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8 넋나간 짓

책벌레수다 : 넋찾는 길에 읽고쓰기



   우리 삶자락에 깃들 만하구나 싶은 낱말이라면 이제 붙여쓰기를 할 노릇이라고 본다. 국립국어원이나 국어학자가 새 낱말을 알려줄 때에만 붙여쓰기를 할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짓는 이 삶에서 스스로 느끼고 배우고 깨닫고 익히는 대로 새말을 지으면 된다. ‘새말’을 아무나 지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 마음은 맞다. 참으로 ‘아무나’ 지으면 안 될 새말이다. 그래서 ‘누구나’ 지으면 될 새말이다. ‘새말 = 사투리’이다. 예부터 모든 곳 모든 사람이 저마다 스스로 새롭게 말을 지었다.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한테 이름을 붙이고, 손수 가꾸며 지내는 집에도 이름을 붙이고, 새와 풀과 나비를 바라보다가 이름을 붙인다. ‘이름 = 이르는 소리 = 말’이다. ‘이르다’란 저곳에서 이곳으로 잇는다는 뜻이다. ‘말·이름’을 붙일 적에는, 아직 우리한테 스미거나 녹아들지 않던 저곳에 있는 삶과 살림을, 이제는 이곳에 있는 우리한테 풀어내거나 품는 하루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리하여, 오늘은 문득 ‘읽고쓰다’라는 낱말을 붙여서 적어 본다. 오늘날 숱한 사람은 두 가지를 나란히 한다. 읽기만 하거나 쓰기만 한다고 여기기 어렵다. 읽기에 쓰고, 쓰기에 읽는다. ‘읽고쓰기’하고 ‘쓰고읽기’는 함께 흐른다.


참새가 입원하면 먼저 지렁이를 찾고, 나비의 애벌레를 모으는 것도 우리가 할 일입니다. 지빠귀는 나방이 주식이에요. 이들이 입원하면 의료진 모두 곤충 채집하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갑니다. 물총새가 입원하면 다들 어부가 된 듯 뜰채를 들고 강으로 나서고, 눈토끼가 오면 농부로 변신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 55쪽


  나는 아무래도 넋나간 듯 책을 읽고 글을 쓰는구나 싶다. ‘닥치는’ 대로 읽지는 않으나, 손에 닿는 모든 책을 읽으려고 한다. 한 사람이 읽어낼 만한 책은 그리 안 많다지만, 온갖 책을 안 가리면서 읽으려고 한다. 온갖 사람을 딱히 안 가리고 싶기에 책도 그저 모두 집어들어서 줄거리를 짚고 이야기를 느끼려고 한다. 요즈음 우리나라 그루(주식)가 껑충 뛴다고 말이 많은데, 난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그루에 돈을 놓을 뜻이 아주 없다. 나는 읽고쓰기에 돈과 품과 마음을 들이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요즈음이라면 씨앗돈이 있으면 얼른 그루에 돈을 놓아서 돈벼락을 맞을 수 있을 텐데, 돈벼락을 등진 채 책벌레에 글벌레로 살아가려고 하니, 참으로 넋나간 짓일 만하다.


트리혼은 《머리 없는 괴물》에 대해 독서 감상문을 쓸 생각이었다. 선생님이 만화책에 대한 독서 감상문을 써도 된다고 한 적은 없지만, 쓰면 안 된다고 한 적도 없었다. 《트리혼의 보물 나무》 29쪽


  일본 훗카이도 두멧골에서 ‘이웃돌봄터(동물병원)’를 꾸리는 집이 있다지. 이웃인 들짐승은 돌봐준들 값(치료비)을 치르지 않는다. 숲짐승이나 들짐승이 무슨 돈을 건사하겠는가. 돈나라(자본주의)로 친다면 넋나간 짓이다. 그렇지만 훗카이도 이웃돌봄터 사람들은 넋나간 짓을 웃고 노래하면서 즐겁게 온몸을 바쳐서 한다. 나는 어느 터(회사·직장·기관·연구소·학원·재단)에 몸두지 않으면서 낱말책을 쓴다. 어느 터에 몸두면 다달이 일삯이 나올 뿐 아니라, 심부름꾼을 두면서 수월하게 낱말책을 쓸 테지. 자잘한 모든 일을 남한테 맡기고서 뜻풀이만 해도 될 텐데, 심부름꾼이 여럿이면 뜻풀이마저 맡길 수 있다. 그런데 밑글을 모으고 살피고 추스르는 자잘한 일부터, 말밑을 캐고 찾고 알아내면서, 이 모든 줄거리를 이야기로 묶어서 글로 쓰는 데까지 오롯이 혼자 한다. 이러며 집일과 집살림을 고스란히 맡는다. 이러며 아이들하고 놀고 수다를 떤다. 이러며 두바퀴를 달려서 저잣마실을 하고, 곧잘 시골버스로 읍내로 가서 저잣마실을 하지.


“있지, 엄마. 뱃속에 있던 아기, 지금 멀리 간 거지?” “응, 이젠 안 돌아와.” “많은 엄마들 중에서 우리 엄마한테 온 거니까, 다시 올 거야.” “엄마, 아가 얼른 돌아오라고 내가 편지 썼다? 여기, 받으세요♡” 《투명한 요람 2》 73쪽


  둘레(사회)에서 바라보는 “넋나간 짓”이라면, 겉돈하고 담쌓은 삶이라 할 만하다. 느닷없이 돈벼락에 올라앉을 오늘날 이 나라하고 엇나간다면 넋나간 짓이다. 어느 터에든 슬그머니 올라타서 목돈을 만지거나 이름값을 높이려는 길을 손사래칠 적에도 넋나간 짓이다. 그렇지만 우리집 아이뿐 아니라 이웃집 아이를 보더라도 ‘어른으로서’ 살아가려 하는 마음에다가 ‘사람으로서’ 일하려는 마음이기에, 둘레가 아닌 ‘나너우리’를 바라보려고 한다. 나너우리로 맺고 품는 푸른별이라는 곳에서는 ‘어른으로서 + 사람으로서’라는 길을 잊는 모습이야말로 “넋나간 짓”이라고 느낀다. 나는 넋찾기를 하려고 읽고쓴다. 나는 뭇이웃 누구나 넋찾기를 스스럼없이 너끈히 하기를 바라며 읽고쓴다. 우리가 함께 누리고 나눌 아름책과 아름글을 헤아리면서 읽고쓴다.


