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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8일에
부산에서 편 이야기꽃 자리에서
여러 이웃님한테 나누어 준
밑글(원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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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숲노래 말넋 2024.7.19.
2024.7.17. 말에 담는 마음을 읽는 길
― 부산청년들, 2024 청년도전 지원사업 위닛캠퍼스 “우리말과 글” 이야기
ㄱ
저는 낱말책을 짓습니다. ‘낱말책’이란, 낱말을 묶은 꾸러미라는 뜻입니다. 낱말을 여미는 꾸러미를 일본말로는 ‘사전’이나 ‘국어사전’이라 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그냥그냥 ‘사전·국어사전·백과사전’ 같은 일본 한자말을 씁니다만, 예전에 ‘국민학교’라는 일제강점기 이름을 어렵사리 ‘초등학교’로 바꾸었듯, ‘국어·국어사전·사전’ 같은 부스러기 일본말도 이제는 우리말로 풀거나 옮기거나 새롭게 여밀 노릇이라고 봅니다.
‘국민’이나 ‘국어’는 일본말이되, 그냥 일본말이 아닌, 총칼로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던 ‘군국주의 일본’이 억지로 만든 말입니다. 일본은 워낙 ‘일본어’라 했고, 우리는 ‘조선어’라 했고, 중국은 ‘중국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1800년대가 저물 즈음 “일본 우두머리를 섬기면서 아시아를 크게 하나로 묶어야 한다”고 외치면서 총칼을 부추겼어요. 이때에 일본은 ‘일본어·일본문학’이라는 이름을 ‘국어·국문학’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러면서 ‘국어·국문학’이란 이름을 우리나라와 중국과 대만 모두 쓰라고 윽박질렀어요.
대만은 1980년 즈음부터 ‘국어’라는 일제강점기 부스러기를 털었습니다. 일본은 1970년 즈음에 ‘국어’라는 제국주의 부스러기를 털었어요. 우리나라는 2024년에 이르러도, 오히려 나라에서는 ‘국립국어원’이란 이름을 버젓이 쓸 뿐 아니라, ‘국어·영어·수학’처럼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ㄴ
첫머리부터 좀 어렵거나 너무 낯선 이야기였을까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하는 일을 자기소개서나 직업소개서에는 ‘사전편찬자’로 적습니다. 이런 이름을 적으면 우리나라에 사전편찬자가 몇이나 있기에 적느냐고, 그냥 ‘작가’로 뭉뚱그리라는 핀잔을 곧잘 들어요. 이른바 ‘회사원’이나 ‘공무원’처럼 뭉뚱그리라는 뜻일 테지요.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인 ‘작가’로 뭉뚱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을까요? 뭐, 공무원이라면 대통령도 공무원이고 시장도 공무원이니, 그분들도 다 ‘공무원’이라고 적을는지 모르겠어요. 은행원이건 우체국 일꾼이건 그냥 ‘회사원’일 수 있어요.
더 헤아려 보니, 자동차공장에서 일하건 자전거공장에서 일하건 다들 ‘노동자’조차 아닌 ‘회사원’으로 적는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일(직업군)에는 아직 ‘노동자’란 칸이 없지 않나요?
저는 사전편찬자라는 일을 하기에 그저 이렇게 적을 뿐인데 ‘작가’라는 이름으로 퉁치고 싶지 않아서, 이따금 ‘살림꾼’이라고 적기도 합니다. ‘살림꾼’이란, ‘가정주부’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일본 한자말 ‘가정주부’는 ‘아줌마’만 가리켜요. 그래서 우리말로 ‘살림꾼’으로 적습니다. 집안일을 하는 아저씨는 아줌마가 아니니까 ‘주부’라 할 수 없거든요.
ㄷ
어떤 일을 하는지 적는 자리에서 좀 까칠하지 않느냐고 여길 만한데,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구태여 뭉뚱그리거나 퉁쳐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일을 쉬면 ‘쉽니다’라 적으면 되어요. 일을 찾아나서면 ‘일을 찾습니다’라 적으면 되어요.
