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25. 흙날을 앞두고서



  어제그제 호되게 앓았다. 하루치기 서울일을 다셔오며 책더미를 내내 끌어안았는데, 책벌레질은 늘 하되, 이틀 사이에 찬바람이(에어컨)를 꽤 많이 먹었다. 시외버스·전철·책집·책숲·버스나루·가게 모두 찬바람이로 휘감긴 오늘날이다.


  틈틈이 볕바른 데를 찾아가서 걷고 서고 쉬었으나 크게 모자랐지 싶다. 마을 곤드레밭에서 일손을 거들며 오른 농약독이 덜 빠진 몸이라, 몸은 “나한테 왜 그래? 쉬며 살아날 겨를이 없잖아!” 하고 외쳤고 몸살로 나타났다. 아니, 몸살이라기보다 ‘찬앓이(냉방병)’라고 해야 맞다.


  문득 예전 서울살이(1995∼2003)가 떠오른다. 나는 서울에서 살며 바람날개(선풍기)조차 안 두었고, 부채도 딱히 안 썼다. 땀이 주르르 흐르면, 읽던 책으로 몇 자락 바람을 일으키고는 다시 책을 읽거나 글을 썼고, 책짐을 안고 지고 이면서 걸었다. 예전에는 책집에 찬바람이(에어컨)가 없었고, 바람날개도 겨우 하나 있을 뿐이었다. 책벌레는 겨울에 손이 곱으면서 추위를 잊고, 여름에 땀범벅으로 달아오르면서 더위를 잊는 길을 익혔다. 2003년에 서울을 떠날 무렵까지, ‘경인선’ 전철 가운데 바람날개만 있는 칸이 꽤 있었다.


  어제 낮과 저녁에 곁님과 두 아이가 주물러 주었다. 결리고 쑤시고 뭉친 투성이를 조금씩 달랬다. 오늘 아침은 두 아이한테 짐꾼 노릇을 고스란히 맡기고서 시골숲을 나선다. 언제 어디에서나 튼튼마음과 튼튼몸으로 걸어다니자고 생각한다. 큰길을 걸을 적에는 쇳덩이가 내뿜는 고약한 방귀가 넘친다. 서울내기는 꽃물(화장품·화학세재)범벅으로 매캐한 기운을 뿜는다. 여태까지는 고약방귀와 꽃물내음을 스스럼없이 씻고 녹이는 데에 마음을 기울였다면, 이제는 찬바람이가 스며들려고 해도 가볍게 내보내면서 해바람을 마시는 매무새로 일어서자고 생각한다.


  흙날을 앞두고서 말끔히 털리라 본다. 오늘저녁 이야기꽃을 앞두고서는 부산에 닿으면 낮잠을 길게 누려야지. 앓고 나면 새몸이다. 앓으며 쓰러지고 휘청일 적에는, 신나게 휘청휘청 햇볕길을 걸으면 된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22. 여덟 자리



  어제 서울로 가던 고흥시외버스는 0자리가 비었다. 오늘 고흥으로 돌아가는 서울시외버스는 여덟 자리가 빈다. 어제 서울서 장만한 책짐을 날개(택배)에 얹었다면 가벼웠을 테지만 지난밤에 심심했으리라. 지난밤을 심심하지 않게 보내면서 글쓰기는 조금 뒷전으로 밀렸는데, 그만큼 넉넉히 밤과 새벽을 누렸다.


  서울 가던 길에도 아무 데나 덥섭 앉으려는 아재가 있더니, 고흥 돌아가는 길에도 아무 데나 불쑥 앉으려는 아재가 있다. 버스일꾼은 “젊은 아가씨가 안 된다고 하네. 아저씨 탈락!” 하고 큰소리로 말한다. 맨뒷자리에 앉아서도 들린다. 뭔 뜬금없는 소리인가.


