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숲노래 마음읽기

글수다 2021.12.8.물.


넌 어디로 가? 넌 그곳에 왜 가? 네가 가는 곳에는 네 걸음에 따라 네 자취가 남지. 넌 스스로 어떤 걸음이 되어 어떤 자취를 남길 생각이니? 너는 그곳에 네 기운을 어떻게 남기고 싶어? 살짝 머물기도 싫은 데를 지나가니? 지나치기 아쉬운 곳을 지나가니? 네 마음·눈길·생각은 네 걸음이 묻은 자리에 스며서 퍼져. 싫다고 느끼는 곳에는 싫다는 마음을, 좋다고 느끼는 곳에는 좋다는 마음을 심는단다. 네가 바다에 돌을 던지면 바닷속에 돌이 생기지. 네가 들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비닐을 날리면 들에는 쓰레기나 깡통이 굴러. 네가 숲을 사랑하는 마음이면 숲에 사랑빛 한 줄기가 퍼져. 네가 숲이 무섭다고 여기면 무서운 기운이 으스스 한 톨 생겨나고. 그런데 있잖아, 바다도 들도 숲도 하늘도 너희가 남기는 찌끄레기를 아랑곳하지 않는단다. 며칠·몇 달·몇 해가 걸리든 다 씻고 털어내. 바다·들·숲·하늘은 너희가 버린 쓰레기를 그린 적이 없거든. 바다·들·숲·하늘은 너희처럼 짜증·미움·싫음을 그린 적도 없어. 다만, 너희가 잔뜩잔뜩 모여서 궂은 기운을 끝없이 퍼부으면 바다·들·숲·하늘이 미쳐버리지. 무엇보다 너희는 ‘바깥(다른 곳·남)’에만 쓰레기를 버리며 더럽히지 않아.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너한테 그 쓰레기가 고스란히 돌아가. 네가 읊는 미움·짜증·싫음은 몽땅 너희가 스스로 마음·몸에 심는 씨앗이지. 자, 너는 어디에 가니? 왜 가니? 무엇을 보거나 하려고 가니? 너희 뜻은 뭐야? 너희는 어디로 가든 이곳(집)으로 돌아온단다. “간 만큼” 돌아와. “오는 만큼” 내려가. 쌓은 만큼 무너지고, 무너진 만큼 쌓아. 그러니 생각하렴. ‘무엇’을 어떻게 왜 어디로 가서 하려는가 하고 그리렴. 너한테 고스란히 돌아갈 네 하루·길을 네 눈으로 보렴.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마음읽기

글수다 2021.12.7.불.


무엇은 왜 날까? 무엇은 왜 돋아? 무엇은 왜 솟니? 네가 안 심어도 싹은 나. 네가 안 보아도 새로 돋지. 네가 못 느껴도 일은 솟아(생겨). 너희가 살아가는 곳에는 너희만 있지 않거든. ‘너’ 같은 숱한 다른 ‘나(이웃 숨결)’가 있어. ‘네’ 곁에 ‘또다른 너’가 있다고 하겠지. ‘또다른 너’는 ‘나’를 느끼거나 보기도 하지만, 생각조차 못 하기도 해. 너희는 ‘우리’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거든. 너희가 쓰는 ‘우리(울)’는 ‘안은·감싼·품은’을 가리키는 울(울타리)이라고 하겠지. ‘나’로 있을 적에는 그저 움직임이 없지만, ‘나’를 스스로 제대로 다시 보기에 ‘너’가 태어나고, 나하고 다르지만 (바탕은) 같은 너를 느끼면서, 서로 묶는, 그러니까 ‘아우르’는 ‘우리’이더구나. 서로 안거나 감싸거나 품으면서 ‘어울리’지. 너희가 말하는 ‘우리 = 아우르다 + 어우르다’인데, ‘아버지 + 어머니’야. ‘알 + 얼’이고, ‘알다 + 얼다’이기도 한데, 너희는 서로 ‘우리’라는 길을 가며 새롭게 ‘하나’로 빛나지. 이때 ‘하나 + 울’이 되어 ‘한·울 = 하늘’이더구나. ‘나’만 있거나 ‘너’만 가르면 ‘하늘인 우리’로 가지 못해. 나로서 나인 줄 알고, 너로서 너를 얼울 적에 ‘우리’라는 ‘새빛’이 되어 온누리를 밝히는 ‘해’란다. 너희가 ‘나 + 너 = 우리’로 가기에 스스로 새빛이 되었기에 ‘알 + 얼’인 ‘아기(아이)’를 낳잖아? 이런 ‘우리’란 아름답지. 얼씨구절씨구 기쁘고. ‘우리’란 무리지은 굴레가 아니야. 그러나 너희가 ‘알(아버지·알다)’과 ‘얼(어머니·얼다)’을 잊으면 ‘우리’가 아닌 ‘무리’가 되고 말아 허튼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고서 ‘알지 못하고, 얼우지(어르지) 않는’ 바보(얼간이·얼뜨기·얼치기)로 가. 사랑이 없으면 ‘가두는 우리(짐승우리)인 무리짓(떼짓)’이야. 사랑이기에 웃고 울며 우러르는(높이는) 해님이야. 무리짓을 하니 떼쓰면서 더 바보스레 나뒹군단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

지난 2021년 9월 15일부터

마음수다를 씁니다.