여러모로 까칠해 보이는 이런 매무새는 어릴 적부터 건사한 삶길입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은 분이라 하더라도 잘못은 잘못인걸요. 이를테면, 대여섯 살 무렵이나 예닐곱 살 무렵에, 마을에서 어느 아저씨나 할머니가 쓰레기나 꽁초를 길바닥에 버리면 “아저씨, 왜 길에 쓰레기 버려? 안 되잖아?” 하고 따졌어요. “할머니, 할머니가 버린 쓰레기 도로 가져가. 왜 아무 데나 버려?” 하고 치맛자락을 잡았습니다.
어린이가 너무 까칠할까요? 이제는 초등학교로 바뀐 국민학교에서도 매한가지였습니다. 1982∼87년에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니면서, 담임교사이든 담임 아닌 교사이든 골마루에서 달리거나 쓰레기를 버리거나 건널목을 빨간불에 건너면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해서 잘못하면 안 되지요!” 하고 빽 소리를 질렀어요.
예전에 어린이가 선생님한테 선생님 잘못을 짚거나 따지면, “그래, 네 말이 맞구나. 내가(선생님이) 잘못했어.” 하고 점잖게 고개숙이지 않았습니다. “네까짓 게 어디서 큰소리야?” 하면서 불벼락이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저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교사가 침을 아무 데나 뱉거나, 끌신을 꿰고 운동장을 거닐면 “선생님이라고 해서 함부로 하면 안 되지요!” 하고 코앞에서 따졌습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주먹이나 발길질을 받았습니다.
ㄹ
왜 어떻게 낱말책을 쓰는 길, 이른바 사전편찬자로 걸어올 수 있었나 하고 돌아보면 여러 가지가 떠오릅니다. 첫째, 저는 아주 오래도록 말더듬이로 애먹었습니다. 혀짤배기라서 소리가 쉽게 새기도 합니다. 혀가 짧은 말더듬이가 소리를 못 내는 낱말이 꽤 많습니다. 열 살 무렵까지는 잘 몰랐습니다만, 열 살 무렵에 마을 할아버지한테서 천자문을 배우면서 “아! 내가 소리를 못 내거나 틀리게 내는 낱말이 몽땅 한자말이었잖아!”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열 살부터 열세 살에 이르는 때에, 교과서 읽기를 시키면, 미리 익힌 우리말을 헤아리면서 교과서를 다르게 읽었어요. 소리를 내기 어려운 한자말을, 소리를 내기 쉬운 우리말로 몽땅 바꾸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서 늘 출석부로 머리통을 얻어맞았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서 들어간 대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은 마찬가지였어요. 나중에 일자리를 얻기 좋도록 중간·기말시험에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면서, 다들 교수한테 뭘 선물한다느니, 알랑방귀를 뀐다든지, 여학생이라면 팔짱을 끼고 달라붙어서 사근사근한다든지, 또 일부러 남자교수 수업에 깡똥치마 차림으로 듣는다든지, 이렇게 해서 점수를 올려받는 또래나 윗내기가 수두룩했습니다.
1994년에 들어간 대학교에서 언제나 어이없어서 혀를 내둘렀습니다. 설마 싶었지만, 깡똥치마를 두른 여학생과 바지를 꿴 여학생이 받는 점수가 확 달라서 “우리나라 민낯이 이렇게 추레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이런 대학교를 더 다닐 수 없어서 그만두었어요. 저는 사내라는 몸이니 군대를 다녀오고서 1998년 12월에 그만두었습니다. 대학교를 자퇴로 떠나기 앞서 마지막 1998년 두 학기는 전공 과목이 아닌 부전공으로 신문방송학과 수업 네 해치를 욱여서 들었습니다. 더는 대학교란 데를 쳐다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ㅁ
그런데 제가 다닌 대학교는, 서울에 있는 한국외대 네덜란드말 학과입니다. 제가 다니던 무렵에는 네덜란드 낱말책이 없었습니다. 낱말책도 없이 이웃말(외국어)을 가르친다는 엉터리 배움터였어요.
