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길은 잃다가 찾는 (2025.5.30.)

― 부산 〈나락서점〉



  스스로 안 밝은 사람이라고 여겨서 ‘어둠(어둡다)’을 노래하는 분이 많아요. 어둠을 노래할수록 스스로 어둠빛으로 물듭니다. ‘어렵’게 말글을 꼬고 비틀어요. ‘어둡다 = 어렵다’예요. 얼핏 보기에 빛깔이 같을는지 모르나, 어둠이 아닌 ‘밤(밝다)’을 노래하는 분이 있어요. 아직 밤노래는 많지 않으나 조금씩 늘어날 노릇이지 싶습니다. 캄캄한 밤일수록 별이 밝아요. 모두 잠든 밤이기에 꿈을 밝혀요. ‘밤 = 밝다·밝히다’인 줄 알아본다면, 누구나 스스로 별로 깨어납니다.


  모든 사람은 그저 ‘나’일 뿐이고, 저마다 스스로 ‘나’인 줄 알아볼 적에 ‘너’를 너른 눈빛으로 알아차리게 마련이에요. 나하고 너는 다르면서 하나인 사람인 줄 받아들이기에 비로소 내가 나부터 나로서 사랑하는 길을 열고, 이때에 가만히 생각을 틔워서 말씨(말이라는 씨앗)하고 글씨(글이라는 씨앗)를 스스로 일구어서 내놓는구나 싶습니다.


  부산 사상나루에 내리고서 바로 문현동으로 갑니다. 큰길을 벗어나 안골로 깃드니 훅 조용하고 사람이 뜸합니다. 마을할매 여럿이 해바라기를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합니다. 이쯤 어디 있을 듯한데 책집이 안 보인다 싶어서 길그림을 살피니 이미 지나쳤군요. 거닌 길을 거슬러서 두리번거리니 조그맣게 〈나락서점〉을 밝히는 나무판이 있고, 곁에 고양이가 앉아서 “너 뭐하니?” 하는 얼굴로 쳐다봅니다.


  길을 헤매니 큰짐을 짊어진 채 떠돌면서 땀을 빼지만, 길을 헤매니 책집을 둘러싼 마을을 외려 넓게 돌아봅니다. 부산 서면에는 〈영광서점〉이 커다랗고, 큰책집에는 끝없이 사람물결인데, 북새책집이 나쁘지는 않을 테지만, 이야기라는 샘물을 길어올리자면 안골책집이 고즈넉이 어울리다고 봅니다.


  ‘알고 보면’ 우리는 누구나 ‘말 잘 하고 글 잘 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말 잘 하고 글 잘 쓰는 나를 그만 잊은 사람’이고요. 책을 펴내어 100만 자락을 팔아야 ‘글 잘 쓰는 사람’이지 않습니다. 내가 조그마한 종이에 적바림한 글 한 줄을 내가 스스로 되읽을 적에 활짝 웃거나 눈물이 비처럼 흐른다면, 나는 나로서 나답게 ‘글 잘 쓰는 사람’입니다.


  곧 6.3.을 지날 테고, 새로 나라지기가 나올 텐데, 누가 그 자리에 서든 안 대수롭습니다. ‘그들’이 아닌 ‘우리’가 이곳을 이루는 밑동이요 씨앗이며 숨결이며 나무인걸요. ‘나라’ 아닌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늘고 손길이 늘며 글길이 늘 적에 바야흐로 누구나 스스로 글씨(글씨앗)을 심어서 숲으로 바꾸어냅니다. 파란바다 같은 마음을 받아들여 파란바람이란 노래를 부르기에 다 다르게 빛입니다.


ㅍㄹㄴ


《정산하는 마음》(박미은, 나락, 2021.8.15.)

《빈집과 공명》(신유보, 결, 2024.10.21.)

《포브 POV 1 공생》(편집부, 비와꽃, 2021.11.10.)

《나의 일주일과 대화합니다》(유보라, 자기만의방, 2021.3.16.)

《서울 리뷰 오브 북스 17》(김두얼 엮음, 알렙, 2025.3.15.)


https://www.instagram.com/narakbookshop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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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사이에 깃들어 (2025.4.28.)

