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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책길 걷기
2. 책은 무엇인가

 


  《샬롯의 거미줄》이라는 책을 쓴 엘윈 브룩스 화이트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뉴욕에 머물면서 쓴 《여기, 뉴욕》(숲속여우비,2014)라는 책이 있습니다. 1949년에 처음 나온 책이니 미국 뉴욕 모습을 1940년대 끝무렵 눈길로 바라보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머리말을 살피면, 1949년에 책을 펴낼 적에도 ‘달라진 뉴욕 모습’이 있어 글을 고쳐야 할까 망설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글을 쓰며 본 모습’과 ‘글을 쓴 뒤 달라진 모습’을 낱낱이 고칠 수 없다고 밝힙니다. “여기, 뉴욕”이라 했지만, 정작 책이 나온 뒤에는 ‘여기’에 ‘그것’이 없을 수 있어요. 이는 어디에서나 똑같습니다. 오늘날에는 재개발과 공사가 너무 잦아, 어제와 오늘 사이에도 수많은 일이 벌어집니다.


  제주섬을 나들이를 한 뒤 누군가 여행책을 내놓습니다. 여행책을 쓴 분은 이녁이 즐겁게 제주섬을 누빈 이야기를 적습니다. 제주섬을 거닐거나 자전거를 달리거나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모습을 글로 쓰고 사진으로 찍습니다. 나들이를 마친 뒤 글을 쓰고 책으로 내기까지 여러 달이 걸리곤 하며, 여러 해가 걸릴 수 있습니다. 이동안 제주섬 모습이 달라집니다. 책이 나올 때만 하더라도 이 모습은 이대로였으나, 책이 나오고 이레가 지난 뒤, 또는 달포가 지난 뒤, 또는 한두 해가 지난 뒤 다른 모습이 되곤 합니다.


  책은 무엇인가요. 책은 어떤 모습을 담는가요. 책에 적은 이야기는 어떤 모습을 어떻게 그리는가요.


  2000년에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은 1999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1999년에 일어난 일을 적은 책을 읽어도 머릿속으로 어렴풋하게 그릴 뿐입니다. 1990년에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은 1989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1989년에 일어난 일을 적은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흐릿하게 그릴 뿐입니다.


  지나간 삶자락을 적바림하는 책입니다. 지나간 역사를 말하고 지나간 문화를 밝힙니다. 지나간 삶자락은 오늘날 어떤 뜻이 될까요. 어떤 빛과 값으로 우리 마음에 스며들 만할까요.


  모든 책은 언제나 헌책이 됩니다. 2014년 1월 1일에 나온 책이라 하더라도 1월 2일부터는 ‘옛이야기’입니다. 2015년 1월 1일에 돌아보아도 옛이야기요, 2024년 1월 1일에 돌아보아도 옛이야기입니다. 책으로 나올 적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두 묵은 이야기라 할 만합니다.


  모든 책은 새로 태어나면서 언제나 묵은 이야기를 담는데, 막상 우리들은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느끼고 ‘새로운’ 눈길로 삶을 배우곤 합니다. 꼭 1500년대 이야기를 읽거나 기원전 이야기를 읽어야 ‘옛 것을 바탕으로 새 것을 익힌다’는 매무새가 되지 않아요. 어느 책을 읽든 늘 ‘옛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눈길과 생각’을 느끼거나 얻거나 익힙니다.


  왜냐하면, 책으로 읽는 이야기는 우리가 스스로 겪지 못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닌 이웃과 동무(남)가 겪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책이란 내 이웃과 동무가 살아오며 겪은 이야기입니다. 책읽기란 내 이웃과 동무가 살아오며 겪은 이야기를 읽는 일입니다. 책읽기를 하면서 내 이웃과 동무가 살아오며 겪은 이야기를 눈여겨보고 귀여겨듣습니다.


  내 삶은? 내 삶은 스스로 글을 쓰지 않아도 내 마음과 몸에 아로새겨요. 가만히 지난날을 떠올리면, 스스로 ‘내 삶 읽기’가 됩니다. 어제 무엇을 했고 조금 앞서 무엇을 했는가 떠올려 보셔요. 차근차근 걸어온 내 삶을 돌아볼 적에는 나 스스로 지난날 어떻게 했는가를 하나씩 그리면서 ‘내 삶을 스스로 새롭게 읽어 오늘 누리는 하루를 새삼스레 바라볼’ 수 있어요.


