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4.10. 잎물 한 모금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둘레에서는 늘 건드립니다. 우리말 ‘건드리다’는 가볍게 대거나 살짝 닿는 몸짓도 가리키지만, 일부러 긁거나 할퀴려고 자꾸자꾸 부아를 일으키려는 몸짓도 가리킵니다. 한자말 ‘자극(刺戟)’도 매한가지입니다. 더구나 우리말 ‘건드리다’는 이웃이나 동무를 함부로 괴롭히는 짓까지 담아내요.


  누가 우리를 ‘건드릴’ 적에는 반가울 수 있되, 서운하거나 싫거나 끔찍할 수 있습니다. ‘건드리’는 손짓은 좋거나 나쁘지 않아요. 그저 우리가 늘 새롭게 배우는 길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인 ‘건드리기’입니다.


  저는 늘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노라니, 둘레에서 저를 일부러 건드리려는 분이 수두룩합니다. 반갑게 다가와서 말을 섞거나 노래하려고 어깨를 톡톡 건드립니다. 그리고 “아무리 최종규 씨라고 해도, 이런 말까지는 못 고치고 못 바꾸겠지?” 하면서 히죽히죽 웃으며 건드리는 분이 있습니다. “네깟놈이 뭔데 내 글을 그렇게 고쳐쓰라고 해?” 하면서 건드리려는 분도 있고요.


  열 해쯤 앞서 어느 날 어느 이웃님이 빙그레 웃으면서 “다른 말은 다 우리말로 바꾸더라도 ‘차·다(茶)’는 어쩌시렵니까? ‘차’와 ‘다’는 못 바꾸겠지요? 바꾸더라도 ‘차’와 ‘다’라 하는 맛을 못 살리겠지요?” 하고 한마디를 하시더군요. 이웃님 말을 가만히 듣고서 헤아려 보았습니다. 이러고서 “저는 물을 그냥 물로 마실 뿐, 따로 끓이거나 달여서 마시기를 즐기지는 않습니다. 물부터 제대로 알고 느끼고 받아들여야 우리 몸을 이루는 수수께끼뿐 아니라, 온누리 모든 숨결을 이루는 몸에 깃든 실마리를 풀거든요. 사람은 따로 끓이거나 달여서 물을 마시기는 하지만, 사람을 뺀 어느 짐승도 물을 안 끓이고 안 달여요. 게다가 풀꽃나무한테 끓인 물을 조금이라도 주면 그만 타죽거나 시들거나 괴로워서 몸부림을 쳐요. 사람은 참 유난하지요. 그냥 마시면 될 물을 굳이 끓이니까요. 그런데 국이나 찌개는 끌인 물이고, 밥도 끓여서 먹는 낟알인데요, 임금님이나 벼슬아치나 나리는, 집안일이나 집살림을 안 하는 채, 또 논밭을 일구지 않으면서, 심부름꾼이 바치는 ‘끓인물’과 ‘달인물’을 마셨을 텐데, 수수하게 논밭을 일구고 살림을 짓는 흙사람과 들숲사람이라면 ‘차·다’를 어떻게 여기고 풀어낼는지 헤아려 볼 만하구나 싶습니다.” 하고만 말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말을 맺고서 여러 해 헤아렸어요. 이때 뒤로 곧잘 ‘끓인물·달인물·우린물’을 곰곰이 즐기고 돌아보았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쑥잎과 감잎을 그만 ‘덖’기로 하면서, 그냥 햇볕말림으로 ‘쑥내림물’과 ‘감잎우림물’을 마시기로 하면서 문득 눈을 반짝였습니다. “옳구나, 모든 ‘차·다(茶)’는 잎이로구나. 잎을 나물로 안 삼고 물로 삼는 ‘차·다(茶)’라면, ‘잎으로 내린 물’이야. 그러니까 ‘잎내림물’이고, 단출히 ‘잎물’이라 하면 어울리구나. ‘내림물’이나 ‘꽃물’이나 ‘꽃내림물’이라 할 때도 있을 테고.” 하고 혼잣말이 터졌습니다.


