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하는 글쓰기

― 이승철, 홍일선, 이재무 그대들은 잘 계신가?



  1998년이었지 싶다. 그해에 대학교를 그만두었는데, 동아리에서 늦도록 즐거운 이야기잔치를 누렸다.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술병을 앞에 놓고서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고 말하기’를 돌아가면서 했다. 숨기려 하거나 거짓말을 하면 술잔을 비우기로 하고서 한 사람씩 ‘털어놓기’를 돌아가면서 하는데, 아무도 ‘속마음 드러내기’를 못했다. 돌고 돌아 나한테 오기 앞서 다른 이들 모습을 볼 적에 ‘왜 이렇게 다들 속마음을 못 드러내지?’ 싶었으나, 정작 내 몫이 되니 나도 내 속마음을 못 드러냈다. 달이 가고 해가 흘러 2018년에 새삼스레 생각한다. 이제는 굳이 가슴에 묻어둘 일은 아니라고 여긴다. 이제는 말할 수 있어야지 싶다. 말하지 않으니 서로 모른다. 말하지 않기에 안 달라진다. 이름을 숨기니까 다들 모를 뿐 아니라, 그 이름인 사람도 스스로 달라질 낌새가 없다. 좋은 님한테 “난 네가 좋아” 하고 말할 수 있어야겠지. 궂은 이한테 “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할 테고. 나는 1999년에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들어가면서 ‘책으로만 보던 숱한 작가나 문인’을 ‘얼굴로도 보고 목소리로도 듣고 술자리에서나 일터에서나 으레 마주했’다. 출판사 막내였기에 모든 술자리에 ‘술 따르는 젊은 사내’로 불려갔고, 문단뿐 아니라 책마을 ‘어른’이라 일컫는 이들은 ‘젊은 가시내’뿐 아니라 ‘젊은 사내’가 따라 주는 술이 아니고는 마실 생각을 안 했다. 더구나 막내인 내가 술자리가 힘들어 그만 집에 가야 한다고, 전철 끊어지니 돌아가야 한다고 하면, 문단 어른이나 책마을 어른은 으레 한 마디를 했다. “야 임마, 너희 출판사 사무실에서 자면 되잖아. 사무실 바닥에 신문지 깔고 자면 되지.” 이러면서 밤을 지나 새벽에 이르도록 붙잡으니 매우 고되었다. 그때에는 몰랐지. 참으로 몰랐지. 왜 나이든 ‘문단 어른·책마을 어른’이라는 이들이 젊은 가시내뿐 아니라 젊은 사내 손이나 허리나 볼이나 허리나 엉덩이나 허벅지를 쓰다듬거나 만지는 줄 까맣게 몰랐지. 그러나 속으로는 되게 더러웠다. 그래서 그때에는 짜증스럽고 싫어서 막술을 마시면서 그런 더러운 손길을 잊으려 했다. 그들은 몰랐으리라. 그들이 더러운 손길로 내 볼을 살살 쓰다듬는 짓이 싫어서 술잔을 한칼에 털어넣은 까닭을. 그들은 그저 내가 술을 잘 마시는 젊은 사내인 줄로만 여겼겠지. 이제 나는 그런 짜증스럽고 싫고 더럽던 이들 손길을 잊고자 막술을 마시지 않는다. 맛난 술을 가끔 알맞게 즐기려 한다. 이러면서 한 가지를 생각한다. 지난날 어떤 ‘어른들께서’ 어떤 짓을 했는지, 문득문득 떠오르면 ‘그분들 이름’을 하나하나 털어놓을 만하구나 싶다.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 이야기를 들추는 시를 썼다는 얘기를 듣고 곧장 1999년 그해부터 2004년까지 보고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참 지저분한 고은 시인이라서 그이 시집은 안 쳐다본다고 하는 ‘책마을 여자 어른’이 많았다. 최영미 시인을 비아냥댄 이승철이라는 시인이 있는데, 이이는 2004년에 나를 해코지한 사람이다. 이승철이라는 시인이 나를 해코지할 적에 이녁 곁에 홍일선 시인이 나란히 앉아 이죽거리면서 “야, 왜 너 안 받아 줘? 네가 받아 줘야지? 이 xx가 말이야?” 하면서, 이승철하고 홍일선 이 두 사람은 성추행을 손사래치는 나한테 “문단이나 출판계에서 너 같은 놈 매장시키는 건 일도 아니야.” 따위를 읊었다. 이 둘 곁에 이재무 시인이 있었고, 이재무 시인은 “난 소주만 있으면 돼.” 하면서 이승철·홍일선 두 사람이 나를 해코지하는 짓을 흘려넘겼다. 이른바 방관자. 이들이 하는 짓이 참 터무니없기도 했지만, 2004년 이날 뒤로 문단 어른이나 책마을 어른이라는 분, 또는 작가나 평론가라는 이들을 굳이 만나지 않기로 했다. 이들이 있는 모임이나 자리에 누가 나를 데려가려고 해도 몽땅 손사래쳤다. 그들이 나를 문단이나 책마을에 못 들어오게 막든 말든, 나 스스로 문단에 발을 들이지 않기로 하고, 이들이 권력을 부리는 큰 출판사하고는 등돌리기로 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열 해쯤 먹고살 길이 막혀 굶을 수 있었으나, 이쯤 얼마든지 견디면서 헤쳐나가자고 여겼다. 황해문화 김명인 편집위원이 매체와 만나서 한 말을 기사로 읽어 보는데, ‘절대다수 남자 문인이나 평론가’는 ‘동조자나 방조자’라는 그럴싸한 말은 하되, 그런 짓을 한 사람들 이름은 하나도 안 밝힌다. 말만 그럴싸하게 하고서, 어떤 잘난 문단 어른이 잘난 짓을 하셨는지 하나도 안 밝히고 그대 가슴에만 묻어둔다면, ‘절대다수 남자 문인이나 평론가는 동조자이자 방조자’ 따위 말은 읊지도 말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이라면 평론질도 대학교수질도 그만두기를 바란다. 작품을 비평할 적에만 작가 이름을 들지 말 노릇이다. 막짓이나 막말을 일삼은 이들을 나무랄 적에도 그들 이름을 들기를 바란다. 이제는 말하는 글쓰기가 되기를 바란다. 청소 좀 하자. 먼지가 너무 오래 쌓여서 더께가 되었다. 더께를 벗기자니 아주 박박 문질러야 한다. 다들 소매를 걷어붙이자. 지저분한 집을 참말로 말끔히 치우는 글쓰기를 하자. 2018.2.1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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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4 ‘행간읽기’는 언제?

