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사전투표



  시골에서는 제때뽑기(본투표)도 미리뽑기(사전투표)도 힘들다. 다 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때뽑기를 하는 날은 쉼날이기에 군내버스가 하루 한두 벌 다니니까 그냥 못 탄다. 그나마 우리 마을은 쉼날에 하루 한두 벌 다니되, 웬만한 마을은 아예 안 다닌다.


  시골사람은 이러거나 저러거나 고되다. 그러나 나는 이런 줄 알고서 시골에 깃들어서 산다. 어쩌다 있는 뽑기날에 다니기 좋은 곳이 아닌, 한 해 내내 호젓하고 짙푸른 숲을 누릴 푸른집에서 지내려는 마음이니까.


  올해에 제때뽑기를 하는 날에는 자칫 고흥에 없을 수 있기에, 미리뽑기를 하자는 마음으로 고흥읍에 나온다. 미리 ‘선관위·네이버’로 알아보고서 뽑는곳(사전투표소)을 짚고서 고흥읍 고흥여중으로 갔다. 그런데 고흥여중 둘레에도 어귀에도 알림글이건 뭣도 없다. 사람조차 없다. 뮐까? 뽑기를 한다는 고흥여중 체육관 앞까지 갔으나 여중생이 까르르깔깔 떠드는 소리만 울린다.


  나중에 고흥읍 농협 담벼락에 붙은 종이를 보고서 헛웃음을 지었다. 고흥여중은 사전투표소로 없다고 하네. 고흥읍에서는 고흥군민회관이란 데만 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다. 그곳(고흥군민회관)은 걸어가기에 너무 멀다. ‘면 안쪽 깊은 작은마을’에서 사는 사람이 시골버스를 타고 읍에 나와서 찾아갔다가 집으로 돌아갈 시골버스를 타러 다시 버스나루로 걸어가기에는 한참 멀다.


  아까 고흥여중 둘레를 떠올려 본다. 나 말고도 고흥여중으로 미리뽑기를 하러 가는 어르신을 여럿 스쳤다. 이분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느끼고 보내시려나? 이분들 헛걸음은 누가 토닥여 주려나?


  예전에는 시골에서 뽑기를 할 적에 마을지기(이장)가 탈탈이(경운기)에 할매할배를 태우고서 다녀왔다. 이러다가 짐수레(트럭)가 퍼진 뒤에는 마을지기가 뽑기날에 새벽부터 바지런히 짐수레로 할매할배를 태워서 오갔다. 이제 웬만한 시골마을에서는 할매도 할배도 시골버스를 타고서 읍내로 저잣마실이건 그냥마실이건 못 다닌다. 시골할매와 시골할배는 거의 기어다니다시피 한다. 이분들은 뽑기날이래서 뽑으러 오가지 못 하는 몸일 뿐 아니라, 시골버스마저 안 다니니 애써 나가려고 해도 나갔다가 들어올 길마저 없다. 뽑기란, 민주란, 자유란, 평등이란, 여기에 ‘전라도’와 ‘시골’이란 뭘까? 아무튼 나는 이튿날(5.30.) 시골버스를 타고서 면소재지로 나가야겠다. 이튿날은 그나마 흙날이라서 시골버스로 면소재를 다녀올 수 있다. 다만, 시골집에서 면소재지에 뽑기를 하러 다녀오려면 길에서 한나절(4시간)을 써야 한다. 시골은 그곳(투표소)에 걸어서 다녀올 수 없다. 2026.5.29.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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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싸우는 책(군대일기)

팔굽혀펴기



  어릴적에 팔굽혀펴기를 참 못 했다. 그저 힘들고 너무 고달팠다. 팔굽혀펴기라면 한둘을 겨우 할 만했고, 턱걸이라면 한둘을 가까스로 했다. 팔굽혀펴기도 턱걸이도 못 하는 나를 보는 또래나 언니한테서 “사내애가 팔힘도 없어서 어쩌려고?”라든지 “계집애보다도 못 할 수 있냐? ○○가 창피하지도 않냐?” 같은 꾸지람과 놀림말을 내내 들었다. 어린배움터에서 지낸 여섯 해 동안 ‘체육’이라는 이름으로 너른터에 나올 적에 제발 ‘팔굽혀펴기’나 ‘턱걸이’ 좀 안 시키기를 바랐다.


