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5. 새여름
서울서 사는 어느 문학평론가 교수님이 쓴 산문집을 읽었다. 그분은 ‘새여름’이나 ‘새가을’ 같은 말은 없다고 말씀하더라. 그러나 말이 되는가? 서울에서 살며 부릉부릉 모니까 철을 모르면서 그분이 안 쓸 뿐이고, 그분이 읽는 책이나 만나는 사람이 으레 서울내기라서 철을 모를 수밖에 없기 때문 아닌가. ‘키’나 ‘절구’를 그분이 곁에 둘 일이 없대서 “없는 살림”일 수 없다. 여름에 오는 비를 왜 ‘여름비’라 안 하는가? 서울에서야 봄비나 가을비나 여름비를 하나하나 가릴 일이 없을 만하고, 첫여름비와 늦여름비와 한여름비를 헤아릴 일도 없을 만하며, 첫봄비와 한봄비와 늦봄비가 어떻게 다른지 살필 일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철마다 다르고 달마다 더더욱 다른 비와 바람과 날과 볕과 별을 “없는 일”이라고 섣불리 말해도 될까? 이런 눈으로 ‘문학평론·문학수업’을 한다면, 오늘날 글꾼(시인·소설가·기자)은 무슨 글을 내놓는다는 뜻일까?
《비상계엄을 이겨낸 대한국민 이야기》가 갓 나왔다. 고흥읍으로 저잣마실을 나온 길에 걸어다니면서 읽는다. 짧은 틈에 바지런히 잘 엮은 책이라고 느끼되, ‘절대다수 국회’는 여태 무엇을 했는지 안 다루는 대목이 아쉽다. 함부로 계엄령을 읊는 놈이 잘한 짓이란 터럭만큼도 없으나, ‘절대다수 국회’는 여태 이 나라 사람들을 헤아리는 무슨 일을 했는지 하나도 알 길이 없다. ‘국회가 빌미’였다는 뜻이 아니라 ‘일 안 하는 국회’였는데, ‘새나라’로 나아갈 ‘촛불물결’을 헤아리자면, “왜 이들도 일을 안 했을까?”에다가 “이들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같은 이야기를 나란히 적을 노릇이라고 느낀다. 우리는 ‘언놈’을 미워하거나 나무라려는 일을 할 까닭이 없다. 우리 스스로 그릴 새길을 함께 이야기하고 짚고 살필 노릇이다.
그리고, 저놈이 계엄령을 걸 적에, 다른 놈은 “무안공항에 국제노선을 조용히 열”며 전라남도 구석구석 “간편 해외여행”을 알렸으며, 이런 지 한 달이 안 되어 무안공항에서 애꿎게 192분이 이슬이 되고 말았다. 새로 나라지기 자리에 선 분은 아직 “무안공항 특검과 진상조사”를 말하지 않는다. 아니, 여태 “무안공항 특검과 진상조사”를 말한 바 없다고 느낀다. 언제쯤 새 나라지기나 총리는 “무안 특검과 조사”를 할 수 있을까? ‘항공기 조종사’는 온힘을 다하여 겨우 비행기를 살려냈으나, 무안공항에서 갑작스레 불꽃으로 터지면서 멍하니 먼지처럼 불타고 말았다.
이 나라가 아름답기를 빈다. 이쪽에 서거나 저쪽에 서는 길이 아닌, 어린이 곁에 서고, 들숲메바다를 품기를 빈다. 누구를 밀거나 모시는 굴레가 아닌, 푸름이 곁에서 어깨동무하고, 풀꽃나무와 해바람비를 이 터전에 푸르게 담기를 바란다. 새여름인 엿쨋달이다. 첫여름에 접어든 2025년 올해는 무더위가 아닌 알맞춤한 더위요, 밤과 새벽은 서늘하다. 하늘은 사람을 헤아리면서 아름날씨를 베푼다. 이제 사람이 사람으로서 할 몫이 남았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