글벌레수다 : ‘팬클럽·팬덤’에 휩쓸린 나라



  모든 글은 글쓴이 삶 그대로이다. 글과 글쓴이는 남남일 수 없다. “글이 좋다”고 여긴다면 “꾸며서 쓴 글을 좋아한다”는 뜻이기 쉽다. ‘친일부역 + 독재부역’으로 기나긴 삶을 누린 서정주 같은 사람을 놓고서 “글이 좋다”고 여긴다면 “조선총독부와 군사독재정권 입맛에 맞추어 배불리 먹고살고 술에 절어서 살아가는 나날이면서, 글만 멋스러이 꾸며서 사람들을 홀린다”는 뜻이다. 우리는 여태 ‘서정주·김동인·이광수·최남선’처럼 후줄그레한 ‘자칭 천재 붓꾼’한테 얼마나 휘둘려 왔는가. 이들은 붓을 드날리려고 하면서 “사람들을 억누르는 끔찍한 수렁(군국주의·독재정치)에 이바지”했고, 이들이 붓질로 돈을 벌고 이름을 얻고 힘을 펴는 동안 그야말로 온나라 숱한 사람들을 차갑게 얼어붙고 굶어죽을 뿐 아니라, 먼나라로 끌려가서 갈기갈기 찢기거나 목숨을 빼앗겨야 했다.


  2026년뿐 아니라 2016년과 2006년도, 또한 1996년도 ‘사람다움’이라는 길을 건사하지 않았다면 ‘성인지감수성’뿐 아니라 다른 ‘마음’도 매한가지인 채 “글을 꾸며서 사람들을 홀려왔다”는 뜻이다. 올해에 황석희 민낯이 드러났다지만, 이 민낯을 스무 해 가까이 숨겼다니 더욱 놀랍다. 게다가 우리 스스로 글꾼 민낯을 읽어내지 않거나 못한 셈이다. 글이건 책이건 “행간을 읽으라”고들 하면서 막상 ‘글에 담은 삶’이 아니라 ‘글이라는 껍데기’에 붙잡히고 사로잡힌 민낯이기도 하지 않나?


  “좋은글로 꾸며서 사람들을 홀려온 글쓴이와 펴냄터”를 여태껏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리려고 하지 않은 나(우리 스스로)’부터 곰곰이 되새기고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말썽꾼 아무개뿐 아니라 ‘책벌레(독자이자 편집자이자 책집지기이자 교사이자 어른이자 사람)’로서도 뉘우칠 노릇이다. ‘허울질·글치레·눈속임(이미지 프레임 + 이미지 메이킹)’에 고스란히 휩쓸려서 글을 읽거나 책을 읽어 오지 않았는가 하고 뉘우치는 책벌레가 이제부터라도 늘어나야 하지 않나? 말썽꾼도 나무랄 일이되, 말썽꾼을 못 알아채거나 안 알아챈 ‘나부터’ 나무랄 수 있을 때에, ‘좋은글 꾸밈짓’은 자취를 감출 수 있다. 겉이름에 휩쓸리려고 하지 않으면서 오직 ‘글에 담는 삶이 얼마나 사람과 같은가’ 하고 들여다보려고 할 때에, ‘삶과 살림과 사랑을 고스란히 녹여내는 빛글’을 눈여겨보는 하루로 거듭나겠지.