  팔심이 오지게 없지만 심부름꾼이나 짐꾼으로는 한몫을 했다. 우리집은 ‘연탄을 때는 5층 아파트(13평형)’였는데, 기름보일러가 갓 나와서 퍼질 적에 아버지는 1984해 무렵에 2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들였다(36달 나눠내기). 아버지는 집에 연탄 아닌 기름을 때자고 말하면서도 밤마다 술떡이 되어 돌아왔고, 다달이 나갈 목돈은 어머니가 곁일(부업)을 하면서 메꿨으며, 언니와 나는 어머니가 하는 곁일을 신나게 도와서 가까스로 값을 다 치러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기름보일러를 들이면 기름통에 기름을 받아서 날라야 한다.


  우리집은 넷째(4층)이다. 빈 기름통(20ℓ)을 둘 들고서 기름집으로 간다. 기름을 꾹꾹 눌러담아서 받은 뒤에 집까지 들고 간다. 고작 열 살인 아이가 두 손에 ‘꽉 찬 기름통’을 들고서 나른다. 한 해 내내 나른다. 이듬해에도 다음해에도 나르지. ‘계단만 있는 5층 아파트’를 떠나던 1991해 여름까지 신나게 기름통을 날랐다. 이동안 아버지라는 분은 기름통을 나른 적이 없다. 지난날에는 다들 이랬다. 이른바 ‘가부장권력’이었고, 언제나 아이들이 모든 심부름과 일을 맡아야 했다.


  어머니가 신포시장으로 저잣마실을 갈 적이면, 나는 언제나 같이 가서 짐꾼 노릇을 했다. 그러나 억지로 짐을 견디면서 날랐을 뿐이다. 나는 팔힘도 손힘도 다릿심도 여렸다. 어머니가 엄청난 저잣짐을 집까지 혼자 나르면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느꼈다. 집안일을 나랑 언니가 나눠야겠다고 여겼다. 힘이 없어도 젖먹던 힘을 짜내어 짐꾼 노릇을 했다. 그나마 팔굽혀펴기랑 턱걸이는 못 했어도, 오래달리기는 용케 버티면서 열손가락(55명 한 반)에 들었다.


  나는 힘없는 아이로 살며 늘 얻어맞는 나날인데, 열네 살(중1)에 또 마을 야살이(깡패)한테 얻어맞고서 돈을 빼앗기고 들어온 날, 우리 언니는 야살이보다 더 두들겨패면서 “어머니, 이 새끼 이대로 두면 안 되겠어요! 무술학원에 집어넣어서 주먹을 기르라고 해야지, 어떻게 맨날 쥐어터지면서 돈을 뜯기고 울면서 집에 들어와요?” 하면서 큰소리를 냈다. 언니는 내 멱살을 쥐고서 인천에 있는 내로라하는 무술학원을 하루 내내 돌았다. 한참 ‘대련·훈련’을 지켜보면서 “야, 여긴 안되겠다! 딴 데 가자!” 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다가 마침내 ‘박문여고 옆에 있던 특전무술 도장’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보고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여기는 좀 낫겠지!” 하고서 들어갔다. 언니는 ‘여고 옆 특전무술 도장’에서 펴는 ‘대련·훈련’을 한참 보더니 드디어 웃는다. 마음에 드는 듯했다. 그러나 옆에서 나는 ‘설마? 이런 데에 날 넣으려고? 나더러 죽으란 소리?’ 하면서 끔찍했다. 1988해에 ‘여고 옆 특전무술 도장’에 그날로 들어가야 했다. 이무렵 한 달에 이곳에 내는 삯은 55000원이었다. 그때 유도나 태권도나 합기도나 레슬링이나 뭐 이런저런 길을 가르치는 곳은 비싸야 15000원이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지난날 무술학원은 ‘돈을 받으면서 공식으로 두들겨패도 되는 곳’이었다. ‘여고 옆 특전무술 도장’을 다니는 첫 한 달 동안 ‘안 죽을 만큼 실컷 얻어맞았’는데, 날마다 멍이 시퍼렇게 들고 입술이 찢어져도 용케 안 빠지는 나를 지켜보던 길잡이(사범)가 한마디 한다. “넌 언제까지 맞을 생각이야? 너도 때려야지!” 하면서, 그곳에서 가장 어린 나더러, 적어도 서너 살부터 열 살이 더 넘는 ‘특전무술 유단자’한테 제대로 맞서라고 꾸짖는다. “넌 기술이 없잖아. 기술이 없으면 뭐가 있어야겠니? 맷집이 있으면 돼. 때리는 놈이 지칠 때까지 버티면, 그때 마지막으로 네가 한 주먹을 갈겨서 넘어뜨릴 수 있어. 우리 도장 2층에 헬스클럽 있는 거 알지? 넌 수련을 오기 전에 먼저 헬스클럽에서 한 시간씩 역기를 들고서 와!” 하고 을러댔다.


