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마실길 배움길 책길 (2018.7.24.)

― 일본 오사카 히가시코하마 〈天牛堺書店 粉浜店〉

大阪府 大阪市 住吉區 東粉浜 3丁目 23-20

3 Chome-23-23 Higashikohama, Sumiyoshi Ward, Osaka, 558-0051

+81 6-6674-1101



  으레 지나다니는 곳에 책집이 있어도 못 알아보는 분이 많습니다. ‘설마 그런 자리에 책집이?’ 하고 여깁니다. 그러나 책집만 그럴까요. 찻집도 빵집도 떡집도 옷집도 ‘설마 그런 데에?’ 하고 놀라면서 만날 만합니다. 큰길가에 있다고 하더라도 못 보고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딱 그곳을 찾아가려고 마음을 먹지 않고서야 가게이름이며 알림판이며 눈에 안 들어올 테니까요.


  일본 오사카 히가시코하마 둘레를 열흘쯤 이 골목 저 거리 돌아본 어느 날, 먹을거리를 장만하려고 제법 들른 적이 있는 가게 옆에 책집이 있는 줄 처음으로 알아챘습니다. 그동안 왜 이 책집을 못 알아챘을까 하고 돌아보니 언제나 ‘우리 아이들 쳐다보기’가 첫째였고, 우리가 가야 할 곳을 길그림을 펼쳐서 살피기가 둘째였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에 오롯이 마음을 쓴 터라, 으레 지나다니던 거리에 책집이 덩그러니 있는 줄 뒤늦게 알았습니다.


  일본 전철로 ‘코하마역(粉浜驛)’ 밑자리, 커다란 가게 옆에 있는 〈天牛堺書店 粉浜店〉입니다. ‘天牛堺書店’이 제법 크고 많은 듯합니다. 큰책집 또래가게가 아니어도 일본은 어느 고을 어느 마을에나 책집이 많다고 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작은 마을책집이 제법 문을 닫았다고 하지만, 한국에 대면 아직 엄청나게 많이 있다고 여겨요.


  오사카 히가시코하마 한켠에 있는 이 책집은 안쪽은 새책을 놓고 바깥쪽에는 헌책을 놓습니다. 두 갈래로 나눈 짜임새가 새삼스럽습니다. 더구나 바깥에 내놓은 단돈 200엔짜리 헌책 가운데 눈에 띄는 책이 왜 이다지도 많은지요. 아직 한국말로 나오지 않은 숱한 인문·역사책을 한꾸러미 짊어지고 한국으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가득하지만 “그 무거운 책을 어떻게 들고 가려고? 아이들도 있는데?” 하는 말에 한 자락조차 품에 안지 못합니다.


  비록 한국사람이 손수 캐내거나 밝힌 이야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일본에서 눈밝은 이가 캐낸 여러 이야기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여태 눈여겨보지 못한 곳을 짚고,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대목을 헤아리며, 우리가 곰곰이 생각하면서 새롭게 알아낼 길을 그릴 만합니다. 배움길이란 언제 어디에서나 맞물려요. 삶길이란 어느 곳에서나 익히면서 가다듬습니다. 눈을 감거나 등을 지면 배우지 못하기도 하지만 사랑하고도 동떨어져요. 눈을 뜨고 손을 잡을 적에 기쁘게 배울 뿐 아니라 홀가분하게 날갯짓하곤 합니다.


  끌짐 하나 가득 채우고 싶은 책이 눈앞에 선하지만 그 모든 책은 뒤로 젖히고서 만화책 《のびたの南極カチコチ大冒險》(藤子·F·不二雄, 小學館, 2017)을 고릅니다. 작고 가벼운 도라에몽 만화책입니다. 한국말로 안 나온 도라에몽입니다. 오늘은 작고 가벼운 도라에몽으로 넉넉하다고 여기려 합니다. 두 아이는 히가시코하마에서 히야바야시로 가는 택시에서 신이 나서 만화책을 폅니다. 택시를 타고 달리면서 하는 거리구경보다 만화책이 훨씬 신나는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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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한켠 작은책집은 (2018.7.20.)