  길은 하루아침에 찾아내어도 즐겁습니다. 삶길을 여러 해에 걸쳐서 찾아보아도 기쁩니다. 말길을 열 몇 해나 서른 몇 해 만에 풀어도 새롭습니다. 이리하여 저는 ‘잎물’을 마시고, ‘잎물그릇’을 받아들입니다. ‘잎’을 떠올리면서 물을 끓이거나 달여서 우리거나 내리면, 나무 한 그루가 베푸는 푸른숨빛에 서리는 햇볕과 바람결을 살랑살랑 느끼고 누릴 수 있습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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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4.5. 일손 아닌 작업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지난날에는 누가 ‘작업’을 한다고 말하면 적잖은 어른은 “뭐가 ‘작업’이여? ‘일’이지? 우리는 작업 안 혀. 일을 하지.” 하고 시큰둥하게 대꾸하곤 했습니다. 이러다 어느 무렵부터 ‘일’을 한다고 말하는 어른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집을 짓건 밥을 하건 옷을 짜건, 죄다 ‘작업’이라는 일본스런 한자말로 나타냅니다. 어느 쪽에서는 ‘일’을 하던 사람이 ‘노동’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근로·근무’를 하고, 어느 켠에서는 ‘작업’을 하고, 또다른 켠에서는 ‘업무·직무’를 합니다. 지난날에는 글을 쓰던 어른이 “글을 쓴다”고 말했다면, 어느덧 “집필작업을 한다”라든지 “문학창작을 한다”라든지 ‘작가노동·글노동’ 같은 말씨가 번집니다.


  곰곰이 보면 ‘글’을 쓰거나 읽는 사람도 줄어듭니다. 이제는 ‘문학’이나 ‘텍스트’를 쓰거나 읽는다고 여깁니다. 몸을 ‘몸’이라 않고 ‘육체·바디’라 하듯, 마음을 ‘마음’이라 않고 ‘정신·마인드’라 하듯, 느낄 적에도 ‘느끼다’라 않고 ‘감정·감수성·질감·감촉·감각’이라 하듯, 집을 ‘집’이라 않고 ‘주택·건물·건축물·부동산·아파트·빌라·주거지·주소지·자택·고향·본거지·거주지·가정·가족’이라 하듯, 말을 ‘말’이라 않고 ‘언어·어학·어·단어’라 하듯, 삶을 삶으로 돌아보면서 스스로 눈뜨는 길하고는 아주 멀찍이 떨어진 늪입니다. 그저 늪이되 늪인 줄 모르고 잠깁니다.


  일본스런 한자말 ‘작업’을 손질하는 길은 수두룩합니다. 지난 1994해부터 이 말씨를 손질하는데, 2026해에 이르러 얼추 250가지 즈음으로 손질할 길을 이모저모 찾아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250가지 즈음으로 여러 우리말을 고루 쓴 말살림이었는데, 스스로 말빛을 잊고 말길을 잃는 셈이라 할 만합니다. 앞으로 2036해 무렵에 이르면 300가지 즈음으로 손질길을 살필는지 모릅니다. 땀흘리고 힘쓰고 애쓰는 모든 곳에 ‘작업’이라고 할 테니까요. 손쓰고 손질하고 손보고 손대는 모든 곳도 ‘작업’이라고 퉁칠 테니까요. 가꾸고 일구고 다듬고 짓고 빚고 돌보는 모든 곳도 ‘작업’이라고 뭉뚱그릴 테고요.


[일본스런 한자말 ‘작업’ 손질하기]

https://blog.aladin.co.kr/hbooks/17197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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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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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3.13. 그동안 그간 그새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외마디한자말 ‘그간(-間)’이 있습니다. 얼핏 보면 ‘그동안·그사이·그새’로 고쳐쓰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이 외마디한자말을 우리 손으로 털거나 씻거나 치우지 못 하느라, 여러 곳에 스멀스멀 번져요. 이 말씨 하나는 오래도록 우리가 알맞게 쓰던 숱한 말씨를 조금씩 잡아먹습니다.


