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꽃 바라보는 마음



  아이들은 서로 사이좋게 놀기를 바랍니다. 서로 싸우기를 바라는 아이는 없습니다. 어른들은 곧잘 목소리를 높이면서 싸웁니다. 어른들은 서로 사이좋게 바라는 마음이 제대로 안 드러나기 일쑤입니다. 어른들은 자꾸 금을 긋습니다. 어른들은 자꾸 이쪽과 저쪽을 가릅니다. 이쪽에 있어야 ‘우리’가 되고, 저쪽에 있으면 ‘남’이 되고 맙니다.


  어른들은 남녘과 북녘 사이에 금을 긋습니다. 금을 그을 뿐 아니라 쇠가시울타리를 놓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금을 모르고, 금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북녘이건 남녘이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북녘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과 일본과 러시아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모두 똑같은 동무요 이웃이라고 여깁니다.


  새는 금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어떤 새도 한국에만 살지 않습니다. 어떤 새이든 쇠가시울타리쯤이야 가볍게 넘나듭니다. 들짐승도 울타리는 가볍게 뛰어넘습니다. 때로는 땅밑으로 파고 넘어갑니다. 바다에서도 물고기는 금을 따지지 않아요. 일본 바다나 한국 바다를 가려서 사는 바닷물고기는 없습니다.


  남녘에서 지도로 보면 전라남도와 경상남도가 갈립니다. 고흥군과 보성군이 갈립니다. 그러나, 지도에 있는 금은 그저 지도에만 있을 뿐입니다. 이 땅에는 없습니다.


  꽃은 네 땅에서만 자라지 않습니다. 꽃은 내 땅에서만 피지 않습니다. 꽃은 씨앗이 떨어지는 곳에서 자라서 핍니다. 이쪽 꽃이 더 곱지 않고, 저쪽 꽃이 더 밉지 않습니다. 함께 아름답고, 서로 즐거우며, 다 같이 사랑스럽습니다.


  숲꽃을 바라봅니다. 그예 활짝 피어나는 숲꽃을 바라봅니다. 어른들이 골짜기를 뒤집어엎은 뒤 바닥에 시멘트를 들이붓느라 한동안 뿌리째 뽑혀 사라진 숲꽃이지만, 바보스러운 어른들이 물러나고 몇 해가 지나니 다시 피어나는 숲꽃을 바라봅니다. 짓궂은 관광객이 지나가면 숲꽃은 그만 목아지가 꺾이거나 뿌리째 파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숲꽃 한 송이 피어난 둘레에 다른 씨앗이 조용히 잠들면서 기다리리라 생각해요. 이 땅에 아름다운 노래가 드리우고, 이 땅에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흐르기를 기다립니다. 서로 아끼면서 함께 보듬는 어른들이 차츰 늘어나기를 기다립니다. 4347.11.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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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장만하려는 마음



  내 넋이 한결 즐거우면서 따스하고 아름답게 자라기를 바라면서 책을 장만합니다. 책 한 권을 장만할 적에 아무 책이나 장만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살찌울 만한 책을 살핍니다. 값이 싸다고 해서 아무 책이나 장만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 들던 어느 책을 어느 때에 퍽 싸게 판다면 장만할 수 있지만, 내가 장만할 책은 값으로 따지지 않습니다. 책에 깃든 이야기로 헤아립니다.


  내 몸이 오늘 하루 기쁘게 기운을 내어 내가 바라는 일과 놀이를 씩씩하게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밥을 짓습니다. 그래서 밥 한 그릇을 차릴 적에 아무렇게나 짓지 않습니다. 가장 넉넉하고 푸지게 누릴 수 있는 밥을 짓습니다.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면서 밥냄비에 불을 넣습니다. 조용조용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배추를 썹니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헤아리면서 그릇과 접시를 소담스럽게 밥상에 올립니다.


  별을 올려다봅니다. 나무를 바라봅니다. 풀잎을 쓰다듬습니다. 이 가을에 새로 돋는 풀잎에는 어떤 기운이 서리나 하고 생각하면서 한 장 두 장 석 장 넉 장 뜯습니다. 가을에 새로 돋은 풀잎은 내 몸에 어떤 숨결로 스며들까 하고 생각하면서 칼로 송송 썰어서 살살 무칩니다. 늦가을 찬바람에도 씩씩하게 돋는 풀처럼, 늦가을 찬바람쯤 기쁘게 맞을 수 있는 몸이 될 테지요. 늦가을 눈부신 별빛과 포근한 햇볕처럼 빙긋 웃는 숨결이 될 테지요.


  내가 즐겁게 일구는 삶이 내 이웃한테 노래가 되어 퍼집니다. 내 이웃이 기쁘게 가꾸는 삶이 나한테 노래가 되어 찾아옵니다. 가는 노래는 오는 노래가 되고, 가는 사랑은 오는 사랑이 됩니다. 책상맡에 놓은 책 한 권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오늘 내가 읽는 책은 머잖아 아이들이 읽는 책이 됩니다. 4347.11.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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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마음 2



  〈어네스트와 셀레스틴(Ernest & Celestine,2012)〉이라는 만화영화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알아듣기 쉽게 〈곰과 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벵상이라는 분이 빚은 그림책 이야기를 만화영화로 새롭게 일군 작품입니다. 이 만화영화를 보면 첫머리에 아주 뜻있는 대목이 흐릅니다. 작은 쥐 ‘셀레스틴’은 이녁 꿈을 그림으로 그려요. 이녁 꿈은 ‘쥐와 곰이 서로 사이좋은 동무로 웃고 지내는 삶’입니다.


