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마을 상하수도 공사가 이제 마무리일는지 모릅니다. 아직 더 남았을는지 모르고요. 몇 해째 끌던 파고 덮고 다시 파고 덮는 일은 슬슬 끝나지 싶습니다. 40만 원을 내면 상하수도 관을 집안으로 이어 준다고 합니다. 우리는 시골에서마저 수돗물을 쓸 생각이 없으니 이 공사는 안 하기로 합니다. 맑은 냇물을 마시려고 시골에서 사는데 왜 수돗물을 마셔야 할까요. 그런데 마을 어르신들은 ‘지하수는 오염되어서 나쁘다’는 말을 하나같이 하십니다. 누가 이런 말을 퍼뜨릴까요? 지하수가 더럽다니요? 그러면 도시에서 먹는샘물을 사다 마시는 사람은 몽땅 더러운 물을 마시는 셈일까요? 도시에서는 비싼값을 치르면서 페트병에 담긴 냇물(지하수)을 마시려 하는데, 도시사람이 비싼값을 치르면서 사다 마시는 그 냇물이 흐르는 시골에서는 거꾸로 댐에 갇힌 수돗물을 마셔야 한다니요? 군과 도에서는 시골마을에 수돗물을 이어 주는 일이 ‘문화복지’라고 내세우지만, 이 공사를 몇 해째 하느라 들이는 엄청난 돈을 헤아려 본다면, 어느 한 가지도 문화나 복지라고는 못 느낍니다. 이런 공사를 하느라 퍼부을 돈을 시골사람한테 고스란히 주는 일이 외려 문화복지가 될 테지요. 2017.1.2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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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고양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 저녁에 그릇에 고양이밥을 담아 내놓습니다. 처마 밑 이곳저곳에 웅크리던 마을고양이가 어느새 네 마리 달라붙습니다. 접시를 틀림없이 둘 놓았으나 네 마리가 한 접시에 다닥다닥 몰려서 먹이를 팝니다. 같이 붙어서 한 접시만 파면 더 맛있나? 그러고 보면 새끼 고양이가 어미 고양이한테 붙어 젖을 빨 적에도 다 다닥다닥 붙기는 하지요. 2017.1.2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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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아이



  며칠 앞서 꿈에서 ‘셋째 아이’가 나왔습니다. 꿈에서 나온 셋째 아이는 “왜 나한테는 책상을 안 줘요? 얼른 내 책상 자리도 마련해 줘요!” 하고 나를 졸랐어요. “어, 어, 우리 집에 셋째 아이가 있던가? 우리 집에는 아이가 둘인데?” 하고 대꾸하다가 생각해 보았어요. 우리 집에서 셋째랑 넷째는 달을 못 채우고 먼저 나와서 무화과나무와 석류나무 밑에 묻었어요. 설마 이 두 아이인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다른 뜻인가 싶기도 한데, 아무튼 ‘좁고 작은 우리 집’ 한쪽을 틔워 책상을 놓아 주었습니다. 이러면서 이 셋째 아이한테 “자, 우리 집은 좁고 작은 듯하지만 책상 백 개도 얼마든지 놓을 수 있어.” 하고 얘기해 주었어요. 이러면서 꿈이 끝났어요. 2017.1.1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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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 한 켤레



  구멍난 양말을 한 켤레 기웁니다. 아이들이 놀다가 아버지가 바느질을 하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 양말 기워?” 하고 묻습니다. “응.” 뒷꿈치에 난 구멍을 기우는데 몇 분쯤 걸리려나 하고 어림해 봅니다. 십 분 만에 기운다고 하더라도 ‘시간 노동’으로 치면 새 양말을 장만하는 쪽이 ‘돈이 적게’ 든다고 할 만합니다. 요새는 양말 한 켤레에 천 원도 하고 오백 원도 하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돈으로만 쳐서 새 양말을 장만하면 쓰레기가 늘 테지요. 더 따진다면 양말을 사려고 움직이는 길이나 품을 돈으로 치면 천 원이나 오백 원만 들지 않아요. 더 들겠지요. 두 짝을 다 기울 무렵 다른 생각도 듭니다. 어릴 적에는 누구나 양말을 기워서 신었어요. 구멍 안 난 양말을 신는 동무는 찾아볼 수 없었어요. 기운 자국 없는 양말을 신는 동무도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열 살 나이쯤 되면 구멍난 양말은 스스로 기워 신으라 했어요. 그런데 양말은 왜 양말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발을 감싸는 천이라면 ‘버선’이라는 낱말이 버젓이 있으니까요. 버선이라는 낱말을 안 쓰고 굳이 양말이라는 낱말을 쓰는 한겨레는 스스로 제 말을 아끼지 못하거나, 오래도록 즐겁게 쓰던 말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살찌우는 길은 헤아리지 못하는 셈일 수 있다고 느낍니다. 2017.1.1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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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우리는 시계를 보면서 살지는 않아. 그렇지만 시계를 보면서 버스를 타지. 우리는 시계가 흐르는 대로 하루 살림을 짓지는 않아. 그러나 읍내를 다녀오려면 시계를 살피면서 우리가 언제 나가고 들어와야 하는가를 헤아리지. 우리는 우리 결대로 하루를 열고 닫아. 우리는 우리 삶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살아. 시곗바늘을 못 읽어도 되고, 시계는 없어도 돼. 몸으로 때와 달과 철과 해를 알면서, 마음으로 때와 달과 철과 해가 우리 숨결이 되도록 지을 수 있으면 돼. 2017.1.1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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