  ‘사랑매’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눈속임인 주먹질(폭력)을 그냥그냥 받아들이던 우리나라이다. 그러니까 ‘좋은글로 꾸민 거짓말과 눈속임’이 무척 오래도록 들통나지 않으면서 알음알이로 펴져서 ‘팬클럽·팬덤’을 두텁게 이룰 만큼 허술하고 초라한 우리나라이다. 글읽기와 글쓰기는 ‘팬클럽·팬덤’이 아닌, 오직 ‘삶읽기와 삶쓰기’를 일구는 길을 가야 하지 않을까? 말과 삶이 다르다면 ‘거짓꾼(이중인격·언행불일치)’일 뿐이다. 말과 삶이 나란한 책을 읽고 나누고 알려야 하지 않을까? 말과 삶이 다른 데에도 ‘좋아하’다 보면, 글과 삶이 다른 데에도 그만 휩쓸려서 ‘팬’으로 사로잡혀서 눈을 못 뜨고 만다.


  고은, 신경숙, 정지돈, 료, 이밖에도 숱한 이들은 ‘좋은글’이라는 허울로 사람들을 홀려서 돈장사와 이름팔이와 힘자랑을 해왔다. 그들 혼자서 이런 짓을 할 수 없다. ‘작가·편집자·영업자·대표·기자·평론가·책집·독자’가 나란히 팬덤을 부추기고 퍼뜨려서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허깨비(괴물)일 뿐이다.


ㅍㄹㄴ


《어느 망명작가의 참인생》(블라디미르 나보코프/권택영 옮김, 청하, 1988)


그녀는 막 거리의 이쪽 편에서 반대쪽 보도로 건너려는 참이었다

→ 그이는 막 거리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려는 참이다

→ 그사람은 막 이쪽 거리에서 저쪽 거님길로 건너려 한다

97쪽


윗방에서 누군가가 이른 아침 식사를 밝게 만들려고 틀어놓은 운율이 흩어진 음악의 잡동사니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 끔찍스런 격정으로 쑤시는 듯한 한기가 내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 윗칸에서 누가 이른 아침밥을 밝게 지으려고 틀어놓은 자잘한 노랫가락에 귀를 기울이려니 끔찍스레 쑤시듯 추워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233쪽


《나미다코 님이 말하는 대로 3》(야마모토 룬룬/장지연 옮김, 학산문화사, 2026)


지혈하겠습니다

→ 피를 막습니다

→ 막겠습니다

175쪽


위원회의 선두에 서서 백방으로 손을 써 주고 있어요

→ 모둠에서 앞장서며 여러모로 손을 써 주셔요

→ 일두레에서 앞장서며 널리 손을 써 주셔요

190쪽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조승리, 세미콜론, 2025)


부산 북토크 현장이었습니다

→ 부산 책노래 자리였습니다

→ 부산 책꽃밭에서였습니다

→ 부산 책바다였습니다

9쪽


저는 눈동자 속에 푸른 하늘과 하늘빛으로 빛나는 호수를 그립니다

→ 저는 눈망울에 파란하늘과 파란못물을 그립니다

→ 저는 눈에 파랗게 빛나는 하늘과 못을 그립니다

10쪽


우리의 대화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 우리 이야기에 웃음바다입니다

→ 우리 말을 듣고 다들 웃습니다

11쪽


그녀의 말이 옳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 그사람 말이 옳다고 받아들였다

→ 그분 말이 옳다고 여겼다

→ 그이 말이 옳다

21쪽


생목숨이 묻힌 둔덕으로

→ 산목숨이 묻힌 둔덕으로

→ 목숨이 묻힌 둔덕으로

29쪽


사실 고백하자면 그때 나는 점자를 읽지 못했다

→ 그런데 그때 나는 무늬글을 읽지 못했다

→ 그렇지만 그때 나는 빛글을 읽지 못했다

39쪽


아무리 강한 고통이라 해도 일상이 되어버리면 무뎌지기 마련이고 어느 순간 통증을 인지하지 못한 채 현실을 살아가게 된다

→ 아무리 아파도 익숙하면 무디게 마련이고 어느덧 아픈 줄 못 느끼며 살아간다

→ 아무리 괴로워도 길들면 무디어 가고 바야흐로 괴로운 줄 모르며 살아간다

47쪽


요추가 어긋나 있었고 팔이며 다리에 상흔이

→ 허리뼈가 어긋났고 팔이며 다리에 생채기가

48쪽


나는 금방 그녀를 잊었고 내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 역시 망각했다

→ 나는 곧 그사람을 잊고 내가 두나라에 사는 줄 잊었다

→ 나는 이내 그분을 잊고 내가 조각나라에 사는 줄 잊었다

→ 나는 벌써 그이를 잊고 내가 나뉜나라에 사는 줄 잊었다 

50쪽


일행 모두가 무사히 하산했다

→ 모두 잘 내려왔다

→ 모두 그대로 내려왔다

60쪽


시간이 있을 때마다 마카오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모으기 시작했다

→ 틈날 때마다 마카오 이야기를 찾아보고 모았다

→ 짬날 때마다 마카오를 알아보고 살펴보았다

74쪽


내가 묻자 그녀가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 내가 묻자 빙그레 웃는다

→ 내가 묻자 싱긋 웃는다

→ 내가 묻자 가만히 웃는다

82쪽


나는 흔쾌히 그녀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 나는 기꺼이 그분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나는 즐겁게 그사람 말대로 한다

