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함께 빗소리 (2024.7.13.)

― 부산 〈책과 아이들〉



  어제까지는 한여름 뙤약볕이라면, 오늘은 아침부터 구름밭입니다. 구름이 가득한 아침은 바람이 싱그럽게 달랩니다. 아침바람과 함께 산뜻하게 〈책과 아이들〉에서 ‘이오덕·권정생 읽기모임’을 꾸립니다. 마침 어제 대구마실을 하면서 만난 책을 자리에 풀어놓고서 하나하나 짚고 이야기합니다. 갓 나온 책이건 이미 나온 책이건 속빛을 헤아려야 ‘읽기’입니다. 줄거리만 짚을 적에는 ‘읽기’하고 멀어요. 글감(소재)과 뜻(주제)만 따질 적에도 ‘읽기’라 하지 않습니다.


  떠난 두 어른은 앞으로 이 땅과 이 별이 한결 나아가기를 바랐는데, 스무 해나 열 해 앞서를 돌아보자면, 오늘은 참으로 나아갔을까요? 아니면 나아가는 시늉일까요? 안 나아가면서 쳇바퀴일까요? 나아가려는 이웃이 있으면 발목을 잡나요?


  낮에는 ‘말이 태어난 뿌리 : ㅂ’을 추스르는 자리를 꾸립니다. 오늘은 거의 첫가을바람 같다고 느끼는데 우릉우릉하더니 어느새 빗소리가 쏴아 퍼집니다. 꽤 길게 볕날이더니 바야흐로 비날로 돌아섭니다. 함께 빗소리를 느끼면서 ‘ㅂ’으로 여는 뭇낱말 가운데 ‘비·바람·바다’를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우리 몫(할 수 있는 만큼)이란 무엇인지 두런두런 말을 섞습니다.


  누구나 몫을 하면 됩니다. 몫을 넘어가거나, 그릇에 담기 벅찬 일을 맡지는 않을 노릇입니다. 아이나 아픈 이한테 짐을 지우지 않아요. 혼자 온일을 다 하라고 떠밀지 않아요. 그렇지만 벼슬이며 감투를 혼자 쥐려는 분이 무척 많아요. 돈과 이름을 홀로 잡으려는 분이 꽤 많아요. 큰힘을 휘두르려는 분마저 참 많더군요.


  우리말 ‘추임새’가 있습니다. ‘감탄사·리액션·흥·코러스·화답·동조·응답·대응·케팔라’를 모두 가리켜요. 출렁이는 물결마냥 춤처럼 신명나는 소릿가락이기에 추임새예요. 우리나라에 “신바람 이박사”라고 하는 멋스런 노래지기가 있는데, 쿵짝쿵짝 놀랍도록 맞출 줄 아는 이녁을 눈여겨보거나 제대로 마주하는 글꾼(평론가)은 아주 드물어요. ‘국졸 + 관광버스 길잡이’여서 얕보려나요.


  빗소리 사이에 추임새마냥 우레가 곁들입니다. 쩌렁쩌렁 벼락이 치니, 큰길에서 부릉거리던 자잘소리를 모두 잠재웁니다. 빗소리란 비노래요 비수다입니다.


  지난날 우리한테 길잡이 노릇을 한 분도, 오늘날 스스로 길잡이가 되어 땀흘리는 우리도, 다 다른 노래와 추임새와 손길과 눈망울로 만나기에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다 다른 생각씨와 사랑씨와 살림씨와 노래씨로 태어나는 작은씨 같은 책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요. 꼭 이렇게 새길로 가리라 봅니다. 빗줄기는 더 굵군요. 저녁에도 밤에도 우렁우렁 빗발이 흐드러집니다.


ㅍㄹㄴ


《국어 지필평가의 새 방향》(이형빈, 나라말, 2008.12.30.)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이오덕, 보리, 1993.8.15.)

《꽃이 펴야 봄이 온다》(셋넷학교 엮음, 민들레,2010.2.27.)

《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에냐 리겔/송순재 옮김, 착한책가게, 2012.2.20.)

《나비문명》(마사키 다카시/김경옥 옮김, 책세상, 2010.10.12.)

《달콤 달콤 & 짜릿 짜릿 1》(아마가쿠레 기도 글·그림/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2014.12.8. )

《도라에몽 42》(후지코 F.후지오/박종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4.7.22.)

