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의 학교
우리의 학교를 개교했다 → 우리 배움뜰을 열었다
엄마의 학교를 방문한다 → 엄마가 배운 곳을 찾는다
누구나 가정의 학교에서 자란다 → 누구나 집이란 익힘뜰에서 자란다
‘학교(學校)’는 “[교육] 일정한 목적·교과 과정·설비·제도 및 법규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 ≒ 학원”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의 + 학교’ 얼개라면 ‘-의’부터 털고서, ‘배움터·배움집·배움밭·배움판’이나 ‘배움마당·배움자리·배움뜰·배움뜨락’으로 풀어낼 만합니다. “배우는 마당·배우는 자리·배우는 판·배우는 밭”이라 해도 돼요. ‘마당·마루’로 나타낼 수 있고, ‘배움-’을 넣어 풀어내어도 됩니다. ‘익힘뜰·익힘뜨락·익힘집·익힘터’나 ‘익힘마당·익힘자리·익힘판·익힘밭’이라 해도 어울려요. “익히는 마당·익히는 자리·익히는 판·익히는 밭”이라 해도 되고요. ㅍㄹㄴ
아이들의 학교를 파괴했다는 의식이 전혀 없다는 것은 이중의 비극이다
→ 아이들이 놀 터전를 망가뜨렸다고는 조금도 안 느끼니 겹겹이 슬프다
→ 아이들이 자랄 배움터를 망쳤다고는 아예 못 여기니 곱으로 구슬프다
→ 아이들이 배울 자리를 무너뜨린 줄 조금도 모르니 또다시 안쓰럽다
→ 아이들이 뛰놀 곳을 부순 줄 하나도 모르니 다시금 안타깝다
→ 아이들이 배우는 곳을 끝장낸 줄 도무지 모르니 더욱 끔찍하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생각들》(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 2016) 46쪽
이 세상에서 ‘이지메’를 없애고 싶다면, 우선 현재의 학교 시스템을 없애야 합니다
→ 온누리에서 ‘따돌림’을 없애고 싶다면, 먼저 오늘날 배움터 얼개를 없애야 합니다
→ 이 땅에서 ‘따돌림’을 없애고 싶다면, 오늘날 배움터라는 틀부터 없애야 합니다
《어른 노릇 아이 노릇》(고미 타로/김혜정 옮김, 미래인, 2016) 69쪽
아이들에게 최고의 학교를 만들어 주고 싶은데
→ 아이들한테 훌륭한 배움터를 지어 주고 싶은데
→ 아이들한테 멋진 배움터를 열어 주고 싶은데
《흰곰 가족의 실내화 배달 소동》(오오데 유카코/김영주 옮김, 북스토리아이, 2017) 19쪽
대구의 한 학교에 막무가내로 밀어넣었다
→ 대구 어느 배움터에 밀어넣었다
→ 대구 어느 배움터에 그냥 넣었다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신이현, 더숲, 2022) 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