― 서울 〈뿌리서점〉



  서울 용산나루 너른터 한켠에 ‘절대금연구역’이라고 큼직하게 새긴 글씨 옆으로 담배를 뻑뻑 피우는 사람이 스물 남짓 있습니다. 시골에서 늘 보던 모습을 서울에서도 새삼스레 봅니다. 담배는 안 나쁘되, 때와 곳에 따라 삼갈 노릇입니다.


  아프거나 괴로울 적에 “눈물을 짓는다”고 말합니다. 즐겁거나 신날 적에 “웃음을 짓는다”고 말합니다. 얼굴로 드러나는 눈물과 웃음이기에 ‘얼굴짓’이라고 합니다. 손으로 하기에 ‘손짓’이고, 발로 보이기에 ‘발짓’이에요.


  밥을 짓고, 생각을 짓고, 꿈을 짓고, 노래를 짓고, 이야기를 지어요. 살림을 짓고, 마을을 짓고, 하루를 짓지요. ‘짓다’란, 이곳에 처음으로 나타나도록 우리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다하여 기운을 써서 이루는 일을 나타냅니다. 말과 글은 삶과 살림을 지으면서 이 삶과 살림을 밝히려고 짓습니다.


  저물녘에 〈뿌리서점〉에 깃듭니다. 등짐과 앞짐을 다 내려놓고서 책시렁 사이를 거닙니다. 책집마실을 하며 “이미 사읽은 책이 잔뜩 있되, 아직 모르는 책이 더 많다”고 느낍니다. “여태 돌아본 책이 참 많더라도, 이제부터 새로 만나서 배울 책은 훨씬 많다”고 여깁니다. 이 책을 읽다가 제자리에 놓고는, 저 책을 읽다가 차곡차곡 쌓습니다. 버스와 전철에서 읽을 책을 챙기다가 어느덧 수북하게 쌓습니다. 새로 사려는 책더미를 마주하며 “또 이만큼 배우는 길이구나” 싶어요.


  누구나 모든 책을 처음부터 몽땅 알아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스치거나 놓칠 수 있고, 뒤늦게 알아채거나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배우려는 사이에 새롭게 눈에 들고, 익히려는 동안에 다시금 마음에 남습니다. 〈뿌리〉 지기님이 볼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웁니다. 책집 전화를 받고, 다른 손님이 찾는 책을 알려줍니다. 저도 책손이지만 여러 책손이 바라는 책이 있는 칸을 나란히 살핍니다.


  용산에서 화곡동으로 넘어가는 길에 읽을 책을 손에 쥐고서 등짐을 질끈 멥니다. 책무게에 기우뚱합니다. 큰길을 뒤뚱뒤뚱 걸으며 책을 읽습니다. 전철을 타고서 비로소 내려놓고, 갈아타면서 다시 멥니다. 또 짐을 내려놓고서 읽다가, 우장산나루에서 내리고는 얼른 달립니다.


  해가 집니다. 한봄이 떠납니다. 서울은 왁자하고 사람물결입니다. 이 사이에 새 한 마리가 머물 틈이 있기를 빕니다. 이 곁에 나비 한 마리가 바람을 타면서 마음껏 봄빛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국회법’이나 ‘대통령법’을 바꿔서, 벼슬자리에 앉는 이들 누구나 “날마다 1시간씩 책만 읽는 틈”을 빼서 늘 스스로 새롭게 배우고 익히라고 한다면, 이 나라가 아름답게 바뀌겠지요.


ㅍㄹㄴ


《文藝 第七卷 第二號》(佐佐木幸綱 엮음, 河出書房新社, 1968.2.1.)

《師大學報 第二卷 第一號》(김선양 엮음,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학예부, 1956.1.10.)

《펭귄 블룸》(캐머런 블룸·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박산호 옮김, 북라이프, 2017.4.15.)

#PenguinBloom #Cameron Bloom #BradleyTrevorGreive

《新版 標準 國語 三年 下》(西尾實 감수, 敎育出版株式會社, 1975.6.10.)

《新韓國文學全集 32 女流新銳作家選集》(편집부, 어문각, 1977.7.20.)

《자연속의 새》(김수만, 아카데미서적, 1988.8.1.)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조영래변호사를 추모하는 모임, 창작과비평사, 1991.12.5.첫/1992.1.20.3벌)

《狀況과 認識》(이광주와 여섯 사람, 한길사, 1980.5.15.)

