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여관에 묵으려 하는데


  어젯밤이 아닌 오늘 새벽, 여관에서 묵으려 하는데 여관집 사장님이 잠에 곯아떨어지셔서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안 하신다. 그래서 아침에 여관집 사장님이 일어나시면 그때에 삯을 치르자는 생각으로 빈 방을 찾아서 나 스스로 문을 하나씩 열어 보는데, 문이 열리는 방마다 누군가 드러누워서 코를 곤다. 아니 이 사람들은 문도 안 걸고 잠을 자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참 재미있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끝내 빈 방을 찾지 못해서, 여관에서 묵자는 생각을 접고 피시방에 갔다. 자물쇠도 채우지 않고 그냥 자는 여관집 사람들 곁에 살그마니 누웠다가 아침에 슬그머니 일어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여러모로 놀랍고 새삼스러웠다고 느낀다. 이제 피시방에서도 일어나야 할 때다. 2016.5.3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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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시에 먹는 저녁



  어제 고흥에서 서울로 왔다. 서울에 닿아 다섯 시 사십 분 즈음부터 출판사 대표님하고 디자인회사 대표님이랑 ‘거의 최종 편집 디자인 교정’을 보는데, 이 일이 열한 시를 넘겨서 끝난다. 이리하여 우리 세 사람은 거의 열두 시가 될 무렵 저녁밥을 먹을 곳을 찾았는데, 서울이라는 곳에서는 밤 열두 시에도 ‘밥 먹을 데’가 있다. 밤 열두 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저녁밥을 먹다가 돌아보니, 어제 나는 아침이나 낮에 한 끼니도 따로 먹지 않았다. 고흥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느라 밥을 안 먹기도 했지만, 거의 여섯 시간 동안 편집 디자인 교정을 함께 보는 동안 밥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늦은 때에 비로소 ‘늦은 저녁’을 먹겠다며 서울 홍대 언저리를 걷는 동안 그때가 ‘밤 열두 시’인 줄마저 생각하지 못했다. 그무렵 밥을 먹고 보리술을 한잔 마시자면서 새로운 자리를 알아보려고 하던 때는 새벽 두어 시 무렵. 삼십 분 넘게 이리저리 홍대 언저리를 걷고서야 그때가 몇 시 즈음 되는 줄 뒤늦게 알았는데, 그 늦은 밤에도 서울 곳곳은 불빛이 환했다. 별빛이나 달빛은 깃들지 않아도 전등불빛이 환한 서울에서는 때를 알기는 어려운 하루가 흐른다고 할까. 그렇지만 때를 알기 어렵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일을 하면서 수많은 이야기가 흐른다고도 할 수 있을 테지. 이튿날 아침 여덟 시가 된 이때에 어제 하루를 돌아보다가 괜히 웃음이 나온다. ‘아니, 어제 밤 열두 시에 저녁을 먹으러 나왔잖아? 게다가 밤 두 시 넘은 때에 보리술 한잔 하자면서 술집을 찾아다녔잖아?’ 하는 생각에 자꾸 웃음이 나온다. 2016.,5.3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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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첫 서울마실



  2016년 들어 첫 서울마실을 한다. 올 1월부터 5월에 이르는 동안 고흥집에서 글을 쓰고 텃밭을 일구며 아이들하고 새로운 배움노래를 부르느라 내내 바깥으로 안 다녔다. 오늘 ‘가제본 교정지’를 들고 서울에 간다. 열흘 뒤에는 인천에 ‘책잔치 초대’를 받아서 바깥일을 본다. 바야흐로 기지개를 켜면서 안팎에서 여러 가지 일을 보는 셈이라고 느낀다. 새벽 빨래를 하고 짐을 챙긴다. 아이들이 오늘 하루 재미나고 즐겁게 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길을 나서야지. 2016.5.30.달.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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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에 나를 볶는 꼬투리



  바야흐로 ‘새 사전 원고’ 끝손질을 하는데, 오늘 두 가지 낱말을 새로 보태야 하느라 손이 많이 간다. 첫째 ‘볶다’라는 낱말을 보태고, 둘째 ‘꼬투리’라는 낱말을 보탠다. 흔히 쓰는 이 두 가지 낱말이 올림말에서 빠졌기에 아차 하고 무릎을 치면서 부랴부랴 보태려 한다. 그래도 이 원고를 다시 읽고 또 읽고 거듭 읽으며 이제서야 깨달았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하고 느낀다. 끝손질을 하기까지 두 낱말이 빠진 줄 알아채지 못했으면 얼마나 아찔했을까. 아이들이 고이 잠들어 준 밤에 기운을 내어 마저 교정종이를 넘긴다. 2016.5.29.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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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돌보기 (산후조리)



  통장에 8만 9천 원쯤 있기에 카드를 쓰기로 하면서, 곁님한테 먹일 미역하고 소고기하고 수박을 장만했다. 아기가 어머니 몸에서 열 달을 채우고 나면 곳곳에서 미역값을 보내 주곤 할 테지만, 아기가 어머니 몸에서 석 달쯤 살다가 너무 일찍 나오면 미역값을 보내 주는 손길이 없다. 돈이야 곧 벌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문득 달리 생각해 보았다. 미역을 가게에서 장만하기보다는 바다에서 손수 딸 수 있는 살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수박도 밭에서 손수 씨앗을 심어서 거두는 살림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하고. 겨울이 아닌, 그러니까 겨울에 낳는 아기가 아닌, 이 봄날 오월에 갑작스레 먼저 찾아온 핏덩이를 받으며 곁님을 돌보는 살림(산후조리)이 되면서 ‘주머니에 없는 돈’보다 ‘우리 살림을 어떻게 자급자족으로 새로 짓는가’ 하는 생각을 곰곰이 해 본다. 잠이 잘 안 오지만, 잠을 자야 ‘곁에서 자는 아이들’을 잘 보살필 수 있겠지. 2016.5.2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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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6-05-22 04:41   좋아요 0 | URL
아....

숲노래 2016-05-22 06:20   좋아요 1 | URL
셋째나 넷째한테는 이름을 지어 주지 못했는데
문득 두 핏덩이한테 모두
`바람이`라는 이름을 붙여 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별에서 새롭게 태어나리라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hnine 2016-05-22 05:02   좋아요 0 | URL
아내 분 몸 잘 추스릴수 있도록 숲노래님께서 잘 돌봐주시겠지요. 몸 뿐 아니라 마음도 잘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숲노래 2016-05-22 06:19   좋아요 1 | URL
넷째가 바람처럼 와서 바람처럼 가 버리려고 할 즈음부터
저는 오른어깨가 갑자기 결리면서
요새 설거지를 못해요.
얼추 열 해 만에 곁님더러 ˝며칠만 설거지 해 달라˝고 물었습니다 ^^;
설거지를 빼고는 다른 일은 여느 때처럼 하고 그러는데,
어쩌면 오른어깨 결림이 ˝넷째가 바람처럼 스쳐 가겠다˝고
저한테 미리 말을 건 일이 아닌가 하고도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더 잘 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