  스스로 어제를 되짚을 적에도 책읽기입니다. 마음속에 내 지난날 삶을 찬찬히 아로새겼으면, 내 마음속에는 ‘내 삶을 적은 책’이 알뜰살뜰 있는 셈입니다. 종이책에 얹은 이야기는 내 이웃과 동무가 살아온 나날을 적은 셈입니다.


  책은 무엇인가 하면 삶입니다. 자서전처럼 손수 내 삶을 글로 옮긴 책이 있습니다. 자서전이 아닌 책은 이웃과 동무가 저마다 이녁 삶을 글로 옮겼지요. 책은 삶이기에, 책을 읽으면 언제나 삶을 읽습니다. 책을 쓰는 사람은 삶을 씁니다. 삶을 글로 쓰는 까닭은, 내 삶을 남한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 삶을 글로 옮기면서 이웃과 동무하고 어깨를 겯고 함께 나아갈 길을 찾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 겪은 삶을 글로 옮겨서 이웃과 동무한테 알립니다. 서로 삶을 한결 깊이 들여다봅니다. 저마다 겪은 새로운 삶을 차곡차곡 나눕니다. 슬기롭게 살아갈 길을 책(삶)에서 얻습니다. 종이책을 읽을 적에도 슬기롭게 살아갈 길을 얻고, 말로 이야기꽃을 피울 적에도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얻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을 차분히 되짚을 적에도 사랑스럽게 살아갈 길을 얻어요.


  엊그제 이웃한테서 《학교 참 멋지다》(북뱅크,2014)라는 그림책을 선물로 받았어요. 우리 집 아이들한테 읽히라는 뜻에서 이웃이 선물로 보내 주었습니다. ‘학교가 얼마나 멋지다고 책이름을 이렇게 붙였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 그림책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글을 쓰고 일론 비클란드 님이 그림을 넣었어요. 스웨덴 아이들 삶이 환히 드러나는 빛깔 고운 그림책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오빠가 어린 동생과 함께 학교에 가서 겪은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어린 동생은 오빠 혼자 다니는 학교를 늘 궁금해 했고, 오빠는 아무렇지 않게 동생을 학교로 데리고 가서 담임교사와 동무한테 동생을 소개해요. 동생은 오빠 곁에서 하루를 지내며 학교란 어떤 곳인지 지켜봅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보았어요. 초등학교 1학년인 오빠나 형이나 누나나 언니가 어린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오면, 담임교사와 동무들은 어떤 모습일까 퍽 궁금해요. 교칙 위반이라고 하려나요? 고등학교 1학년인 오빠나 형이나 누나나 언니가 꽤 어린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오면,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요. 이때에도 어린 동생은 “학교 참 멋지다” 하고 느낄 만할까요? 교사와 동무는 아이한테 학교 소개를 찬찬히 하면서 수업도 함께 받도록 할 수 있을까요?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이웃나라에서 태어난 책을 즐겁게 만납니다. 이웃과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삶을 일구면서 사랑을 속삭이는지 생각에 잠겨 봅니다. 4347.3.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푸름이와 함께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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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책길 걷기
1. 책을 왜 읽는가

 


  ‘책을 왜 읽는가?’ 하고 스스로 묻습니다. 낱말을 살짝 바꾸어 여러모로 헤아려 봅니다. ‘학교를 왜 다니는가? 밥을 왜 먹는가? 일을 왜 하는가? 사랑을 왜 나누는가? 돈을 왜 버는가? 꿈을 왜 꾸는가? 노래를 왜 부르는가? 길을 왜 걷는가? 씨앗을 왜 심는가? 숨을 왜 쉬는가? 아이를 왜 낳는가? 삶을 왜 가꾸는가? 글을 왜 쓰는가?’


  책을 왜 읽는지 알고 싶다면, 우리 삶을 여러모로 바라보면 됩니다. 책을 왜 읽는가 느끼고 싶으면, 우리 삶을 깊고 넓게 살펴보면 됩니다.