《말해요, 찬드라》(이란주, 삶이보이는창, 2003.5.20.)

《바다거북, 생명의 여행》(스즈키 마모루/김소연 옮김, 천개의바람, 2017.7.3.)

《변산공동체학교》(윤구병·김미선, 보리, 2008.2.5.)

《분수의 비밀》(루이제 린저/유혜자 옮김, 책과콩나무, 2010.6.30.)

《삽 한 자루 달랑 들고》(장진영, 내일을여는책, 2000.12.15.)

《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린다 실베르센·토시 실베르센/김재민 옮김, 맥스미디어, 2009.7.30.)

《키노쿠니 어린이 마을》(호리 신이치로/김은산 옮김, 민들레, 2001.11.15.)

#掘眞一郞 #木の國

《튼튼 제인》(루머 고든 글·에이드리엔 아담스 그림/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 2014.3.10.)

《포도 눈물》(류기봉, 호미, 2005.8.30.)

《해바라기》(시몬 비젠탈/박중서 옮김, 뜨인돌, 2005.8.10.)

《희망은 있다》(페트라 켈리/이수영 옮김, 달팽이, 2004.11.15.)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22. 밥을 안 먹는



  이른바 고속버스에는 손전화에 밥을 먹으는 꼬마돼지코가 있다. 나는 늘 기나긴길을 다니느라 꼬마돼지코에 줄을 꽂는데, 여러 해 앞서부터 고흥과 서울 사이를 오가는 버스는 밥을 안 먹는다. 밥줄이 있으나 마나이다. 그러려니 싶으면서도 고흥군수나 공무원 어느 누구도 이 대목을 모르리라 느낀다.


  시외버스에서 한숨 푹 자고서 책을 석 자락 읽고 노래 한 자락을 쓴다. 요사이에 힘을 많이 쓴 왼팔꿈치가 찌릿해서 어제오늘 틈틈이 주무른다. 서울은 뭉게구름밭이더니 충청도는 소나기였고 전라남도가 가까우면서 옅은깃털구름으로 파란하늘이다. 고흥에 닿으면 저물녘 바람이 불면서 제비노래가 반길 테지.


  올여름도 부채 하나로 가볍게 지나간다. 부채질은 나한테보다 밤에 자는 아이들한테 했고, “애쓰는 셈틀(컴퓨터)”이 덜덜거릴 적마다 뜨거운 기운을 부채질로 식혔다.


  더우니 여름이고, 더우니 하루에 예닐곱이나 열벌쯤 씻는다. 여름은 하루에 석벌쯤 빨래를 한다. 볕이 가득하면 웃통을 벗고서 해바라기를 누린다. 여름이니 개구리와 풀벌레와 매미가 노래하는 어울가락을 즐긴다. 작은아이는 매미허물을 둘 찾고서 빙그레 웃는다. 우리집 마당에서 깨어난 범나비에 파란띠제비나비에 부전나비에 배추흰나비에 네발나비에 숱한 나방이 저마다 새롭게 팔랑거리고, 잠자리 몇은 거미줄에 걸리고, 참새나 직박구리가 거미줄 먹이를 낚아채고, 마을에서 또 풀죽임물을 뿌려대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빛살을 그린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 봄은 꽃피어야 제맛이다. 가을은 열매가 익어야 제맛이다. 여름은 땀흘려 일하고 놀아야 제맛이다.


  덥다고 푸념하거나 짜증내는 이웃을 보며 웃는다. “보셔요! 하늘이 이 여름에 뙤약볕이라는 눈부신 사랑을 베푸는군요! 함께 해를 먹어요!” 두 팔을 펴고서 뙤약볕 한복판에 서서 빙그르르 돈다. 온몸 구석구석 햇볕을 먹인다.


  하늘은 틀림없이 우리더러 웃고 춤추라며 여름볕을 베풀면서 새랑 개구리랑 풀벌레랑 매미를 깨운다. 별은 참말로 우리더러 눈뜨고 생각을 틔우라면서 날마다 미리내를 베푼다. 배롱꽃 곁에 자귀꽃이 발갛다. 달개비꽃이랑 달맞이꽃이 낮밤을 갈마든다.