  엊그제에 보기글 하나만 처음으로 짚다가 더 헤아리면서 스물네 꼭지를 챙겼습니다. 보기글 하나만 놓고서 살핀다면 ‘그동안·그사이·그새’로 손질하고 끝났을 텐데, 대여섯 꼭지를 넘고 열 꼭지를 지나고 열다섯 꼭지를 거쳐서 스무 꼭지를 넘으니 손질말이 자꾸자꾸 나옵니다. 바야흐로 스물네 꼭지에 이르니 더 손질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이리하여 우리말로는 ‘그동안·이동안·그사이·그새·내내·내도록·늘·느루·노·노상·지난·지나오다·지나가다·살다·살아오다·살아가다·살아내다·여태·여태껏·여태까지·이제·이제는·이참·이판·이제껏·이제까지·오늘까지’처럼 나타낸 자취를 읽어내었습니다.


  한자말 ‘사막(沙漠/砂漠)’이 있습니다. 밑뜻으로 보면 ‘모래땅·모래언덕·모래밭·모래벌’처럼 네 가지로 옮기면 됩니다. 그러나 이 한자말 하나는 씨앗처럼 번져서 온갖 곳에 자꾸자꾸 스며들어요. 이러구러 온갖 보기글을 더 짚고 살피고 헤아리면서 ‘모래땅·모래언덕·모래밭·모래벌·허허벌판·허허벌·허허들·허허들판·허허땅·허허판·거칠다·메마르다·없다·있지 않다·거친들·거친땅·거친벌·거친터·거친판·쓸쓸하다·허전하다·허거프다·허수하다·허수’처럼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르게 손질할 우리말을 찾아내었습니다. 다만 2026해 첫봄 언저리에 이만큼 찾아낼 뿐입니다. 한 해가 흐르고 이태가 지나며 너덧 해를 더 보내노라면 손질말을 새록새록 더 찾아낼 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나흘쯤 지나면 올해에 새로 태어나는 책을 받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노래(시)를 맡고, 미국에서 지내며 그림붓을 쥐는 유한아 님이 그림을 맡은 책입니다. 《열두 달 소꿉노래》(문화온도 씨도씨, 2026.2.22.)가 곧 찍음터에서 따끈따끈하게 나온다고 합니다. 펴낸날은 ‘2026.2.22.’이되 책은 ‘2026.3.16.’ 즈음 비로소 책집에 들어갈 듯합니다. 요새는 ‘3.16.’에 나오는 책에 ‘펴낸날 4.16.’로 적기도 하는데, 이 그림책은 펴낸날이 거꾸로 거의 한 달 앞입니다. 그만큼 펴냄터에서 막바지까지 더 살펴보고 가다듬고 매만지는 품을 들였다는 뜻입니다.


  그림책은 ‘한벌읽기’를 못 하는 읽을거리입니다. 그림책은 으레 ‘즈믄읽기(1000번)’를 하는 읽을거리입니다. 어린이는 그림책을 으레 즈믄읽기나 두즈믄읽기(2000번)를 하면서 마음을 살찌우고 생각을 북돋웁니다. 우리가 어른이나 어버이라면, 어린이만큼 즈믄읽기나 두즈믄읽기를 못 하더라도, 온읽기(100번)나 쉰읽기쯤 마음을 기울이고 손길을 보태면, 아이어른이 함께 눈망울을 밝혀서 글눈을 깨우치는 실마리를 저마다 스스로 찾아낼 만하다고 봅니다.


  밭짓기를 하는 분은 한두 해 짓는들 밭일이나 해바람비나 풀꽃나무를 아예 모릅니다. 열 해쯤 지어도 밭과 들과 숲을 조금 어림할 뿐입니다. 열다섯 해를 넘기고 스무 해쯤 이르러야 비로소 “밭일을 조금 알겠어.”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풋풋한 젊은일꾼’이 ‘어질게 물드는 이야기꾼’으로 거듭나는 길에는 거의 마음을 못 쓴다고 느낍니다. 젊은일꾼 누구나 이녁 일감을 스무 해쯤 느긋이 누리고 지으면서 “이제 좀 눈을 뜨겠네!” 하고 알아채도록 북돋우고 지켜보고 도울 줄 아는 얼거리여야 하지 않을까요?


