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자기



  왼무릎이 깨진 지 보름 남짓 되었지 싶습니다. 그동안 왼무릎에서 고름이 제법 나와서 무릎을 꿇고 앉거나 엎드려서 잘 수 없었어요. 무릎을 쓰지 못할 적에 얼마나 힘든가를 새삼스레 느꼈는데 오늘 새벽 살짝 엎드려 보았는데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이제는 더 고름이 안 나오겠네 싶어 마음을 놓습니다. 몸 구석구석 다치거나 아프지 않도록 잘 건사하자고 생각합니다. 2016.7.29.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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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밥고문(식고문)·물고문



  해병대에서 ‘식고문’을 시킨 일이 한 가지 드러났다고 합니다. 어찌 한 가지일 뿐이겠습니까. 더군다나 군대에서 고문을 받는 이들은 거의 모두 졸병이나 훈련병이요, 이들이 겪는 일은 바깥에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소대장이나 중대장이나 행정보급관이나 하사관도 이 같은 짓을 함께 하기 때문에, ‘군대에 아이를 보낸 어버이’가 부대로 신고를 해도 그닥 달라질 일이 없기도 합니다. 이를 조사한다든지 뭐를 한다든지 해 보았자 바뀔 일이 없어요. 이 같은 ‘고문·가해행위’는 그야말로 눈에 뜨이지 않도록 몰래 하기 때문입니다. ‘먹이는 고문’을 하지 않더라도 ‘말로 하는 고문’을 하거나 ‘사역·훈련 때 조용히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짓’을 끝없이 하지요.


  나이가 엇비슷하지만 계급으로 갈라서 위아래 명령·복종 얼거리를 이룬 군대라는 곳이 있는 동안에는 모든 고문·가해행위는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군대는 평화나 나라를 지키는 곳하고 동떨어진다는 대목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겪은 ‘먹는 고문’을 돌아봅니다. 나보다 두 살 위인 녀석하고 나하고 나이가 같은 녀석, 그렇지만 계급은 나보다 위인 두 녀석이 초코파이 한 상자하고 주전자 한 통을 책상에 올려놓지요. 배가 고플 테니 초코파이를 하나 먹으라 하고, 물 한 잔을 마시라 합니다. 사근사근 부드럽고 따스한 말로 먹이지요. 이렇게 초코파이 한 상자하고 주전자 한 통을 다 비울 때까지 먹이는데, 이들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더라도 다 먹어치울 때까지 이 짓을 멈추지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끝내지 않아요. 이렇게 먹이고서 ‘밥때’가 되면 이들은 취사장에서 밥판(식판)에다가 밥이랑 국을 잔뜩 얹어 줍니다. 이등병한테는 제 밥판에 밥을 ‘먹고 싶은 만큼 덜’ 권리가 없습니다.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을 때까지 뱃속에 집어넣어야 해요. 나는 군대에 들어가서 몸무게가 15킬로그램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몸이 불어 숨을 쉬거나 움직이기 힘들어 몹시 괴로웠지만 상병 6호봉에 이를 때까지는 이 몸무게 밑으로 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이 같은 짓을 안 겪어 본 사내가 있을까요? 나는 상병 6호봉이 지난 뒤에 고참 병장한테 제발 이런 멍청한 짓을 이등병한테 시키지 말라고 비로소 따져 보았으나 “그럼 니가 먹을 테야?” 하는 대꾸만 들었습니다. 병장 4호봉을 지나 부대에서 몇 손가락에 드는 아주 높은 선임이 된 뒤에는 후임 상병·병장들이 이런 짓 시킬 적에 드디어 막을 수 있기는 했지만, 이들은 내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서 더 모진 짓을 시킬 뿐이었습니다. 2016.7.27.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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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님 2



