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5.7. 마지막은 있다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2025년 닷쨋달에 책 한 자락을 새로 낳습니다. 곧 태어날 책이기에 여러 달째 손질하고 또 손질하는 나날입니다. 펴냄터 지기님도 끝없이 되읽으면서 손질해 주시고, 저도 가없이 되읽으면서 빈틈이나 틀린곳을 헤아립니다. 지난 넷쨋달부터 ‘참말로 마지막’이라고 여겼지만, ‘마지막 다음 마지막’을 이었고, ‘또 마지막 다음 마지막’을 거쳐서 ‘참말 마지막 다음 마지막’인데, 아무래도 한 벌을 더 살펴야 ‘찍음터(인쇄소)로 들어가기 앞서 마지막’을 볼 테지요. ‘거의 마지막’이라고 여기고 또 여기고 다시 여기고 거듭 여기는 하루하루입니다. 개구리와 밤새가 베푸는 노랫가락을 들으면서 조금 숨을 돌립니다. 다시금 눈과 손에 불을 켜기 앞서 기지개를 켜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일을 돌아봅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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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숲하루 2025.5.5. 내가 쓰는 사전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부산 거제동 마을책집 〈책과 아이들〉에서 깃새글꽃(상주작가)으로 2025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밭을 일굴 텐데, 이 가운데 하나로 ‘내가 쓰는 내 사전’이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밭은 날짜잡기를 마치고서 알리려 합니다. 먼저 5월 16일부터 잇는 ‘내가 쓰는 내 사전’에 함께할 이웃님을 모신다는 말씀을 여쭙습니다. 사뿐히 함께 깃들면서 낱말 하나를 함께 헤아리면서 새롭게 풀어내는 글놀이와 글수다를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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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숲하루 2025.4.30. 마음으로 함께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인천에서 나고자랐으나, 1994년에 서울에 있는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니, ‘인천에 남은’ 또래는 “넌 이제 인천사람 아니네?” 하고 여겼습니다. “뭔 소리야? 그런 말이 어딨어?” “서울물을 먹으면 사람이 바뀌어.” “난 서울물이 아니라 미국물을 먹어도 언제나 나일 뿐이야.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배우면 스스로 바꾸어야 하는데, 어떻게 나를 안 가꾸고 안 배우면서 살 수 있니?” “넌 서울에 가면 바뀔 테니까 이제 인천사람이 아니지. 벌써 서울사람이 된 듯한데?” “뭔 소리니? 나는 날마다 새로 배우기에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이니까 날마다 바뀌는 사람인데, 고작 인천에서 서울로 삶터를 옮긴 대서 ‘사람이 바뀐다’면, 그때에는 ‘맛갔다’고 해야지. 나는 앞으로 어디에서 살든 인천말씨를 건사하면서 늘 나답게 살 생각이야. 너야말로 사람이 바뀌지 마.”


  저는 1994∼2003년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서울말씨에 물들지 않고서 인천말씨로 살았습니다. 2003년 가을부터 충북 충주를 오가며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과 책을 갈무리할 적에도 충주말씨나 음성말씨나 ‘이오덕 말씨’에 물들지 않고서 ‘인천에서 나고자란 내 말씨’를 그대로 이었습니다. 2007년 4월 5일에 인천으로 돌아오니 그때 동무들이 하는 말. “넌 어떻게 안 바뀌냐? 야, 딴 애들은 한 달만 서울에서 일해도 바뀌던데, ○○이 있잖아, 걔 좀 봐.” “너흰 내가 예전에 한 말을 잊었니? 나는 늘 배우는 사람이라서 난 똑같은 적이 아예 없어. 다만, 내가 쓰는 말씨는 앞으로도 한결같겠지. 말씨는 언제나 똑같을 테지만, 말씨는 안 바뀔 테지만, 말씨에 담는 마음과 생각은 앞으로도 언제나 새롭게 가다듬을 생각이야.”