→ 나는 스스럼없이 따른다

98쪽


54개의 소수민족이 있지만 큰 분쟁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대답했다

→ 작은겨레가 쉰넷이지만 그리 다투지 않고 살아간다고 들려준다

→ 작은이웃이 쉰넷이지만 크게 다투지 않으며 살아간다고 한다

99쪽


그녀는 자신의 박수에 맞춰 악기 없이 노래를 불렀다

→ 그분은 손수 손뼉치며 그냥 노래를 부른다

→ 손뼉을 치면서 맨몸으로 노래를 부른다

135쪽


분명 다섯 마리의 새끼가 있어야 하는데

→ 새끼가 다섯 마리여야 하는데

→ 새끼는 꼭 다섯 마리일 텐데

155쪽


글쓰기 소재를 찾아 갈팡질팡할 때면

→ 글감을 찾아 갈팡질팡할 때면

→ 글거리를 찾아 갈팡질팡할 때면

209쪽


언니는 습관적으로 신세 한탄을 해댔다. 시각장애가 자신의 인생을 다 망쳤다고 억울해했다. 그녀는 흰 지팡이 없이 보행할 수 있는 경증 장애인이었다

→ 언니는 으레 한숨이다. 눈이 멀어 삶이 다 망가졌다고 슬퍼한다. 언니는 흰 지팡이 없이 가볍게 걸을 수 있다

→ 언니는 툭하면 탓한다. 장님이라 삶을 다 망쳤다고 아쉬워한다. 언니는 흰 지팡이 없이고 걸을 수 있다

234쪽


엄마의 돌발 행동에 순간 정지되었다가 온몸을 떨며 웃었다

→ 엄마가 갑작스러워 멈칫하다가 온몸을 떨며 웃는다

→ 엄마가 느닷없어서 멈췄다가 온몸을 떨며 웃는다

28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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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3 즐겁게 지겹게

글벌레수다 : 나하고 너는 다르며 같아



  길을 찾으려고 마음을 기울이기에, 스스로 생각을 길어올리면서 어느덧 꿈씨를 기르는 눈길과 손길을 찾아나선다고 느낀다. 스스로 꿈을 그려서 씨앗을 심고 밭자락을 돌보는 길이라면 ‘기르는’ 삶을 간다. 남이 맡기거나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길이라면 ‘길드는’ 쳇바퀴일 테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면 꽃길이건 가싯길이건 웃고 울면서 노래한다. 남이 맡기거나 시키는 길을 그냥그냥 가면 어느새 지치면서 지겹다고 여기기 일쑤이고.


  즐겁게 읽는 마음이 실오라기처럼 가만히 이어서 곳곳에서 어울리는 길을 놓는구나 싶다. 읽는 마음을 잇는 숨결로 일구면 바로 이곳부터 봄바람이 일고 새물결이 일렁이게 마련이다. 누가 해주기에 얼핏 즐겁다고 여길 수 있는데,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 하기에 즐겁다. 누가 도와서 잘되기에 즐겁다고 여긴다면, 자꾸자꾸 기대다가 ‘나’를 잊고 잃는다. 스스로 하기에 쓰러지거나 쓴맛이거나 고꾸라지거나 무너지더라도, 다시 기운을 차려서 나아가는 삶이라서 즐겁다고 느낀다.


  둘레에서 안 도와야 하지 않다. 둘레에서는 ‘내’가 스스로 일어설 만큼 도울 뿐이다. 아니, 둘레에서는 내가 ‘나’를 바라보도록 북돋우고 이야기하고 손을 잡는다. 나도 마찬가지이니, 내 곁에 있는 ‘너’를 돕는다고 할 적에, 네가 스스로 기운을 차려서 일어나라고 북돋우고 이야기하고 손을 잡는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일어서서 날아오르는 길을 가기를 바라면서 마주보고 다가서며 찾아나선다.


  나하고 너는 다르면서 같다. 서로 입은 몸이 다르고, 서로 가꾸는 마음이 다르다. 그렇지만 이 별에서는 나랑 너는 나란한 숨결이고 숨빛이며 숨씨이다. 사람과 나무는 다르면서 나란하다. 풀하고 벌레는 다르면서 나란하다. 바람하고 바다는 다르면서 나란하다. 나비하고 벌은 다르면서 나란하다. 서울하고 시골은 다르면서 나란하다. 이 별하고 저 별은 다르면서 나란하다.