“용신은 믿지 않으면서 그런 건 믿으시네요.” “다 그런 거야.” 용이 있었다고 해도 이미 옛날 일이에요.” 《드래곤 키워 주세요 1》 113쪽


  ‘집’이란, 지으면서 즐겁게 지내는 곳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집’이라는 낱말이 왜 ‘집’인 줄 까맣게 잊거나 안 쳐다보기 일쑤이다. ‘밥’이란, 바다와 바람한테서 오는 바탕을 받아들이는 길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는 ‘밥’이라는 낱말이 왜 ‘밥’인 줄 아예 잊거나 안 바라보곤 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수수한 낱말·이름을 깡그리 잊다가 잃는 굴레라고 할 만하다. 그야말로 ‘문해력·어휘력’ 같은 일본말씨가 춤출 뿐 아니라, 이런 일본말씨를 붙이는 글장사와 말장사가 판치는데, 정작 ‘글눈·말눈’을 저마다 스스로 익히면서 삶을 가꾸는 길하고 어울리는 읽고쓰기는 좀처럼 날개를 못 편다고 느낀다. 그루에 돈을 놓아서 벼락돈을 맞는 데에 넋이 팔린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남이 좋게 보아주기를 비느라, 막상 “내가 나를 바라보며 받아들이는 바람이 되고 바다로 서는 길”을 등지는 나라이기도 하다.


“넌 그게 나아. 쓸데없는 건 보지 마. 하나만 보면 돼.” 106쪽


  ‘지기’란 어떤 사람일까? ‘지기’란 “집을 일구고 돌보며 지키는 일꾼”을 가리키는 이름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고을지기(지자체장)라든지 벼슬지기(국회의원·기초의원)를 맡는 무리를 보자. 이 나라에서 어떤 고을지기나 벼슬지기가 “집을 지키는 어진 일꾼”으로 서는 삶일는지 아리송하다. 집을 일구려면 집일을 맡을 노릇이다. 집을 돌보려면 집살림을 할 노릇이다. 집을 아끼고 사랑하려면 몸소 아이를 품으면서 가르치고 이끌며 함께 걸어야 할 노릇이다. 아이랑 손잡고 눈을 마주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일 때라야, 비로소 ‘넉차린’ 몸짓이라고 느낀다. 아이랑 손을 안 잡고서 눈도 마주보지 않는 몸짓이라면 ‘넋나간’ 하루라고 느낀다. 아이곁에서 읽고쓰기를 하는 수수한 매무새일 적에만 ‘어른’이지 싶다.


ㅍㄹ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다케타쓰 미노루/안수경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7.2.20.)

《트리혼의 보물 나무》(플로렌스 패리 하이드 글·에드워드 고리 그림/이주희 옮김, 논장, 2009.9.5.)

#TreehornsTreasure #FlorenceParryHeide #EdwardStJohnGorey

《투명한 요람 2》(오키타 밧카/서현아 옮김, 문학동네, 2022.12.2.)

#透明なゆりかご #沖田×華

《드래곤 키워 주세요 1》(마키세 쇼운 글·히가시우라 유키 그림/김동욱 옮김, 재담, 2024.12.31.)

#ドラゴン養やしなってください #牧瀨初雲 #東裏友希

《안녕, 아름다운 날 8》(아카네다 유키/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2025.5.15.)

#さらば佳き日 #?田千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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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7 신주머니 떠넘기기

책벌레수다 : 힘없는 아이가 걷는 길



  왼손에도 오른손에도 짐을 움켜쥐면 손바닥을 조이는 무게에 그만 손을 놓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뭐 하는 짓이지?” 하고 여기면 바로 손놓고 싶다. 이 마음을 돌려서 “나는 누가 뭐라 하든 두 손에 ‘짐’이 아니라 ‘살림’을 쥐었어.”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새삼스레 기운을 차리기도 한다. 어릴적을 돌아보면, 마음을 돌린 날보다 마음을 못 돌린 날이 흔했다. 한숨부터 절로 나오면서 끔찍하다고, 얼른 이 구렁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면서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나는 왜 이다지도 넘쳐나는 짐을 혼자 떠안아야 할까 싶어서 힘이 쪽 빠지기도 한다. 저 많은 사람들은 등짐도 어깨짐도 손짐도 없는데 왜 나만 유난히 이 온갖 짐더미를 들쳐메면서 어기적어기적 뒤뚱뒤꿍 느려터지게 가야 하나 싶기도 하다.


은정 씨는 비슷한 또래면서 갓 입사해서 할 줄 아는 것도 별반 없는 내가 그녀보다 높은 직급을 달고 더 많은 급여를 받는 것이나, 서무 업무를 하지 않고 남자들과 같은 영업을 하는 것에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삼성을 살다》 96쪽


  틀림없이 너나 누가 나한테 “온갖 짐꾸러미”를 떠맡기기도 할 테지. 내 어깨에 등에 머리에 손에 차곡차곡 늘어나는 짐을 다시 바라본다. 끝없이 날라야 하는 바리바리 짐덩이일 테지만, 이름을 바꾸어 보기로 한다. “온갖 짐꾸러미”가 아니라, 단출히 ‘온짐’으로 줄여서 받아들여 본다. “‘온짐’이라고 하니 좀 들을 만한데?“ 하고 혼잣말을 한다. 이윽고 이름을 새로 바꾼다. ‘온살림’이라고 돌려서 헤아려 본다. “어? ‘온살림’이라 하니 한결 들을 만한데? 설마 이름만 바꾸어도 이렇게 다르나?” 그냥 잘 모르던 힘없는 어린이는 혼자서 생각에 잠긴다. 집에서고 마을에서도 배움터에서도 또래나 언니나 아저씨나 아줌마나 할아버지나 할머니 모두한테 시달리던 고삭부리 어린이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름을 스스로 붙이면서 모두 다르구나. 이름을 어떻게 부르느냐로 모두 새롭구나. 여태 몰랐어. 아무도 알려준 적 없어.”


