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사진렌즈 셋을 고치려면



  몇 해쯤 앞서 사진렌즈 하나가 망가졌습니다. 이 사진렌즈는 두 번 손질해서 다시 썼는데 다시금 망가져서 더 손질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손질하면 이제는 새로 사는 값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다시 손질하지 않으면 사진렌즈가 없기 때문에 어떡해야 하나 하고 망설일 즈음 형한테서 사진렌즈를 하나 물려받았어요. 무척 고맙게 썼어요. 그 뒤 형한테서 물려받은 사진렌즈도 낡고 닳으면서 망가졌고, 한 번 손질했으나 또 망가졌어요. 이제 쓸 사진렌즈가 없나 하고 쓸쓸해 하던 때에 ‘무척 예전에 장만해 놓고 안 쓴 호환렌즈’를 하나 찾았어요. 질감이 퍽 떨어지는 사진렌즈여도 이 하나가 있으니 고맙게 쓰는데, 바닷가에서도 골짜기에서도 자전거를 달리면서도 늘 함께하느라 어느새 이 호환렌즈도 덜거덕거립니다.


  아이들하고 살며 이 살림을 담는 사진입니다. 사진렌즈를 못 쓰면 눈으로 아이들을 지켜보며 마음에 이 살림을 담으면 돼요. 앞으로는 사진을 안 찍으려면 되려나 하고 생각하다가도, 망가진 예전 사진렌즈 둘을 서울로 가져가서 손질해 볼까 하고도 생각합니다. 이틀 동안 망설이면서 스스로 한숨을 쉽니다. 손질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씩씩하게 서울마실을 할 노릇이고, 사진을 더 안 찍겠다면 사진기를 집에서 치우면 될 노릇일 텐데. 2016.8.2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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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큰사전 누리판 글



  엊저녁에 빨래를 하다가 전화를 받는다. 아이들을 이끌게 한낮에 읍내마실을 다녀오느라 몹시 힘들어서 얼른 집안일을 마치고 드러누우려 하다가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받기 앞서 숨을 고른다. 전화기를 열고 받는다. 전화를 건 곳은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회이다. 올여름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냈는데,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회에서 이 사전을 보셨나 보다. ‘기존 사전 말풀이에서 고쳐야 할 곳’을 놓고 글을 써 볼 수 있겠느냐고, 네 차례에 걸쳐서 써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기존 사전 말풀이’에서 잘못된 곳을 짚는 글은 지난 스무 해 남짓 꾸준히 썼기에, 네 꼭지를 새로 갈무리해서 쓰는 일은 쉽다. 곧 첫 글을 쓸 텐데, 네 꼭지로 담아서 보여줄 이야기를 머리로 그려 본다. 원고지 12장 길이로 쓰는 짤막한 글 네 꼭지가 한국말을 새롭게 바라보고 사랑하도록 북돋우는 밑돌이 될 수 있기를 빈다. 2016.8.17.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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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저자마실



  금요일 아침 밥상맡에서 두 아이한테 묻습니다. 오늘 인감증명을 떼어야 하기에 면소재지로 갈는지 읍내로 갈는지 물어봅니다. “벼리야, 보라야, 오늘 우리 자전거를 탈까, 버스를 탈까?” 큰아이는 “버스?”라 말하고 작은아이는 “자전거랑, 버스?”라 말합니다. 이리하여 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기로 합니다. 읍내로 와서 군청에서 인감증명을 떼는 김에 저자마실을 합니다. 11시 5분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서 12시 30분 버스로 돌아올 수 있으나, 느긋하게 14시 30분 버스를 타기로 합니다. 이동안 넉넉히 걷고, 놀이터에서 그네를 뛰었습니다. 읍내 군립도서관 앞에 있는 햄버거집에서 다리도 쉬었어요. 오늘 한낮이 무척 덥다고 마을방송이나 읍내방송으로도 흐르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다닐 길만 다니면 되고, 더위를 딱히 생각하지 않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는 군내버스를 타고 마을 어귀에 내린 뒤, 곧바로 빨래터로 달려갑니다. 나도 빨래터에서 고무신하고 발을 씻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가방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서 빨래를 하고 몸을 씻습니다. 2016.7.29.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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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자기