  2011년에 전남 고흥으로 옮기고서 어느새 열다섯 해를 전남 시골내기로 살아가지만, 제 입에서 흐르는 말씨는 ‘1975년 인천말씨’ 그대로입니다. 인천 도화1동과 주안동과 신흥동3가와 신선동과 만석동과 용현동과 숭의동과 송림동과 송현동과 송월동과 관동과 신포동과 전동 …… 내동 사동 송학동 연안동 산곡동 화수동 화평동 부개동 관교동 옥련동 …… 이제는 날이 갈수록 오래동무가 살던 마을이름과 골목이름이 차츰 가물가물한데, 인천 새하늬마높 골골샅샅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동무가 누빈 길을 모두 거닐면서 모든 곳이 제 발바닥과 손바닥과 눈코귀입에 고스란합니다. 그래서 제 귀로는 ‘만석동 말씨’와 ‘화수1동 화수2동 말씨’가 다른 줄 느낍니다. 도원동 말씨와 유동 말씨와 용동 말씨도 다른 줄 느끼고, 송월동1가와 송월동2가 말씨가 다른 줄 느껴요.


  누구는 묻지요. “무슨 인천말씨(인천사투리)가 있다고 그래?” 저는 되묻습니다. “서울사람은 고흥말씨와 장흥말씨와 보성말씨가 뭐가 다른 줄 몰라요. 그러나 보성사람은 고흥말씨와 장흥말씨하고 다른 보성말씨를 쓰는 줄 알고, 읍내와 면소재지뿐 아니라 마을(리) 말씨까지 다 다른 줄 낱낱이 느끼고, 마을에서 집집마다 말씨가 다른 줄 느껴요. 거꾸로 전라남북도 사람은 인천말과 부천말과 안산말이 뭐가 다른 줄 못 느끼지만, 부천사람은 인천말뿐 아니라 부평말도 다른 줄 느끼고 알아요.”


  지난 3월 28일에 태어난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을 즐기고 나누는 조촐한 자리를 4월 30일에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시다락방〉에서 꾸렸습니다. ‘인천에서 나고자란 인천작가’라지만, 정작 인천시립도서관에서 여태 책수다를 해본 적이 없고, 전남 고흥에서 살아도 막상 고흥군립도서관이나 전남도립도서관에서 책수다를 한 일조차 없습니다. 오히려 ‘뜬금없다’ 싶은 부산시 여러 도서관에서 여러 책수다를 폈고, 2025년에는 부산 마을책집 〈책과 아이들〉에서 ‘상주작가’로 일곱 달 동안 여러 일을 꾀하려고도 합니다. 그래도 전남 순천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푸름이하고 책수다를 딱 한 자리 연 적은 있군요.


  ‘시·군·구 도서관’에서 책수다나 이야기(프로그램·강연)를 펴려면, ‘시·군·구’한테 밉보일 말이나 글을 한 자락이라도 써서는 안 됩니다. 시장이나 군수나 구청장이나 도지사가 ‘지역개발·부흥·일자리창출·경제성장’을 이루겠다면서 밀어붙이는 여러 삽질(토목공사)을 나무라거나 따지는 글꾼(작가)은 어떤 책수다도 열지 못 합니다. 이른바 글쓰기를 하며 글삯을 번 1992년부터 2025년까지 돌아보니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책수다를 펴려고 책을 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스로 배운 바를 갈무리하려고 책을 썼고, 아직 아이조차 없던 무렵에도 “나중에 우리 아이한테 물려주려는 마음”으로 책을 내놓았습니다. 나부터 스스로 배우려고 쓰는 책이라서, 나를 이웃이며 동무로 여기는 누구나 함께 즐기려는 뜻으로 책을 쓰고 낱말책을 여밉니다. 2016년에 내놓은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하고, 2025년에 내놓은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은 인천과 서울과 양구와 충주와 전남과 고흥과 부산이라는 고장이 무엇보다 크게 밑거름이 되어서 태어났다고 여깁니다. 아무리 늦어도 2034년에는 새 낱말책으로 내놓으려고 서른 해째 붙잡는 꾸러미가 있는데, 오늘 하루도 등짐살이를 기쁘게 이으려고 합니다.