모든 것이 파괴된 후에 남아 있을 색깔이라고요. 《새로운 나여, 안녕》 34쪽


  그저 짐을 떠맡는다. 나는 어린배움터 여섯 해(1982∼87)를 살면서 말끔이(청소당번)를 달아난 일이 하루조차 없다. 아니, 고삭부리에 힘없는 아이는 늘 또래가 떠넘긴 말끔이를 거의 혼자 끝까지 해내야 했다. 모둠마다 나처럼 힘없는 아이가 여럿 있고, 따돌림받는 아이도 여럿 있다. 한 모둠에 예순 언저리이던 모둠마다 늦은낮에 말끔일(교실·복도·창문·교무실·계단·교장실·사육장·운동장·화장실·쓰레기터)을 모든 아이가 나눠서 맡아야 하는데, 예순 가운데 쉰다섯 쯤은 으레 달아난다. 늦은낮에 적어도 한두 시간을 치우고 쓸고닦는다. 그나마 쉰쯤 달아나고 열쯤 남으면 두 시간 즈음에 마치는데, 쉰다섯이 달아나서 다섯만 남으면 서너 시간 걸리기 일쑤이다. 길잡이는 여섯 해 내내 살피러(중간점검·최종점검) 온 적이 없다. 그냥 말끔일을 시키고서 숙직실에서 술을 마시며 해롱거리기만 했다.


“네거티브 금지! 지금은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 눈앞의 나와 사랑하자.” 《그리게 된 이상 1》 100쪽


  “신주머니 떠넘기기”를 떠올려 본다. 숱한 또래는 말끔일을 떠넘길 뿐 아니라, 모처럼 끝까지 같이 남아서 말끔일을 마치면, “야! 네가 신주머니 맡아! 우린 간다!” 하며 낄낄거리고 달아난다. 신주머니 떠넘기기를 나나 또래 한둘이 으레 뒤집어쓴다. 나는 어릴적에 고삭부리로 여린 몸이어서 신주머니 떠넘기기 같은 짓도 곧잘 겪어야 했다. 맨 처음에는 너무 싫고 부끄럽고 스스로 못나구나 싶었지만, 어느 날 문득 옆으로 날아가며 노래하는 새를 보았다. 새는 지절지절 속삭이더군. “네(사람)가 나(새)를 보면 내(새)가 보일 테지만, 네가 나를 안 보고 짐을 보면 짐에 눌려버리겠지.” 이 말을 남기고서 휙 날아가네. 어리벙벙했다. “뭐지? 뭐야? 새가 나한테 말했나?” 하고 놀랐다. 걷다가 멈춰서 멍하니 한참 생각했다. 이러고서 다시 한 발을 내딛을 적에 마음을 바꾸기로 한다. “그렇구나. 나는 두 손 가득 또래들 신주머니를 안지 않았어. 나는 짐을 떠맡은 채 심부름에 시달리는 길이 아니야. 나는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야. 자, 기찻길을 디뎌 볼까. 이 기찻길에도 꽃이 피었네. 무슨 꽃일까. 나중에 우리 마을에서도 이 꽃을 보면 어머니한테 여쭈어야지.”


‘나도 그 말을 거짓말로 만들고 싶지 않아.’ 《그리게 된 이상 2》 78쪽


  이날부터 싱글벙글 웃으면서 더 천천히 걸으며 새바라기에 구름바라기에 꽃바라기를 했다. “여러 또래 신주머니를 왕창 안은 채” 콧노래도 부르며 거닌다. 다만, 또래 신주머니를 팽개치거나 바닥에 내려놓지 않는다. 새가 나한테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린다. 새는 나더러 새를 보고 하늘과 땅을 보고 마을을 보며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스스로 바라보라고 일렀을 뿐, 누구를 미워하거나 싫어할 까닭이 없다고 얘기했다. 짓궂은 또래가 우르르 달려들어 나를 두들겨패거나 괴롭히거나 돈을 빼앗더라도 그저 웃으면서 흘려보내고, 언제나 내가 스스로 바라볼 곳을 그려서 바라볼 노릇이라고 속삭였다. 새말(새가 들려준 말) 그대로 갖은 짐(또래 신주머니)을 잔뜩 안은 채 쪼그려앉아서 길바닥 들꽃을 바라보았다. “꽃아, 내가 손으로 널 쓰다듬고 싶지만, 두 손에는 이렇게 또래들 신주머니를 가득 안았어. 그래서 난 널 눈빛으로밖에 쓰다듬을 수 없어. 이다음에는 널 꼭 손으로 쓰다듬을게.” 하고 가볍게 말하면서 아주 천천히 한 발짝씩 나아갔다.


“난 못해. 나 자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걸. 그래서 마디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아직은 막연한 미래라 생각해 봐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동네에서 소문난 텐구의 아이 7》 145쪽


  신주머니를 나한테 떠넘기고 앞서 달려가거나 달아난 또래는 “신주머니를 떠맡은 힘없는 녀석”이 한참 지나도 안 나타나니 속으로 덜컥 두려웠나 보더라. 한참 지난 어느 무렵에 또래들이 나한테 도로 우르르 달려온다 “뭐야! 이 ××! 아직도 여기 있잖아! 너 사라진 줄 알았잖아! 왜 이렇게 늦어!” 하며 다그친다. 이때 나는 그대로 웃으면서 “응, 새랑 구름이랑 꽃을 보며 가느라고. 너희 신주머니는 다 여기 있어. 난 새랑 구름이랑 꽃을 보며 천천히 걸을게. 너흰 먼저 가서 놀아.” 하고 말했다. 이런 일이 두어 벌 더 있은 뒤로 또래가 나한테 신주머니를 떠넘기는 짓을 더는 안 하더라. 나처럼 힘없는 다른 동무한테 신주머니를 떠넘기는 짓도 그쳤지. 신주머니를 떠맡은 동무가 있으면 조용히 다가가서 나누어 들었다. 가녀린 동무는 “야, 그러지 마. 내가 다 들게. 나 혼자 들 수 있어.” “아니야. 너도 배웠잖아? 종이 하나도 나누어 들면 낫다고. 우리가 같이 들면 돼.” “그러다 너도 걔들한테 맞아.” “맞으면 맞지 뭘. 때리려면 때리라고 해. 그리고 우리는 좀 천천히 걷자. 우리가 걔들 심부름꾼도 아닌데 왜 빨리 걸어? 꽃을 보며 천천히 걷자.”


