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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재미나게 읽는 책

 


  사진책은 누가 읽는 책일까 생각해 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는 사진책이라 할 테지요. 만화책은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읽을 테고, 시집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읽을 테며, 소설책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을 테지요. 그런데,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즐겁게 사진책을 장만해서 읽거나 나누는 사람이 뜻밖에 몹시 적습니다.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정작 사진기를 새로 갖추거나 더 낫다 하는 장비로 옮기는 데에 사로잡힐 뿐, 사진책을 알뜰살뜰 헤아리면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좀처럼 늘지 못해요.


  시를 좋아하는 분들은 시읽기뿐 아니라 시쓰기도 해 봅니다. 소설읽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소설읽기를 하는 만큼 소설쓰기까지 나아가기는 어렵다 할 테지만, 글쓰기는 즐겁게 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좋아한다는 분은 여러 갈래로 나눌 만해요. 첫째, 사진기를 좋아하는 사람, 둘째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사람, 셋째 사진에 찍히기 좋아하는 사람, 넷째 사진책을 좋아하는 사람, 다섯째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 얼추 이렇게 나누어 봅니다. 이 가운데 넷째와 다섯째에 드는 사람이 가장 적지 싶어요. 그래서 사진책을 즐겁게 장만해서 읽거나 나누는 손길이 얕구나 싶습니다.


  2012년 12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나온 사진책 가운데 내 마음을 사로잡은 사진책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어느 사진책이라고 안 아름답지 않으며, 어느 사진책이라고 내 마음으로 안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사진책이든 재미난 삶을 보여줍니다. 어느 사진작가이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사진이든 맑고 밝은 빛과 그늘을 보여줍니다.


  몽골에서 마주한 독수리사냥 이야기를 엮은 이장환 님 《독수리사냥》(삼인,2013)을 읽으며 눈과 마음을 탁 틀 수 있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일흔 고개를 넘으며 들려준 사진 이야기 《천재 아라키의 애정사진》(포토넷,2013)은 애틋한 사랑노래로 읽었습니다. 김민호 님이 차분한 빛으로 그린 《동백꽃 아프리카》(안목,2013)는 따사로운 볕살과 같았습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 사진과 삶을 어린이 눈높이로 엮어 아이들하고 함께 읽을 만한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논장,2013)는 아이들 가슴을 부풀게 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오오타 야스스케 님이 내놓은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책공장더불어,2013)과 같은 책을 읽으며 삶을 이루는 바탕과 우리 이웃을 새삼스레 돌아보았어요. 그레그 마리노비치·주앙 실바 두 사람이 쓴 《뱅뱅클럽》(월간사진,2013)은 인종갈등과 전쟁으로 얼룩진 삶터에서 사랑을 지키며 사진을 찍는 고단함과 보람을 알려줍니다. 탈북청소년과 이주노동자와 고려인에 이어 재일조선인과 어깨동무한 김지연 님이 선보인 《일본의 조선학교》(눈빛,2013)를 보며 나라이름이란 대수롭지 않고, 오직 마음속 빛을 볼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안에서 전주로 사진터를 옮긴 김지연 님이 지난 삶 갈무리한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눈빛,2013)은 우리한테 보배는 늘 곁에 있다고 보여줍니다.


  손승현 님 《밝은 그늘》(사월의눈,2013)과 강영희 님 《배다리 사진 이야기, 창영동 사는 이야기》(다인아트,2012)와 박진영 님 《Way of photography》(atelier Hermaes,2012)는 여느 책방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이 책들은 출판사에 연락하거나 특정 책방을 찾아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손승현 님 사진에서는 빛을, 강영희 님 사진에서는 넋을, 박진영 님 사진에서는 숨을 찬찬히 느낍니다. 빛으로 삶을 읽고, 넋으로 삶을 마주하며, 숨으로 삶을 헤아립니다.


