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4.11.17. 좋아한다면
네가 나를 좋아한다면, 그저 나를 좇으면서 좁은 마음으로 서지 마. 너는 너이고, 나는 나야. 나를 좇아다니면, 넌 어느새 나를 쫓아내고 싶은 마음이 싹트지. 누구를 좋아하려면, 어느 누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안 좋아해야 할 텐데, 이러다 보면 넌 저절로 좁은눈으로 둘레를 보다가, 네가 좋아한다고 여기는 사람마저 좁게 가둘 뿐 아니라, 너부터 스스로 좁은울(좁은울타리)에 가두고 말아.
네가 나를 좋아한다면, 너는 나를 지켜보고 돌아보고 들여다볼 뿐 아니라, 둘레를 보고 살피는 눈썰미여야 해. 온누리를 둘러보고 살펴보고 헤아리고서 다시 나를 볼 노릇이고, 네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아야 하지. 누구나 마찬가지야. 누구를 좋아하기까지 좁히거든. 덜 좋아하는 사람을 추리고, 안 좋아하는 사람을 솎고, 그냥저냥 좋은 사람을 빼기에, 마침내 좋아하는 딱 한 사람을 찾게 마련이야. 이렇게 딱 한 사람을 좋아하다 보면, 어느 날에는 이이보다 더 좋아할 만한 사람이 나타나지. 이때에 너는 예전부터 좋아하는 누구하고 새롭게 좋아하는 누구를 맞대게 마련이야. 이러면서 더 좋아하는 사람한테 끌리고, 이러면서 예전부터 좋아하던 사람보다 이제 더 좋아하는 사람한테 끌려간단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일은 안 나빠. “안 나쁘”니까 ‘좋다’고 여기지. 그래서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언제나 흔들려. 언제 어느 곳에서 ‘더’ 좋아할 만한 사람이 나올는지 모르거든. 누구를 좋아하다 보면 끝없이 “좋은사람 갈아타기”에 휩쓸려. 그래서 너한테 한 마디를 할게.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기를 바라. 어느 누구나 사랑하기를 바라. 그저 온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기를 바라. 너는 풀밥(채식·비건)을 한다면서 고기를 안 먹으려고 하는구나. 헤엄이도 소도 닭도 돼지도 목숨을 빼앗길 적에 아프다고 여기지. 그렇다면 풀은 안 아플까? 열매는 안 아플까? 쌀이나 밀은 안 아파할까? 풀죽임물을 뿌려댈 적에 논밭 낟알은 안 괴로울까? 비닐을 덮을 적에 푸성귀는 안 괴롭고 안 아프고 안 답답할까?
좋아하지 말고 사랑하기를 바라. 풀밥을 먹든 고기밥을 먹든, 우리는 늘 다른 숨결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살림이야. ‘살림’이란 말이지. 그러니까 풀 한 포기한테 “너를 사랑해” 하고 속삭이면서 반갑게 맞아들일 일이야. 그래서 고기 한 조각한테 “너를 사랑해” 하고 노래하면서 기쁘게 받아들일 일이야. 능금도 배도 복숭아도 포도도 마찬가지인데, 사랑이 없는 채 풀밥을 먹는 사람이 손에 쥐면 바르르 떤단다. 아니? 느끼니? 사랑이 없는 채 “나는 채식주의야! 나는 비건이야!” 하고 외치는 사람 앞에서 밀알도 쌀알도 부들부들 떨어. 무서워한단다.
넌 ‘좋아하는 글님’이 있는 탓에 좋아하는 그 사람 책은 잔뜩 읽지만, 막상 네 마음을 북돋우고 가꾸는 길에 이바지할 ‘네가 안 좋아하는 글님’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네. ‘좋은책’에 파묻히면 ‘아름책’을 놓쳐. ‘좋은책’만 읽으면 ‘사랑책’을 밀쳐내더라. ‘좋은책’에 얽매이는 탓에 ‘마음책’도 ‘살림책·삶책’도 ‘숲책’도 아예 손조차 안 대고 마네.
부디 이제는 ‘좋아하기’를 매듭짓고서 부드럽게 내려놓기를 바라. 책도 글도 좋아하지 않기를 바라. 이쪽도 저쪽도 좋아하지 않기를 바라. 왼날개도 오른날개도 아닌, 두날개이자 온날개로 하늘을 훨훨 날면서 나비하고 춤추고 새하고 노래하는 사랑으로 피어나기를 바라. 우리는 사랑일 적에 환하게 웃으면서 만날 수 있어. 우리가 서로 사랑이라면 손을 안 잡고 걸어도 즐거워. 우리가 서로 사랑이라면 아무리 먼곳에서 떨어져서 일하더라도 한마음이야. 우리가 서로 사랑이라면 “나만 쳐다봐!” 같은 말을 안 하겠지. ‘사랑앓이’란 없어. ‘좋음앓이’일 뿐이야. 좋음앓이는 ‘좁음앓이’로 뻗고, 어느새 ‘종살이’에 ‘종굴레’로 치닫는단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 좋아하지 마. 아무도 좋아하지 마. 그저 모두를 사랑하기를 바라. 누구보다 너 스스로 사랑하기를 바라. 네가 너부터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일 적에 비로소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마음을 틔울 수 있어. 온사랑이기에 온사람이고, 온빛이면서 온하루를 누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