― 일본 오사카 히가시코하마 〈後藤書店〉

大阪府 大阪市 住吉區 東粉浜 三丁目 29-4

3 Chome-29-4 Higashikohama, Sumiyoshi Ward, Osaka, 558-0051 

+81 6-6671-5327



  일본 오사카에 ‘blu room R’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마을 한복판에 깃든 조그마한 쉼터입니다. 몸하고 마음을 새롭게 일깨우는 ‘파란칸’인데, 이곳을 찾아가려고 목돈을 마련해서 마실길에 올랐습니다. 길손집에 묵으면서 블루룸까지 천천히 걸어서, 슬슬 전철로, 씽씽 택시로, 여러 가지로 오가며 일본 골목길이며 골목마을은 한국하고 얼마나 다르며 비슷한가 하고 눈여겨보았습니다. 관광지나 여행지 아닌 수수한 마을살림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마을사람이 저자마실을 하는 데에서 똑같이 저자마실을 하고, 마을사람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데에서 똑같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셨어요. 마을사람뿐 아니라 마을 아이들이 쉬거나 뛰노는 곳에서 같이 매미 노래를 듣고 나무그늘을 누리면서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풀밭에 드러눕기도 합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큰고장이 옴팡 뒤집어져야 한 터라, 여느 큰고장은 일본 마을하고 참 닮았더군요. 집이나 가게에 붙은 일본글을 한글로 바꾸면 감쪽같이 한국처럼 보일 만합니다. 어느 나라나 수수한 마을길은 말끔일꾼 아닌 마을사람 스스로 새벽 아침 낮 저녁에 슬슬 비질을 한다고 느껴요. 일본만 마을길에 쓰레기가 안 뒹굴지 않아요. 한국도 마을길에는 쓰레기가 안 뒹굽니다. 할매 할배가 틈틈이 비질을 하고서 해바라기를 하거든요. 아니, 해바라기를 하다가 비질을 해야 한달까요. 해바라기를 하다가 문득 옆집 둘레에 뒹구는 쓰레기를 보면 스스럼없이 치우는 손길이 마을사람 손길이요 골목사람 눈길이거든요.


  2018년 6월에 오사카 마실을 할 적에는 미처 못 보았으나 7월에 다시 마실을 하면서 히가시코하마라는 조그마한 마을 한켠에 있는 카레집 맞은쪽에 마을책집이 있는 줄 알아챘습니다. 큰길에 있는 큰책집이 아니요, 마을 한켠에 살짝 깃든 작은책집이라 더더욱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일본 마을책집이니 마땅히 일본글로 적은 일본책만 있겠지요. 그러나 한국말로 안 나온 아름다운 만화책이며 사진책이며 그림책을 만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책이 수두룩하거든요. 아이들하고 곁님한테 “살짝 들어가 보면 안 될까?” 하고 묻고 싶으나, 더위에 지치고 낮잠이 몰려온 모습을 느끼고는 “사진만 몇 자락 얼른 찍을게.” 하고 말합니다.


  이다음에 오사카로 마실을 새로 나올 수 있다면 꼭 들르기로, 그때에는 하루를 잡고서, 작은 마을책집이 품고 길어온 오랜 발자취하고 손때를 맞아들여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마을 어린이한테 즐겁게 피어날 꿈을 베푼 책을 나누어 온 곳일 테니. 마을 어른한테 넉넉히 살림짓는 사랑을 들려준 책을 펼쳐 온 자리일 테니.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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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에서 나누는 마음 (2018.8.17.)

― 경기 수원 〈리지블루스〉

경기 수원시 영통구 매탄로160번길 15

https://www.instagram.com/bookstore_lizzyblues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이 있습니다. 이 배움모임이 있는 줄 처음 안 때는 1999년입니다. 그때 저는 신문을 돌리는 일꾼 자리를 떠나면서 출판사에서 책을 알리고 파는 자리로 옮겼습니다. 제가 몸담은 출판사에서 펴낸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길바닥에 자리를 깔고서 판다든지, 책잔치 자리에서 길손을 붙잡고 끝없이 책수다를 펴면서 책을 팔았어요. 흔한 도서목록 아닌 새로운 도서목록을 짠다든지, 책손한테 드릴 새로운 그림엽서나 그림판을 꾸민다든지, 전국 도서관이며 초등학교에 손글월을 띄우면서 이곳 책을 알린다든지, 이모저모 새로운 장삿길을 열어 보려 했습니다. 때로는 초등학교나 도서관이나 어린이책 전문서점을 찾아가서 책을 알리거나 넣었지요. 인쇄·제본을 거치다가, 창고하고 책집 사이를 오가다가, 이래저래 다쳐서 팔 길 없는 책을 깨끗하게 손질해서 시골 작은 학교나 도시 가난한 학교나 여러 작은 도서관에 선물꾸러미로 보내거나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며 초등학교 교사 가운데 ‘말을 말답게 가르치자는 뜻’으로 하나가 된 분들을 만났어요.