이 마음수다는

‘소설’이라고 하겠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소설’이거든요.

날마다 하루 한 바닥씩

옮겨적으라는

마음소리를 듣고서

그야말로 바지런히

옮겨적는 나날입니다.

“숲노래 소설”이란 이름을 붙여 봅니다.

“글수다”란 이름도 붙입니다.

다시 말씀을 여쭙지만

‘소설’입니다.

.

.

숲노래 소설


“어제는 어떠했니?” “응? 어제?” “그래, 어제이지, 뭐 다른 날이니?” “아, 네가 목소리로 찾아온 어제?” “그래.” “그게, 글쎄, 뭐라고 말을 못 하겠는데,” “뭐, 아직 모를 수 있고, 앞으로도 모를 수 있어. 그러나 네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 “…….” “네가 안 하기로 생각하면 안 할 테고, 네가 못 한다고 생각하면 못 하겠지. 네가 하기로 생각하면 바로 그곳부터 할 테고, 네가 즐겁다고 노래하면 언제나 그곳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하루를 열지.”  “…….”


2021.9.16.나무.


두 가지를 물어본다. “네 아이가 무엇을 영 못하는구나 싶으면 넌 아이한테 무슨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하고 “네 아이를 언제까지 어떤 눈빛·마음·몸짓·말씨로 지켜보거나 기다리겠는가?”를.


이렇게 묻더니 “너는 네가 영 못하는구나 싶을 적에 너 스스로 무슨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묻더니 “너는 너 스스로 언제까지 어떤 눈빛·마음·몸짓·말씨로 너를 지켜보거나 기다리겠는가?” 하고 더 묻는다. 모두 네 가지이지만, 곰곰이 보면 한 가지를 묻는다고 느끼지만 도무지 아무 말을 못하고서 멍하다.


우리 아이나 곁님이 무엇을 영 못한다면 억지로 이끌거나 가르칠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길을 가 보라고 얘기하겠구나 싶고, 그래도 스스로 더 해보고 싶다 하면 스무 해이든 마흔 해이든 백 해이든 이백 해이든 즈믄 해이든 그저 즐거이 지켜보고 기다리겠구나 싶다.


그런데 아이들하고 곁님이 아닌 나라면? 나는 나를 차분히 지켜보면서 기다릴 줄 알까? 나 스스로 부드럽거나 상냥히 다독일 줄 알까? 더 느긋이 천천히 해보라고 스스로 마음한테 속삭일 줄 알까? 누가 나한테 무엇을 왜 아직 못 하거나 안 하느냐고 물을 적에 ‘남’이나 ‘아이들’이나 ‘곁님’한테 말하듯 ‘나’한테 말할 줄 알까?


꿈에서 만난 사람은 자꾸자꾸 묻다가 빙그레 웃는다. 이 네 가지이자 한 가지 물음을 얼른 얘기하지 않아도 되고, 잊어도 된다고 덧붙인다. 마지막에 덧붙인 말대로, 이 꿈이야기는 꿈에서 깨고 곧바로 거의 잊었다. 떠올리려 해도 영 안 떠올랐다. 이러다가 붓을 쥐니 비로소 새벽녘 어지럽던 꿈모습을 조금 옮길 수 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

지난 2021년 9월 15일부터

마음수다를 씁니다.

이 마음수다는

‘소설’이라고 하겠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소설’이거든요.

날마다 하루 한 바닥씩

옮겨적으라는

마음소리를 듣고서

그야말로 바지런히

옮겨적는 나날입니다.

“숲노래 소설”이란 이름을 붙여 봅니다.

“글수다”란 이름도 붙입니다.

다시 말씀을 여쭙지만

‘소설’입니다.

.

.

숲노래 소설


꿈자리에서 겪은 일이 생생하다. 꿈자리를 되새기자니 마음에 어떤 소리가 들린다. “잘 봤니? 잘 봤으면 옮겨 봐.” “어. 누구?” “누구냐고?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기보다는 네가 누구인지 궁금해 할 노릇 아닐까?” “어? 어? 어.” “네가 꿈에서 겪고 보고 듣고 느낀 모두를 그대로 옮기렴.” “그래, 알았어. 그럴게.” “자, 오늘부터 하루에 한 가지씩 이야기를 보여주거나 들려줄 테니 마음을 기울여서 받아적으렴.”


