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6.


《피어라, 나팔꽃!》

 니시무라 유리 글·오카다 치아키 그림/조진화 옮김, 키위북스, 2015.11.20.



빨래를 하고 마을 빨래터를 치운다. 발을 말리면서 책을 읽는다. 등허리를 토닥이고서 집으로 돌아온다. 이틀 뒤에 인천마실을 한다. 집에서 마칠 일을 헤아리고, 밀린 마감글을 끝낸다. 구름을 보고 하늘빛을 읽는다. 풀잎을 쓰다듬고 바람을 마신다.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그리면서 무엇을 지을 적에 활짝 웃고 이야기꽃이 터질까? 오늘을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누구랑 동무하고 이웃할 적에 하하호호 신나면서 수다판을 벌일까? 《피어라, 나팔꽃!》은 아이들이 천천히 수수하게 짓는 어깨동무를 들려준다.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집에서 저마다 다르게 하루를 맞는다. 어른도 아이도 다르다. 어른도 아이도 제 삶이 있다. 아이들은 또래끼리 어울리면서 어떻게 스스로 마음을 키울까. 어른들은 바깥일하고 집안일을 어떤 마음으로 마주하면서 차곡차곡 여밀까. 아이들을 마냥 또래끼리 두어도 좋은지 생각해 본다. 으레 “어버이 품에 오냐오냐 두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정작 “어버이 품에서 사랑을 제대로 느끼고 배울 때까지 느긋이 둘 노릇”이리라 생각한다. 너무 일찍 어버이 품을 떠나야 하는 아이들은 ‘홀로서기’가 아닌 ‘생채기·멍울’로 힘들다고 느낀다. 아이를 일찍 떨어뜨리는 터전일수록 아이들은 너무 힘들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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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5.


《도시의 마지막 나무》

 피터 카나바스 글·그림/이상희 옮김, 시공주니어, 2012.3.20.



엊저녁을 돌아본다. 여태 떠남터(장례식장)에서 노래꽃을 석 벌째 올렸다. 노래는 기쁠 적에도 부르고 슬플 적에도 부른다. 노래는 스스로 빛나려고 부르면서 스스로 꿈꾸거나 사랑하려고 부른다. 사람들이 모두 단잠에 든 새벽나절에 짐을 추슬러서 나온다. 엊저녁처럼 조용히 기차나루까지 걷는다. 안개가 짙다. 밤새 형광등이 내리쬐는 곳에서 보내다 보니 머리가 지끈하다. 고흥집에는 아침해가 밝을 무렵 돌아오는데, 몸이 안 풀린다. 낮잠에 들어도 몸이 뻑적지근하다. 나는 바깥일을 보느라 이따금 ‘형광등 나라’인 큰고장을 오가지만, 하루 내내 형광등에 몸을 내맡기는 서울사람은 이녁 기운을 다 갉아먹는 셈일 텐데, 어떻게 버티려나? 《도시의 마지막 나무》를 떠올린다. 나무도 풀꽃도 형광등을 안 반긴다. 사람들이 밤새 형광등을 켜 놓으면 나무도 풀꽃도 시름시름 앓는다. 여느 일터뿐 아니라 돌봄터(병원)조차 형광등이 환하니, 다들 목숨을 갉아먹는 수렁이다. 해가 지면 자는 풀꽃나무처럼, 해가 지면 쉴 사람이다. 햇볕을 쬐고 햇빛을 받고 햇살을 누릴 적에 튼튼한 몸하고 마음으로 살아간다. 서울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잿빛집을 치우고서 숲을 넓힌다는 얘기는 없다시피 하다. 땅도 하늘도 바다도 망가뜨리면 다같이 죽음길인데.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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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4.


《파도수집노트》

 이우일 글·그림, 비채, 2021.9.17.



