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58 걸어서



  걸어서 다닙니다. 다리가 있어서 걷습니다. 스스로 부릉이(자가용)를 안 거느리기도 합니다만,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사람은 걸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릉거리는(운전) 동안에는 글을 못 쓰고 못 읽기도 합니다만, 다리로 걸으며 길을 느끼고 땅을 헤아리고 마을을 돌고 바람을 쐬고 하늘을 보고 풀꽃나무한테 속삭이고 동무랑 나긋나긋 이야기하고 아이들 손을 잡으며 노래하지 않을 적에는, 우리가 무슨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까요? 걸어서 보는 사이에, 걷다가 겪는 틈에, 걸으면서 생각하는 짬에, 스스로 빛나는 눈길이 샘솟습니다. 걷고서 쉬면, 걷다가 멈추면, 걷던 아이를 안거나 업고서 토닥이며 재우면, 마음 가득 피어오르는 숨결이 어느덧 사랑으로 자랍니다. 서둘러 써야 한다면 글이 아니지 싶습니다. 서둘러 읽어야 한다면 책이 아니구나 싶습니다. 언제나 이곳을 헤아리며 쓸 글이고, 늘 오늘을 살피며 읽을 글이고, 누구나 스스로 사랑하며 쓸 글이고, 서로서로 돌보며 읽을 글입니다. 뚜벅뚜벅 걷습니다. 느긋느긋 걷습니다. 발자국 소리가 없이 걷습니다. 아이처럼 통통 뛰며 걷습니다. 바람을 탄 새처럼 걷습니다. 갓 깨어난 나비처럼 춤추며 걷습니다. 온누리를 걸어서 누리기에 글이 깨어나고, 눈망울을 환희 틉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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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57 서울뜨기 시골내기



  서울사람은 서울사람 눈으로 보니 시골내기다운 눈빛이나 손길이 아니기 마련입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사람 눈으로 읽으니 서울내기스런 눈길이나 손빛이 아니기 마련이에요. 참 오래도록 서울사람은 시골사람을 얕보았고 짓밟았고 등골을 뽑았습니다. 이런 삶자취는 ‘시골뜨기’란 낱말에 서려요. 이와 맞물려 ‘서울뜨기’란 말이 더러 나돌지만 낱말책에는 안 실리더군요. 서울만 알 뿐, 서울만 벗어나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숲살림도 흙살림도 들살림도 바다살림도 모르는 이라면 ‘서울뜨기’입니다. 서울살림을 모르기에 ‘시골뜨기’이듯, 뭔가 잘 모르는 ‘뜨기·뜨내기’라는 뜻으로 ‘글뜨기·책뜨기·배움뜨기’라든지 ‘살림뜨기·사랑뜨기·숲뜨기’ 같은 말을 지을 만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익히고 살아가는 나날일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뜨내기가 되고, 어디에서 꾼이 되며, 어디에서 님이 될까요? 서울살림을 잘 알아 ‘서울내기’라면, 시골살림을 잘 알아 ‘시골내기’입니다. 새로 일하는 ‘새내기’처럼, 숲을 맞이하고픈 ‘숲내기’요, 살림을 돌보려는 ‘살림내기’예요. 글이나 책을 아끼려는 분이라면 ‘글내기·책내기’일 테지요. 저는 ‘풀꽃내기’랑 ‘바람내기’가 되려 합니다. ‘마을내기·골목내기’도 되고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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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56 둘 사이



