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어린이 쉼터 (2021.5.11.)

― 인천 〈그림책방 오묘〉



  굴포천이란 이름인 냇물 곁을 가로지르다가 발길을 멈춥니다.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도록 해놓은 냇가는 짙푸릅니다. 그저 그대로 맑고 빛납니다. 나라 곳곳에서는 냇둑을 쌓고 무슨무슨 길을 깔고 이런저런 놀이틀·몸틀(운동기구)을 들이는데, 어느 하나도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걸으면 오솔길이 나요. 우리가 풀꽃나무랑 한마음이 되면 풀꽃나무하고 싱그러이 숨결을 나눕니다.


  책이나 배움터로 가르쳐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살림집이 “숲을 품은 집”인 ‘숲집’이면 됩니다. 따로 책을 펴거나 애써 배움터를 오가야 듣거나 읽는 이야기라면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새기지 못하기 마련이에요. 늘 곁에 두면서 함께 놀고 일하고 노래하고 쉬는 때라야 즐겁게 맞아들여 한동아리입니다.


  인천에서 나고자라는 동안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쉬면서 하루를 돌아볼 수 있는 빈터가 이 고장에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어릴 적에는 어디나 놀이터로 삼으면서 살았고, 어른들 꾸지람을 들으면서 골목이며 바닷가이며 갯벌이며 둠벙이며 풀밭이며 우람나무이며 신나게 달리고 뛰고 타면서 지냈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거의 모두라 할 곳이 “어른이 돈을 치러서 누리는 곳”이로구나 싶더군요.


  요즈음은 달라졌으나 1993년까지 푸른배움터를 다니며 만난 책숲(도서관)은 허울만 좋았어요. ‘수렁칸(입시생 독서실)’이었거든요. 갖춘 책마저 허술했습니다. 이와 달리 배다리 헌책집하고 〈한겨레문고〉 같은 새책집은 눈길을 틔울 책이 가득했습니다.


  복닥거리는 큰길을 걷다가 〈그림책방 오묘〉로 들어섭니다. 책집으로 들어서니 호젓합니다. 시끌거리는 부릉이 소리가 사라지고, 차분하면서 부드러이 바람이 붑니다. 예나 이제나 생각하기를, 큰고장에서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느긋이 머물면서 쉴 곳이란 책집뿐이지 싶습니다. 책집에서는 가볍게 수다를 할 만합니다. 이제는 퍽 달라졌어도 아직 책숲(도서관)에서는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책을 만

나 기쁜 마음을 수다꽃으로 펴도록 자리를 틔울 책숲은 언제 태어날까요? 일본이 총칼을 앞세워 이 나라를 억누를 적에 퍼뜨린 ‘정숙(靜肅)’이라는 얼어죽을 말은 언제쯤 걷어치울까요? 뛰놀 마당이 있으면서 드러누워 낮잠을 이룰 나무그늘하고 풀밭이 있을 적에 비로소 책숲답다고 생각합니다. 곁에 큰나무하고 책걸상이 있으면 아름다운 책집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책에 담는 줄거리로만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마음밥이 되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책을 이루도록 종이가 되어 준 나무가 살던 숲을 큰고장에서도 보여주기에 책집이요 책숲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아이어른이 함께 쉬기를 바라요.


ㅅㄴㄹ


《아주 작은 것》(베아트리체 알레마냐/길미향 옮김, 현북스, 2016.6.1.)

《불만이 있어요》(요시타케 신스케/권남희 옮김, 김영사, 2021.4.1.)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알까요?》(린 판덴베르흐 글·카티예 페르메이레 그림/지명숙 옮김, 고래이야기, 2013.12.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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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2021.3.3.)

