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님의 "삶으로‘써‘의 읽기와 쓰기"


저는 ‘맞다 틀리다‘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한국말인가 아닌가로 바라볼 뿐입니다.

한국말을 쓰는 법을 살피면 ‘로써‘는 ‘로‘를 힘주어 가리키는 말이고, ˝밥벌이로 글쓰기˝는 얼마든지 맞는 말씨이니 ˝밥벌이로써 글쓰기˝를 힘줌말로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써 + 의‘는 앞 댓글에서 틀림없이 ˝일본 말씨˝라고 밝혔습니다. 일본 말씨를 쓰고 싶다면 쓸밖에 없지만, 일제강점기 찌꺼기이자 한국 말씨가 아닌 줄 깨닫는다면 ‘로써의‘를 아예 안 쓰면 되겠지요.

그리고 ‘로서‘는 사람한테 자주 쓰는 토씨가 아니라 ˝사람한테만(또는 ‘곰으로서 하는 말‘이나 ‘나무로서 맞이하는 봄‘처럼 쓸 수 있지요)˝ 쓰는 토씨입니다.

˝소설가가 직업으로써 어때˝나 ˝소설가가 직업으로 어때˝라고 써야 올바릅니다. ‘직업‘이라든지 ‘취미‘ 같은 대상이나 행위에는 ‘로서‘를 쓸 수 없습니다. 이런 자리에 쓰는 토씨가 ‘로/로써‘입니다. ˝소설가가 직업으로서 어때˝는 안 맞습니다.

‘로/로써‘하고 ‘로서‘를 가르기는 매우 쉬운 말씨라고 여겨서 따로 이 이야기를 글로
쓴 적은 없는데, 글을 쓰는 분들이 생각보다 이를 잘 모르거나 잘못 쓰는 일이 잦은 듯하네요. 앞으로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둘째 권을 쓰려고 보기를 모으는데, 다음 사전에서 이 대목을 찬찬히 짚고 풀이하는 글을 써야겠군요.

간추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로/-로써 : 사물이나 행위에 쓴다. 이른바 추상명사에 쓴다. (직업으로 교사, 직업으로써 교사)
-로서 : 사람한테만 쓴다. 이른바 구체명사에 쓴다. (또는 짐승이나 푸나무한테 쓰고, 사물한테 쓸 적에는 문학에서 빗댐말로 쓴다. ˝내가 곰으로서 토끼한테 말하지˝나 ˝내가 연필로서 사람한테 이야기를 하자면˝처럼)


+ ˝사람으로 하는 일˝이라 쓰면 안 맞습니다. ˝사람으로서 하는 일˝이라 써야 맞습니다.



(여기까지 썼는데 잘 모르시겠다면.... ^^;;; 하는 수 없겠지요? 댓글은 이쯤으로 더 쓰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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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님의 "삶으로‘써‘의 읽기와 쓰기"

˝밥벌이로서 글쓰기˝는 틀립니다. ‘로서‘는 자격을 나타내더라도 사람한테만 씁니다. 사람 아닌 사물이나 행동을 나타낸다면 ˝밥벌이로써 글쓰기˝라 해야 맞습니다.



다른 책에 붙은 이름을 놓고 본다면 ˝직업으로써 글쓰기˝처럼 적어야 맞습니다. 토씨 붙이기가 헷갈린다면 ˝직업인 글쓰기˝나 ˝직업으로 하는 글쓰기˝나 ˝직업으로 글쓰기˝처럼 써 볼 수 있습니다.

‘로써‘는 ‘로‘를 힘주어 쓰는 말입니다. ˝올해로 10년˝을 ˝올해로써 10년˝이라든지, ˝말로 천 냥 빚 갚기˝를 ˝말로써 천 냥 빚 갚기˝라든지, ˝쌀로 떡을 빚는다˝를 ˝쌀로써 떡을 빚는다˝처럼 붙이는 토씨입니다.

그리고 ‘로서‘이든 ‘로써‘이든 이 토씨 다음에 ‘-의‘를 붙일 적에는 일본 말씨이고요. 살며시 털어낼 수 있기를 빕니다.

덧붙여, 이 책에 붙는 이름이라면 다음처럼 써 볼 수 있겠지요.

ㄱ. 밥벌이로 하는 글쓰기
ㄴ. 밥벌이인 글쓰기
ㄷ. 밥벌이가 되는 글쓰기
ㄹ. 밥벌이 글쓰기
ㅁ. 밥벌이로 글쓰기
ㅂ. 밥을 벌려는 글쓰기
ㅅ. 밥을 버는 글쓰기
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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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기억의집님의 "우리 모두는 평등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



서양 여성운동 첫무렵에 참정권 운동도 틀림없이 있었지만, 두 가지 여성운동도 더 있었어요. 하나는 `생존권(출산권)` 운동을 했던 마거릿 생거(마거릿 생어)입니다. 다른 하나는 `노동권` 운동을 했던 마더 존스예요. 참정권 운동을 한 여성은 거의 중산층 이상이 대상이었다면, 생존권 운동하고 노동권 운동을 한 여성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소외되고 아픈 여성`이 중심이었어요.