  1999년에는 제가 몸담은 출판사 책을 팔아야 하면서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분들을 만났다면 2018년 여름에는 이 모임에서 여름에 펴는 사흘짜리 배움마당 ‘마무리 이야기벗’이 되어 찾아갑니다.


  얼추 스무 해란 나날이 이렇게 흘렀군요. 예전에도 오늘에도 저는 사전이라는 책을 쓰는 길을 갑니다. 예전에는 신문을 돌리거나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조용히 사전이라는 책을 썼다면, 이제는 시골자락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고요히 사전을 씁니다. 예전에는 도시 한복판에서 사전을 썼고, 이제는 시골 한가운데에서 사전을 써요.


  마땅한 소리일 텐데, 어느 자리에서 쓰느냐에 따라, 올림말을 다루거나 바라보는 눈길이며 손길이 확 다릅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살며 말을 다룰 적에는 아무리 도시에서도 숲을 그리면서 다룬다 할는지라도 도시내음이 스며요. 시골 한가운데에서 아이들하고 어우러지면서 말을 다룰 적에는 언제나 이 삶결이 그대로 말결로 옮아갑니다.


  배움마당 마무리 이야기를 펴려고 한신대학교로 가는 길목이기에, 수원 마을책집 가운데 〈리지블루스〉에 들르기로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수원 남문 곁에 있는 헌책집도 들르고, 다른 여러 마을책집도 바지런히 들르고 싶습니다만, 고흥에서 순천을 거쳐 수원으로 오니 벌써 두 시가 훌쩍 지나갑니다.


  수원역에서 택시를 잡습니다. 책집 주소를 길찾기로 살펴서 손쉽게 옵니다. 시내버스를 타고도 책집에 갈 수 있지만, 오늘은 1분조차 길에서 보내고 싶지 않아요. 아니, 1분조차 흘릴 겨를이 없습니다.


  파랗게 물들인 책집 바깥모습을 눈부신 햇살에 담아서 바라봅니다. 해가 참으로 잘 드는 골목 한켠입니다. 조용한 이 골목으로 걸어오는 분이라면 조용하게 책시렁을 돌아보다가 조용하게 걸상에 앉아서 한때를 누리겠지요.


  오늘 〈리지블루스〉로 온 까닭은 바로 이곳에서 펴낸 책이 있기 때문이에요. 책집지기님이 쓴 책을 바로 그 책집에서 사고 싶어 일부러 걸음을 했습니다. 그 책을 고르기 앞서 《오늘도, 무사》(요조, 북노마드, 2018)를 고릅니다. 서울에서 마을책집을 하다가 제주로 터전을 옮긴 이야기를 읽습니다. 예전에 인천에서 이야기꽃을 펴는 자리에서 책집지기 요조 님을 뵌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난 이야기도 책에 흐릅니다.


  달거리 이야기를 다룬 《어바웃 문데이》(김도진, 해피문데이, 2017)를 고릅니다. 영어로 하면 이렇게 되네 하고 생각하다가도 “달날 이야기”나 “달거리란”이나 “달빛이란”이나 “달마음이란”이나 “다달이 꽃”처럼, 조금 더 알아보기 쉽도록 이름을 붙이면 어떠했으려나 싶습니다.


  이제 《리지의 블루스》(김명선, 리지블루스, 2018)를 고릅니다. 이 책을 이곳에서 사러 왔지만 다른 책도 둘러보고 싶었어요. 책집을 열기까지, 책집을 열면서, 책집에서 햇살을 파랗게 맞아들이는 동안, 찬찬히 맞아들인 여러 가지 이야기가 조곤조곤 흐릅니다. 마지막으로 《크레용이 화났어》(드류 데이월트 글·올리버 제퍼스 그림/박선하 옮김, 주니어김영사, 2014)까지 살핍니다. 뿔이 난 그림연필은 이 불길을 잠재우고서 신나게 그림놀이로 나아갈까요.