  올해에 비로소 알아보고 즐긴 사진책들을 하나씩 떠올립니다. 이 사진책들은 그동안 얼마나 사랑받았을까 궁금합니다. 인병선 님 《짚문화》(대원사,1989)는 삶과 밥과 꿈이 어우러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기식 님 《잉카의 웃음, 잉카의 눈물》(작가,2005)은 잉카 문명을 구경꾼이나 관광객이나 방관자 아닌 ‘이웃’으로서 만나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아베 사토루 님 《도시락의 시간》(인디고,2012)은 바로 우리 삶이 사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유진 스미스 님 사진책 《W. William Eugene Smith》(la Fabrica, 2011)와 《Minamata》(Holt, Rinehart & Winston,1972)를 드디어 올해 장만해서 읽습니다. 미국으로 배움길 다녀온 옆지기가 들고 온 유진 스미스 님 사진빛을 바라보며 참 따스하다고 느꼈어요. 유리 꾸이진 님은 《Kazakstan nuclear tragedy》(반핵 생물학 협회 폰드,1997로 핵무기와 핵발전소 문제를 낱낱이 밝힙니다. 시마 유키히코 님은 《無花果の木の下で》(美術出版社,1998)에서 바람과 같이 흐르는 삶과 사랑을 살며시 붙잡는 손길을 보여줍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빛을 느껴 다 다른 사진을 찍습니다. 이 다 다른 사진은 다 다른 출판사에서 다 다른 손길로 어루만져 다 다른 사진책으로 내놓습니다. 다 다른 이야기를 다 다른 사진책에서 읽으며 재미납니다. 나도 내 삶을 내 깜냥껏 찍고 엮어 내놓으면 이 재미난 사진책들 사이에서 새로운 이야기 하나 들려줄 수 있겠지요. 재미난 삶에서 재미난 사진 태어나고, 재미난 웃음 나누려는 손길에서 재미난 이야기 샘솟습니다. 4346.11.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여느 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사진책) **
이장환 님 《독수리사냥》(삼인,2013)
아라키 노부요시 《천재 아라키의 애정사진》(포토넷,2013)
김민호 《동백꽃 아프리카》(안목,2013)
호시노 미치오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논장,2013)
오오타 야스스케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책공장더불어,2013)
그레그 마리노비치·주앙 실바 《뱅뱅클럽》(월간사진,2013)
김지연 《일본의 조선학교》(눈빛,2013)
김지연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눈빛,2013)


** (따로 출판사에 연락하거나 특정 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사진책) **
손승현 《밝은 그늘》(사월의눈,2013)
강영희 《배다리 사진 이야기, 창영동 사는 이야기》(다인아트,2012)
박진영 《Way of photography》(atelier Hermaes,2012)


** (올해 내가 새로 알아보며 좋아한 사진책) **
인병선 《짚문화》(대원사,1989)
이기식 《잉카의 웃음, 잉카의 눈물》(작가,2005)
아베 사토루 《도시락의 시간》(인디고,2012)
유진 스미스 《W. William Eugene Smith》(la Fabrica, 2011)
유진 스미스 《Minamata》(Holt, Rinehart & Winston,1972)
유리 꾸이진 《Kazakstan nuclear tragedy》(반핵 생물학 협회 폰드,1997)
시마 유키히코 《無花果の木の下で》(美術出版社,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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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아름답게 읽는 책

 


  이오덕 님이 2003년 8월에 흙으로 돌아가신 뒤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삼인,2005)라는 책 하나 나왔습니다. 이 나라 아이와 어른 모두를 생각하면서 꾹꾹 눌러쓴 글을 모은 책입니다. 첫머리인 12쪽을 보면, “나는 지금 생각한다. 내가 배운 학교 공부, 내가 읽은 책들, 도시와 문명이란 것, 그것이 얼마나 나를 해쳤는가! 내가 만약 보통학교에도 들어가지 않고 집에서 마을 사람들과 같이 땅 파고 짐 지면서 일을 몸에 붙이고 자랐더라면 나는 얼마나 자연스럽게 일찌감치 삶의 진리를 얻어 가졌을 것인가!”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오덕 님은 아이도 어른도 “삶의 진리”를 찾아야 한다고, ‘거짓교육’ 아닌 ‘참교육’을 해야 하고, 아이와 어른 모두 ‘거짓삶’ 아닌 ‘참삶’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환하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햇살이 마을마다 곱게 드리울 무렵 우리 마을 포근히 감싸는 멧자락에 깃들며 살아가는 새들이 마을로 내려옵니다. 마을 둘레 풀숲에서 깃을 부비는 작은 새들도 이무렵 일어나서 노래를 합니다. 작은 새도 큰 새도 저마다 아침노래를 부릅니다.


