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양말이란



  곁님이 곁님 동생이 낳은 아기한테 선물하려고 양말을 한 켤레 떴다. 이 뜨개양말을 보내는 길에 ‘아기띠’를 찾아서 함께 보냈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자라는 동안 안고 업으면서 쓰던 아기띠를 잘 빨고 말래서 잘 두었는데, 막상 너무 잘 둔 탓에 어디에 두었는지 한참 못 찾았다. 아이들 겨울옷하고 봄옷을 갈무리하다가 드디어 아기띠를 찾았기에 기쁜 마음으로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뜨개질이 손에 익고 손놀림이 빠르다면 하루에 여러 켤레를 뜰 수 있을까? 뜨개질을 해 본 사람은 알 텐데 양말 한 켤레를 뜨기까지도 품이 꽤 많이 든다.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손길하고 사랑이 작은 뜨개양말 한 켤레에 깃든다. 이를테면, 이 뜨개양말을 마무리하기까지 예닐곱 시간쯤 걸린다 하더라도 ‘뜨개질을 익히고 마름질을 배우며 실하고 바늘을 장만하기’까지 들인 품하고 겨를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냥 뜰 수 있는 작은 양말이란 없다.


  우리가 손수 살림을 짓는 길을 익힌다면, 무엇 하나 아무렇게나 다루지 않을 테지. 우리가 기쁘게 살림을 가꾸는 길을 걷는다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에 고운 손길을 담아서 아름다운 보금자리와 마을을 가꿀 수 있을 테지. 손수 하는 곳에 사랑이 흐르고, 손수 짓는 곳에 삶이 있다. 2016.3.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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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는 삶



  부엌을 어느 만큼 치운 어느 날 곁님이 한 마디 들려주었다. 이렇게 치우니 내가 부엌일을 하기 좋지 않느냐 물었다. 그때에는 바로 대꾸하지 못했는데, 가만히 그 말을 돌아보니, 내가 손수 부엌이나 집안을 치우면 나부터 부엌이나 집안에서 여러 가지를 하기 수월했다. 맞는 말이다. 방바닥을 어지르면 아이들도 놀기에 나쁘고, 나도 다니기에 나쁘다. 방바닥을 잘 치우면 아이들도 놀기에 한결 낫고, 나도 다니기에 한결 낫다. 요즈음 도서관하고 집을 틈틈이 치워 보는데, 치워 놓고 보니 이것저것 하기에 참말 한결 낫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씨앗을 심어서 돌보고 갈무리하듯이, 집살림도 늘 아끼고 돌보며 추스르는 몸짓이 될 때에 비로소 스스로 아늑하면서 일이 잘 풀리네 하고 깨닫는다. 2016.3.3.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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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렌지 밥



  열 해쯤 앞서였지 싶다. 가스렌지를 장만할 적에 뒤쪽에 ‘밥(건전지)’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이 모습을 보기만 할 뿐, 아무한테도 묻지 않았다. 들고 다니는 작은 렌지는 따로 밥을 넣지 않아도 불이 오른다. 부엌에서 쓰는 가스렌지는 따로 밥을 넣어야 비로소 불이 붙는다. 왜 그럴까?


  가스렌지를 쓴 지 다섯 해쯤 지날 무렵 가스불이 잘 안 올라왔다. 둘레에서 이 까닭을 알려준 사람이 여태 없다가 며칠 앞서 비로소 알았다. 가스렌지 뒤쪽에 있는 밥을 갈아 주어야 한단다. 밥이 다 닳으면 불이 안 올라온단다. 이리하여 읍내로 마실을 가서 가스렌지 밥(굵은 건전지)을 장만했고, 이 밥을 넣으니 불이 아주 쉽게 올라온다.