  배움마당으로 가야 할 때입니다. 더 머물지 못해서 아쉬워도 다음걸음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짐을 꾸립니다. 마침 요즈막에 새로 써낸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을 챙겨서 나왔기에 책집지기님한테 가만히 건네고서 돌아나옵니다. 짐수레는 돌돌 굴리고 등짐은 질끈 동여매며 골목을 걷는데 〈리지블루스〉 지기님이 부릅니다. “책 선물 고마워요!” 하면서 흔드는 손길에 저는 고개를 꾸벅 숙입니다. 택시로 한림대학교를 가 보는데 어귀부터 우거진 나무가 마음에 듭니다. 나무가 우거진 대학교라면 이곳을 다니는 젊은 분도 푸른 넋을 더 곱게 배울 만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온누리 모든 학교가 나무를 품으면서 푸르면 좋겠어요. 지식·정보를 나누는 길을 넘어서 꿈·사랑을 그리면서 나누는 자리에 서면 좋겠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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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판에 심은 꽃 (2018.8.20.)

― 서울 종로 〈역사책방〉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4

02.733.8348.

http://historybooks.modoo.at



  우리 몸을 이루는 숨결이 무엇인가를 놓고서 스스로 몸에 이모저모 해본 폴란드사람이 있습니다. 이분은 이태란 나날을 덩이진 밥을 안 먹고서 햇볕하고 바람하고 빗물을 받아들이면서 살기도 했답니다. 이동안 손수 살피고 캐내며 알아낸 이야기를 여러 나라를 돌면서 들려주는데 마침 한국에도 찾아온다고 해서 곁님하고 아이들이랑 배움마실을 다녀왔어요. 지리산 골짜기에서 듣고 같이 해보는 배움마실은 재미났습니다. 오래도록 뒤엉킨 여러 실타래를 찬찬히 풀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집을 나선 김에 여느 때에는 좀처럼 가기 힘든 데도 나들이를 합니다. 이를테면 일산에서 묵으며 전철로 아이들하고 서울 한복판 경복궁 옆자락으로 나들이를 왔어요. 이곳에 ‘한글전각갤러리’란 알찬 터가 있거든요. 한글전각갤러리 ‘돌꽃지기’님하고 돌에 글씨를 새기며 놀다가, 이곳하고 이웃한 〈역사책방〉에 살짝 들릅니다. 한글전각갤러리는 곧잘 들렀는데 어느새 이웃에 알뜰한 책집이 깃들었네요.


  책집 이름처럼 역사를 다루는 책을 넉넉히 들여놓습니다. 역사책만으로도 넉넉히 책집을 채울 만하지요. 다만 역사책만으로 장사가 될까 걱정하면서 선뜻 ‘역사책집’을 열려고 나서기는 만만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경복궁 곁에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있는 〈역사책방〉 골마루를 거닙니다. 《박남옥,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박남옥, 마음산책, 2017)이라는 책을 먼저 집어듭니다. ‘첫 여성’ 영화감독이라서기보다, 글쓴님이 걸어온 삶자국이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마치 레닌 리펜슈탈 님처럼 모든 삶길을 스스로 일구고 스스로 짓고 스스로 펴면서 이 별에 사랑이란 씨앗을 심은 분이로구나 싶어요.


  역사책 곁에 있는 과학책이라 할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슈테판 클라인/전대호 옮김, 청어람미디어, 2014)도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죽 읽고 보니 뒤로 가면 갈수록 엮은이가 여러 과학자한테 묻는 말이 새롭지 못해요. 일부러 뻔한 말만 묻는다기보다 스스로 마음을 더 틔우거나 열면서 ‘별 = 먼지’인 실마리를 깊고 넓게 들여다보지는 않네 싶더군요.