  스무 해 즈음 일구는 손길을 빛내는 나이가 마흔∼쉰입니다. ‘제대로 일꾼·이야기꾼’에 이르는 나이인 마흔∼쉰부터 스무 해를 슬기롭고 어질게 땀흘리라고 북돋우고 거들고 돌아볼 줄 아는 나라로 거듭난다면, 예순∼일흔 나이에 어린이한테 ‘살림씨앗’을 베풀며 물려주는 ‘착한 일꾼·이야기꾼’으로 피어날 만하지 싶습니다. 일흔쯤 이른 나이란, 아이어른 모두한테 착하고 참하며 차분히 이야기꽃과 일꽃을 씨앗으로 이어주는 때라고 봅니다. 이렇게 아흔 살까지 살아간 뒤에는 호젓이 뚜벅뚜벅 거닐거나 두바퀴를 달리면서 온누리를 새롭게 배우는 길을 갈 만하지요. 이러면서 온살(100)을 맞이하면 기쁘게 노래하면서 온돈(전재산)을 마을아이한테 남기면 될 테고요.


  다같이 소꿉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빕니다. 어린이만 소꿉노래를 부를 까닭이 없습니다. 이제는 아이어른이 함께 소꿉노래를 부르면서 소꿉살림을 짓고, 소꿉글을 쓰고, 소꿉말을 나누고, 소꿉꽃으로 소근소근 속빛을 밝히는 하루를 살아낼 때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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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숲하루 2026.3.9. 단점과 디메리트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일본책을 옮긴 글을 읽다가 ‘디메리트’라는 영어를 보았습니다. 설마 이런 영어를 둘레에서도 쓰나 싶어 살피니 적잖은 곳에서 제법 쓰는 듯합니다. 한자말 ‘결점·단점·약점’조차도 낡다고 여기니 영어를 쓰는 셈일 텐데, 우리말로는 ‘못하다·모자라다·못나다’를 비롯해서 ‘나쁘다·낮다·짧다’에 ‘떨어지다·흉·흉허물·꼬투리·덜미’에다가 ‘먼지·부스러기·티·티끌’이며 ‘안 되다·되지 않다·없다·바보’나 ‘비다·빈틈·빈곳·빈구석’에 ‘틈·틈바구니·틈새·잘못·허술하다·후줄근하다·빠뜨리다·빠지다’가 있고, ‘섭섭하다·아쉽다·안타깝다·어설프다·어수룩하다·엉성하다’와 ‘아프다·켕기다·타다·틀리다·어렵다·힘겹다·힘들다’도 있습니다. 이미 우리 스스로 오래도록 온갖 말씨로 다 다른 곳을 저마다 즐겁게 나타내는 길이 있어요. 그저 우리가 스스로 잊다가 잃고, 잃다가 팽개치고, 팽개치다가 남이 좋아 보인다고 덥석 붙잡을 뿐입니다.


  모자라다고 여기니 못 보고 못 합니다. 못 한다고 여기니 끝내 모르고, 모르고 말기에 알아차리지 않고, 알려고 안 하니까 알을 안 깨는데, 알을 안 깨려고 하니 앓거나 아프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알려면 참말로 끙끙 앓고 아파야 합니다. 앓지 않거나 아프지 않으면 알지 않아요. 이른바 미리맞기(백신)를 자꾸 몸에 넣으면서 “안 앓거나 안 아프”려 하는데, 안 앓거나 안 아프려 하는 탓에 오히려 몸이 망가지고 마음까지 다칩니다. 이러면서 ‘알다’하고 한참 멀어요. 이란이며 파키스탄이며 적잖은 이슬람 나라에서는 가시내를 사람으로 안 치는 굴레를 잇습니다. 이미 이런 여러 나라에서는 일부러 ‘여학교’를 노려서 총을 쏘거나 미사일이며 폭탄을 터뜨려서 괴롭히거나 죽이기 일쑤였고, 이 여러 나라에서는 ‘여학교 테러 및 학살’을 일삼았어도 이런 짓을 벌인 싸울아비가 값을 치른 바도 없습니다. 우리가 책을 좀 읽는다면 ‘말랄라’ 이야기를 읽기도 했을 텐데, 파키스탄 아이 말랄라도 죽을고비를 꽤 넘겨야 했습니다. 《사막의 꽃》이라는 책을 남긴 ‘와리스 다리’라는 분도 가시내한테는 배울 틈을 아예 빼앗는 나라(정부·가부장권력) 민낯을 낱낱이 들추었습니다.