  새들도 먹이를 찾고, 새들도 똥을 눕니다. 새와 마찬가지로, 벌레도 먹이를 찾고, 벌레도 똥을 누어요. 짐승들도 그렇지요. 지렁이도 그렇고 물고기도 그렇습니다. 지구별에 깃든 모든 목숨들은 ‘밥을 먹고 똥을 눕’니다. 그런데, 사람을 뺀 모든 목숨들은 밥을 먹거나 똥을 누며 지구별을 더럽히지 않아요. 새똥도 벌레똥도 지렁이똥도 물고기똥도 모두 지구별을 촉촉하게 적시며 살찌웁니다. 새도 벌레도 지렁이도 물고기도 모두 지구별에 쓰레기를 내놓지 않습니다. 오직 오늘날 물질문명 사람들만 쓰레기를 내놓고, 지구별을 더럽히며 갖가지 전쟁무기를 만들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윽박지릅니다.


  짐승과 벌레와 물고기는 서로 먹고 먹히지만, 무기를 들며 싸우는 일이 없습니다. 무기를 만드는 목숨은 오직 사람입니다. 게다가,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여느 시골사람은 무기를 안 만들어요. 낫과 쟁이와 가래가 있을 뿐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서울에 사는 임금님과 신하만 무기를 만들어 군대를 거느려요. 먼먼 옛날부터 고을마다 사대부와 권력자와 부자만 돈으로 사람을 사서 무기를 갖추고 지킴이(군인 노릇 하는)를 두어요.


  살아가는 빛, “삶의 진리”란 무엇일까요. 무기를 갖추어 재산과 이름과 권력을 지키는 일이 “살아가는 빛”이 될까요. 대학교나 아파트나 은행계좌가 “살아가는 빛”이 될 만할까요.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쓴 《천재 아라키의 애愛정情 사진》(포토넷,2013)이라는 책을 읽다가 27쪽에서 “찍히는 사람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잖아요. 찍는 사람도 대상이 어느 때보다 행복해 하는 모습,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어 해요. 그래서 그런 모습을 찾고 또 찾아요. 신기한 건 결국 그런 장면을 찾게 된다는 사실이에요.”와 같은 글월을 봅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찍고 싶다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찾는 사진가는 끝내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내기 마련이고 이녁 사진으로 담는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찍히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일군다고 합니다.


  흙을 기름지게 가꾸겠노라 생각하면서 흙을 기름지게 가꿉니다. 아이들과 살가이 얼크러지면서 삶을 즐겁게 짓겠노라 생각하면서 참말 아이들과 살가이 지내고 삶을 즐겁게 짓습니다.


  책을 아름답게 읽고 싶기에 스스로 아름답다 싶은 책을 알아봅니다. 책을 사랑스럽게 읽고 싶기에 스스로 사랑스럽다 싶은 책을 살핍니다. 말을 곱게 하고 싶은 사람은 늘 고운 말을 생각하고 찾고 살피면서 이녁 말씨를 곱게 가다듬습니다. 밥을 구수하게 지어 기쁘게 나누고 싶다 생각하는 사람은 늘 밥차림과 밥짓기를 구수하게 추슬러 기쁘게 나눕니다.


  참삶이란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은 참배움(참교육)입니다. 참배움은 참빛입니다. 참빛은 참사람입니다. 참답고 착하며 고운 빛은 스스로 마음과 생각을 참답고 착하며 곱게 다스릴 때에 이룹니다. 4346.1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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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기다리며 읽는 책

 


  천종호 님이 쓴 책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우리학교,2013)를 읽다가 282쪽에서 “소년들이 비행을 저지르는 배경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크지만 대체로 정신적·심리적 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 같은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소년법정에서 아이들한테 판결하는 일을 맡는 천종호 님은 이 아이들을 소년원으로 보내야 하는지 시설로 보내야 하는지, 아주 너그러이 봐주어야 하는지를 놓고 늘 마음앓이를 한다고 밝힙니다. 잘못을 묻기는 하되 사람을 다그칠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아이들이 맑고 밝으며 슬기롭게 살아가기를 바라지, 끔찍한 짐을 짊어진 채 바보스레 무너지기를 바라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를 적에 ‘돈 때문이라기보다’ ‘마음에 생채기를 입은 탓’이 크다고 한다면, 어른들도 이와 같지 않으랴 싶습니다.