  삶이란 뭘까 하고 늘 되새긴다. 어릴적에 겪은 바와 오늘날 살아가는 바를 으레 나란히 놓고서 곱씹는다. 누가 우리 두 손에 짐을 안기면 그저 빙긋빙긋 웃으면서 ‘내 걸음걸이’로 더 느긋이 걸으면 될 뿐이겠지. 누가 나를 때리면 “자, 더 때리셔요. 얼마든지 맞을게요.” 하고 활짝 웃으면 되겠지.


《삼성을 살다》(이은의, 사회평론, 2011.10.24.)

《새로운 나여, 안녕》(앨리스 워커/이옥진 옮김, 마음산책, 2005.4.25.)

#NowistheTimetoOpenYourHeart #AliceWalker

《그리게 된 이상 1》(타카하타 큐 글·카바 유지 그림/편집부 옮김, 조은세상, 2024.3.29.)

《그리게 된 이상 2》(타카하타 큐 글·카바 유지 그림/편집부 옮김, 조은세상, 2024.11.28.)

《동네에서 소문난 텐구의 아이 7》(이와모토 나오/김승현 옮김, 대원씨아이, 2011.4.15.)

#町でうわさの天狗の子 #岩本ナオ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우리집 텃노랑(토종노랑민들레)



바깥길을 나서려면 마을앞 시골버스는 '너무 늦게' 들어와서

옆마을로 논둑길을 따라 걸어가서 이른버스를 타야 한다.

그러나 기꺼이 걷는다.

동트는 시골 논자락을 바라볼 수 있으니.



그리고 즐겁게 태어난 동시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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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6 캐묻지 않기

책벌레수다 : 나물캐기 돌캐기 뒤캐기



  캐묻는 사람을 곧잘 만난다. 나이가 몇이냐고 캐묻고, 내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면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둥 “엄마나 아빠가 먼나라 사람 아니냐?”는 둥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먼나라 사람 아니냐?”는 둥 끝없이 캐묻는 사람이 곧잘 있다. 내 나이가 이녁보다 많으면 어른으로 섬길 마음 같아 보이지 않고, 내 나이가 이녁보다 적으면 깎음말을 쓰려는 티가 물씬 난다. 더구나 때가 어느 때인데 2026년에 이르도록 얼굴캐기(외모평가)를 버젓이 하는지 참으로 얄망궂다. 그러려니 하며 지나가곤 하지만, 그만큼 우리 민낯이라는 뜻이요, 틀(차별금지법)을 세운들 삶자리에서 마구잡이로 캐묻는 늪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 듯하구나 싶다.


“당신, 성실하구나?” “어?” “성실하지 않은 인간을 성실하게 대할 필요가 있나?” 《자전거집 타카하시 군 6》 113쪽


  살림을 짓는 수다를 펴면 서로 즐거울 텐데, 어쩌면 나 혼자만 ‘살림수다’가 즐거운 듯싶다. 둘레에서는 ‘살림수다’가 아닌 ‘화살질·손가락질’을 신나게 하려고 든다. ‘저놈’은 고리타분하다고 화살질이고, ‘그놈’은 건방지다며 입방아를 찧는다. 서로 잘잘못을 짚으면서 함께 배우려는 살림수다라면 화살질이나 손가락질이 아닌, 이렇게 가다듬어서 세우고 저렇게 쓰다듬어서 북돋우자는 이야기로 흐르게 마련이다. 치레글이나 꾸밈글을 쓰지 말자고, 보람(문학상·우승)을 노리지 말자고, 이름책(유명도서)이라는 허울에 휩쓸리지 말자고, 오직 우리 스스로 두고두고 되읽으면서 아이한테 물려줄 살림을 짓듯 글을 쓰고 책을 읽자는 살림수다를 함께하고 싶다. 목소리(주의주장)가 아닌 살림소리(생활지혜)를 나눌 적에 함께 울고 웃으면서 하루가 느긋하다고 느낀다.


생계 부양자로서 성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남자들은, 여자들을 비난하고 혐오하거나 여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지위를 유지하려 한다 … 급진주의 여성주의자들에게 남성은 (국가나 자본보다) 주적이었고, 젠더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모순이었다 … 찌질이들은 이제 자신들이 여성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규칙을 제정하자고 말한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7, 39, 179쪽


  누가 누구를 ‘분석’한다고 하는 말을 들을 적마다 “제발 캐지(분석) 맙시다” 하고 손사래를 친다. ‘캐내기(분석·해석)’가 아닌 ‘읽기(이해·숙독)’를 하자고 덧붙인다. 다섯 살 아이가 말하든, 열다섯 살 푸름이가 말하든, 스물다섯 살 젊은이가 말하든, 서른다섯 살이나 마흔다섯 살 아재가 말하든, 쉰다섯 살이나 예순다섯 살 젊은할배가 말하든, 일흔다섯 살이나 여든다섯 살 할매가 말하든, 그저 ‘말’이라는 소리에 얹은 ‘마음’을 가만히 읽고서, 우리 마음을 나란히 들려주는 ‘이야기’를 누리자고 보탠다. 사내(남성)를 캘 까닭도, 가시내(여성)를 캐낼 까닭도 없다. 그저 서로 생각하고 헤아리고 살피고 들여다보고 눈여겨보면 된다. 누구나 문득 눈을 뜨면서 말빛을 알아차릴 날을 지켜보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모르기에 어설프게 넘겨짚듯 캐려고 하게 마련이다. 이제부터 알아가려고 너무 힘쓰다 보니, 차근차근 읽으면서 알아가기보다는 얼른 서둘러서 바삐 캐내려고 허둥거린다고 느낀다.