  학교를 왜 다닐까요? 졸업장을 따려고 다닐까요. 초등학교는 중학교에 가려고 다니는가요. 중학교는 고등학교에 가려고 다니는가요. 고등학교는 대학교에 가려고 다니는가요. 그러면 대학교는 왜 다닐까요. 대학교를 마치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밥을 왜 먹을까요? 살려고 먹는가요, 죽지 않으려고 먹는가요. 목숨을 이으면서 무엇가 하고 싶으니 밥을 먹는가요. 그저 주니까 먹는가요. 학교에서는 급식이 나오고 집에서는 어머니가 차려 주니 끼니를 때울 뿐인가요.


  하나하나 스스로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책을 읽는 까닭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으면, 학교에 다니는 까닭이나 돈을 버는 까닭이나 사랑을 나누는 까닭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어요. 책을 읽는 까닭을 곰곰이 깨우칠 수 있으면, 노래를 부르는 까닭이나 길을 걷는 까닭이나 씨앗을 심는 까닭을 찬찬히 깨우칠 수 있어요.


  아이를 왜 낳는지 깨닫지 못하면 책을 왜 읽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삶을 왜 가꾸는지 깨닫지 못하면 책을 왜 읽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숨쉬기와 책읽기는 서로 같습니다. 글쓰기와 책읽기는 서로 같습니다. 밥하기와 책읽기도 서로 같고, 설거지와 책읽기도 서로 같아요.


  여린 동무를 따돌리는 짓도 책읽기와 같습니다. 힘센 동무가 해코지하는 여린 동무를 못 본 척하는 모습도 책읽기와 같습니다. 먹고 남은 과자 봉지를 아무 데나 몰래 버리는 짓도 책읽기와 같습니다. 손빨래를 하거나 빨래기계에 맡기는 살림살이도 책읽기와 같습니다.


  책을 읽을 적에는 책에 깃든 삶을 읽습니다. 소설책을 읽든 인문책을 읽든, 우리는 누구나 책에 깃든 삶을 읽습니다. 만화책을 읽든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든, 우리는 늘 책에 서린 삶을 읽습니다.


  삶을 재미나게 그린 책을 읽기도 하고, 삶을 깊이 파헤친 책을 읽기도 합니다. 삶을 아프게 그린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미처 생각조차 못하던 삶을 그린 책을 읽으며 크게 놀라기도 합니다.


  어느 책이든 삶을 담습니다. 삶을 담지 않은 책은 없습니다. 다 다른 삶을 담은 책입니다. 좋거나 나쁘지 않고, 옳거나 그르지 않습니다. 이런 삶은 이 책에 깃들고 저런 삶은 저 책에 감돌아요. 아마 어떤 이는 거짓말을 책에 쓸 수 있을 테지요. 어떤 이는 거짓말인 줄 못 느끼면서 책을 읽을 수 있을 테지요. 어떤 이는 거짓말을 참말인 줄 여기면서 책을 읽을 수 있을 테고요. 어떤 이는 참말만 책에 쓸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참말을 참말로 못 받아들일 수 있고, 어떤 이는 참말을 낱낱이 받아들일 수 있어요.


  책을 읽는 모습은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과 같습니다. 참말과 거짓말을 슬기롭게 알아채는 사람은 스스로 슬기롭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참말과 거짓말을 제대로 못 알아채는 사람은 스스로 어설프거나 어수룩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책을 왜 읽을까요? 씨앗을 왜 심을까요? 콩을 심은 자리에 콩이 나고 팥을 심은 자리에 팥이 납니다. 콩을 심은 자리에 팥이 나지 않습니다. 팥을 심었으니 콩이 나지 않습니다. 참말을 담은 책을 읽으면서 참말을 익힙니다. 거짓말을 적은 책을 읽으면서 거짓말이 머릿속에 스며듭니다. 스스로 읽는 책에 따라 스스로 삶을 가꿉니다. 스스로 손에 쥐는 책에 따라 스스로 삶이 바뀝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집과 마을에서 늘 따사롭고 살가운 말을 듣는 아이가 있고, 집과 마을에서 늘 거칠고 아픈 말을 듣는 아이가 있어요. 두 아이는 저마다 다른 말이 익숙할 테지요. 두 아이는 저 스스로 모르게 여느 때에 늘 듣던 말투대로 말을 꺼내겠지요.