《韓國水資源開發 初創期의 回顧》(이문혁, 길전출판사, 1985.9.20.)

《포스트모던의 조건》(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유정완·이삼출·민승기 옮김, 민음사, 1992.12.10.)

《낙서형제 4B 2》(오수, 우창, 1994.5.15.)

《현경과 앨리스의 神나는 연애》(현경·앨리스 워커, 마음산책, 2004.5.25.)

#AliceWalker

《실천을 위한 역사학》(쟝셰노/주진오 옮김, 화다, 1985.11.25.)

《로자 파크스 나의 이야기》(로자 파크스·짐 해스킨스/최성애 옮김, 문예춘추사, 2012.3.15.)

#RosaParksMyStory #RosaParks #JimHaskins

#RosaLeeLouiseMcCauleyParks

《새화여자중학교 5회》(1985)

《휘경여자고등학교 5회》(1981)

《서울여자고등학교 23회》(1983)

《산청여자종합고등학교 8회》(1988)

《산청여자종합고등학교 10회》(1990)

《수도여자고등학교 39회》(1986)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29회》(1981)

《그 아내의 手記》(모윤숙, 일문서관, 1959.12.20.첫/1962.2.20.2벌)

《순례자》(정동주, 민음사, 1984.12.10.)

《아무도 모르지》(박철, 창비, 2024.5.10.)

《콧구멍만 바쁘다》(이정록, 창비, 2009.10.5.)

《수런거리는 뒤란》(문태준, 창작과비평사, 2000.4.1.첫/2005.12.15.7벌)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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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열다 (2025.4.30.)

― 인천 〈열다책방〉



  1991년 8월에 인천 중구 신흥동3가 작은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아버지만 “코딱지만 한 13평짜리”를 떠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여겼습니다. 어머니하고 언니하고 저는 마을과 이웃과 동무를 하루아침에 몽땅 잃어버려야 해서 새터로 가지 말자고 했으나, 아버지는 하나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1:3’이어도 아버지 마음대로 인천 연수구 연수동 허허벌판 잿집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푸른배움터를 마친 첫 해인 1994년에는 하루 여덟 시간을 길에 쏟으면서 인천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사이를 오갔는데, 날마다 불수레(지옥철)를 치러야 했되, 날마다 길에서 책을 너덧 자락씩 읽었습니다. 인천 가는 길이 일찍 끊기면 밤새 인천까지 하염없이 걸으며 동트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1995년 4월 5일에 드디어 지긋지긋한 잿마을(아파트단지)에서 떠납니다. 어머니는 눈물로 말립니다. “꼭 집을 나가서 신문사지국에서 일해야 하니? 뭣 하러 힘들게 살려고 하니?” “날마다 여덟 시간을 길에서 보내면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몸이 지쳐요. 길에서 길삯을 너무 많이 써야 하니 살림에도 나쁘고요. 저는 힘들게 살 마음이 아니에요. 온하루를 배움길에 쏟으려고 할 뿐이에요.”


  2025년 4월 30일에 연수동을 걷습니다. 서른 해 사이에 하루쯤 이곳을 슥 지나친 적이 있지만, 제대로 걷기란 서른 해 만인 듯싶습니다. 논밭과 동산이던 마을은 감쪽같이 사라진 줄 아는데, 서른 해 사이에 길나무가 그럭저럭 자라기는 했고, 조금 큰 나무에 새가 내려앉아 노래를 베풀기도 합니다만, 끝없이 부릉거리는 너른길이 시끄럽고, 무엇보다도 하늘빛을 느긋이 헤아리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걷고 헤매다가 〈열다책방〉을 찾아냅니다. 찾아내고 보면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있지만, 서울내기(도시인)라면 어렵잖이 찾을 텐데, 이제 시골내기로 살림을 꾸리는 사람으로서는 모든 큰고장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떠돌기 일쑤입니다.


  북새통인 길바닥이라면, 고즈넉한 책집입니다. 새터로 새길을 열면서 새빛을 들려주는 책집입니다. 책집으로 걸어오기까지 마주한 모든 복닥길은 사르르 녹아서 사라지고, 이곳에 깃든 푸른빛을 하나하나 짚습니다.