  다 다른 철에 눈을 뜨면서 깨어나는 씨앗이듯, 다 다르게 철들며 눈뜨고 일어서는 사람이다. 내가 쓰듯 네가 쓸 까닭이 없다. 네가 말하듯 내가 말할 까닭이 없다. 우리는 서로 다르게 말하면서 나란한 숨소리를 주고받는다. 우리는 늘 다르게 바라보고 느끼고 배워서 말글로 풀어내기에, 이 다 다른 말글 사이에서 샘솟는 나란한 이야기씨를 알아채고 맞아들여서 즐긴다.


  내가 너를 닮으려고 하면 겉치레로 흘러서 따분하다. 네가 나를 닮으려고 하면 흉내로 그쳐서 지겹다. 누가 누구를 닮아야 하지 않는다. 서로서로 아름다운 빛을 고요히 담아서 고즈넉히 살릴 수는 있되, 닮지는 않아야 할 일이다. 자꾸 닮으려고 따라가고 얽매이기에 그만 닳고야 만다. 다 다르기에 가만히 담아서 배우고 나누고 들려주는 살림길을 지을 적에는, 다가가서 다가오는 새길을 열면서 다사롭게 피어날 수 있다.


  누구하고 닮으려고 쓰는 글이란 얼마나 안쓰러운가. 훌륭하거나 놀랍거나 대단하다고 여기는 글어른을 흉내내듯 닮으려고 하면 얼마나 딱한가. 그분이 쓰는 글을 ‘읽’을 노릇이되, 함부로 ‘따라’가거나 ‘좇’지 않을 노릇이다. 그이가 쓰는 글을 ‘읽’되, 섣불리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그사람 이야기를 읽고서 내가 걷는 길을 일구면 된다. 그저 이웃 이야기를 읽는 동안 우리 손으로 우리 보금자리를 이루면 된다.


  ‘읽는다’고 할 적에는 겉을 훑거나 흉내낸다는 뜻일 수 없다. ‘읽다’는, 저마다 제 나름대로 익히고 일구면서 삶을 이루어 이야기를 새로 지피는 실마리이다. ‘읽다’는, 바람처럼 파랗고 밝게 피어나는 눈을 틔운다는 뜻이다. ‘읽다’는, 바다처럼 푸근하고 너르고 맑게 깨어나는 싹을 틔운다는 얼거리이다. 우리는 바람이 일듯 일하면 된다. 너랑 나는 바다가 넘실넘실 춤을 짓듯 일을 나누고 함께하면 즐겁다.


ㅍㄹㄴ


《나는 신기한 박물관에 출근한다 10》(사와라 토모/나민형 옮김, 시리얼, 2025)



장수풍뎅이가 야행성인 게 말벌 때문이라고

→ 장수풍뎅이가 말벌 때문에 밤눈이라고

→ 장수풍뎅이가 말벌 때문에 밤길이라고

6쪽


없어지는 게 낫네! 퇴치하자, 퇴치

→ 없어야 낫네! 없애자, 없애

→ 없어야 낫네! 박살내자, 박살

8쪽


이 아이가 드릴 말씀이 있다고

→ 이 아이가 여쭐 말씀이 있다고

→ 이 아이가 할 말이 있다고

11쪽


숲과 삼림을 인간이 개간해서 살기 시작하면서

→ 들숲메를 사람이 일구어 살면서

→ 멧숲을 사람이 갈아엎고 살고부터

33쪽


무엇보다 그녀들이 쏘는 이유는 지킬 것이 있어서니까

→ 무엇보다 암벌은 지켜야 하기 때문에 쏘니까

→ 무엇보다 암벌은 지킬 까닭이 있어서 쏘니까

35쪽


벌의 상태를 잘 관찰해야 해

→ 벌을 잘 봐야 해

→ 벌이 어떤지 잘 봐야 해

35쪽


온 세상의 무서워를 내 좋아로 중화해서 재밌다고 바꿔 줄 거야

→ 온누리 무서워를 내 좋아로 눅여서 재밌다고 바꿀 테야

→ 온누리 무서워를 내 좋아로 풀어서 재밌다고 바꾸겠어

40쪽


국접(國蝶)인 왕오색나비는 날개를

→ 나라나비인 한닷빛나비는 날개를

44쪽


지구는 많은 우연으로 이뤄져 있다는 뜻이지

→ 푸른별은 숱하게 문득 모여 이룬다는 뜻이지

→ 파란별은 숱하게 얼핏 모여 이룬다는 뜻이지

61쪽


굉장히 꼼꼼하게 관리되고 있지

→ 아주 꼼꼼하게 돌보지

→ 무척 꼼꼼하게 다루지

68쪽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부족한 거예요

→ 어쩐지 사람을 끌어당기지 못해요

→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모자라요

→ 사람을 끌어당기지 못해요

89쪽


성체는 7∼9등신이에요

→ 자라면 7∼9몸피예요

→ 어른은 7∼9몸이에요

93쪽


안구를 지키기 위해 눈을 감거든요

→ 눈알을 지키려고 눈을 감거든요

→ 눈망울을 지키려고 눈을 감거든요

10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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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2 아이곁에서 쓰는