  일본사람은 남다르기도 하다고 여기면서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이나가키 히데히로/조홍민 옮김, 글항아리, 2017)을 골라듭니다. 가만 보면 우리도 ‘숲고장’이나 ‘푸른고을’ 같은 이름으로 어느 고장이나 고을이 걸어온 길을 되새길 만합니다. 높다란 집이나 널따란 찻길이 끝없이 늘어나는 고장이나 고을이란 얼거리가 아닌, 어느 고장이나 고을에 푸나무가 얼마나 오래도록 어떻게 사람들 곁에서 푸른바람을 일렁이는가를 짚을 만해요. 푸나무가 우거진 고장에 마실을 해보면 그 고장에서 만나는 분들 낯빛이 참 푸르게 빛나요. 푸나무가 없다시피 한, 이른바 자동차하고 높은집으로 매캐한 고장에 마실을 해보면 그 고장에서 스치는 분들 낯빛이 너무 바쁘고 차갑고 서두르고 안절부절 못하는구나 싶어요.


  신기수라는 분이 남긴 자취를 따라서 엮은 《신기수와 조선통신사의 시대》(우에노 도시히코/이영화 옮김, 논형, 2017)는 일본사람이기에 엮을 만한 책인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이만큼 파고들거나 짚으면서 우리 발자취를 책으로 묶을 만한 마음결은 없지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책을 못 묶더라도 이런 책을 알아보고서 한국말로 옮길 줄은 알기에 반갑습니다.


  역사책 둘레에 살몃 깃든 사진책 《바람의 눈, 한국의 맹금류와 매사냥》(김연수, 수류산방, 2011)을 폅니다. 사진책이란 새로운 역사책입니다. 글 아닌 사진으로도 우리가 걸어왔고 살아왔고 사랑했고 살림한 자취를 읽을 만하거든요. 꼭 글로 갈무리해야 역사책 갈래에 들지 않아요. 사진책은 사진으로 역사에 인문에 문학에 예술에 그림에 이야기에 과학에, 모든 갈래를 품어서 선보이는 살뜰한 꾸러미라고 느껴요. 그나저나 매사냥을 다룬 사진책은 ‘너무 멋들어지게 꾸미려’ 했네 싶어서 아쉬워요. 수수하면서 가볍게 짚으면 한결 나아요. 자꾸 스스로 치켜세우면서 치레를 하려는 엮음새가 된다면, 되레 ‘바람눈’이라는 매사냥 이야기하고 동떨어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한글전각갤러리에서 놉니다. “같이 책집 둘러볼래?” 하고 물으니 “우리 집에도 책 많아. 책 그만 사.” 하고 대꾸합니다. 심드렁한 아이들 대꾸도 있고 해서 책은 몇 자락만 고릅니다. 이곳 서울 한복판에 역사책으로 꽃을 심은 어여쁜 마을책집이 언제나 새롭게 피어나는 살림자리가 되기를 바라면서, 제가 쓴 사전 가운데 하나인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 슥슥 토막글을 적어서 건넵니다. 이다음에 서울 한복판에 다시 마실을 올 날이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사뿐사뿐 걸음꽃 옮기고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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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걸음 (2019.10.8.)

― 서울 신촌 〈숨어있는 책〉

02.333.1041.

서울 마포구 신촌로12길 30



  이틀이 멀다 하고 나들이하던 책집에 해걸음을 합니다. 해걸음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반가이 여길 노릇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전남 한켠에서 살림을 꾸리니 서울마실이 뜸하고, 뜸한 서울길에 해마다 하루쯤 걸음할 수 있다면, 더구나 해걸음을 하는 데에도 한 시간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서 부랴부랴 돌아나와야 하더라도, 이렇게 찾아갈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살며 날마다 책숲마실을 다닐 적에 만난 ‘날걸음(날마다 걸음하는)’ 책손 할배는 으레 “하루에 한 번도 모자라! 아침 낮 저녁, 이렇게 세 걸음은 해야 단골 책집이라고 말할 만하지!”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 군데 책집을 하루에 세걸음을 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도 그럴 까닭이 서울에만 해도 아름책집이라 할 곳이 1990년대 끝무렵하고 2000년대 첫무렵 사이만 하더라도 삼백∼오백 곳쯤 되었다고 느끼거든요. 하루에 한 곳씩 들르면 해걸음이 되는 셈이니, 하루에 세걸음을 하는 엄청난 단골 책집까지 두지는 못했어요. 이틀이나 사흘마다 찾아가는 책집을 여럿 두었을 뿐입니다.


