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81 | 182 | 183 | 18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오늘 읽기 2018.1.29.


《엄마의 주례사》

김재용 글, 시루, 2014.3.28.



  사랑에 서툴고 혼인이 낯선 딸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를 책으로 모았다고 한다. 2014년에 나왔네. 가만히 보니, 딸이든 아들이든 혼인할 적에 어머니나 아버지로서 아이한테 ‘책 하나 써서 선물하면 좋겠’다. 어버이로 살아온 나날을 갈무리하고, 아이가 배우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적으며, 아이가 미처 모를 수 있는 대목을 찬찬히 짚어서 알려줄 만하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책에는 ‘우리 집안 김치 담그기’를 비롯해서 ‘우리 집안 쓰레질’ 솜씨를 적을 수 있다. ‘우리 집안에서 옷 개는 손길’을 적어 놓을 수 있고, 옛날부터 이어온 슬기로운 이야기를 붙일 수 있다. 그리고 아이한테 물려주는 책에 여러 피붙이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 줄 수 있다. 이러한 책을 혼인잔치 하는 자리에서 손님들한테 나누어 줄 수 있을 테지. 도움돈을 주는 이들한테 책을 하나씩 주면서 ‘우리 집안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하고 밝힐 수 있다. 《엄마의 주례사》는 겉치레 아닌 속살림을 딸아이가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다만 말이 살짝 어렵고 영어를 좀 자주 쓴다. 더욱 쉽게 쓰면 좋겠다. 더욱 부드럽게, 더욱 따스하게, 더욱 너그럽게, 더욱 즐겁게 노래하는 삶을 어버이로서 그릴 수 있기를. 온누리 어느 집에서나. 어머니도 아버지도.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기 2018.1.28.


《백만장자의 눈》

로알드 달 글/김세미 옮김, 담푸스, 2014.12.18.



  《백만장자의 눈》을 지난해인가 지지난해에 장만해서 읽었다가 느낌글을 쓰려고 보니 책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알고 보니 아이들이 이 책을 보고 놀다가 끝방 귀퉁이에 놓았네. 이 책을 펼쳐서 찬찬히 되읽는데 촛불보기에 온힘을 쏟아서 카드 뒤쪽을 읽을 줄 알던 사람 이야기를 뺀 다른 이야기는 하나도 안 떠오른다. 마치 모두 새로 읽는 이야기로구나 싶다. 읽고 나서 이렇게 머리에서 하얗게 사라질 수 있네. 늘 되새기지 않으면 잊기 마련이요, 꾸준히 가다듬지 않으면 마음에 깃들지 못하는구나. 이는 ‘백만장자가 된 사람’이 했던 촛불보기하고 매한가지이다. 무엇을 꿰뚫어보는 눈을 기르려면 날마다 온마음을 기울여서 갈고닦을 줄 알아야 한다. 멀리 있기에 못 보지 않는다. 곁에 있어도 마음을 안 쓰니 모른다. 멀리 있어도 마음을 쓰기에 알 수 있고 볼 수 있다. 넉넉한 사람이란 돈만 넉넉하지 않으리라. 먼저 마음이 넉넉하고, 생각이 넉넉하며, 사랑이 넉넉하겠지. 눈길이 넉넉하며, 손길이 넉넉하고, 삶길이 넉넉하리라. 마음에 고니 같은 맑은 꿈을 싣고 하늘을 날아서 집으로 돌아온 아이처럼, 거북이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며 홀가분하게 살아가는 아이처럼, 오롯이 고이 고요히 정갈히 품을 꿈을 그려 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기 2018.1.27.


《이 세상의 한구석에 下》

코노 후미요 글·그림/강동육 옮김, 미우, 2017.10.31.



