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놀며 노래하며 (2024.12.9.)

― 서울 〈메종인디아 트래블앤북스〉



  미워하는 마음에는 사랑이 깃들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피어나는 마음은 ‘더’나 ‘덜’이 없이 그저 품는 숨결이라고 느낍니다. 곰곰이 보면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하”는 일이란 없어요. 사랑은 높낮이나 크기나 부피나 값이 아닌 “오롯이 빛”이니, 사랑하는 사람은 스스로 반짝이는 별입니다.


  사랑을 하는데 괴롭거나 힘들거나 지친다면, ‘이름만 사랑’일 뿐 막상 ‘좋아하는 마음’이게 마련입니다. 누구를 좋아하면, 반드시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탓에, 좋고 나쁘고 밉고 싫은 갖은 하루가 넘나듭니다. 그래서 사랑은 따로 가꾸는 길이 아닌, 마음을 가꿀 수 있으며, 사랑은 날개돋이처럼 스스로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면서, ‘사랑흉내·사랑시늉’인 ‘좋아함’이라서 “더 좋아하”려고 애쓰느라 정작 스스로 갉는다고 느껴요.


  서울 〈메종인디아〉에서 빛꽃마당을 조촐히 엽니다. 갓 태어난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를 기리는 자리입니다. 책에 싣거나 미처 못 실은 빛꽃을 크고작게 꾸려서 책시렁에 놓고, 빛꾸러미(사진첩)로 책자리에 둡니다. 큰그림은 바라보고, 작은그림은 넘겨보는 얼개입니다.


  놀며 노래하는 마음이라면 글길이 글꽃이면서 길꽃입니다. 노래하며 노는 몸짓이라면 숨길이 숨꽃이면서 살림꽃입니다. 어디서나 밤하늘은 별잔치일 노릇이지만, 나라지기와 나라일꾼인 벼슬아치는 밤하늘과 낮하늘을 망가뜨려요. 들숲메바다도 망가뜨리고 마을도 망가뜨리지요. 어울림길을 빼앗기다가 잊은 사람은 잿더미(아파트단지)가 마치 대단한 보금자리인 듯 여기지만, 잿더미란 굴레예요.


  푸른살림을 짓는 사람이라면 푸른말을 씁니다. 잿살이를 하는 사람은 잿말을 써요. 얄궂거나 사납거나 모진 말씨를 느끼는 사람은 얄궂말씨를 안 씁니다. 막말이건 구지레말이건, 막말씨가 어떻게 퍼지는지 안 느끼기에 함부로 쓰지요. 조그마한 곳부터 깨닫거나 눈뜬다면 스스로 사랑하는 말씨를 씁니다. 조그마한 곳이라 지나치거나 등돌릴 적에는, 안 깨닫거나 눈을 안 뜨니 그냥그냥 길든 채 뒹굴어요.


  요즘 같은 때에는 잔소리(신문·방송·유튜브)를 다 접고서, 오롯이 들숲바다와 책과 어린이 얼굴을 마주하면서 앞길을 꿈씨앗과 사랑씨앗으로 심고 가꾸는 길을 생각할 하루이지 싶어요. 언제나 설레고 두근거리면서 반갑게 마주할 이야기를 곁에서 길어올릴 노릇이라고 봅니다. 마을책집은 들꽃내음을 따라서 마실하는 책터입니다. 작은책집은 들꽃씨와 숲나무씨를 심고 나누는 이음터입니다. 노래하는 너랑 놀이하는 나랑 만나서, 노을빛으로 높바람을 일으키면서 춤가락을 노늡니다.


ㅍㄹㄴ


《여름빛 오사카와 교토 겨울빛 나가노》(문혜정, 세나북스, 2024.11.27.)

《한 번쯤 일본 워킹홀리데이》(고나현·김윤정·원주희·김지향·김희진, 세나북스, 2021.6.28.)