  이른바 ‘맞아죽’지 않으려고 날마다 한 시간씩, 나중에는 두 시간씩 쇳덩이를 들어 보았다. 처음에는 10kg도 버거웠지만 20kg과 30kg과 40kg을 지났다. 선 채로 한 손으로 60kg을 들고 내릴 수 있을 즈음, 이제 이곳에서 나보다 쇳덩이를 잘 드는 언니는 아무도 없다. 다만 내가 가장 무거운 쇠를 들고 버틸 수는 있되, 언제나 얻어맞기만 했다. 맷집만 늘었달까.


  한참 얻어맞은 지 석 달이 지날 무렵부터 팔굽혀펴기가 ‘이렇게 쉬웠나’ 하고 느꼈다. 어느새 턱걸이 서른∼마흔을 가볍게 할 수 있었다. 이곳(특전무술 도장)에서 시키는 턱걸이는 ‘빨리 해내는 길’이 아니다. 10초를 밑에서 있다가 10초에 걸쳐서 천천히 몸을 올려서 쇠작대 너머로 머리를 밀어올리고서 10초를 버틴 다음, 다시 천천히 10초에 걸쳐서 몸을 내려야 ‘1번 했다’고 쳤다. 이곳에서 시키는 팔굽혀펴기는 그냥 팔만 굽혀서 펴는 길이 아니었다. 손바닥을 바닥에 대는 자리를 바꾸어 숱하게 하고, 주먹으로 바닥을 대며 또 숱하게 하고, 다섯손가락과 세손가락과 두손가락과 한손가락을 바닥에 대면서 숱하게 갈마든다. 이러고 나면 오른팔만 쓰는 팔굽혀펴기를 하되, 손바닥과 주먹과 손등과 손가락을 다 다르게 쓰는 길을 시키고, 왼팔만 쓰는 팔굽혀펴기로 바꾼다. 이다음으로는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 팔굽혀펴기를 시킨다. 이때에도 두손과 한손을 모두 갈마든다. 이다음으로는 다른 사람이 뒤에서 두 다리를 잡은 채 팔굽혀펴기를 처음부터 모두 새롭게 시킨다. 이리하여 이곳에서 시키는 팔굽혀펴기만으로 40분쯤 걸리고, 모두 즈믄(1000)벌을 해내야 한다. 날마다.


  우리나라에서는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면 싸움터(군대)를 하염없이 미룰 수 있다. 나는 열린배움터에 들어갔되 그만두었다. 그만두기 무섭게 종이(입대영장)가 날아들었고, 열린배움터를 그만둔 지 한 달이 안 된 1995해 늦가을에 싸움터에 끌려갔다. 그러려니 여기면서 논산훈련소에 갔고, 두들겨패고 괴롭히고 윽박지르는 굴레에서도 “난 너희 노리개는 아니야. 난 언제나 나를 사랑하면서 돌봐.” 하고 혼잣말을 했다. 또래(훈련소 동기)는 두들겨패고 괴롭히고 윽박지르는 이곳에서 지쳐서 나가떨어지는데, 나는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앞서 ‘그곳(여고 옆 특전무술 도장)’에서 가르쳐 준 팔굽혀펴기를 잊지 않으려고 꼬박꼬박 몰래 했다.


