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tella.K님의 "[코멘트]나는 왜 책을 읽고 (알라딘에서) 글을 쓰는가"

저로서는 적립금 받는 일조차 참 드문데... 받는다 하더라도, 제가 책값에 쓰는 돈으로 치면 1/30이나 1/50도 안 되기 때문에... @.@ 그야말로 아무 느낌이 없어요. 제 마음에 드는 제 좋은 꿈을 담는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 반갑지 않거든요. 그런데 하나, 가끔 무슨무슨 당선작으로 제 글이 뽑힐 때가 있는데, 뽑힌 글 가운데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마음으로 쓴 글'은 몇 안 돼요. -_-;;; 그렇다고 어느 글은 더 마음을 담고, 어느 글은 덜 마음을 담고, 하는 일은 없어요. '당선작'을 놓고, '당선 안 된 다른 내 글'을 보았을 때, '어, 왜 이 글을 뽑아 주지? 뽑아 주려면 다른 글을 뽑아 주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늘 들더군요. .. 아무튼, 논쟁이든 투쟁이든 무슨무슨 말다툼이건 이야기꽃이든... 서로 가장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울 대목을 즐겁게 짚으면서 좋은 생각을 나눌 수 있기를 빌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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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2-04-23 22:07   좋아요 0 | URL
예전에 비하면 요즘은 적립급 받기 힘들죠 일주일 내내 천원도 안되는 요즘 그래도 가끔 책을 읽다보면 꼭 소개하고 싶은 구절이나 이야기하고 싶은 책들은 한번쯤 끄적이게 되는
내 시간 써가며 쓰는데 그래도 이런 책은 한번쯤 이야기하고 싶기도 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들 요즘 읽고 있는 방과후 미스테리,마토바 히토미 댄스 때때로 탐정 같은 미스테리 소설은 읽고나서 리뷰를 남기고 싶은데 요즘통 못남기고 있네요 돈을 뒤로 하고 어차피 얼마되지도 않는데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글을 쓰다는 생각이드네요

숲노래 2012-04-23 23:22   좋아요 0 | URL
스스로 좋아하니까 쓸 뿐이겠지요. 모두들.

그래서, 어쩌면, 남을 비판하거나 비난한다며,
또 논쟁한다며 쓰는 글 또한 모두
스스로 좋아하니까 쓰는 셈 아닌가 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글을 쓰겠지요 !.!

카스피 2012-04-23 23:22   좋아요 0 | URL
ㅎㅎ 워낙 리뷰를 잘쓰시는 분들이 많으시니 전 그냥 패쑤하지용~~~
 
 전출처 : 한사람님의 "...알라딘 서재에서 논쟁의 진짜 이유..."

그냥 잠을 잔대서 잘못을 줄이지는 않아요. 곰곰이 생각하며 좋은 꿈을 품어야 비로소 내 삶이 좋아지면서 잘못이 차츰 사라져요. 얼키고 설킨 마음인 채 잠들면 되레 더 뒤숭숭해지고 말아요. .. 제가 살아가며 느끼기로는, 진보나 보수 논쟁이란 참 덧없을 뿐 아니라 쓸데없구나 싶어요. 논에 자라는 벼나, 벼를 심기 앞서 자라는 숱한 풀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거든요. 들꽃은 진보한테만 향긋한 내음을 퍼뜨리지 않아요. 나무열매는 보수한테만 맛나지 않아요. 무지개는 진보만 알아보지 않아요. 흰구름 파란하늘은 보수만 올려다보지 않아요. 진보도 보수도 다 논자락에서 거둔 나락을 밥으로 지어 먹어요. 예부터 어머님들은 나그네가 진보인가 보수인가 따위를 가리지 않고 누구한테나 밥 한 그릇 나누어 주었어요. 왜냐하면 이 편 저 편에 앞서 '모두 사랑스러운 목숨을 건사하는 사람'이니까요. 왼날개와 오른날개가 고르게 있어야 날갯짓하는 새는 아니에요. 그저 '날개'가 있을 뿐이고, 몸이 홀가분하게 가벼울 때에 바람처럼 날아다니는 새예요. 글이란, 누구나 이녁 삶을 담는 만큼, 비판을 하든 비난을 칭찬을 하든 펌질을 하든, 모두 이녁이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낼 뿐이에요. 그러니까, 논쟁이란 하나도 없는 셈이에요. 드러나는 말과 글이 모두 그 사람 생각이자 마음이고 삶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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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yanBen님의 "어떤 뿌리가 깊은가"

 

'한글'과 '우리말'부터 올바르게 생각하지 못하시기 때문에, 이러한 책이 있어도, 느낌글을 쓰신 분께서는 애써 사서 읽지 못하기도 할 테지만, 애써 읽어도 받아들일 알맹이가 없구나 싶어요.

