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14.


《안녕, 내 마음속 유니콘》

 브라이오니 메이 스미스 글·그림/김동언 옮김, 상상의힘, 2021.2.25.



어제부터 날씨가 풀린다. 날씨가 풀리고 나면 언제 찬바람·찬비가 갈마들었느냐는 듯이 하늘이 파랗고 바람이 잠든다. 구름 한 조각조차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하늘도 참 장난꾸러기인걸.” 하고 속삭인다. 장난꾸러기인 하늘이라. 가만히 보면 하늘·바람·비·해 모두 개구쟁이라 할 만하다. 풀·꽃·나무도, 개구리·새·뱀도, 잠자리·나비·벌도 언제나 개구쟁이라고 느낀다. 개미·풀벌레·지네도 개구쟁이일 테지. 《안녕, 내 마음속 유니콘》을 읽었다. 그림책에만 담는 이야기로 여길 이웃도 있고, 뿔말(유니콘)이란 이 별에서 언제나 조용히 함께 살아가는 숨결이라고 여길 이웃도 있겠지. 어떻게 여기든 대수롭지 않다. 이 별에 없다고 여긴다고 해서 ‘이 별에 있는 숨결’이 사라지거나 없지 않으니까. 하얀 뿔말도 아름답고, 공벌레나 쥐며느리도 아름답다. 하얀 뿔말도 눈부시고 땅강아지나 길앞잡이도 눈부시다. 곁에서 피어나는 숨결을 바라볼 때에 먼발치에서 날아오르는 숨결을 알아본다. 둘레에서 자라나는 숨빛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저 먼먼 고장에서 날갯짓하는 숨빛을 못 보기 마련이다. 빛은 너머에만 있지 않다. 모든 사람이 빛이다. 저놈이 못된짓을 일삼더라도 저놈 마음밭에서 숨죽이며 우는 빛씨앗을 볼 수 있기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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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13.


《검은 무엇》

 레자 달반드 글·그림/김시형 옮김, 분홍고래, 2020.6.10.



파란하늘이 깊고 넓다. 파란하늘을 가만히 보면 배고플 틈이 없다. 배고플 일이 없다. 곰곰이 먼먼 옛날하고 오늘날을 돌아보면, 누구나 논밭이 드넓을 까닭이 없다. 조그마한 집에 조그마한 밭뙈기에 조그마한 숲에 조그마한 샘물에 조그마한 아이들하고 오순도순 지내면 넉넉히 즐겁다. 즐거이 꾸리는 삶에는 돈이 쓸모없다. 나라(정부)는 이 대목을 꿰뚫고서 사람들을 살살 꾀었다. 돈이 있으면 배부를 만하다고 꼬드겨서 손수짓기(자급자족) 하던 사람들을 수렁에 가두었다. 서울 잿빛집(아파트)가 허벌나게 비싼데, 그 비싼값을 치르느라 삶을 잊어야 하는 서울이웃이 많다. 서울뿐인가. 부산도 대구도 인천도 집값은 미쳤다. 전주뿐 아니라 고흥 시골조차 읍내에 새로 때려짓는 잿빛집이 3억이 넘는다. 제 땅을 누리는 길이 아닌, 보금자리를 돌보는 살림하고 동떨어진, 미친길을 나라가 앞장서서 북돋운다. 《검은 무엇》을 조용히 읽었다. 숲에 문득 찾아온 ‘검은 무엇’은 숲을 새롭게 살리는 밑싹이 될 테지. 작은아이하고 하늘바라기를 하다가 매 둘이 동글춤을 짓는 모습을 보았다. 상주 이웃님이 찾아오셔서 유자를 한 꾸러미 따서 드렸다. 손에 유자내음이 밴다. ‘우리말 길잡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글을 새로 쓰기로 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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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12.


《우리들의 사랑가》

 김해화 글, 창작과비평사, 1991.6.5.



