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4.


《사라진 색깔》

 콘스탄체 외르벡 닐센 글·아킨 두자킨 그림/정철우 옮김, 분홍고래, 2019.7.10.)



아침낮 사이에 두 군데 펴냄터를 들른다. 앞으로 쓸 글꽃·말꽃을 헤아리면서 이제껏 낸 글책·낱말책을 돌아본다. 한 사람이 흘리는 땀방울은 매우 작을 테지만, 풀꽃나무가 하루아침에 커다란 숲을 그리지 않듯, 언제나 씨앗 한 톨로 묻고서 찬찬히 나아가는 길이다. 마을책집 〈조은이책〉에 찾아간다. 책집지기님이 살짝 자리를 비우셨다. 책집 앞에서 노래꽃(동시)을 쓰면서 기다리다가 용산으로 건너간다. 〈뿌리서점〉에 들른다. 해가 뉘엿뉘엿 기운다. 오늘은 어디에서 묵을까 어림하다가 신림동 쪽으로 가기로 한다. 길손집에 들기 앞서 〈책이당〉에 살짝 깃들었다. 북적대는 큰길에서 조금 안골목으로 들어올 뿐인데 호젓하면서 아늑하다. 신림2동사무소 곁은 온통 술집이다. 맨 먼저 보이는 길손집에 들어가고 보니, 무척 좁고 바닥은 파여서 기우뚱한데다, 걸상이 없네. 등짐을 풀고, 빨래를 하고, 몸을 씻고서 눕는다. 누운 채 《사라진 색깔》을 읽는다. 아이는 삶터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아이는 어머니 어깨에 기대어 잠들며 꿈에서 무엇을 만났을까. 삶하고 꿈은 얼마나 멀고 가까울까. 마을을 잿더미로 무너뜨리는 이가 있대서 씨앗을 안 심어야 할 까닭이 없다. 스스로 사랑을 마음에 품듯, 삶터에 씨앗을 심으며 숲을 그린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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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3.


거기서 일하는 무스부 씨 1

 모리 타이시 글·그림/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0.1.31.



인천 주안에서 일어나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간다. 〈메종인디아〉에 들러서 숨을 돌린다. 며칠째 서울에서 머무느라, 또 ‘가루가 안 녹고 미지근한 코코아’를 마시고서 뱃속 부글거리느라 힘든 몸을 어느 만큼 달랜 뒤에 〈서울책보고〉로 간다. 다음달 12월부터 ‘헌책집 사진잔치’를 어떻게 꾸려서 열면 즐겁게 빛날까 하는 이야기를 한다. 책집을 찍은 사진을 여태 조촐히 선보이기만 했는데, 오랜만에 큼지막하게 선보이면서 책빛을 나누는 길을 열겠구나. 시골집 아닌 서울 한복판을 돌아다니자니 기운이 쉬 빠진다. 한참 걸으며 새삼스레 땀으로 폭 젖는다. 둘레 사람들은 “안 춥냐?” 하고 묻지만, 내 등짐과 어깨짐을 생각한다면, 또 내내 걸으며 움직이는 줄 살핀다면, 이마랑 등판에 흐르는 땀을 본다면, 그런 말은 쑥 들어갈 테지. 합정나루 곁 ‘보보호텔’에 41259원에 깃든다. 누리그물로 길손집을 잡으니 참 값이 눅다. 《거기서 일하는 무스부 씨 1》를 읽었다. 살까 말까 한 해 남짓 망설이다가 첫걸음은 읽어 보자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이런 줄거리로도 새삼스레 그림꽃책을 엮는구나. 눈썰미가 확 다르다. 다만 뒷걸음은 밀고당기는 풋타령으로 흐를 듯하다. 어제오늘 장만한 책을 하나하나 천천히 읽다가 곯아떨어진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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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2.


《귀촌하는 법》

 이보현 글, 유유, 2021.9.14.



