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 울리며 지나가는 군내버스



  아이들하고 들길을 걸을 적에 곧잘 군내버스가 빵빵 울린다. 우리를 알기에 인사하려고 빵빵 울리기도 하고, 우리더러 타겠느냐는 뜻으로 빵빵 울리기도 한다. 들길을 거니는 나들이를 할 적에는 버스를 탈 일이 없으니 큰길에서 비껴 서거나 가만히 걷는다. 맞인사라도 하려고 손이라도 흔든다면 우리가 타려는 줄 알고 멈출 테니까. 봄빛이 천천히 올라오려 하는 들길을 가로지르는 버스를 한 번 흘깃 바라본다. 아이들은 벌써 저만치 앞서 간다. 얼른 아이들 뒤를 따라가야지. 2016.2.1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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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기우기



  봄가을에 입는, 그렇지만 나는 한겨울에도 입는 얇은 바지를 기운다. 엉덩이 쪽이 해져서 튿어졌다. 바지 밑단을 가위로 오려서 엉덩이 쪽에 대고 기운다. 바지 밑단이 살짝 길면 이렇게 쓸 수 있네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나중에 이 바지가 더 해져서 더 튿어지면 바지 밑단을 자꾸 오려서 위쪽에 대야 할 테고, 그러면 저절로 반바지가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입던 바지를 더는 기울 수 없을 무렵에야 비로소 새 바지를 장만하는데, 문득 돌아보니 이 바지도 열 해 남짓 입었구나 싶다. 2016.2.1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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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설날



  올 설날에는 온 식구가 시골집에 조용히 있다. 아침을 지어서 함께 먹는다. 밥그릇을 비운 뒤 기지개를 켜며 마당에 나와 본다. 엊저녁에도 오늘 아침에도 마을로 들어오는 자동차가 많다. 머잖아 온 마을이 온통 주차장이 되겠네. 어젯밤에는 이웃마을에서 여러 사람들이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 마을까지 들렸다. 오늘은 모처럼 북적북적한 시골마을이 되겠구나. 4349.2.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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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앞서 영화를



  잠들기 앞서 영화를 하나 본다. 제법 오래된 영화 〈델마와 루이스〉이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무렵에 한국에서도 극장에 걸린 듯한데,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에 얽매인 나날이었기에 1993년에는 이 영화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는 대목을 몰랐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는 이 영화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러구러 여러 해가 흐른 어느 날 문득 어디에선가 보았지 싶다. 그렇지만 줄거리가 거의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아이들하고 함께 볼 수 없는 대목이 나오지만, 언젠가 이러한 영화를 ‘아름답게 자란 아이들’하고 찬찬히 다시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삶을 짓는 길, 살림을 짓는 길, 사랑을 짓는 길, 이 세 가지 길이 무엇인가를 즐겁게 보여주는 영화로구나 하고 느낀다. 이 영화를 스무 살을 맞이하거나 고등학교를 마치는 아이들이 보도록 하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본다. 4349.2.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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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이 다하면 드러누워야



  한겨울에 빨래터·샘터를 치우는 일은 퍽 힘이 든다. 햇볕이 아주 포근하지 않은 날에는 찬물에 발을 담그며 막대수세미로 물이끼를 걷어내고 나면 손발이 꽤 시리다. 물이끼를 모두 걷어내어 말끔한 빨래터랑 샘터를 바라보면서 손발을 말리노라면, 그리 멀잖은 지난날에 이 나라 어머니와 누이가 한겨울에 찬물에 손발을 담그면서 어떤 일을 해야 했는가를 새삼스레 느낀다. 어제 하루도 신나도록 바쁘게 움직이면서 온몸에 기운이 다했고, 저녁에 아이들이랑 촛불보기를 하고 나서 까무룩 곯아떨어졌다. 잠이란 얼마나 고마운지, 아무리 힘을 많이 쓰고 나서 드러눕더라도 몇 시간쯤 지나면 새로운 기운을 베풀어 준다. 쉴 수 있는 잠자리, 잠들 수 있는 보금자리, 꿈을 꿀 수 있는 이부자리란 얼마나 기쁜가 하고 돌아본다. 4349.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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