  이러던 어느 날 훈련소 조교가 나를 봤다. “이 새끼 봐라? 우리 훈련이 안 힘든가 봐? 이 새끼는 이제 쉬라고 자유시간을 줬더니 혼자 팔굽혀펴기를 하고 지랄이네? 너 그렇게 운동 좋아해? ○○○ 그러면 이제 팔굽혀펴기 200회 실시한다, 실시!” 하고 뇌까린다. 훈련병이 무슨 재주가 있는가. 없지. 그래서 나는 “훈련병 ○○○번 최종규, 팔굽혀펴기 200회 실시!” 하고 따라한다(복명복창). 싸움터에서는 따라하기(복명복창)를 먼저 안 하면 “안 했다”고 친다. 아니, 안 했다고 치기 앞서 주먹이나 발이 먼저 날아온다.


  나는 그무렵 하루에 팔굽혀펴기를 혼자서 즈믄(1000)씩 몰래 했기에 200벌을 따로 더 한들 대수롭지 않았다. 곧 “훈련병 ○○○번 최종규, 팔굽혀펴기 200회 종료했습니다!” 하고 외쳤다. 조교는 말이 없었다. 멍한 듯했다. “어, 그래? 200회 실시했네. 앞으로 또 이러지 마, 이 미친새끼야!” 하고는 곧 달아났다.


  훈련소에서도 자대에서도 놈(상급자)이 시키는 모든 얼차려와 주먹질과 발길질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열네 살부터 얼결에 기른(?) 맷집 때문일까. 놈(상급자)은 놈(하급자)이 모두 따르면 두려워하더라. 때로는 무서워하더라. 이 놈(놈새끼)이 설마 끝까지 해낼 줄이야 싶으면서 눈 가장자리가 파르르 떨린다. 그곳(군대)에서 스물여섯 달 동안 놈(상급자)이 파르르 떠는 눈망울을 보았다. 다만, 그뿐이다. 그들이 파르르 떨든 말든, 그들이 터무니없는 짓을 시키든 말든, 그들은 스스로 갉고 스스로 무너지고 스스로 망가지려고 멍청짓을 시키면서 괴롭히고 밟으려고 한다. 그들이 시키는 모든 멍청짓을 바람과 바다처럼 가만히 흘려넘기면서 “그래, 기쁘게 받아들일게, 즐겁게 할게.” 하고 여기면 어느새 다 지나간다.


  1995해 한겨울 논산훈련소에서 ‘벌 얼차려로 팔굽혀펴기 200회’를 갑자기 해내야 했지만, 이미 ‘나살리기’를 하면서 나를 지키려고 날마다 저녁이나 밤에 몰래 했기에, 오히려 나를 괴롭히려던 놈(상급자)이 달아났고, 그놈은 그 뒤로 나를 안 쳐다보았다. 그런데 2026해 늦봄에 어느 싸움터에서 어느 놈(상급자)이 “멀쩡한 젊은이”를 괴롭히려고 팔굽혀펴기를 억지로 시키면서 몸을 망가뜨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국방부장관·대통령·국가인권위원회장·여성가족부장관·민주당대표·진보당대표’ 같은 이들은 어디에서 뭘 하며 무슨 말을 하는가?


  팔굽혀펴기는 스스로 하고 싶은 사람이 스스로 몸을 살펴서 알맞게 해야 할 뿐이다. 남이 시키면서 괴롭힐 짓이 아니다. 팔굽혀펴기를 하고 싶으면 ‘니들(상급자)’이 스스로 해야지. ‘국방부장관·대통령·국가인권위원회장·여성가족부장관·민주당대표·진보당대표’도 나란히 해야지. 입꾹닫을 할 일이 아니다. 싸움터로 끌려가서 뒹굴어야 하는 앳된 젊은이가 피눈물을 흘릴 끔찍한 짓을 이제는 모조리 걷어치워야 한다. 2026.5.28.


"제발 멈춰달라" 묵살한 강제 팔굽혀펴기…병사 근육 녹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6099737?sid=102


군대서 팔굽혀펴기하다 근육 녹았다…피해 가족 “엄벌해달라”

https://n.news.naver.com/article/119/000309533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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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큰길로 가겠다 (2025.7.12.)