  학교를 다니며 시험공부에 길들거나 익숙하다면, 스스로 이웃이나 동무를 ‘숫자’나 ‘등급’으로 바라보는 눈길에 길들거나 익숙하기 마련입니다. 학교에서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는 넋을 늘 배운다면, 스스로 이웃이나 동무를 따사롭게 바라보고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치고받으며 죽이는 이야기 흐르는 전쟁영화를 많이 보면, 내 마음속에는 전쟁 이야기가 늘 감돕니다.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이야기 흐르는 만화를 많이 보면, 내 가슴속에는 사랑 어린 이야기가 늘 서립니다.


  역사책을 즐겨읽는 사람은 역사 이야기가 늘 마음속에 있어요. 환경책을 즐겨읽는 사람은 환경을 가꾸고 돌보는 이야기가 늘 마음속에 있어요. 연예인 소식을 인터넷으로 찾아서 읽는 사람은 연예인 이야기를 두루 꿸 테지요. 운동경기 소식을 빠짐없이 챙겨서 읽는 사람은 운동경기 이야기라면 두루 꿰겠지요.


  책읽기는 책읽기이면서 삶읽기입니다. 어느 책을 왜 골라서 읽느냐에 따라 어느 삶을 어떻게 살피며 읽느냐가 달라집니다. 책을 스스로 골라서 읽듯이,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을 스스로 골라서 읽습니다. 책을 스스로 살펴서 읽듯이, 이웃과 동무를 바라보는 눈썰미와 눈매가 달라집니다. 책을 스스로 찾아서 읽듯이, 꿈과 삶을 마주하는 몸가짐이 거듭납니다.


  졸업장을 따려고 학교를 다니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식을 얻으려고 책을 읽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돈을 벌려고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이가 찼으니 시집장가를 가서 이냥저냥 아이를 낳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와 달리, 마음 가득 뜻을 품고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졸업장도 학문도 아닌 꿈과 사랑을 키우려고 학교를 다니면서 마음을 살찌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츠모토 코유메 님이 그린 만화책 《그린 핑거》(학산문화사 펴냄)가 있어요. ‘그린 핑거’는 ‘푸른 손가락’을 가리킵니다. ‘푸른 손가락’은 흙을 살찌워 풀과 나무를 살리는 손길을 나타냅니다. 만화책 《그린 핑거》를 읽으면,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 새롭게 눈뜨는 이야기가 흘러요. 원예나 연예에 눈뜨는 이야기가 아니라, 흙과 풀과 나무를 사랑으로 바라보면서 눈뜨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푸른 손가락이 흙과 풀과 나무를 사랑스레 살린다면, 이 푸른 손가락으로 책을 읽을 적에는 꿈과 삶과 빛을 사랑스레 살릴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책을 왜 읽는가?’ 하고 묻는다면,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아름답게 살고 싶어서요, 즐겁게 살고 싶어서요, 착하게 살고 싶어서요, 참답게 살고 싶어서요, 웃고 노래하면서 살고 싶어서요. 4347.3.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푸른삶 푸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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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삶에 푸른책

 


  한국말사전에는 ‘푸름이’라는 낱말은 없습니다. ‘청소년’이라는 낱말만 있습니다. ‘청소년’이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나오지만, ‘청소녀’라는 낱말은 안 나옵니다. ‘청소년’이라는 낱말이 머스마만 가리키지 않으나, 아무래도 ‘소년’이라는 낱말은 머스마만 가리킵니다. 흔히 쓰는 ‘청소년’이지만, 곰곰이 살피면 그리 쓸 만하지 않다 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푸름이’라는 낱말을 좋아하고 즐겨씁니다.


  어린이는 어린 사람을 가리킵니다. 푸름이는 푸른 사람을 가리킵니다. 몸이 푸르고 마음이 푸르기에 푸름이입니다. 사랑이 푸르고 삶이 푸르니 푸름이입니다. 다만, 오늘날 거의 모든 푸름이는 푸른 몸과 마음으로 지내지 못합니다. 푸름이 아닌 ‘예비 입시생’이나 ‘입시생’입니다. 거의 모든 푸름이가 대학바라기에 목을 매달아야 합니다.