그들은 민주당의 문제를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이후에야 발견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왜 이전엔 문제 제기를 할 수 없었을까? 왜 뒤늦게 혼자 깨끗한 척하고 혼자 잘난 척하려는 걸까? … 유시민을 비롯한 그 주동자들은 민주당이 아무리 혐오스러운 정당이라 하더라도 그 정당이 투표 행위를 통해 유권자들과 연계돼 있다는 건 아예 처음부터 무시하고 들어갔던 것이다. 《노무현은 배신자인가》 217, 222쪽


  겨울이 걷히고 새봄으로 접어들면 늦겨울꽃과 첫봄꽃이 흐드러진다. 그러나 꽃은 늦겨울과 첫봄에만 피지 않는다. 한봄과 늦봄에도 핀다. 첫여름과 한여름과 늦여름에도 핀다. 첫가을과 한가을과 늦가을에도 꽃이 피고, 첫겨울과 한겨울에마저 꽃이 핀다. 첫여름꽃과 늦가을꽃은 ‘늦꽃’일 수 있되, ‘그저꽃’이다. 모두 제철에 제대로 피면서 제빛을 살리는 제길과 제살림을 일으키는 제걸음이다. 서둘러 익으려는 열매란 없다. 모든 열매는 차분히 차근차근 느긋이 무르익는다. 덜익은 수박을 쪼개면 얼마나 시큼한지 아는가? 겉보기만으로는 익었는지 멀었는지 모를 수 있으나, 긴긴 해에 걸쳐서 지켜보면 겉보기로도 너끈히 익음결을 알 수 있다.


“할머니도 기뻐하고 계실 거야.” “뭐?” “모모가, 할머니의 기모노를 물려받아서.” 《사랑하라 기모노 소녀 1》 49∼50쪽


  때로는 서두를 수 있다지만, ‘모든 때’에 서두른다면 삶이란 어디 있을까? 이따금 빨리빨리 마감에 맞춰야 한다지만, ‘언제나’ 마감에 맞추어 움직인다면 살림이란 뭘까? 동무가 없는 아이는 없다. 동무가 없는 어른은 없다. 사람만 동무이지 않다. 나무도 새도 풀도 돌도 바람도 비도 눈도 해도 별도 꽃도 씨앗도 벌레도 나비도 벌도 잠자리도 동무이다. 온누리 뭇숨결은 서로 동무이다. 푸른별에서 나고자라는 모든 목숨붙이는 다 다르게 동무이다. 사람으로 친다면, 엄마아빠가 온누리 첫 동무요, 할매할배가 이다음 동무요, 집안에 있는 모든 살림이 셋째 동무이다. 집밖에서 마주하는 바람과 해와 비와 흙과 풀과 벌레와 나비와 새와 들짐승이 넷째 동무이지. ‘또래 동무’는 거의 열째나 스무째쯤 되는, 또는 쉰째나 일흔째에 닿는 동무이다. ‘사람동무’만 찾으려고 하니 외롭거나 쓸쓸하다고 잘못 여기고 만다.


“이래 봬도 할머니일 땐 꽃 만지는 걸 좋아했거든. 게다가 이건 기차놀이도 가능한 길이지!” “그러네!” “출발합니다.” “후후, 기차놀이는 처음 해봐. 화환도.” “거짓말. 연꽃이랑 민들레로도 만들 수 있는데? 어린 시절 한 번도 안 해봤누?” “으음, 난 별로 어린애다운 어린애가 아니라서.” “아니면 전생의 어린 시절이라든가.” 《할망소녀 히나타짱 10》 104쪽


  서울을 바라보면 서울이 익숙하고 반갑게 마련이다. 서울에서 살더라도 푸른별을 품으면서 파른별을 그리면, 서울이 아니어도 온누리 어느 곳이나 익숙하고 반가울 수 있다. 서울에서도 시골을 품을 수 있고, 시골에서도 서울과 만날 수 있다. 들빛을 찾아보면 들빛이 마음과 말에 녹아든다. 숲빛을 찾아나서면 숲빛이 마음이며 말뿐 아니라 몸에도 스며들 테지. 그러니까 억지로 캐내려 하지 말자. 자꾸자꾸 캐묻지 말자. 캐거나 캐내려는 마음을 다 내려놓고서, 그저 마음을 나누는 말을 도란도란 엮고 이으면서 ‘이야기’를 하자. 숲빛으로 수수하게 ‘수다’를 하자. 수런수런 수더분하게 피어나는 수다밭을 지을 수 있기에, 일렁일렁 파란바람과 파란바다를 품은 노을빛과 너울빛으로 어깨동무를 한다. 캐고 싶다면, 뒤를 캐지 말고 나물을 캐자. 밭자락에 있는 돌을 캐서 돌담을 바람막이로 쌓자. 즐거이 나물을 캤으면 나 한 줌 너 한 줌 나누면서 노래하자. 이러면 된다.


ㅍㄹㄴ


《자전거집 타카하시 군 6》(마츠무시 아라레/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25.10.31.)

#自轉車屋さんの高橋くん #松蟲あられ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권김현영 엮음, 교양인, 2017.5.26.)

《노무현은 배신자인가》(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03.12.16.)

《사랑하라 기모노 소녀 1》(야마자키 제로/이상은 옮김, 시리얼, 2020.6.25.)

#戀せよキモノ乙女 #山崎零

《할망소녀 히나타짱 10》(쿠와요시 아사/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25.11.15.)

#桑佳あさ #老女的少女ひなたちゃん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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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5 빌린책에 밑줄을?