― 인천 〈수봉정류장〉



  인천 미추홀구(남구) 숭의4동은 곧 통째로 거의 사라진다고 합니다. 어쩌면 조금쯤 남을는지 모르나 “사람이 살며 풀꽃나무가 골목마다 아기자기하고 푸르게 노래하던 터전”이라는 숨빛은 가뭇없이 삽차로 찍어낸다지요. 나라 어느 곳을 가더라도 삽질판입니다. 이 나라지기나 저 나라지기나 똑같이 삽질을 사랑했습니다. 이른바 ‘집길(부동산정책)’은 순 “잿빛집(아파트) 높이 쌓기”에 머뭅니다.


  돌림앓이판이 불거지는 곳은 숲이 아닌 큰고장입니다. 서울이거나 서울을 닮은 데에서 사람이 죽어나고 아프며 골골대고 쓰러집니다. 서울이거나 서울을 따라가는 데에서 돈·이름·힘을 거머쥐려고 싸우고 다투고 겨루며 밟습니다.


  숲에서는 돌림앓이가 없습니다. 숲을 낀 두멧자락이나 시골에도 돌림앓이가 번질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틈새두기’라는 거짓질을 멈출 노릇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틈새에 숲을 두기”입니다. “집하고 집 사이에 풀꽃나무를 건사하기”로 살아가고, “높다른 잿빛집이 아니라, 나즈막한 골목집을 일구고, 모든 골목집이 마당을 누리는 길”로 나아가야지요.


  맨발로 풀밭을 걷지 못하니까 앓아요. 맨손으로 나무를 쓰다듬지 못하니까 아파요. 숲이 푸르게 우거져야 숨을 제대로 쉬는 줄 ‘머리(지식)’로 알면 뭐 할까요? 손수 씨앗을 묻어 돌볼 “우리 집 나무”가 없이 어떻게 나무를 배우거나 알거나 사랑할까요? ‘삽질사랑’이 아닌 ‘숲사랑’일 적에야 이 거짓질을 끝냅니다.


  그나저나 인천 제물포 한켠에 알뜰살뜰 여민 〈수봉정류장〉은 채 한 해를 잇지 못하고 사라진다고 하는데, 참말로 어쩔 길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인천지기(인천시장)이라는 벼슬아치 머리에서는, 또 인천에서 벼슬꾼(공무원)으로 지내는 사람들 손에서는, 마을을 통째로 밀어내고서 잿빛집을 높이 올릴 생각만 있을까요?


  이제라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잿빛집은 ‘다닥다닥’입니다. 숨쉴 틈이 없어요. 잿빛집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는 뛰지도 춤추지도 노래하지도 못합니다. 삶이 없고 놀이가 없어요. 어른이라고 다를까요? 집집마다 사이에 골목을 두고 마당을 거느리면서 나무를 심어 돌볼 틈이 있을 적에 비로소 두레나 품앗이가 저절로 피어나고, 모든 사람이 즐겁게 웃으면서 튼튼하기 마련입니다.


  어젯밤(3.2.)에 〈수봉정류장〉 지기님하고 숭의4동 골목을 천천히 거닐었습니다. 천천히 거닐며 “빈집에 남은 이름판·주소판·상하수도판” 같은 조그마한 자취를 몇 떼었습니다. 통째로 사라지기 앞서 “사람이 살았네” 같은 이야기를 이 작은 조각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당과 숲과 마을이 없다면 벼슬아치도 나라도 뭣도 다 부질없습니다. 삽질만 해대면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인천이라는 지도를 들고》(양진채, 강, 2021.1.30.)

《수봉산 둘레 마실길》(수봉정류장 엮음, 미추홀구 시민공동체과, 2020.12.31.)

《월간 수봉 1호》(수봉정류장 엮음, 수봉정류장, 2021.1.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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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발로 잇는 첫걸음 (2021.7.28.)

