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부산한 부산 (2024.1.19.)

― 부산 〈스테레오북스〉



  마산에 있는 이웃님이 낸 어느 책을 2018년에 읽다가 ‘마산 산복도로’를 적은 대목에서 놀란 적 있습니다. ‘산복도로’는 부산에 있는 언덕마을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여겼는데, 나라 곳곳에 더 있더군요. 제가 나고자란 인천에 있는 비탈진 골목마을은 ‘언덕·언덕배기’라든지 ‘재·고개’ 같은 이름을 씁니다. ‘산복(山腹)’에 ‘도로(道路)’를 붙인 일본스런 한자말은 ‘고개·고갯길·고갯마루’나 ‘비탈·비탈길’이나 ‘언덕·언덕길’이나 ‘재·잿길’이나 ‘멧길·묏길’로 고쳐쓸 만합니다.


  낱말책을 쓰는 몸이어도 아직 못 잡아채거나 모르는 낱말이 수두룩합니다. 늘 새로 맞이하면서 배웁니다. 언제나 새로 가다듬고 다독입니다. 지난 한 해에는 쉴 겨를이 빠듯한 채 일손을 잡았고, 올해에는 쉬엄쉬엄 하자고 여기며 부산마실을 합니다. 오래나무 한 그루가 오래마을과 오래집을 품는 결을 헤아리면서 노래를 쓰고 글자락을 여밉니다. 처음에는 씨앗 한 톨이고, 이내 어린나무요, 곧 푸른나무에, 여러 또래나무하고 어울리면서 숲나무를 이룹니다.


  모든 일에서 즐겁고 기쁘게 마련입니다. 또 모든 일에서 아쉽고 서운할 수 있어요. 즐겁거나 서운할 적에 갈마드는 마음에 따라, 다 다른 말이 태어나고, 이 다른 말을 달래면서 사투리가 차츰차츰 자란다고 느낍니다.


  복닥이는 칙폭길로 부전나무까지 달립니다. 이른새벽부터 왜 그런지 길이 막혀 버스를 놓치기도 했지만, 그러려니 지나갑니다. 문득 ‘부산하다’라는 우리말을 곱씹으면서 〈스테레오북스〉로 걸어갑니다. ‘부’가 밑동이고, ‘붐비다·북적이다·부대끼다·부리나케’하고 잇습니다. ‘부글부글·바글바글’에 ‘불다·붓다·붇다·붙다’도 맞닿아요. 그리고 ‘불·부아·뿔’도 얽히지요. 이 곁에는 ‘부지런·바지런’도 어울립니다. 이쯤 펼치면 ‘부산하다’를 알 만할까요?


  한자로 가리키는 ‘부산’이라는 이름도 있으나, 이곳은 어쩐지 우리말 ‘부산하다’가 어울리지 싶습니다. 북적이고 불타는 마음도 붇되, 부지런하고 바지런히 살림을 짓는 터전인걸요. ‘부·바’가 맞닿기에 ‘붉다·밝다’도 얽혀요. 불은 타오르기도 하면서, 밝히기도 합니다.


  책집마다 책손님이 붐벼도 나쁘지 않습니다. 마을책집이 북적북적 책수다로 물결쳐도 즐겁습니다. 숲에 뭇나무가 어우러지면서 푸르고 아름다우며 푸근하듯, 책터마다 뭇책과 뭇수다와 뭇살림을 아우른다면 새롭고 사랑스러우며 넉넉하지 싶어요. “더 많이”가 아닌 ‘오붓·가붓’ 만나면서 봉긋 돋는 봄꽃이면 맑고 밝아요.


ㅅㄴㄹ


《집앞목욕탕 vol.2》(매끈목욕연구소 편집부, 싸이트브랜딩, 2023.11.10.)

《달걀과 닭》(클라리시 리스펙토르/배수아 옮김, 봄날의책, 2019.6.24.)

#O Ovo e a Galinha 1960년

《피아노 시작하는 법》(임정연, 유유, 2023.4.14.)

《그때, 우리 할머니》(정숙진·윤여준, 북노마드, 2016.12.12.첫/2019.10.10.5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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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 (2024.3.16.)