  발걸음이 닿는 고을마다 그 고을에 뿌리내린 작은책집으로 찾아가서 몇 자락씩 책을 사들여서 온나라 온사람 마음이 흐르는 말빛과 말씨와 말결을 숲빛으로 풀어내는 길을 차곡차곡 여미려고 합니다. 알아볼 사람을 바라면서 쓰는 책이 아닌, 스스로 알아보면서 쓰는 책입니다. 아무리 인천이 ‘공장도시·침대도시·마계도시’라 하더라도, 뿌연 밤하늘 너머로 틀림없이 별이 있습니다. 모든 곳이 ‘도시’라는 이름보다는 ‘마을’과 ‘골목’과 ‘살림터’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느슨히 신나게 뛰노는 곳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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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숲하루 2025.4.23. 아찔하게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4월 19일에 부산으로 이야기마실을 떠났고, 4월 21일에 부산서 대구를 거쳐 서울로 간 뒤에, 4월 22일 아침에 이야기꽃을 펴고서 이날 14:40 버스를 타고서 밤에 고흥으로 돌아왔습니다. 밖에서 보내는 나흘이란, 쉬거나 잠들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길입니다. 그런데 고흥집에 돌아온 저한테 고흥교육지원청에서 글자락을 보내었고, 바로 이튿날 나래터로 가서 ‘폐교임대신청서’를 손글씨로 적어서 내야 하더군요. 그나마 고흥집에서 네 시간쯤 딱딱한 나무바닥에 등허리를 펴고서 누우니 살짝 개운했고, 4월 23일 한낮에 아주 낡아 몹시 덜컹거리는 시골버스를 타고서 고흥읍으로 갑니다. 한참 걸으며 이모저모 꾸린 뒤에 고흥교육지원청에 글자락을 보냈고, 큰아이가 바란 고기빵(햄버거)에 곁님이 바란 신물(식초)를 장만해서 집으로 돌아온 저녁에는 그야말로 눈이 감기다 못해 쓰러질 판입니다.


  곁님은 제가 집으로 돌아오기만 기다린 듯싶습니다. 짐을 내리고서 발을 씻으려 하니, “그러니까 spirit과 soul을 우리말로 어떻게 옮겨야 해요?” 하고 묻습니다. 우리 낱말책은 우리말을 제대로 못 다룹니다. 그런데 영어 낱말책도 ‘spirit·soul’을 어떻게 풀이해야 하는지 모르는구나 싶어요. 다만, 지치고 졸린 몸으로 곁님한테 두 낱말을 옮기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을 텐데 하고 속으로 혼잣말을 하자니, 마음으로 어떤 목소리가 들립니다. “네 몸이 졸립거나 힘들대서, ‘네’가 졸립거나 힘들지 않잖아?”


  그야말로 참말입니다. ‘내 몸’이 힘들거나 아프거나 졸립거나 지친다고 느끼더라도 ‘나’라는 넋과 얼과 빛과 숨이나 마음이 힘들거나 아프거나 졸립거나 지칠 수 없습니다. ‘내 몸’은 살덩이라는 옷을 입고서 삶을 겪어서 배우는 구실입니다. ‘내 몸’은 어느 때에 힘들다거나 아프다거나 졸립다거나 지친다거나 심심하다거나 지겹다거나 골난다거나 싫다거나 좋다거나 밉다거나 괴롭다거나 어찌저찌하다고 느끼면서, 다 다른 때와 곳마다 다 다른 삶과 하루를 배웁니다.