《글쓰는 여자의 공간》(타니아 슐리/남기철 옮김, 이봄, 2016.1.28.첫/2020.9.10.고침)

#Wo Frauen ihre Bucher schreiben #TaniaSchlie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인도 호흡 명상》(박지명·이정훈, 하남출판사, 2016.2.29.)

《딸아이의 언어생활탐구》(박진명, 호밀밭, 2020.10.9.)

《처벌 뒤에 남는 것들》(임수희, 오월의봄, 2019.12.20.)

《엄마, 나는 걸을게요》(곽현, 가지출판사, 2017.11.15.)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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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추천않는 책 (2025.10.18.)

― 부산 〈파도책방〉



  서로 타이르고 가볍게 나무라면서 함께 걸어갈 길을 살피려는 말이 아닌, 서로 금을 죽 긋고서 담벼락을 높다랗게 세우면서 퍼붓는 막말은 언제나 스스로 갉는 굴레입니다. 그저 ‘그분들(담벼락 + 끼리끼리 + 막말 + 다툼질)’은 이 대목을 못 깨달을 뿐이고요. 우리는 스스로 이 삶을 지을 수 있고, 휩쓸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을 ‘한글’이라 하고, 이 ‘한’은 그냥 우리말입니다. 1913년 즈음에 주시경 님이 처음 ‘한글’이라는 이름을 지어서 우리글에 이름을 붙일 적에는 우리말도 ‘한말’이라 여겼습니다. 우리말이라면 그저 ‘한’이고 ‘하늘·하나·해·하양·함께·하다’를 나타내는데, ‘한국(韓國)’처럼 적으면, 소리만 따서 붙인 한자로 바뀝니다. ‘한국어’라는 이름은 우리말이 아닌데, 아직 국립국어원을 비롯해서 한글학회조차 이 대목을 안 짚거나 뒷짐집니다.


  부산 〈파도책방〉에 깃들며 생각합니다. 저는 늘 “좋은책 추천도 안 하고, 나쁜책 솎기도 안 합니다. 그저 책마다 어떤 줄거리를 품는지 밝힐 뿐입니다.” 하고 얘기하는데, 이런 말을 못 알아듣는 분이 많아요. 그러나 이 말에 귀기울이는 이웃님이 늘어난다고 느껴서 천천히 말을 잇습니다.


  배움터마다 영어·수학을 드높이지만, 정작 영어·수학을 제대로 하려면 한글·한말부터 찬찬히 배워서 익혀야 합니다. 우리 배움터는 이 얼거리를 거의 잊거나 등지거나 땜질만 하더군요. “한국어의 투쟁”이라는 일본말씨를 그냥 붙인 책을 헤아리면서 조금 쓸쓸했습니다. 적어도 “싸우는 우리말”쯤으로 붙일 만하니까요. “우리말은 싸운다”나 “우리말이 싸운다”라 해도 되고요.


  참으로 우리말은 이 굴레(조선왕조 봉건가부장 권력)에, 저 굴레(일제강점기)에, 그 굴레(군사독재정권)에, 새로운 굴레(in Seoul 공화국)에 갇히면서 앓고 다치고 멍드는 판입니다. 갖은 굴레에서 늘 싸운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예부터 우리빛과 우리살림과 우리집과 우리별과 우리말을 돌본 사람은 ‘가시내’입니다. 가시내가 지키고 가꾸었기에 ‘암글’입니다. ‘한글 = 암글’이요, ‘한글 = 가시내가 스스로 빛나는 살림과 사랑을 노래하는 글’이며, ‘한글 = 어깨동무로 나아가는 새글’입니다. ‘무늬한글’이나 ‘옮김글(번역체)’로는 빛바랠 뿐입니다.