책벌레수다 : 자랑질은 다르게 해야지



  2026해 늦겨울 어느 날, 열린책숲(공공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밑줄을 그을 뿐 아니라 늦게 돌려주어 말밥에 오른 분이 누구일까 하고 문득 찾아보았다. 그분이 내 또래인 줄 보고는 아주 창피했다. 내 또래인 사람이라면 ‘도서관 책에 밑줄긋기’라든지 ‘도서관 책에 침을 묻혀서 넘긴다’든지 ‘도서관 책 귀퉁이를 접는다’든지 했다가는, 예전(1980해무렵)에는 책지기(사서)가 달려와서 따귀를 갈기던 무렵이다. 나는 따귀를 맞은 바 없지만, 따귀를 맞은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철썩 하는 소리가 책숲을 쩌렁쩌렁 가르면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때’에는 책숲뿐 아니라 배움터에서도 따귀를 갈기는 길잡이가 넘쳤고, 그냥 마을이나 골목에서도 ‘어른’이란 이름으로 윽박지르는 덩치 큰 사람은 어린이나 푸름이를 찰싹찰싹 갈기기 일쑤였다.


누군가를 우상화시키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절대로 듣지 않는다.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 세상이 움직여야 한다. 오직 그를 향해 세계가 집중되어야 한다. 과오를 숨긴 채 엄지를 세우며 그를 추앙하고, 다른 해석을 금지시킨다 … 하고 싶은 말과 글을 마음대로 옮길 수 없으면 느끼고 싶은 감정마저 박탈당하고 만다. 반성하고 희망할 수 있는 기회마저 숨겨야 한다. 《때가 되면 이란》 100, 126쪽


 요즈음은 ‘공공도서관 대출표’에 굳이 안 적는 듯싶지만, 예전에는 ‘책에 밑줄 긋지 마시오’를 비롯해서 ‘책을 침 묻혀서 넘기지 마시오’에 ‘책을 접거나 찢지 마시오’ 같은 알림글을 빼곡하게 적었다. 나는 일부러 이런 알림글을 차근차근 읽었다. 이런 알림글은 곧잘 띄어쓰기나 맞춤길이 틀리더라. 틀린글씨를 찾아낸 뒤에는 동무하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칫! 알림글부터 틀리게 쓰면서 주먹이나 휘두르고!” 하고 툴툴댔다. 그나저나 책숲에서 이렇게 알림글을 적어 놓아도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은 으레 있게 마련이다. 요새는 ‘책숲에서 밑줄긋기’나 엉뚱짓을 하는 버릇을 나무라거나 꼬집으면 오히려 ‘꼰대 같다!’는 핀잔을 들을 테니까 나무라거나 꼬집는 사람이 확 줄기는 했다만, 그분은 부끄러운 줄 모르는구나 싶다.


나는 잔돈을 놓을 때도 큰돈을 둘 때도 항상 똑같이 고맙다고 적는데 팁에 따라 태도를 확 바꾸는 그녀가 거북했다 …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안녕이라 그랬어》 83, 141쪽


  부끄러운 줄 모르니까, 밑줄긋고 싶은 책을 사읽지 않았겠지. 밑줄을 긋고 싶은 책이라면 곁에 두고서 되읽고 거듭읽고 다시읽을 노릇이니까, 사읽기를 해야 맞다. 책 한 자락 값이 얼마나 되는가. 참으로 요즈음 책값은 매우 싸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온누리 여러 나라에 대면 책값이 대단히 싸다. 비록 책집이 많이 줄었다고 해도, 일본만큼 책집이 많지는 않다고 해도, 우리나라는 책집이 제법 많은 나라로 손꼽을 수 있다. 밑줄을 긋고 싶은 책을 만난다면 사읽으면 된다. 책숲에서 빌려읽은 책이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얼른 책숲에 돌려주고서 마을책집으로 나들이를 갈 노릇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한 자락 장만하는 김에, 새삼스레 우리 마음을 녹이는 다른 책도 몇 자락 더 장만하면 된다.


“같이 늙어서 이렇게 힘을 쓸 수 있는겨.”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 거구먼, 영감.” “하하하, 맞네, 맞어.” 《할아버지 할머니 회춘하다 1》 72쪽


  책을 왜 읽나? “나, 책 좀 읽어!” 하고 남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읽는가? 책에 왜 밑줄을 긋나? “봐, 나 책 읽는다구!” 하고 둘레에 자랑하고 싶어서 밑줄을 긋는가? 누리길(SNS·인스타) 자랑질을 하고 싶으면, 책집에 가서 샀다고 찰칵찰칵 찍고서 자랑을 하면 될 일이다. 참으로 자랑놀이를 하고 싶다면, 책집마실을 하는 발걸음을 자랑하기를 빈다. 마을책집을 찾아가는 하루를 자랑하는 이웃이 늘기를 빈다. 마을책집에서 책을 열 자락쯤 장만하면서 배가 부르다고 자랑하는 이웃이 늘기를 빈다. 요즘 같은 때에는 손소리를 뚝 끊고서 가만히 종잇결을 느끼면서 책을 읽을 뿐 아니라, 따로 빈종이에 “밑줄을 긋고 싶은 대목을 천천히 옮겨적은” 다음에, “옮겨적은 손글씨”를 찰칵찰칵 찍어서 자랑잔치를 해보기를 빈다. 그러니까 “책읽은 자랑하루”를 선보이고 싶다면, 자랑할 일이나 길이 수두룩하다. 열린책숲에서 누구나 스스럼없이 손에 쥘 책은 정갈하고 곱게 다루고서 제때에 돌려주어야 맞다.


‘어머니와 시골로 돌아왔지만 처음엔 논일이 익숙하지 않아 입에 풀칠하는 것만으로도 필사적인 형국이었다. 처음엔 진흙투성이가 되는 게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영감을 만나고서, 이 진흙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회춘하다 2》 92쪽


  노래듣기(음악감상)는 자랑이 아니다. 이른바 ‘좋아함(취미)’이기는 하다. 책읽기(독서)는 자랑이 아니다. 그저 삶을 즐기는 길이다. 스스로 즐기는 이 삶을 굳이 남한테 자랑하려고 한다면, 스스로 속없이 텅 빈 수레라고 밝히는 셈이다. “나, 이런 책 읽는다?” 하고 보여주는 매무새는 너무 철없고 어리숙하다. 멋지거나 훌륭한 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는, 겉멋이 아닌 속치레를 할 노릇이니까. 그리고, 밑줄긋기를 자랑할 짬이 있다면, 밑줄을 그을 만한 대목을 읽고서 “느낀 바”를 글로 적어서 띄워야지. 우리 마음을 울리는 글 한 자락을 일군 이웃을 헤아리면서, 나는 오늘 이 하루를 어떻게 가꾸고 돌보면서 살아가려는 길을 새롭게 배웠는가 하고 쪽글을 써서 둘레에 나누면 아름답다. 책을 읽으며 느끼고 배운 바를 여러 이웃과 동무하고 나누면서 두런두런 책수다를 펼 적에 반갑다.


