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58 걸어서



  걸어서 다닙니다. 다리가 있어서 걷습니다. 스스로 부릉이(자가용)를 안 거느리기도 합니다만,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사람은 걸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릉거리는(운전) 동안에는 글을 못 쓰고 못 읽기도 합니다만, 다리로 걸으며 길을 느끼고 땅을 헤아리고 마을을 돌고 바람을 쐬고 하늘을 보고 풀꽃나무한테 속삭이고 동무랑 나긋나긋 이야기하고 아이들 손을 잡으며 노래하지 않을 적에는, 우리가 무슨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까요? 걸어서 보는 사이에, 걷다가 겪는 틈에, 걸으면서 생각하는 짬에, 스스로 빛나는 눈길이 샘솟습니다. 걷고서 쉬면, 걷다가 멈추면, 걷던 아이를 안거나 업고서 토닥이며 재우면, 마음 가득 피어오르는 숨결이 어느덧 사랑으로 자랍니다. 서둘러 써야 한다면 글이 아니지 싶습니다. 서둘러 읽어야 한다면 책이 아니구나 싶습니다. 언제나 이곳을 헤아리며 쓸 글이고, 늘 오늘을 살피며 읽을 글이고, 누구나 스스로 사랑하며 쓸 글이고, 서로서로 돌보며 읽을 글입니다. 뚜벅뚜벅 걷습니다. 느긋느긋 걷습니다. 발자국 소리가 없이 걷습니다. 아이처럼 통통 뛰며 걷습니다. 바람을 탄 새처럼 걷습니다. 갓 깨어난 나비처럼 춤추며 걷습니다. 온누리를 걸어서 누리기에 글이 깨어나고, 눈망울을 환희 틉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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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1.9.24. 부천에서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바깥일을 보러 마실하는 길에 작은아이가 함께합니다. 아버지하고 다니자면 참으로 오래 자주 걷고, 시골길이 아닌 서울길(도시 도로)을 하루 내내 가로질러야 합니다만, 씩씩하게 걷고 놉니다. 낮은 낮대로 하늘이 막혀 구름을 올려다볼 틈이 없는 큰고장입니다. 하늘이 파랗게 트여도 하늘이 아닌 길을 살핍니다. 조금만 하늘이나 나무나 풀꽃을 들여다볼라치면 “어라. 이 길이 아니네.” 하면서 헤맵니다.


  낮에 길손집을 미리 알아보고 저녁에 간다고 했는데, 저녁에 값을 치르려니 5000원을 더 받습니다. 바가지란 이런 모습이로군요. 저잣길에서 장사하는 어느 분은 슬쩍 500원을 퉁쳐서 더 받습니다. 비닐자루를 안 받고 천바구니를 챙길 뿐 아니라 손으로 들면 된다고 하니 미친놈 다 있다면서 혀를 차는 장사꾼이 있습니다. 손님을 임금(왕)으로 섬길 일은 없으나 손님을 고까이 내려다보는 가게일꾼을 보면서, 이이 탓에 이 가게를 꾸리는 지기는 꽤나 뒷말을 듣겠다고 느낍니다. 가게지기는 자리를 비울 적에 가게일꾼이 손님을 어찌 마주하는가를 모를밖에 없으니까요. 큰짐을 이고 지며 아이를 이끌고 버스에 전철을 타고내리는데, 밀치고 끼어들며 새치기를 한다든지, 비켜야 할 쪽에서 안 비키고 밀어붙이는 일을 하루에 여럿 만납니다.


  그저 웃으면서 지나가고, 작은아이한테 차근차근 말합니다. 이런 일을 마주하는 까닭이 있고, 우리가 들려줄 말이 있으며, 우리 생각을 어찌저찌 다스릴 적에 스스로 즐거운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인천 부평에 깃든 〈북극서점〉으로 노래꽃판(동시판)을 챙겨 갑니다. 열여덟을 시골집에서 미리 썼고, 둘은 책집으로 가는 시외버스에서 썼습니다. 시골집에서 다 쓰려고 하다가 꼭 오늘 마실길에 새로 피어날 이야기를 적으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길손집에서 작은아이하고 빛그림(영화) 하나를 보고 잠들며 마음을 다스립니다. 사람이 지나치게 북적이는 탓에 우리 스스로 옆에 사람이 있는 줄 잊고, 제 목숨 건사하느라 바쁠 만하겠구나 싶어요. 요새는 시골에서도 제 밥그릇 챙기느라 바쁜 분을 곳곳에서 부딪힙니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고요히 생각합니다. “이 숱한 사람들은 나더러 제발 짜증을 내고 성내라고 부추기려나 보네. 그렇지만 짜증이 아닌 사랑을 보낼 생각이고, 성내지 않고 빙그레 웃을 생각인걸.” 고약한 이웃을 마주칠 적에 이이 얼굴이 아닌 곁에 있는 조그마한 가을풀꽃이나 커다란 가을나무를 바라봅니다. 제 눈길은 늘 풀꽃나무한테 놓으려고, 아이 손을 잡고서 숲을 그리려고 합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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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1.9.22. 짐꾼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집안 세간을 옮깁니다. 어떻게 옮기면 어울릴는지 살피고서 몇 치쯤 되는가를 잽니다. 피아노부터 옮기는데 두 아이가 거들어 줍니다. 이러고서 밥을 짓고 조금 쉽니다. 이다음으로는 끝칸에 있는 책꽂이를 피아노 있던 자리로 데려옵니다. 나들길이 좁고 작은 시골집에서 덩치 있는 세간을 옮기자면 땀을 꽤나 뺍니다. 쉬엄쉬엄 책을 새로 꽂고는 책숲에 있는 크고 묵직하며 야무진 책자리(책상) 하나를 등에 얹고서 집으로 나릅니다. 책자리를 등짐으로 나르기는 2011년에 배웠습니다. 어깻죽지하고 윗등에 살짝 얹고서 고개를 폭 숙인 채 나르지요. 예전 싱싱칸(냉장고)도 책자리를 등에 얹어서 나르듯 혼자서 짊어집니다. 요즈음 싱싱칸은 혼자서 짊어지기엔 부피도 무게도 많이 나가지요.


