈썰미입니다. 모든 풀꽃나무는 저마다 다르고, 모든 사람도 저마다 달라요. 다른 삶과 몸과 넋이기에, 누구는 잘나고 누구는 못나지 않아요.


  풀꽃나무는 사람이 아닌 터라 ‘식물의 인생’일 수 없어요. ‘인생 = 사람살이’입니다. ‘식물의 인생’은 틀린 말입니다. ‘풀꽃나무 한해살이’나 ‘풀꽃살이’쯤으로 바로잡아야겠는데, 풀꽃나무는 ‘물·바람·흙’이 아닌 ‘해·바람·비를 누리는 흙’을 바탕으로 살아갑니다. 이는 사람도 같아요. 그냥 ‘물’이 아닌 ‘비’이지요.


  어느 풀꽃나무이든 그냥 물(거의 수돗물)을 주어서는 겨우 숨을 잇는다고 할 터이나, 싱싱하게 살아날 숨을 얻지는 못합니다. 예부터 마당이 아닌 그릇으로 풀꽃을 기르는 분들은 비가 오면 으레 그릇을 죄 비를 맞도록 바깥에 내놓았다가 들이기 바빴어요. 아무리 ‘사람이 손으로 물을 주어’도 ‘하늘에서 오는 비’만큼 풀꽃을 살리지 못하는 줄 알거든요.


  비란 무엇이기에 풀꽃나무를 그토록 싱그러이 살릴까요? 비는 구름이지요. 구름은 아지랑이지요. 아지랑이는 바다이지요. 바다는 냇물이지요. 냇물은 샘물이고, 샘물은 빗물입니다. 늘 온누리를 돌고도는 싱그러운 숨결이기에 ‘비’라고 합니다. ‘비 = 흐르는 물 = 삶물·살림물’이요, ‘그냥 물(수돗물) = 갇힌 물·고인 물 = 죽음물’입니다. 숱밭(농장)에서는 그토록 싱싱해 보이는 풀꽃을 집으로 가져오면 이내 시드는 까닭을 읽어내야 합니다. 숱밭에서는 싱싱해 보이며 버티도록 ‘그냥 물’을 주니, 풀꽃으로서는 그 모습을 악착같이 지킬 뿐입니다.


  그런데 풀꽃나무는 ‘해바람비흙’만으로 살아가지는 않아요. 해바람비흙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비록 그냥 물을 받고 햇볕조차 없는 데에 있더라도 사랑을 받는 풀꽃은 야무지게 살아납니다. 사람도 이와 같으니, ‘돈이름힘’이나 ‘옷밥집’이 모자라거나 적거나 없더라도 ‘사랑’을 받을 적에 싱그럽게 피어나요.


  마지막으로 《내 방의 작은 식물은 언제나 나보다 큽니다》는 내내 ‘햇빛’만 이야기하는데, 풀꽃은 ‘빛’이 아닌 ‘볕’을 먹습니다. “해가 잘 드는 곳”이란 “햇볕이 잘 드는 곳”입니다. 풀꽃이며 짐승이며 사람을 북돋우는 ‘해 기운’은 ‘햇볕’입니다. 햇볕이 적은 겨울은 풀꽃나무도 잠을 자지요. 빛만이 아닌 볕을 쬐는 풀꽃나무이기에, 그릇으로 풀꽃을 키우는 분이라면 으레 풀꽃그릇이 볕을 고스란히 받도록 헤아리면서 그릇을 자꾸자꾸 옮겨 줍니다. 해는 ‘빛·볕·살’을 온누리에 베푸는데, ‘빛·볕·살’은 또렷이 다릅니다.


  그리고 ‘반려식물’이 나쁘지 않습니다만 ‘곁풀·곁꽃·곁풀꽃’을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풀꽃을 ‘곁’에 둔다는 마음이 된다면, 해바람비에다가 흙하고 사랑을 곁에 두는 길을 늘 마음으로 읽어내리라 봅니다.


ㅅㄴㄹ


인생 첫 독립 후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을 때 알게 되었다. 농장에서는 물만 줘도 잘 자라는 것 같던 식물들이 집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5쪽)


식물을 가장 잘 키우는 존재는 자연이다. 그 위대한 진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66쪽)


처음 간 모임에서 아무도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그곳에 계속 있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집에 갔는데 날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떠나고 싶을 것이다. (89쪽)


처음엔 햇빛과 환기가 그렇게나 중요한지 몰랐다. 며칠 동안 집에서 꼼짝 않고 나가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나도 몰랐던 우울감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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