  여러 해째 “주시경 이야기”를 짠다. 밑틀은 짜되 아직 첫머리조차 안 쓴다. 늦여름에 첫 줄을 적어 볼까? 그래, “주시경 배움모임”을 꾸리면 저절로 글을 쓸는지 모른다. 우리집 두 아이하고 먼저 이야기꽃을 펼 수 있겠구나. 작은아이한테는 자취(근현대사)를 곁들여서, 큰아이한테는 길(문법)을 곁들여서 들려줄 만하다.


  그나저나 시외버스에서 나 혼자만 천(커튼)을 활짝 걷고서 하늘바라기와 숲바라기를 한다. 그렇다. 그렇지. 그래.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25. 흙날을 앞두고서



  어제그제 호되게 앓았다. 하루치기 서울일을 다셔오며 책더미를 내내 끌어안았는데, 책벌레질은 늘 하되, 이틀 사이에 찬바람이(에어컨)를 꽤 많이 먹었다. 시외버스·전철·책집·책숲·버스나루·가게 모두 찬바람이로 휘감긴 오늘날이다.


  틈틈이 볕바른 데를 찾아가서 걷고 서고 쉬었으나 크게 모자랐지 싶다. 마을 곤드레밭에서 일손을 거들며 오른 농약독이 덜 빠진 몸이라, 몸은 “나한테 왜 그래? 쉬며 살아날 겨를이 없잖아!” 하고 외쳤고 몸살로 나타났다. 아니, 몸살이라기보다 ‘찬앓이(냉방병)’라고 해야 맞다.


  문득 예전 서울살이(1995∼2003)가 떠오른다. 나는 서울에서 살며 바람날개(선풍기)조차 안 두었고, 부채도 딱히 안 썼다. 땀이 주르르 흐르면, 읽던 책으로 몇 자락 바람을 일으키고는 다시 책을 읽거나 글을 썼고, 책짐을 안고 지고 이면서 걸었다. 예전에는 책집에 찬바람이(에어컨)가 없었고, 바람날개도 겨우 하나 있을 뿐이었다. 책벌레는 겨울에 손이 곱으면서 추위를 잊고, 여름에 땀범벅으로 달아오르면서 더위를 잊는 길을 익혔다. 2003년에 서울을 떠날 무렵까지, ‘경인선’ 전철 가운데 바람날개만 있는 칸이 꽤 있었다.


  어제 낮과 저녁에 곁님과 두 아이가 주물러 주었다. 결리고 쑤시고 뭉친 투성이를 조금씩 달랬다. 오늘 아침은 두 아이한테 짐꾼 노릇을 고스란히 맡기고서 시골숲을 나선다. 언제 어디에서나 튼튼마음과 튼튼몸으로 걸어다니자고 생각한다. 큰길을 걸을 적에는 쇳덩이가 내뿜는 고약한 방귀가 넘친다. 서울내기는 꽃물(화장품·화학세재)범벅으로 매캐한 기운을 뿜는다. 여태까지는 고약방귀와 꽃물내음을 스스럼없이 씻고 녹이는 데에 마음을 기울였다면, 이제는 찬바람이가 스며들려고 해도 가볍게 내보내면서 해바람을 마시는 매무새로 일어서자고 생각한다.


  흙날을 앞두고서 말끔히 털리라 본다. 오늘저녁 이야기꽃을 앞두고서는 부산에 닿으면 낮잠을 길게 누려야지. 앓고 나면 새몸이다. 앓으며 쓰러지고 휘청일 적에는, 신나게 휘청휘청 햇볕길을 걸으면 된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22. 여덟 자리



  어제 서울로 가던 고흥시외버스는 0자리가 비었다. 오늘 고흥으로 돌아가는 서울시외버스는 여덟 자리가 빈다. 어제 서울서 장만한 책짐을 날개(택배)에 얹었다면 가벼웠을 테지만 지난밤에 심심했으리라. 지난밤을 심심하지 않게 보내면서 글쓰기는 조금 뒷전으로 밀렸는데, 그만큼 넉넉히 밤과 새벽을 누렸다.


  서울 가던 길에도 아무 데나 덥섭 앉으려는 아재가 있더니, 고흥 돌아가는 길에도 아무 데나 불쑥 앉으려는 아재가 있다. 버스일꾼은 “젊은 아가씨가 안 된다고 하네. 아저씨 탈락!” 하고 큰소리로 말한다. 맨뒷자리에 앉아서도 들린다. 뭔 뜬금없는 소리인가.