― 수원 〈책 먹는 돼지〉



  수원 마을책집 〈책 먹는 돼지〉는 2021년 7월을 끝으로 새터로 자리를 옮깁니다. 오래도록 책벗으로 함께 지낸 마을책숲(마을도서관)이 새터로 옮기면서 마음앓이를 하셨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맞춤한 자리가 나와서 옮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열흘쯤 앞서 자전거로 제주 마을책집을 돌아다니느라 기운을 많이 쓴 몸이지만, 기차·시외버스·택시를 사뿐히 타면 되겠거니 여기면서 수원마실을 합니다. 고흥부터 수원으로 가는 길에 하늘은 구름 없이 맑기도 하고, 구름이 가득하기도 합니다. 남문 곁 헌책집 〈오복서점〉에 들르니 소나기도 옵니다. 재미있어요.


  날씨란, 글씨랑 말씨랑 마음씨처럼 ‘-씨’가 붙는 낱말입니다. 하늘을 살피고 하루(날)를 읽을 적에 숨결(씨)을 헤아리며 살아온 옛사람 넋이 ‘날씨’란 말마디에 고이 흐르는구나 싶어요. 한자말이기 때문에 ‘기상·기후’를 안 쓰지 않습니다. 우리말 ‘날씨(날 + 씨)’에 서린 밑뜻하고 숨결하고 발자취를 어린이도 함께 읽기를 바라기에 이 낱말을 즐겨씁니다. “날이 좋다”고만 수수하게 말하기도 해요. ‘날’은 ‘하루’이자 ‘오늘’이요, 내(나)가 살아가는 즐거운 길입니다.


  삶을 돌아보면, 처음이나 끝은 따로 없습니다. 모든 끝은 처음이요, 모든 처음은 끝입니다. 더구나 처음하고 끝은 찬찬히 나아가는 길 가운데 꼭짓자리 하나예요. 이곳에서 보낸 책집 이야기는 며칠 뒤에 접지만, 저곳에서 누릴 책집 이야기는 며칠 뒤부터 차곡차곡 여밉니다. 한 걸음씩 이어가면서 오늘이 새삼스럽습니다.


  버스랑 버스랑 기차로, 다시 버스에 택시로 〈책 먹는 돼지〉까지 찾아가는 길에 노래꽃 “책 먹는 돼지”를 썼습니다. 책을 머금는, 책이 머무는, 책으로 멋스러운 터전에 흐를 풋풋한 바람줄기를 얹어서 건네고 싶어요.


  글은 스스로 오늘을 쓰려고 하니 저절로 쏟아집니다. 책은 스스로 오늘을 읽으려고 하니 저절로 알아봅니다. 사랑은 스스로 오늘을 지으려 하니 저절로 피어납니다. 살림은 스스로 오늘을 돌보려 하니 아이하고 함께 누려요. 그나저나 덜 쉰 몸으로 수원까지 오느라 해질녘에 졸음이 몰려듭니다. 어느 길손집에 깃들까 하고 기차나루 곁을 거닐다 처음 들어간 곳에서 쇠흙해(금토일) 아닌 물날(수요일)인데 7만 원을 부릅니다. 더구나 “아홉 시 넘어서 오셔야 자리가 있겠는데요?” 합니다. “그렇군요. 아홉 시까지 헤매다가 와야 하는데, 자는 삯도 만만하지 않네요.” 하고 돌아서려니 “저기, 기다려 보셔요.” 하더니 35000원짜리를 내줄 수 있을 듯하다고 말합니다. 커다란 등짐차림 아저씨는 이럭저럭 한 칸을 얻습니다. 얼른 씻고 빨래를 마치고서 드러눕습니다. 술 마시는 젊은이들 소리로 시끄럽지만 잘 잡니다.


《돼지구이를 논함》(찰스 램/송은주 옮김, 반니, 2019.11.15.)

《방귀 사전》(스틴 드레이어·헤나 드레이어 글, 마리아 버크만 그림/최지영 옮김, 노란돼지, 2021.6.25.)

《친구에게》(이해인 글·이규태 그림, 샘터, 2020.6.2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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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쓴다 (2021.8.19.)