  우리는 “둘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서 갑니다. “둘 가르기(이분법)”에서 한켠으로 간다면 치우치면서 끼리질이 되지만, “둘 사이”에서 바람을 느끼면서 천천히 걸으면 둘을 그러모으면서 사랑하는 길을 새로 놓기 마련이에요. 더 빨리 가려고 길을 낼 때도 있어요. 지름길입니다. 지름길이란 빠르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없어요. 바로가기(순간이동)도 멋스럽지만, 바로가기를 하면 “둘 사이”가 없어서 아무 이야기가 없습니다. 우리가 굳이 오랜 품이나 날을 들여서 천천히 돌아가는 뜻이라면 이동안 이야기를 짓기 때문일 테지요. 지름길만 본다면 둘 사이가 없고 이야기마저 없어요. ‘사이’가 아닌 ‘가르기’라면 이야기가 없을 뿐 아니라 마음도 없고 미움·싸움·시샘이 불거집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느끼도록 걷거나 자전거를 달려 봐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맛보도록 아이를 안거나 업으면서 마을살림을 누려 봐요. 책을 많이·빨리 읽어 본들 즐겁지는 않아요. 책을 노래하듯 소리내어 읽으면 즐거워요. 아이가 귀를 기울이는 책을 자꾸자꾸 새로 읽어 주니 더욱 즐거워요. “많이·빠르게 가려는 길”이 아닌 “즐겁게·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길”에 책 한 자락을 동무하듯 품는다면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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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9.14.

책하루, 책과 사귀다 55 소수



  2021년 9월 2일 무렵, ‘나라에서 밝힌, 백신 맞고 죽은 사람’은 800이 넘고, 9월 13일 즈음에는 1000이 넘습니다. 이 가운데 나라에서 ‘백신 탓에 죽었다’고 밝힌 사람은 딱 2입니다. 이날까지 백신을 맞은 사람은 3315만이 넘으니, ‘백신 맞고 죽은 사람’은 0.1%가 안 됩니다만, 백신을 맞아서 죽은 사람이 0.1%가 안 된다고 해서 이 사람들을 모르쇠하거나 “백신은 걱정할 일이 없다”고 말해도 되지 않습니다. “나는 백신 맞아도 멀쩡하다”고 해서 “백신 부작용을 걱정할 까닭이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이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밀어붙여도 안 됩니다. 밀가루나 달걀이 몸에 안 받는 사람이 있고, 찬국수(냉면)나 김치가 몸에 안 받는 사람이 있으며, 소젖(우유)이나 요거트나 치즈가 몸에 안 받는 사람이 있어요. “몸에 안 받는 사람보다 몸에 받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몸에 안 받는 사람을 나몰라라” 해도 될까요?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손가락질해도 될까요? ‘백신 맞고 죽은 사람’은 그야말로 안타까운 ‘작은이(소수자)’입니다. 성소수자도 작은이입니다만, 밀가루·달걀·소젖·김치로 애먹는 사람도 작은이요, 백신 맞고 죽은 사람도 작은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참다울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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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54 책값 에누리



  책을 사면서 에누리를 바란 적이 없습니다. 저잣거리에 가서 저자마실을 할 적에 에누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장사하는 분이 부르는 값에는 그만 한 땀과 품이 있다고 느낍니다. 땀하고 품이 들어간 살림에다가, 가게나 길에 나와서 파는 동안 들일 땀하고 품, 또 이렇게 장사를 하며 삶을 지을 밑돈을 얻는 보람이 ‘값’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름값이 비싸다고 여긴다면 우리 살림새하고 안 맞는다는 뜻입니다. 이때에는 맞춤하거나 싸다고 여길 곳으로 조용히 가면 돼요. 나한테 비싸대서 남한테도 비싸지 않아요. 더 눅어야 좋지 않고, 더 높아야 아름답지 않아요. 살림을 짓고서 나누는 길에 들어간 땀하고 품이 다를 뿐입니다. 새책집에서는 모든 책값이 같으나 헌책집에서는 모든 책값이 달라요. 그 고장에서 그 책을 갖추는 데에 들어간 땀하고 품이 다르거든요. 책집지기가 수월하게 잔뜩 들인 책은 값이 눅어요. 책집지기가 힘겨이 찾아내어 알뜰히 건사한 책은 값이 높아요. 오직 이뿐입니다. 우리가 책을 살 적에는 ‘글님 땀과 품’뿐 아니라 ‘책집지기 땀과 품’이 어우러집니다. 여기에 ‘책을 책집까지 실어나르는 일꾼 땀과 품’이 값으로 붙습니다. 우리가 일한 땀값·품값하고 책값은 같습니다. 책값 에누리를 할 까닭이 없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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