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12.8.

숨은책 1098


《일반언어학 강의》

 페르디낭 드 소쉬르 글

 최승언 옮김

 민음사

 1990.8.1.첫/1992.9.25.3벌



  이미 읽은 책을 굳이 되사서 되읽곤 합니다. 이미 건사한 책이지만 애써 새로사고 새로읽습니다. 찍음터에서는 모두 똑같이 찍어낼 테지만, 1000이건 2000이건 5000이건, 다 다른 길을 거쳐서 다 다른 손끝으로 닿습니다. 부산 복천동에 있는 작은책집으로 마실하고서 책시렁을 살피다가 《일반언어학 강의》를 보았습니다. 누가 읽었고 얼마나 읽혔나 궁금해서 들추니 1992년에 〈부산도서〉에서 팔린 자국이 있습니다. 쉽지 않을 책을 선뜻 고른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배웠으려나 헤아려 봅니다. 헌책집으로 나오는 책은 스스로 내놓거나 둘레에서 내놓습니다. 서른 해 남짓 잠들던 책이 흘러온 길이란, 책지기하고 함께하는 삶이자, 이제 새길을 나서면서 다시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꿈이라고 느껴요. 온누리 모든 말은 얼핏 다 다르게 보이지만, 곰곰이 보면 모두 나란합니다. 소리는 달라도 마음은 하나이거든요. 우리나라 까치하고 이웃나라 까치는 다르게 울거나 노래할까요? 우리나라 참새하고 먼나라 참새는 다르게 노래하거나 울까요? 소리가 다를 수 있지만, 사람도 새도 나무도 씨앗도 바람도 비도 햇볕도 별빛도 언제나 나란합니다. 함께하는 저마다 다른 숨빛을 느끼고 읽으려고 이렇게 책 한 자락을 손에 쥐는 하루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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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12.8.

숨은책 1099


《2024 인문사회과학추천도서목록 아름다운서재 Vol.20 시민의 공부工夫》

 전민영 엮음

 인사회

 2024.3.22.



  ‘시민(市民)’이라는 한자말을 그냥그냥 쓰는 분이 늘어납니다. 어린이책까지 ‘시민·세계시민’ 같은 이름을 내겁니다. 영어 ‘citizen’에다가 ‘global citizen’을 성글게 옮긴 일본말씨일 텐데, 예전에는 으레 ‘공민(公民)’이라고 썼습니다. 좁게 친 담벼락인 ‘서울(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시민’이요, 시골에서는 이 일본한자말을 안 쓰고 ‘도민·군민·면민’ 같은 일본한자말을 씁니다. 인사회(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회)에서 꾸준히 낸 《아름다운서재》는 따로 팔지 않습니다. 책집마실을 하다가 묵은책을 곧잘 얻어서 들추는데, 2024년에 나온 “시민의 공부工夫”를 헤아리면서 갸우뚱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일본말씨를 쓰지 않으면 못 ‘배울’까요? ‘공부’는 ‘工夫’처럼 굳이 한자를 달아야 할까요? 시골사람은 없는 사람으로 치는 일본말씨인 ‘시민’인 줄 느끼는 ‘인문학자’나 ‘인문사회과학출판사’는 몇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이라 할 노릇이고, 따로 ‘작은사람’이라 할 만하며, ‘작은꽃·작은나무·작은숲’처럼 빗댐말을 쓸 만해요. 그러니까 “사람이 배우다”나 “사람으로 배우다”를 헤아리고 나누는 길을 열 적에 비로소 이 터전과 마을과 나라를 비롯해, 가장 자그마한 ‘집’부터 살뜰히 가꿀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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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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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11.29.

숨은책 1095


《죽고 싶지 않아!》

 안느 가엘 발프 글

 이자벨 카리에 그림

 김지연 옮김

 보랏빛소어린이

 2021.9.30.



  어린이책이며 그림책이 너무 일찍 판이 끊깁니다. 모심책(추천도서)에 이름이 못 오르면 이내 자취를 감추고, 모심책에 겨우 이름을 올려도 눈길을 못 받으면서 손길마저 못 받는 아름책이 수두룩합니다. 아름책이나 살림책이나 사랑책이 아닌, 자랑책(베스트셀러)이 큰책집이나 작은책집마다 수북히 쌓인다면, 그만큼 이 나라는 책빛하고 등진 채 ‘겉읽기(겉치레로 읽기)’가 유난하면서 속빛하고 멀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죽고 싶지 않아!》는 섣불리 다가가지 않으면서도, 나긋이 기다릴 줄 알고, 차분히 이야기하는 아이어른이 함께 길을 풀고 맺는 하루를 들려주는 아름책이라고 느낍니다. 뒤늦게 알아본 그림책 한 자락을 어렵게 장만해서 한참 되읽고 곱읽었습니다. 이웃님한테도 얘기하지만, 이웃님도 이 그림책을 장만하기는 안 쉬우리라 느낍니다. “쓰고 버리기”라고 하는 한벌살림(1회용품) 같은 책이 아니라, 곁에 두거나 집에 놓거나 배움터와 책숲 책시렁에 건사할 책이라면, 한참 기다리고 오래 찾아나서며 품을 만하다고 느낍니다. 갓 태어날 적에 누구나 알아보면 가장 즐겁고 빛납니다. 새책집에서 사라진 터라 헌책집을 떠돌면서 언제 만나려나 하고 손가락을 빨 적에는 새록새록 기쁘고 눈부십니다. 작은책 하나는 늘 조그맣고 조용하게 씨앗 한 톨로 온누리 곳곳으로 퍼집니다.


