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5.30. 향긋이 살리는



  아침에 큰아이가 “예전에 우리가 가져온, 향긋한 나무가 뭐지요?” 하고 묻는다. ‘유칼립투스’라고 알려준다. 이 이름은 이 나무가 흔히 자라는 터전에서 붙였다. 아이들은 이 이름이 혀에 안 붙는 듯했다. 그렇구나 하고 느끼면서 예닐곱 해쯤 이 나무를 지켜보고 알아보다가 문득 ‘살림나무’란 이름을 떠올렸다. 줄기에 잎에 가지에 그저 온빛으로 둘레를 살리는 몫이니 이렇게 수수하게 이름을 붙이며 마주한다.


  곰곰이 보면 모든 나무는 ‘살림나무’이다. 그래도 ‘살구’란 이름을 한 가지 나무한테 쓰듯 ‘살림나무’라는 이름을 “숲노래 사투리”로 지어서 쓴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스스로 짓는 사투리”가 있었다. 우리가 예부터 가리키는 모든 풀꽃나무 이름은 ‘사투리’이다. ‘곰밤부리’나 ‘잣나물’이나 ‘코딱지나물’이나 ‘봄까지꽃’은 사투리이다. ‘민들레’나 ‘냉이’나 ‘망개’도 사투리 가운데 하나인데, 민들레나 냉이나 망개를 가리키는 사투리는 아주 많다. 따로 글꾼(전문가·학자)이 지은 풀이름이나 꽃이름이나 나무이름은 없다. 따로 임금이 지은 새이름이나 벌레이름이 있겠는가? 집과 옷과 밥을 가리키는 모든 이름도 사투리이게 마련이다.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짓는 사투리”를 잊으면서 말을 잊고 마음을 잃는다. 이제 우리는 “글꾼이 엮은 말”만 외우면서 말이 어렵고 마음을 닫는다.


  향긋하지 않은 나무란 없다만, 꼭 어느 한 그루한테 “넌 ‘향긋나무’로구나.“ 하고 속삭인다. 사랑을 그리며 이름을 짓는다. 숲을 헤아리며 모든 말글을 가다듬는다. ‘좋은말’이 아니라 ‘삶말’과 ‘살림말’과 ‘사랑말’을 쓰면 된다. ‘꾼말(학술용어)’이나 ‘먹물말(전문용어)’이 아닌, 또한 ‘순우리말’이나 ‘토박이말’이 아닌, 우리 삶과 살림과 사랑을 숲빛으로 추스르는 사투리를 쓰기에 반갑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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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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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5. 새여름



  서울서 사는 어느 문학평론가 교수님이 쓴 산문집을 읽었다. 그분은 ‘새여름’이나 ‘새가을’ 같은 말은 없다고 말씀하더라. 그러나 말이 되는가? 서울에서 살며 부릉부릉 모니까 철을 모르면서 그분이 안 쓸 뿐이고, 그분이 읽는 책이나 만나는 사람이 으레 서울내기라서 철을 모를 수밖에 없기 때문 아닌가. ‘키’나 ‘절구’를 그분이 곁에 둘 일이 없대서 “없는 살림”일 수 없다. 여름에 오는 비를 왜 ‘여름비’라 안 하는가? 서울에서야 봄비나 가을비나 여름비를 하나하나 가릴 일이 없을 만하고, 첫여름비와 늦여름비와 한여름비를 헤아릴 일도 없을 만하며, 첫봄비와 한봄비와 늦봄비가 어떻게 다른지 살필 일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철마다 다르고 달마다 더더욱 다른 비와 바람과 날과 볕과 별을 “없는 일”이라고 섣불리 말해도 될까? 이런 눈으로 ‘문학평론·문학수업’을 한다면, 오늘날 글꾼(시인·소설가·기자)은 무슨 글을 내놓는다는 뜻일까?