  작은 쥐 셀레스틴은 이녁 스스로 그린 그림을 늘 알뜰히 건사합니다. 늘 생각합니다. 늘 마음으로 그립니다. 그리고, 이 그림대로 꿈을 이루지요.


  그림을 그리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바로, 삶을 그리는 마음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마음은 무엇이겠어요? 바로, 사랑을 그리는 마음이에요. 그림을 그리는 마음은 무엇이라 할까요? 바로, 이야기를 그리고, 꿈을 그리며, 노래를 그리는 마음입니다.


  그림은 먼저 종이에 그립니다. 종이가 없으면 흙바닥에 그리면 됩니다. 흙바닥조차 없으면 마음속에 그리지요. 스스로 이루고 싶은 삶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스스로 이루려는 삶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이러고 나서 그림을 바라봅니다.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온마음을 바쳐서 내 그림을 내가 바라봅니다.


  나는 내가 그린 그림대로 삶을 이룹니다. 나는 내가 그리려는 그림대로 사랑을 찾고, 꿈을 마주하며, 이야기와 웃음과 노래와 춤 모두를 누려요. 아름답게 그림을 그리기에 아름답게 말합니다. 따스하게 그림을 그리기에 따스하게 이웃과 어깨동무를 합니다. 기쁘게 그림을 그리기에 기쁘게 밥을 지어요. 푸르게 그림을 그리기에 우리 보금자리를 너른 숲으로 푸르게 가꿉니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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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11-12 11:09   좋아요 0 | URL
아기자기 넘 귀여워요

숲노래 2014-11-12 11:11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 님도 아이와 함께 그림 그리셔요
 



지켜보는 마음



  네 살 작은아이가 요 달포쯤 앞서부터 밥상맡에서 새로운 놀이 하나를 떠올려서 즐깁니다. 무슨 놀이인가 하면, 밥숟가락을 국그릇에 살포시 놓고 보글보글 가라앉도록 하는 놀이입니다. 밥을 먹다가 퍽 오랫동안 이 놀이를 하기에, 밥 좀 먹으라고 이르다가, 문득 내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그래, 나도 이 나이만 할 적에 이렇게 놀았고, 이 나이뿐 아니라 열 살 언저리에도 이런 놀이를 했다고 떠올립니다.


  밥숟가락을 국그릇에 살짝 놓으면 숟가락이 국물에 뜹니다. 이때 나는 내 밥숟가락을 숟가락 아닌 배로 여깁니다. 수저 손잡이를 살살 밀면 그만 꼬르륵 잠기는데, 이때에 배가 바닷속에 잠긴다고 여깁니다. 이런 놀이를 한참 합니다.


  밥상맡에서 으레 이 놀이를 하는 작은아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그래, 이 아이는 저를 지켜보아 주기를 바라는구나 싶어요. 밥상맡이니 밥을 먹으라고 이르거나 다그치거나 이끌 수 있어요. 그런데, 밥상맡에서 얼마든지 밥놀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우뚝 멈추어 개미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본다든지, 사마귀가 길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요. 가야 할 곳에 빨리 가야 할 수 있지만, 가야 할 곳에 가더라도 1분이나 10분쯤 말미를 내어 찬찬히 둘레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작은아이 ‘밥놀이’ 또는 ‘수저놀이’를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사진을 한 장 찍기로 합니다. 작은아이 놀이를 두고두고 건사하자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아이 놀이를 지켜보면서 내 어릴 적 놀이를 조용히 그리자는 생각이 퍼뜩 스칩니다. 4347.1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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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햇살 쬐는 마음



  가을이 깊을수록 해가 짧습니다. 가을이 무르익어 겨울로 접어들면 그야말로 해는 더 짧습니다. 아침이 늦고 저녁이 짧습니다. 바야흐로 일을 쉬고 몸을 포근히 눕히는 철입니다. 한두 달 앞서까지만 해도 느즈막한 낮이라고 할 만한 때이지만, 이제는 이슥한 저녁입니다. 저녁해는 늦가을일수록 더 짧고, 짧은 저녁해가 기울어 멧자락 너머로 사라지면 벌써 쌀쌀한 바람이 마당 가득 돌아다닙니다.


  멧자락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저녁해를 보면서 빨래를 걷습니다. 밥을 끓이고 국을 덥힙니다. 마루에서 햇살조각 받으면서 노는 아이는 마룻바닥을 콩콩 굴리면서 웃습니다.


  우리는 모두 해와 함께 움직입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눕습니다. 해가 쨍쨍 내리쬘 적에 까르르 노래하면서 뛰고, 해가 아스라히 사라지면 조용히 눈을 감고는 꿈을 꿉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해님 기운이 가득합니다. 해님과 같이 따스하고, 해님과 같이 고르며, 해님과 같이 사랑스럽습니다. 저녁햇살을 쬐면서 저녁밥을 짓다가, 저녁놀이를 즐기는 저녁아이 몸짓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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