  가스렌지가 잘 안 켜져서 걱정하는 이웃이 꽤 많지 않을까? 가스렌지를 장만하는 사람한테 ‘몇 해쯤 쓴 뒤에는 밥을 갈아야 한다’고 알려주는 가게지기는 있을까? 2016.2.2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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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받다



  나흘쯤 앞서 면소재지에서 갑자기 쌀을 가지고 우리 집에 왔다. 흰쌀 40킬로그램을 받았다. 왜 주는지는 잘 모른다. 그저 고맙게 받기로 했다. 어제 고흥 동강면에 사는 이웃님이 쌀 한 자루를 가지고 우리 집에 오셨다. 세겹살에 배추에 버섯까지 들고 오셔서 부엌살림이 넉넉해졌다. 흰쌀 80킬로그램을 마루며 부엌이며 둔다. 네 식구가 이 쌀을 몇 달쯤 먹을 만할까 하고 생각해 보다가, 일산집과 음성집에 쌀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곁님 어버이와 우리 어버이한테 ‘선물로 받은 쌀’을 다시 ‘선물로 드릴’ 수 있겠구나 싶다. 자전거에 쌀을 싣고 우체국까지 나르려면 얼마쯤 나누어야 할까. 우체국 문을 여는 월요일을 기다린다. 2016.2.2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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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밥 장만하기



  우리 집은 그냥 시골집이고, 이 마을이나 옆마을을 아울러 오직 우리 집에만 아이가 있기에 ‘애들 소리 나는 집’인데, 내가 책을 많이 건사하니 ‘책집’이기도 하다. 우리가 나아가려는 길은 ‘숲집’이요, ‘사랑살림집’이다. 여기에 한 가지 이름이 더 붙을 만하니, ‘고양이집’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고양이를 키우지는 않는다. 마을고양이는 저마다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데, 우리 집 광에서 해마다 두 차례씩 새끼가 태어난다. 새끼를 낳으려는 어미 고양이가 으레 우리 집 광에 깃든다. 이러면서 다른 마을고양이도 날마다 몇 차례씩 돌담이랑 마당을 가로지른다. 우리 집 광에서 태어난 새끼 고양이 가운데 몇 마리는 우리가 신을 놓는 섬돌에 앉아서 자거나 해바라기를 한다. 그렇다고 우리 손길을 타지는 않는다. 매우 가까이까지 다가서지만 쓰다듬을 안 받고, 달아나지는 않으나 다가오지도 않는다.


  우리 집이 ‘고양이집’, 아니 ‘마을고양이집’이 되면서, 우리 집에는 쥐가 한 마리조차 없다. 처음 이 시골집에 깃들어 이태째까지 천장을 기어다니는 쥐를 느낄 수 있었으나, 세 해째 접어들 무렵부터 쥐소리는 그야말로 ‘쥐 죽은듯이’ 사라졌다.


  따로 고양이한테 밥을 준다고 하기는 어려우나, 밥찌꺼기를 고양이밥으로 마당 한쪽에 놓았고, 때때로 짐승먹이(고양이사료)를 장만해서 그릇에 담아 준다. 읍내에 있는 가게에서 파는 짐승먹이가 얼마인가 헤아리니 1.5킬로그램에 9500원이다. 인터넷으로 살피니 30킬로그램에 3만 원 즈음 한다. 이렇게 값이 벌어지네. 몰랐다.


  언제나 쥐를 잘 잡아 주는 이쁜 녀석들이다. 우리 집뿐 아니라 마을 곳곳을 돌며 우리 마을에서 사는 쥐는 거의 씨를 말려 놓지 싶다. 마을 이웃집에서는 우리가 고양이한테 밥을 주는지 알까?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만, 우리 집에서 고양이한테 때때로 밥을 주면서 이 아이들이 마을고양이로 오래도록 살 수 있도록 한다면, 알게 모르게 마을쥐를 쫓으면서 마을 할매랑 할배는 쥐가 곡식을 쏠아먹는 걱정을 덜어 줄 만할까 하고 생각해 본다. 2016.2.2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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