― 부산 〈카프카의 밤〉



  부산 동광동에서 연산동까지는 12킬로미터 즈음입니다. 두바퀴를 달리면 30분일 텐데, 87번 버스를 타니 한 시간 길입니다. 우리말로는 ‘고갯길’이고, 일본말로는 ‘산복도로’인데, 고갯길을 굽이굽이 지나면서 마을빛을 새삼스레 느낍니다. 예전에 부산까지 두바퀴를 끌고 찾아갔을 적에 이 언덕배기를 넘었구나 하고도 생각하고, 두 아이를 이끌고 부산마실을 하며 거닐던 골목을 살펴봅니다.


  둘레에서 늘 묻습니다. “아니, 누리책집에서 사면 집까지 바로 갖다 주고, 더 쌀 텐데, 왜 품을 들이고 힘들게 책집까지 사서 온돈을 다 치르시오?” 저는 시골에서 사니 누리책집에서 사는 책도 있습니다만, 이웃고을로 마실을 갈 적에는 기쁘게 굽이굽이 골목골목 돌면서 천천히 바람을 쐬는 하루를 받아들이는 책숲마실을 합니다. 누리책집에서 사는 책이란, 줄거리만 읽는 길입니다. 다리품을 들여서 온돈을 들이는 책집마실이란, 책을 읽고 짓고 나누는 마음이 어떤 마을에서 어떤 꿈으로 피어나는 어떤 사랑인지를 느끼는 길입니다.


  오늘 14시부터 〈카프카의 밤〉에서 이야기꽃이 있기에 일찌감치 찾아갑니다. 일찍 찾아가야 책집을 돌아보면서 ‘밤에 읽고, 이튿날 고흥 돌아가는 버스에서 읽을 책’을 장만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좀 느슨히 여시는 듯해요. 그래서 〈카프카의 밤〉하고 가까운 헌책집 〈글밭〉으로 가서 느긋이 책빛을 누립니다. 이러고서 〈카프카의 밤〉으로 돌아옵니다.


  말 한 마디는 늘 노래입니다. 노래인 말자락을 누리면서 스스로 환합니다. 하늘에서는 해가 웃고, 땅에서는 내가 웃습니다. 온하루를 너랑 내가 새롭게 하나인 우리를 이루는 살림으로 퍼지면서 따뜻합니다. 잇고 익고 읽고 있으니 품습니다.


  부산 이웃님하고 둘러앉아서 함께 ‘5분 만에 노래짓기(시창작)’를 즐기고, ‘책’이라는 낱말을 우리말로 어떻게 풀어낼 만한지 들려줍니다. ‘채·채다·채우다·챙기다’를 비롯해 ‘차리다·차다·참·참하다·착하다’에다가 ‘ㄱ·가다·감·곰·검’이 어우러진 숨결로 ‘책’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한자로 ‘冊’을 보아도 되고, 우리 나름대로 ‘채’하고 얽힌 수수께끼를 찾을 만합니다.


  오늘 새벽은 동광동 까마귀떼가 노래로 깨워 주었습니다. 새벽에 몇 줄을 쓰고서, 87번 버스를 타며 책집으로 가는 길에 매듭을 지은 노래가 있습니다. ‘바다·밤·밭·바람’이 어떤 말밑으로 만나는지를 풀어내면서 책집을 기리는 글자락을 여미어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책집마실을 하면서 찍은 빛꽃을 종이로 뽑아서 드렸고, 요새는 이 책집이 이 살림터에서 어떤 숲빛인지 노래로 써서 건넵니다.


ㅅㄴㄹ


《라면 먹고 갈래요》(하마탱, 인디페이퍼, 2022.7.15.)

《점심 시집》(프랭크 오하라/송혜리 옮김, 미행, 2023.5.25.)

#LunchPoems #FrankOHara

《공무원으로 살아남기》(김수연, 이비락, 2023.12.12.)

《꽃가람 2》(김윤숙·곽민서 엮음, 현대문화, 2024.2.8.)

《야성의 부름》(잭 런던/박성식 옮김, 다빈치, 2023.11.11.)

《우리말꽃》(최종규, 곳간, 2024.1.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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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Salome 2024-03-19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이 고향이지만 해외에 거주하다보니 늘 그립습니다. 글에서 고향냄새 풀냄새 그득 느끼고 가요, 좋네요~ 참 그리고 산복도로라는 말 이제 사용하지 말아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숲노래 2024-03-19 13:13   좋아요 0 | URL
몇 해 앞서까지 저도 그냥그냥 ‘산복도로‘라는 말을 썼어요. 부산에만 있는 고갯마을 이름이겠거니 여겼어요. 그런데 마산이 고향인 이웃님이 ˝마산에도 산복도로가 있는데?˝ 하시더군요.