  《비상계엄을 이겨낸 대한국민 이야기》가 갓 나왔다. 고흥읍으로 저잣마실을 나온 길에 걸어다니면서 읽는다. 짧은 틈에 바지런히 잘 엮은 책이라고 느끼되, ‘절대다수 국회’는 여태 무엇을 했는지 안 다루는 대목이 아쉽다. 함부로 계엄령을 읊는 놈이 잘한 짓이란 터럭만큼도 없으나, ‘절대다수 국회’는 여태 이 나라 사람들을 헤아리는 무슨 일을 했는지 하나도 알 길이 없다. ‘국회가 빌미’였다는 뜻이 아니라 ‘일 안 하는 국회’였는데, ‘새나라’로 나아갈 ‘촛불물결’을 헤아리자면, “왜 이들도 일을 안 했을까?”에다가 “이들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같은 이야기를 나란히 적을 노릇이라고 느낀다. 우리는 ‘언놈’을 미워하거나 나무라려는 일을 할 까닭이 없다. 우리 스스로 그릴 새길을 함께 이야기하고 짚고 살필 노릇이다.


  그리고, 저놈이 계엄령을 걸 적에, 다른 놈은 “무안공항에 국제노선을 조용히 열”며 전라남도 구석구석 “간편 해외여행”을 알렸으며, 이런 지 한 달이 안 되어 무안공항에서 애꿎게 192분이 이슬이 되고 말았다. 새로 나라지기 자리에 선 분은 아직 “무안공항 특검과 진상조사”를 말하지 않는다. 아니, 여태 “무안공항 특검과 진상조사”를 말한 바 없다고 느낀다. 언제쯤 새 나라지기나 총리는 “무안 특검과 조사”를 할 수 있을까? ‘항공기 조종사’는 온힘을 다하여 겨우 비행기를 살려냈으나, 무안공항에서 갑작스레 불꽃으로 터지면서 멍하니 먼지처럼 불타고 말았다.


  이 나라가 아름답기를 빈다. 이쪽에 서거나 저쪽에 서는 길이 아닌, 어린이 곁에 서고, 들숲메바다를 품기를 빈다. 누구를 밀거나 모시는 굴레가 아닌, 푸름이 곁에서 어깨동무하고, 풀꽃나무와 해바람비를 이 터전에 푸르게 담기를 바란다. 새여름인 엿쨋달이다. 첫여름에 접어든 2025년 올해는 무더위가 아닌 알맞춤한 더위요, 밤과 새벽은 서늘하다. 하늘은 사람을 헤아리면서 아름날씨를 베푼다. 이제 사람이 사람으로서 할 몫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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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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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2. 늦잠 제잠



  지난 쇠날(금요일)에는 늦잠을 누리느라 04시에 하루를 열었다. 흙날(토요일)에도 늦잠을 즐기면서 03시에 하루를 폈다. 해날(일요일)은 비로소 01시에 하루를 돌보며 ‘제잠(제대로잠)’이었고, 달날에도 01시에 느긋이 하루를 틔운다.


  온누리 누구나 02∼03시 사이에 하루를 연다면, 이 터전이 아름다우리라 본다. 우리 눈코귀입에 몸마음은 01시 즈음에 맑게 기지개를 켜고, 02시에 바야흐로 훅 열리고, 03시에 밝게 피어나고, 04시에 고즈넉이 자라난다. 05시는 꽃이 지며 씨앗이 맺으려는 때이고, 06시는 느긋이 열매가 익는 때이다.


  이 얼거리를 옛사람 가운데 들사람과 숲사람과 멧사람과 바닷사람과 시골사람은 그저 온넋으로 알았다. 벼슬아치와 임금과 글바치와 나리와 싸울아비와 돈꾼은 모를 수밖에 없지.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만 20∼21시에 안 잠든다. 새로 태어나듯 깨어날 때까지 뭘 보거나 놀거나 일하느라 지치기 일쑤이다. 어린이는 20시에 자야 한다. 푸름이는 21시에 자야 한다. 그래야 이 나라 앞날이 환하다.


  이따금 어른들은 바깥일을 보느라 좀 늦게 잘 수 있되, 되도록 어른들부터 ‘제때(20∼21)’ 자리에 누워서 하루그림을 새로 그리며 쉬어야 한다. 이런 길과 나라여야 어깨동무를 하고 사랑을 나눈다.