‘트라우마. 그 녀석 언뜻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사실은 엄청 충격받은 거 아닐까.’ 《안녕, 아름다운 날 2》 51쪽


  비슷해 보이는 말꼴이지만 달라도 사뭇 다른 낱말인 ‘자람·자라다’하고 ‘자랑·자랑하다’이다. 책읽기와 글쓰기란, 스스로 자라려고 몸소 하면서 차분히 가다듬고 갈고닦는 살림길이다. 자랑하려고 읽거나 쓴다면 부질없을 뿐 아니라 창피하다. 자라려고 읽고 쓰는 모든 사람은 아름답다. 자랑하려고 읽고 쓰는 모든 사람은 불쌍하다. 어린이도 자라고 어른도 자란다. 푸름이도 자라도 할매할배도 자란다. 몸뚱이만 키우려 하지 말고, 나이만 머금으려 하지 말고, 마음과 숨결과 넋과 꿈과 사랑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길을 헤아리면서 읽고 쓸 노릇이라고 본다. 몸뚱이만 젊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이기에 겉치레에 쉽게 휩쓸리더라. 겉몸과 겉얼굴과 겉이름과 겉모습에 얽매이는 탓에 자꾸자꾸 자랑질이라는 늪에 빠지더라. ‘자랑늪’이 아닌 ‘자람숲’에서 만날 수 있기를 빈다. ‘자랑살이’는 내려놓고서 ‘자람씨앗’으로 살림을 짓기를 빈다.


《때가 되면 이란》(정영효, 난다, 2017.5.28.)

《안녕이라 그랬어》(김애란, 문학동네, 2025.6.20.)

《할아버지 할머니 회춘하다 1》(아라이도 카기리/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2.4.30.)

《할아버지 할머니 회춘하다 2》(아라이도 카기리/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2.5.31.)

#じいさんばあさん若返る #新挑限

《안녕, 아름다운 날 2》(아카네다 유키/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2018.8.15.)

#さらば佳き日 #?田千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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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메네이 사망 소식에 이란인들, 춤추고 동상 철거까지…트럼프 "나라 되찾을 기회"

https://www.youtube.com/watch?v=s4AEBUmgy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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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4 들풀 들불 들꽃

책벌레수다 : 고꾸라진 우두머리



  나는 1975해에 태어났으되, 1979년까지 이 나라가 어떤 꼴이었는지 알지 못 한다. 1975∼79해 즈음에는 마냥 뛰노는 아이였기도 하고, 고삭부리라서 늘 끙끙 앓아누웠고, 앓아누울 적이건 골목이나 집에서건 도깨비를 밤낮으로 맨눈으로 보며 시달렸다. 1980해에 전두환이 총칼로 벼슬힘을 거머쥐고서 윽박지르는 줄 몰랐다. 여섯살배기가 뭘 알겠나. 열 살이던 1984해 즈음에서야 ‘어린배움터 곳곳에 붙은 얼굴그림’이 ‘전두환 + 교장’인 줄 비로소 알아차렸다. 어린배움터에서는 툭하면 길거리에 한나래(태극기)를 들고 나가서 쉬잖고 흔들라고 시켰다. 노태우가 고꾸라질 무렵까지 어린배움터뿐 아니라 푸른배움터도 ‘새마을청소·근로동원’을 시켰다. 아무튼 나는 전두환이 끌려내려올 적과 박정희가 피를 뿜으며 숨질 적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턱이 없었는데, 집이나 마을에서 어떤 어른도 ‘나라 돌아가는 이야기’를 안 들려주었다. 보임틀에서 뭐가 나오면 “애들은 보지 마라.” 하는 꾸지람만 들었다. 배움터에서는 길잡이가 늘 입꾹닫이면서 몽둥이만 흔들었다.


오늘날 거대 군수산업체들은 전쟁 무기의 생산과 판매, 유통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이들은 무기를 더 많이 만들어서, 더 많이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게 목적입니다. 《평화는 처음이라》 94쪽


  2026해 첫봄으로 접어들 무렵, 이란 우두머리가 펑펑 터져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제오늘 사이에 안 죽었어도 곧 죽을 만하지 싶다. 미국·이스라엘이 이란 곳곳을 펑펑 터뜨린 일이란, 김재규가 박정희와 차지철을 꽝꽝 쏘아서 골로 보낸 일하고 나란하다고 느낀다. ‘옳고그름’이 아니라 “온나라를 주먹힘으로 윽박지르고 들꽃인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인 군사독재 우두머리”가 마침내 사라진 일을 바라보아야지 싶다. ‘김재규·트럼프’는 꽃님(영웅)이 아니다만, 우리가 새길로 돌아설 수 있는 갈림길에 돌 하나를 놓았다고 여겨야지 싶다. 우리나라 광주에서 숱한 사람이 애꿎게 목숨을 잃어야 했고, 이란은 테헤란뿐 아니라 그 나라 곳곳에서 숱한 사람이 서글프게 목숨을 잃어야 했다. 우리나라 광주에서 몇 사람이나 죽어야 했는지 아직도 낱낱이 모르듯, 이란에서 그야말로 얼마나 숱하게 끔찍하게 죽어야 했는지 제대로 모른다.