― 대구 〈북셀러 호재〉



  우리는 배움터를 다닐 수 있지만, 그저 ‘우리집’을 ‘우리배움터’로 삼을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굳이 다녀야 한다고 여길 적에는 “해삯(연봉)이 많은 일자리를 잡으러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마음이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꿈을 찾아나설 적에는 어떤 배움터도 굳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꿈길을 가려는데 구태여 달구지(자동차)를 몰아야 하지 않고, 서울(대도시)에 가야 하지 않으며, 재주(특기·자격증)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요, 어버이는 어버이입니다. 엄마아빠가 스스로 사랑하는 일이 있으면 됩니다. 사랑하는 일에 온마음을 다하는 모습으로 함께 지내면,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스스로 사랑할 일을 천천히 알아보고서 찾아나섭니다.


  낮볕을 누리면서 대구로 건너옵니다. 고흥에서 대구를 오는 길은 멀지만, 부산에서 대구는 가깝습니다. 〈북셀러 호재〉에 깃들어 책을 살핍니다. 작은책집을 들르는 젊은이가 꽤 많습니다. 다만, 들르기는 하되 손에 책을 쥐기보다는 슥 구경하고 나가는 발걸음이기 일쑤입니다.


  책숲(도서관)을 만남터(데이트코스)로 삼는 젊은이도 더러 있겠지만, 책숲에서 만날 적에는 책을 읽을 테지요. 책집을 만남터로 삼는다면, 책집에서 책을 한 자락쯤 사읽는 마음이기를 바라요. 잎물집(카페)에 들어가서 슥 둘러보고서 나가지 않겠지요. 밥집에 들어가서 슥 구경하고서 나가지 않을 테고요.


  지난날 이오덕 님이 대구 어느 분한테 드린 책이 여럿 〈북셀러 호재〉에 들어왔습니다. 책이 이렇게 돌고도는군요. 가만히 쓰다듬습니다. 어린이글을 모은 《큰길로 가겠다》라는 글모음마냥, 우리는 누구나 ‘숲길’과 ‘사람길’과 ‘노래길’과 ‘푸른길’과 ‘하늘길’과 ‘사랑길’을 갈 노릇이지 싶습니다.


  손끝으로 짓고, 손빛으로 나눕니다. 짤막하게 적는 손글씨야말로 온마음이 흐르는 사랑이지 싶어요. 굳이 높님(영웅)을 기려야 하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작은님으로 마주하면서 작은숲을 짓는 작은책집을 헤아리면 즐겁습니다.


  지난날 책빛을 밝히던 ‘창비’를 비롯한 여러 펴냄터는 이제 ‘캐릭터북’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냅니다. 배움책(교과서)·그림책·푸른책·삶책(인문책)도 매한가지입니다. 이 터무니없는 고름을 짚거나 따지는 책이웃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좋아하거나 그저 고개돌립니다. 책마실을 마치고서 느즈막이 부산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는 널널합니다. 대구·부산이라는 두 고을 사이는 푸르게 일렁이는 멧숲입니다. 낮에는 멧자락과 구름을 보느라 자꾸 책을 덮고, 밤에는 어두워서 쉽니다.


ㅍㄹㄴ


《우리가 뽑은 대장》(한국글쓰기회 엮음, 지식산업사, 1985.10.10.)

- 최춘해 선생님, 이오덕.


《큰길로 가겠다》(울진 옹전국민학교 3학년 2반, 한길사, 1987.2.25.)

- 한길바람개비문고 2

- 이 책을 읽게 될 어린이 여러분은 여기 나오는 어린이들같이 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쓰는 글쓰기 공부를 해 주셔요.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은 글쓰기를 즐거워하는 동안에 저도 몰래 쑤욱쑥 자라날 것입니다. 누구든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공부, 그것이 글쓰기입니다. (머리말/3쪽 : 이오덕)


《살아 있는 아동문학 제1권》(이오덕 엮음, 인간사, 1983.12.1.)