  그러나 ‘나’는 ‘몸’이 아닙니다. ‘나’는 ‘몸’을 입을 뿐, “몸은 나일 수 없”습니다. 내가 마주하는 ‘너’도 마찬가지예요. 나도 너도 ‘몸’은 나와 네가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넋으로 마주하고, 얼로 헤아리고, 빛으로 주고받고, 숨으로 나누고, 마음으로 생각합니다.


  더없이 졸립고 지친 터라 ‘몸뚱이 아닌 숨빛’으로만 곁님하고 마주하면서 한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곁님은 끝없이 묻고 새로 묻습니다. 저는 끝없이 대꾸하고 들려주고 보탭니다. ‘낱말그림’까지 큼직하게 그리면서 하나하나 짚고, 어떻게 다른 결이면서, 어떻게 우리말로 옮겨서, 어떻게 아이곁에서 우리 스스로 배우며 익히는 길을 풀어낼 적에 ‘깨닫는 오늘’로 걸어갈 수 있는지 속삭입니다.


  드디어 곁님이 궁금한 곳을 다 푼 듯싶습니다. 바야흐로 드러누울 수 있습니다. 나뭇바닥에 몸을 눕히고서 눈을 감으니 곧장 꿈누리로 날아갑니다. 다섯 시간을 죽은 듯이 잠들고서 개구리소리에 깨어납니다.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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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0일

이튿날 부산 마을책집 <책과 아이들>에서 

'바보눈' 모임을 꾸립니다.

이날 나누는 밑글을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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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기 모임 (12걸음)
― 바보눈 + 나살림 : 바라보고 보살피는 눈 + 나를 살리는 씨앗


곳 : 부산 거제동 〈책과 아이들〉과 함께
때 : 2025년 4월 20일 (일요일) 10∼12시
님 : 숲노래 × 곳간출판사
곁 : 《80세 마리코 1∼16》


얼개
ㄱ. 이오덕을 바라보면서 나를 보살피는 눈을 틔운다.
ㄴ. 드높은 봉우리가 아닌, 아이 곁에 있는 어른을, 아이한테 쉬운말로, 상냥하게 이야기 들려주며, 어깨동무하는 마음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고서, 우리 손으로 적으면서, ‘나살림’으로 나아간다.
ㄷ. 이오덕을 읽어가면서 ‘나’라는 마음과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생각한다.
ㄹ. 여태 이오덕 책은 두루 읽었으니, “‘이오덕’이라면 어떻게 읽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나를 사랑으로 읽을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


줄거리 : ‘모임’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 글쓰기연구회 ……)

  모인다고 하는 뜻인 ‘모임’입니다. ‘모이다·모으다’는 옛꼴이 ‘모히다·모흐다(뫼흐다)’이고, 밑동은 ‘뫃(모 + ㅎ)’입니다. 모으거나 모인다고 할 적에는 덩이를 이룬다는 뜻이고, 덩이를 이룬 하나이기에 ‘몸’이고, 덩이로 바라보기에 ‘모습’이고, 덩이가 덩치를 이루어 커다랗기에 ‘뫼(메)’입니다.

  모이거나 모은다고 할 적에는 “하나로 크게 이루거나 어울리려는 뜻”이라고 할 만합니다. 따로 있는 ‘낱’은 “작은 하나”라면, 여럿을 덩이로 이룬 ‘몸·모임·뫼’는 “커다란 하나”입니다. ‘낱’이 따로 있는 작은 하나이듯, 벼나 밀이나 보리나 조나 수수 같은 풀열매는 ‘낟·낟알’이라 합니다. 뭉치기에 ‘뭇사람’이지만, 뭇사람을 이루는 “작은 하나”는 ‘나’예요. 숲을 이루는 ‘나무’는 숲으로 보자면 ‘나무모음·나무뭉치’일 테지만, 낱낱으로 나무가 있기에 숲으로 크게 어우릅니다.