  책으로 열고, 이웃으로 열고, 이야기로 열고, 눈길로 열고, 손길을 모아서 살림길과 마을길을 여는 자리에는, 어느새 씨앗이 싹트고 자라고 꽃이 피고 지더니 열매를 맺는 여름이 오겠지요. 이곳에서 엽니다. 네가 열고 내가 엽니다. 우리가 나란히 열어요. 한 걸음씩 열고, 한 마디씩 열며, 한 줄씩 엽니다. 셈 ‘10’은 ‘열’이란 이름인데, 새자리로 열어가는 첫길이기 때문입니다.


ㅍㄹㄴ


《K-공대생 열다, 책방》(김은철, 오리너구리, 2024.4.24.)

《편지 쓰는 법》(문주희, 유유, 2022.10.4.)

《전쟁 이후의 목소리들》(손송이 엮음, 뜬구름, 2023.12.29.)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루이스 세풀베다/엄지영 옮김, 열린책들, 2025.1.10.)

#LuisSepulveda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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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 (2025.4.28.)

― 서울 〈악어책방〉



  어쩐지 숨막히는 날에는, “여태 쓰던 낱말”을 내려놓고서, “내가 다섯 살일 적에 쓰던 낱말”을 떠올려 봅니다. 남(사회·정부·작가·기자)이 어떤 낱말을 쓰든 말든 안 쳐다볼 노릇입니다. ‘그들(남)’이 휘두르는 ‘힘말·이름말·돈말’이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보면서, 내가 나로서 나답게 날갯짓을 펼 낱말을 살펴요.


  이른바 ‘자기·자신·자아’ 같은 한자말로는 ‘나’를 못 찾습니다. ‘나’부터 열어야, 나랑 마주하는 ‘너’를 보고, 나를 ‘낳’은 너(어버이)를 볼 수 있으며, ‘너머’라는 길을 헤아리면서 ‘넘실’거리며 ‘넘’으려는 빛을 봐요.


  그저 흔하고 수수해 보이는 작은 말씨 하나부터 새롭게 짚으려고 하기에 스스로 실타래를 풀어낼 길을 찾아요. 남들이 멋스럽게 자랑하거나 내세우는 낱말을 따라하거나 흉내내는 탓에 ‘나’를 ‘남’한테 맞추다가 넘어집니다. 남들이 아무리 훌륭하거나 대단해 보이더라도, 그저 수수하게 숲마냥 ‘나’를 마주하고 품으면서 달래기에, 내 손과 발과 눈과 몸으로 ‘낳’을 빛나는 씨앗 한 톨을 찾아요.


  오늘 서울로 달려온 김에 목동에 열었다는 〈사진서가〉를 들르려 했으나, 마침 달날에 쉽니다. 달날에 서울마실을 하면 끝내 못 갈 듯싶지만 다음을 그리면서 우장산역으로 달립니다. 참말로 땀내면서 신나게 달립니다. 〈악어책방〉에 허둥지둥 닿아서 함께 배우고 익히면서 같이 생각씨앗을 심는 저녁을 누립니다.


  ‘담배맛’이란 뭘까요? 담배를 태우기에 나쁘다고 여기지는 않아요. 손수 담배씨를 심고서, 담뱃잎을 오래오래 말린 끝에, 다시 손수 담뱃잎을 재우고 다듬어서 돌돌 말아서 태우는 내음이어야 환해요. 가게에서 아무렇게나 사서 뻑뻑 피우다가 꽁초를 길바닥에 휙 집어던지는 길로는 마음을 다독일 수 없다고 느낍니다.


  바쁘다는 핑계입니다. 힘들다고 둘러댑니다. 그러나 숨을 쉬려고 해도 힘을 써야 하는걸요. 몸을 입고서 살아가는 모든 나날이 ‘힘쓰기’입니다. ‘힘을 들여’야 살아가니, 얼핏 보면 다 ‘힘들’게 마련인데, 힘을 들여서 ‘무엇’을 하려는지 바라볼 노릇이에요. 힘들여서 투정을 부리거나 투덜대려는지, 힘을 써서 꿈을 그리고 살림을 가꾸려는지, 힘들여서 싸우려는지, 심(힘)는 나로 서려는지 봐야지요.