  잘못을 저지르는 어른들은 참말 왜 잘못을 저지를까요. 전쟁무기를 만드는 어른들은 왜 전쟁무기를 만들까요. 이념에 따라 사람을 죽죽 나누어 삿대질하는 어른들은 왜 사람을 이념에 따라 나누려 할까요. 가방끈 길이로 푸대접을 하거나, 살빛을 놓고 푸대접을 하는 어른들 마음밭은 어떤 모습일까요. 왜 어른들은 당신부터 온누리를 아름답게 일구지 않으면서, 아이들한테만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답게 살아가라 말할까요.


  강성미 님이 쓴 책 《내 아이가 사랑한 학교》(샨티,2013)를 읽습니다. 65쪽을 읽다가 빙그레 웃습니다. 강성미 님이 아이를 보낸 발도르프 학교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 봅니다. “교실 안, 학교 안, 운동장, 어디라도 아이들이 접하는 공간은 부드러운 색과 부드러운 재료로 꾸며진 발도르프 학교와 자상함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눈으로 보는 것, 피부로 접촉하는 것, 코로 냄새 맡는 것들도 입으로 먹는 음식처럼 우리의 내면에 들어와 중요한 양식이 된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고흥에 있는 초등학교 건물을 보면, 분홍빛 페인트를 바르기도 하고, 노란빛 페인트를 바르기도 합니다. 눈이 막 어질어질합니다. 학교 울타리에는 예쁘장하게 보이려는 그림을 잔뜩 그리기도 합니다. 눈이 마구마구 돕니다.


  그래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건물 벽에 ‘원색’ 페인트를 바를까요. ‘원색으로 바른 방’에 들어가면 누구라도 몇 분 버티지 못하고 머리가 어지럽다 하는데, 왜 초등학교 건물 벽에 ‘원색’ 페인트를 바를까요. 아이들을 괴롭히고 싶은 마음은 아니라고 느끼지만, 아이들을 아끼는 길을 너무 모르는구나 싶어요. 아이들한테 ‘좋은’ 그림 보여주고 싶은 뜻은 알겠으나, 시멘트 울타리에 그림을 그리려면, 아이들한테 맡겨야지요. 어른 눈높이로 아무 그림이나 그리지 않을 노릇입니다. 섣부른 어른 생각대로 아이 마음결을 함부로 재거나 따지지 않을 노릇입니다.


  그런데, 학교 건물부터 아이들한테 그리 살갑지 않습니다. 이 나라 학교는 도시이든 시골이든 몽땅 시멘트집입니다. 차가운 시멘트로 바르고, 교실 칸은 죄다 똑같습니다. 마치 감옥처럼 짓는 학교 건물이에요. 냉·난방이라든지 첨단시설 갖추는 데에는 마음을 기울이지만, 아이들이 무척 긴 나날 이곳에서 보낸다는 데에는 마음을 쓰지 못해요. 포근한 보금자리 같은 학교 건물이 없습니다. 따스한 마을 같은 학교 건물이 없습니다. 더 들여다보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부터 그리 살갑거나 따스하거나 사랑스럽지 않아요. 아이들은 대학입시에 발맞추어 시험공부를 할 뿐이에요. 아이들은 밥짓기·옷짓기·집짓기를 학교에서 하나도 못 배워요. 어린이집과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아이들한테 밥·옷·집하고 동떨어진 지식만 집어넣어요. 아이들은 대학교 아닌 대학원까지 다니거나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와도 스스로 ‘삶짓기’를 하지 못하는 얼거리예요.