  나흘째 늦도록 바깥일을 보느라 졸립다. 부산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눈을 좀 붙이고서 마저 읽기쓰기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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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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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2. ㄴ은 나다



  어제(2025.6.1) 부산 〈책과아이들〉에서 ‘우리말이 태어난 뿌리’ 두걸음을 폈다. 첫걸음에서는 “ㄱ은 가다”를 짚었고, 두걸음은 “ㄴ은 나다”를 다뤘다. 이다음에는 “ㄷ은 다다”를 들려주려고 한다. 이야기꽃을 펴며 나누어 주는 밑글을 손으로 그렸다. 낱말숲을 하나 일구었다.


  어느 나라·겨레에서 쓰는 어느 말이건, 낱말숲을 그리면서 말결과 말뜻과 말빛과 말밑과 말씨를 헤아린다. 낱말숲을 그리면서 말길을 차근차근 이어서 생각을 스스로 짓는다. 처음에는 낱말로 씨앗을 심는 ‘말씨(낱말씨)’요, 이윽고 말씨가 싹트면서 ‘낱말나무’를 이루고, 낱말나무가 우거져서 ‘낱말숲’을 이룬다.


  우리는 여태 낱말숲이 없는 채 낱말책이 두루뭉술하게 태어났다. 낱말숲을 짓는 길과 일도 ‘기초과학 및 학문’일 텐데, 막상 이러한 길과 일에 이 나라는 아무 마음이 없다. 낱말숲이 없는 채 어떤 AI가 나올까?


  아무도 이런 일을 안 할 수 있다. 밑돈(연구개발비)을 못 받는 터라, 이런 일을 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안 보이기도 하고, 이런 일을 오래도록 해온 사람을 나라(정부)에서 먼저 알아보고서 밑돈을 대주는 일도 없다. 그러니까, 낱말숲을 이루어서 우리가 함께 말빛을 이루려는 사람이 저마다 스스로 품을 들여서 하는 일이다. 나는 이 일에 밑돈을 댈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만, 이렇게 낱말숲을 그려서 이웃님하고 나누는 동안, 낱말숲을 찬찬히 새로 가다듬는다. 나부터 우리말을 새록새록 배우고 익힌다. 나는 우리 아이들하고 곁님하고 이웃님이랑 서로 마음을 가꾸는 낱말노래를 부를 수 있다.


  오늘 고흥 보금숲으로 돌아간다. 쇠(지하철)는 시끄럽지만, 왼손으로는 책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붓을 쥔다. 발바닥으로 땅바닥을 느끼고 온몸으로 첫여름 바람을 머금는다. 붉버찌(앵두)가 익는 엿쨋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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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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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28. 2시간 40분



  서울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린다. 14:40 버스를 타려고 2시간째 기다렸고, 이제 40분을 더 기다리면 된다. 마치 하늘나루에서 날개를 기다리는 셈이다. 이따가 4시간 20분을 달려서 고흥읍에 닿더라도 다시 기다리거나 택시를 불러야 보금자리에 닿는다.


  서울로 오는 길에는 노래를 잔뜩 쓰고,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책을 신나게 읽는다.


  글은 누가 쓰고 누가 읽는지 돌아본다. ‘서울국제도서전 사유화’는 그들이 슬그머니 넘어가려 하고, 목소리를 내는 글바치는 드물다. ‘서울국제도서전 불참’을 밝히는 사람은 아직 잘 안 보인다. 나는 올해에 책손으로든 무엇으로든 갈 마음이 없다. 이대로라면 2026년에도 그곳에 갈 마음이 없다. 앞으로도 매한가지이다.


  삶과 살림과 숲과 사랑과 사람을 하늘빛으로 품고 풀어내는 이야기가 책이라는 꾸러미라고 본다. 서로 사이를 틔우고 잇는 실이자 노래이자 씨앗이 바로 책이라고 본다. 더 읽히거나 많이 읽혀야 할 책이 아닌, 사람으로서 사랑을 배우고서 살림을 익혀서 숲빛을 나누려는 사이로 만나는 이음길이 바로 책이라고 느낀다. 우리는 어떤 글을 쓰는가? 우리는 어떤 책을 사읽는가? 우리는 책숲(도서관)에 어떤 책을 놓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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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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