한국에서도 주류운동은 언제나 정치참여 쪽으로 기울어지기에 여성운동을 연구하는 분들도 거의 다 참정권에만 눈길을 맞추더군요.

마거릿 생거라는 분이 했던 생존권(출산권, 산아제한) 운동은 `남성이 요구하는 잠자리를 여성이 거부할 권리`하고 `남성이 잠자리를 요구할 적에 남성이 피임을 하도록 요구하는 권리`에다가 `남성은 욕구해소를 넘어서 육아와 가사를 여성한테서 배워서 함께 할 것을 바라는`, 여기에 `남성과 여성 모두 청소년기에 성교육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이 네 가지가 핵심이라고 할 만합니다.

아무튼, 여성의 날이 달력에 적힌 딱 하루로 그치지 말고, 언제나 서로 평등하고 평화로운 살림이 되기를 비는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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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qualia님의 "숲노래(함께살기) 님 비판글에 답합니다."

서재이웃 ㄴ님 글에 qualia 님이 재미나고 좋은 댓글을 남기셨기에 어떤 분인가 궁금해서 서재에 들어왔다가 이 글을 보았습니다. (qualia 님이 제 어떤 글에 반론글을 쓰셨다는 이야기는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여태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말하기나 글쓰기는 누구나 `자유`이기 때문에, 말이나 글에 영어를 섞든 일본말을 섞든 한자말을 섞든 대수로울 일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자유이니까요.

그러나, `한국말`이라고 했을 때에는 `한국말로 빛나는 말`일 때에 비로소 한국말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적에는, 말 그대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일 뿐이지, 이렇게 하는 말이 `제대로 쓰는 한국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제대로 쓰는 한국말이든 아니든 `의사소통은 다 되겠`지요.

저는 한국사람이 서로 `의사소통`만 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한국말 새롭게 바라보기`를 늘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이오덕 선생님처럼 ˝우리 글 바로쓰기˝를 생각하다가, 이러한 `바로쓰기`는 한계가 아주 많기에, ˝우리 말 살려쓰기˝를 생각했는데, `살려쓰기`로도 한계가 많아서 오랫동안 길찾기를 하다가, 시골에서 두 아이와 삶을 지으면서, 요즈음 `숲말`이라고 하는 `밑말(바탕이 되는 말)`을 처음부터 새롭게 배웁니다.

제가 하는 일을 `동의하든 안 동의하든` 이런 동의 문제는 대수로울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말을 한국에서 살며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내가 나타내려고 하는 내 마음`을 `내가 스스로 생각한 슬기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둘레에서 한국말을 쓰는 분들이, 제가 하는 일을 구경하거나 들여다보면서 `좋은 보기`를 얻어서 그분들 스스로 `새로운 한국말을 찾아서 쓰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자면, 제가 `다듬어` 놓은 틀은 그저 `몇 가지 자잘한 보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글쓰기를 하며 늘 ˝말줄임표˝를 일부러 붙여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새로운 말을 지어 보시라고 했는데, 제 글에서 말줄임표를 눈여겨보시는 분이 아주 드물더군요 ^^;;;;; 그래서 이제는 말줄임표를 안 씁니다.

아무튼, 여러모로 즐겁게 이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문법이나 논리나 논증이나 이론은 하나도 안 씁니다. 다만, 예전에는 이런 것을 좀 쓰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것을 자꾸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해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쓴 뒤로는, 모든 논리와 이론을 내려놓고 ˝어린이와 시골 할머니 눈높이와 삶˝에 맞추어서 말과 삶과 사랑을 바라보면서 한국말 이야기를 쓰자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새는 `예전에 쓴 수많은 우리 말 바로쓰기 글`을 하나하나 틈틈이 꺼내어 모조리 새로 쓰는 일을 하는데 ^^;;; 그렇습니다.

아무쪼록, 언제나 재미나며 즐겁게 qualia 님 이야기꽃을 아름답게 피우시기를 바라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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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서재지기님의 "[공지] 서재 지수 변경 안내 "



그렇군요.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일을
서재를 쓰는 사람한테
미리 한 마디도 알리지 않고
어떠한 논의나 토론이나 이야기도 없이
`일방 결정`에 `일방 통보`만 하는군요.

이것은 완전히 독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용자도 소비자도 서재 사람들도
모두 무시하는 짓이라고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린 것은 죄송해 할 줄 알면서,
서재를 쓰는 사람들 마음이 어떠한가는 살필 줄 모르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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