  꾸역꾸역 모아서 덩치만 크다면 ‘뚱뚱’하다고 여깁니다. 알맞게 모아서 뜻과 길과 빛을 아름답게 펼치면 ‘든든·튼튼·단단’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몇몇 노림길로 기울거나 치우치면 ‘딱딱’할 뿐 아니라, ‘닫아’버리는 ‘담’으로 치닫습니다. 여럿을 아우르며 아름답게 나아가는 몸과 모습과 모임이라면 ‘담는(담다)’ 구실로 단단하면서 서로 닮고 다른 빛을 펼 텐데, 그저 뭉뚱그려서 얕게 노림길을 꾀할 적에는 판박이처럼 닮다가 닳고 말아서 아무런 사랑도 꿈도 빛도 없이 단단하다가 딱딱하게 굳어서 바스라지는 굴레입니다.

  낱과 낟인 나로 있기에 마냥 작거나 초라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무처럼 가만히 서서 “나와 마찬가지로 나무로 있는 너”하고 만나서 ‘우리’가 함께 숲을 이룰 만합니다. 그렇지만 낱과 낟인 나를 팽개치면서 그저 뭉뚱그리려고 하면 ‘나·너·우리’를 모조리 밟게 마련이라서, 이때에는 “닫힌 울타리”인 ‘가두리(가둔 우리)’로 치우치니, ‘모임’이 그만 글담(문단권력)처럼 갑갑하게 얽매입니다.

  이오덕 님은 혼자서 온나라 모든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는 줄 알았기에, 온나라 여러 길잡이(교사)가 작게 뜻을 모으고 힘을 여미어서 “어린이 곁에서 함께 살림을 짓는 하루를 누리면서 같이 글그림을 펴는 작은모임”을 바랐습니다. 처음에는 ‘경북글쓰기회’로 꾸렸고, 이 작은모임을 ‘한국글쓰기연구회’로 키웠습니다.

  그런데 모임을 키우는 동안에도 사람(회원)들은 ‘모임꾸러미(회보)’에 글을 잘 안 냈습니다. 모여서 이루는 술자리만 좋아하는 사람(회원)이 너무 많았습니다. 모처럼 글을 쓰더라도 어린이 살림길하고는 동떨어진 동심천사주의나 ‘문교부 작문교육’에 갇히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해에는 총무 일을 맡은 어느 해직교사가 ‘회비 5000만 원’을 빼돌리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모임은 어떻게 열고 어떻게 꾸리며 어떻게 나아갈 적에 스스로 ‘아름몸’을 이루면서 ‘사랑모습’이라는 빛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는 이 대목을 곰곰이 생각할 때입니다. 여러모로 보면, 아무나 나라지기(대통령)나 벼슬꾼(공무원)을 맡지 않을 노릇이되, 누구나 나라지기나 벼슬꾼을 맡아도 될 만큼, 우리 모두 고르게 눈을 틔우고 마음을 가꾸며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숨결로 설 노릇이어야 알맞습니다. 뛰어나거나 빼어나거나 훌륭하다고 여기는 사람만 길잡이나 일꾼 노릇을 해야 하지 않아요. 누가 어느 자리에 앉든 알맞고 아름답게 살림살이를 북돋우는 일꾼으로 설 수 있어야 마땅합니다.

  글쓰기를 다루거나 가르치는 일을 보아도 알 수 있어요. 잘 써야 하는 글이 아닌, 우리 삶을 살림짓는 손길과 눈길로 풀어내어 사랑스럽게 숲빛으로 담아낼 줄 아는 글이면 됩니다. 모든 사람은 숲목숨입니다. 모든 사람이 누리는 밥옷집은 숲들메바다에서 비롯합니다. 숲빛과 들빛과 멧빛과 바다빛으로 물들면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서기에 사람이고, 이러한 사람으로서 문득문득 그날그날 글살림을 짓고 말살림을 펼 뿐입니다.

  우리는 문학이나 문화나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림을 짓는 손길로 글도 쓰고 노래도 부르고 몸짓(연극)도 하고 이야기도 짓고 두런두런 두레를 이루어 일하고 놀이하고 쉬는 사람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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