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밥 한 끼니


  

  꽤 오랜만에 바깥밥을 먹는다. 네 식구가 바깥밥을 언제 먹었는 지 떠오르지 않는다. 모처럼 바깥밥을 한 끼니 사서 먹으면서, 나는 집에서 한 끼니를 차리지 않아도 된다. 어제오늘 잇달아 ‘글 가다듬기’를 하느라 바쁘니, 읍내마실을 다녀오며 한 끼니 품을 덜면서 힘을 몹시 아낄 수 있다. 원고지로 2800장에 이르는 글을 살펴야 하는데, 오늘은 어느 만큼 살필 만할까. 오탈자만 살피는 ‘글 가다듬기’가 아니라 빠진 데를 손보면서 이모저모 보태기도 하니까 퍽 더디다. 나중에 교정 교열만 본다면 그때에는 서너 시간이면 다 마칠 테지. 교정 교열은 아무래도 서울에 가서 바로 마쳐서 출판사로 넘겨야지 싶다. 5월에 책이 나올 수 있도록, 그러니까 5월에 ‘새로운 국어사전’이 조그맣고 예쁘게 나오도록 하려고 힘을 쏟는다. 아버지가 이 일을 하느라 바쁜 어제오늘 두 아이가 씩씩하게 놀아 주어서 고맙다. 더 기운을 내야지. 살짝 숨을 돌리면서 등허리를 편 뒤에 저녁을 차리고, 아이들하고 저녁놀이를 한 뒤, 밤하고 새벽에 더 일손을 잡아야겠다. 2016.3.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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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양말이란



  곁님이 곁님 동생이 낳은 아기한테 선물하려고 양말을 한 켤레 떴다. 이 뜨개양말을 보내는 길에 ‘아기띠’를 찾아서 함께 보냈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자라는 동안 안고 업으면서 쓰던 아기띠를 잘 빨고 말래서 잘 두었는데, 막상 너무 잘 둔 탓에 어디에 두었는지 한참 못 찾았다. 아이들 겨울옷하고 봄옷을 갈무리하다가 드디어 아기띠를 찾았기에 기쁜 마음으로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뜨개질이 손에 익고 손놀림이 빠르다면 하루에 여러 켤레를 뜰 수 있을까? 뜨개질을 해 본 사람은 알 텐데 양말 한 켤레를 뜨기까지도 품이 꽤 많이 든다.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손길하고 사랑이 작은 뜨개양말 한 켤레에 깃든다. 이를테면, 이 뜨개양말을 마무리하기까지 예닐곱 시간쯤 걸린다 하더라도 ‘뜨개질을 익히고 마름질을 배우며 실하고 바늘을 장만하기’까지 들인 품하고 겨를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냥 뜰 수 있는 작은 양말이란 없다.


  우리가 손수 살림을 짓는 길을 익힌다면, 무엇 하나 아무렇게나 다루지 않을 테지. 우리가 기쁘게 살림을 가꾸는 길을 걷는다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에 고운 손길을 담아서 아름다운 보금자리와 마을을 가꿀 수 있을 테지. 손수 하는 곳에 사랑이 흐르고, 손수 짓는 곳에 삶이 있다. 2016.3.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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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는 삶



  부엌을 어느 만큼 치운 어느 날 곁님이 한 마디 들려주었다. 이렇게 치우니 내가 부엌일을 하기 좋지 않느냐 물었다. 그때에는 바로 대꾸하지 못했는데, 가만히 그 말을 돌아보니, 내가 손수 부엌이나 집안을 치우면 나부터 부엌이나 집안에서 여러 가지를 하기 수월했다. 맞는 말이다. 방바닥을 어지르면 아이들도 놀기에 나쁘고, 나도 다니기에 나쁘다. 방바닥을 잘 치우면 아이들도 놀기에 한결 낫고, 나도 다니기에 한결 낫다. 요즈음 도서관하고 집을 틈틈이 치워 보는데, 치워 놓고 보니 이것저것 하기에 참말 한결 낫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씨앗을 심어서 돌보고 갈무리하듯이, 집살림도 늘 아끼고 돌보며 추스르는 몸짓이 될 때에 비로소 스스로 아늑하면서 일이 잘 풀리네 하고 깨닫는다. 2016.3.3.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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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렌지 밥



  열 해쯤 앞서였지 싶다. 가스렌지를 장만할 적에 뒤쪽에 ‘밥(건전지)’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이 모습을 보기만 할 뿐, 아무한테도 묻지 않았다. 들고 다니는 작은 렌지는 따로 밥을 넣지 않아도 불이 오른다. 부엌에서 쓰는 가스렌지는 따로 밥을 넣어야 비로소 불이 붙는다. 왜 그럴까?


  가스렌지를 쓴 지 다섯 해쯤 지날 무렵 가스불이 잘 안 올라왔다. 둘레에서 이 까닭을 알려준 사람이 여태 없다가 며칠 앞서 비로소 알았다. 가스렌지 뒤쪽에 있는 밥을 갈아 주어야 한단다. 밥이 다 닳으면 불이 안 올라온단다. 이리하여 읍내로 마실을 가서 가스렌지 밥(굵은 건전지)을 장만했고, 이 밥을 넣으니 불이 아주 쉽게 올라온다.


  가스렌지가 잘 안 켜져서 걱정하는 이웃이 꽤 많지 않을까? 가스렌지를 장만하는 사람한테 ‘몇 해쯤 쓴 뒤에는 밥을 갈아야 한다’고 알려주는 가게지기는 있을까? 2016.2.2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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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받다



  나흘쯤 앞서 면소재지에서 갑자기 쌀을 가지고 우리 집에 왔다. 흰쌀 40킬로그램을 받았다. 왜 주는지는 잘 모른다. 그저 고맙게 받기로 했다. 어제 고흥 동강면에 사는 이웃님이 쌀 한 자루를 가지고 우리 집에 오셨다. 세겹살에 배추에 버섯까지 들고 오셔서 부엌살림이 넉넉해졌다. 흰쌀 80킬로그램을 마루며 부엌이며 둔다. 네 식구가 이 쌀을 몇 달쯤 먹을 만할까 하고 생각해 보다가, 일산집과 음성집에 쌀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곁님 어버이와 우리 어버이한테 ‘선물로 받은 쌀’을 다시 ‘선물로 드릴’ 수 있겠구나 싶다. 자전거에 쌀을 싣고 우체국까지 나르려면 얼마쯤 나누어야 할까. 우체국 문을 여는 월요일을 기다린다. 2016.2.2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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