겨울을 앞둔 자전거이지만 시원시원 느슨하게 달린다. 요새는 이따금 두 손을 놓고 천천히 발을 굴러 보기도 한다. 열 살 때였지 싶은데, 두 손 놓고 타기를 해보고 싶어서 따라하다가 크게 엎어지며 자전거도 얼굴도 팔꿈치도 무릎도 온통 박살난 적이 있다. 그때 얼마나 오래 절뚝거리며 애먹었을까. 어머니도 화들짝 놀라셨을 테고 언니도 동생이란 놈이 또 무슨 일을 저질렀구나 하고 여겼다. 《우리들의 사랑가》를 오랜만에 되읽었다. 몸을 써서 집짓는 일을 하던 글님이 이 삶길을 고스란히 옮긴 노래는 사랑스럽지만, ‘노동시’를 쓰겠다고 생각하면서 주먹을 불끈 쥔 글은 서툴 뿐 아니라 목소리만 높다. 신동엽·김남주도 고정희·김수영도 섣불리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저 삶을 사랑하는 숨결로 노래했다. 목소리만 앞세운다면 노래도 아니지만 글도 아니다. 들길을 걸어 보라. 하늘빛을 읽어 보라. 별빛을 품어 보라. 어느 들이고 하늘이고 별이 저희 이름이나 소리를 앞세우는가? 글은 재주로 쓰지 않는다. 글재주는 허깨비이다. 말솜씨가 좋은 사람이 참 많고, 말솜씨를 키우는 길잡이도 많다만, 말솜씨는 도깨비이다. 글도 말도 오롯이 사랑으로 펼 적에만 즐겁고 아름다우며 반갑다. 해님도 비님도 재주나 솜씨를 안 부린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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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11.


《방귀 사전》

 스틴 드레이어·헤나 드레이어 글, 마리아 버크만 그림/최지영 옮김, 노란돼지, 2021.6.25.



빨래터를 치웠다. 큰아이가 거들었다. 마을에서는 이 오랜 샘터·빨래터를 까뒤집어 새로 잿빛(시멘트)를 들이부을 생각인 듯싶다. 참 부질없는 짓인 줄 모른다. 읍내 다녀올 일이 있어 긴옷을 올들어 처음으로 걸친다. 깡동옷을 입으면 이 늦가을에 안 춥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 좀 성가시다. 시골버스에서 거친 말씨로 시끄러운 푸름이를 보는 버스일꾼은 자꾸 성내며 “떠들지 마” 하고 외친다. 이런 외침말로 시골 푸름이 거친 수다가 수그러들 일은 없다. 마을에서도 배움터에서도 집에서도 똑같을 테지. 이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기에 거친 막말이나 막짓을 할까? 시골뿐 아니라 서울도 나라 곳곳도 매한가지이다. 《방귀 사전》은 여러모로 익살스럽지만 우리 살림자리하고는 썩 안 맞는다고 느낀다. 저쪽 이웃나라에서는 방귀를 이러한 눈결로 본다면, 우리는 우리 삶자락에 맞추어 새롭게 쓰고 그리고 엮으면 될 텐데. 아름다운 이웃나라 책이 많기는 하되, 좀 느긋이 바라보면서 두서너 해, 때로는 대여섯 해, 때로는 예닐곱 해나 열 해쯤 들여서 우리 눈빛으로 글책이며 그림책을 짓기를 빈다. 방귀를 둘러싼 옛이야기도 오늘이야기도 수두룩한걸.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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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10.


《제줏말 작은사전》

 김학준 글, 제라헌, 2021.6.28.



그동안 헌책집을 찍은 빛그림(사진)을 추스르자면 여러 달이 걸리리라 본다만, 다음달이 빛잔치(사진전시회)를 꾸릴 수 있도록 바지런히 살핀다. 몽땅 살필 틈은 없고, 추려서 본다. 오른어깨는 새롭게 결리네. 슬슬 나을 즈음 이레 남짓 서울마실을 하고 돌아왔기 때문일까. 아이들한테 깍두기 썰기하고 버무리기를 맡긴다. 아이들이 손수 썰고 버무리면서 한결 즐겁게 밥살림을 맞이한다고 느낀다. 어버이 손맛을 보여도 좋을 테지만, 아이가 스스로 손맛을 살피고 차리는 길을 넌지시 이끌어야지 싶다. 열 살을 넘은 나이라면 밥뿐 아니라 쓸고 닦고 치우는 살림에, 옷을 건사하는 일까지 손맛을 찾을 노릇이라고 본다. 《제줏말 작은사전》을 읽었다. ‘제주말’을 그러모은 대목은 반가우면서, 뜻풀이를 제주스럽게 달지 못한 대목이 더없이 아쉽다. ‘낱말을 모으는 꾸러미’는 그리 안 어렵다. ‘낱말을 모은 꾸러미’가 요새 꽤 나온다. 다만 낱말을 모으되 ‘왜 모으는가?’ 하는 생각을 밝히면서 ‘낱말풀이를 스스로 짓는 살림을 살펴 새롭게 이야기로 여미는 꾸러미’는 아예 없다시피 하다. 풀이를 하지 않는다면 모은들 덧없다. 덜 모으더라도 풀이를 제대로(제 삶결대로) 할 노릇인데. 다들 너무 서두른다. 서두르면 설익는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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