  책을 읽다가 내려놓는다. ‘아재 익살’이란 무엇일까? 아재는 철들 수 있을까? ‘책읽는 아재’는 너무 드물고, ‘배우는 아재’'는 더더욱 드물다. 그러나 아재들이 책을 안 읽더라도 구름을 올려다보기를 빈다. 아재들이 찬바람이(에어컨)를 몽땅 끄고서 바람을 마시다가 아이들한테 부채질을 해주기를 빈다. 아재들이 살림글을 쓰기를 빌고, 낫과 호미를 쥐고서 밭일을 하기를 빈다. 아재들이 통통 도마질을 하면서 된장찌개를 끓이고, 두바퀴를 달려서 저잣마실을 하기를 빈다.


  아재들이 앞치마를 두르고서 고무신을 꿰어야 온누리가 아늑하다. 거추장스러운 차림옷(양복)은 다 집어치우고서 민소매에 깡똥바지를 입으며 일하기를 빈다. 아재들이 ‘살림꾼’으로 거듭나야 서로 오붓하다. ‘머스마’는 ‘머슴’인 줄 알아볼 때에 모든 굴레가 풀리고 걷힌다.


  아재들아, ‘인문책’은 안 읽어도 되니, 그림책과 동화책을 읽자. 윌리엄 스타이그라는 미국사람은 예순 살을 훌쩍 넘고서야 그림책을 그렸는데 온누리 아이들이 사랑한다. 바바루 쿠니라는 미국사람은 할머니 이야기를 꾸준히 그렸는데 온누리 아이들이 참으로 사랑한다. 요새 나오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안 읽어도 된다. 2000년 언저리까지 나온 ‘오랜 아름그림책’과 ‘오랜 아름동화책’을 읽으면 된다. 권정생 동화책을 읽고, 린드그렌 동화책을 읽으면 된다. 엘사 베스코브 그림책을 읽고, 나카가와 치히로 그림책을 읽으면 된다. 헌책집에서만 만날 수 있는데, 《닉 아저씨의 뜨개질》 같은 그림책과 《말론 할머니》 같은 그림책을 품에 안는 아재가 늘어야, 누구보다 아재 그대들부터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19. 비내리는 멧밭



  마을에 멧밭이 있다. 할매할배는 차츰 나이가 들며 멧밭을 돌보거나 일구기 벅차다. 이 멧밭자리를 팔아주기 바라던 분(귀촌자)이 꽤 있었는데, 우리 마을 할매할배는 이분들한테는 안 팔고서 ‘태양광업자’한테 거의 넘겼다. 이제 조금 남은 멧밭 가운데 한쪽은 아직 곤드레밭이다. 새벽에 할배 일손을 도우러 갔다.


  저물어가는 여름이기에 새벽 다섯 시도 어둡다. 늦여름에 이르면 새벽 여섯 시도 어두울 테지. 비는 쉬다가도 내리고, 신나게 들이붓다가도 말갛게 쉰다.


  마을 할배는 참이라며 빵과 마실거리(요거트)를 건넨다. 나는 일할 적에는 안 먹는다. 주머니에 쑤셔넣고서 곤드레자루를 영차영차 여민다. 서울내기(도시인)는 곤드레가 어떻게 생긴 나물인 줄 알까? 곤드레나물이 밥자리에 오르기까지 시골 할매할배가 어떻게 땀흘리는지 알까. 젊다면 일흔두엇, 많다면 여든한 살 할매는 이 새벽에 곤드레를 벤다. 개구리·나비·나방·노린재·하늘소·거미 들이 바쁘다. 풀이웃한테는 집과 마을이 갑자기 사라지는 셈이다. 멧숲에서 꾀꼬리와 지빠귀가 운다. 날이 밝을 즈음에는 제비소리가 섞인다. 그리고 빗소리가 사이사이 적신다.