  예부터 푸른별 모든 보금자리를 일구는 누구나 ‘말’을 다 알고 익혔습니다. ‘말’을 안다고 할 적에는 ‘살림 + 짓다’를 안다는 뜻입니다. 집살림과 밥살림과 옷살림이라는 세 가지뿐 아니라 ‘마음짓기·생각짓기·꿈짓기·사랑짓기’를 제대로 안다는 뜻입니다. 이리하여 집밥옷뿐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꿈과 사랑을 지어서 아기를 낳을 줄 아는 모든 어른은 스스로 말을 짓고, 이러한 말이 “마음을 담는 소리”인 줄 깨닫고는 “삶과 살림과 사랑을 사람으로서 숲빛으로 나타내는 노래”로 이어서 아이한테 물려주었습니다.


  이제는 푸른별 거의 모든 곳이 서울(도시)로 바뀌면서 ‘말’을 잊고 잃습니다. 말을 잊고 잃는다고 할 적에는 ‘살림 + 짓다’를 통째로 잊거나 깡그리 잃는다는 뜻입니다. 이제 누가 집을 지을 줄 아나요? 돌과 나무와 풀과 흙으로 짓는 집이 아니라면 집짓기를 모르는 셈입니다. 손수 들숲메바다에서 건사한 숨결로 밥을 짓지 못 한다면 밥짓기를 모르는 셈입니다. 옷짓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집밥옷뿐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꿈과 사랑을 짓는 길마저 까무룩 잊고 잃어요. 이러다 보니 뜬금없거나 쓸데없거나 후줄그레하거나 볼썽사납거나 엉터리로 ‘남말(외국말)’을 기웃거립니다. 우리 스스로 일구는 손길을 잊었으니 “남떡이 커 보인다”는 옛말마냥 중국말이나 일본말이나 미국말을 슬그머니 끌어들입니다. “스스로 삶을 지어서 펴는 말빛”을 스스로 버렸거든요.


  아직 모른다면 이제 배우고 익히고 살아내어 알아가면 됩니다. 여태 모르고 모자랐으니 오늘 새롭게 배우고 익히고 살림하며 알아보면 됩니다. 늘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삶입니다. 누구나 왼발과 오른발을 갈마들며 걷듯, 한 걸음과 두 걸음을 차분히 내딛는 살림입니다. 남하고 나를 자꾸 견주려 하니 스스로 할퀴면서 못나거나 못생긴 사람으로 여깁니다. ‘남’이 아닌 ‘너’를 볼 노릇입니다. ‘놈’이 아닌 ‘이웃’을 마주할 일입니다. 나하고 너가 만나서 새롭게 서는 길이기에 ‘서로·세모·서다·세다(셈·생각·새로)’를 품는 ‘우리(울·하늘)’입니다. ‘우리’라는 낱말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하늘을 이루는 너와 나”를 가리키는 마음을 담은 빛입니다. 우리가 따로 ‘우리말’이라고 할 적에는 “나와 너가 하늘처럼 한마음이자 파란바람으로 어울리면서 즐겁게 일하고 놀며 나누는 말”이라는 속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말 = 나말·너말 = 나다운 말·너다운 말 = 함께 서는 말 = 같이 걷는 말 = 하늘말·바람말·빛말’이라는 얼개이지요.