글수다 2021.9.15.물.


어느 곳에서 돌봄이(의사)라는 일을 한다. 꿈으로 간 몸을 입던 나는 “내가 이런 일도 했나?” 하고 생각한다. 끝없이 사람들이 몰려든다. “자, 다 나았습니다.” 하고 알려주지만, 돌봄터(병원)에 들어온 사람은 안 나가려고 한다. “나갔다가 또 아프면요?” “이제 안 아픕니다.” “또 아플 텐데요.” “그때에는 여기 바로 오시기보다 스스로 몸을 다스려 보세요. 여기 오가느라 힘들고 돈도 많이 쓰시잖아요? 집에서 느긋이 풀꽃을 쓰다듬고 하늘과 해를 보시면 튼튼합니다.” “아녜요. 여기가 가장 좋아요.”


돌봄터에는 이런 사람이 가득하다. 이런 사람들은 나라에서 돌봄삯(병원비·치료비)을 다 대주니 ‘돈걱정’은 안 한다. 그러나 ‘몸생각’도 안 하고, ‘스스로 살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왜 태어나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생각하지 않기에, 배움터(학교)를 오래오래 다니고, 일터(회사)를 오래오래 다니며 길든 탓에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간다. ‘돈과 일자리를 주는 남’이 하는 말은 고분고분 듣되, 마음에서 퍼지는 빛살은 바라보지 않는다.


나라(정부)는 돌봄터를 더 크게 자꾸 짓는다. 젊은이는 돌봄이(의사)가 되면 돈 잘 벌고 좋다고 여긴다. ‘나라에서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가득하다. 스스로 삶을 생각하고 지으면서 제 빛을 찾거나 보려는 사람을 찾을 길이 없다.


이런 판이고 보니,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다 잊거나 할 줄 모른다. ‘남이 꾸며서 우습게 보여주는 이야기(연속극·영화·공연)’에 넋이 빠진다. 보임틀(TV·영상)에 넋을 잃고 빠져들면서 이 이야기만 한다. 그러면 나는 이 일 ‘돌봄이’를 그만둘 수 있는가? 나부터 이 쳇바퀴를 스스로 내려놓고서 떠날 수 있는가?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9.8.24.흙



‘물’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몸이 고단해서 잠을 부르지만, 이 이야기를 받아적으려고 하는데, 문득 “멈춰 봐. 수수께끼를 써.” 한다. “수수께끼?” “그래. 처음부터 다 알려주지 말고, 먼저 ‘물’이 어떻게 흘러서 너희 몸으로 스미고, 너희가 밥이나 물을 먹거나 이런 밥이나 물이 몸에 안 받는다면, 그 까닭을 알라는 뜻으로 수수께끼를 그려.” “음, 그러면 읊어 봐.”



‘아·람’이 들려준 이야기 

― ‘물’이란 무엇인가?



모든 몸은 나야

내가 없는 몸은 죽고

내가 사라진 몸은 바스라지고

내가 있는 몸은 기운나지


모든 밥은 나야

내가 없는 밥은 못 먹고

내가 사라진 밥은 먼지 되고

내가 있는 밥은 맛나지


모든 빛은 나야

내 빛을 담아 낮이 되고

내 빛이 가시니 밤이 되고

나를 움직여 새로운 짓이 돼


모든 길은 나야

내가 흘러 살이, 삶이, 사랑이

내가 멈춰 끝이, 마감이, 처음이

나를 담아서 마시니 네가



  이 열여섯 줄을 알아듣겠니? 이제 수수께끼를 풀어서 다시 읽어 보자. 말만 바꾸면 되겠지?



모든 몸은 물이야

물이 없는 몸은 죽고

물이 사라진 몸은 바스라지고

물이 있는 몸은 기운나지


모든 밥은 물이야

물이 없는 밥은 못 먹고

물이 사라진 밥은 먼지 되고

물이 있는 밥은 맛나지


모든 빛은 물이야

물빛을 담아 낮이 되고

물빛이 가시니 밤이 되고

물을 움직여 새로운 짓이 돼


모든 길은 물이야

내(냇물)가 흘러 살이, 삶이, 사랑이

내(냇물)가 멈춰 끝이, 마감이, 처음이

내(냇물)를 담아서 마시니 네가



  흐르는 냇물이 왜 ‘내’이고, 너희가 스스로 말할 적에 왜 ‘내’라고 하는지를 생각한 적이 있니? 옛날부터 사람들은 뭔가 깨닫고 싶으면 숲을 찾아가는데, 흙이나 풀이나 나무만 있는 숲으로 가지 않아. 물이 흐르는 숲으로 가지. 물소리를 찾아서 헤매지.