  빛나는 글을 알아보려면, 스스로 빛나는 숨결인 줄 알아보면 돼요. 나도 너도 빛나는 넋인 줄 알아보면, 곁에 있는 빛책을 알아보고, 이 삶을 수수하게 밝히는 빛글을 쓰지요. 언제나 ‘나’라고 하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나랑 함께 삶길을 걷는 너(곁님과 아이)”랑 이야기하면, 모든 실마리를 차곡차곡 풀 수 있어요.


ㅍㄹㄴ


《Wild Flora of the Northeast》(Spider Barbour 글·Anita Barbour 사진, the Overlook Press, 1991.)

《Dr.Seuss ABC》(Dr.Seuss, HarperCollins, 1963/2003.)

《a Pocket for Corduroy》(Don Freeman, Puffin Books, 1978.)

- 《호주머니를 갖고 싶어요》(돈 프리먼/조은수 옮김, 비룡소, 2006.9.30.)

《Library Lion》(Michelle Knudsen 글·Kevin Hawkes 그림, Walker Books, 2008.)

- 《도서관에 간 사자》(미셸 누드슨 글·케빈 호크스 그림/홍연미 옮김, 웅진주니어, 2007.2.15.)

《Blue Chicken》(Deborah Freedman, Viking Childrens Books, 2011.)

#데보라 프리드만

《창가의 토토, 그 후 이야기》(구로야나기 테츠코 글·이와사키 치히로 그림/권남희 옮김, 김영사, 2025.3.14.)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하승우, 뜨인돌, 2008.8.11.첫/2010.11.17.4벌)

《두번째 프레임 전쟁이 온다》(박세길, 추수밭, 2018.6.8.)


+


《끝없는 양말》(페드로 마냐스 로메로 글·엘레니 파파크리스토우 그림/김정하 /(옮김, 분홍고래, 2024.12.6.)

#PedroManasRomero #EleniPapachristou

《코딱지 판다》(미야니시 타츠야/황진희 옮김, 키즈바이브, 2023.9.15.)

#みやにしたつや #ちびちびパンダ (꼬마꼬마 판다)

《별을 여행하는 소년 2》(사카쓰키 사카나/정은서 옮김, 재담, 2024.11.8.)

#坂月さかな #星旅少

《죽고 싶지 않아!》(안느 가엘 발프 글·이자벨 카리에 그림/김지연 옮김, 보랏빛소어린이, 2021.9.30.)

#Je veux pas etre mort #AnneGaelleBalpe #IsabelleCarrier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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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현 2025-11-30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의 바깥 추천합니다.
 

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빛과 볕 (2025.11.22.)

― 부산 〈책과 아이들〉



  책이름은 어떻게 붙이든 안 대수롭지만, 더 들여다보면, 책이름이 바로 줄거리입니다. 어떻게 책이름으로 갈피를 잡느냐에 따라서 풀잇길이 바뀌게 마련입니다. 여태껏 숱한 굴레가 있고, 아직 곳곳에 굴레가 가득하되, 예나 이제나 어질게 지은 숱한 아름집과 아름살림부터 살펴서 풀어내고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어야지요. 이러면서 어떤 굴레집이 남았는지 짚을 수 있어야 할 텐데 싶습니다.

 

  흔히 “생명은 소중하다”라든지 “흑인은 소중하다” 같은 목소리를 내는데, 이 목소리는 안 나쁘되, 거꾸로 ‘피해자의식 강요’로 기울면서 미움씨를 심더군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라든지 “꽃이 사람보다 아름답다”도 언제나 거꾸로 ‘다른 한쪽을 깎아내리는 미움씨’로 기우뚱해요. 정 목소리(구호)를 내려고 한다면, “우리는 모두 숨결(생명)이야”라든지 “우리는 모두 아름답다(소중)”처럼 사랑씨를 심는 말빛을 헤아릴 노릇이에요.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자칫 “어른은 안 지켜도 되는가?”처럼 거꾸로 치달을 수 있기에 “아이를 사랑하고, 어른으로 어깨동무하자”처럼 말씨앗을 가다듬어 봅니다.