  한겨레가 한나라를 이루면서 쓰는 말이라면 ‘한글’과 맞물려서 ‘한말’입니다. 한글·한말을 즐겁게 이웃하고 나누면서 우리글·우리말이라는 이름에 깃든 속빛을 읽어내려고 할 적에 스스로 말빛이 반짝반짝합니다. 우리는 “깨끗한 우리말”이 아닌 “마음을 담아 즐겁게 노래하는 우리말”을 나누면 됩니다. 우리는 “티없는 우리말”이 아닌 “생각을 짓고 밝히면서 꿈을 그리고 일구는 우리말”을 서로서로 하나하나 여미고 가다듬으면 됩니다. 여태 못 했으니 이제부터 함께하면 되고, 이제껏 안 했으니 오늘부터 새삼스레 하나씩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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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숲하루 2026.2.16. 설날은 집에서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누구나 마찬가지일 텐데, 저는 설날이며 한가위를 집에서 보냅니다. 2015년 무렵까지는 어버이집에도 다녀왔으나, 그즈음부터 ‘우리집’에서 조용히 고즈넉이 차분히 가만히 누립니다. 해가 갈수록 설쉼(설 앞뒤로 쉼날)이 긴 터라, 미리 든든히 저잣마실을 해놓습니다. 다섯 해쯤 앞서만 해도 해날이나 쉼날에도 시골버스는 다녔는데, 이제는 아예 안 다니다시피 합니다. 마침 지난가을에 두바퀴 뒤쪽이 망가져서 고쳐야 하는데, 첫봄을 코앞에 둘 무렵까지 안 고치느라, 면소재지로 저잣마실을 다녀오지도 못 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광주·대구로 떠나기도 하는 설이되, 으레 서울·부산·광주에서 시골로 가는 사람이 더 많은 설입니다. ‘우리집은 시골집인 터라, 그저 이곳에 얌전히 머물기만 해도 ‘시골빛을 누리는 설날’입니다. 옛날로 치면 저랑 곁님은 한어버이 나이일 수 있기에, 그냥그냥 고만고만 시골집에 깃들어 늦겨울이 저무는 빛을 바라보면서 느긋합니다. 나날이 높아가는 해를 바라봅니다. 빨래를 한 짐 합니다. 두 아이가 나눠서 집안을 쓸고닦습니다.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밥을 차립니다. 서로 일손을 나눠서 느슨히 하면 됩니다.


  겨우내 지켜보노라면, 귤은 껍질을 까서 내놓아야 새가 잘 쪼는데, ‘새를 길들이는 셈’이라고 느껴서 껍질을 안 깐 채 내놓습니다. 이러면 이틀사흘쯤 그냥 있으나, 나흘쯤 되면 “쳇! 네(사람)가 까서 내놓으면 좀 좋아?” 하고 툴툴거리면서 부리로 콕콕 쪼아서 알뜰히 먹습니다.


  누구나 설에 집에서 보냅니다. 어버이집에서 보내기도 하고 ‘우리집’에서 보내기도 합니다. 설이며 한가위에도 일손이 바쁘면 그냥 ‘우리집’에 머물면서 일하는 분도 많습니다. 저도 이 시골집에서 하루 내내 바지런히 일합니다. 낱말책을 여미는 일꾼은 한 해 가운데 하루도 안 쉽니다. 모두 일날입니다. 이른바 ‘이레일(주7일근무)’입니다. 이레일을 하면서 집일을 도맡습니다. 뭐, 예부터 모든 어버이와 어른은 언제나 이레일에 집일을 기꺼이 맡으면서 도란도란 아이를 돌보는 하루를 빚었습니다. 1995년부터 이레일로 살았고, 더 들여다보면 어린배움터나 푸른배움터에서 배움길을 걸을 적에도 하루조차 “배우기를 쉰 날이 없”으니 여덟 살이던 1982년부터 늘 이레일인 셈입니다.


  설에 할 일이 수북수북 있되, 설쉼에 나긋나긋 읽으려고 장만한 책이 200쯤 있어서, 바깥마루에 집 곳곳에 더미를 이룹니다. 늦겨울볕을 쬐면서 천천히 펴서 읽습니다. 빨래가 햇볕에 마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솥에 앉힌 밥이 끓는 소리를 들으면서, 뭇새가 날아들어 빗물에 몸을 씻고 목을 축이다가 나무로 뽀로롱 날아가서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설날을 찬찬히 누립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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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문선명 사진책도

재미있어 보여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곧 이 사진책 이야기도 남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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