  자루를 묶고 여미며 아침이 환하다. 할매들은 할배 짐차를 타고서 아침 드시러 간다. 비가 함박으로 쏟아진다. 나는 반갑게 함박비를 맞으면서 밭일을 마무른다. 천천히 고샅을 걷는다.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빨래한다. 머리카락이 마를 때까지 책을 읽다가 믈까치와 직박구리가 후박알을 쪼는 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든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21. 마감



  달날에 서울 가는 버스를 미리 끊을 적에는 널널했다. 이른아침에 고흥읍에 나오니 자리가 꽉 찬다. 이다음에는 순천을 거칠까 하고도 문득 생각한다.


  논두렁을 걸어서 옆마을 07:40 시골버스를 탔다. 시골버스에서 노래를 두 자락 썼다. 서울버스에서는 무엇을 해볼까 하고 헤아려 본다. 차츰 구름이 걷히니 하늘바라기를 할 만하다. 손글씨로 낱말숲을 그릴 수 있다. 책을 읽거나 잘 수 있다. 다만 서울에 닿을 때까지는 내내 노래를 들으려 한다.


  고흥읍 버스나루 제비가 춤춘다. 서울버스를 기다리면서 날개춤을 지켜본다. 파란하늘이 드러나고 구름빛이 새하얗다. 새끼제비는 잘 날고, 어미제비는 신난다. 열두 마리가 모였다가 흩어지며 눈부시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21. 서울은 책집



  전남 고흥에서 탄 08:30 시외버스는 12:46에 서울에 닿는다. 13:50 즈음에 노고산동 헌책집 〈숨어있는 책〉에 깃들고, 17:00에 책꾸러미를 등과 가슴에 이고 안으면서 비로소 밖으로 나온다. 19:00에 화곡동 마을책집 〈악어책방〉에서 ‘마음꽃쓰기’를 편다. 안 늦게 움직이자고 여기는데 느긋이 닿을 듯싶다.


  등에도 손에도 책짐이다. 서울버스를 타고서 움직이면 한가람다리에서 길이 막히기도 할 테고, 책읽기에 수월하지 않다. 큰덩이 책짐을 두기에 나은 전철을 탄다. 둘레에서는 손전화를 들여다볼 테고, 나는 책을 읽는다. 책짐이 넉넉하기에 묵직하면서 배부르다. 책짐을 이고 안으면서 걷기에 땀이 비오듯 흐른다. 어떤 길손은 ‘책벌레 땀냄새’가 싫어서 옆으로 비키고, 어떤 길손은 손전화에 사로잡혀서 ‘책벌레 땀냄새’가 나건 말건 꿋꿋하다. 전철은 찬바람이 몹시 세기에 책땀은 벌써 식는다.


  오늘밤은 이 책타래로 홀가분하겠지. 한밤과 새벽과 아침에 읽을 책이 한가득이요, 고흥오로 돌아갈 기나긴 시외버스에서 읽을 책도 수북수북하다.


  다른 분들이 책을 안 읽거나 그냥그냥 ‘잘팔린책(베스트셀러)’에 꽂혀도 된다. 내가 ‘온책’을 읽으면 되고, 내가 ‘숲책’과 ‘푸른책’을 읽으면서 하늘빛과 들빛과 숲빛과 살림빛과 시골빛과 살림빛과 아이돌봄빛과 걸음빛과 글빛과 하루빛을 노래하면 즐겁다. 숲을 이루는 모든 씨앗은 아주 조그마한 한 톨이다. 책씨 한 톨이 가만히 춤추며 다니면 반짝인다.


  서울 신촌나루부터 우장산나루로 움직이는데, 아직 북새통(출퇴근시간)은 아니지만, 이동안 타고내리는 손님이 참 많다. 더 느긋이 걷자. 더 천천히 기스락으로 비키고 물러서서 걷자. 엊그제 시골마을 이웃 할배네 곤드레 멧밭에서 일손을 거들며 등허리랑 팔다리가 결렸는데, 책집을 이고 안고서 걸으니 찌뿌둥한 몸이 풀린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https://blog.naver.com/hbooklove/223942372546 (동영상 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