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흐르는 하루

 

  내 하루는 바쁘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야 할 일이 여러모로 많다고 할 만하지만, 내 하루는 눈부시게 흐릅니다. 아침에 하는 일도 낮에 하는 일도 저녁에 하는 일도 늘 곱게 흐르면서 눈부신 숨결로 피어난다고 느낍니다. 어제하고 같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새 아침에는 늘 새 살림을 가꿉니다. 자루에서 쌀을 꺼내어 씻어서 불릴 적에도, 밥을 냄비에 안칠 적에도, 평상에 덮은 천을 걷을 적에도, 나무한테 속삭이고 풀내음을 맡을 적에도, 멧새가 후박나무에 앉아서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적에도, 아이들을 안으면서 잘 잤느냐고 말을 섞을 적에도 언제나 새로우면서 재미난 이야기가 열린다고 느낍니다. 바쁜 하루가 아닌 눈부신 하루입니다. 2016.7.1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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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가는 기차표와 신문



  오늘치 〈한겨레〉에 재미난 기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손전화 쪽글로 아침에 받았습니다. 제가 요즈막에 새로 내놓은 책을 비롯해서 여섯 가지 책을 짤막하게 추천하면서 어느 한 분을 만나보기로 다룬 기사입니다. 인터넷판으로는 ‘한 사람 만나보기’만 있을 뿐, ‘만나보기를 한 사람이 추천한 책 여섯 권 이야기’는 안 뜹니다. 어찌할까 하다가 읍내마실을 하자고 생각했고, 낮 세 시에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에 가서 우체국에서 신문 한 부를 얻습니다. 그나마 〈한겨레〉이니 읍내 우체국에서 얻을 만합니다. 다른 신문이라면 이 전라도 시골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들어요.


  낮 네 시 사십 분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뒤 전화 한 통을 받고 부랴부랴 기차표를 끊습니다. 다가오는 일요일에 삼례에 가서 이야기마당을 나누기로 했는데, 아직 삼례 가는 기차표를 안 끊었네요. 시골에서 시골로 가는 기차이니 느긋하겠거니 하고 여겼으나, 아닌 일이었어요. 일요일이었고, 이 일요일이란 서울에서 전라권으로 나들이를 온 사람들이 신나게 서울 쪽으로 돌아가는 때입니다. 가까스로 빈자리 하나를 찾아서 겨우 기차표 미리끊기를 합니다. 2016.7.8.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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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나서는 까닭



  다리에서 힘이 쪼옥 빠지도록 자전거를 달리고 나면 저녁에 끙끙 앓다가 곯아떨어집니다. 이튿날 아침에는 멀쩡하게 깨어납니다. 새롭게 내리쬐는 햇볕을 바라보고, 싱그러이 부는 바람을 맞다 보면, 다시 이 자전거로 즐겁게 길을 나서자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새 다리에 새 힘이 붙고, 어제하고는 다른 즐거운 하루가 열렸으니까요. 숲바람을 마시고 싶으니 길을 나섭니다. 숲노래를 부르고 싶으니 두 다리와 온몸에 새로운 숨결이 흐르도록 북돋웁니다. 2016.7.7.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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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을 넘자꾸나



  우리, 저 산을 넘자꾸나. 우리 자전거로 씩씩하게 넘자꾸나. 그리 힘들지 않아. 즐겁게 넘을 만해. 멧길을 타고 넘는 동안 푸른 바람이 불고, 멧자락을 자전거로 넘는 동안 싱그러운 그늘이 있어. 멧길에는 멧노래가 있고, 멧자락에는 멧짐승하고 멧새가 있지. 오늘 우리는 자전거로 저 산을 넘는데, 다음에는 두 다리로 느긋느긋 걸어서 넘을 수도 있어. 2016.7.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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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깨기



  비가 며칠 동안 억수처럼 쏟아지면서 논흙이나 밭흙이 길가로도 많이 흘러넘쳤습니다. 진흙이 쌓인 곳은 살살 밟거나 에두른다고 했지만 그만 꼭 한 번 잘못 밟아서 죽 미끄러집니다. 아차차 하고 깨달으며 왼발을 아래로 뻗습니다. 미끄러진 오른발은 앞으로 죽 찢습니다. 이러며 오른손바닥으로 땅을 짚습니다. 끙 하면서 일어나니 무릎하고 정강이하고 발등에 흙이 붙습니다. 깨졌나? 아무튼 일어나서 다시 길을 가는데 무릎이 많이 따갑습니다. 조금 뒤에 살피니 무릎하고 정강이하고 발등에서 핏물이 줄줄이 흐릅니다. 마을 어귀 빨래터로 가서 쪼그려앉습니다. 샘물을 끼얹으면서 붓기를 달래고 모래랑 흙이랑 돌을 빼냅니다. 지난해 가을에는 오른무릎을 시멘트바닥에 모질게 찧으며 보름 가까이 못 걷고 기어다니기만 했는데 올해 여름에는 왼무릎을 시멘트바닥에 찧는군요. 그래도 이만 하면 걸을 수 있겠다고 여기며 읍내마실을 하는데, 읍내에서 한 시간 반쯤 지날 즈음 졸음이 쏟아집니다. 몸이 힘들다는 뜻이로구나 하고 알아챕니다. 무릎에서 피는 더 나지 않으나 다친 자리를 아물도록 하는 데에 힘을 쓰면서 몸이 지치는구나 싶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군내버스에는 자리가 없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저녁을 차리고 부엌을 갈무리합니다. 빨래를 걷고 아이들을 씻겼으며 나도 씻습니다. 무릎을 안 깼으면 조금 더 기운을 낼 만했을까요? 깨진 무릎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데 아이들이 아버지 무릎이 얼른 낫기를 비는 그림을 그려 줍니다. 멋지네. 아이들 먹으라고 수박을 큼직큼직 썰어 놓습니다. 이제 슬슬 누워야겠습니다. 아이들이 쉬를 다시 누도록 하고는 나란히 누워야겠어요. 2016.7.4.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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