  부산 〈책과 아이들〉에서 2025년 ‘내가 쓰는 내 사전’ 마무리모임을 꾸립니다. 오늘은 ‘빛’과 ‘볕’ 두 낱말을 짚으면서 ‘햇살·햇빛·햇볕’이 어떻게 다르면서 ‘빛·빚·비·빚다’가 맞물리는지 들려줍니다. 햇살은 때(시간)를 알리고, 햇빛은 몸(모습)을 밝히고, 햇볕은 숨(살림)을 북돋웁니다. 없기에 비고, 비기에 빚을 질 테지만, 비었기에 비(빗물)와 씨(흙)를 손수 비벼서 빚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방교육·예방주사’가 아닌, 또한 ‘목소리(명분·교훈)’가 아닌, 아이어른이 함께 살림을 짓고, 밥을 짓고, 흙을 돌보는 하루를 모든 배움터가 조촐히 펴면 넉넉합니다. 없애자고 목소리를 외칠수록 못 없애요. 스스로 보금자리부터 사랑하며 살림을 짓는 하루를 아이랑 손잡으면서 펼 적에, 어느새 모든 부스러기를 치울 수 있습니다. 모든 응어리는 차분히 풀 수 있습니다.


  불(부아)을 내면, 불기둥이 솟아서 막힌 데를 뚫거나 바꿀 수 있어요. 그러나 불(화火)을 자꾸 내면 어느새 버릇이 되거나 길들면서 ‘틈새뚫기’가 아닌 ‘불질하기’를 되풀이하더군요. 불질(화)을 어쩌다 살짝 낼 수 있되, 이 불씨를 가만히 잠재우고서 햇빛이나 별빛이나 꽃빛처럼 서로 밝히는 빛살이며 함께 살리는 햇볕으로 나아가야지 싶어요. 둘레(사회)가 따뜻(다정)하든 안 따뜻하든 말이지요. 저놈이 안 따뜻하다고 저놈을 탓하거나 손가락질할 까닭이 없어요. 너랑 내가 따뜻하게 한집안을 일구면서 한마을을 가꾸고 한별(지구)을 품으면 늘 느긋합니다.


ㅍㄹㄴ


《작은삶》(숲하루, 스토리닷, 2025.11.30.)

《부엌의 드래곤 3》(시마다 리리·미요시 후루마치/윤선미 옮김, 소미미디어, 2023.8.23.)

《부엌의 드래곤 4》(시마다 리리·미요시 후루마치/윤선미 옮김, 소미미디어, 2023.12.20.)

#台所のドラゴン #縞田理理 #みよしふるまち

《애벌레를 위하여》(이상권 글·오정택 그림, 창비, 2005.10.31.첫/2007.10.20.2벌)

《압록강은 흐른다(외)》(이미륵/정규화 옮김, 범우사, 1989.3.20.첫/1993.7.30.3벌)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파블로 네루다박병규 옮김, 민음사, 2008.3.5.첫/2011.5.2.4벌)

《간디 자서전》(M.K.간디/함석헌 옮김, 한길사, 1983.12.10.첫/2015.1.15.3판28벌)

《감동을 주는 부모 되기》(이호철, 보리, 2009.1.5.첫/2013.7.15.4벌)

《최초의 인간 루시》(도날드 요한슨·메이틀랜드 에디/이충호 옮김, 푸른숲, 1996.7.1.첫/1996.7.30.2벌)

《길 위의 소년》(페터 헤르틀링 글·페터 크노르 그림/문성원 옮김, 소년한길, 2002.2.15.첫/2002.9.20.2벌)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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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인문학당 (2024.7.24.)

― 광주 〈동명책방 꽃이피다〉



  우리말에는 ‘사춘기’가 없고, 우리나라에는 ‘사춘기’라 이를 만한 때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푸른별 온나라가 마찬가지인데, “아이에서 어른으로 건너가는 즈음”은 “철드는 나이”요, 철드는 때란 따로 ‘봄나이(봄빛을 바라볼 줄 알고 품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숱한 나라는 ‘봄나이’로 무르익을 아이를 굴레(제도권입시지옥)에 가두느라 웬만한 아이는 몸앓이랑 마음앓이가 겹쳐서 지치고 앓아요.