서울에서 눈을 뜬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 어제 하루 땀에 전 옷을 다시 입는다. 오늘은 옷집부터 찾아가자고 생각하지만, 시골내기가 서울 한복판 어디에서 어떤 옷을 살 만한지 모르겠다. 나는 몽당소매·몽당바지(반소매·반바지)를 바라는데 11월에 몽당옷을 어데서 찾노. 끝내 옷은 못 사고 책집 〈최인아책방〉을 들렀고, 수원으로 건너가서 〈마그앤그래〉를 들렀고, 시흥으로 넘어가서 〈백투더북샵〉을 들른다. 인천 주안으로 나아가서 〈딴뚬꽌뚬〉을 들르러 했는데 19시에 닫으셨네. 19시 16분에 닿아 책집 어귀에서 서성이다가 길손집에 깃들어 빨래부터 신나게 했다. 《귀촌하는 법》을 읽었다. 읽으며 머리가 좀 아팠고, 시골살이를 생각하는 이웃님한테 무엇을 이바지할 만한지 잘 모르겠더라. 책이름은 “시골길(귀촌법)”이되, “중소도시 생활기” 같다. 잿빛집(아파트)이 나쁘다고 여기지는 않으나, 왜 시골에까지 삽질꾼이 잿빛집을 세워야 하는가를 돌아보면 좋겠다. 나무랑 돌이랑 흙으로 지은 시골집은 허물어도 땅으로 돌아가지만, 잿빛집은 모두 쓰레기이다. 시골살이란 ‘쓰레기 아닌 살림빛을 찾는 길’이지 않을까? 흙짓기를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손수 해바람비를 누리며 살림꽃을 피우려 하기에 시골길일 텐데.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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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1.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

 최광진 글, 미술문화, 2016.6.20.



전주에서 연 새벽을 돌아보면서 버스나루로 간다. 서울에 대면 부릉이가 적다만, 멧새나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는 좀처럼 찾지 못한다. 전주에서 살며 새노래나 풀노래를 바란다거나 그리거나 귀기울이는 사람은 몇쯤 될까? 서울에서 일하며 새노래나 풀벌레를 품거나 사랑하거나 돌보려는 사람은 얼마쯤 있을까? 서울 강서로 가서 하루일을 본다. 해질녘에 전철을 타다가 깜빡 잠들어 서울 강남에서 내린다. 어마어마한 사람물결에 휩쓸려 오도가도 못하다가 겨우 길손집을 찾아갔다. 잠삯(숙박비)이 꽤 나갔지만, 등허리가 결려 얼른 짐을 풀고픈 생각뿐.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을 새벽부터 읽었다. 길손집에서 한참 곯아떨어지고서야 기운을 차린다. 부스스 일어나 다시 편다. 어디에도 별빛·풀노래·새노래가 없으나 틀림없이 고요히 숨죽이면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고 느낀다. 그림지기 천경자 님 삶길을 꽃글(동화)로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천경자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꽃글’이 아닌 ‘그림순이가 시골순이에 꽃순이란 눈빛으로 그림을 사랑하는 길을 담은 꽃글’을 쓰려고 한다. 누가 나를 ‘작가님’이란 이름으로 부를 적보다 ‘글돌이’나 ‘글님’으로 부르면 반갑다. ‘숲돌이’나 ‘숲님’으로 부르면 더없이 사랑스럽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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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31.


《나의 프리다》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공경희 옮김, 웅진주니어, 2019.2.2.



아침에 새로 길을 나선다. 이튿날 낮에 서울에서 만날 분이 있다. 미리 전주까지 가려 한다. 순천을 거쳐 기차를 탄다. 전주에 잘 닿았구나 싶어 진안으로 슬쩍 넘어간다. 영양군청에서 일하는 이웃님이 알려준 새 마을책집 〈책방사람〉이 진안군청 곁에 있다. 가을빛에 폭 잠긴 우람나무가 군청 둘레에 있어 반갑다. 나무를 밀거나 들볶는 길이 아닌, 나무를 곁에 품는 길이라면, 이 고장이 펴는 손빛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전주로 돌아간다. 노래꽃(동시)을 쓰는 이웃님을 만난다. 저녁에 길손집에 깃들어 《나의 프리다》를 되읽는다. 그림님 나름대로 잘 다루었구나 싶으면서 여러모로 아쉽다. 앤서니 브라운이란 이름이라면 구태여 “프리다 칼로”가 아닌 “그림 할머니”를 다루어도 즐거울 텐데. 새삼스럽지만, 바바라 쿠니 님이 빚은 《엠마》가 떠오른다. 돋보이는 길을 걸은 별님을 다루는 그림책이 나쁘지는 않되, 이 별님 빛살에 기대려는 마음을 엿본다. 가만 보면, 요즈음 쏟아지는 ‘책을 말하는 책’은 하나같이 ‘널리 알려진 책’을 다루면서 ‘돋보이는 글님 빛살에 기대려는 눈치’가 드러난다. 사랑할 책을 사랑하면 글은 저절로 샘솟는다. 알리거나 팔 글이 아닌, 사랑할 글을 쓰자고 생각하면 아름답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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