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는 조용히

  시외버스는 조용히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손님이 드문드문 있는 고흥 가는 시외버스는 서울을 한낮에 빠져나온 뒤로 차츰 한갓지며 짙푸른 길을 달립니다. 서울에는 자동차도 사람도 그토록 많더니 시골에서도 더 깊은 시골로 접어드는 고속도로에는 나란히 달리거나 마주 달리는 자동차가 아주 뜸합니다. 시외버스가 시골 읍내에 떨어질 저녁에도 사람과 자동차는 더 적을 테며, 마지막으로 군내버스로 갈아타고 우리 집으로 돌아가면 그야말로 고요할 테지요.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아버지 왔어 하고 소리칠 집으로 느긋하게 달립니다. 2016.6.30.나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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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원, 2000원

 


  어제 낮 서울에 닿아 시내버스를 타는데 153번을 타야 했으나 753번을 탔어요. 제 눈에는 153으로 보였는데, 버스에 타고 보니 753이더군요. 내 눈이 나쁜 탓이로구나 하고 여기다가, 어쩌면 서울버스는 ‘1’하고 ‘7’을 더 또렷하게 갈라 볼 수 있도록 꾸미지 못한 셈이라고도 할 만하지 않을까 하고 여겼어요. 아무튼 잘못 탄 버스이니 내렸지요. 그런데 버스에서 내릴 적에 어떻게 되돌아가야 하나 하고 생각하다가 그만 교통카드를 안 찍었어요. 아차 싶었으나 속으로 괜찮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안 괜찮더군요. 길을 건너서 다른 버스를 타고 길을 돌아갈 적에 2100원을 더 물어야 했어요. 저녁에는 망원역에서 경성고등학교 쪽으로 짧은 길을 택시에 타야 했어요. 라디오 녹음에 맞추어 달려가야 했거든요. 이때에 나는 택시를 내리면서 기본삯 3000원에 2000원을 얹어서 드렸어요. 5000원짜리 종이돈을 드리면서 “우수리는 안 주셔도 돼요. 이 길을 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절을 했어요. 그저 제 마음이었으니까 2000원을 더 드리면서도 즐거웠어요. 그리고 이 즐거운 마음으로 사십 분에 걸쳐서 신나게 라디오 녹음을 했습니다. 2016.6.3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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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틀을 쓰는 고마움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에 일어나서 셈틀을 켭니다. 요새는 웬만한 여관마다 셈틀이 있어서 따로 셈틀방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여관 셈틀은 옛날 풀그림을 쓰기 일쑤라 이것이 안 되고 저것이 안 되곤 합니다. 어쩌면 여관 방마다 놓은 셈틀에 있는 풀그림을 모두 새롭게 고쳐 놓기란 힘들 수 있을 테지요. 내가 집에서 작은 셈틀을 들고 오지 않아도 되면서 여관 셈틀을 쓸 수 있으니, 그저 고마우면서 즐겁게 쓸 노릇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서 아침을 엽니다. 아침에 한 시간 즈음 여관 셈틀을 붙잡고 새 풀그림을 깔아서 쓰려다가(이를테면 크롬 같은) 도무지 안 되어 그냥 이대로 잘 써 보자고 생각을 고칩니다. ‘있는 것’만으로도 어디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2016.6.3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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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툭

 


  새 손전화기를 거저로 받아서 쓰라고 하는 광고전화를 받습니다. 광고전화를 잘못 받았네 하고 느끼면서 “저는 기계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하고 얘기를 하는데, 이 얘기를 하니 곧바로 전화가 툭 끊깁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에서 서울로 달리는 길에 받은 전화이기에, 바로 툭 끊기니 고맙습니다. 처음에는 살짝 멍했지만 질질 끌지 않고 끊어 주어 고맙습니다. 아마 제가 새 손전화기를 거저로 받겠다고 했으면 갑자기 툭 끊지 않고 오래도록 온갖 말씀을 들려주었을 테지요. 전화를 걸면서 전화기를 팔아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얼마나 많이 전화를 걸면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할까요. 2016.6.3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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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가는 꿈



  오늘 서울로 마실을 간다. 마포FM에 찾아가서 책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고, 얼마 앞서 새로 낸 책을 조촐히 기리는 조그마한 모임을 열기로 했다. 엊저녁부터 이래저래 살림을 챙기면서 생각에 잠겨 본다. 오늘 서울마실을 다녀오면서 무엇을 이루어야 할까 하고. 무엇보다도 곁님이 올 칠월에 한 달 동안 미국에 배움마실을 다녀올 배움삯을 모을 수 있기를 꿈꾸어 본다. 미국돈으로 삼천 달러 남짓 들 텐데, 이만 한 돈을 벌자면 책을 몇 권쯤 팔면 될까? 이제껏 곁님이 배움마실을 다녀오도록 할 적에 카드값으로 대고 여러 달이나 여러 해에 걸쳐 이 빚 저 빚으로 갚았는데, 올해에 곁님은 카드값이 아닌 맞돈을 통장에 모았을 때에만 가겠노라 하고 말한다. 이 말이 참으로 옳지. 지난 몇 해 동안 배움삯을 이리저리 빌리고 갚느라 퍽 고단한 모습을 늘 지켜보았으니까. 오늘 서울마실을 가는 길에 꿈을 꾼다. “서울로 살림을 옮기는 꿈”이 아니라 “서울에서 즐겁게 여러 가지 일을 슬기롭게 마치고 배움삯을 넉넉히 벌어들여 곁님이 홀가분하게 배움마실을 다녀오면서 몸과 마음을 한결 따사로이 추스를 수 있는 꿈”을 꾸어 본다. 새벽에 곁님더러 “어제 자전거로 읍내에서 실어 온 수박 반 통을 우리 집 돼지 셋이 한꺼번에 다 먹지 말고 이틀에 나누어서 먹으셔요.” 하고 말했다. 자, 이제 아침을 짓고 가방 메고 바지런히 길을 나서자. 2016.6.2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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