  어느덧 스무 해 책손이 된 〈숨어있는 책〉입니다. 새삼스럽지만 〈숨어있는 책〉이 처음 문을 열던 무렵이 애틋하게 떠오르고, 그날부터 뻔질나게 드나들던 일이 아련하게 생각나며, 충주로 인천으로 삶터를 옮기면서 차츰 발길이 뜸해야 했고, 전남으로 옮기며 그야말로 까마득하네 싶어, 이따금 사진을 넘기면서 ‘그때에는 이러했지’하고 되새기곤 합니다. 책집을 다닐 적마다 책집 삶자락을 바지런히 사진으로도 옮겨놓는데요, 그동안 찍은 사진이 누구보다 저 스스로한테 반가우면서 고맙구나 싶어요.


  글하고 사진이 어우러진 《look at us, etc, etc》(William Saroyan 글·Arthur Rothstein 사진, Cowles book, 1967)를 봅니다. 통통 튀는 글에 수수한 미국사람 살림살이가 묻어나는 사진이 함께 있습니다. 펴낸해를 다시 들춥니다. 1967년. 우리한테 1967년은 이만 한 책은 어림조차 못하던 나날이었구나 싶으면서, 그 뒤 쉰 해 남짓 흐르는 사이 우리 글살림·사진살림은 얼마나 발돋움했으려나 궁금합니다.


  전남에 살기에 눈에 꽂히는 《한국 지명 총람 14 전남편 2》(한글학회, 1982)하고 《한국 지명 총람 15 전남편 3》(한글학회, 1983)을 만납니다. ‘전남편 2’은 예전에 장만했고, ‘전남편 1’가 아직 없습니다. 비록 ‘전남편 2’은 예전에 갖추었더라도 이 나라 땅이름을 하나로 그러모은 놀라운 꾸러미이기에 한 자락 더 갖추자고 생각합니다. 남녘을 골골샅샅 누비며 땅이름을 그러모은 이 꾸러미는 참 대단하지요. 오늘날처럼 셈틀을 놓고서 갈무리한 꾸러미가 아니라 맨손으로 일궈낸 열매이기까지 하거든요. 더구나 지난날에는 길그림만 보고서 골골샅샅 누볐으니, 또 길그림에 안 나온 데도 많았으니, 다리품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야 여밀 수 있던 꾸러미입니다.


  손바닥책으로 나온 《ブッダ 12》(手塚治蟲, 潮出版社, 1993)를 봅니다. 짝이 안 맞기에 하나만 고릅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이 빚은 《붓다》를 일본에서는 이렇게 앙증맞게도 펴내었네요. 일본이 책살림이 남달리 앞선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한국은 뻥튀기가 너무해요. 단출하면서 가볍고 값싸게 널리 읽도록 책꼴을 여미는 일을 제대로 하는 ‘큰 출판사’는 아직 하나도 없거든요.


  어린이를 사진으로 어떻게 담아낼 만한가를 멋지게 담아낸 《complete course in photographing children》(John Hedgecoe, Simon & Schuster, 1980)을 봅니다. 오늘 만난 이 사진책은 책싸개도 대단합니다. 미국 어느 도서관에서 나온 책인데, 도서관에서 쓴 싸개는 책을 그야말로 곱게 건사하는 구실을 합니다. 어쩜 이렇게 세 겹짜리 책싸개로 책을 돌보는 손길이었을까요. 한국에서 도서관지기로 일하는 분이라면 ‘도서관 책싸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하는 매무새를 미국 도서관에서 배워야겠다고 느낍니다. 미국은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뿐 아니라 군대도서관도 책을 알뜰히 다룰 줄 안다고 느껴요. 미국 도서관을 둘러본 일은 아직 없습니다만, 미국 도서관에 있다가 한국 헌책집으로 흘러나온 책은 수두룩하게 보았어요.


  언제 되읽어도 가슴을 찌릿찌릿 울리는 《마지막 인디언》(디오도러 크로버/김문해 옮김, 동서문화사, 1982)을 새삼스레 봅니다. 푸름이가 읽을 문학을 꾸준히 내는 몇몇 출판사에 이 아름다운 문학을 되살리면 어떻겠느냐고, 헌책집에서 이 책을 찾아내어 보낸 적이 있습니다만, 어느 출판사에서도 이 책을 되살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오래된 글이라 여길 수 있고, 그분들이 보기에 마음에 안 찰 수 있겠지요. 북미 텃겨레 가운데 미국 군홧발에 사라져야 했던 어느 겨레 마지막 살림살이 이야기를 눈물겨우면서도 아리땁게 담아낸 《마지막 인디언》이라고 느낍니다.