마산 이웃님 말씀을 듣고서 ‘산복도로‘란 이름이 언제 어떻게 생겨서 자리잡았는지 헤아리니, ‘고개‘나 ‘재‘나 ‘언덕‘이나 ‘비탈‘을 일본스런 한자말로 ‘산복‘이라 하고, 일본에 ‘산복도로‘가 있으며, 이 이름이 우리나라로 고스란히 들어온 셈이더군요.

사전을 쓰는 몸입니다만, 저도 아직 놓치거나 모르는 낱말이 수두룩합니다.

부산은 그야말로 부산스럽게 싱그러운 고장이라고 느껴요. 머잖아 고향마실을 하시면서, 푸릇푸릇 즐거우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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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2022.5.24.)

― 인천 〈시와 예술〉



  우리가 문득 만나서 손에 쥐는 책 하나는, 언제나 새롭게 둘레를 느끼고 맞아들이라고 이끄는 자그마한 빛줄기일 듯싶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보여주고서 밝힙니다. 저 책은 저렇게 들려주고서 속삭입니다. 그 책은 그렇게 알려주고서 노래합니다. 더 많이 읽히지만 길잡이하고 먼 책이 있다면, 아직 덜 읽히지만 어진 키잡이 노릇인 책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서울에 맞추어 줄거리를 짜는 책이 있고, 곧 사라질 수 있는 시골을 헤아리며 이야기를 여미는 책이 있어요.


  어떤 줄거리이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누구나 알 만하기에 슥 보아넘길 일이지 않아요. 어린이부터 알아보도록 묶는 줄거리이기에 더 차근차근 새기면서 나눌 살림길을 익힐 수 있어요. 온사랑을 다하는 하루를 담는 줄거리라면 되읽고 곱새기면서 마음을 일구는 밑거름으로 삼을 만합니다.


  적잖은 책은 잘팔리기를 바라는 뜻으로 나오더군요. 잘팔려도 좋을 텐데, ‘좋다’란 낱말은 ‘좁다’하고 말밑이 같아요. “좁게 보기 = 좋게 보기”입니다. 마음에 든다는 뜻인 ‘좋다·좋아하다’는 “온누리를 두루 보는 눈썰미가 아닌, 어느 곳만 좁게 보며 받아들이려는 매무새”예요. “잘팔리면 좋은걸 = 온누리를 두루 넓게 깊이 안 보더라도, 내 마음에 들면 그만”인 굴레로 치닫곤 합니다.


  골목빛을 헤아리면서 〈시와 예술〉에 깃듭니다. “하루를 보내는 삶”이 아닌 “살림을 짓는 삶”을 생각하면서 이웃집을 바라봅니다. 나부터 스스로 하루그림과 살림그림을 헤아리고, 마음을 돌보는 씨앗을 이웃한테 건네려고 합니다. 책이란, 서로 새롭게 잇는 길을 찾아나서는 ‘읽몫’이요 ‘읽목’이지 싶어요. 읽으며 나누는 몫입니다. 읽으며 나아가는 목입니다.


  마음으로 만나는 하나인 넋일 수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어느 이웃 눈물도 생채기도 멍울도, 또 웃음과 노래도 고루 느끼며 나누게 마련입니다. 들꽃을 마주하듯 이웃을 맞이하고 어린이를 바라볼 적에는, 늘 사랑과 숲 두 가지를 왼손과 오른손에 놓고서 함께 노래하는 하루로 피어나면서 빛나지 싶어요.


  못물도 냇물도 바닷물도 우리 얼굴과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작은 빗방울과 이슬방울과 눈물방울도 우리 넋과 숨결을 담는 거울이에요. 겉모습에 서린 숨소리를 읽습니다. 겉낯에 감도는 숨빛을 들여다봅니다.


  살갗은 몸을 감싸면서 보듬습니다. 아주 얇은 가죽인데 속살을 지키고 뼈와 힘살이 맞물려 움직이도록 북돋웁니다. 책은 매우 얇은 종이에 이야기를 담습니다. 얇고 가볍지만 삶과 살림과 사랑을 부드럽게 달래면서 이야기를 이어줍니다.