― 김포 〈책방 노랑〉



  걸어서 얼마 안 걸리기에 가깝다고 하지 않습니다. 달려서 며칠이 걸리기에 멀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안 맞거나 없기에 안 가깝습니다. 마음이 맞거나 흐르기에 가깝습니다. 어느 고장 어느 마을에 어느 마을책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곰곰이 어림합니다. 고흥부터 그곳까지 얼마쯤 걸리고 어느 길을 에돌아야 하는지 헤아립니다. 길삯보다는 그곳에 이르기까지 책을 몇 자락 챙기면서 읽을까 하고 살피고, 이동안 노래꽃(동시)을 몇 자락 쓸 만한가를 짚습니다.


  열 몇 시간을 들여 책집마실을 할 적에는, 길에서 책도 읽고 눈도 붙이고 글도 씁니다. 바깥을 보며 나무가 얼마나 우거지고 하늘에 구름이 얼마나 맑은지 읽습니다. 멀다 가깝다보다는 오늘 이웃님 책집을 새로 만난다고 느껴요.


  김포 〈책방 노랑〉에 닿아서 들어서기까지 왜 책집 이름이 ‘노랑’인 줄 몰랐습니다. 안쪽으로 들어서고 보니 노란 빛깔로 물든 책이 한켠을 조촐히 밝힙니다. ‘노랑’은 ‘노을’하고 닿고, “노란(누런) 들판”처럼 가을들하고 맞물립니다. 발그스름하다가 보랏빛이 되다가 붉다가 노랗다가 하얗게 오르는 해랑 만나요. 사람들이 값지다고 여기는 돌은 ‘노돌(노랑돌)’입니다.


  더 생각을 잇고 보면 ‘노-’는 ‘노래’랑 ‘놀이’를 이루는 바탕입니다. 노랗게 물드는 해처럼 노래하고, 노랗게 익는 가을들처럼 놀이를 합니다. 노래하듯 책을 읽고, 놀이하면서 소꿉을 익혀 살림길로 나아갑니다.


  우리말 ‘노느다’는 ‘나누다’하고 비슷하면서 다른 결입니다. 여러 몫으로 ‘놓’습니다. 즐거이 품고 돌보았기에 기꺼이 ‘내놓’습니다. 이렇게 놓을 줄 아는 숨결은 새 숨붙이를 ‘낳’는 길로 고요히 뻗어요. 아기는 오롯이 사랑인 마음이기에 낳습니다. 아기를 낳는 어버이 눈빛은 새글을 낳고, 새살림이며 새이야기를 낳아요. 자, 주머니에 ‘넣’은 손으로 씨앗 한 톨을 우리 밭자락에 ‘놓’아 봐요. 온누리를 덮은 흙은 우리가 놓은 씨앗을 고이 품어 줍니다. 이 땅을 맨발로 디디면서 노래하고 논다면 아플 일이 없어요.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더라도 이내 ‘낫’습니다. 그러고 보면, 풀을 벨 적에 쓰는 ‘낫’이라는 연장은 들이 새롭게 푸르도록 다스리는 노릇이지 싶어요.


  나긋나긋 만납니다. 느긋느긋 이야기합니다. 나풀나풀 춤을 춥니다. 넉넉히 생각을 나누고, 느슨하고 느리지만 늘 깨끔한 눈망울로 지켜보다가 살짝 붓을 쥐어 몇 줄을 남깁니다. 읽기에 쓰지만, 쓰기에 읽고, 짓기에 읽으며, 읽다가 짓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서로 다르면서 닮은 마음이 만나 어느새 오솔길을 틔웁니다.


《세계의 끝 씨앗 창고》(캐리 파울러 글·마리 테프레 그림/허형은 옮김, 마농지, 2021.2.10.)

《서울의 엄마들》(김다은과 열 사람, 다단근, 2021.2.1.)