  스스로 철들며 스스로 바라보며 스스로 해보려는 무렵에 스스로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넘어지고 다치기에 비로소 봄나이를 이루면서 어른이라는 길에 접어들어요. 셈겨룸(입시)이란 아주 조그만 디딤돌입니다. 이 디딤돌 건너에서 삶과 살림과 사람을 함께 바라보는 보금자리를 이루자면, 아이랑 어버이는 늘 이야기하고 늘 함께 일하고 늘 숲을 마주할 노릇이지 싶습니다.


  광주 〈동구인문학당〉에서 마련하는 ‘손바닥책 보임자리’에 곁들이처럼 ‘손바닥에 피어난 꽃과’라는 줄거리로 이야기를 폅니다. 일본말 ‘문고본(문고판)’이나 영어 ‘미니북·페이퍼백’이 있습니다만, 우리말로는 ‘손바닥책’에 ‘주머니책’에 ‘작은책’이요 ‘씨앗책’입니다. 어떤 이름으로 바라보려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 길이 다릅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마치고서 〈동명책방 꽃이피다〉에 살짝 들릅니다. 산수동에서 동명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책집이름도 ‘동명책방’으로 갈아입습니다.


  이 삶을 이루는 수수께끼로 스며들 수 있다면 모든 이야기가 아름답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사랑을 받지 못 했다고 여기면서 힘(권력)만 주워담은 길에 얽매이면 비틀비틀 절어서 절뚝절뚝하다가 쓰러지지요. 아이한테는 바보스런 몸짓이 아닌, 오늘 우리가 오늘 짓는 즐거운 하루를 이야기하면 넉넉하다고 느껴요.


  글책이건 그림책이건 오래오래 지켜보고 마음에 담은 숨빛으로 새롭게 여미기에 반짝입니다. 섣불리 목소리부터 앞세우면 다 망가지고 흩어져요. 봄에는 봄빛으로, 여름에는 여름빛으로, 갈겨울에는 갈빛과 겨울빛으로 물들며 씨앗을 맺으면 됩니다. 함께 노래하는 글꽃은 어디서나 피어날 수 있습니다. 혼자 노래하는 그림꽃도 언제나 돋아날 수 있어요.


  작은사람은 작은손에 작은책을 작은씨앗으로 삼아서 작게 쥡니다. 작은몸에 책꾸러미를 큰등짐으로 메지만 다시금 작은걸음으로 걸어서 작은집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멋져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촐히 꿈꾸면 느긋합니다.


ㅍㄹㄴ


《니들의 시간》(김해자, 창비, 2023.11.24.)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조선남, 삶창, 2024.3.29.)

《공기 파는 사회에 반대한다》(장재연, 동아시아, 2019.5.14.)

《호호호》(윤가은, 마음산책, 2022.2.5.)

《가불 선진국》(조국, 메디치, 2022.3.25.)

《섬에서 부르는 노래》(손세실리아, 강, 2021.11.30.)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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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2023.5.20.)

― 부산 〈우리글방〉



  길그림책(지도책)을 살 수 있은 지 얼마 안 됩니다만, 우리는 까맣게 모르기 일쑤입니다. 이제 손전화를 켜면 웬만한 길을 다 짚는다는데, 이렇게 길그림을 열기까지 사람들을 억누르던 나라요, 아직 굴레짓은 곳곳에 고스란히 남습니다.


  나란히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으며 놀아야 사랑을 이룹니다. 얼굴 없이 줄줄이 서는 곳에서는 윗분이 밑놈한테 시키는 말만 맴돌면서 아무런 사랑씨가 깃들지 못 합니다.