ㅅㄴㄹ


《anywhere words》

《unspolen words》(Jung A Kim, 김정아, 2017)

《착하게 살아온 나날》(조지 고든 바이런 외/피천득 옮김, 민음사, 2018.6.1.)

《Birds in a Book》(Lesley Earle 글·Rachel Grant 그림, Abrams Noterie, 2019.)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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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 맨낯 삶낯 (2023.4.22.)

― 서울 〈숨어있는 책〉



  누구나 늘 무슨 말을 합니다. 느끼고 보고 헤아리는 하루를 말로 옮깁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며 배운 얼거리로 말을 폅니다. 오늘까지 익히고 다진 숨결을 말에 담습니다. 깊거나 넓게 말을 들려주는 사람이 있고, 얕거나 어설피 말을 내뱉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넘어지면서 다릿심을 기릅니다. 아이들은 다치고 멍들면서 튼튼하게 큽니다. 어른도 넘어질 때가 있고, 자꾸 다칠 수 있습니다. 아이나 어른 모두 잘못을 숱하게 저지르면서 뒤늦게 배우게 마련입니다. 잘못을 저지르느냐 마느냐는 썩 대수롭지 않습니다. 잘못을 뉘우칠 줄 알면 되고, 허물을 곱씹으면서 거듭나려고 애쓸 노릇입니다.


  예부터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고개숙일 줄 알기에, 아이에서 어른으로 나아갑니다. 고개를 안 숙이니까, 아이에서 철딱서니없는 놈팡이로 건너가더군요.


  봄빛을 느끼는 저녁에 〈숨어있는 책〉에 찾아옵니다. 이 책도 고르고 저 책도 집습니다. 시골집에서 몇 달 동안 느긋이 읽을 책을 잔뜩 고릅니다. 시골에는 풀꽃나무에 개구리에 새에 풀벌레가 둘레에 넘실넘실이되, 둘레에 책집이 없고 ‘책읽는 이웃’도 없다시피 합니다.


  서울을 떠나 시골로 삶터를 옮길 뜻이 있는 분이라면, 논밭일뿐 아니라 책읽기를 하려는 마음도 품기를 바라요. 논밭일에만 온하루를 쏟지 말고, 하루 한나절씩 가만히 읽고 쓰고 새기는 삶을 짓는 꿈으로 시골살이를 하기를 바랍니다.


  돈만 벌거나, 이름만 날리거나, 힘만 부리는, 이런 바보스런 삶은 스스로 죽음길로 치달아요. 살림을 가꾸고, 사랑을 나누고, 생각을 짓는, 이런 어진 삶은 스스로 삶노래로 뻗습니다. 민낯이 살림낯이니 고와요. 맨낯이 숲낯이니 아름다워요. 민낯이 돈버러지라면 얼뜨지요. 맨낯이 힘바치라면 가엾습니다.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사람은 늘 스스로 새롭게 섭니다. 스스로 안 배우고 안 익히는 사람은 늘 고리타분합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가 있지만, ‘아이돌봄 시늉’을 하는 철없는 이가 있습니다. 살림을 짓고 책을 읽고 풀꽃나무를 품는 어른이 있으나, ‘책읽는 흉내’에 그치는 겉발림이 있어요. 잘 해내야 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찬찬히 펴면서 거듭날 일입니다. 잘못했으면 고개숙이면서 고쳐나갈 노릇입니다. 고개를 빳빳이 세울수록 쭉정이처럼 나부대다가 쓰러집니다.


  서울마실을 하며 책을 실컷 보았으니, 이제 쉬러가야겠습니다.


ㅅㄴㄹ


《식민지의 四季》(죠지 오웰/장윤환 옮김, 청람, 1980.5.10.2벌)

《굶는 광대》(프란츠 카프카/김창활 옮김, 태창, 1978.9.15.)

《傳敎大師》(竹內芳衛, 日本打球社, 1943.3.25.첫/1943.8.15.재판.)

- 書籍·文具 柳商會. 京城府明倫町二丁目一五. 電話東局 ⑤三一五番

- 일본 천태종 

《王子와 탈》(최인훈, 문장, 1980.5.5.첫/1980.7.10.재판)

《국민정신무장독본 2 민주주의의 참된 모습》(오천석, 현대교육총서출판사, 1968.6.15.)