  다시 택시 기사님 이야기를 보태어 봅니다. 택시 기사님은 국악방송 앞에서 합정역으로 가는 길에서 미터기 삯을 100원쯤 에누리를 해 주려고 미터기를 일찍 꺼 주었습니다. 굳이 그렇게 해 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 100원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살짝 해 보았습니다. 택시삯은 6700원 나옵니다. 그래서 나는 오천 원짜리 한 장하고 천 원짜리 두 장을 내밀면서 거스름돈은 주지 마셔요 하고 말씀을 여쭙니다. 100원 에누리를 300원으로 돌려드립니다. 내가 국악방송 앞에서 택시를 탈 즈음 바로 다른 손님이 내리고 내가 바로 탔는데, 합정역 앞에서 내가 택시에서 내릴 적에 바로 다른 손님이 이 택시를 탑니다.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생각합니다. ‘그래, 언제나 마음으로 삶을 짓지.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손님이 잇다느냐 마느냐가 달라지지. 내가 걷는 삶길에서도 나 스스로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내 길이 즐거움인지 기쁨인지 노래인지 웃음인지 달라지지.’ 2016.7.2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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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님 1



  어제 낮에 서울에 왔습니다. 국악방송을 찾아갔습니다. 국악방송이 있는 마을에는 높다란 건물이 많아서 아찔했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내가 시골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다가 이 서울이라는 곳에서 길을 찾으면서 머리가 빙글빙글 돌지? 이제 나는 시골사람이 다 되었나? 도무지 길을 못 찾겠네? 국악방송 피디님한테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찾아가야 하느냐고, 길그림을 보고서는 못 찾겠다고 말씀을 여쭙니다. 겨우겨우 국악방송 건물을 찾았는데, 이 다음에는 11층에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가를 모릅니다. 건물 지킴이 할아버지한테 “국악방송 11층에 어떻게 올라가지요?” 하고 여쭙니다. 건물 지킴이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면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되지요.” 하고 말씀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어디에 있나요?”


  녹음 일을 마치고 합정역 쪽으로 돌아가려는데 전철을 타는 데까지 다시 걸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택시를 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한참 걸어가고 또 땅밑으로 한참 내려가는 길이 내키지 않습니다. 택시는 건너편에 잔뜩 있지만 큰길을 또 건너야 하나 하고 생각하는데 마침 제 앞에 택시 한 대가 멎으면서 손님이 내립니다. 창문으로 기사님한테 여쭙니다. “합정역 갈 수 있나요?” 택시를 타고 합정역으로 가는 길에 기사님이 제 차림새를 살피면서 “국악 하시나요?” 하고 묻습니다. 나는 웃으면서 “저는 국악은 하지 않지만 국어사전을 쓰는 일을 합니다.” 하고 말씀합니다. “국악이 아니고 국어사전이요?” “지난달에 새로운 사전을 하나 썼거든요.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라고 하는 책인데, 새로운 사전을 한 권 썼기에 국악방송에서 이 책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택시 기사님은 요즈음 사람들이 말(한국말)을 너무 엉터리로 함부로 쓴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문득 “한국에서 사전 쓰거나 엮는 일을 사람이 몇 없어요. 아마 기사님은 사전을 쓰는 사람을 손님으로 만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해요.”


  나는 내 일을 ‘직업’으로 여긴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모로 보니까, 사회에서 내 일을 ‘직업’으로 바라보자니까, 내 직업은 ‘국어사전 집필자’입니다. 아마 이러한 직업을 맡아서 일을 하는 사람은 한국에서 몇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겠구나 싶습니다. 내가 나를 자랑할 까닭은 없으나,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보람으로 여길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택시를 타고 합정역으로 가면서 창밖으로 스치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스무 해쯤 앞서 재개발을 할 무렵 길가에 나무 한 그루 없이 메마르던 곳이 이제 스무 해 사이에 나무가 제법 자라서 그늘을 드리웁니다. 내가 걷는 길이란 무엇인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하며 웃습니다. 2016.7.2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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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마실



오늘 국악방송 녹음을 하러 서울로 갑니다. 미역국은 잘 끓였는데 빨래는 미처 못하네요. 담가 놓기만 하고 헹굼질을 해서 널 겨를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즐겁게 마실을 할 노릇이고, 고흥집을 지키는 아이들도 곁님도 시원하면서 싱그러운 하루가 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7.25.달.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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