이제는 낱말책이 있습니다만, 제가 새내기이던 1994년에 네덜란드 낱말책에 밑글(원고)을 셈틀로 토닥토닥 쳐넣는 자원봉사도 했습니다만, 그러니까 1학년 새내기가 ‘사전 원고 입력 자원봉사’를 하는 우스꽝스러운 민낯인 외국어대학교입니다만, 그래도 통번역이라는 길을 가고 싶어서 들어간 대학교인데, 그저 캄캄해서 그만두기로 했어요.
이웃말을 배울 적에는 우리말을 나란히 배워야 합니다. 영어만 잘 한대서 통번역을 못 합니다. 들은 영어를 우리말로 쉽고 또렷하면서 단출히 옮겨야 하잖아요? 그리고 우리말을 영어로 옮기려면 우리말이 어떤 결인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통번역이라는 길을 가려면, ‘이웃말(외국어) : 이웃살림(외국문화) : 우리말 : 우리살림(한국문화)’ 네 가지를 ‘3 : 2 : 3 : 2’로 가다듬을 노릇입니다. 두 나라 말과 살림을 나란히 살필 적에 비로소 통번역을 제대로 옳게 알맞게 슬기롭게 합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보건대, 우리나라 어느 대학교에서도 ‘3 : 2 : 3 : 2’로 안 가르치거나 못 가르치더군요.
저는 대학교를 그만두기로 하면서 ‘이웃말·이웃살림’은 그만 배우기로 했습니다. 오롯이 ‘우리말·우리살림’을 배우는 길을 혼자 걸었어요. 이때가 1994년 7월입니다.
ㅂ
대학교를 다닐 적에 구내서점과 대학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했습니다. 살림돈도 벌어야 했고, 스스로 배움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구내서점과 대학도서관에서 한 달쯤 일하면서 보자니, 대학교 구내서점과 도서관에서 읽을 만한 책이 더 없더군요. 고작 한 달 만에 읽을거리가 바닥났어요.
그저 안쓰러웠습니다. 이렇게 책도 제대로 안 갖추고서 구내서점과 도서관이라는 이름만 허울로 붙이는구나 싶더군요. 그때에는 서울에서 신문배달을 하면서 자취를 했는데, 신문배달을 하는 자전거로 서울 곳곳에 있는 헌책집을 찾아다니면서, 우리나라 모든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국어국문학과 교재를 다 찾아내어 읽었습니다. 여섯 달 걸리더군요. 여섯 달쯤 이렇게 하니 우리나라 국문학 책을 더 읽을 만하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우리나라는 배움밭(학문)이 매우 얕더군요. 그렇지만 이토록 얕은 배움밭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깨닫는 분이 잘 안 보여요. 그래서 1994년 12월 29일에 스스로 〈우리말 한누리〉라는 이름인 ‘우리말 동아리’를 열었습니다.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가르치자고 생각했습니다. 배운 만큼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새로 배우면서 서로 가르치는 길을 찾기로 했습니다.
이러면서 ‘1인 소식지’를 이해 이때부터 냈어요. 1994년 12월부터 혼자서 여미어 둘레에 그냥 나누어 주는 ‘1인 소식지’를 2024년 7월까지 1013호쯤 냈습니다.
ㅅ
바깥에서 보자면, 고졸입니다. 낱말책을 쓰는 길을 가기에 언제나 종이를 잔뜩 짊어집니다. 낱말을 모으는 꾸러미(수첩)를 챙기고, 말밑(어원)을 살피는 꾸러미를 챙기고, 우리말로 이야기를 엮어서 노래(시)를 쓰느라, ‘시 창작수첩’도 여럿 챙깁니다. 낱말책에 담는 낱말은 마음으로도 헤아려야 하기에, ‘마음으로 쓰는 하루글(일기)’을 적는 꾸러미도 챙깁니다.