 

님이 쓰신 이 글은 온통 '한글'입니다. '우리말(한국말)'이란 껍데기만 한글인 글이 아니라, 말투와 낱말과 말법과 말씨 모두 '제대로 다스린 말'입니다.

 

영국사람과 미국사람이 쓰는 말이기에 '영어'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모르는 채 영어를 쓰는 일을 열 몇 해에 걸쳐서 쓴 글을 갈무리하면서 틀을 하나로 세웠을 뿐입니다. 아무리 신간평가단 마감에 맞추어 느낌글을 쓴다 하더라도, 글쓴이가 이 책을 어떻게 썼는가 하는 대목을 '일러두기'나 '머리말' 또는 '알라딘서재' 같은 곳에서라도 살펴보고 나서 쓸 수 있어야, 신간평가를 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님 스스로 '한글 사용'을 하는 글을 쓰면서, 곧 '우리 말글을 제대로 쓰는 글'이 아닌 '한글을 쓴' 글이면서 '한글 사용 확대' 같은 말을 마지막에 붙이는 일도 슬프구나 싶어요.

 

너무 마땅한 노릇이지만, '개탄'을 한들 스스로 삶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은 한국말을 조금이나마 제대로 쓰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말로 끌어안는 영어"를 생각하며 글을 써서 책으로 묶어요. 이 모두를 다 '똑같이 받아들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이 가운데 하나라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마음을 살찌우고, 삶을 착하게 다스리는 길을 찾으'라는 뜻이에요.

 

부디, 님이 가진 책을 알라딘중고샵에 내놓아, 다른 분이 제대로 즐겨읽도록 마음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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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4-01 01:08   좋아요 0 | URL
신간평가단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제대로 안 읽으면서
아무렇게나 느낌글을
숙제 내듯 마감하는 일이라면
글을 쓰고 책을 낸 사람더러
어쩌라는 소리인가 모르겠다.

스스로 좋아하지 않거나
돈 주고 사서 안 읽는다는
'한국말 배우는 책' 이야기라면,
알라딘 회사에 책을 반납하고
느낌글도 안 써야 올바를 텐데.

왜 공짜로 책을 받고
왜 스스로 바보스럽게 글을 쓸까.

..

'별 다섯'을 주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닌 줄,
내 서재 이웃은 잘 헤아려 주리라 믿는다.
'별 하나'를 주든 '별 빵'을 주든,
스스로 삶을 볼 줄 모르면
백만 권에 이르는 책을 읽는들
무슨 쓸모가 있을까.
 
 전출처 : 가연님의 "럭키짱에서 삶글에 이르기까지."

 어느 쪽으로 적든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에는 '글쓴이'와 '말하는이' 마음에 따라 달라요. 어느 마음으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느냐에 따라, 아주 쉬운 말글을 쓰더라도 '문자자랑질'이 돼요. 이를테면 '톺아보다'라는 낱말도 문자자랑질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낱말을 처음 듣던 예전에는 문자자랑질이라고 느껴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낱말을 지식인 아닌 여느 흙일꾼 할아버지가 입으로 읊는 말을 한 번 들은 다음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꼭 흙일꾼 할아버지가 이 낱말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 자리 어느 흐름에 맞추어 글을 쓰느냐에 따라 느낌과 결은 사뭇 달라져요. 문학을 이야기하는 글을 쓸 때에는 '삶글'이라는 낱말을 아직 사람들 앞에서 쓰기 힘들어요. 이때에는 그냥 수필과 산문이라고 처음 이야기하면서, 나중에 사이사이 '삶글'이라는 낱말을 곁들일 수 있어요.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시나브로 '수필 = 산문 = 삶글'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런데, 요사이에는 '에세이'를 넘어 '르포'라는 말까지 들어와요. 수필이든 산문이든 자유롭게 쓰는 글이지만, 자꾸 영어를 끼워맞추면서 글 테두리를 넓힌다고 해요.