“그럼 특훈. 지금부터 특훈할 거야?” “엇? 오늘은 이만 집에 가서 술 마시고 자고 싶은데.” “특훈.” “야, 이거 놔.” 《쓰레기 용사 4》 151쪽


  여러모로 보면, 우리나라도 베네수엘라도 북녘도 이란도 쿠바도 ‘가난해야’ 할 까닭이 터럭만큼도 없다. 저마다 다르게 넉넉하고 가멸찬 나라이다. 그렇지만 힘으로 억누르고 쥐어짜는 우두머리가 ‘막짓(군사독재)’을 벌인다. 나라살림을 몇몇이 돌라먹거나 빼돌리거나 움켜쥔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읽고 쓰는 몫(권리)’이 어느 만큼 있지만, 베네수엘라·북녘·이란·쿠바는 ‘읽고 쓰는 몫(언론자유·언론권리)’이 깡그리 없다. 이들 네 나라는 나라지기와 벼슬아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 누리길(인터넷)을 통째로 끊어버리기까지 했다. 이런 얼거리는 중국도 비슷하다. 중국에는 ‘읽쓰몫’이 없다. 더 돌아볼 노릇이다. ‘북한인권’이라는 낱말을 쓰면 마치 ‘조중동 끄나풀’로 여기는 분이 꽤 있더라. 남녘과 한겨레인 북녘은 ‘사람길(인권)’이건 아름길(민주)이건 아예 없다. 우리는 ‘북한인권’이라는 이름을 왜 못 써야 할는지 곱씹을 노릇이다. 왜 “한겨레 두나라가 그토록 싸움붙이(전쟁무기)에 목매달면서 나라살림은 뒷전일 뿐 아니라, 아름길을 짓밟는”지 낱낱이 짚고 따지고 밝히고 말하면서, 이 모든 수렁을 걷어내는 길을 열어야 하지 않나? 우리나라도 북녘도 베네수엘라도 이란도 쿠바도 ‘사회주의·자본주의·공산주의·민주주의’ 같은 겉이름이 아닌, “서로 돌보고 아끼며 어깨동무로 즐겁게 살림하는 아름길”을 걸어가는 속이름을 바라볼 노릇이지 싶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이러한 나무들을 친구처럼 보게 되었다. 나무가 내 길을 따라 자라나고, 내가 나무에 다가서고, 그 바늘잎들을 어루만지며 미소짓는다.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 68쪽


  진도 앞바다와 용산 가겟길에서 숱한 사람이 애꿎게 죽었는데, 무안나루에서도 난데없이 한꺼번에 서글프게 죽었다. 그런데 우리는 ‘무안참사’라는 이름조차 못 쓰거나 안 쓴다. “무안나루를 하루빨리 다시 열기”만 하면 될까? 아니다. ‘무안참사’가 왜 터졌는지 낱낱이 파헤쳐서 이런 끔찍한 죽음늪이 더는 없도록 온나라를 아름답게 돌보는 길을 펴야 한다. ‘무안참사’에 눈을 감거나 입을 닫을수록 이 나라는 아름길하고 등지고야 만다. 두레(사회주의·공산주의)가 아닌 사슬(군사독재)인 북녘과 베네수엘라와 쿠바에 햇볕과 별빛이 스며들어서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을 틔우지 않을수록 이 나라도 똑같이 ‘두레 아닌 사슬’에 갇힌다. 들풀을 짓밟고 들꽃을 사납게 꺾어버리는 얼뜬 우두머리가 판치는 이란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 나라도 나란히 얼뜬 굴레로 치달으리라 느낀다.


특별법을 만들고 다시 자식 잃은 부모가 되어 기다리면 될 거라 기대했다. 모두가 슬퍼하고 분노한 참사를 다시는 겪지 않아도 될 안전한 사회가 될 거라 기대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340쪽


  나는 들풀이다. 너는 들꽃이다. 우리는 들빛이다. 조촐히 보금자리를 일구는 수수한 모든 사람은 들동무이다. 나라지기와 벼슬아치는 짐짓 윗자리로 보이지만, 그들도 조그마한 들풀이며 들꽃이다. 다만 그들은 스스로 들풀이며 들꽃인 줄 잊어버린 나머지 돈바라기·이름바라기·힘바라기로 기울고 말았을 뿐이다. 너하고 나도 스스로 들빛인 줄 잊으면 꼭두각시나 노리개가 되고 만다. 한 송이 꽃만 곱지 않다. 모든 송이 모든 꽃이 다 다르게 곱다.


“그럼, 일단 집으로 들어갈까? 쌓인 얘기도 많을 테니.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각자 있었던 일을 얘기하지 않을래? 여기라면 인간은 들어오지 못할 테고, 이 공간 밖에는 비가 오고 있으니까.” 《은의 밀밭 3》 187쪽


  누구나 날개를 되찾기를 빈다. 누구나 날개를 펴기를 빈다. 돈꾼·이름꾼·힘꾼·벼슬꾼이 저들끼리 담벼락을 쌓으면서 히히덕거리던 모든 막짓과 사납짓을 걷어내기를 빈다. 다 다른 모든 들풀이 온들과 온숲과 온메와 온마을과 온집에서 스스럼없이 춤추고 노래하는 푸른길을 바란다. 다 다른 모든 살림터마다 싸움붙이(전쟁무기)를 모두 걷어내고서 오롯이 살림살이에 온힘과 온마음과 온땀을 들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곁에 둘 ‘온책’이라면, “정의로운 주장”이 아닌 “함께 살림짓는 사랑으로 가꾸는 보금자리 이야기”를 담아야지 싶다. “아이어른이 함께 슬기롭고 눈빛을 밝히면서 돌보고 일구는 즐거운 우리집 이야기”를 글로 쓰고 책으로 읽으면서 푸른별이 푸르게 반짝이는 오늘 하루를 열어야지 싶다.


《평화는 처음이라》(이용석, 빨간소금, 2021.4.2.)

《쓰레기 용사 4》(로켓상회 글·나카시마723 그림/ 옮김, 대원씨아이. 2026.1.26.)

#勇者のクズ #ロケット商會 #ナカシマ723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게리 폴 나브한·스티븐 트림블/김선영 옮김, 그물코, 2003.3.31.첫/2003.12.30.2벌)

#TheGeographyofChildhood #GaryPaulNabhan #StephenTrimble

《금요일엔 돌아오렴》(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창비, 2015.1.16.첫/2015.2.12.5벌)

《은의 밀밭 3》(이나 츠자와/나민형 옮김, 학산문화사, 2025.5.25.)

#銀の麥畑 #津澤イナ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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