  미야자와 겐지 님 동화책 《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논장,2000)을 읽습니다. 동화책 첫머리인 8쪽에 “빗속의 푸른 대숲을 보면 좋아서 눈을 깜박깜박하고, 푸른 하늘을 끝없이 날아가는 매를 발견하면 깡충거리며 손뼉을 쳐서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겐쥬를 몹시 얕잡아보고 놀려댔기 때문에, 겐쥬는 점점 웃지 않는 척하게 되었습니다.”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숲을 사랑하고 숲을 누리는 겐쥬라 하는 여린 아이를 마을 아이들은 얕잡아보았답니다. 그러나 겐쥬는 이런 눈길이나 놀림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숲을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고 해요. 왜 어린 아이들이 ‘몸과 마음 여린 아이’를 따사로이 어깨동무하지 못하면서 놀릴까요. 왜 ‘숲을 누리며 아끼는 넋’을 보듬지 못할까요. 꿈을 기다리면서 사랑을 바라면 누구라도 아름다운 눈빛 밝힐 텐데요. 봄볕 기다리면서 봄꽃 바라면 누구라도 맑은 봄내음 한껏 누릴 텐데요. 4346.4.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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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한 줄, 빛내며 읽는 책

― 봄노래 나누는 책읽기

 


  일본사람 오다 히데지 님은 《미요리의 숲》(삼양출판사,2008)이라는 만화책을 그렸고, 이 만화는 만화영화로도 나옵니다. 《미요리의 숲》 1권 186쪽을 보면, “적어도 1년은 있을 거예요. 가을 숲과 겨울 숲, 봄 숲도 보고 싶으니까요. 내년에는 벚꽃도 필 거고.”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정갈한 시골마을 숲을 지키고 싶은 어린 미요리는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시골마을에서 지내며 여름뿐 아니라, 가을과 겨울, 여기에 그 다음으로 찾아올 봄을 함께 누리고 싶다는 말을 해요. 손전화 기계는 냇물에 던져서 버리고, 과자를 찾지 않으며, 텔레비전을 보지 않아요. 마을 아이들하고 숲에서 달리고 뒹굴어요. 도쿄라는 큰도시로 돌아갈 생각을 잊어요. 미요리 가슴에서 곱게 피어나는 꽃은 숲바람과 숲햇살을 먹으면서 자라는 줄 깨달아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며,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즐기는 삶일 때에 스스로 아름다운가를 시나브로 알아채요.


  즐겁게 누릴 수 있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즐겁게 노래할 수 있는 하루가 아름답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이 나라 시골마을마다 노래가 넘쳤어요. 모내기를 하면서 모내기노래를 부르고, 베틀을 밟으며 베틀노래를 불렀어요. 밥을 지으며 밥짓기노래를 부르고, 아기를 재우며 자장노래를 불렀어요. 풀을 뽑을 적에는 풀뽑기노래를 부르고, 길을 거닐 적에는 길노래를 불렀어요. 이 나라 거의 모든 사람이 흙에 기대어 흙을 누리며 살던 지난날에는, 어린이와 늙은이 모두 노래를 부르는 삶이었어요. 놀면서도 노래, 일하면서도 노래, 쉬면서도 노래, 먹으면서도 노래, 웃으면서도 노래, 울면서도 노래였지요.


  시골이 차츰 줄고 서울이 커지고 도시가 늘어납니다. 시골이 차츰 줄면서 젊은이가 몽땅 서울이나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시골에서 노래가 사라집니다. 그렇다고 서울이나 도시에 노래가 흐르는가 하면, 사람들 스스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는 찾아볼 수 없어요. 텔레비전에 얼굴 비추는 이쁘장한 사람들 대중노래만 판쳐요.


  독일사람 에냐 리겔 님은 판에 박힌 학교를 떨치고 아름다운 배움터가 되기를 꿈꾸며 학교살림을 꾸립니다. 《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착한책가게,2012)라는 책 167쪽을 보면, “아이가 가진 능력에 대해 학교는 그저 잘해야 ‘기특한 재능’ 정도로 여길 뿐 졸업성적을 평가할 때 이런 것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는다. 반면 그의 인생을 멋지게 가꿔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이런 재능들이다. 연극이 없었다면 요샤는 학교에서 한 가지 경험은 톡톡히 했을 것이다. 즉, 나는 바보구나, 라는 경험 말이다.”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성적평가를 안 하는 학교로 꾸리며 아이들마다 다 다르게 잘 하며 좋아할 길을 열고 싶었답니다. 성적평가를 안 할 뿐 아니라, 성적평가에 마음을 두지 않으니, 독일에서 ‘전국 공통 성적평가 시험’을 치를 때에조차 오히려 다른 학교보다 더 높은 성적이 나온다고 해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누구나 스스로 가장 하고 싶은 길을 걸으며 가장 누리고 싶은 삶을 누리도록 북돋우니, 학과공부이든 꿈찾기이든 더없이 아름답게 빛난다지요.