- 일반적으로 아동문학 작가들은 동심이란 말을 너무 쉽게 쌓아 올려 놓고 그 안에 편안히 앉아 오락물을 즐기듯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많은 동화작가, 동시인들이 담 저편에 있는 아이들의 살아 있는 세계를 모르고 있고, 아니면 남의 나라의 것이나 따르려고 한다. 오늘날 우리 아동문학에서 가장 큰 문제로 들어야 할 것이 주체의 상실과 말장난의 문장이다. 이것은 문학의 생명이 이미 시들어 버렸음을 말함이니, 아무리 책의 겉모양을 야단스리 꾸며서 눈을 끌려고 한들 죽은 문학을 아이들이 돌보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머리글/2쪽 : 이오덕)


《오늘의 아동문학 5 소년 홍길동》(이주홍, 인간사, 1985.5.30.)

《韓國漢字語에 관한 硏究》(이용주, 삼영사, 1974.8.20.)

《부강 경북 161호》(문화공보실, 경상북도, 1969.9.)

- 성냥 다섯 자락

《고양이 약제사》(박정완 글·현민경 그림, 문학동네, 2023.11.9.)

《난 네 편이야》(심상정, 인플루엔셜, 2017.11.14.)

《환경, 인식과 비판》(김시약, 따님, 2013.11.4.)

《저 마포구 사람인데요?》(다니엘 브라이트, 한겨레출판, 2020.8.31.)

#DanielBright

《책으로 세계를 짓는다!》(이현화·유진 엮음, 한길사, 2007.6.1.)

《장면들》(손석희, 창비, 2021.11.12.)

《꽃 피우는 아이 티스투》(모리스 드뤼옹/나선희 옮김, 길벗어린이, 1999.6.10.첫/2005.5.6.9벌)

《북한사람들이 말하는 북한 이야기》(좋은벗들 엮음, 정토출판, 2000.6.17.첫/2000.11.5.2벌)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이주윤, 드렁큰에디터, 2020.6.20

.)

《2인조》(이석원, 달, 2020.12.2.첫/2021.1.7.7벌)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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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시골에서 서울로



  시골에서 서울로 간다. 시골내기가 서울바람을 쐬려고 간다. 엊저녁에 곁님이 “서울에 왜 가요?” 하고 묻기에 “그림책 《열두 달 소꿉노래》를 펴낸 곳에서 그림지기(화가)를 미국에서도 모시고, 그림책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해서 거기 가려고요.” 하고 들려준다.


  마을앞에 잿더미가 수북하다. 여태 마을앞에 있던 마을집(회관)을 허문 부스러기이다. 곧 크게 새 마을집을 세운다고 한다. 시골버스는 읍내에 닿고, 읍내에서 시외버스가 빠른길을 가른다. 고흥읍 곳곳을 보면 숱한 길나무가 줄기치기로 시달린다. 요새는 가지치기가 아닌 줄기치기를 끔찍하게 하더라. 빠른길을 한창 달리자니 길가에 우거진 아름드리를 마구 솎거나 뽑아낸 자국이 보인다. 벌써 잎이 다 시든 나무가 있고, 아직 푸른잎을 버티는 나무가 있다.


  서울(도시)에서 살면서 마음을 푸르게 돌보면 서울집(도시거주)도 푸른집이게 마련이다. 시골에서 살지만 마음이 하나도 안 푸르면 시골집(농촌거주)도 안 푸르게 마련이라서 잿집이다. 풀밥을 먹기에 풀몸(푸른몸)으로 바뀌지 않는다. 풀포기에 흐르는 풀빛을 읽고 느껴서 우리 마음으로 이으려 할 적에 비로소 풀몸(푸른몸)으로 가꿀 수 있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도 몸이 바뀌되, 무슨 마음을 머금느냐에 따라서 몸을 가꾼다. 밥은 몸을 바꾸되 가꾸지는 못 한다. 마음은 몸을 바꾸기보다는 가꾸는 길이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못 하거나 안 하는 길”을 자꾸 쳐다보면서 “오늘 내가 이곳에서 즐겁게 짓고 펴고 노래하는 길”을 잊어갈 적에는 푸른집도 푸른마음도 푸른밥도 푸른말도 모두 잃어버린다. 고기밥을 즐기면서도 몸이 멀쩡한 사람은 “먹어서 바꾸려는 몸”이 아닌 “마음을 돌보면서 가꾸려는 몸”이다. 풀밥을 하지만 몸이 더 지치고 고단하면서 자꾸 불길(분노)이 솟는 사람은 “밥만 바꾸면 다 바뀌리라 잘못 여긴 탓”에 그만 짜증과 싫음과 미움과 불길이 끝없이 쳇바퀴질이게 마련이다.