  나라가 시키는 대로 따르고, 어버이가 시키는 대로 따르며, 학교가 시키는 대로 따르던 어린 가시내는,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웃마을로 시집을 가서 지낸다. 좋아하던 그림조차 못 그리며 히로시마를 떠나 쿠레라는 곳에서 갓 스물 언저리를 보내다가 어느 날 시한폭탄이 옆에 떨어진 줄 뒤늦게 알아채고는 어린 조카 손을 얼른 잡아끌지만, 어린 조카는 폭탄과 함께 조각나고, 이녁은 오른손이 잘린다. 머잖아 히로시마에 엄청난 폭탄이 떨어진 모습을 고개 너머에서 지켜보고, 어머니 아버지 모두 폭탄에 죽고 동생도 방사능에 여위어 가는데, 정작 이 얼거리가 무엇인지 느끼지는 못한다. 이러다가 일본이 전쟁에 졌다고 우두머리가 라디오로 말하자 이제껏 살아온 날이 무엇이었는가 싶어 울부짖는데, 문득 태극기라는 낯선 깃발을 보고 ‘침략·식민지·노예’를 어렴풋이 헤아린다. 이듬해 히로시마에서 어버이 잃은 가녀린 가시내를 만나서 집안으로 데려온다. 지난 수렁에서도 어떻게든 살던 사람들이 새로운 수렁에서도 어떻게든 살림을 지으려고 마음을 모은다. 어리석다면 어리석고 착하다면 착한 사람이랄까. “시키는 대로 하기”가 얼마나 스스로 바보스러우며 무서운가를 이제부터 깨닫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을까. 짠한 만화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기 2018.1.26.


《시의 눈, 벌레의 눈》

김해자 글, 삶창, 2017.12.26.



  쉬엄쉬엄 하루를 보낸다. 공문서나 보고서를 쉽고 즐겁게 쓰는 길을 밝히는 글을 꾸리면서 생각해 본다. 무엇이 쉽고 즐거울까? 무엇이 안 쉽고 안 즐거울까? 우리는 늘 말을 하면서 산다지만, 정작 말이란 무엇이고 말에 담는 생각이란 무엇인가를 얼마나 살피려나? 학교에서 이를 배운 적 있나? 사회나 일터에서 이를 배울 수 있나? 문학은 이를 얼마나 짚거나 밝힐까? 시를 쓰기도 하고 읽기도 하는 김해자 님이 쓴 ‘시풀이(시 비평)’인 《시의 눈, 벌레의 눈》을 읽는데 숨이 막힌다. 아무리 일꾼(노동자) 눈높이를 헤아리거나 사랑하는 시라고 하더라도 참 어렵다. 이 어려운 노동시를 풀어내는 글마저 더없이 어렵다. 어쩌면 나 혼자 어렵다고 여길는지 모른다. 다른 분은 이런 시풀이나 노동시가 쉽다고 여길는지 모른다. 왜 칠곡 할매처럼 시를 쓰는 사람이 드물까? 왜 칠곡 할매처럼 시를 풀이하는 사람이 없을까? 어려운 말, 아니 일본 한자말이나 영어를 굳이 끼워넣어야 문학이 되거나 비평이 될까? “문학을 비평해야” 하는지, “노래를 이야기하면” 어떨는지 궁금하다. 삶을 노래하는 이웃들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조곤조곤 사랑을 풀어내는 글, 이러한 글을 읽을 수 없으니, 어쩌면 남 탓을 하기보다 내가 이런 글을 쓸 노릇이리라.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기 2018.1.25.


《퀘스천》 14호(2018년 1·2월)

편집부, 인터뷰코리아, 2018.1.10.



  작은아이하고 강추위를 맞서면서 읍내 우체국을 다녀온 이튿날은 집에서 조용히 지낸다. 저녁에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흐르는구나 하고 여기지만, 우리는 텔레비전을 안 두기에 방송이 끝나고 동영상을 사려면 이튿날에 보아야 한다. 한국은 처음이라는 이웃나라 낯선 동무들 몸짓이나 말이 왜 궁금할까? 아무래도 그 나라 사람들 나름대로 살아온 발자취를 고스란히 느끼면서,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스스로 어떻게 어우러질 적에 즐거운가를 읽을 수 있어서 아닐까. 잡지 《퀘스천》 14호를 다 읽었다. 다 읽고 나서 1월호랑 2월호를 묶은 줄 깨닫는다. 다음은 3월호로구나. 이 잡지는 묻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저 묻는다. 물음을 들은 사람은 제 나름대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사람들이 풀어내는 이야기에는 딱히 얽매이는 틀이 없다. 이제껏 깜냥껏 재주껏 마음껏 살아온 대로 한 올 두 올 실타래를 풀어 놓는구나 싶다. 옳거나 바르거나 틀리거나 그른 자리를 따지지 않고서 풀어내는 이야기이기에 더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간다. 가만히 보면 여태 나온 숱한 잡지나 인문책은 ‘묻고 이야기하기’ 같은 흐름이 없이 ‘이것이 옳고 저것이 틀리다’라는 잣대로 갈랐지 싶다. 금긋기를 하면 참말 따분하다. 이야기를 펴야 참으로 재미나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81 | 182 | 183 | 18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