이 대목에서 갸웃할 분이 있을 텐데, 사전편찬자는 ‘글로 남은 밑동(기초자료)’만으로 낱말을 캐거나 찾거나 살피지 않습니다. 미나리는 왜 미나리일까요? 부추와 정구지와 솔이라는 이름으로 다르게 가리키는 나물은 왜 고장마다 다르게 가리킬까요? 구름은 왜 구름이고 비는 왜 비일까요? 바람이며 이슬은 무엇일까요?
개구리와 사마귀와 여치는 어떤 숨빛을 품은 이웃일까요? 낱말책에 ‘아기’나 ‘기저귀’라는 낱말을 올림말로 삼아서 뜻을 붙일 적에 어떻게 해야 알맞을는지 생각해 보셔요.
그리고 ‘생각·마음·넋·사랑’ 같은 낱말에 뜻풀이하고 보기글을 붙일 적에 어떻게 해야 어울릴는지 헤아려 보셔요. 무엇보다도 ‘헤아리다·살피다·가누다·여기다’ 같은 낱말이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 어떻게 갈라야 할까요? ‘닮다·비슷하다’라든지 ‘휘다·굽다’라든지 ‘곱다·아름답다’는 어떻게 다르게 쓰는지 어떻게 갈라서 풀이해야 걸맞을까요?
ㅇ
말더듬이 어린이는 열 살에 이를 때까지 날마다 놀림을 받고 얻어맞았습니다. 열 살 뒤에도 얻어맞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만, 말더듬이를 스스로 풀어내는 길을 하나씩 찾아내면서 천천히 삶을 가꾸어 왔습니다. 혀가 짧아도 둘레에서 제 말소리를 또박또박 알아듣도록 혀랑 이랑 입이랑 목이랑 턱이랑 뱃속이랑 허파를 어떻게 가누어야 하는지 하나하나 스스로 찾아내며 살았습니다.
군대에 갈 수 없을 만큼 코머거리였던 터라, 코로 숨을 못 쉬는 나날을 서른아홉 살까지 보내야 했는데, 마흔 살을 앞두고서 숨쉬기를 드디어 깨달아서, 그 뒤로는 코로 즐겁게 숨을 쉽니다.
저는 운전면허증조차 안 땁니다. 걸어다니거나 두바퀴(자전거)를 달립니다. 낱말책을 쓰는 사람이라서, 온누리 모든 말을 살피고 담아야 하니, 부릉부릉 몰 수 없어요. 되도록 걸으면서 그때그때 종이에 모든 말을 가다듬고 살펴서 적바림합니다. 그런데 두바퀴로 우리나라 골골샅샅을 다니면서 여태까지 적잖이 쇳덩이(자동차)한테 치였습니다. 신문배달을 하던 1998년에도 크게 뺑소니로 치여서 죽을고비를 넘겼고, 2006년까지 거의 해마다 쇳덩이가 뒤나 옆에서 갑자기 들이받아서 길바닥에 무릎과 손목과 어깨가 팔꿈치가 모질게 갈렸어요. 뼈가 보일 만큼 갈려서 한참 못 걷거나 손과 팔을 못 쓰기 일쑤였는데, 어찌저찌 이럭저럭 등짐도 잘 나르고 집안일도 제법 하면서 살아갑니다.
저는 면허증도 안 따지만, 병원도 안 갑니다. 늘 집에서 조용히 드러누워서 몸앓이를 하면서 달랩니다.
꽤 어리석은 삶을 보낸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낱말책을 짓는 사람은 이 모든 삶을 두루 겪고 헤아리면서 ‘좋고 나쁨이 없는 삶’이라는 대목을 읽어야 하더군요. 뺑소니로 치여서 나쁘지 않습니다. 뺑소니로 치였을 뿐입니다. 팔다리가 갈려서 몇 달 동안 한 손과 한 다리를 못 썼지만, 이동안 왼손으로 빨래하고 밥을 짓고 배달자전거를 몰면서 일하는 길을 익혔습니다. 한 다리로만 살아야 하면서 외걸음이란 무엇인지 새록새록 배우기도 했습니다.