  풀을 두 포기 먹어야 푸르지 않다. 풀을 한 포기 귀퉁이만 살짝 손끝으로 스쳐도 풀몸(푸른몸)으로 피어날 수 있다. 풀잎만 먹는데 몸이 푸른빛이지 않은 애벌레가 얼마나 많은가? 그저 풀잎만 갉았을 뿐이고, 고치를 틀고서 날개돋이를 했을 뿐인데 눈부신 날개를 매단 범나비에 제비나비에 모시나비에 부전나비에 네발나비에 그야말로 아름답다. 꽃가루와 꿀을 먹기 앞서 풀만 먹었으나 ‘몸’이 아닌 ‘마음’을 가꾸려고 하기에 스스로 거듭난다.


  바다를 가르는 고래가 바다에서 풀만 먹는가? 머리가 뛰어나다는 돌고래는 바다에서 무엇을 먹을까? 눈밭에서 어버이사랑을 베푸는 얼음새(펭귄)는 풀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 북극곰은 무엇을 먹는가? 곰은 풀과 꽃과 낟알과 열매도 즐기지만, “풀만 먹는 곰”이란 없다. 풀을 먹기에 사람빛을 되찾지 않는다. 푸른마음을 먼저 돌보면서 가꾸려고 할 적에 비로소 찬찬히 사랑이라는 빛을 펴면서 둘레를 포근히 품어서 풀어낸다. 밥이 안 대수롭다는 뜻이 아니라, 밥에만 얽매이면 밥보(바보)가 되고 만다.


  나는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푸르게’ 살려는 마음으로 아침저녁과 밤낮을 짓고 그리고 펴려고 하는 나날이다. 비록 푸르지 않은 말과 몸짓과 마음이 곧잘 드러나더라도 늘 푸른길을 걸어가려는 그림을 늘 새롭게 그린다. 나는 ‘걷는이’이다. 나는 두다리로 선다. 나는 두눈으로 본다. 나는 두손으로 짓는다. 나는 두귀로 듣는다. 나는 왼눈만 뜨거나 오른눈으로만 볼 마음이 아니다. 나는 왼눈과 오른눈을 나란히 뜨면서 셋쨋눈을 한결같이 틔우려고 한다. 나는 왼손만 쓰거나 오른손만 쓰지 않는다. 나는 왼손으로도 오른손으로도 글씨를 쓰고 부엌칼을 다루고 두바퀴(자전거)를 달릴 뿐 아니라, 왼손으로도 오른손으로 나란히 공을 던지고 받을 수 있다. 나는 왼날개만 펴지 않는다. 나는 오른날개만 펴지 않는다. 나는 두날개를 나란히 펴면서 가운몸에 사랑이라는 빛줄기를 담아서 가슴을 열려고 한다.


  오늘 나는 푸른별이라는 집으로 간다. 시골에서 서울로 일하러 가는 길이되, 돈벌이가 아닌 ‘일’을 하려는 마음이다. 바람이 일듯 일을 한다. 바다가 일듯 일을 한다. 휘파람을 일으키듯 일을 한다. 이야기를 잇듯 일을 한다. 읽고 익혀서 일구려고 일을 한다. 나랑 너를 사랑이라는 눈빛으로 이으려고 일을 한다. 2026.5.15.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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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책은 안 사도 됩니다만 (2025.10.25.)