  한국사람 안재인 님이 쓴 《아니온 듯 다녀가소서》(호미,2007)라는 책이 문득 떠오릅니다. 54쪽을 펼칩니다. “보이지 않아도 향기로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꽃은 봄에만 피는 줄 알았는데, 여름엔 여름대로, 가을엔 가을대로 꽃이 피어납니다.”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바야흐로 새로 찾아드는 봄날 봄꽃이 논둑과 밭둑마다 피어요. 시골은 어디에나 논밭이니 논꽃과 밭꽃을 만납니다. 서울이나 도시는 논도 밭도 없기에 꽃집이 아니라면 봄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사람들 옷차림이 가벼워지거나 밝은 빛깔로 바뀌어야 비로소 ‘봄이로구나!’ 하고 깨달으리라 느낍니다. 봄은 봄바람과 봄볕 누리는 봄풀에서 오는데. 봄은 봄노래 부르는 봄사랑으로 봄마음 되는 우리들 환한 눈망울에서 비롯하는데.


  눈망울 빛내는 봄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눈초리 보드랍게 보듬는 봄빛을 가슴 깊이 담아 봄길을 걸어 봄맞이 책읽기를 즐겨요. 마음자리 포근하게 적시는 책 하나 쓰다듬어요. 마음결 따사롭게 어루만지는 책 하나 쥐어요. 마음밭 너그러이 살찌우는 책 하나 펼쳐요. 봄책 읽는 맑은 눈빛으로 우리 곁 봄동무와 봄이웃하고 웃음꽃 나누어요. 4346.2.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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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꿈꾸며 읽는 책 ― 겨울햇살 따사로운 책읽기

 


  나는 어릴 적부터 마늘을 퍽 잘 먹습니다. 날마늘도 스스럼없이 잘 먹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 부엌일을 거들며 마늘까기를 곧잘 했는데, 인천에서 나고 자라면서 ‘가게에서 사다가 껍질을 벗기고 다져서 쓰는 마늘’만 보았을 뿐, 마늘을 어떻게 심고 돌보며 거두어들이는가를 본 적 없습니다. 여덟 살이 되어 학교에 처음 들고는 열두 해가 지나 고등학교를 마치기까지, 학교에서 ‘마늘 한살이’를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교사는 없었어요. 다섯 학기를 다니다가 그만둔 대학교에서도 어느 교수나 선배도 ‘마늘 심기·마늘 캐기’를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지난 2011년 늦가을,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에 네 식구 깃들었습니다. 시골로 가고 싶다는 분들은 좀처럼 빈집을 못 얻는다 하지만, 우리 식구는 큰 어려움 없이 빈집 한 채 얻어 사뿐히 보금자리를 틀었어요. 고흥 시골마을에서 처음 겨울나기를 하면서 ‘마늘 심기’를 구경합니다. 한가을에 바지런히 벼를 베고는 이내 논을 갈아엎어 거름을 내고 보름쯤 묵힌 다음 골을 새롭게 내어 쪽마늘을 촘촘히 심습니다. 마늘 심기는 무척 고되고 품이 많이 들어 마을 할머님들이 서로 품앗이로 합니다. 지난날에는 보리나 밀을 심었다는데 요사이에는 마늘이 돈이 되기에 마늘을 심는다 해요. 아무래도 예전에는 ‘돈’ 아닌 ‘먹을거리’를 얻으려 했을 테니까, 빈 들판마다 보리를 가득 심어 새봄부터 가을까지 먹을 끼니를 헤아렸겠지요.