  그래서 쏠(폭포)도 찾아가서 그 쏠물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적시려 해. 왜냐하면, 이 살덩이라고 하는 몸이 그냥 몸이 아닌 물인 줄 느끼려고 해. 쏠물이나 냇물로 몸을 녹여서 새로운 몸이 되도록 바꾸려 하지.


  그런데 눈으로 보기에는 이 살덩이가 안 바뀐 듯하잖아? 왜 그런 줄 알겠니? 물에 너희 살덩이를 녹이면 너희 넋이 깃들 자리가 없어. 너희 넋이 깃드는 껍데기, 바로 옷은 그대로 둔 채 속으로 다 녹여서 새롭게 깨어나려고 하지.


  바위도 돌도 모두 물이야. 연필도 공책도 책도 모두 물이지. 다만 바위나 책을 이룬 물은 좀 다르니, 살덩이하고 똑같다고는 여기지 마. 그렇지만, 바위나 책이 먼지로 바스라지지 않았다면 그곳에는 너희 살덩이에 넋이 깃들었듯이 똑같이 넋이 깃들었어. 먼지로 바스라질 적에는 넋이 떠난다는 뜻이야. 먼지가 되면 다른 몸을 찾아서 떠났다는 뜻이야. 그러니 생각해 봐. 불로 사른다면 끔찍하겠지?


  물처럼 흐르는 삶이야. 그런데 이 물길을 억지로 바꾸거나 돌리려 하면 어떻게 될까? 삶도 몸도 모두 일그러지겠지. 삶하고 몸이 일그러지니 마음도 일그러져.


  그대로 흐르도록 둬. 그대로 흐르도록 두면서 어디로 흐르고 싶은가를 끝없이 생각해. 생각하고 또 생각할 곳은 어디로 흐르고 싶은가 하는 실마리야. 이 실마리가 있는, 길을 생각하면 되는데, 꼭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삶이라는 길에 서면서 하루를 맞이하려는가’를 생각하면 돼.


  어느 일을 하거나 안 하겠다는 생각이 아닌, 어떤 물흐름 같은 삶길에 서면서 스스로 눈을 뜨고 넋을 지피는 하루가 되겠느냐 하는 생각이면 돼. “할 일 찾기”는 안 해도 돼. 아니, “할 일 찾기”를 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다만, “할 일 찾기”에만 사로잡혀서 “서려고 하는 길 찾기”를 하지 않는다면 물거품이 되겠지.


  너희가 먹는 모든 밥은 물이야. 덩어리 모습을 한 물을 먹지. 그러니 덩어리인 밥이 아닌 물만 먹어도 밥을 먹는 셈이야. 이제 알까? 밥이 몸에서 안 받는 몸이라면, “물이 몸에서 안 받는 몸”이란 뜻이란다. 밥을 몸에 넣을 수 없다면, 억지로 입을 거쳐 물을 넣으려 하지 마. 똑같은 짓이잖아.


  밥을 먹을 적마다 속이 괴로워서 속이 뒤집어지다가 늘 게워야 한다면, 덩어리로 지은 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요, 물부터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인 줄 알아야 해. 너희는 언제나 살갗으로 물을 받아들여. 너희 살갗이 늘 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너희 몸은 먼지가 되어 버려. 너희가 어디에 있든, 지하상가나 하늘 높은 곳에 있더라도 그 둘레를 맴도는 물을 살갗이 받아들이지. 그래서 몸을 조이는 천조가리를 옷이랍시고 너희가 살덩이에 두르면 너희 살갗이 꺅꺅 하고 죽을 듯이 지르는 소리를 들어야 해. 살덩이에 천조가리를 꽉 조이는 짓은 너희 스스로 몸을 못살게 구는 셈이야.


  풀도 나무도 바위도 언제나 온몸으로 물하고 바람을 먹어. 뿌리로만 먹지 않아. 천쪼가리를 걸치지 않은 풀 나무 바위는 언제나 튼튼하게 서지. 해를 떠올려. 바람을 떠올려. 비구름을 떠올려. 냇물을 떠올려. 마음으로 떠올리면서 너희 살덩이에 순간이동처럼 와닿아 흐를 수 있도록 떠올려. 그러면 돼. 이렇게 하면 “입으로 밥이나 물을 넣는 일”을 하지 않고도 언제나 싱그럽고 튼튼하며 홀가분하며 즐거운 살덩이(몸)가 되겠지. 마음으로 먹으면 돼.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