《라키비움 J Pink》(편집부, 제이포럼, 2021.7.26.)

《나의 왕국》(키티 크라우더/나선희 옮김, 책빛, 2021.6.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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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돈 (2021.9.16.)

― 제주 〈노란우산〉



  어제 낮에 제주 〈책약방〉 지기님이 전화해 주셔서 몇 마디를 나누다가 서귀포에 있는 〈노란우산〉이 불타서 안타깝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루를 지난 아침에 〈책약방〉 지기님이 누리글집에 쓴 글을 읽고서 어떤 이야기인가를 조금 어림했습니다. 열 몇 해 앞서 서울 용산 〈뿌리서점〉이 통째로 물에 잠겨서 책을 모두 버려야 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달삯을 내고 지내는 〈뿌리서점〉은 집임자(건물자)한테서도 보험회사한테서도 한 푼을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빗물이 마구 새서 책이 다 젖더라도 ‘시민단체’인 집임자는 팔짱을 꼈고, 보험회사는 ‘화재보험’만 들었을 뿐 ‘수재보험’이 아니기에 도울 수 없다는 말만 했다더군요.


  얼마나 이바지할는지 모르지만, 살림돈을 조금 덜어서 한손을 거들었습니다. 뜻을 모으고 싶은 분은 ‘성금’을 보내면 좋겠다고 하던데, 어쩐지 ‘성금(誠金)’이란 한자말은 안 쓰고 싶습니다. 제가 짓는 우리말꽃을 거드는 이웃님이며, 제가 꾸리는 책숲(도서관)을 돕는 이웃님은, ‘이바지돈’이나 ‘뒷배’ 같은 이름을 씁니다. 문득 새말을 하나 지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럴 적에 ‘도움돈’이나 ‘보탬돈’ 같은 말을 제법 씁니다. 이 말도 좋으나 다른 말을 더 그립니다. 뜻을 모은다는 얼거리로 ‘뜻돈’이란 이름을 지어 봅니다. ‘뜻돈’도 꽤 마음에 들지만 더 생각해 봅니다. 꽃길을 걷듯 꽃살림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꽃돈’이라 해볼 만합니다. 이런 이름 저런 이름 다 마음에 드는데 더 생각해 보다가 ‘곁돈’을 떠올립니다.


  제가 올해에 새로 낸 《곁책》이 있기도 하고, 함께 살아가는 님한테 ‘곁님’이란 이름을 새로 지어서 붙이기도 했듯, 제가 쓸 새말이라면 ‘곁 + 돈’이 한결 어울리겠구나 싶습니다. 즐거운 자리에서도, 궂긴 자리에서도 이 말 ‘곁돈’을 쓰자고 생각합니다. ‘축의금·찬조금·부의금·후원금’ 모두 이 ‘곁돈’으로 갈음해 보자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씨앗돈’ 같은 이름을 씁니다. 조그맣게 모아서 함께 큰일을 해보자고 할 적에는 ‘씨돈·씨앗돈’ 같은 이름을 써요. 그때그때 헤아리면서 우리 삶을 꽃다이 가꾸려는 뜻을 모은다면, 흔히 쓰는 낱말 하나부터 새롭게 갈무리한다면, 우리 오늘은 더욱 푸르면서 아름답겠지요. 곁에서 마음을 기울이는 이웃은 온누리 곳곳에 물결처럼 들꽃처럼 가을바람처럼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곁돈 모으기 → 신한은행 100 034 125904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정병규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사진은 뿌리서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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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1-09-17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쓰고 나서 12시간 뒤, 그림책집 <노란 우산>을 돕는 곁돈(성금)이 5천만 원 넘게 모였다고 합니다. 모두들 깜짝 놀랄 만큼 꽃돈이 되었구나 싶어요. 그래서 곁돈 모으기는 벌써 마친다고 합니다. 온나라 책손길이 따사로이 모이면서 아름물결을 이루었구나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