ㅈ
낱말책은, 낱말을 담은 꾸러미라고 했습니다. 낱말이란 ‘낱으로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전이란 ‘= 낱말책’이면서 ‘말책’입니다. 말을 담기에 말책인데요, 말이란 마음을 담은 소리예요. 마음을 소리로 그리니 ‘말’입니다. 우리가 읽는 ‘글’은 ‘말’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그린 무늬입니다.
하나하나 짚으면, 글은 말이요, 말은 마음인데, 마음은 우리가 누리는 하루인 삶에서 비롯합니다. 삶이 있기에 마음이 있어요. 삶이 없으면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좋은 삶이나 나쁜 삶이 아닌, 그저 삶을 누려요.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마음을 새롭게 일구는 하루를 살아내면서, 이 마음을 말로 옮기고, 이 말을 글로 다시 담습니다.
아무렇게나 말한다면, 우리 스스로 마음을 아무렇게나 팽개친다는 뜻입니다. 아무렇게나 글을 쓴다면, 우리 마음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뒹굴라면서 내버린다는 뜻입니다.
말 한 마디는 씨앗이기에, 어떤 말씨를 입에 담고 손에 얹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을 우리가 스스로 바꿉니다. 이 삶을 사랑으로 가꾸고 싶다면, 오직 사랑으로 빛나는 말을 혀에 얹고 글로 옮길 노릇입니다.
깎음말이라 할 ‘욕’은 남을 못 깎아요. 욕은 늘 남이 아닌 나를 스스로 깎고 갉습니다. 욕을 자주 읊는 사람은 남을 못 괴롭혀요. 욕을 하는 스스로 괴롭힐 뿐입니다.
겉으로 달콤하거나 좋아 보이거나 멋져 보이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겉치레나 허울에 가득한 삶으로 뒹구는 얼거리입니다.
ㅊ
말에 담는 마음을 읽는 길을 살피면서 스스로 사랑하는 넋으로 서려고 낱말책을 짓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은 낱말책을 이웃님이 장만해서 읽기를 바라지요.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잇는 길인 ‘이야기’로 바라보거나 받아들이기를 바라면서 낱말책을 펴냅니다.
우리는 낱말을 더 많이 알아야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낱말책을 달달 외워야 글을 잘 쓰지 않습니다. 스스로 오늘 이 하루를 사랑할 줄 아는 마음으로 살아낼 적에 비로소 “내 살림은 내가 사랑이라는 숲빛으로 가꾸는구나” 하고 알아챌 만합니다.
낱말 하나를 제대로 뜻풀이를 하고 말밑을 캐내기까지, 때로는 10분 만에 끝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열 해나 스무 해가 걸립니다. 그저 한 걸음씩 걸어갑니다. 낱말책을 제대로 쓰자면, 국립국어원이나 무슨무슨 대학교나 연구소 같은 데에 들어가면, 다달이 따박따박 나오는 일삯을 받으면서 걱정이 없을 만하다고 여길 수 있을 텐데, 막상 우리나라 국립국어원이나 무슨무슨 대학교나 연구소에서 여태껏 제대로 낱말책을 여민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길을 틔울 때라야 낱말을 제대로 바라보더군요. 일자리가 있어야만 낱말책을 알뜰살뜰 추스르지 않아요. 여러모로 외롭거나 고달픈 길일 수 있습니다만, 바깥에서 보는 눈으로 살아갈 마음은 없습니다. 남이 나를 추키거나 낮춘다고 해서 제가 높거나 낮지 않아요. 저는 제가 저를 사랑으로 바라볼 적에 스스로 사랑으로 밝은 넋일 뿐입니다.
아무쪼록 말 한 마디에 온사랑을 담아서 봄바람과 가을꽃처럼 지피는 하루를 천천히 여미어 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즐겁게 하루를 살면서 기쁘게 말 한 마디 풀어내 보시기를 바라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