  왼무릎이 깨진 지 보름 남짓 되었지 싶습니다. 그동안 왼무릎에서 고름이 제법 나와서 무릎을 꿇고 앉거나 엎드려서 잘 수 없었어요. 무릎을 쓰지 못할 적에 얼마나 힘든가를 새삼스레 느꼈는데 오늘 새벽 살짝 엎드려 보았는데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이제는 더 고름이 안 나오겠네 싶어 마음을 놓습니다. 몸 구석구석 다치거나 아프지 않도록 잘 건사하자고 생각합니다. 2016.7.29.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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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밥고문(식고문)·물고문



  해병대에서 ‘식고문’을 시킨 일이 한 가지 드러났다고 합니다. 어찌 한 가지일 뿐이겠습니까. 더군다나 군대에서 고문을 받는 이들은 거의 모두 졸병이나 훈련병이요, 이들이 겪는 일은 바깥에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소대장이나 중대장이나 행정보급관이나 하사관도 이 같은 짓을 함께 하기 때문에, ‘군대에 아이를 보낸 어버이’가 부대로 신고를 해도 그닥 달라질 일이 없기도 합니다. 이를 조사한다든지 뭐를 한다든지 해 보았자 바뀔 일이 없어요. 이 같은 ‘고문·가해행위’는 그야말로 눈에 뜨이지 않도록 몰래 하기 때문입니다. ‘먹이는 고문’을 하지 않더라도 ‘말로 하는 고문’을 하거나 ‘사역·훈련 때 조용히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짓’을 끝없이 하지요.


  나이가 엇비슷하지만 계급으로 갈라서 위아래 명령·복종 얼거리를 이룬 군대라는 곳이 있는 동안에는 모든 고문·가해행위는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군대는 평화나 나라를 지키는 곳하고 동떨어진다는 대목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겪은 ‘먹는 고문’을 돌아봅니다. 나보다 두 살 위인 녀석하고 나하고 나이가 같은 녀석, 그렇지만 계급은 나보다 위인 두 녀석이 초코파이 한 상자하고 주전자 한 통을 책상에 올려놓지요. 배가 고플 테니 초코파이를 하나 먹으라 하고, 물 한 잔을 마시라 합니다. 사근사근 부드럽고 따스한 말로 먹이지요. 이렇게 초코파이 한 상자하고 주전자 한 통을 다 비울 때까지 먹이는데, 이들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더라도 다 먹어치울 때까지 이 짓을 멈추지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끝내지 않아요. 이렇게 먹이고서 ‘밥때’가 되면 이들은 취사장에서 밥판(식판)에다가 밥이랑 국을 잔뜩 얹어 줍니다. 이등병한테는 제 밥판에 밥을 ‘먹고 싶은 만큼 덜’ 권리가 없습니다.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을 때까지 뱃속에 집어넣어야 해요. 나는 군대에 들어가서 몸무게가 15킬로그램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몸이 불어 숨을 쉬거나 움직이기 힘들어 몹시 괴로웠지만 상병 6호봉에 이를 때까지는 이 몸무게 밑으로 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이 같은 짓을 안 겪어 본 사내가 있을까요? 나는 상병 6호봉이 지난 뒤에 고참 병장한테 제발 이런 멍청한 짓을 이등병한테 시키지 말라고 비로소 따져 보았으나 “그럼 니가 먹을 테야?” 하는 대꾸만 들었습니다. 병장 4호봉을 지나 부대에서 몇 손가락에 드는 아주 높은 선임이 된 뒤에는 후임 상병·병장들이 이런 짓 시킬 적에 드디어 막을 수 있기는 했지만, 이들은 내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서 더 모진 짓을 시킬 뿐이었습니다. 2016.7.27.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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