글벌레수다 : 철드는 빛을 누리는 길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아이곁’에서 쓰면 된다고 들려준다. 어린이한테도 푸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똑같이 말한다. 어린이한테 “아이곁에서 글을 쓰면 돼.” 하고 들려주면 “우리 곁에서 글을 쓰라고요?” 하고 되묻는데, “그래, 어린이 여러분은 어린이 여러분 곁에서 쓰면 됩니다.” 하고 보탠다. 이때에 이미 알아차리는 어린이도 있지만, 미처 못 알아차리는 어린이도 있다. “어린이 여러분이 모든 말을 다 아나요?” “아니요.” “어린이 여러분이 모두 안다면 이렇게 배움터를 다니며 배우지 않겠지요?” “네. 그러네요.” “그런데 어린이 여러분이 마치 다 아는 사람처럼 굴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어떻겠어요?” “아!” “어린이 여러분은 어른 흉내를 내면 글이 다 망가져요. 그런데 어린이 여러분보다 어린 동생을 헤아리며 글을 쓰면 글이 빛나요. 그리고 어린이 여러분이 뭘 조금 알 적에는, 아직 잘 모르는 동무가 있게 마련인데, 아직 잘 모르는 동무한테 맞춰서 부드럽게 사근사근 들려주는 말씨로 글을 쓰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푸름이한테는 조금 다르게 들려준다. “푸름이 여러분은 틀림없이 어린이보다 많이 알고 넓게 알고 깊이 압니다. 그렇지만 스무 살 어른이나 마흔 살 어른이나 예순 살 어른이나 여든 살 어른보다 잘 알거나 많이 알거나 깊이 알까요?” “그럴 때도 있겠지만, 아닐 때도 있겠지요.” “푸름이 여러분은 ‘어른’으로 무르익는 길에 서는 자리요 나이예요. 그래서 어느 낱말보다도 ‘어른’이라는 낱말부터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어른이요? 성년 아닌가? 스무 살이면 어른 아닌가?” “몸이 많이 자라서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해서 어른으로 여기지 않아요. ‘어른’이란, 얼이 제대로 찬 사람인데, 얼이 제대로 차려면 철이 제대로 들어야 해요. ‘철’이란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네 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 해를 이루는 네 가지로 다른 철이 어떻게 흐르는지 살필 줄 알고 읽어내어 살림을 지을 수 있기에 ‘철들다·얼차다’라 하고, 네 철을 익히고 안다면 한 해를 이루는 삼백예순닷새라는 다 다른 날을 그야말로 다르게 알아채고 느껴서 살림을 가꾼다는 뜻이에요. 푸름이 여러분이 스스로 어른으로 서는 길을 걸어가는 그대로 글을 쓰면, 푸름이 여러분 글은 언제나 빛나고 아름답습니다.”


  나이가 제법 든 여느 어른한테는 또 다르게 들려준다. “나이를 먹기에 ‘어른’이라 하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기만 하면 ‘낡다·늙다’라고 여깁니다. ‘나이만 먹기 = 나이만 늘리기’라서 ‘늘다 = 늙다’로 치닫거든요. 한 해씩 쌓아가는 나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기쁘게 살릴 줄 알기에 어른이라고 여겨요. 요샛말로는 ‘나이’라 하지만 고작 온해(100년) 앞서만 해도 ‘낳’이라 외마디로 가리켰고 ‘낳이’라는 낱말에서 ㅎ이 떨어져서 ‘나이’로 적을 뿐입니다. 곧, 아이를 낳는 ‘낳이’도 있지만, 삶과 살림과 사랑을 낳을 줄 안다는 뜻에서 ‘나이’를 머금는 어른입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살아낸 나날을 돌아보면서,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들려줄 삶씨앗과 살림씨앗과 사랑씨앗을 말씨앗으로 가다듬어서 글씨앗으로 옮기면 되어요.”


  스스로 사람빛을 잊고서 줄거리를 짜맞추면, 이때에는 이야기에 이르지 못 한다. 이야기에 못 이르면 그냥 줄거리로 그친다. 이른바 ‘문학’이라는 탈을 쓴 모습에 그치니 줄거리(소재)에 얽매이고 목소리(주제)에 갇힌다. 우리는 ‘문학’도 ‘에세이’도 ‘논문’도 ‘텍스트’도 아닌 ‘글’을 쓸 노릇이다. 문학이 아닌 이야기를 여밀 적에는 미움씨 아닌 사랑씨를 심지만, 이야기 아닌 문학에 붙들릴 적에는 그만 사랑씨 아닌 미움씨를 심는다.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품으려면 ‘이야기’를 담는 ‘손끝’을 ‘철드는’ 숨결로 가다듬어서 ‘어른’으로 일어서는 마음을 옮기면 된다. 아주 쉽다. 누구나 스스로 어른이 되려고 하면 말을 말답게 펴고 글을 글로 나눌 수 있다.