《朝日政治經濟叢書 6 婦人參政權の話》(朝日新聞社 政治經濟部 엮음, 朝日新聞社, 1930.11.30.)

《유니베르타스문고 1 현대물리학의 자연상》(W.하이젠베르크/이필렬 옮김, 이론과실천, 1991.12.5.)

《죽을 준비》(손철, 상아, 1989.4.20.)

《작은 시집》(김연희, 꾸뽀몸모, 2015.1.2.)

《서울에서 보낸 3주일》(장정일, 청하, 1988.8.30.첫/1988.9.20.2벌)

《조치훈 1주일 완성 최신바둑첫걸음》(조치훈, 행림출판, 1985.10.20.)

- 문경서적 책싸개 한서부 T.22-8558 양서부 T.26-5069

《과학사의 뒷이야기 3》(이준범 엮음, 삼안출판사, 1978.1.30.첫/1980.2.1.재판)

- 우주여행과 전자두뇌와 로봇이 지배하는 2001년의 과학세계를 해부하는 시리이즈

- 범우서점. 각종일반서적·학교참고서. 안양 2-7099 천주교회 옆.

《종이비행기》(편집부 엮음, 산하, 1990.1.20.)

《霧津紀行》(김승옥, 범우사, 1977.5.5.첫/1979.10.20.중판)

《분홍의 시작》(남길순, 파란, 2018.8.20.)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정숙자, 파란, 2017.6.26.)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최명진, 걷는사람, 2023.1.25.)

《발코니 유령》(최영랑, 실천문학사, 2020.11.16.)

《억울한 세금 내지 맙시다》(윤종훈, 보리, 1996.10.15.)

《내가 여전히 나로 남아야 함은 아직도 널 사랑하기 때문이다》(김기만, 지원, 1990.12.10.첫/1991.4.15.5벌)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허만하, 솔, 2000.10.5.)

《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신경림·이시영 엮음, 창작과비평사, 1985.3.30.)

《배의 歷史》(김재근, 정우사, 1980.1.25.)

《韓國文學全集 13 兪鎭午 選集》(박세준 엮음, 선진문화사, 1973.5.1.)

- 新女苑 5월호 別冊際錄

《荒無地에 뿌리를 내리고》(김용기, 노벨문화사, 1972.9.23.)

《韓國兒童文學論》(이상현, 동화출판공사, 1976.9.10.)

《나라사랑 43집 별책》(백낙준 엮음, 외솔회, 1982.6.30.)

《辭說時調全集》(김제현 엮음, 영언문화사, 1985.4.30.)

《愛國歌와 安益泰》(김경래, 성광문화사, 1978.1.20.)

《우리글 바로쓰기》(이오덕, 한길사, 1989.10.28.)

《한글의 역사와 미래》(김정수, 열화당, 1990.10.8.)

《발해사 연구 7》(장월영 엮음, 연변대학출판사, 1996.12.)

《辛亥革命史》(左舜生/정병학 옮김, 문교부, 1965.3.10.)

《Martin Chambi》(Amanda Hopkinson 엮음, Phaidon, 2001.)

《Mathew Brady》(Mary Panzer 엮음, Phaidon, 2001.)

《80년대 대표소설》(편집부 엮음, 현암사, 1989.12.15.)

《새(鳥)說話 硏究》(강신영,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1997.2.)

《아시아의 축제》(유네스코 아시아 문화센터 엮음/김유진 옮김, 일지사, 1976.11.20.)

- 우리 명숙이의 지속적인 발전을 빌면서, 롯데백화점에서 오빠와 함께 어린이날을 기념하면서 1981.5.5.

- 一九八六.十.九. 한글날 연희동에서 기문이 주려고 사다. 동화책을 보면 내 사랑하는 기림이·기문이에게 사주고 싶다.

《세계과학문고 : 끝없는 집념》(박동현·현정순 엮음,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 1980.5.1.)

- 독후감은 이렇게 쓰자

- 제2회 전국학생 과학문고 읽기 운동

- 과학책 읽어 나라 힘 꽃피우자

《2016 한글을 듣다》(편집부 엮음, 국립한글박물관, 2020.12.23.)

《講談社文庫 A8 羅生門·偸盜·地獄變·往生繪卷》(芥川龍之介, 講談社, 1971.7.1.)