 

 이런 흐름에서는 한국말로 또 새로운 말을 빚을 수 있어야겠지요. 제가 이 책(뿌리깊은 글쓰기)에서 '글쓴이가 밝힌 풀이글이나 이야기'가 '대안'이나 '정답'이 될 수 없다고 되풀이해서 말하는 까닭은, 이 책을 교과서로 삼지 말고, 스스로 말밭을 일구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좋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삶이 달라, 스스로 좋아하며 받아들이는 말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다 다른 결을 스스로 살피면서 날마다 내 넋을 북돋우면 스스로 어느 자리에 어떤 말을 넣을 때에 서로 즐거운가를 깨달을 수 있어요. 이 낱말은 써야 하고 저 낱말은 안 써야 한다는 틀이란 없습니다. 이런 틀이 있다면 굴레가 될 뿐이에요.

 

 님이 쓰신 이 글에서 한 가지를 짚어 보면, "-하고 계시다"라고 적은 대목이 있는데, "-하고 있다" 아닌 '계시다'를 넣는다고 높임말이 되지 않아요. 틀린 말법이랍니다. 더구나, "-하고 있다" 또한 영어 '-ing', 이른바 현재진행형을 일본사람이 '-중(中)'으로 번역하면서, 이 말투가 한국말에 "-하고 있다"로 탈바꿈했어요. 그러니까, '계시다'를 '있다'로 고쳐야 알맞지만, 더 밑을 살피면 '있다'를 넣은 "-하고 있다"부터 잘못 쓴 말이에요. "적혀 있지요"부터 틀리게 쓴 글입니다. "적혔지요"라고만 적어야 올발라요.

 

 그러나, 올바르게 쓰든 잘못 쓰든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어떻게 쓰든 '내 마음을 얼마나 잘 드러내거나 나누려 하느냐'가 대수롭습니다. 대수로운 대목을 살펴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생각을 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비로소 말을 새로 익히며 글로 사랑꽃을 피우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쓴 책에 실린 이야기를 '동의하든 동의 안 하든' 아무것도 대단하지 않아요. 옳은 대목이 없고 그른 대목이 없어요. 동의하느냐 동의 안 하느냐로, 책을 따져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해요. 스스로 아름답게 돌볼 내 말삶을 깨달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되도록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으니, 이 대목을 짚지 못하면, 이 책을 읽었어도 안 읽은 셈이라고 할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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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연님의 "럭키짱에서 삶글에 이르기까지."

국어사전에서 '톺아보다'라는 낱말을 찾아보셔요. 국어사전을 찾아보지 않고 '오자'라고 말한다면, 어쩐지 너무 싱겁네요.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거나 살피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일은 어려울는지 모르지만, 마음을 기울여 생각한다면, 말에 담을 넋을 살필 수 있어요.

 

 님이 쓰신 글에서 한 가지만 짚어 본다면, '마찬가지'라는 낱말은 외따로 쓸 수 없어요. '이와 마찬가지'처럼 쓰든지 '그와 마찬가지'처럼 쓰거나 해야 올발라요. 그런데, 이런 말씀씀이를 둘레에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둘레 사람들도 제대로 모르니까, 모두들 잘못 말하거나 글쓰는 줄 모르면서 얄궂거나 뒤죽박죽이 되고 만 말로 넋을 담아내요.

 

 말과 글로 사랑을 빚지 못하기 때문에, 말과 글로 사랑을 빚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을 꿉니다. (제 생각으로는, 에세이를 굳이 삶글로 바꾸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냥 수필이라 하면 돼요. 삶글로 쓰고 싶으면 삶글이라 하면 되지요. 시를 포엠이라 할 까닭이나 소설을 노블이라 할 까닭이 없다고 여기면, 수필은 그냥 수필이라 하고, 때로는 산문이라 하면 넉넉하니까, 에세이를 이야기할 까닭이 없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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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3-25 06:53   좋아요 0 | URL
왜 '톺아보다'가 '잘못 적은 글'이라고 여길까? 왜 '돌아보다'를 잘못 적었다고 여길까?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처음 듣거나 보는 낯선 낱말'이 있다면, 나 스스로 아직 배우지 못하거나 살피지 못한 낱말이구나 하고 여기면서, 국어사전 한 번 들추어 새로 배우면 즐거울 텐데, 왜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을 넓고 깊으며 새롭게 배우려 하지 못할까.

'톺아보다'가 '잘못 적은 글'이 아니라 '아직 스스로 깨닫지 못한 낱말'이라고 여길 수 있는 가슴이라면, 책 하나를 읽을 때에도 더 새롭게 거듭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