ㅍㄹㄴ


《태양의 집 5》(타아모/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2014)


송별회는 안 해도 돼

→ 배웅모임 안 해도 돼

→ 배웅자리 안 해도 돼

→ 배웅잔치 안 해도 돼

45쪽


난 오늘 식사당번인데

→ 난 오늘 밥지기인데

→ 난 오늘 밥꾼인데

→ 난 오늘 부엌님인데

→ 난 오늘 부엌지기인데

47쪽


이제 그만 파장하자고

→ 이제 그만하자고

→ 이제 끝내자고

52쪽


성대하게 보내줘야지

→ 북적북적 보내줘야지

→ 넉넉히 보내줘야지

69쪽


철창 신세 안 지게 조심해

→ 사슬살이 안 하게 살펴

→ 고랑 차지 마

77쪽


수면부족으로 자율신경이 망가져서 이상해졌어

→ 졸리니 내 빛줄기가 망가져서 뒤뚱거려

→ 나른하니 내 빛톨이 망가져서 아리송해

→ 지치니 빛톨이 망가져서 어지러워

79쪽


두 사람으로 망상해 버렸어

→ 두 사람으로 꿈꿔 버렸어

→ 두 사람으로 헛꿈 그렸어

123쪽


《태양의 집 7》(타아모/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2014)


동네사람인데 1박 여행이라니

→ 마을사람인데 하룻밤이라니

→ 마을사람인데 하루 묵다니

32쪽


그건 농담이고∼ 실은 지지부진했겠지―

→ 뭐 놀림말이고, 막상 더뎠겠지!

→ 그냥 빈말이고, 아마 굼떴겠지!

135쪽


《태양의 집 11》(타아모/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2015)


그동안 전과가 좀 많았어야지

→ 그동안 사달이 좀 많아야지

→ 그동안 말썽이 좀 잦아야지

123쪽


반짝반짝거려. 화이팅

→ 반짝반짝해. 힘내

→ 반짝거려. 잘해 봐

→ 반짝여. 애써 봐

131쪽


《고물 로봇 퐁코 9》(야테라 케이타/조원로 옮김, 소미미디어, 2025)


거짓말 탐지기 기능으로 알 수 있답니다

→ 거짓말찾기로 알 수 있답니다

→ 거짓말읽기로 알 수 있답니다

27쪽


요시오카 씨네 장녀 분이란다

→ 요시오카 씨네 맏딸이란다

→ 요시오카 씨네 맏이란다

34쪽


《아사코의 희곡 2》(와다 후미에/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3)


고기를 잡아 온 어선에서 직접 들여오는 거라 정말 신선하답니다

→ 고기를 잡아 온 배에서 바로 들여오니 참말 싱싱하답니다

→ 고깃배에서 곧바로 들여오니 아주 깨끗하답니다

20쪽


가끔씩 일을 맡기지 않으시는 거죠?

→ 가끔 일을 안 맡기시지죠?

25쪽


자기들 멋대로 내 인생 계획을 세우고 있어

→ 제멋대로 내 삶길을 세우네

→ 저희 멋대로 내 길을 세우네

37쪽


집중 포화를 당하고 있는 동안 졸음과 싸우는

→ 뭇매를 맞는 동안 졸려서 싸우는

→ 모다깃매 맞는 동안 엄청 졸린

6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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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1 마음을 담는다

글벌레수다 : 날마다 살림하는 글



  누구나 말로 마음을 나타내지만, 선뜻 말꼬를 못 터는 아이와 어른이 있게 마련이다. 뭇사람이 지켜보는 자리가 아닌, 혼자 있는 자리에서조차 혼잣말을 스스럼없이 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붓을 쥐고서 종이를 펴면 어쩐지 “하고 싶던 말”을 슥슥 쓰기도 한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쓸 수 있기도 하지만, 말을 썩 잘하지 않는 사람 누구나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다. 수줍거나 창피하다고 여기는 사람이기에 글을 잘 쓰지 않는다. 수줍어하지 않고 창피한 줄 모르면서 말이 번드레한 사람이 글을 잘 쓰지 않는다. 스스로 밝히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일 적에 ‘글쓰기’를 하고, 이 글쓰기는 “잘 쓴 글”이나 “못 쓴 글”이 아닌 “오직 마음을 담은 글”이다.


  말을 잘 해야 하거나 글을 잘 써야 하지 않는다. 마음을 말로 담을 노릇이고, 마음을 글로 옮길 일이다. 마음이 없는 채 줄줄줄 흘러나오는 말글이라면 그저 덧없다. 마음을 숨기거나 가린 채 겉으로 치레하는 말글이라면 그냥 부질없다. 제 마음을 밝히는 시늉에 그친다든지, 보기좋게 꾸미려는 마음이라면, “마음을 담은 척하는 글”일 뿐이다.