  저는 전라남도 고흥이라고 하는 시골에서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갑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인천이지만, 충청북도 충주 끝자락 멧골마을에서 여러 해 지낸 뒤 고흥 시골마을에 뿌리를 내렸어요. 우리 집 아이들이 푸른 숨결 마시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뜻이고, 저와 곁님 두 사람도 푸른 숨결 먹으면서 즐겁게 일하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 네 식구가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 깃든 까닭 가운데 하나는, 두 아이를 앞으로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뜻이 있으며, 두 아이가 학교에 굳이 다니지 않으면서도 푸른 넋이 되고 푸른 사랑이 되어 푸른 삶을 가꿀 수 있기를 바라는 뜻이 있기도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만 마친 학력입니다. 우리 곁님은 중학교만 마친 학력입니다. 더 꼼꼼히 말하자면, 저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다섯 학기를 다닌 뒤 스스로 그만두었습니다. 우리 곁님은 고등학교를 두 해쯤 다니다가 스스로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대학교 문턱을 밟고 첫 학기를 듣던 날부터 우리 사회에서 대학교가 제구실을 안 하거나 못 한다고 느꼈습니다. 우리 곁님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대학교뿐 아니라 고등학교도 중학교도 초등학교도 모두 제구실을 안 하거나 못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좀 늦게 알아챘고, 곁님은 일찌감치 알아챘습니다. 이런 얼거리를 알아채도 학교는 그냥 다녀서 졸업장을 거머쥘 수 있지만, 뒤틀리거나 비틀린 학교를 끝까지 마쳐서 졸업장을 가져야 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질없는 졸업장을 내밀면서 일자리를 얻고 싶지 않았어요. 덧없는 졸업장으로 내 얼굴에 껍데기를 씌우고 싶지 않았어요.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어 졸업장을 버렸습니다. 사랑스럽게 꿈꾸고 싶어 졸업장 아닌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다닐 적에도 신문배달을 하며 먹고살았는데, 대학교를 그만둔 뒤에는 배달 구역을 늘려 오로지 신문배달로 살림을 꾸렸습니다. 곁님은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에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습니다. 중졸 학력을 받아줄 만한 일자리는 거의 없었으리라 생각해요. 저 또한 고졸 학력을 받아주는 일자리는 참 적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고졸 학력으로 출판사에 일자리를 얻었어요. 이때가 1999년입니다. 2001년부터는 고졸 학력이면서 ‘한국말사전 만드는 기획편집자’가 되었습니다. 졸업장으로만 따진다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저를 받아준 출판사에서는 졸업장이 아닌 마음을 바라보아 주었어요. 학력이나 경력이 아닌 제 마음속에 있는 빛과 꿈을 읽어 주었어요. 그래서 저는 2001년 1월부터 2003년 8월까지 한국말사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2003년 9월부터는 이오덕 선생님이 남긴 책과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학력도 경력도 없던 제 삶이니, 학맥도 연줄도 돈도 없는데, 제 마음빛을 읽고 믿는 분들이 있기에 무척 뜻있고 값있으며 아름다운 일을 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신문배달 일을 하며 푼푼이 아끼고 모은 돈으로 꾸준히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출판사에 들어간 뒤에는 한 달 일삯 가운데 1/3을 책값으로 썼고 2/3는 적금을 부었어요.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기도 하고, 새책방이나 헌책방에 가서 서서 읽기도 했지만, 오래도록 되새기고 싶은 책은 언제나 허리띠 졸라매어 스스로 장만해서 밑줄을 그으면서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한 해에 100권은 읽자고 다짐했고, 고등학교를 마친 첫 해에는 한 해에 500권은 읽자고 다짐했어요.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고 그만둘 무렵에는 한 해에 1000권은 읽자고 다짐했으며, 출판사에 들어가서 일할 즈음에는 한 해에 2000권은 읽자고 다짐했습니다. 이 다짐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잇습니다.