  부산에 일하러 온 길에 보수동을 들릅니다. 아니, 부산에서 일하니까 보수동부터 들러서 책내음을 맡습니다. 문득 〈우리글방〉도 둘러봅니다. 어쩐지 〈우리글방〉은 갈수록 ‘고른 책을 안 팔아’서 멀리하고 싶습니다. ‘책벌레가 고른 책’이면 아무리 수수한 책이어도 ‘뭐가 있으리라 여기’는 책집지기가 꽤 있습니다. 일부러 웃돈을 부르기도 하는데, ‘제가 예전에 골랐을 때 팔지 않은 책이 책꽂이에 고스란’한 모습을 늘 느낍니다. ‘좋은책이 이렇게 많다’고 뭇사람한테 자랑하려고 ‘고른 책을 안 팔고’서 늘어놓기도 한다고 느낍니다.


  사투리란, 살림짓는 사람이 스스로 숲빛으로 지은 새말입니다. 들숲메바다를 스스로 읽기에 새말이자 새길인 사투리를 누구나 짓습니다. 들숲메바다를 스스로 등지니까 새길도 새말도 모르는 채 “남과 나라가 시키는 대로 길들며 서울말에 갇힙”니다. 새말인 사투리를 쓸 줄 알기에, 새넋으로 새책을 마주합니다.


  서울에서도 서울 한복판이 아닌 ‘강서·강동·성북·구로·노원·송파 끝’에서 일하는 분들이 으레 “변두리 작가” 같은 말을 쓰더군요. 서울 아닌 모든 고장에서는 인천도 부산도 대구도 광주도 곧잘 “변두리 작가” 같은 말을 쓰고요. 그런데 삶터에 ‘복판·가생이’가 어디 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복판·가생이’가 아닌 ‘보금자리·둥지’인걸요. 우리는 우리 터전을 밝혀서 “대구 지음이”나 “고흥 지음이”나 “서울 지음이”처럼 수수하게 말하면 스스로 빛나고 즐겁게 새눈을 틔울 만하리라 봅니다.


  아직 우리나라 글밭은 말과 삶과 마음을 짓는 길이 아닌, 억지로 만들거나 쥐어짜는 굴레에 길듭니다. 길을 걸어야 할 텐데, 길을 안 걷거나 길들이거나 길들기만 하는 곳에서는 모두 엉킬 뿐인데 말이지요. 우리나라 책밭도 매한가지일 테지만, 글밭도 책밭도 살림밭도 새롭게 갈아엎으려고 호미질을 하는 이웃님이 한 분씩 늘어납니다. 저는 ‘호미이웃’을 기다리고 지켜봅니다. 저는 호미이웃하고 ‘호미놀이’하듯 조촐히 모임을 꾸리려고 즐겁게 온곳으로 천천히 이야기마실을 다닙니다.


ㅍㄹㄴ


《러시아의 작가와 사회》(로날드 힝글리/이항재 옮김, 푸른산, 1989.7.10.)

《미혼의 당신에게》(다나까 미찌꼬, 김희은 옮김, 백산서당, 1983.1.25.)

《中國地圖冊》(편집부, 中國地圖出版社, 2001.1.)

《날랜 사랑》(고재종, 창작과비평사, 1995.5.10.)

- 서초구 이동도서관

《동아 어린이 문고 24 이성계》(김기용 엮음, 동아출판사, 1990.7.5.)

《호호호》(윤가은, 마음산책, 2022.2.5.)

《150cm 라이프 3》(타카기 나오코/한나리 옮김, 시공사, 2016.1.25.)

#たかぎなおこ #150cmライフ #다카기나오코

《카나자와 셔터 걸》(키리키 켄이치/우서윤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9.12.15.)

#桐木憲一 #金澤シャッタ-ガ-ル

《송곳 1》(최규석, 창비, 2015.5.20.)

《송곳 2》(최규석, 창비, 2015.5.20.)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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