#Je veux pas etre mort #AnneGaelleBalpe #IsabelleCarr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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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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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11.29.

숨은책 1096


《아버지 방법 어머니 기술》

 정원식 글

 집현전

 1984.5.15.첫/1984.12.28.중판



  1991년에 한국외대 서울배움터에서 정원식(1928∼2020) 씨가 달걀에 밀가루를 잔뜩 뒤집어쓴 모습을 먼발치(신문방송)로 지켜보고서 “이 나라는 아직 ‘스승 아닌 꼰대’를 물리칠 줄 아는 마음이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정원식 씨는 오천석 곁에서 ‘박정희 사슬나라 배움틀(교육제도)’을 다졌고, 전두환·노태우를 거치는 동안에 벼슬자리를 단단히 쥐었습니다. 미국까지 날아가서 ‘교육학 박사’를 받았다지만, 아이를 아이로 바라보는 눈이 얕고, 어른이 왜 어른인지 지켜보는 눈이 멀다면, ‘서울대 길잡이’를 하건 어느 자리에 앉아서 고개가 뻣뻣하건, 한낱 불쌍한 굴레살이일 뿐입니다. 여러모로 정원식 같은 벼슬아치는 “온몸바쳐 나라(독재정권)를 지킨 허수아비”입니다. 아이 곁도 어른 자리도 아닌 부라퀴(독재자) 둘레에서 채찍과 몽둥이를 ‘말글’로 쏟아부은 민낯이란, 이처럼 창피한 밑바닥으로 《아버지 방법 어머니 기술》 같은 책까지 낸 발자취란, 이 나라에서 얼마나 배움틀과 배움길이 엉터리요 망탕이었는지 잘 보여주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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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새마을운동이나 여성단체 운동을 통해서 농번기에 방치상태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집중적으로 단기간의 보강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문화실조를 극복하는 효과적인 대응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4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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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11.21.

숨은책 1065


《지용文學讀本》

 정지용 글

 박문출판사

 1948.2.5.첫/1949.3.5.재판



  1988년에 “읽기가 풀린 글” 가운데 ‘정지용’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열네 살 푸른씨였어요. “배움책에 가득한 따분하고 틀에 박혀서 삶과 동떨어진 글”만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배워야 하느라 진절머리가 났습니다. 이른바 ‘납북문인’이 남겼다는 글이 여러 펴냄터에서 쏟아지듯 나왔고, 1993년에 처음 치른다는 수능을 앞두고서 “정지용도 수능 언어영역에 문제가 나오리라” 여겼습니다. 이래저래 정지용이며 백석이며 이용악이며 임화이며 김남천이며 외우듯이 읽었습니다. 지긋지긋한 불굿(입시지옥)이 지나간 뒤로는 모든 높녘글붓(월북작가)이 남긴 글은 더 들여다보지 않았어요. 《지용文學讀本》을 2024년 11월에 처음 만났습니다. 닳고 낡아 나달거리는 책을 한참 뒤적이는데, 1948년에 낸 책이면서도 한글이 아닌 일본한자말을 아주 즐겨쓴 대목에 다시 지끈지끈합니다. 문득 알아보니 이이는 ‘오유미 오사무(大弓修)’라는 일본이름이 있습니다. 그렇구나. 일본이 이 나라를 집어삼켜 숱한 사람이 굶주리고 헐벗고 끌려가고 죽는 마당에도 술집에서 꼬장부리는 꼴을 손수 적바림하는 나리였으니, 이이가 쓴 글이 허울스럽고 겉멋에 가득할밖에 없었네 하고 뒤늦게 깨닫습니다.


ㅍㄹㄴ


一一히 가져오라고 해야만 가져온다. 招人鐘으로 재차 불러오니 역시 뻣뻣하다. “느집에 술 있니?” “있지라우.” “술이면 무슨 술이야?” “술이면 술이지 무슨 술이 있는가라우?” “무엇이 어째! 술에도 種類가 있지!” “日本酒면 그만 아닌가라오?” “日本酒에도 몇十種이 있지않으냐!” 正初에 이女子가 건방지다 소리를 들은것이 自取가 아닐수 없다. “麥酒 가져오느라!” “몇병인가라오?” “있는대로 다 가져 와!” 號令이 效果과 있어서 훨석 몸세가 부드러워져 麥酒 세병이 나수어 왔다. 센뻬이를 가져오기에도 溫泉場거리에까지 나갔다 오는 모양이기에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더니 고맙다고 좋아라고 절한다. 눈갓에는 눈물자죽인지도 몰라 젖은대로 있는가 싶다. “성 났나?” “아아니요!” 사투리가 福岡이나 博多近處에서 온 모양인데 몸이 가늘고 얼굴이 파리하여 心性이 꼬장꼬장한 편이겠으나 好感을 주는것이 아니요 옷도 滿洲추위에 빛갈이 맞지않는 봄옷이나 가을옷 같고 듬식 듬식 놓인 불그죽죽한 冬柏꽃 문의가 훨석 쓸쓸하여 보인다. (185∼18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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