  한 해에 2000권을 장만해서 읽는 일이란 어렵다면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생각을 바꾸면 즐겁습니다. 즐겁게 삶을 배우면서 사랑을 익히겠다는 마음가짐이라면, 한 해에 2000권 아닌 3000권이나 5000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한 해에 1만 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숫자란 대수롭지 않습니다. 한 해에 2000권을 읽는대서 한 해에 1999권을 읽는 사람보다 대단하지 않습니다. 한 해에 2000권을 읽기에 한 해에 2001권을 읽는 사람보다 떨어지지 않습니다. 더 헤아려 보셔요. 한 해에 1999권을 읽는 사람은 한 해에 1998권을 읽는 사람보다 대단할까요? 한 해에 1998권을 읽는 사람은 한 해에 1997권을 읽는 사람보다 대단한가요? 한 해에 1997권을 읽는 사람은 한 해에 1996권을 읽는 사람보다 대단하나요? 더 더 헤아려 보셔요. 한 해에 100권을 읽는 사람은 한 해에 99권을 읽는 사람보다 대단할는지요? 한 해에 10권을 읽는 사람은 한 해에 9권을 읽는 사람보다 대단하다 할 만한가요?


  한 해에 0권을 읽든 한 해에 2000권을 읽든 모두 똑같습니다. 책을 읽은 권수는 아무것이 아닙니다. 한 해에 2000권이 아닌 2만 권을 읽었다 하더라도 ‘책만 읽은 삶’이라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까닭은 ‘책만 읽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을 읽고 삶을 가꾸며 삶을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다듬은 아름다운 눈빛과 눈썰미와 눈높이와 눈매로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아끼며 내 삶자리를 돌보는 빛을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읽기를 하는 까닭은 삶읽기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읽고 내 이웃 삶을 읽습니다.


  푸름이한테 들려주고 싶은 책은 바로 삶입니다. 사랑이고 꿈입니다. 노래이고 춤입니다. 웃음이고 이야기입니다. 푸름이는 푸른 삶을 가꾸도록 돕는 푸른 책을 읽을 때에 싱그러이 웃고 노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푸른 삶을 누리도록 이끄는 푸른 책을 사귀면서 아름답게 춤추고 꿈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푸름이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쓰면서 몇 가지 새로운 말을 쓸 생각입니다. 한국말사전에 안 나오는 ‘푸름이’라는 낱말을 쓰듯이, 푸름이가 읽을 예쁜 책을 가리켜 ‘푸른책’이라고 이름을 붙이려 합니다. 푸른책을 읽는 푸름이는 ‘푸른삶’을 가꾼다고 말하려 합니다. 책을 읽는 길은 ‘책길’이라 가리키고, 책을 읽는 삶은 ‘책삶’이라 가리키며, 책으로 이루어진 숲은 ‘책숲’이라 가리키려 해요. ‘책읽기’와 맞물려 ‘삶읽기’라는 말을 쓰려 하고, ‘글읽기’와 ‘글쓰기’라든지, ‘삶빛’과 ‘숲빛’과 ‘마음빛’처럼, 스스로 마음을 아끼고 보살피는 어여쁜 말을 차근차근 길어올리려 합니다. 즐거이 노래하면서 ‘책말’을 읽으셔요. 마음을 살찌우는 ‘책밥’을 배불리 먹으면서 이웃하고 ‘책사랑’을 나누시기를 빌어요.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마음이 피어나는 자리에, 사랑스럽고 즐거우며 맑은 꿈이 몽실몽실 자라리라 믿습니다. 4347.3.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푸른삶 푸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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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새롭게  《푸른삶 푸른책》 이야기를 씁니다.

《푸른삶 푸른책》 이야기는 푸름이(청소년)하고 즐거이 나누고 싶은

책이야기입니다.

 

입시나 교육이 아닌, 삶을 즐기고 누리는 이야기를 담는

책과 노래를 글 하나로 나누고 싶어요.

 

모두 57가지 이야기를

앞으로 57주에 걸쳐서

차근차근 쓰려 합니다.

주마다 한 가지 이야기를 씩씩하게 쓰자고 다짐합니다.

 

아무쪼록 앞으로 57주 동안

이 책이야기를 꾸준히 띄우면서

즐거운 책편지가 될 수 있기를 빌어요.

 

반갑게 맞이해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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