엊저녁에 고흥으로 돌아와서 등허리를 펴며 쉬는데 낮나절에 쪽글을 받는다. 담양에서 질그릇을 빚는 이웃님하고 살던 곁님이 저승길로 떠났다고 한다. 몸을 추스르고 집안일을 얼른 갈무리하고서 저녁에 바삐 곡성으로 달린다. 순천을 거쳐 곡성나루에 닿아 떠남터(장례식장)까지 걷는다. 시골 읍내는 저녁에 조용하다. 풀벌레 노랫소리를 품는다. 시외버스에서 ‘푹’이라는 노래꽃(동시)을 썼다. 떠난분한테 올리면서 남은분한테 건네는 글이다. 몸을 내려놓으신 분은 고이 나비가 되어 숲을 날면 좋겠다. 마음을 내려놓으신 분은 홀가분히 꽃이 되어 숲을 빛내면 좋겠다. 《파도수집노트》를 읽었다. 책끝에 글님 딸아이가 적어 준 글자락이 있어서 장만했다. 쉰 줄이 넘고서 물결타기를 즐기는 삶길을 담았다. 물결을 타든 멧자락을 타든 자전거를 타든 스스로 즐겁게 하루를 노래한다면 넉넉하다. 타기에 달리고, 달리기에 나아가고, 나아가기에 서고, 서기에 돌아온다. 눈치를 본다면 삶이 없고 쳇바퀴가 있다. 걱정을 안는다면 살림이 없이 늪이 있다. 그나저나 바닷물은 맨몸으로 맞이하고 맨살에 맨발에 맨손으로 마주할 적에 우리 몸을 살리는 포근한 물살이 된다. 헤엄을 잘 치는 모든 숨붙이는 바다에서 사람처럼 천을 걸치지 않는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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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3.


《초코칩 쿠키, 안녕》

 이숙현 글·이명희 그림, 창비, 2010.11.19.



엊저녁에 대구 글이웃님을 만나서 이야기했고, 함께 〈직립보행〉을 들렀다. 저녁에 짧게 들르느라 아쉬웠지만, 다음 대구마실을 그린다. 모든 즐겁고 아름다운 마을책집은 꾸준히 다니면서 새롭다. 한 해에 한 걸음이든, 두서너 해에 한 걸음이든 언제나 그곳을 생각하기에 즐겁다. 고흥에 어떻게 돌아갈까 하고 길을 어림하다가 아침 일찍 칙폭이(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간다. 보수동 〈우리글방〉하고 〈파도책방〉을 찾아간다. 사상 버스나루에서 버스를 탈 때를 어림하면서 책빛을 누린다. 시골로 짊어질 책짐을 파도지기님이 맡아 주셨다. 단출히 움직인다. 《초코칩 쿠키, 안녕》은 구미에서 어린이를 돌보며 살림길을 헤아리는 눈길로 담아낸 이야기이다. 요즈음 어린배움터도 예전 못지않게 툭탁거리거나 아픈 일이 가득하구나 싶다. 어린이를 마구 때리는 어른은 줄되, 어린이하고 놀거나 어울릴 틈을 느긋이 함께 누리는 어른도 줄었다. 예나 이제나 어른 등쌀에 고단한 아이는 있고, 어른 틈바구니에서 아픈 아이가 있는데, 옛날에는 아이들이 나무를 타거나 바다에서 헤엄치거나 들판을 달리며 응어리를 풀었다면, 요즈음 아이들은 속으로 꾹꾹 누르며 견디기만 한다. 숨돌릴 곳이 없는 나라라면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고단하겠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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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2.


《하나와 두리 바다 속 여행》

 도이 가야 글·그림, 은하수미디어, 2005.9.1.



아침 일찍 진주서 대구로 건너가며 살피니 흙날(토요일) 일찌감치 여는 책집이 없다시피 하다. 이튿날은 어떠려나 살피니 해날에는 아예 쉬는 책집이 많다. 곰곰이 보니 내가 찾아가고 싶은 마을책집 가운데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가 꾸리는 곳이 많다. 나는 왜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 마을책집이 자꾸 눈에 뜨이며 그곳에 찾아가고 싶을까?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가 꾸리는 책집에는 어린이책이며 그림책이 넉넉하다. 아이를 안 돌보는 아저씨가 꾸리는 책집에는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이 드물거나 없기 일쑤요, 딱딱하고 두꺼운 어른책이 많다. 이 나라뿐 아니라 온누리가 거듭나려면 돌이(남자)가 아이를 도맡아 돌보면서 어린이책하고 그림책을 사랑해야지 싶다. 돌이를 싸움판(군대)으로 끌고 가지 말고, “아이돌보기 열 해”로 하루를 오롯이 살도록 해야 아름나라가 될 만하지 싶다. 대구 태전도서관에서 이야기꽃을 펴다가 ‘손빛책’이란 낱말을 새삼스레 새긴다. ‘장서’나 ‘중고도서’를 ‘손빛책’으로 가리키고 싶다. 《하나와 두리 바다 속 여행》은 판이 끊긴 지 오래이다. 찾기도 만만찮다. 이런 그림책이야말로 순이뿐 아니라 돌이가 곁에 두면서 손빛을 추스르도록 길잡이로 삼으면 좋겠다. 이야기나 얼거리가 참으로 눈부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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