  오늘 자리를 마치면 “한 달 뒤”에 새로 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쪽글을 쓰고서, 쪽종이 한켠에 “한 달 뒤”라고 적어 놓습니다. 한 달 사이에 ‘새노래’를 쓰기로 합니다. 새노래란, 새로운 노래이자, 멧새가 들려주는 노래이자, 사이를 잇는 노래입니다. 함께 낱말책을 새롭게 쓰고, 같이 말빛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서로 이야기로 생각꽃을 지피는 즐거운 자리를 이룰 수 있어요.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진주 글·가희 사진, 핑거, 2024.9.12.첫/2025.3.20.3벌)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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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걷거나 뛰거나 (2025.3.26.)

― 서울 〈콕콕콕〉



  아침에 일찍 길손집을 나서며 〈콕콕콕〉 쪽으로 걸어갑니다. 마침 책집 언저리에서 하루를 묵었어요. 그런데 아침부터 길바닥을 갈아엎으면서 시끄럽습니다. 멀쩡한 길바닥을 왜 그냥 안 둘까요? 삽질하는 일자리는 멈추고서, 살림하는 일거리로 바꿀 노릇입니다. 살림이 없는 삽질은 나라를 망가뜨리는 지름길입니다.


  갈수록 어린이와 푸름이가 글을 잘 읽지 못 하고 쓰지도 못 한다고 여기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어른 탓입니다. 스스로 어른이라 밝히는 분들부터 말을 쉽게 안 쓸 뿐 아니라, 낡은 일본말씨와 중국말씨를 붙잡고, 어설피 옮김말씨를 흉내내고, 잘팔릴 글쓰기를 따라하려고 합니다. 말글이 아닌 ‘국어시험’에 목을 매고, 글쓰기 아닌 맞춤길·띄어쓰기·서울말에 옭매이고, 스스로 새말을 안 지으며, 우리말로 노래하는 뿌리를 잊었고, 생각과 마음을 고스란히 말로 옮기던 길을 등져요. 더구나 서울바라기가 너무 깊은 나머지 고을말과 살림말과 숲말을 다 잊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나누는 소리”인 ‘말’이 무엇인지부터 못 배울 뿐 아니라, 집과 마을에서 “마음을 나누는 말”인 ‘이야기’를 함께하는 이웃도 어른도 동무도 동생도 언니도 사라져 버린 채, 놀지 못 하고 노래를 안 부르고 맙니다. 남이 불러 주어야 노래이지 않아요. 꽃(아이돌)을 따라하면 흉내일 뿐입니다.


  배우고 익히는 길이 아닌 욱여넣기만 시키거나 밀어붙이려고 하면, 어린이와 푸름이뿐 아니라, 어른도 글을 못 쓰고 말을 못 합니다. 마음을 나누는 소리인 말이라면, 살림을 스스로 지으면서 스스럼없이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사랑을 숲빛으로 일구는 하루를 참하게 담아요. 살림을 되찾아야 말글을 되찾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미는 그림책을 돌아봅니다. 이켠에서는 이쁘장하거나 귀여운 그림이 너울거립니다. 저켠에서는 어린이 아닌 어른끼리 마음씻이를 하는 붓끝이 춤춥니다. 그켠에서는 서울에서 ‘집과 배움터(학교·학원) 사이’만 맴돌면서 옳은길만 가르치려는 줄거리가 물결칩니다. 엘사 베스코브 님처럼 숲빛으로 사랑을 들려주는 어른스러운 붓끝을 그릴 수 없을까요? 윌리엄 스타이그 님처럼 어린이 손을 맞잡고서 함께 놀고 노래하고 춤사위로 하루를 사랑하는 붓끝을 쥘 수 없나요? 바바라 쿠니 님처럼 이야기 씨앗 한 톨을 심는 포근한 눈빛을 펼 수 없나요? 완다 가그 님처럼 모든 응어리와 생채기와 싸움을 햇볕이라는 숨결로 녹일 수 없는지요?


  쇳덩이(자동차)를 몰면서 굳이 빵빵거리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이들은 으레 “아이와 어른이 호젓이 거닐 골목”으로 굳이 들어서더군요. 거님길에서 두바퀴(자전거·오토바이)를 마구 달리는 사람도 많아요. 다들 사람빛을 잊고 잃습니다.


ㅍㄹㄴ


《목화씨》(조혜란, 글로연, 2024.11.9.)

《꽃에 미친 김군》(김동성, 보림, 2025.1.7.)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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