《哲學の人間學的原理》(チェルヌイシェフスキ-/松田道雄 옮김, 岩波書店, 1955.11.25.첫/1957.1.20.2벌)

《世界史のなかの明治維新》(芝原拓自, 岩波書店, 1977.5.20.첫/1977.7.15.2벌)

《寫眞の讀みかた》(名取洋之助, 岩波書店, 1963.11.20.첫/1964.8.10.4벌)

《유승준 사진집 INFINITY》(김중만 사진, 김영사, 2001.9.1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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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눈길 고무신 (2023.12.22.)

― 광주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



  큰고장과 서울에서 지낼 적에 고단하던 한 가지는 ‘신’입니다. 발에 꿰는 살림인 ‘신’은 으레 플라스틱덩이라 바람이 안 들어요. 고삭부리로 태어나 코머거리랑 살갗앓이로 고달피 어린날을 보낼 적에 ‘폴리옷’은 남이 입은 옷을 스치기만 해도 며칠씩 살갗이 빨갛게 부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슈트’라 일컫는 하늬옷을 차려야 점잖다고 여기지만, 이른바 ‘양복’ 옷감은 살갗앓이로 고단한 사람한테는 사나운 멍에입니다. 저는 ‘양복 입은 이’ 곁에는 아예 안 있으려고 합니다.


  2003년 가을부터 이오덕 어른 글살림을 갈무리하는 일을 하느라 충주 무너미마을에 깃들며 처음으로 고무신을 꿰었습니다. 고무신은 큰고장과 서울 옛저자 신집에서도 살 수 있더군요. 발가락과 발바닥이 숨쉴 틈이 많은 고무신을 만난 뒤로는 이제 한겨울에도 고무신만 뀁니다. 2003년에는 한 켤레 3000원이었고, 2023년에는 6000원입니다.


  눈덮인 광주로 살짝 마실을 나왔습니다. 고무신으로 눈길을 걷기란 만만하지 않고, 발가락도 업니다. 미끄러울수록 더 느긋이 걷고, 발가락이 얼수록 더 오래 쉽니다. 저녁에 만날 분한테 찾아가기 앞서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에 들릅니다. 호젓한 골목길을 가만히 밝히는 마을책집입니다.


  어쩐 일인지 불이 훅 나갔는데, 불빛이 없으니 한결 고즈넉이 앉아서 책을 펼칠 만합니다. 우리 시골집은 조금 어둡게 건사하기에 밤이 익숙해요. 깜깜한 책집에 앉아서 살며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불이 없으면 별을 보면 됩니다. 불빛에 기대는 서울살림이 너무 퍼진 탓에 별과 해를 자꾸 잊게 마련입니다.


  누구나 다 다르게 마음을 다스리는 길을 배우는 하루입니다. 알고 보면, 나중에 뒤돌아보면, 곰곰이 새기면, ‘잘못·말썽·사달·저지레’는 없더군요. 다 다르게 겪는 수렁이나 굴레나 차꼬이기도 하면서, 다 다르게 헤치고 견디고 넘으면서 새롭게 거듭나는 길이에요. 다만, 스스로 잘못을 저질렀으면 스스로 뉘우쳐서 깨끗하게 거듭날 일입니다. 저지레를 멈추고서 사랑으로 피어나는 길을 찾을 노릇이고요.


  전라남도에서 열 몇 해를 사노라니, 이 고장 적잖은 벼슬아치하고 글바치는 몇 가지 틀에 갇히거나 가두면서 숱한 ‘잘못·말썽·사달·저지레’를 두루뭉술 감추거나 덮더군요. 배우거나 고치거나 거듭나는 분이 뜻밖에 드물어요.


  하나하나 따지자면, 전남뿐 아니라 전북도, 경남과 경북도, 서울과 경기도, 엉터리는 다 엉터리입니다. 어른은 다 어른입니다. 고장 탓을 할 일은 없습니다. 별빛을 받아들이고 말빛을 새기면서 마음을 가꿀 적에 비로소 사람다울 수 있습니다.


ㅅㄴㄹ


《물망초》(요시야 노부코/정수윤 옮김, 을유문화사, 2021.5.30.)

《열화당 사진문고 : 도마쓰 쇼메이》(도마쓰 쇼메이 사진, 이안 제프리·최봉림 글, 열화당, 2003.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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