  끝칸에 책자리를 새로 놓고서, 끝칸 셈틀을 다시 잇고, 이제 저녁을 차려 놓고 자전거로 면소재지를 다녀옵니다. 캄캄한 저녁길 자전거는 어둠빛을 누리며 호젓합니다. 아직 시골에서 나가지 않은 서울(큰고장) 부릉이가 제법 있습니다. 하루만 지나면 시골은 다시 조용하겠지요. 참말로 설이나 한가위에 시골은 매우 시끄럽습니다. 서울이며 큰고장은 늘 시끄럽고 설이나 한가위에만 살짝 조용할 테지요. 짐꾼으로 하루를 보내면서 낮에 마을 샘터·빨래터를 치웠고, 새 꽃글(동화) 첫 꼭지를 꽤 썼습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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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57 서울뜨기 시골내기



  서울사람은 서울사람 눈으로 보니 시골내기다운 눈빛이나 손길이 아니기 마련입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사람 눈으로 읽으니 서울내기스런 눈길이나 손빛이 아니기 마련이에요. 참 오래도록 서울사람은 시골사람을 얕보았고 짓밟았고 등골을 뽑았습니다. 이런 삶자취는 ‘시골뜨기’란 낱말에 서려요. 이와 맞물려 ‘서울뜨기’란 말이 더러 나돌지만 낱말책에는 안 실리더군요. 서울만 알 뿐, 서울만 벗어나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숲살림도 흙살림도 들살림도 바다살림도 모르는 이라면 ‘서울뜨기’입니다. 서울살림을 모르기에 ‘시골뜨기’이듯, 뭔가 잘 모르는 ‘뜨기·뜨내기’라는 뜻으로 ‘글뜨기·책뜨기·배움뜨기’라든지 ‘살림뜨기·사랑뜨기·숲뜨기’ 같은 말을 지을 만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익히고 살아가는 나날일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뜨내기가 되고, 어디에서 꾼이 되며, 어디에서 님이 될까요? 서울살림을 잘 알아 ‘서울내기’라면, 시골살림을 잘 알아 ‘시골내기’입니다. 새로 일하는 ‘새내기’처럼, 숲을 맞이하고픈 ‘숲내기’요, 살림을 돌보려는 ‘살림내기’예요. 글이나 책을 아끼려는 분이라면 ‘글내기·책내기’일 테지요. 저는 ‘풀꽃내기’랑 ‘바람내기’가 되려 합니다. ‘마을내기·골목내기’도 되고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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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56 둘 사이



  우리는 “둘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서 갑니다. “둘 가르기(이분법)”에서 한켠으로 간다면 치우치면서 끼리질이 되지만, “둘 사이”에서 바람을 느끼면서 천천히 걸으면 둘을 그러모으면서 사랑하는 길을 새로 놓기 마련이에요. 더 빨리 가려고 길을 낼 때도 있어요. 지름길입니다. 지름길이란 빠르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없어요. 바로가기(순간이동)도 멋스럽지만, 바로가기를 하면 “둘 사이”가 없어서 아무 이야기가 없습니다. 우리가 굳이 오랜 품이나 날을 들여서 천천히 돌아가는 뜻이라면 이동안 이야기를 짓기 때문일 테지요. 지름길만 본다면 둘 사이가 없고 이야기마저 없어요. ‘사이’가 아닌 ‘가르기’라면 이야기가 없을 뿐 아니라 마음도 없고 미움·싸움·시샘이 불거집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느끼도록 걷거나 자전거를 달려 봐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맛보도록 아이를 안거나 업으면서 마을살림을 누려 봐요. 책을 많이·빨리 읽어 본들 즐겁지는 않아요. 책을 노래하듯 소리내어 읽으면 즐거워요. 아이가 귀를 기울이는 책을 자꾸자꾸 새로 읽어 주니 더욱 즐거워요. “많이·빠르게 가려는 길”이 아닌 “즐겁게·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길”에 책 한 자락을 동무하듯 품는다면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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