  따스한 남녘마을이니 마늘을 심을 만하구나 싶으면서도, 눈바람 거의 들지 않는 남녘마을이라 걱정없다 싶으면서도, 겨우내 한두 차례 드물게 찾아온 눈서리를 맞는 마늘싹을 보며 애처롭구나 생각합니다. 한겨울에 푸른 싹을 낸 마늘에 내려앉은 눈송이와 얼음덩이라니. 그러나 푸른빛 마늘싹은 아랑곳하지 않아요. 외려 이런 추위와 눈얼음쯤 한두 차례 지나야 더 씩씩하고 푸르게 자라는가 봐요. 한겨울 지나고 꽃샘바람 스산히 지나가면 무럭무럭 꽃대(마늘쫑)를 올리고, 꽃대를 뽑을 무렵 마늘도 뽑습니다.


  강예린 님과 이치훈 님이 쓴 《도서관 산책자》(반비,2012)라는 책 174쪽을 읽습니다. “느릿한 속도로 도서관을 꾸리고, 같은 마음으로 멀리까지 찾아오는 사람을 맞이할 계획이라고 한다. 긴 시간을 감수하고 오는 사람들은 사진책을 찬찬히 들여다볼 준비를 하고 올 것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삶에는 ‘느림’도 ‘빠름’도 없습니다. 느리게 늙는 사람도 빨리 늙는 사람도 없습니다. 저마다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삶을 누립니다. 이른여름에 심어 한가을에 거두는 나락처럼, 늦가을에 심어 늦봄에 캐는 마늘처럼, 모든 목숨은 스스로 푸르게 자랍니다. 예순 나이에도 새롭게 배우고 여든 나이에도 새삼스레 배워요. 열 살 어린이가 어른한테 삶을 일깨우곤 하고, 스무 살 젊은이가 어르신한테 삶을 깨우치기도 해요. 서두르지 않고 재촉하지 않을 때에 삶이 환하게 빛나요.


  웬디 이월드 님과 알렉산드라 라이트풋 님이 함께 쓴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포토넷,2012)라는 책 116·118쪽을 읽습니다. “사진이나 글을 통해 자기 삶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도록 아이들을 격려할 때, 교사들은 아이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상임을 깨닫는다 … ‘아이들은 이것이 단지 연습문제 74번이 아니라 ‘내 자신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는 동안 내 이름을 부른 교사는 몇 안 됩니다. 담임교사조차 이름 아닌 ‘번호’를 불러 버릇했습니다. 타니카와 후미코 님이 그린 만화책 《솔로 이야기》(대원씨아이,2012) 둘째 권 18쪽을 읽습니다. “술 이름이 뭐가 어째서! 마스미는, 마스미는, 술을 좋아하는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술이다. 제일 좋아하는 것의 이름을 제일 소중한 딸한테 붙여 주는 게 뭐가 나빠!”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참으로 가장 사랑하는 길을 걷고, 가장 사랑할 만한 말을 하며, 가장 사랑할 보금자리를 돌봐야지 싶습니다. 가게에서 사다가 먹던 마늘 아닌 손수 심어서 거두는 마늘을 바라보며 사랑을 떠올립니다. 내 손으로 아이들 기저귀와 옷가지를 빨래하고, 내 손으로 밥을 차려 아이들과 함께 먹는 하루를 떠올립니다. 한겨울이건 새봄이건, 내 마음속에 사랑이 있을 때에 따사롭습니다. (4345.11.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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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16 21:37   좋아요 0 | URL
'저마다 스스로 바라는대로 삶을 누립니다.'
아 마늘이 늦가을에 심어 늦봄에 캐는군요.
<솔로 이야기>에서 마스미의 이야기가 절로 웃음이 나오고 공감이 됩니다.^^
'한겨울이건 새봄이건, 내 마음속에 사랑이 있을 때에 따사롭습니다.'
함께살기님! 오늘도 감사드리며 좋은 밤 되세요.*^^*

숲노래 2013-03-16 22:05   좋아요 0 | URL
저도 고흥으로 와서 살며 비로소 마늘심기 마늘캐기 알았어요.
그런데 고흥이든 남녘이든 시골이든 살면서
마늘을 언제 심고 거두는가를 제대로 모르는 분도 많아요.
따지고 보면,
벼를 언제 심고 거두는가조차 모르는 사람 많답니다.
저도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이기는 한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나 쉬 알 수 있어도
쉬 알려고 안 한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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