  처음부터 책을 내려고 노리면서 쓰는 글이라면 으레 알맹이가 없다고 느낀다. 처음부터 남한테 보이려고 쓰는 글월이라면 껍데기를 덧씌우는 글치레에 얽매인다고 느낀다. 서로 마음을 나누려고 쓴 글을 모은 책이라면, 많이 팔리건 적게 팔리건 아름책이다. 저마다 마음을 밝히려고 주고받은 글월을 엮은 책이라면, 글쓴이 이름값이 있건 없건 사랑스럽다.


  집은 어떤 곳인가? 놀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곳인 집이고, 자기도 하고 먹기도 하는 곳인 집이다. 살림을 지으면서 살아가는 집이고, 느긋이 지내면서 삶을 즐기려는 집이다. 우리집은 나와 네가 저마다 나름대로 가꾸는 손길이 흐르는 터전이다. 이웃집은 나와 다른 누가 스스로 일구는 손빛이 밝은 터전이다. 오늘날에는 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손수 가꾸고 짓고 다듬는 살림집이 거의 사라진다. 오늘날에는 서울이나 시골 모두 ‘잿더미(대규모 아파트단지 또는 오피스텔 또는 빌라)’가 가득하다. 몸소 마음을 담아서 지내는 집이 아니라, 하루아침에 뚝딱뚝딱 똑같이 짜맞춘 잿더미를 ‘부동산’으로 목돈을 들여서 얻어서 몸을 둔다면, 이런 잿더미에서 살아가는 마음이란 무엇이겠는가?


  다 다른 집이 모여서 어느새 이루는 마을이 아닌, 하루아침에 똑같은 잿더미가 잔뜩 쌓인 데에서는 ‘마음’도 ‘손길’도 ‘눈빛’도 없게 마련이다. 이제는 누구나 글쓰기를 누리거나 즐길 수 있는데, 정작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마음을 다 다른 말씨·글씨로 지피는 이야기”는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거나 드물다. 다 다른 마음을 담아내는 말이나 글이라면, 꾸미지 않고 치레하지 않고 덧바르지 않는다. 이따금 띄어쓰기나 맞춤길이 틀릴 수 있되, 어렵거나 뒤트는 옮김말씨나 일본말씨가 안 춤춘다.


  글을 쓰려고 한다면, 우리 스스로 먼저 무엇을 어떻게 가꿀 노릇인지 헤아릴 노릇이다. 이 삶에서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가꿀는지 살필 노릇이다. 오늘 이곳에서 어떻게 사랑이라는 씨앗을 말과 글에 얹어서 ‘말씨·글씨’를 이루려 하는지 짚어야겠지. 우리는 아직 말을 말로 못 듣고, 글을 글로 못 읽기 일쑤이다. 제대로 못 보는 ‘닫힌눈’이거나 ‘감은눈’이다. 이제는 봄눈처럼 싹을 틔우고 활짝 열어젖히는 마음빛을 말글에 담을 때이지 않은가.


ㅍㄹㄴ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황효진·윤이나, 세미콜론, 2021)


MBTI로 따지자면 첫 자가 E인 인간이구나

→ 열여섯을 따지자면 처음이 ㅂ이구나

→ 마음을 따지자면 첫글이 ㅂ이구나

→ 밑꽃을 따지자면 첫글씨가 ㅂ이구나

→ 바탕을 따지자면 ㅂ인 사람이구나

10쪽


여러 가지 이유로 그때는 편지를 주고받지도, 결국 책을 만들지도 못했지만요

→ 여러 탓에 그때는 글월을 주고받지도, 끝내 책을 내지도 못했지만요

→ 여러 일이 있어 그때는 글을 주고받지도, 책을 내지도 못했지만요

12쪽


이것이 저를 둘러싼 현실이고 일상이며, 오늘의 삶입니다

→ 저를 둘러싼 삶이 이렇습니다

→ 제가 살아가는 나날이 이러합니다

→ 제 삶은 이렇습니다

→ 저는 오늘을 이렇게 삽니다

36쪽


이제야 다음 챕터로 갈 수 있겠네요

→ 이제야 다음으로 갈 수 있네요

→ 이제야 다음길로 갈 수 있네요

→ 이제 넘어갈 수 있네요

68쪽


내게 품위를 부여하는 일은 비극 속에서도 코미디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일이라고 믿는 제가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방법은, 이것이겠지요

→ 나는 서글퍼도 웃음씨를 생각하자고 여기기에 멋스럽겠지요

→ 아프더라도 하하 웃자고 생각하기에 빛나겠지요

→ 괴롭지만 넌덕을 부리자고 생각하니 사람이겠지요

86쪽


몇 가지 형용사로 수식되는 추상적인 노년의 여성이 되고 싶다는 말 대신에, 우리가 이름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이야기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나는 이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 몇 가지 그림씨로 가리키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말이 아닌, 우리가 이곳에 이름으로 있는 이야기로 낱낱이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 몇 가지 어떻씨로 나타내는 할매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우리가 서로 이름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로 차근차근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10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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