투시는 ‘푸른 동굴’에서 이시가 가져다 만들어 준 파란 꽃무늬 구슬을 단 조가비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머리카락을 묶은 밍크 힘줄에 딱다구리의 빨강 깃털을 꽂았다. 스커트에도 콩꼬투리와 조가비 장식이 달려서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났다. (41쪽)


  이제 책을 그만 고르고 자리를 옮겨야 합니다. 이튿날 한글날을 맞이해서 가야 할 곳이 있어요. 그러나 1분이라도 쪼개어 골마루를 더 거닐고 싶습니다. 1초라도 틈을 짜내어 사진을 몇 칸이라도 더 찍고 싶습니다. 이러다가 ‘新 自然 きらきら’란 꾸러미로 나온 어린이 사진책 몇 자락을 만납니다.


《新 自然 きらきら 5 あまやどり》(久保秀一 사진·七尾 純 글, 偕成社, 2002)

《新 自然 きらきら 7 あおむしくん》(久保秀一 사진·七尾 純 글, 偕成社, 2002)

《新 自然 きらきら 9 かくれんば》(久保秀一 사진·七尾 純 글, 偕成社, 2002)

《新 自然 きらきら 10 なつのよる》(久保秀一 사진·七尾 純 글, 偕成社, 2003)

《新 自然 きらきら 11 コスモス さいた》(久保秀一 사진·七尾 純 글, 偕成社, 2003)


  숲살림을 사진으로 곱게 여미어서 보여주는 책입니다. 일본에서는 진작부터 이런 어린이책이 숱하게 나왔습니다. 때로는 그림으로, 때로는 사진으로, 풀벌레부터 숲짐승에 바다벗까지 두루 담아내었지요.


  일본에서 선보인 어린이 ‘숲살림 사진책’을 들여다볼 때면, 한국에서는 왜 어린이한테 이바지하는 이러한 사진길을 걸은 어른이 없었나 싶어 놀랍기만 합니다. 한국에서 사진길을 걷는 이들치고 예술을 한다고 우쭐거리는 이는 많아도, 어린이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사진을 찍는 마음을 선보이는 이는 찾아볼 길이 없어요. 아마 대학교 사진학과에서도 이 대목을 못 짚거나 안 건드릴 수 있습니다. 사진강좌에서도 이 대목을 짚거나 다루는 일도 없겠지요. 여러 지자체는 목돈을 들여서 무슨무슨 ‘사진 비엔날레’를 그럴듯하게 일으키곤 하지만, 막상 알맹이가 튼튼하거나 빛나 보이는 자리는 여태 없었다고 느낍니다.


  예술이란 이름을 붙여야 예술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도 그림도 글도 모두 매한가지예요. 이름을 드높여야 이름이 퍼지지 않습니다. 수수한 사람들 살림자리에서 수사한 사랑을 스스로 길어올리는 길을 나아갈 적에 비로소 사진도 그림도 글도 환하게 빛나면서 가슴을 찌릿찌릿 울리면서 적시는 숨결이 된다고 느낍니다.


  이제는 책집을 나서야 할 때입니다. 책값을 셈합니다. 〈숨어있는 책〉 책집지기님하고 마지막말을 나눕니다. “이제 올해에 얼굴 봤으니 올해에는 얼굴을 더 못 보나?” “그러게요. 10월이 되어서야 처음 얼굴을 보았네요. 해가 넘어가기 앞서 얼굴을 더 보면 좋을 텐데요.” “못 보면 어때. 다음해에는 또 볼 수 있잖아?” “아, 아, 아쉽다. 그러나 아쉽다 말아야지. 이렇게 올해에도 얼굴을 뵙고 책을 만날 수 있으니 고맙지요. 그러면, 아직 새해는 두 달 더 남았지만 미리 새해절을 할게요. 올해에도 새해에도 언제나 기쁘며 아름답게 이곳에서 하루 누리셔요. 고맙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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