― 부산 〈여기서책〉



  이제부터는 우리가 먼저 하나씩 바꾸어 갈 노릇입니다. 잘못한 누구를 탓하거나 나무라거나 손가락질하기는 매우 쉽습니다만, 탓질과 나무람질과 손가락질은 짧게(10초만) 끝내고서, 온하루(남은 23시간 59분 50초)는 새길짓기와 새길찾기와 새길보기와 새길나눔이라는 빛살로 나아갈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부터 가꾸어 가면 둘레 이웃도 천천히 느껴서 함께 나아갈 만하려나 하고 어림합니다. 누가 우리 길을 따라와야 하지 않습니다. 너랑 내가 남들을 좇거나 구경해야 하지 않습니다. 너랑 나도 같아요. 너는 너대로 너답게 노래하고 날갯짓하면 즐겁습니다. 나는 나대로 나답게 춤추고 활갯짓하면 새롭습니다.


  부산 일광 잿밭(아파트단지) 사이에 조고마니 깃든 작은책숲(마을도서관)에서 조촐히 이야기꽃을 편 아침입니다. 이제 수영 쪽으로 건너갑니다. 부산을 크게 한 바퀴 돌듯 움직이는 길에 노래를 쓰고 책을 읽습니다. 이따금 눈을 감고서 ‘전철 바깥’ 하늘과 땅에서 어떤 숨붙이가 가을빛을 펴나 하고 헤아립니다.


  어느새 〈여기서책〉에 닿습니다. 책집 앞 빈터에 아주까리가 씨앗을 맺는군요. 우리집 마당 아주까리는 아직 잎만 내는데, 부산은 고흥집에 대면 으레 스무 날쯤 이릅니다. 마을 어린이는 아주까리를 알까요? 책집 앞을 지나가는 아이가 있으면 “아그들아, 너그는 아주까리 아나? 참 곱다.” 하고 말을 걸고 싶습니다.


  오늘 〈여기서책〉으로 책마실을 오기 앞서 ‘책집노래’를 드디어 한 자락 맺었습니다. 지난 5월부터 ‘여기서책’을 글이름으로 붙여서 쓰려고 했는데 어쩐지 다섯 달 동안 헤맸고, 10월 1일에 매듭지었어요. 글판에 열여섯 줄을 옮겨적으며 혼자 설렜습니다. 즐겁게 마실하는 작은책집 모든 지기님한테 그곳 이름을 딴 노래를 써서 건네고 싶거든요.


  다 다른 책집은 참으로 다 다르기에 다 다른 숨결을 맞아들여서 노래 한 자락으로 여밀 수 있다고 느낍니다. 온누리 모든 책은 다 다르기에, 어느 책을 읽든 느낌글 한 자락을 모두 다르게 쓰게 마련입니다. 하룻내 마주하는 우리집 아이들하고 나누는 말도 언제나 다르면서 새롭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짓는 밥은 얼핏 똑같은 차림새로 보여도 늘 다르며 새롭게 손빛을 담습니다.


  골목을 품은 마을책집은 골목빛이 흐르면서 빛납니다. 마을책집이 품는 골목은 책빛이 감돌면서 반짝입니다. 작은마을과 작은책집은 작은책을 사이에 놓고서 작은새가 어느새 날아와서 작은노래를 베풀며 뽀로롱 날아가니, 작은하루를 작은마음으로 나누는 작은씨를 펼치는 작은마당입니다. 작은쉼터가 참으로 하늘쉼터입니다.


ㅍㄹㄴ


《일인분의 삶》(이슬기. 글이, 2019.4.4.첫/2022.6.10.고침)

《고양이에 대하여》(도리스 레싱/김승욱 옮김, 비채, 2020.5.22.첫/2020.6.26.2벌)

#DorisMayLessing #OnCats (2008년)

《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애덤 바일스 엮음/정혜윤 옮김, 열린책들, 2025.2.10.첫/2025.3.25.2벌)

#TheShakespeareandCompanyBookofInterviews #AdamBiles

《꼬르륵, 돈 먹는 돼지입니다만》(금수정 글·이주혜 그림, 반달서재, 2024.4.11.)

《울면서 그린 그림》(반지수, 마음산책, 2025.3.25.)

《의좋은 형제는 광합성으로 벼를 키워》(윤초록 글·김윤정 그림, 풀빛, 2023.4.28.)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숲노래 밑틀·최종규 글·사름벼리 그림, 세나북스, 2025.8.5.)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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