  책을 읽다가 내려놓는다. ‘아재 익살’이란 무엇일까? 아재는 철들 수 있을까? ‘책읽는 아재’는 너무 드물고, ‘배우는 아재’'는 더더욱 드물다. 그러나 아재들이 책을 안 읽더라도 구름을 올려다보기를 빈다. 아재들이 찬바람이(에어컨)를 몽땅 끄고서 바람을 마시다가 아이들한테 부채질을 해주기를 빈다. 아재들이 살림글을 쓰기를 빌고, 낫과 호미를 쥐고서 밭일을 하기를 빈다. 아재들이 통통 도마질을 하면서 된장찌개를 끓이고, 두바퀴를 달려서 저잣마실을 하기를 빈다.


  아재들이 앞치마를 두르고서 고무신을 꿰어야 온누리가 아늑하다. 거추장스러운 차림옷(양복)은 다 집어치우고서 민소매에 깡똥바지를 입으며 일하기를 빈다. 아재들이 ‘살림꾼’으로 거듭나야 서로 오붓하다. ‘머스마’는 ‘머슴’인 줄 알아볼 때에 모든 굴레가 풀리고 걷힌다.


  아재들아, ‘인문책’은 안 읽어도 되니, 그림책과 동화책을 읽자. 윌리엄 스타이그라는 미국사람은 예순 살을 훌쩍 넘고서야 그림책을 그렸는데 온누리 아이들이 사랑한다. 바바루 쿠니라는 미국사람은 할머니 이야기를 꾸준히 그렸는데 온누리 아이들이 참으로 사랑한다. 요새 나오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안 읽어도 된다. 2000년 언저리까지 나온 ‘오랜 아름그림책’과 ‘오랜 아름동화책’을 읽으면 된다. 권정생 동화책을 읽고, 린드그렌 동화책을 읽으면 된다. 엘사 베스코브 그림책을 읽고, 나카가와 치히로 그림책을 읽으면 된다. 헌책집에서만 만날 수 있는데, 《닉 아저씨의 뜨개질》 같은 그림책과 《말론 할머니》 같은 그림책을 품에 안는 아재가 늘어야, 누구보다 아재 그대들부터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19. 비내리는 멧밭



  마을에 멧밭이 있다. 할매할배는 차츰 나이가 들며 멧밭을 돌보거나 일구기 벅차다. 이 멧밭자리를 팔아주기 바라던 분(귀촌자)이 꽤 있었는데, 우리 마을 할매할배는 이분들한테는 안 팔고서 ‘태양광업자’한테 거의 넘겼다. 이제 조금 남은 멧밭 가운데 한쪽은 아직 곤드레밭이다. 새벽에 할배 일손을 도우러 갔다.


  저물어가는 여름이기에 새벽 다섯 시도 어둡다. 늦여름에 이르면 새벽 여섯 시도 어두울 테지. 비는 쉬다가도 내리고, 신나게 들이붓다가도 말갛게 쉰다.


  마을 할배는 참이라며 빵과 마실거리(요거트)를 건넨다. 나는 일할 적에는 안 먹는다. 주머니에 쑤셔넣고서 곤드레자루를 영차영차 여민다. 서울내기(도시인)는 곤드레가 어떻게 생긴 나물인 줄 알까? 곤드레나물이 밥자리에 오르기까지 시골 할매할배가 어떻게 땀흘리는지 알까. 젊다면 일흔두엇, 많다면 여든한 살 할매는 이 새벽에 곤드레를 벤다. 개구리·나비·나방·노린재·하늘소·거미 들이 바쁘다. 풀이웃한테는 집과 마을이 갑자기 사라지는 셈이다. 멧숲에서 꾀꼬리와 지빠귀가 운다. 날이 밝을 즈음에는 제비소리가 섞인다. 그리고 빗소리가 사이사이 적신다.


  자루를 묶고 여미며 아침이 환하다. 할매들은 할배 짐차를 타고서 아침 드시러 간다. 비가 함박으로 쏟아진다. 나는 반갑게 함박비를 맞으면서 밭일을 마무른다. 천천히 고샅을 걷는다.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빨래한다. 머리카락이 마를 때까지 책을 읽다가 믈까치와 직박구리가 후박알을 쪼는 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든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